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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의 바램

 들꽃의 바램

 

 

 여느 해보다 긴 겨울

 바람따라 휘청거리던 고목

 

 그 두터운 껍질 속에서 새순은 움이트고

 눈치 채지 못한 이들 가슴에도 새싹은 자라지요

 

 저마다 사랑을 읖조려도

 무뎌진 메아리로 되돌려 받을 뿐

 

 얽힌 실타래 마냥  시작 끝 모를 한숨

 침묵의 사슬에 묶인 몸뚱아리

 

 실핏줄처럼 금이 가고

 흘린 눈물이 배어들면

 

 봄을 기다리는 꽃씨도

 겨울잠을 자는 여린 짐승도

 

 외로움에 떨며 새벽길을 나선 이들에게도

 엽서만큼 작은 햇발은 다가서네요

 

 기억해주세요

 흔한 들풀도 꽃망울을 피우기 위해 견뎌온 시간이 있음을...

 

- 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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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깨어

새벽녘에 깨어

 

 

 

지난 밤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나

그만큼 앙상해진 시간들

주워담으려 부질없는 몸짓 더했다

 

환한 잔영으로 남은 꿈이 악몽인지도 모른 채

파편마냥 흩어진 기억을 꿰메보지만

창문너머  바늘처럼 꽂혀오는 햇살이

가려진 몸의 껍질보다 더 깊은 곳에 와 박힌다

 

 가위 눌려 흠칫 놀란 아이는 공포에 시달린다

 제 어미가 안아서 토닥거리기 전까지 멈추지 않지

 가녀린 영혼,

 나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걸음마를 잊은 아이마냥 울음을 터트리고 지치고

 그렇게 선 잠으로 돌아간다.

 

 - 0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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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들 때

후회가 들 때

 

 

가늠하기 어려운 건 내 기억의 무게

 

무너져 내린 돌탑에 눈길 주지 말고

영원할 것 같은 시계추는 매달아라

 

환청은 남아도 일상은 숨가쁘고

얕은 고리의 사슬처럼 엮인 외로움

찰라의 속도로 생채기를 그어댄다

 

 

 

새들도 자기 만의 상처로 슬피운다

 

 

- 0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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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있다면...

지쳐있다면...

 

 

거친 발자욱 패인 자리

그림자 늘어지더니

골을 채워선 것은 어제의 기억

 

앞서간 시간만큼

되돌아보기를 게을리 한 것은

근거없는 두려움

 

서릿발이 깨져서

사금파리 날카롭게 베여오고

 

아직은 겨울

이미 온 듯 보였던 봄바람도

내 지친 몸을 휘감아 나갈때는 서럽게 슬퍼

 

멈춰 서 하늘 보고

발 딛은 땅을 보라

딱 그만큼 한켜 다른 나이테가 늘었다.

 

- 0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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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이 말하는 화가 박항률

박항률 그림 - 정호승   

 

Meditation at Noon/2000/65.1 x 100/Acrylic on Canvas

 

 

 

박항률 그림

 

                                                                                 정호승

 

 

박항률님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갑자기 "쿵" !  하고 바위 하나가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바위가 꽃잎이 되어 내 가슴의 또 다른 한 곳에

사뿐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그림에서

우러 나오는 고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찍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정적, 그 고요함의 깊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박항률님의 그림 앞에 서면 늘 침묵과 고요함을 느낀다.

그것은 이 소란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어느 한순간,

담벼락 모퉁이에 홀로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고

갑자기 걸음을 딱 멈추었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과 같다.

은행나무나 모과나무 가지에 달려 있던 열매들이

바람 부는 어느날 땅에 떨어져 말없이 침묵 가운데 이루는 고요함과도 같다.

 

 

untitled/1992/130 x 130/Acrylic on Canvas

 

나는 그의 고요함 앞에 언제나 옷깃을 여민다.

그의 고요함은 고맙게도 내 현재적 삶을 정지시킨다.

더 이상 과거의 고통이나 미래의 불안 속으로

처벅처벅 걸어들어가지 않게 만든다.

내가 가장 기뻐했던 삶의 어느 한 순간에 영원히 나를 머무르게 한다.

나뭇가지 끝에 고요히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면 마치 오랫동안

나 자신이 그렇게 나뭇가지 끝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같고.

 

The Dawn/2000/72.7 x 60.6/Acrylic on Canvas

 

노랑 저고리를 입은 소녀의 머리위에 앉아 있는 새를 보면

나 자신이 그렇게 한 소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듯

문득 영원과 연결 된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그 고요함과 영원함 앞에 늘 무릎을 꿇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묵상하는 자의 겸손함과 경건함이 있다.

침묵이 부족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고뇌가 있다.

천년 세월 동안 가슴위로 두 손을 모우고 선 채로 살아온

운주사 돌부처들의 침묵이 있고 ,

성당의 장궤대에 무릎을 꿇고 고요히 기도하는 소녀의 순결한 묵상이 있다.

 

 

비어(The Secret Story)/2000/80 x 80/Acrylic on Canvas

 

 

박항률님의 그림 속에서는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의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소년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물고기 비어(飛漁),

인간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人面鳥),

해 속에 사는 세 발 가진 까마귀 삼족오(三足烏),

등에 소년을 태우고 달리는 천마(天馬) 등은 상상력이 고갈된

우리의 현재적 삶에 신화적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나는 그가 열어놓은 상상력의 문에 기대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 싶어하는 세계가

어쩌면 동화나 신화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A Boy/2000/39 x 29/Acrylic on Paper

 

 

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고요히 지구로부터 멀어져가는 초승달의 발소리가 들린다.

잠든 우리의 창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새벽별들의 발소리도 들리고,

비어가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의 바람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해서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인간의 길이 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 자연과 합일된 아름다운 인간들의 얼굴이 있다.

말이 된 소년, 새가 된 소녀, 

머리에 나뭇배를 이고 나뭇배가 된 인간의 본질적 모습이 있다.

그런 모습들이 이루는 고요함 앞에, 자연과 인간이 만나 이루는 고요함의

어느 어느 한 순간 앞에 서면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

만일 내가 새가 된다면 그가 그린 인면조가 될 것만같다.

 

 

시도 그렇지만 그림도 가난한 인간의 마음을 위안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의 그림은 마치 가난한 동생을 염려하는, 정신없이 물질의 세계를 향해

바쁘게 살아가는 동생의 소매 끝을 살며시 끌어당기는, 누님의 손길 같다.

나는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빠져 있는지,

어떠한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분명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고독과 사랑의 고통에 대하여 꿈을 꾸고 있는듯하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고통을 뛰어넘은 자의 한 순간이 엿보이는 듯해서 아늑하다.

눈물 끝에 열리는 미소가 엿보여서 평화롭다.

특히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는 소년의 맑고 투명한 눈빛은 잊기 힘들다.

그 소년의 눈빛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존재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소녀(A Young Girl)/1997/40.9 x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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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따갑다. 빗방울

보드랍게 젖은 가슴에 꽂혀


눈부시다.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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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비

 

가 는 비



하늘이 조금 열리면

그 틈으로 몇 가닥 실을 타고

빗방울 매달려 내려온다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사람들

분주히 오가지만

우산 펴지 못한 채 뛰어가는 그의 등뒤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그늘

 

툭!툭!

 

바닥까지 내려와 산산히 깨진 물방울

서로 몸을 섞기  반복하더니

아스팔트 한켠에 패인 딱딱한 생채기

오롯이 모여 작은 샘이 된다

 

해가 뜨면 사라질

짧은 만남은

또 어떤 이에게 옮겨갈까

 

때마침

횡단보도 앞 발걸음 멈춘 그녀

바지 끝으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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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시집을 손에 넣은 날부터 너덜너덜해서 낱장이 다 띁겨갈때까지

들고 다녔었다. 입속의 검은 잎... 그의 시가 준 영향 아직까지도 계속된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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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탄이 나오는 두개의 시

안도현을 알게된 것은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후배녀석을 통해서였다.

단식투쟁 10일을 넘기면서 힘이 들기 시작할 때

휴가를 나와 총학생회 사무실에 들린 후배가 내 자리에 남기고 간 메모..

거기에 적힌 연탄재..  그의 사상은 모르나 시어를 좋아 한다.

 

 

 

" 너에게 묻는다 "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연탄 한 장 "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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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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