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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자전거

아침마다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핑계로 방치해두었던 자전거를 오랫만에 끌고 집으로 왔다. 벌써 몇 달째 하늘을 바라보며 눈과 비를 맞느라 자전거는 퍽 피곤해보였다. 체인은 기름기 없는 푸석한 모습이었고 프레임은 산성비를 맡았는지, 한 때는 중후해 보이던 무광택의 피부에 흙먼지가 잔뜩 눌러 붙어있었다. 괜시리 미안해지는 마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동하는 도중에 책을 읽거나(그러다 자거나) 음악을 들을 수(그러다 잠을 잘 수)있는 좋은 점이 있지만 자전거를 타는 일은 또 다른 좋은 점들이 있다. 아... 운동은 별로 안된다. 자전거가 운동이 될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기구였다면 좋은 교통수단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는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입안에서 자신감 없이 웅얼거리던 노래들을 크게 부를 수 있다.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못듣지는 않겠지만, 소리보다 빠르게 페달을 저어가면 내 부끄러운 음색과 얼굴을 들키지 않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제낄 수 있게 된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 울고 싶을 때나, 자기도 모르게 울컥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릴 것만 같을 때에도 자전거를 타는 일은 퍽 좋다. 너무 펑펑 울어 눈물에 앞이 흐릿할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화장실에서 문 잠궈놓고 수돗물 틀어놓을 필요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쯤 울상인 얼굴을 빠르게 스쳐가며 궁금해는 하겠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산책을 즐길 뿐이다. 게다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훔쳐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면 생각에 잠기기에 좋다. 물론 차도에서는 잡생각은 금물이다. 일단 살고봐야지... 한적한 밤의 자전거 도로는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사람들에게도 한움큼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하물며 무언가 골똑히 생각할 거리가 많이 있을때는 말 할 것도 없다. 차가운 바람이 폐부로 스며들어 심각해진 머리를 식혀주니 어려운 생각에도 안성맞춤이고, 낮에 내린 소나기로 부풀어오른 풀내음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슬픈 생각을 하기에도 적당하다.

 

문득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은 2009년 서울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난 환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갑자기 저 멀리 커다란 네온사인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절이 생각나면, 도망치고 싶기만한 마음들이 생각나면, 억지로 인식하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이제는 떠나버린 것들이 갑자기 현실적으로 느껴지면, 갑자기 손가락 끝이 하나씩 아려온다. 열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직도 아홉번이나 더 이렇게 문득 문득 이별을 실감해야 하나보다.

 

갑자기,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던 일본의 봄. 그래,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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