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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지지리궁상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이계삼 선생님의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다가 눈물이 나 챙피해 죽는 줄 알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계삼 선생님이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대학때는 연극에 빠져 공부 안해서 선생님 못하다가 뒤늦게 30줄이 넘어서 기간제 교사를 하게된 친구다. 그런데 계속 기간제가 끝나고 정규직 채용에서는 탈락을 했다. 전교조 쪽으로 싹수가 보인다는 이유였다. 어렵사리 다른 학교 정규직 임용 공채에 합격해서 수업과 담임까지 배정받았는데, 며칠 뒤 또 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 학교에서 전 근무지로 연락을 해본 모양이다.  그 사이 아이는 태어나고, 결국 다른지역에서 다시 기간제교사 2년 동안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스스로를 배반하며 살았다고 한다. 헌데 이번에도 정규직 임용에서 탈락을 한다. 친구의 아내는 돈을 안써서 그런거라고 추측하고 학교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핑계를 대고. 하지만 이계삼 선생님은 다른 부분에서 확실한 물증을 잡았다. 일제고사 때문이었다. 친구가 맡은 반 아이들 몇 명이 첫날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친구분은 시험을 치지 않은 아이들을 불러서 점잖게 그래도 시험을 치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아이는 끝내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친구분은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기간제가 담임하는 학급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아이가 나온 꼴을 학교가 견딜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친구분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이계삼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있잖아, 나 진짜 말 못하겠더라. 그 한 아이한테, 억지로라도, 꼭 치르라고, 그 소리는 정말 못하겠더라."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이라는 고문을 행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 보다도, 징계사유도 안되는 일을 꼬투리잡아 선생님들을 짜르는 이 정부에 대한 분노보다도, 그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2년동안 그 지저분한 꼴을 다 견디고 살아냈을텐데, 그래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양심 한 자락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 양심 한자락의 대가에 대한 분노는 슬픔이 지나간 후의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그것도 출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궁상맞게 시리 눈물이나 질질짜고 있었으니.

요새 들어 책 보며 부쩍 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티재하늘 보면서도 울고, 용산참사 만화책 원고 보면서 교정교열은 안하고 그냥 울고 있고, 이계삼 선생님 책보면서 울고... 울음이 너무 헤퍼졌다. 게다가 책 읽은 공간이 거의 지하철 혹은 사무실인데,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서 책보고 울고 정말 지지리궁상을 떨고 있다. 원래 못난 놈들이 궁상떠는 법인데, 갈수록 못난 놈으로 살고 있다는 자책때문인지 암튼 오늘도 창피해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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