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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언제였더라 커피를 마시게 된 게...

짐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를 보면서(재성이랑 술먹고 봐서 중간이 졸았지만 ㅠㅠ)

나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고싶단 생각을 했던 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전쟁없는세상 초창기까지 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중학교까지는 워낙 모범생이어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거는 안해서 안마셨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거는 신경 안썼지만

커피를 마시면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해서 안마셨다.

내가 원래 유제품과 잘 맞지 않는데, 아마도 커피에 들어있는 프림때문이려니 했다.

대학때는 IMF 직격탄을 맞은 때라서 커피숍 갈 돈은커녕 밥먹을 돈도 없었고

믹스커피는 여전히 속이 더부룩해져서 안마셨다.

 

아마도 전쟁없는세상이 서대문 아랫집에 있을 때,

신혜가 베트남 다녀오면서 선물로 커피를 줬고,  때마침 오리 동생이 커피포트를 선물해 줬고

그들의 호의를 모른채 할 수 없어 억지로 먹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냥 썼다.

뭐 맥주도 처음 마셨을 때는 썼지만 먹다보니 괜찮아졌던 것처럼 커피도 그러려니 계속 노력했다.

노력 끝에 아주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추운날이나 비오는 날에는 커피가

생각나고 피곤할 때 한 잔씩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프림이 들어간 커피나 카페라테처럼 우유가 섞인 커피는 마시지 못했다.

 

프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게 된 거는 수감생활에서였다.

감옥 안에서 난 먹을 거에 대해 조금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초반에는 커피는커녕 과자도 손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무뎌지고 누그러지며 군것질도 하게 되었다.

워낙 먹을 것이 없으니까,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 없으니까,

1회용 믹스커피라도 가끔씩 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몸이 적응해버렸다.

마구 좋아하지는 않아도 먹고나서 속이 더부룩해지지는 않았다.

 

출소하고 나서는 원두커피도 믹스커피도 곧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왠지 뿌듯^^)

 

그렇다고 커피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내가 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게 싫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담배와 같은 중독성이 짙은 것들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커피숍에 가면 마시는 정도. 혹은 사무실에서 아이들과 두런두런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새 부쩍 커피가 많이 땡긴다. 그것도 맛있는 커피가.

한 잔, 두 잔 먹던 것이 이제 중독이 되었나? 아니다. 중독이라고 말하긴 나는 아직 멀었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혼자서는 절대 커피 안 마실텐데, 집에서 한 잔씩 내려먹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예전에는 술마시러 가고 싶을 찬스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기도 한다.

 

지금도 일하다 재미없으니까 혼자 커피내려서 마시며 포스팅하고 있다.

 

커피를 안마시다가 마시게 되고, 이젠 맛있는 커피를 찾게 되고

그동안 학교를 떠나고 전쟁없는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언젠가 카페라테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면, 혹은 밀크티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또 무엇이 변해있을까. 나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와 있을까.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커피는 쓰다는 것.

 

싫어할 때도 썼고, 그냥 마셨을 때도 썼고, 맛있는 지금도 쓰고, 앞으로 커피에 대한 취향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쓸 거라는 것.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나는 음료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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