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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사원과 비정규직1 - 분회장으로서 가장 잘못한 일

글을 쓰면서 윤구병 대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윤구병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나쁜 사장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윤구병이 나쁜 사장이라는 걸 폭로하는 게 아니다. 내 글은 나를 향하고 있고, 내가 겪은 일을 함께 느끼며 그걸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향해있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보리는 확실히 일반적인 회사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보통 회사들에서 가장 약자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은 보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약자였다. 수습사원과 계약직 노동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두 편에 나눠서 할 거다. 먼저 수습사원 이야기다.

 

수습사원 해고를 겪으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글을 이미 썼다.(http://blog.jinbo.net/stego/598?category=6) 이게 2009년 8월말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윤구병 대표는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며 다시는 수습사원이 정직원이 되지 못하고 계약해지 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반 년 만에 또 한 명 수습사원이 정직원이 되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되었다. 해고가 아니라 제 발로 나간 거였지만, 어찌 보면 해고보다도 더 악랄하다고 느꼈다. 해고 통보는 그냥 깔끔하기라도 하지, 이건 자기 발로 나갈 때까지 스트레스를 주고 괴롭힌 거니까 말이다.

 

2009년에 보리출판사는, 낸 책보다 새로 뽑은 직원이 더 많을지도 모를 정도로 사람을 많이 뽑았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도 7명을 충원했는데, 내가 들어온 이후로도 계속 사람을 뽑았다. 12월 달에는 잡지 편집부와 단행본 편집부 충원이 있었다. 그때 20살을 갓 넘은 어떤 분이 지원을 했다. 대학 전공은 디지인과였지만 편집자로 지원했다. 윤구병 대표는 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했고,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꼭 뽑자고 했다. 단행본 편집부가 반대하자 디자인팀에 뽑으라고 했다. 디자인팀에서도 반대하자, 결국 잡지디자이너로 뽑게 되었다. 그리고 수습기간 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스스로 사표를 내었지만, 분명히 회사가 쫓아낸 거나 마찬가지다. 당사자한테는 말을 안 했지만, 잡지 편집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그 친구는 정직원 채용을 하지 않을 거라고 이미 말한 상황이었다. 그 친구도 그런 회사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잡지 편집장은 그 친구의 업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같이 일을 안 해본 내가 업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야근하고 주말근무 하고 최선을 다해 업무 관련 수업까지 들은 직원을 그런 식으로 내보낸다는 게 화가 났다. 뽑을 때는 막 뽑고선 뒷감당은 노동자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꼴이니.

 

아무튼 반 년 사이에 수습사원이 정직원이 되지 못하는 일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새로 만들어질 보리 노조의 핵심적인 과제 하나가 확실해졌다. 바로 수습사원 보호였다. 단협을 맺을 때도 수습사원을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수습사원 때부터 조합원이 되게 해서 노조에서 보호하려고 했지만 회사의 반대가 심했다. 회사는 수습사원은 언제든 계약해지 할 수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수습사원에 대한 인사권에 노동조합이 조금이라도 개입하려고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이 물러섰다. 수습사원의 노동조건에 관련된 부분만 조금 개선했다. 휴일근무수당 지급(이건 단협 전 노사협의회에서 정했던 걸로 기억난다), 수습기간 임금에 대한 부분들이 개선되었지만, 수습사원은 여전히 쉽게 잘릴 수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명 수습사원이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편집장이 그 직원의 업무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편집장과 갈등도 있었다. 결국 수습평가 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무기력하기보다는 비겁했다. 그 직원은 노동조합에 도움을 요청했다. 언론노조에 법적인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노동조합 대의원들이 모여서 그 직원 이야기도 듣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역시나 법적으로는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법으로 보호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단협에 수습사원 보호 조항을 넣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지만 싸우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져 있었다. 싸울 여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6개월에 걸친 단협을 막 끝낸 상태에서 회사와 전면전을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사람들에게 싸우자고 말하기도 두려웠다. 결국 노동조합은 최소한의 항의와 의견 전달을 하기로 했다. 해당 직원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는데, 그럴 기회도 안 주고 계약해지 하는 건 너무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전달했고, 회사가 수습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항의했다. 애초에 그런 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면죄부를 주기 위한 형식적인 제스쳐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분회장인 나는 적어도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채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결국 싸울 각오가 되어 있던 그 직원은 무기력하게 회사를 떠나야 했다.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 혼자서 싸우는 것은 얼마든지 싸울 수 있지만, 노동조합이 회사와 싸운다면, 윤구병 대표의 성격상 노동조합을 끝장내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나 혼자 생각으로 많은 조합원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조직을 보존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데, 내가 바로 그 일을 한 게 아닌가' 솔직히 모르겠다. 어떤 판단이 정답인지. 분회장이 아닌 나는 좀 더 쉽게 싸우는 입장을 택했을텐데... 분회장인 나는 어떤 판단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끝없이 부끄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동조합을 위해 수습사원의 해고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져갔다. 그나마 노동조합을 위해서 그랬다면, 덜 부끄러웠을 거다. 나는 노동조합을 핑계 삼았다는 걸 얼마 뒤에 깨달았다. 그 직원이 해고당하고 보름도 안 되어 또 다른 건으로 다른 직원에 대해 징계위원회가 열렸다.(http://blog.jinbo.net/stego/600) 나는 이때 마치 내 일처럼 여기고, 최후의 순간에는 싸울 생각을 했다. 이 둘의 차이가 나를 참을 수 없게 부끄럽게 만들었다. 둘의 차이가 뭘까? 법적으로 이길 수 있는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 차이가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법은 내 판단의 근거가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핑계였을 뿐이었다. 해고당한 수습사원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는데, 징계위에 회부된 직원과는 아주 친한 사이였다. 만약 해고당하는 수습사원이, 나랑 친한 그 직원이었다면, 나는 그래도 똑같은 판단을 하고 행동을 했을까? 아니 그렇게 갈 필요도 없다. 만약 내가 수습사원 당사자였다면?

 

병역거부 운동을 하면서 어떤 조직도 한 개인보다 소중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대한민국보다 김선일 씨의 목숨이 중요하고, 국익보다 파병을 거부했던 이등병 강철민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나에겐. 하지만 또한 소위 운동의 지도부가 필요없이 강경한 투쟁만 하다가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배웠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집행부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위원장이나 분회장 같은 대표자들. 아마도 나와 같은 갈등 상황을 수없이 겪었을 거다. 당시 내 판단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판단을 이끈 내 속마음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마음이 없었더라도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모르겠다. 만약 당시에 회사와 전면전을 해서 보리 노조가 산산조각 났다면? 그게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내 경험이 지금 노동조합을 하는 사람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도 나처럼 갈팡질팡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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