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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위원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회사는 해당 직원을 해고하려 했지만, 결국 해고는 못 하고 대기발령을 내린 뒤 부서를 이동(업무는 몇가지를 빼앗아가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9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난 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원고를 보는데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불안한 기운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던 걸까?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009년 초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쓴 사직서를 인트라넷에서 찾아보고 있었다. 윤구병 대표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사직서들을.
“형, 모레 저녁에 시간 돼?”
A가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모레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안 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늘 있지.”
A의 대답이 서럽게 들린다. 왜 우리 회사는 바람 잘 날이 없을까? 정말 그랬다. 내가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조금 뒤 A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형 지금은 시간 돼?”
“어, 괜찮아. 휴게실에서 보자.”
휴게실로 가는데 안 좋은 생각이 든다. ‘서두르는 성격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내려가 보니 A가 먼저 와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이야기 한다.
“상의할 게 있어서……. 사실 상의도 아니지, 이미 마음 정했는데……. 나 회사 그만 둬.”
올 것이 왔다. 이런 말이 나올까봐, 떠오른 생각들을 애써 밀쳐냈는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딱 들어맞는다더니, 제기랄.
“맡은 일은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노조도 그렇구……. 마음 정하고 나니까 형 생각이 먼저 나더라. 형한테 미안해.”
“미안하긴…….”
A는 평소에도 굉장히 신중하고 침착한 친구다. 잠깐 울컥하는 일이 있다고 사표를 쓸 친구가 절대 아니다. 게다가 A는 사람들이 회사 욕할 때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회사가 가진 장점들을 먼저 보려는 친구였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인 거야?”
“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내가 먼저 살아야겠더라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은 바로 내가 요새 느끼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A에게만 던진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던진 거였다. 징계위원회를 거치면서, 그 뒤 대기 발령과 컴퓨터를 빼앗는 치졸한 회사를 겪으면서, 반성문을 강요하는 폭력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던 거다. 노조도 만들었는데 우리가 열심히 하면 회사도 바뀌지 않겠냐고 말 할 수 없었다. 나도 확신이 안 서는데 누굴 설득할 수 있겠나.
노조 만들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노동조합 창립하고 나서 1년 2개월 동안 9명이 나갔다. 직원 수가 고작 서른 명 살짝 넘는 회사에서 말이다. 그 가운데는 자기 꿈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 지치고 치여서 떨어져 나갔다.
가장 슬픈 건, 노조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들부터 나간다는 거였다. 함께 교섭위원 했던 사람들이 나갔고, 대의원 했던 사람들이 나갔다. 단체교섭을 하면서, 회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일반 조합원들보다 더 심하게 감정싸움을 하다 보니, 안보고 살면 좋을 추악한 모습들은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견딜 수 없었던 거다. 2010년 봄에 교섭위원을 하던 대의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A는 9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A가 그만두고 한 달 뒤 영업부 대의원을 하던 팀장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가 민주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부터 가장 먼저 상처받고 그만두었다. 어느 회사나 그렇지만 노조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회사일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노조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커다란 손실이다. 회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상관없다는 건지, 그냥 두 손 놓고 있었다.
A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리에 올라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는 회사가 좀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조를 만들었다. 저마다 노조에 동참하는 뜻은 조금씩 달랐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더불어 회사를 부당하게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대표이사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해고당할 뻔 했던 직원을 노동조합의 힘으로 보호했다. 하지만 해고당하지 않은 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꾸만 많아졌다. 우리는 겨우 해고를 막았는데, 사람들이 이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떠나는 것까지 붙잡을 능력이 없었다.
나는 이 무렵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것일까? 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많은 조합원을 잃고 있었고, 그만큼 노동조합의 힘도 약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보호한 건 누구였지? 우린 대체 무엇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려고 했던 거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내 스스로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무력감과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참 슬프게도 타인의 아픔이었다. 어느 술자리에선가 쌍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를 만나게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료를 잃었다 해도, 그이들이 회사를 나갔을 뿐 얼마든지 얼굴 보고 술 한 잔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쌍차 노동자들은 동료를 잃는 다는 건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닌가. 기운빠져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당시에, 징계위원회에 회부 되었던 직원에 대한 징계가 불발이 되고 회사가 그 직원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안기며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괴롭힐 때, 우리가 밖으로 드러내면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A는 그만두지 않았을까? 영업부 팀장도 계속 회사에 다녔을까? 아니면 우리가 두려워했던 일, 결국 회사와 노조가 전면전을 하게 되고 윤구병 대표이사는 평소에 자신이 공언한 대로 보리의 책을 빼 가고 그래서 회사는 오히려 더 기울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당시에 우리가 싸웠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당시 우리 판단은 이 일로 싸우는 것은 노조의 명운을 걸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아는 윤구병 대표이사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차피 해고는 막았으니 더 이상 싸움을 키우지 말고, 일단 노조 내부를 단단하게 하자고 생각했었다. 이게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안다. 노동조합이 만능이 아니라는 거 잘 안다.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보다 만들고 난 뒤 잘 운영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도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워서 알게 됐다. 어쩌면,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건, 노동조합 차원에서 어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할 사람들이 떠나는 마당에 노동조합에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 내버리는 건 참 쉽고 무기력하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답은 없겠지만, 만약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싸우는 쪽을 택할 거다. 싸워서 노동조합이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회사가 망하더라도, 싸우겠다. 물론 분회장이라면 훨씬 더 신중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싸웠을 거 같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는 대체 노동조합을 해서 뭐하냐는 생각때문이다. 물론 싸우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알고, 그게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열패감은 이제와서 더 이상 없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라고 생각한다.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동 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으니까. 그리고 나조차도 그만두었으니까.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냥 내 이야기를 발판 삼아서, 당신은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당신들을 응원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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