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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여행

지난주말에 섬진강엘 혼자 다녀왔었다.

광주에서 구례를 거쳐 쌍계사로 갔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꽃구경을 하는 차들때문에

길이 엄청 막혔다. 교통 체증으로 버스가 쌍계사까지 올라가지 않아서 화개면에서 쌍계사까지 걸어서 올라가야했다.

 

 

 

쌍계사에 도착할 무렵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떄문에 많은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입구의 장승과 바위를 지나서 일주문을 지나가면 대웅전앞에 그 유명한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부도비가 있다.

 


 


일반 사찰에서는 사천왕(절 들어가는 쪽에서 건물안에 있는 무섭게 생긴, 도깨비 밟고 있는 군상들)상은 많이 있어도 금강역사상은 보기 힘든데 쌍계사에서 볼 수 있었다.

 

 


화개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평사리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화개면에서 악양면으로 출발하면 화개면을 나서자마자 화개장터가 나온다. 이제는 옛영광은 사라지고 겨우 조그마한 장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장터라기 보다는 관광특산품이나 웰빙바람의 차를 팔거나 군것질거리를 파는 것이 전부였다.

 

 

 

섬진강가에서 만난 동백꽃. 붉은 꽃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것이다.

 

 

 

섬진강은 산을 사이에 두고 흘러내려간다. 때문에 다른 강들과는 다르게 강가에는 그다지 넓은 규모의 평야가 없다. 강물은 유난히 맑고 강가의 모래는 유난히 곱고 희다. 강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섬진강에 와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섬진강가에도 어김없이 인간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리고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의 흔적은 그리 아름다운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섬진강은 그 인간의 흔적마저도 감싸안고 오히려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섬진강가에는 버려져 있는 초가집들이 여러채 있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초가집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아마 예전에 주막이었나보다.

 

 

 

아침을 먹고 9시 30분에 출발한 발걸음은 평사리가기전 고소산성으로 향하였다. 12시 30분쯤 이른 점심을 먹고 고소산성에 올랐다. 삼국시대에 지어졌다는 이 산성은 평사리 뒤의 가파른 산을 타고 올라가야한다. 산성에서는 평사리의 들판이 한눈에 보인다.

 

 

 

평야가 드문 섬진강가에 거의 유일한 논농사 지역이 아닌가 싶다. 고소산성에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바로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이다. 산성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마을에 내려가보면 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을 개조해서 관광상품을 만들어놨다. 최참판댁과 평사리 주민들의 집이 세트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 입장료까지 받더라만, 고소산성을 넘어 뒷길로 온 나는 이번에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평사리에서 하동으로는 버스를 타고 왔다. 10km남짓되는 거리였지만 이미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때문에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름다운 섬진강가에서도 안타까운 풍경들은 있었다. 밑의 사진들은 평사리에 남아있는 박정희의 흔적, 위의 두 사진은 하동송림 입구에 있는 풍경이다. 지켜달라고도 안했는데, 저놈의 해병대는 군대 다녀와서도 자신들이 어떤 특수한 계층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넘어가는 섬진교 밑의 하동송림. 영조때 만들어지 이 소나무 숲은 방풍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나무 숲안에 들어가면 섬진강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여행의 마지막 하동역. 하동송림을 보고나서 하동에서 목욕을 한 후 11시1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보너스 사진. 사진찍는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여행을 할 때에도 거의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 편이다. 하동송림과 기차안에서... 여러가지 효과를 첨부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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