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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8
    뫼비우스 띠
    무화과
  2. 2009/06/12
    산울림
    무화과
  3. 2009/06/09
    주현미(1)
    무화과
  4. 2009/06/03
    야구연습장
    무화과
  5. 2009/05/20
    일탈
    무화과
  6. 2009/04/28
    오랫만에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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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4/27
    무화과
  8. 2009/04/27
    울면서 던지기
    무화과
  9. 2009/04/26
    한 삽의 흙 -나희덕
    무화과
  10. 2009/04/13
    목련, 벚꽃, 라일락
    무화과

뫼비우스 띠

자기혐오와 자기학대의 퍼포먼스

이것들이 사실은 자기 방어의 측면에서 위악이라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때로는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전혀 몸이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으니...

 

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학의 퍼포먼스가 끝나지 않는다면 나는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글을 써내려가지 않는다면 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학의 퍼포먼스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득 깨닫고 난 후, 벗어날 길이 없는 뫼비우스띠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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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그 양반만큼은 아니겠지만, 도무지 책도 안읽히고 글도 안써지고 그래도 부탁받았던 글은 약속한지 한달이 넘어서야 꾸역꾸역 약속했던 분량도 미달되게 메꿔서 보내고 하루종일 노래만 듣는다. 새로산 엠피쓰리가 별로 맘에 안든다. 그냥 싼맛에 산거니까 잘듣다가 나중에 좋은걸로 사야지. 그래서 엠피쓰리 말고 씨디플레이어로 듣는다. 운좋게 습득(?)한 스왈로우와 루네의 앨범을 듣고 나만의 스테디셀러 시와의 앨범을 듣고 언니네이발관과 루시드폴의 앨범을 듣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태지와아이들의 앨범도 듣고 문득 생각나 이소라의 앨범을 듣고 마침내 산울림의 앨범을 듣는다. 나어떡해가 듣고 싶었는데 차마 들을 자신이 없다. 노래들으면서 딴생각도 한다. 딴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하고 노래도 건성으로 듣게된다. 그러다 갑자기 노래가 귀를 파고 심장에 들어온다. 지금 나보다, 오후, 골목길, 한밤에, 회상, 하얀밤, 여기 있어 그대... 차례로 나오는 노래를 듣고 가사를 곱씹어 다시 한 번 머리속으로만 들어본다. 산울림의 가사들이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쉬운 말들로 청량한 목소리로 읊어진 가사들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낮은 탄식처럼 가사가 흘러나온다. "졌어요. 당신이 이긴거예요"... 산울림 계속 듣고 있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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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스페이스 공감에 주현미가 나온다. 소개가 트로트가수 주현미가 아니라 보컬리스트 주현미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주현미다. 아마도 울 할머니가 주현미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익숙하고 친숙함을 추구한다는 것만으로 주현미에 대한 나의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보컬리스트'주현미라는 소개에서 드러나듯이 주현미자체가 뛰어난 보컬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김지애나 다른 트로트 가수중에 유독 주현미만을 좋아했던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로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혹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는 친구들에게 골방늙은이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트로트는 어른들이 즐기는, 그것도 감상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술자리에서 얼굴이 불콰해져 소주병에 숟가락 꼽고 부르며 나머지는 젓가락으로 반주를 맞추는 음악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신승훈이나 서태지 이승환 015B 등을 좋아하기 위해 애쓰며 그 가수들의 노래를 외워부르곤 했다. 그후로 트로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가사를 중요하게 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온통 사랑노래 일색-그것도 통속적이고 신파조로 흘러만가는 트로트의 저급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주부가수왕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부들은 BMK나 박정현 등 탁월한 보컬들의 노래나 최신 곡들을 부르는데 초대가수로 나오는 B급의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왠지 서글플 정도로 촌스러웠다.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것은, 트로트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 또한 그 촌스러움을 뒤집어 쓰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전람회, 김광진, 이소라 등의 좀 더 고급스런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안치환, 윤도현 등의 힘찬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산울림이나 김광석, 정태춘 등을 찾아들으면서는 스스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도 했었었다. 트로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 빠지면서부터다. '낭만에 대하여'는 트로트의 기본공식이라 할 수 있는 유치하고 뻔한 사랑이야기의 가사가 아니었다. 무언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실린듯한 최백호의 목소리가 가사를 읊조릴때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가 '사랑밖에 난몰라'를 부를 때 과연 좋은 노래란 어떤 노래일까에 대해서 또 한 번의 심각한 감흥이 일었다. 그리하여 심수봉의 노래들을 다 찾아들었다. 그 노래들의 가사는 역시 트로트가 가지고 있어야할 덕목들을 충실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심수봉의 코킅에서 위태롭게 떨어지는 목소리 또한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의 두곡이 트로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그 전까지는 농활가서 분위기 띄울때 부르는 노래정도였던 음악이, 기쁘거나 슬플때 위로나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스페이스 공감에 나온 주현미는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팝송들을 적절히 뒤섞어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신사동 그사람'과 '비 내리는 영동교'다. 나는 신사동이 어디 있는 동네인지도 모른채, 영동교가 어느 강에 있는 지도 모른채, 가사에는 하나고 감정몰입이 안된채로 주현미의 노래들을 나름 구성지게 따라부르곤 했었다. 이제 다시 말할 수 있다. 주현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중 하나라고. 그녀의 보컬은 그 진부한 가사마저도 가슴을 후벼파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공감에서 주현미의 노래를 듣게 되어서 참 고맙다. +그러나 사실 내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노래는 '나 어떡해' 참 쉽게 쓰여진 가사같은데.... 가장 진실되게 쓰여진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무슨 멋있는 말들로 치장하는 노래들은 가식처럼 느껴진다. 무슨 다른 말이 나올까. 그런 상황에서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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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연습장

500원짜리 동전이 덜컹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이젠 도망갈 수는 있어도 피할 수 없다 낡고 닳아 매끈해진 빨간 목장갑을 멀끄러미 쳐다보다 자해라도 하는 심정으로 맨손으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110km짜리 어설픈 속구 정직하게 뻗어나오는 공이지만 저것도 기계인지라 가끔씩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날라온다 50원의 손해보다 위험한 것은 아무런 준비가 안되었을 때 팔꿈치를 노리며 달려드는 공 왠지 그 공에라도 맞아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다 아니면 장외홈런이라도 될듯 시원시원한 타구를 쳐내야 할텐데 나의 야구 재능이 그정도는 되지 못함을 빚맞은 충격에 쩌릿쩌릿한 손가락들이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공이 아주 느리게 느리게 보인다 마치 저 정도의 공은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다하고도 머리털 쑴풍 빠질듯한 어려운 문제 다 풀고도 방망이를 휘두르면 저 하늘 너머로 날릴정도로 세게 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보다도 느려보이는 공에 실밥의 갯수까지도 셀 수 있을것 같은 공에 나의 방망이는 여지없이 허공을 가른다 지구의 공전보다도 스윙 헛스윙 헛스윙 헛스윙 간단하게 삼구 삼진을 먹은후에 시원하게 잘 맞은 안타를 때려내지만 저건 안봐도 뻔하다 느려터진 내 다리로는 혹은 불성실한 나의 주루로는 1루베이스도 밟지 못할 것 같다 헬멧을 쓰고 연습장에 들어올 걸 그랬다 팔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들어올 걸 그랬다 어설프게 겁만 많아서 데드볼도 피해버리지 말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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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진보넷이 싸이월드보다 좋은 이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이순간에 딱 한가지 진보넷은 점검한다고 접속을 차단하지 않는다. 싸이월드 메롱이다.(사실은 썅~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착한척 하지 말라고. 뉘앙스가 이게 아니었는데. 암튼 착한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춰지기 위해서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또 한 친구는 말했다.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끝도없이 무너져서 정신줄 놓아버린 끝에 만나게 될 내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정신줄 놓고 싶은 순간에도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 어설픈 책임감과 원초적인 두려움으로 나는 내 자신을 내팽겨치지 못한다. 결국 쥐꼬리만한 일탈로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위악의 처방으로 역설적인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발부한다. 내가 선택한 일탈은 치킨을 먹는것. 어느 노래 가사처럼 강릉으로 떠날 용기조차 없어 지갑속에 차표만을 모으는 사람처럼 나는 꾸역꾸역 스스로의 금기를 깨버림으로써 스스로에게 혹독하지 않은 형벌을 내린다. 아무런 고통도 나에겐 없고 아무런 해방감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일탈의 방식.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닭의 살을 무참히 뜯어 제끼는 가학적인 퍼포먼스다. 나를 완전히 던져버리지는 못하고, 저 밑의 내 모습이 너무나 두려워서 위악이든 위선이든 나를 쌓은 포장지, 나의 일탈. 내일 아침에 핸드폰 모닝콜이 내 뱃속에서 꼬끼오 하고 울어댈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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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자전거

아침마다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핑계로 방치해두었던 자전거를 오랫만에 끌고 집으로 왔다. 벌써 몇 달째 하늘을 바라보며 눈과 비를 맞느라 자전거는 퍽 피곤해보였다. 체인은 기름기 없는 푸석한 모습이었고 프레임은 산성비를 맡았는지, 한 때는 중후해 보이던 무광택의 피부에 흙먼지가 잔뜩 눌러 붙어있었다. 괜시리 미안해지는 마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동하는 도중에 책을 읽거나(그러다 자거나) 음악을 들을 수(그러다 잠을 잘 수)있는 좋은 점이 있지만 자전거를 타는 일은 또 다른 좋은 점들이 있다. 아... 운동은 별로 안된다. 자전거가 운동이 될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기구였다면 좋은 교통수단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는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입안에서 자신감 없이 웅얼거리던 노래들을 크게 부를 수 있다.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못듣지는 않겠지만, 소리보다 빠르게 페달을 저어가면 내 부끄러운 음색과 얼굴을 들키지 않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제낄 수 있게 된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 울고 싶을 때나, 자기도 모르게 울컥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릴 것만 같을 때에도 자전거를 타는 일은 퍽 좋다. 너무 펑펑 울어 눈물에 앞이 흐릿할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화장실에서 문 잠궈놓고 수돗물 틀어놓을 필요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쯤 울상인 얼굴을 빠르게 스쳐가며 궁금해는 하겠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산책을 즐길 뿐이다. 게다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훔쳐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면 생각에 잠기기에 좋다. 물론 차도에서는 잡생각은 금물이다. 일단 살고봐야지... 한적한 밤의 자전거 도로는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사람들에게도 한움큼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하물며 무언가 골똑히 생각할 거리가 많이 있을때는 말 할 것도 없다. 차가운 바람이 폐부로 스며들어 심각해진 머리를 식혀주니 어려운 생각에도 안성맞춤이고, 낮에 내린 소나기로 부풀어오른 풀내음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슬픈 생각을 하기에도 적당하다.

 

문득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은 2009년 서울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난 환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갑자기 저 멀리 커다란 네온사인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절이 생각나면, 도망치고 싶기만한 마음들이 생각나면, 억지로 인식하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이제는 떠나버린 것들이 갑자기 현실적으로 느껴지면, 갑자기 손가락 끝이 하나씩 아려온다. 열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직도 아홉번이나 더 이렇게 문득 문득 이별을 실감해야 하나보다.

 

갑자기,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던 일본의 봄. 그래,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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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루시드폴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 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 하지만 내 잦은 한숨소리 지친듯 나에게서 멀어질테니 난 단지 약했을뿐 널 멀리하려 했던건 아니었는데 난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마 어쩔 수 없다 해도 난 단지 약했을뿐 널 멀리하려 했던건 아니었는데 난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마 어쩔 수 없다 해도 난 단지 약했을뿐 널 멀리하려 했던건 아니었는데 난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마 어쩔 수 없다 해도 새라는 제목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김지하의 시에 곡을 붙인,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으로 시작하는 옛날의 민중가요 '새'는 비록 노래로 바꾸면서 시어들을 싹뚝싹뚝 잘라내어 말이 잘 연결이 되지는 않지만, 그 섬뜻한 서러움을 잘 표현해 낸 가사들. 그리고 가사를 담백하게 읊어내는 낮은 목소리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람회 2집에 있는 '새'를 많이 들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워크맨에 카세트 테이프로 노래를 듣던 시절, 전람회 2집 첫번째 곡이었던 '새'는 전람회가 가지는 특유의 고전적인 느낌의 무게감이 가장 잘 드러나 있었다. 너무 무겁지도 않지만, 통통튀지 않고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그런 무게감. 마치 바퀴가 얇은 사이클이나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다가 정식 엠티비를 탈 때 느껴지는 무게 중심 같은 거. 하지만 그 무게감은 정 반대의 속도감과 두바퀴를 통해 만나는 것처럼, 전람회의 가볍지 않은 멜로디와 가사들이 새의 날개에 실려 훨훨 그렇지만 외로운 날개짓을 하는 느낌을 전해주는 곡이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한 동안 이상은에 푹 빠져 있었다. 철거촌에서 밤에 규찰을 설 때도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이상은의 노래들을 읊조리곤 했다. 삼도천, 어기여디여라, 너무오래 등등... 그 중에서도 심하게 감정이입이 된 노래는 '새'였다. 시적인 비유들의 가사들에 푹 빠졌고, 무엇보다도 이 좁고 우스운 땅위에 내려온 새가 내 모습이라는 착각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쩌면 나도 구름의 숲과, 노을의 냄새, 바다건너 피는 꽃의 이름을 알고 싶었는지도, 돈을 세는 사람들을 아무 의미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날아오를 하늘이 있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갑자기 루시드 폴의 새가 가슴에 박혔다. '난 단지 약했을뿐 / 널 멀리하려 했던건 아니었는데' 가늘고 섬세하게 떨리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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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던지기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사람들은 과거라 부르고 때때로 그 과거의 것들 중에서 감성적인 기억들을 일컬어 추억이라 부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이제는 과거라 불리는 시간으로 사라진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졌던 마지막 경기 장면들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그 경기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경기가 동대문 구장의 마지막 경기였다니 왠지 갑자기 서러움이 벅차오른다. 그 경기는... 2007년 대통령배 결승전, 서울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였다. 고교야구에 커다란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라서 당시에는 잘 몰랐을 귀에 익은 선수들의 이름이 보였다. 먼저 이날 역전홈런을 포함해서 연타석 홈런을 날린 서울고의 3번 안치홍 기아타이거즈에 2차 1순위로 지명되어 올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2009 신인왕의 가장 강력한 후보이다. 그리고 올시든 두산베어스에 역시 2차 1순위로 지명된 허경민. 수비하나만은 최고라는 평가만큼이나 3루쪽 깊숙한 타구를 전성기의 이종범을 연상시키는 빨랫줄같은 타구로 잡아내곤 했다. 이 둘은 이 당시 각각 팀의 유격수였고, 아직 2학년이었다. 이들보다 한 학년 위에는 전국(?)에서 날리는 선배들이 있었다. 광주제일고의 에이스 정찬헌. 대통령배 MVP를 받게 되는 그는 광주제일고의 에이스였지만, 신인 지명에서 연고지인 기아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서울의 엘지에 2차 1순위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기아는 빠른볼을 가진 젊은 투수들이 이미 넘치고 있었기때문에 정찬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정찬헌은 분명 고교 랭킹 넘버를 다툴 훌륭한 투수였지만 그날은 1회에 구원을 나와서 바로 실점을 한 후, 잘던지다가 안치홍에게 역전 홈런을 맞는다. 그날 정찬헌의 상대는 당시 고교랭킹 1위의 투수 이형종이었다. 눈물의 역투로 유명한 이형종의 경기가 바로 이 경기였다. 아무리 초고교급의 투수라고 해도 거듭된 경기들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라서야 상대방을 압도할 수 없다. 게다가 3루수의 결정적인 송구 실책등, 고교야구 다운 실책을 연발하면서 서울고는 하지 않아도 될 실점을 허용하며 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다. 결국 9대6으로 리드한체 9회를 맞이한 서울고. 창단 첫 우승과 동대문구장에서의 역사적인 마지막 경기의 승리를 거머쥐기 직전 피로와 책임감이 누적된 어린 이형종의 어깨는 흔들리고 만다. 한 점을 내주고.... 아웃카운트는 하나가 남았지만, 이미 이형종의 어깨는 한계에 다다른 시점. 볼넷과 몸에 맞는 공등으로 루상에 차곡차곡 주자들은 쌓이고. 결국 동점을 허용하고 만다. 이형종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눈물이 없다해도 충분히 울고 있었다. 2스타라이크에서 던진 마지막 힘을 짜냈을 회심의 투구가 아슬아슬하게 볼판정을 받고, 이형종은 정말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원망을 가득담은 표정을 짓고 애써 눈물을 참고 또 참고 있었다. 그 때 그 어린 에이스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일까? 도망칠 곳이 있었다면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피할 수 없는 상황과 일들에 대해서 이미 그것에 맞서기 위한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을 이겨낼 요령도 강한 마음도 아직은 없었던 어린 에이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그 쓸쓸하고 외로운 마운드에서 그는 울면서 공을 던졌다. 나는 이형종이 정말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 아무도 원망하지는 않았을것만 같다. 피할수 있었다면 피했겠지만... 그 상황에선 그로서는 울면서 던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것이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하지만 이미 소진되어버린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황. 그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눈물이 자꾸만 맘 한켠에 남는다. 그 상황에서, 울면서 던질 수밖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 그의 표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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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삽의 흙 -나희덕

한 삽의 흙 -나희덕 밭에 가서 한 삽 깊이 떠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삽날에 발굴된 낯선 흙빛, 오래 묻혀 있던 돌멩이들이 깨어나고 놀라 흩어지는 벌레들과 사금파리와 마른 뿌리들로 이루어진 말의 지층 빛에 마악 깨어난 세계가 하늘을 향해 봉긋하게 엎드려 있다 묵정밭 같은 내 정수리를 누가 저렇게 한 삽 깊이 떠놓고 가버렸으면 그러면 처음 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가슴으로 엎드려 있을 텐데 물기 머금은 말들을 마구 토해낼 텐데 가슴에 오글거리던 벌레들 다 놓아줄 텐데 내 속의 사금파리에 내가 찔러 피 를릴 텐데 마른 뿌리에 새순을 돋게 할 수는 없어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말을 웅얼거릴 수 있을 텐데 오늘의 경작은 깊이 떠놓은 한 삽의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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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벚꽃, 라일락

바람이 뭉큰 불어왔다 보랏빛 라일락 향기가 났다 고개를 드는 순간 눈 앞은 분홍빛 벚꽃눈이 나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니 도톰한 아리보리 빛을 머금은 목련잎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목련의 앞뒤로 아직 풍성한 벚꽃과 은은하게 눈부신 라일락이 함께 피어있었다 하얀 바탕에 저마다의 색감을 수줍게 감추고 있었다 벚꽃이 지기도 전에, 목련이 한참일 때에, 라일락이 피어있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나는 한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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