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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02
    한밤
    두더지-1
  2. 2006/07/02
    내 주위의 물건 2(3)
    두더지-1
  3. 2006/07/01
    내 주위의 물건들1
    두더지-1
  4. 2006/06/30
    치아빠스 바나나(2)
    두더지-1
  5. 2006/06/30
    한가로운 오후
    두더지-1
  6. 2006/06/29
    JD를 생각하며(1)
    두더지-1

한밤

밖에 나왔다. 날이 제법 선선하다. 안에는 게이 카우보이영화 '블록백 마운틴'에 나왔던 음악이 흐른다. 오늘은 낮에 신영감이랑 운동나갔다 스릴감을 만끽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불던지 나무들이 부러져 떨어져 우리 앞에서 다운레이크를 걷던 한 친구가 그 큰 나무토막에 깔릴 뻔했다. 우직하고 나무가 그의 한발 정도 뒤에 떨어지면서 작살이 나 버렸다. 어찌나 섬ㅤㅉㅣㅅ했던지 우리 둘은 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다. 큰 나무들을 피해서 오느라고 긴장감에 흥분되었다. 일개 인간의 힘이 요리도 자연앞에서 초라해지는지... 어제 맞은 침이 나를 살렸다. 몸이 한결 좋다. 게다 난생 처음 미국여자에게 맛사지를 받았다. 어찌나 아프던지.. 하지만 뭉친 근육이 풀리고 막혔던 기맥이 뚤린 듯 하다. 어제는 그 곳에 가 침에 사혈 부항에 맛사지까지 받았더니 맥이 풀렸다. 여전히 잠은 숙면을 못취한다. 저녁 무렵에 먹는 커피가 문제인 듯 싶다. 줄어야겠다. 몇일 턱없이 놀았더니 마음이 불안하다. 내일부턴 좀 다잡아서 가기 전 일들을 처리해야겠다. 여우와 마주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 잘 채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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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의 물건 2

사물에 관한 쓰임새 (사용가치)는 그걸 쓰는 개인에 의해 달라진다. 비록 상품 교환체계에 의해 시장에서 구해진 것들이긴 하나 그 상품들은 구입과 동시에 내 자신의 다른 컨텍스트로 들어온다. 유학생활내내 우리 가족의 발이 돼 준 자동차다. 96년식 포드 토러스다. 트랜스미션에 항상 문제가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탈 수만 있으면 좋겠다 싶다. 토러스는 80년대, 90년대 초반 국내에도 수입이 되어 주로 졸부들이 타고 다니던 차다. 미국내에서는 대중차로 알려진 이 차가 국내에 들어가면 값비싼 졸부들의 차로 둔갑하던 때가 있었다. 일제차에 비해 잔 고장이 많아 1년에 1천불씩 감가상각이 되는 차다. 지엠은 고사하고 포드가 요즘 도산 위기설이 돈다. 이 차를 보면 그럴만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미국차를 타봤지만 승차감이나 질을 따져보면 포드가 최악이다. 어쨌거나 이 차는 사연이 깊다. 이곳에 처음 정착했을 때, 연대 강태영 교수가 고등학교 선배랍시고, 하루 왠종일 발품을 팔아 개인딜러로부터 사준 차다. 애초 4, 5천불하는 차를 사려다, 이 차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7천불을 들여 구입했었다. 그 이후에도 수리비로 램스에서 한 3천 정도 깨진 차다. 차를 오래 끼고 있으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졸업까지 타고, 의연히 폐차하든 자선단체에 기부하든 양단간 결정을 할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 가족의 발이 되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음은 커피 그라인더다. 커피는 내 삶의 없어서는 안될 기호품이 됐다. 한 4년전에 타겟에서 큰맘 먹고 구입한 그라인더다. 원두를 내려먹으려다보니 그 향을 보존하고 싶고 한꺼번에 갈아 타먹는 것보다 그 때 그 때마다 가는 것이 좋을 듯 싶어 산 것이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이 그라인더 모커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을 일깨운다. 이 녀석도 언젠가 모터가 멈추는 때가 올 것이다. 아직은 기운이 쌩쌩하다. 아마도 전원이 미국식이니, 한국에 돌아갈 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갈 게 분명하다. 그 때까지는 나의 정신을 일깨우는 자명종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하나 더. 내 컴퓨터와 스탠드다. 소니 컴퓨터는 오픈박스로 싸게 샀다. 내 형편에 살 수 없던 시기에 정가 천이백불짜리를 한 800불에 매니저와 딜을 하여 얻은 것이다. 아직까지 고장은 없으나 램 용량 때문에 작업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신영감의 컴퓨터와 나란히 놓을 때는 내 것이 신기종의 그럴듯한 모양새같지만... 이곳에서 한 3년전에 샀으니, 이것으로 참 많은 작업을 했다. 이것으로 많은 글들을 썼고 쓰고 있다. 졸업 때 논문도 이 컴퓨터로 쓴다면, 참 많은 일을 이 랩탑으로 한 셈이다. 학교에서 와이어리스로 이 컴퓨터로 수많은 메일들을 받고 보내면서 함숨쉬고 스트레스받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그랬던 듯 싶다. 스탠드는 와이프의 결혼 장물이다. 와이프가 연애시절 자취방에서 쓰던 스텐든데, 일제답게 20여년이 넘었는데도 끄덕없다. 안에 벌브도 반영구라 충전식으로 작동한다. 이 곳에 공부를 처음 시작하러 왔을 때, 이 스탠드도 그 짐에 딸려왔다. 미국 아파트들이 어두침침한지라 이 형광 스텐드는 그 험난했고 칙칙했던 남쪽 오스틴방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았다. 이번에 시험을 볼 때도 이 스텐드는 한밤에 컴퓨터를 비추고 나를 집중시키는 힘이 됐다. 이 스탠드의 생명이 붙어있는한 어딜가든 대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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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의 물건들1

유학 생활 8년째로 접어드니 내 주위의 물건들이 예사롭지 않다. 사물들에 애정이 가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프레데릭스버그란 텍사스의 독일인 정착 마을에서 지난 해 구입한 머그컵이다. 양은 적게 들어거나 질감이 좋고 그 무게의 안정감이 좋다. 약간은 투박한 듯한 빛깔도 마음에 든다. 하루에 일어나면 위의 새척을 커피로 시작하는지라, 이 잔과의 첫 대면으로 늘상 나의 설깬 아침이 분주해진다. 아메리칸 스피릿은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기 시작했다. 여러 담배 종류를 취해보았지만, 잠정적으로 예서 브랜드 찾기를 멈췄다. 요즘엔 옐로우에서 옐로우 화이트로 바꿨다. 옐로우화이트는 늘 가던 오윌리스에서만 구할 수 있다. 뉴레프트리뷰는 유럽좌파정론지로 잘 알려져 있는데, 5년전에 실지 페리 앤더슨이 편집장을 맡으면서 편집체계와 표지가 확 바뀌었다. 그 때 이후로 이곳에서 구입하던 것이 이제 쌓여 얼추 40권이 다 돼간다. 이 저널을 볼 때마다 유학생활의 세월을 느낀다. 언젠가 나도 이 좌파평론지에 글을 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어제 바베큐를 훌륭하게 이끌었던 '올드 스모키" 그릴이다. 신석기 시대 우주선같은 이 그릴은 1년에 한두번 쓸끼밀까 하지만, 불의 지속성에 있어서 으뜸이다. 텍사스 그릴 중 수위에 꼽히고 재질이 양철 인 보기드문 그릴이다. 텍사스 문화 중 하나는 이 바베큐 그릴통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람들의 소통이다. 내 생일날이나 주위 친구들의 모임 등에서 이 그릴은 그 리츄얼의 중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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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빠스 바나나

사빠띠스따 멕시코 농민군이 있는 치아빠스에서 난 바나나다. 어찌나 반갑던지. 다른 곳에서 들어온 바나나보다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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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오후

햇볕이 좋다. 오늘 저녁에 김아줌마와 신영감이랑 바베큐를 하기로 했다. 김아줌마는 다음 주에 미들베리로 떠나 겸사겸사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빨래를 보며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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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를 생각하며

존 다우닝은 국내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래디칼 미디어라는 책이 80년대 김종철인가 하는 한겨레 편집인에 의해 창비에서 번역되면서 대안 미디어의 상징처럼 됐다. 그는 영국 런던정경대 출신의 아주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영국 늙은이다. 초창기 내가 오스틴에 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이디의 와이프가 이곳에서 사업이 잘 안되는 바람에 지금은 서던 일리노이에서 학장을 맡으며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국제 커뮤니케이션에선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 중 하나다. 그가 초창기 나를 많이 골탕을 먹였다. 박사 입학도 그가 결사적으로 막았던 인물이다. 내 영어에 신뢰를 못가진 것이다. 그 때문에 몇년 놀기도 했고, 그가 떠난 이후로 난 결국 다시 원래 과로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는 내게 짐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간접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국제 컴 학회에서 구상중인 국제컴 총서에 두 개의 키워드를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삼성기업"과 "한국의 문화영향"이란 키워드였다. 물론 블랙웰 출판사에서 보내져 온 것이지만, 그가 편집자이니 나를 선택한 셈이다. 그 많은 잘나가는 한국 교수들을 놔두고 유독 나를 선택한 이유가 심히 궁금하나, 어쨌든 그도 나에게 무척 갚아야할 짐이 있었다고 느끼고 있는 듯 싶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쟁쟁한 필자들 틈에 나를 집어넣은 이유가 그래도 무척 궁금하고, 혼란스럽다. 일면 기분 좋은 일임은 분명하나, 그의 저의가 부담스럽다. 최근 그 양반 학교로 두 명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1년 계약직으로 티칭잡을 얻어 떠난다. 제이디 스스로가 서던 일리노이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마도 그 중에 나도 하나의 포석이거나 서로 쌓인 앙금을 정리하는 차원의 제의에 틀림없는 듯 하다.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받은 후, 기분은 좋았으나 이 찜찜함은 무얼까. 게다 무노조 삼성재벌에 관해 또 크리티칼한 소개를 해야한다니... 요즘 일 복이 터졌다. 몸관리부터 해야한다. 어제밤 신영감이 내게 부황을 떠줬다. 등짝에 용문신이 크게 또아릴 틀었다. 한결 나아져, 신영감에게 무척 고마웠다. 그도 여름학기 듣느하고 바쁠 터인데.. 이래선 안되겠다. 타운레이크로 나가 유산소 운동을 해야겠다. 몸이 정말 말이 아니다. 이래가지곤 영국에서 워크샵 시간을 맞춰 움직이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몸 다스리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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