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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 -- 방태산 산책길

방태산 산책길

역시나 무모한 산책이였다.
자연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살짝 얕잡아본 잘못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하물며 비가 온다고 한걸 알면서도 강행한 무모함은 무슨 변명도 필요없으리라.
하지만 살아서 돌아 왔고 밑도 끝도 없는 긍정성을 기반으로 마무리는 해야겠다.

경운기가 다닐만하다고 봐야 맞겠다.
그렇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숲속 길을 계속 걸어갔다.
날씨가 좋다면 최고의 산책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시작할 때 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정말 한 번도 그치질
않고 내내 앞길을 가로 막는다. 이젠 정말 물이 무섭다.

냇물을 건너기를 너댓번.
여섯번째 쯤 왔을 때 다리가 유실되어 인간 사슬로 서로 손을 잡고 건너야 했다.
물 속에서 한 번 넘어지면 끝이다.
"사진을 찍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먼저 건너가서 하나라도 돕자. 한 번 물에 빠진 몸은 오들오들 떨려왔지만
눈치 볼 수가 없다.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물로 들어갔다.
내 몸 하나 버티기도 힘든 삐쩍 마른 몸이지만 일단 물속에서라도 있어야한다.
그래도 나를 믿고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건너서 30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건넜다.
"이제부터 제발 다리야 나오지 마라."

앞서가던 사람이 뛰어간다. 무슨 일일까? 불길함이 현실로 맞아떨어지는 두려움.
다리가 유실된 곳이 10미터 정도 될까싶은데 냇물이 성난 듯 휘몰아 친다.
도저히 건널수 없는 상황.
일행중에 한 사람이 산을 넘자는 의견으로 다시 온 길을 돌아가 산을 넘기 시작했다.
바로 옆은 뭐든 삼킬 듯한 냇물이 흐르고 계곡을 따라 숲속을 헤쳐가야 했다.
드디어 길을 찾았고 유실된 다리를 계곡을 돌아서 건널 수 있었다.

겨우 산을 내려와 식사를 하고 몸을 녹였다.
이제 서울로 갈 시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째 이상하다.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들이 있는데 경찰우의는 입었는데 신발은 슬리퍼다.
"지방이라 그런가? 신기하다"싶다.
바로 옆은 내린천의 거친 물살이 흐르고 도로는 강변을 따라서 있다.
조금 가다보니 강물이 범람해서 도로가 침수되어 있다.
어어~ 하는데 벌써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침수된 도로로 들어간다.
깊어보이지는 않지만 침수된 도로가 100미터는 될 듯한데...
결국 차 밑으로 뭐가 걸린 듯 꽝하더니 시동이 꺼진다.
"헉! 이건 또 뭐야~"
몸의 모든 털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여기서 시동이 안걸리면 진짜 완전 고립이다.
운전석 옆을 보니 내린천의 거친 물살이 날 보고 있는 듯 싶다.
별의별 상상이 다 든다. 버스가 물에 뜨던가? 그러다 버스가 쓰러지면 어떻하나?...
시동을 다시 걸어본다.  시동이 걸린다. 천천히 후진을 한다.
차창밖의 전봇대가 서서히 앞으로 간다. 차가 후진을 하는구나.
천천히 천천히 침수된 도로를 벗어난다.



오늘 하루만 새치가 반은 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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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 삼악산 산행

삼악산산행 (정상 용화봉 : 645m)

삼악산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 위치한 산이다.
흔히 '악'자가 들어가는 험하다고 한다. 설악한, 치악산, 운악산등등..
역시나 삼악산도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처음 산을 들자마자 한 낮의 햇살도 삼킨듯 어두운
계곡이 주둑들게 하더니 계속해서 계곡이다.
바위의 쇠 말뚝과 계단을 이용해 힘겹게 올라본다.
계곡의 습한 기운과 더운 날씨때문에 비오듯 땀이 흐른다.
손수건으로도 모자라 세수수건으로 이마를 훔쳐본다. 아마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듯 싶다. 하지만 힘은 들어도 계곡의 아름다움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잠시 평탄해 지나 싶더니 다시 돌계단이 시작된다.
이른바 333계단! (일행중에 한 사람이 계단을 세봤는데 진짜 333개라 한다.)
오르다가 쉬다가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정상이다. 용화봉.
멀리 호수가 보이는데 의암호라 한다. 시야가 탁트이지 못한게
아쉽지만 아무렴 어떠랴~.
바위산이라 그런지 정상도 뽀족바위 투성이라 서있기도 힘들다.

얼릉 사진찍고 내려와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꿀 맛이다.


*등산길
등선폭포-비선식당-선녀탕-흥국사-333계단-삼악산정상(용화봉)-다시 등선폭포로 하산
*입장료
입장료 내본지가 오래 되었는데 개구멍도 없는 등선폭포 입구에서 돈을 받는다.
(어른 1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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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 지리산에 갔다와서...





‘지리산’하면 밀려오는 강한 압박감을 가지고 새벽부터 산에 올랐다. 처음
부터 쉽게 보고 오른 산은 아니지만 역시나 장난이 아니다. 백무동에서
시작하는 산행 길은 가파른 경사에 이어지는 돌계단 때문에 오르기가
만만찮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30여명의 일행은 걷다가 쉬었다가 반복
하면서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아이들도 네댓 명 있었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산에 오르기를 힘겨워한다.

새벽부터 오른 산은 이내 체력을 떨어뜨려 여기저기서 밥 먹고 가자고
한다.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산을 오른 다음에 샘이 있는 곳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배낭을 풀어 싸온 음식을 펼치고 푸짐한 밥상을 차렸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산에서 먹는 밥은 뭐든지 입맛을 살려준다. 흰
쌀밥에서부터 김밥, 영양밥, 떡, 빵까지 다양한 밥상을 차렸다. 여럿이
산행하면 이 맛에 산행의 묘미를 느낀다. 그리고 빠져서는 안 될 술!
Pet병 맥주를 꽁꽁 얼려서 살얼음 맥주를 가져온 사람도 있고 막걸리,
소주, 과실주까지. 한두 잔씩만 얻어먹어도 취한다.

그 중에 일품은 역시 과실주, 진한 과일 향을 가진 알코올이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자주 산에 오는 사람들은 과실주를
가져오는데 그 맛에 따라 등산 경력을 가늠해 보는 것이 어느덧 내 못된
습관이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로 다시 산에 오른다. 6월이지만 아침나절 지리산
자락은 제법 쌀쌀하다. 이런 날씨에 가만히 있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니 어느 덧 장터목산장이다. 뒤쳐지는 사람들과
무전기로 천왕봉을 먼저 간다고 말하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까지 1.5㎞, 한 시간거리이지만 이 산길은 지리산의
비경이 숨어있다. 능선의 한 쪽 산자락에는 햇살이 있지만 반대 쪽
산자락에는 능선을 넘지 못하는 운무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고 산길
양쪽으로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고목들은 깊은 사연을 간직한 듯,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멀리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고 흔히 하듯이 사진을
찍고 다시 부지런히 하산 길에 접어든다. 서울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으려면 길을 재촉해야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돌길은 계속해서 무릎에 압박을 주고 있다. 딱딱한 돌길은
흙길에 비해 몸무게의 충격을 고스란히 무릎이나 발목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부담을 준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온다.
참을 정도는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다. 산에 몇 년씩 다닌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많이 안 다닌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하염없이 이어지던 하산 길도 어느덧 산 아래 마을에 다다랐다. 일단
담배부터 한 대 태우면서 뒷사람들에게 무전을 날려본다. 무전내용을
들어보니 대충 한 시간정도 터울이 있다. 하지만 잠시 후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내용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한 사람이 탈진하여 낙오되었다는
무전이다. 심장이 덜컹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손전화로 통화가 안 되는
곳이라 아직 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락할 방법도 없다. 힘들게 무전기로
통화해 보니 일단 자체 구조대를 만들어서 다시 산으로 올려 보내야 할
것 같다. 아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산으로 올려 보냈다. 사실
내가 올라가야 하지만 나도 무릎에 통증이 있다.

올라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다행스럽게도 탈진한 사람과 일행들이 모두
내려왔다.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많이 지쳐보였다.
일단 상태를 지켜보고자 했지만 환자는 기력이 없고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고 있다.

하는 수없이 119 구급대를 불렀다. 구급차는 금세 왔다. 내가 구조하러
산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해서 환자의 보호자로 같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환자는 구급차안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병원에 도착해서는 포도당 링켈을
맞고 나니까 어느 정도 기운도 차리고 몸 상태도 좋다고 한다. 천만 다행
이다.

구급차안에서 구급대원이 하는 말이 백무동코스는 구급대원들이 보기에도
최악의 코스라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돌길이 많기 때문에 늘 부상환자와
탈진환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산에서 부상환자가 있다는 것은 구급
대원입장에서는 구조하기가 두 배, 세 배 힘들다고 말한다. 헬기를 부를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고, 또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들것으로
이송하거나 업고 내려온다고 한다. 그럴 때 가장 힘든 하산길이 바로
돌길이라고 한다. 구급대원 자신의 몸무게와 환자의 몸무게의 압박을
고스란히 자신의 무릎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국립공원 측에 나무계단 혹은 흙길로 만들어 달라고
수차례 건의하였지만 예산과 지형변화를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립공원 측 행태가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흙길이였을 곳을 비용이 적게 들고 오래 간다는
이유로 돌길로 포장을 하면서도,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의 위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아닌 물질중심의 사고방식을 보는 듯해
씁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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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 지리산 산행

- 지리산 산행 소개글 -

백무동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하여 지리산의 북쪽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주요 요충지이다.
지리산 주능선 상의 세석과 장터목으로 길이 닿아 늘 등산객들로 분주했지만, 옛날 옛적엔
천왕봉에서 기도를 올리려는 무당들로 붐볐던 곳이라고 한다.
백무동이란 이름도 ‘100명의 무당이 살았다’는 뜻의 ‘백무(百巫)’였다가 무관이였던
전주 이씨가 들어오면서 ‘백무(白武)’로 그 뜻이 바뀌었다.

백무동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총 5.8Km, 약 3시간 반 정도면 된다. 백무동매표소를
출발하여 약 2Km를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앞에 서 있는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이 바위의 이름이 하동바위이다. 하동바위를 지나 몇 백 미터 올라가면 참샘이 있는데
장터목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마지막 샘이므로 꼭 물을 채워 가야한다.

참샘을 지나 약 2시간 반 정도를 오르면 장터목대피소를 만날 수 있다. 장터목 대피소는
1971년 지리산에서 최초로 '지리산 산장'이 세워졌고 1986년에 재건축하여 '장터목산장'이라
개명하였으며 지금의 대피소는 1997년에 다시 건축하여 총 150명이 이용할 수 있다.

장터목은 옛날 산청의 시천 사람들과 함양의 마천사람들이 닷새에 한번씩 만나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였기 때문에 장터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런 이름 때문인지
장터목대피소는 평일에도 많은 탐방객이 오고가는 대피소이다. 하지만 대피소가
고산지에 위치하다보니 물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점은 염두하여야 한다.

요즘 한창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와 관련하여 논쟁이 뜨겁다. 사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계획은 1990년 지리산 온천관광조성계획에 포함돼 당시 주무부처인 교통부의
승인까지 받았으나 국립공원 관리업무가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보류되었다.

그 후 지리산과 인접한 구례군은 1997년과 2001년 국립공원 계획변경 허가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관련 법령에 막혀 진전을 못 보다가 최근 환경부가 국립공원내 케이블카
설치기준을 완화하면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례군을 주축으로 산청군, 함양군, 남원시에서는 관광산업 활성화로 세수를
늘리고자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도 장애인도 산 정산에
올라갈 수 있는 운송수단을 요구하며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고 있고,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던 일부 주민들도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한 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법!
국립공원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되어서도 안 되고, 일부 개개인의 놀이공원으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돈벌이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므로 얻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산행길 : 백무동-하동바위-참샘-장터목-천왕봉-장터목-참샘-하동바위-백무동
거리와 시간 : 백무동에서 천왕봉(상행) 4시간 30분  7.5Km(편도)

*F11키를 누르면 화면을 크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누르면 원상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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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 6.10 범국민대회

본다.
찍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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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 강화올레

강화올레

한 달 전부터 예약하고 강화도 걷기여행에 갔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름있는 산에 견줘 모자람없는 풍광을 가진
봉천산을 먼저 오르고 강화도 논길을 반나절 걸어서 드디어 바다를 만나고
걷기여행을 마무리했다.

봉천산은 미리 인공조경을 해놓은 듯 20-3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산 아래부터 솔내음으로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어느 숲 해설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숲 조경이 수준급이라 한다.
왠 만한 숲 선진국격인 스위스, 독일등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게 과거 박정희때 '군바리'의 힘이라는 설명을 듣고
쓴 웃음과 더불어 마냥 좋아 할 수만은 없겠다 싶다.-

산 위에서 바라본 강화도는 정말 섬이 맞다.
어디를 봐도 바다와 맞닿아 있고 산 넘어 넘어에도 바다가 있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땅이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다.

산을 내려와 본격적으로 걷기여행을 시작한다.
창후수로를 따라서 논사이로 계속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수로쪽 제방에 앉아서 좀 쉬다가 멀리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를 보다가 다시 걷기를 반나절.

드디어 석모도가 보이는 제방에 이르고 바다가 눈앞에 보인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싶었지만 강화도 특유의 뻘밭은
사람의 접근을 쉽게 하지 않는다.
욕심에 앞서 바다를 만지려 하기보다는 그저 제방에서 바다를 바라만 보는 정도에
만족해야겠다.
목적을 달성하고자 불가능이니, 도전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기보다는 좀 덜 가지더라도
만족하는 것도 삶의 지혜이리라.


걷기여행 : 하점면사무소-봉천산 봉화대-5층 석탑-하점초교-하점교-삼거천-창후교-제방(바다)
약 13km 걷고 6시간정도 걸리다.



#1 봉천산 정상에서 바라본 산아래 논과 바다



#2 제방과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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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나무 숲



#5 5층 석탑-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숲에서 만나는 문화재는 언제나 보너스...



#6 숲속의 햇살



#7 어느 무덤가에서...벌초를 벌써 했나본데 풀내음이 워낙 좋아서 담아본다.



#8 보리밭-도시에서는 결코 보기 힘든 보리밭



#9 올레길의 길잡이를 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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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리밭옆에 손가락반지 전용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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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바람



#17 김영삼 문민시대가 1993-1998년이니 십 년도 더 된 스티커가
어느 주유소 화장실에 붙어있다.
화장실에서 잠깐 많은 생각을 해본다.



#18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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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참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현직에 있을때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추진으로
욕도 많이 했다. 하지만 탈 권위주의와 지역 대립구도 타파,
교육개혁 등 잘 한 일도 많다. 그 중에도 거칠지만 가식없는
발언과 소탈한 모습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낮춘 것은 최고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 과거의 권력에 대해 정권의 하수인들은 혐의나 의혹 수준의
내용으로 모욕과 망신을 주고 언론은 조롱을 하고 고향의 거처를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죄가 있다면 대통령이든 누구든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혐의나 의혹은 알아서 덮어주는 그런 하수인들에게
받은 치욕으로 몸을 던졌다는건 더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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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 주왕산 산행 그리고 주산지 노닐기

주왕산 산행 그리고 주산지 노닐기.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 부동면을 중심으로 진보면과 영덕군 지품면,
달산면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으로 면적은 105.6㎢이다.

주왕산은(721m)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며, 주방산이라고도 한다.
중심부는 금은광이산(812m)과 주왕산을 잇는 지역이며
이들 사이를 윌외, 주왕, 내원 등의 계곡이 흐른다.

우리나라 3대 바위산을 들자면 설악산과 월출산과 더불어
주왕산을 들 수 있다.
주왕산은 장군봉, 기암봉, 연화봉,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등
바위 봉우리들이 병풍을 두른 듯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봉우리가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듯 주왕산 또한
전설의 산으로도 불리고 있다.

주왕산 이름과 관련한 전설로는, 옛날 중국의 주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스로 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싸움에 패하여 신라로 도망갔고 그 후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많은 이 산에 숨어버렸다.
이에 당나라에서는 신라에 주도를 없애줄 것을 부탁하였고 신라에서는
마일성장군 5형제를 보내 주왕일파를 섬멸하니 이때부터 주왕산이라
불렀고 주왕산입구에 있는 대전사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주왕산의 최고 풍경은 제1폭포와 학소대 사이,
바위협곡 사이로 만든 길을 따라 겨우 한 사람 들어갈 만한 석문을
통과하면 용추로 불리는 제1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뭄으로 수량은 줄었지만 바위틈새로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소로 떨어진다.

주왕산의 바위 봉우리를 한 눈에 감상하려면 학소대에서 망월대와
주왕암을 거쳐 자하교에 이르는 약 1Km 구간의 자연 관찰로를 걸어야한다.
시원한 골바람에 땀이 식을 때 쯤 망월대 전망대에 오르면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수대가 신록사이로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주왕암 옆으로 난 협곡의 철계단을 오르면 주왕이 은거했다는 주왕굴이다.
주왕은 이 곳에서 신라 마장군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주왕산 기슭에 있는 주산지(注山池)는 주왕산 입구에서 차로
10여분 걸리지만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약 300년 전에 농업용으로 만든 저수지로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수심 7.8m 로 30여 그루의 왕버들 고목이 물에 잠긴 모습이 환상적이다.
가뭄으로 수위가 낮지만 아마츄어든 프로든 사진작가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 육지안에서 가장 산골로 가고 있습니다.
청송으로 가는 길은 거의 독도로 가는길에 비유할 수 있지요...”
수 년 전 ‘작가 김주영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차 여행-청송가는 길’에서
청송 출신 작가인 김주영이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김주영의 대표작중 하나인 ‘객주’의 배경인 청송,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주무대인 주산지가 있는
청송 가는 길은 태고의 신비를 가진 듯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지금은 캐나다 자본을 끌여 들여 관광명소를 만들고
삽질을 유난히 좋아하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청송군수가 적극적으로
고속도로 건설과 터널공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명품이란 단어로 청송사과는 물론 청송대추도 포장하고
영어마을도 건설한다고 한다.

더 망가지기 전에 어서 가서 봐야겠다.

산행길 : 상의매표소→주왕산→칼등고개→후리메기→이폭포(대피소)→
일폭포→망월대→자하교→상의매표소(식사)→주산지 (약 9Km, 4시간 반)

*신문기사 및 인터넷 자료 참고




#1 새벽부터 산에 드니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해가 뜨는 건 어느 곳에서나 봐도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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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학소대 근처의 절경입니다.
정말 입이 다물어 지지않습니다.
사진으로는 이렇게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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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전사



#11 주산지-가뭄이 들어 저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농사짓기 위해 만든 것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사진찍기로만
사용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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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푸른 하늘에 신록을 담고 싶었지만...
둘 다 담지 못했습니다.



#16



#17



#18



#19 소나무의 상처
1960년대 중반 주왕산의 소나무는 송진채취를 위한 경제의 한 대상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벌채를 했다고 합니다.
1976년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나서 중단되었지만
산행길 내내 상처난 소나무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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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을 기억하며...(동영상)

2008년 5월을 기억하며... 런닝타임 : 5분 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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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3 -- 김연아, 스포츠 그리고 고려대

신문을 보니 온통 김연아 기사다.
김연아가 세계 피겨 선수권에서 1등을 하고 나니까 언론들은 그이를 따라 다니며 국민이 알 필요 없는 것까지 시시콜콜 보도에 열을 올린다. 김연아가 우승 못했으면 무슨 기사를 실을지 걱정될 정도다.

김연아는 지난해 10월에 수시 2학기에 체육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어제가 첫 등교하는 날이다. (체육 특기자 전형도 맘에 안 든다. 왜냐하면, 한 가지만 잘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메달 몇 개 따고 졸업시켜주는 제도는 스포츠 기계를 만드는 제도지 교육제도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도 한 달 만에 첫 등교하는 날이다.

김연아는 대학 총장실에서 학생증을 받고 총장이 직접 안내해 주는 것에 따라 교내 중앙도서관까지 갔다. 거기서 3권의 책을 빌리고 한 시간 남짓 학교에 머물다 떠났다.

김연아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뒤늦게 학교 와서(요즘 대학교는 한 달에 한 번 등교해도 되나? 그것도 출석이 아닌 등교 말이다.) 학생증 받고 (그것도 총장한데 직접) 도서관에서 책 빌리고 (어느 신문엔 빌린 책 3권의 제목도 실려 있다.) 잠깐 캠퍼스 거닐다 간 것 뿐이다. 그런데 온통 김연아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듯 기사가 나간다.

사실 스포츠가 상업화한 것이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엔 국민이라는 접두어가 한 개씩 붙어서 은연중에 민족주의의 감성을 자극한다. (심지어 국민노예라는 별명이 붙은 야구 선수도 있다.)

문제는 민족주의는 아직도 이성을 마비시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민족주의와 전체주의는 ‘좀 더’와 ‘좀 덜’의 차이일 뿐이다.) 눈치 빠른 스포츠 프로모터들은 재빨리 스포츠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킨다. 최홍만이 일본에서 이종격투기 대결을 할 때 경기 며칠 전 서울 거리엔 “최홍만, 독도를 사수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리기 까지 했다. 그리고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즈 워드는 우리가 그토록 거리감을 두고자 하는 혼혈인이지만 MVP에 선정되고 나서는 거의 광풍에 가까운 바람이 일었다. 갑자기 “한국계”가 유일한 끈인 양 끈질기게도 물고 늘어졌다. 이것은 성공한 이들만 ‘골라서’ 환영하는 스포츠로 인한 이성 마비 현상이다. 이럴 때 특히 언론은 집단적 이성 마비를 부채질 한다.

잘 나가는 김연아가 질투 나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이가 얼음판에서 흘린 땀은 그 얼음판 보다 클 것이고, 직업까지 팽개치고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의 노력은 가히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를 마냥 좋아할 수 없는게 김연아를 이용해서 한 판 “쇼”를 벌인 고려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대부분의 신문에서 김연아의 기사를 실었지만 어느 신문의 사회면 구석에는 ‘치졸한 고려대’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출교생’ 7명에 대하여 무기정학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법원에서도 무효로 판결난 퇴학처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 본때를 보여주려 안간힘 쓰고 있는 치졸한 고려대 기사와 김연아를 보디가드하고 있는 고려대 총장의 사진이 오버랩 된다.

정말 싫다.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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