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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7 -- 태백산 산행

태백산 산행

버스를 타고 태백산으로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따스한 햇살이 창살에 퍼진다. 일기예보에는
새벽에 눈이 온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맑아졌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쉼없이 달리고 창밖의 겨울색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간다.

원래는 산이였을 고속도로 양옆에는 작은 나무가 흩어져 있지만
나름 질서를 갖추고 심어져 있다. 대충보니 수령 10년 미만으로
아이들 팔뚝만하다. 아마 도로를 만들고 빈약한 산을 감추고자
한꺼번에 심은 듯 싶다.

강원도 지역에 들어서자 제법 눈이 많이 남아 있다. 논에도, 밭에도,
농가 지붕에도, 농로에도.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가보니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
여자화장실엔 입구 밖까지 줄 서 있고 남자화장실도 각 소변기마다
긴 줄이 늘어져 있다. 무슨 날인가 싶은데 죄다 등산복을 입고 있다.
강원도 지역이 인기가 많구나...

버스의 덜컹거림이 심해지는게 목적지에 가까워 졌나 보다.
버스에서 내려 태백산 유일사 매표소로 가는데 거기도 사람들이 줄 서 있다.
표를 사서 줄 서서 기다리는데 그 지역의 민간 산악구조대원(복장은
등산복인데 해병전우회같은 냄새가 난다.) 같은 사람이 소리친다.

"각 산악회 등반대장님들..지금 등산객이 너무 많이 몰려 산행이 상당히
지체되고 있습니다. 지금 산에 오르면 해가 저물수도 있습니다. 저 같으면
산행을 포기하겠습니다."
다 좋은데 "저 같으면..."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산 들머리 매표소에서 산을 오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둘러보니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우리 일행도 일단 줄 서서라도 산에 들기로 하고 산을 오른다.

얼마나 갔을까?
우르르 오르는 사람들 틈에서 레밍쥐처럼 산을 오르다가 길이
좁아져서 등산객이 많이 밀려있다. 이참에 밥이나 먹자고 해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나자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정상에 오르니 푸른 하늘과 산자락아래 마을이 보인다. 무엇보다
눈을 옷처럼 두르고 있는 잔나무 가지와 솔잎가지가 눈에 든다.
이렇게 추운데도 봄이면 새싹이 움트는걸 생각하니 가슴속 한 끝이
아리다.

자연은 늘 그렇게 있는 그대로, 주면 주는대로 살아가는구나.
산에 오르며 다시금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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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 어느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일요일 오후, 늦은 아침을 먹고 잔무를 처리하려고 출근했다. 바빠서 못했던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홍보자료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었는데 ○○씨가 있어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알았다”고 했지만 자기가 전화 받았으면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굳이 담당자에게 넘기나 싶다.

그 직원이 얄밉기는 했지만 전화한 사람이 오죽했으면 일요일까지 자료를
찾으러 다닐까 싶어 케비넷을 뒤져보았다. 아마 초등학생이 직업에 대한
숙제를 하려고 그럴 것이다.

회사 홍보업무를 8년 넘게 했어도 쉬는 날에 무언가를 찾아 준다는 건 사실
귀찮은 일이다.

브로셔(사진과 설명이 있는 홍보자료)와 홍보책자를 준비하고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의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
아이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작은 키에 긴 잠바를 입고 들어온 아이는 옷
때문에 더 작아보였지만, 고운 피부와 추울까봐 목도리와 마스크를 한
것으로 보아 부모들이 꽤나 애지중지 키우겠다 싶다.

아버지에게는 간단히 인사하고 아이에게는 모른 척하고 “무엇이 필요하니?”
하고 물어봤다. 역시나 꼬깃꼬깃 접은 A4용지를 펴면서 우리 회사의 하는
일에 대해서 물어본다.

“저기요~, 학교에서 직업에 대해 알아오라고 해서요.....”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귀찮은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진다.

우선 알기 쉽게 사진이 있는 브로셔를 보여주며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일단 사진을 보더니 아이의 눈이 달라진다. 주눅 든 듯 웅크려 있던 아이가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사진을 짚던
손가락을 거두며 “영어네...”하고 얼굴을 찡그린다.
-우리 회사 브로셔는 한글과 영어가 같이 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위에 한글이 있다고 알려주며 급히 아이의
호기심을 돋우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못 볼 걸 본 듯 굳은 인상이 풀어지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도 당황스러웠는지 한글이 있다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아이는 변함이 없다.
할 수 없이 한글로만 된 홍보자료를 꺼내 보여주며 설명을 했더니 아이가
다시 관심을 갖는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주는데 분명히 한글로 된 자료인데 아이는 작은
글씨로 된 설명문을 보면 “영어...”라고 읊조리듯 말하며 거리를 둔다.
“영어 아니야~”하고 말하면서 혹시나 싶어 곁눈질로 설명문을 보았지만
분명히 한글로 된 설명문이다.

얼마나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영어가 아닌 작은 한글에도 영어
단어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걸까?
이런 당황스런 경우는 처음이다. 어떻게든 아이의 관심을 돌리고 싶어서
책장을 넘기고 잘 설명해도 별로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


하는 수없이 마무리를 하면서 피리기념품을 주니까 그제야 얼굴이 펴지고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본다.
달래듯 아이에게 여러 가지 기념품을 쥐어주고 배웅해 주었지만 마음속이
개운하지 않다.
아이 아버지를 보니 그렇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애 쓸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벌써부터 이렇게 영어에 주눅 들어있나?

오렌지에서 어린쥐로 시작하는 이 정권의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생각난다.
영어를 잘 해야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몰아붙이고, 영어를
못하면 이 사회에서 매장시킬 듯 윽박지르고 있다.
이런 교육이 아이들을 주눅 들게 만들고 착시현상까지 일으키는 걸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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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3 -- 삼각산 백운대 산행

#1 도선사 들머리입니다.
--자비무적 慈悲無敵 . 모든 사람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면, 원수나 적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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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들쥐입니다. 헉!



#4 백운암 댓돌에서...



#5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1인시위를 백운대에서 하고자 피켓을 들고 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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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수봉 중간 쯤에 빨간 점이 로프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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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2 -- 77일

 

한 10년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 보니 직장동료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냐?” 고 물어 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한 것이,

10년 정도 배우고 익힌 것을 단 몇 분 만에 알려주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여 나름 생각해낸 답변이 “일단 자기 주위의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찍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카메라 노출에 대하여 알려 줄 것으로 기대했던 상대방은 “뭔 소리

하냐?”는 표정을 짓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좋은 기록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사진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사진집

“77일”을 보면서 처음 사진을 접하는 사람에게 좋은 교본이 됨 직하다.

 

사진집은 77일동안 파업농성을 한 노동자들 속에서, 혹은 밖에서 기록한 사진이다.

사진집에는 공장을 되찾으려는 사측 용역과 노동자들의 32시간의 긴 싸움과

대치 끝에 지게차 운전대에 엎드려 자는 고립된 노동자가 있고, 한 여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속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빙과를 먹고 있는 20대의

전경도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진은 슬리퍼 위에 “악성무좀”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이고 서있는

노동자의 발만 나온 사진이다. 여러 노동자가 신었을 법한 슬리퍼위에 무좀으로

상처입어서 어쩔 수 없이 1인용임을 알리고자 휘갈겨 쓴 듯한 글씨를 보면서 노동자의

고통과 사진가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사진집에서는 자본과 MB정권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노동자는

이 사회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쌍용자동차 사태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시대와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제2의 쌍용자동차는 또 발생할

것이다. 그때에는 우리 중에 누군가는 사진속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먼 훗날 세상이 변해 쌍용자동차의 사태가 역사의 한 부분이 될 때 이 사진집은 훌륭한

기록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록 사진이 1초보다도 짧은 순간을 담는

다지만 영원으로 기록되는 건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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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1 -- 소요산 산행

소요산(逍遙山) 산행

먼저 이름부터 따져보자.
“소요”라는 단어가 가지는 꺼림칙하면서도 귀에 익은 느낌.
근현대사에서 높은 놈들이 간혹 방송이나 신문에서 툭하면 내뱉던 말이다.
그러던 시대가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건
흔히 말하는 학습효과인가 보다.

하지만 소요산은 내가 아는 부정의 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거니는 산”
과연 그렇게 산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속도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뜻밖의 신선함으로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소요산은 높이 587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리고 수려한 경관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650년) 및 45세(661년))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서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과 선교활동을 폈다.

그이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그러던 어느 비오던 밤, 원효가 수행을 하던 움막에 비에 젖어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아녀자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우선 초막에 들게 하였더니 곧 원효를 유혹하려하여 원효가 이르기를,

“ 마음이 생(生)한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滅)한즉 이 모든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에게는
자재무애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고 법문을 말하자 여인으로
변신한 관음보살이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고 한다.

원효는 그 자리에 절을 짓고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을 뜻하는 자재암이라 이름지었다.

자재암 부근에는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을 찾아와 원효를 기다리던 요석공주의
궁터가 남아있다고 전해져온다.

자재암을 지나면 하백운대, 중백운대로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힘들게
오르지만 상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하다. 하지만 이 코스에서
내려다본 조망은 수려하고 상쾌하다.

이어 상백운대에서 나한대 사이는 급경사로 위험하지만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나한대를 지나 의상대에 다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절로 감탄이
나올 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요산에 와서 의상대에 오르지 않으면
백미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나보다.

소요산은 봄엔 진달래와 철쭉이 산을 수놓고, 여름에는 머루와
다래덩굴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을에는 단풍나무, 떡갈나무 등 수십종의 활엽수가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폭포기둥 등 설경이 일품이다.

이번 가을엔 소요산의 일부라도 만나봄직하다.
“천천히 거닐면서...”말이다.

산행길 : 관리소⇒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
      ⇒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옛절터⇒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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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재암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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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3 -- 북한산 산행

북한산 산행

추석 당일 산에 올랐습니다.
혹시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사람도 적고 하늘도 맑고 숲과 나무가 있어 편안한 산행이였습니다.

북한산에 오르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알려진 길만 수십 곳이고 알려지지 않은 길이 또 수십 곳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길로만 다닌다고 하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하산길로 진관사 쪽으로 내려왔는데
호젓한 길로 내려오다보니 사람없는 산행의 묘미도 맛보았습니다.

같이 간 조카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웃옷이 다 젖었지만
그래도 신이 나있는 녀석을 보니 좋은 추석 산행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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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어른 검지손가락 만한 말벌이 나무에 있습니다.
살살 사진찍고 도망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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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산길에 진관사에 들렀습니다.
진관사 금강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차장에서 절로 드는 입구입니다.
거참~쩝...

보통 절은 일주문이 있어 일주문을 기준으로 속세와 해탈의 세계로 나눕니다.
그리고 금강문에 다다르면 금강역사상이 있어 사악한 것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가장 표준의 모습이 경주 불국사인데 무섭게 생긴 금강역사상 조각이
금강문 안쪽 양쪽에 딱 버티고 있습니다.




#12 금강역사상



#13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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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금강문을 나서면 잔디가 깔린 경내입니다.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절 경내에 잔디가 깔린 건 처음 봅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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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 남산타워

10월이 오기전에 업무가 바뀌면서 6여년 동안 일했던
곳에서 서울 북부지역으로 일터를 옮겼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는데 늘 곁에 있어서 고마움을 몰랐던
것들이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산의 나무와 숲, 꽃, 멀리 보이는 북산한자락, 어느 초등학교
담벼락의 감나무, 어느 건물의 담쟁이 풀, 단골 음식점들(김치말이 냉면/
고등어 김치찜/전주 추어탕/백암 순대국/털보네 고등어 백반/서울탁주집의
빈대떡/왕돈까스/야채돈까스/새싹비빔밥/수타짜장면....),
언제나 빨리 인화된 사진을 구할 수 있는 충무로,

그리고, 일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늘 보이던 남산타워(N서울타워)가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또 다른 꺼리를 찾아야겠다.





* 2005년부터 최근까지 찍은 남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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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 삶과 죽음

한창 일하고 있는데 손전화 문자가 왔다.
[ YTN 속보 - 위암 투병 영화배우 장진영 오늘 오후 사망]
(달마다 천 몇 백 원을 내면 YTN에서 속보를 보내준다.)
장진영이라면 왕의 남자에 나온 남자 배우 아닌가?
최근 전여옥 의원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는 공개 편지를
써서 속을 시원하게 해줬던 그 배우 아닌가!

놀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가 아는 사람은 남자배우
정진영이였고 죽은 사람은 여자배우 장진영이였다.
그녀는 위암 투병을 하다가 남자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근데 나는 잘 모르는 배우다. 출연작을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의
영화들이 많다. 그녀의 삶이 그녀가 출연한 ‘국화꽃 향기’의
내용과 비슷해 애절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기사를 뒤져보다가 화장실을 갔다.
가는 길에 전산팀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이 대뜸 내게 물어본다.
“설○○주임 죽은 거 아세요?”
“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직원과 이야기 하면서 설주임을 생각해 본다.

설주임은 2년 전 쯤에 전산팀에 근무했던 직원이다.
왜소한 체격 이였지만 뭐든 말하면 다 들어줄 사람처럼
늘 웃으면서 일처리를 했다.
그러다가 그이가 다른 부서로 가고 나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 그이의 소식을 들은 건 올해 봄쯤에 위가 아파서
휴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내 또래 사람이니 병원에서 치료받고 음식조절 잘하면
곧 출근하리라 믿었다.

그랬던 설주임이 장진영과 비슷한 시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술, 담배도 안한 사람인데...’
‘술, 담배에 찌든 난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여배우가 죽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허무함이 밀려온다.
병문안도 안 간 게 마음에 걸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살려고 발버둥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개복을
했다가 손도 못 대고 다시 그대로 덮어두었지만 설주임은 좋은 약은
힘닿는 대로 구해보고 먹으려 했다.
뒤늦게 종교도 가져서 기도원도 다녔고 자연요법으로
치료한다고 야채로만 식사하기도 했단다.

항암치료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고통이 크다고 하는데 어찌 견디고 있었을까?...
자식 둘이 있는데 직장에서 들어준 보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하기야 늘 죽고 있는데 내 또래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나니까 죽음이란 것을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무엇일까?
스코트 니어링이란 사람은 백 살이 다될 무렵 먹기를 그치고
물만 먹으며 조용히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어떤 의료 행위도
받지 않았고 숲속의 오두막에서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살거나 죽을 용기는 없다. 하지만 흔한
사람들처럼 악다구니 하며 살거나 죽음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듯 발버둥 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자연이 내게 주는 만큼 욕심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고 싶다.
내 인연과 세상이 허락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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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 기다림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보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술을
먹거나 영화보자고 하면 바쁜 일 없으면 잘 나온다.

그녀는 술도 잘 먹는다. 그것도 비싼 술보다 싼 술을 잘 먹는다.
밤새 술 먹고 다음날 아침 해장국에 소주를 먹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했다. 티켓박스 바로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둘러보니 아직 안 온 것 같다.
영화표를 사고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붐비는 게
싫은 나는 이런 한산함이 좋아 여기서 가끔 영화를 본다.

기다리기 심심해서 가지고 다니는 책을 펼쳐 들었다. 기왕이면
책을 보면서 기다리면 ‘좀 있어’보일 것 같은 얄팍한 계산이 선다.
한쪽으로 다리를 꼬고 무릎위에 책을 올려놓고 본다.

‘몇 줄이나 읽었을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청각이 예민해진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녀가 아니다. 한 3년 그녀를 만나고 있지만 구두 신은 걸
한 번도 못 봤다. 늘 헐렁한 운동화 아니면 스포츠 샌들을 신고 온다.

또 누가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스쓱 스쓱”
바닥엔 카페트가 깔려있어 가까이 오면 발자국 소리가 탁해 진다.
고개를 숙이고 눈의 초점은 책속 문자에 맞춰보지만
시야가 넓어진다. 넓어진 시야에 치마를 입은 여자 다리가 지나간다.
그녀가 아니다. 사적인 자리는 물론이거니와 공적인 자리에서도
치마 입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에이...책이나 보자.”
몇 번 읽었던 곳을 찾아 다시 읽었다.
탁한 발자국 소리가 또다시 가까이 온다. 일부러
고개를 더 숙이고 열중해서 책을 본다. 발자국 소리는
오른쪽 귀에서 들리다 내 앞을 지나 왼쪽 귀로 멀어진다.
이번에도 그녀가 아니다.

내 옆 빈자리에 사람들이 앉는다.
‘그녀가 오면 앉을 자리가 없는데...오면 바로 일어나야지’
시계를 보았다. 7시 20분.
약속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웬일이지? 무슨 일 있나?’
가끔 늦을 때도 있는데 이렇게 늦기는 처음이다.
혹시 몰라 손전화를 꺼내 본다. 연락 온 건 없다.
그녀에겐 전화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손전화가 없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급한 사람들이 알아서
사무실로 전화한다고 한다.

그녀는 시계도 없다. 대충 시간대 까지는 알고 있지만 궁금하면
손목시계까지 차고 있는 내게 물어본다. 그래도 약속시간이
늦었다는 건 알 텐데...나도 답답하지만 그녀도 미안해 할 꺼다.

영화 보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해서 시간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해 진다.
‘어디쯤 왔을까?’
벌써 7시 30분을 넘어선다.

그때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피했지만 그냥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배낭을 메고 성큼성큼 선머슴같이 걸어온다.
미안하다며 차가 밀려서 늦었다고 한다.
시간이 빠듯했지만 저녁 먼저 먹자며 밖으로 나왔다.
영화를 보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술집으로 향했다.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먹으며 침 튀기며 서로 영화평을 했다.

그날 그녀는 헤어지기 전에 맑은 국물이 담긴 하얀 비닐 봉다리를
내게 주었다. 직원식당의 솜씨 좋은 요리사가 멸치를 넣고
우려낸 잔치국수 국물이라고 한다.
역시...그녀다운 선물이다.
그치만 이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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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 고리오 영감

*고리오 영감
글쓴이 : 오노레 드 발자크
출판사 : 열린책들 / 초판 1쇄 20080810

 

*읽고나서
마지막 문장을 읽고 참 허무하다.
그렇게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와 가식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나?
가서 복수를 한다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회창씨가 아들의 병역기피문제로
욕먹고 있을 때 한 말이 있다.
'참 곧은 분인데 정치라는 뻘밭에 들어와서....'
다음 말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노통 또한 그 뻘밭에서 허우적거리다 안타깝지만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소설 속 주인공 외젠 드 라스티냐크 또한 그 뻘밭에 갇히고 말 것이다.

(왜 이 상황에 프랑스 상류사회와 우리 정치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글쓴이는 이후에 다른 소설에서 승승장구하는 외젠을 그린다.)

 

소설의 주무대 보케 하숙집
2층에는 보케 부인과 쿠퇴르 부인과 양녀인 티유페르가 거주하고
3층에는 푸아레와 보트랭이 살고
4층에는 미쇼노양과 고리오 영감과 외젠이 하숙한다.
그리고 하인 크리스토프, 식모 실비, 식사만 하는 비양숑등...
발자크는 이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사실감을 살려주고
인물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김수현 작가가 쓴 '엄마가 뿔났다'의 대가족 집안처럼...

 

보트랭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묘한 인물로 그려지다가 결국 탈옥수라는 것이 드러나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보트랭은 상류사회와 돈이 가진 성질을 잘 파악했던 사람
세상을 달관한 듯 한 말로 훈계와 조롱을 한다. (작가의 분신)
그런 그도 경찰에 체포되고 소설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고리오 영감
막 태동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이해 할 수 없는 부성애를 기반으로 딸들이 자기에게 가하는
고통까지도 사랑하여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글쓴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소설가
90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희극'
외제니 그랑데/시골의사/골짜기의 백합/잃어버린 환상/창녀들의 흥망성쇠

 

*옮긴이
임희근
전문번역가, 출판 기획 네트워크'사이에'대표
에밀졸라의 살림/디팩 초프라의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가지/
베르나르 그랑제의 우울증 등 번역

 

*좋은 글
- 그녀(보케 부인)의 미움은 사랑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당한
자기 희망에 비례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애정의 고도를
높여가면서 안식을 찾는 법이지만, 미워하는 감정의 가파른 비탈위에서는
여간해서 멈출 줄을 모른다.

 

- 파리에서는 어떤 집을 찾아가지 전에 반드시 그 남편, 아내,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집안 지인으로부터 들어서 미리 알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외젠은 몰랐다.

 

-어떤 존재가 아무리 거칠다 할지라도 강하고 진실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어떤 특별한 액체가 분비되는지, 얼굴 모습이 바뀌고, 몸짓에 활기가
돌고, 음성도 빛깔을 띠게 된다. 가장 멍청한 사람조차도 열정의 힘을 빌리면
실제론 눌변이어도 정신적으로 최고의 달변의 경지에 이르고, 온통 빛나는 듯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랑이란 하나의 종교이며 사랑을 떠받드는 신봉행위는 그 어떤 종교의
신앙행위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 사랑은 금방 지나가 버리며, 불량배가 지나간
뒤처럼 주변에 온통 황폐한 자취만을 남긴다. 감정의 사치는 지붕 밑 방의 시(詩)인데,
이런 풍요로움이 없다면 다락방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파리 법전(法典)의 이 엄격한
법칙도 고독한 영혼에게는 예외가 된다.

 

- 웅웅거리는 벌집 같은 이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첫 도전의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 소설의 맨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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