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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zco / 꼬리깐차에서 든 생각 2

원래는 boleto turístico (꾸스꼬 주변 16개 유적 및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 우리돈 2만원 조금 넘는다)를 살 생각이 없었다. 꾸스꼬의 거리 곳곳을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온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 군데 체크해 둔 곳을 따져 보니, 그냥 구입하는 게 낫겠다 싶어 거액을 투자했고, 체크한 곳 중 하나가 꼬리깐차였다.

 

그런데 이런 망할. 알고 보니 꼬리깐차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즉 산또 도밍고 교회)은 따로 끊어야 하고, 투어티켓에 포함된 것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꼬리깐차 이름을 빌어왔을 뿐인 박물관이었다.

 

그러니까 이 놈의 시스템이란, 이 곳에 평생 한 번 올까말까 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교묘하게, 최대한의 소비를 이끌어 내면서, 그로 인해 얻어지는 부를 이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거다. (뭐, 표현이 좀 웃기긴 하지만.)

 

정작 잉카의 후예들은, 주로 1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거나, 그런 일자리마저 갖지 못한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모멸찬 외면을 감수해 가면서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 가고 있다. 투어 버스 오르는 계단에 몸을 붙이고 거의 울다시피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인간의 존엄성이고 평등이고 뭐고 다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도대체 그 엄청난 관광수익은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광객의 안전을 위한 공권력 배치에 상당한 예산이 쓰일 거라는 점이다. 그래야 관광객들이 맘껏 돈을 쓰고 갈테니 아주 당연한 귀결인데, 이 대목에서 나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그 위험하다는 남미에서 ´혼자 여행하는 동양 여성´인 나는, 스타 관광지 주변이면 거의 광장의 돌기둥 서너개 마다 배치된 경찰들을 보며, 일견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경찰이 범죄와 결탁되어 있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공권력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그 많은 경찰들을 반길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자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남미가 좋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느껴진다.(경찰 덕? ㅡ.ㅡ) 하지만 사기치는 사람 많고, 좀도둑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매일매일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사기꾼이나 소매치기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소매치기의 손과 내 손이 닿아 흠칫 놀라던 순간에도 내가 느낀 것은 서글픔이었다. 관광객에 대한 범죄에 강력대응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경찰력을 증강시키는 게 다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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