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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선거가 한국 정치에 던진 과제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였고, 곧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투표였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 초유의 읍소형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지켜주십시오!" 라는 군소 정당이 내걸어야 할 구호를 들었고,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하는 1인 시위를 펼쳤고, 광화문 광장에서 비를 맞으면서 500배 퍼포먼스를 전개하기도 했다. 국민 기만의 정치 쇼라는 비아냥을 무릅쓰면서도 ‘박근혜의 눈물’ 마케팅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읍소라는 교활한 선거운동까지 벌인 것이다. 민심을 호도하고 현혹하기 위하여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총동원한 셈이다. 무능거짓 정권에 대한 심판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을 집권층이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반증한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6.4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마케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기대서 선거를 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이전 한나라당 시절부터 정치적 궁지에 몰릴 때마다 박근혜가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당을 위기에서 구하고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박 대통령의 별칭이 '선거의 여왕' 아니던가. 이번 선거도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기대어 '박근혜의 눈물'로 시작해 "(박근혜를) 지켜주십시오"로 끝난 선거나 다름없었다.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참패를 면하고 그나마 선방한 것은 이런 작전이 주효한 덕분일 것이다.

세월호 실종자 구하기보다 오매불망 대통령과 청와대 지키기에만 연연하는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사조직이지 공당(公黨)이 아니다. 박 대통령에 기대어 계속 가다가 정권의 레임덕이 진행될 경우 새누리당은 사공 없는 나룻배 신세가 될 수 있다.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을 왜곡하고 건전한 정치적 공론 형성에 장애를 조성하는 이런 사조직이 정치권에 존재하는 것은 정치 생태계에 유해하다. 한국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정치로 발전하기 위하여 반드시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6.4 지방선거는 제1야당 새정치연합에도 중대한 숙제를 안겨줬다. 선거결과로 나타난 민심은 안철수-김한길 체제의 새정치연합에게 정권교체의 대업을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였다. 선거 기간 내내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지도력이 도마에 올랐다. 공연한 기초선거 무공천 고집으로 당력을 소모하느라고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야밤 밀실 전략공천으로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켜 스스로 분란을 자초하고,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안 한다며 합의를 파기시켜 야권 지지층의 실망과 이탈을 일으키기도 했다. 야권 지도자 김대중, 노무현을 기억하는 지지자들에게 어느 것 하나 실망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결국 안철수 대표는 야당의 안방이라는 광주에 세 차례나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차기 대권순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선거의 정치공학으로 평가하더라도, 안철수와 새정치연합이 광주시장을 차지하겠다고 나머지를 소홀히 한 것은 소탐대실의 어리석은 셈법이었다. 윤장현을 당선시키려고 수도권과 충청권을 비롯해 전국에서 잃은 표를 계산한다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충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야당의 퇴행이다. 광주시장 선거지원을 위해 박지원, 권노갑 등 동교동계 호남 출신 올드보이들까지 총출동했다. 1991년 지방선거가 부활한 이래 지금껏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앞으로 전진해야 할 정치가 뒤로 후진하는 기가 막힌 일이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명백한 구태요 야당사의 수치이며, 5.18 정신을 지켜온 광주시민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새정치’를 표방한 안철수가 권력형 비리의 구시대 인물 권노갑까지 선거판에 불러들일 줄이야 상상이나 했었는가. 이것이 안철수-김한길 체제 새정치연합의 현주소이다. 야권 재편, 한국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정치로 발전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6.4 지방선거는 진보정치에도 심각한 숙제를 던져줬다. 한국 정치의 좌표축 자체가 전체적으로 우경화 된 조건에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갖고 임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이 분리된 이후 노동당, 녹색당 등으로 나뉘어 각자도생을 모색했다. 결과를 보면 당선자 수에서나 정당득표율에서도 진보정당들은 4년 전 2010년 지방선거에 비해 참패에 가까운 성적을 얻었다. 인천과 울산의 진보 구청장 4명이 재선에 실패한 것도 뼈아프다.

결선투표제 부재의 제도적 맹점과 거대 양당 구도라는 외적 조건 때문에 사표방지 심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어 군소 진보정당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통합진보당에 가해진 내란음모사건과 정당해산 청구라는 사상초유의 탄압도 무시할 수 없는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와 농민의 힘이 예전만 못한 데다 진보정당이 분열돼 있는 내적 조건이 진보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6.4 지방선거는 진보정치가 중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음을 뼈저리게 일깨워주었다. 진보정치의 활로 개척, 한국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정치로 발전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 그런 민심의 지향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으로 표현되었다고 본다. 교육감선거에서는 민주진보세력이 하나로 단결한 반면 보수 후보들은 분열 난립하여 이전투구를 벌이기까지 하였다. 독재를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핵심 열쇠는 민주진보세력의 단결이다. 이것이 6.4 지방선거가 야권에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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