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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기 위한 전제

일본의 과거 반성, 대한민국의 친일 청산은 미래로 가기 위한 전제

14일 발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문을 두고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한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아베 담화문의 핵심은 일본이 과거에 반복해 사죄의 뜻을 표명했으며 이미 충분히 사과했으니 다음 세대에게 사죄를 반복하는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작년 2월 국회연설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인용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라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빼고 말했다. 이번 담화문에서도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를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나 원인 제공자로서의 반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1931년 만주사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의 침략행위는 국제열강들의 새로운 지배질서에 대한 동아시아의 ‘도전자’ 정신이었으며 서구 열강에 맞선 불가피한 행보였다는 식의 합리화를 내세우고 있다. 참혹한 반인륜적 전범행위로 국제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과 사과 또한 전혀 없다. 오히려 “전장의 그늘에는 심각하게 명예와 존엄을 훼손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식의 관찰자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일본군,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증거할 자료가 없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아베 담화문은 12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서대문형무소 방문과 무릎까지 꿇어가며 일제 강점기의 가혹행위에 대해 사죄한 정치행위를 농락한 셈이 됐다. 또한 “아베의 종전 70주년 담화문에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촉구했던 일본내 양심세력의 진정성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현재 80%가 넘는 일본인이 일제의 가혹행위나 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이제는 과거를 털고 가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과거는 가해자가 무조건 털고 가자고 해서 털어지는 게 아니다. 피해국의 인정과 관용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주장은 또다른 우격다짐이며 역사 왜곡일 뿐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이 최근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일본내 강경 우파는 자국내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평화헌법 수정 및 집단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안보법안'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반성은 시늉만 내면서 재무장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의심을 자초하는 일이다. 아베 담화문은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인근 국가들과 일본 국민의 미래를 발목잡고 있는 것은 정작 아베 총리와 강경우파, 자신들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역사적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12일 일본대사관 앞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집회 현장에서 분신한 최현열(80)씨가 남긴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서한은 이런 안타까움을 새삼 더해준다. 그는 “나라는 찾았어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 영어를 좀 배웠다는 친미주의자들은 낯짝 좋게 떵떵거리며 다니고 독립유공자들의 자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며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말로만 애국, 애국 떠벌여도 소용없고 바른 역사 찾으려면 싸울 줄도 알고 죽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친일사대매국 세력에 대한 인적 청산 없이 시작된 대한민국, 광복 70년이 곧 분단70년이 되어버린 채 미완의 해방 속에 있는 상처 가득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에 가슴을 친다. 아베 노부유끼에 이은 아베 신조 총리, 다까끼 마사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 김용주를 이은 김무성 대표 이들의 공통점은 부모세대의 행적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반성 없이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야말로 미래와 희망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다. 이를 외면하는 세력은 일본도, 한국도 예외없이 결국 역사의 청산대상이 되는 수구세력이 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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