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6/03/06 | 2 ARTICLE FOUND

  1. 2006/03/06 블로그 만들다. (2)
  2. 2006/03/06 요즘 집회에서 짜증났던 일들!

사실 나는 좀 자폐적인 구석이 있어서,

예전에 개인홈페이지 유행할 때부터

얼마 전(아직도 싸이질들을 하나?)

미니홈피 열풍이 불었을때도,

진보넷에 블로그가 권들의 새로운

공간이 되고 있을 때도 그저 쩝...

하고 있었다.

 

그럼 그동안 나는 무얼했었나..

나는 다음에 혼자 카페를 만들어놓고

(당삼 비공개로..) 거기서 혼자 놀았다.

카페 이름도 [주안5동나만의방]이었다.

(당시 살던 곳이 주안5동이었음..

그리고 혼자 살고 있었음. 진짜 방도

덜렁 하나였음..)

 

거기서 하루 동안 있었던 좋은 일도

쓰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때도

들러서 슬픈 기분도 적고, 또 지역에서

이런 것도 해 봐야지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거기에 메모도 했었다.

또 '나름대로 미식가'답게 맛집과

각종 요리법에 대한 정보도 모아왔었다.

물론 사진자료들도..

 

올해 들어서, 그냥 문득 블로그도 한번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게됬다.

나를 자극했던 사람이 몇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블로그나 그런 공개된 곳에서 내가

노출되는 게 싫다.'라는 나의 말에, 블로그가

다양한 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드러내는 측면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로서

다양한 생각을 퍼뜨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말로 나는 블로그나 이런 것에 대하여

'아주 조금'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듯 싶다.

 

그리고 나서 어느날 내가 너무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자폐방에서 글쓰기는 계속되었지만,

그냥 어느새 그 글들이 마치 다 늙은 할머니

목살처럼 느껴졌다. 나른하고, 탄력도 없고..

그냥 나는 그냥 손가는대로 쓰고 있었는데

정말 손 가는 대로라서 특별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늘 늘어질대로 늘어진 채로

그곳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또 한사람.

주례를 봐 주었던 술벗.

'우리같이 소심한 사람은 그런 거 못해.

하다보면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아.'

그런데, 오히려 그 말에 더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는 좀 웬만한 일에는 상처받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서고 싶은데, 그것도 연습이

필요할 거 같아서 말이다.

 

흠흠..

오늘 어떤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긁어서

첫 글로 올렸다.

맘에 든다.. 내용이 맘에 든다기 보다는

어쨋든 시작을 했다는 것.

그리고 왠지 '주안5동나만의방'은 이제

주안5동에 놔두게 될 거 같은 불길한 예감..

 

앞으로 잘 해봐야지~~

(얼마나 갈까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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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16:17 2006/03/06 16:17

1. 투쟁발언을 본집회로!

환노위에서 비정규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돌입했고, 3월 2일까지 파업일정을 때렸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매일 국회앞으로 달려갔다. 비록 조합원들과 함께 파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파업투쟁에 힘을 싣겠다고 갔었다. 2일 집회는 그야말로 짜증의 연속이었다. 각종 투쟁하고 있는 조직들의 생생한 발언은 사전집회에 다 몰아놓고.. 오히려 이들의 투쟁은 현재 노동자대중이 처한 조건을 확연히 보여주고, 현재 우리의 비정규개악안 폐기 투쟁이 강화되는 토대가 아닌가? 각 조직의 투쟁이 그저 단사차원의 투쟁으로 자꾸 축소되는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러한 투쟁을 확대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확대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인가? 어느 쪽이든 비판을 받아야 할것이다. 물론 그저 발언배치의 문제를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이야기하냐고 한다면, 그래도 할 말이 있다. 사전집회는 자잘한 투쟁사업장에서, 본집회는 '급'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나누어진 구획.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앞으로도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생생한 살아있는 발언이 듣고 싶다. 사전집회에서가 아니라, 본집회에서 듣고 싶고, 그러한 동지들의 의지가 충만한 집회를 하고 싶다.

2. 지방선거 운동 시작!?


본집회에서 짜증나서 더 이상 앉아 있기 싫었던 이유 또 하나. 발언자들마다 외치는 '지방선거 승리, 민주노동당 집권.'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국회앞에서 집회를 하니 국회, 국회의원, 선거이야기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내 머리속으로는 참 거시기하다. 이 집회에서조차 나는 표찍는 사람의 하나가 되어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게 되는 상황이 거시기 하다. 심지어는 3월 1일인가에는 단병호 의원이 나와서 "환노위에서 막지 못해서 동지들 죄송합니다."이건 또 무슨 소리? 현재 비정규개악안을 막아내는 임무와 과제는 민주노동당 의원 몇명에게 있는 것인가? 비정규개악안의 강행처리는 신자유주의 정권이 무엇을 의도하는 지를 드러낼 수 있는 계기이다. 이 본질을 함께 알고, 또 싸우는 과정에서 그냥 인간인 나, 정부에 또 국회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나가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문제제기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신자유주의 전선 이쪽에 서는 과정이 되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밀리는 이유는 그나마 예전보다는 신자유주의가 났고, 혹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투쟁에 주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아닌가? 대중들을 저항하는 노동자로 거듭나게 하는 투쟁, 실천이 더욱 불처럼 일어나야 할 때에, 환노위에서 막지 못해서 죄송하다? 노동자들을 더욱 대상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주체화'라는 것이 현재 노동자운동에서 고민이 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3. 노동형제들, 철도형제들...여성동지들은 어디에?

이 단어도 3월 1일에 수도 없이 들었던 단어이다. 민주노동당 최고의원(이런 왜 이리 나의 레이더에 들어온 사람은 민주노동당 사람이 많은겨.. 민주노동당이기 때문에 내가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들 주시길!) 누구였는지는 이름을 본인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은 철도도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는데, 파업을 하게 된 '노동형제'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ktx여성무원 비정규직 문제등 문제가 많은데 '철도형제'들이 우뚝 일어섰다.... 앞으로 '노동형제'들 힘차게 싸우자... 으 정확히 세번 형제들을 불렀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2000년부터 노동형제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노동자'라는 이미지가 워낙 남성화되어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노동자에는 작업복에 기름때 묻히고 구릿빛 얼굴에 땀을 흘리는 남성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직 여성들도 노동자이며, 제조업에도 사실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더 많은 곳도 있다. 또 음식을 만들고 설겆이를 하는 여성들, 청소를 하는 여성들, 간병을 하고 보육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고, 관리자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일하고 쉴 수 있는 노동자이다. 그리고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도 많고, 특히 장기투쟁사업장 중에는 유독 나이든 여성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사업장들이 많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를 호명할 때는 '노동형제'이다. 철도노조에 여성조합원들이 함께 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철도형제'이다. 이걸 듣는 여성조합원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더 깨는 건 이날 사회자가 집회에 참석한 단위를 거론하는데, 여성연맹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아주머니들! 여성연맹 오셨습니다! 그런다. 여성들은 매일 아주머니 아니면 어머니다. 왜 당당한 노동자로 불러주지 않는거지? 왜 남성 조합원들에게는 아저씨, 아버님이라고 하지 않지? 거참 신기하다.) 여성들도 존재하고 싶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알면 말할 때도 드러내야 한다. 단지 이것은 여성조합원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여성과 남성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르는 것은 지배세력과 기득권의 전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4. 4월로 유예됬으니 집에 갑시다?

3월 2일 저녁 7시 반경부터 시작된 집회에서는 4월로 유예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는 현장으로 돌아가서 4월 투쟁을 준비하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 좀 답답한다. 아니 솔직히 답답한지 좀 되었다. 옆에 있는 다른 노조 활동가가 그런다. '아니 이제 그냥 통과되버렸으면 좋겠어요.' 그 심정 100번 이해가 간다. 제작년 11월에 입법예고를 한 후로 도대체 몇 개월인가. 어쨋든 상정이 되어 있으니 통과는 될 거 같고, 그런데, 통과시키는 것은 열받으니까 국회앞으로 달려가기는 하는데, 이거 뭔 수가 없나 싶다. 아니 기왕 시작한 투쟁, 뭐 몇 년만에 대규모의 파업이라지 않는가? 철도도 파업하고 있고, 이참에 밀어부치면서 정부로 부터 '그래 알았다. 고마해라. 아예 법안 폐기할께.'라는 말 들을 때까지 밀어부쳐야 하는 거 아닌가? 파업이 말처럼 쉽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우리 노조의 경우에도 파업 꿈도 못 꾸었지만, 오히려 이번에 다른 노조들 파업하는 거 보고 그러니 '파업은 안되'라던 분위기에서 '그래도 해야 할 때는 해야지.'라는 말들이 나온다. 파업을 못한다라는 생각을 하면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내느라 머리를 굴리지만,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를 굴린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어쨋든 며칠 파업하고, 또 철도도 파업하고 있던 시점에서 유예되었다는 이유로 모든 투쟁을 접었던 건 너무 기가막히는 일이다. 사실 그렇게 4월을 기약했던 것이 철도파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다. 며칠이 지나고도 짜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꽃피는 4월이면 지금부터 한달동안이면 현장이 확 바뀌어서 모든 노조들이 투쟁할 여건이 되는 것도 아닌데.. 속상하다.

5. 마지막, 동지들에게 무릅으로 찍히다.

3월 2일 집회에서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집회 말미에 항의서한 전달한다고 국회로 가면서 전경과 충돌을 하였다. 본대회에서 무게잡으며 앞에 앉아 있던 양반들 다 가고 없고, 그나마 남아있던 자들도 불구경하고 있으니, 화가 난 어느 동지가 마이크를 잡고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지도부는 뭐 하고 있는 거냐!...' 다시 사회자가 마이크를 되찾고, 그 동지는 떡대, 그러나 '투쟁배찌'를 달고 있는 몇 사람에게 들여 나오면서 무릅으로 찍히고 맞고 있었다고 한다. 아니 마이크 잡고 이야기한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그리고 설사 잘못이라고 한들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누군가 잘못했을 때 '구타'로 일깨워주는 게 우리 문화이고, 우리 방식이었나? 진짜 이런 일 있을 때마다 그야말로 좌절과 절망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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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16:01 2006/03/06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