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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민요 - 함께 사는 세상

 

 

 

[민중문화운동연합_함께 사는 세상.mp3 (5.26 MB) 다운받기]

 

 

 

 

[류금신_함께 사는 세상.mp3 (3.67 MB) 다운받기]

 

http://www.plsong.com

 

 

  우리음계는 황태중림남 으로 부릅니다.  황은 중국 황제가 지정하는 음높이 인데..  조선시대부터는 율관이란 것을 스스로 맨들어 황음을 지정하였다합니다.  황음을 서양음계로 표현하면..  Eb4 정도 음높이 입니다.  태는 F4  중은 G#4... 서양음계는 수학에서 나왔고, 우리 음계는 어디서 나왔나 모르겠으나 각음의 차잇값은 같으며 서양음계서 표현하는 음높이를 우리음계로 200%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음계서 주로 사용되는 음은 황태중림남 이라는 음인데..  이 음높이 들을 민요조라고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온전히 우리 음높이에 정확히 일치하는 노래중 하나는 바로 이 함께 사는 세상이란 노래입니다.  이는 작곡자가 의도적으로 우리음계를 사용한 노래입니다.  아침이슬 작곡가 김민기의 노래에 민요조는 많이 등장하고..  온전히 우리 음계로 이루어진 노래로 생각나는 노래로는 투사의 유언 (한평생 후회없이 싸우다간다..)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현재 민요조로 노래만드는 분은 비정규직철폐연대가 작곡가 김성만 가수 같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래들은..  형식이 민요랑 일치하는 노래입니다.  예.. 음높이 쌓는 방식이 민요랑 일치하는노래들은.. 공동창작이 아닌 '현대민요' 라 이름 매길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르는 노래는 노랫말이 부르는 이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데..  이것을 한때는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 운동 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40여년이 다되어가는 노래를 PLSong  이라는 곳이세 다시 꺼내 듣게되었습니다.   이게 민요야? 하실분이 계실 것 만 같습니다.  예.. 민요 맞습니다.   도라지도라지 백도라지 하는 민요랑 온전히 같은 음계를 갖는 노래입니다.   비정규노동자의노래 에 나오는 곡의 노랫말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냐면요..

 

  - 민중문화운동연합 11집 -

  물에 빠져버린 돈 없는 자 당신은 건질 줄 아오.

  오다가다 만난 그 사람의 슬픔을 당신은 아오.

  지나칠 수 없는 그 고통을 어이해 피해 가려오.

  혼자 살려하는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구려.

 

  꿈을 실은 저기 저 큰 배는 떠날 줄을 모르오.

  줄이 썩어 떠나 큰 바다를 헤매일지 모르오.

  지나칠 수 없는 그 큰 꿈을 어이해 모른척하오.

  혼자 살려하는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구려.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 그 누가 막으려하오.

  억압 탄압하는 저들의 세상 정말 살기 힘드오.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세상 우리가 뭉쳐야하오.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세상 어디에나 있구려.

 

  - 비정규노동자의 노래 -

  물에 빠져버린 돈 없는 자 당신은 건질 줄 아오.

  오다가다 만난 그 사람의 슬픔을 당신은 아오.

  지나칠 수 없는 그 고통을 어이해 피해가려오.

  혼자 살려하는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구려.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 구 누가 막으려하오.

  탄압 착취하는 자본의 세상 정말 살기가 힘드오.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세상 우리가 뭉쳐야하오.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세상 어디에나 있구려.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세상 여기에도 있구려.

 

  비정규노동자의노래 함께사는세상은 곡자체가 갖는 긍정성을 편곡과 녹음, 가수의 노래힘?으로 잘 살렸습니다만     저들의 세상이 자본의 세상 으로..  어디에나 가 여기에도 로 바뀌었는데..  왠지 민문연 노래는 솔직히 내 얘기를 하는 느낌이라면 비정규 노래는 타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듯 얘기하는 느낌입니다.  나는 잘 살고있는데 너는 뭐니? 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러면 노래가 재미없어집니다. 활동가들이 반복하는 실수중에 하나도.. 스스로는 쏙빠지고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겁니다. 

 

  이러면 왜 재미가 없어지냐면요.. 내 얘기를 노래가 들어주는 여지를 없애버리거든요.  누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노래도 개개인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합니다. (노래는 무생물이지만 생명체가 느끼기에 마치 내 얘길 잘 들어주는 느낌같은 상호작용)  그리고..  자본의 세상이란 말을 우리는 흔히 쓰게되는 말이 아닙니다. 마치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붙잡고 벌서는 느낌입니다.  사장님 세상 같은 좀더 쉬운 말은 없었을까요?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자본은 사람을 힘들게 하려고 하지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아예 안중에도 없고 돈만 쫓으며 돈이 곧 선이며, 하늘님 일테니까요. 

 

  사람은 함께 하고 나를 이해하는 단 한사람이 있어야만이 살기 힘들지 않고 살만하다고 느끼게 되며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존재 같습니다.  경험상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은 회사도 임원 악질 자본도 아닌 같은 조합원들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정말 살기가 힘들어 지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서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내 얘기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음계를 사용하면서..  전혀 민요?같지 않는 힘있는 곡을 만들 수 있는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왜? 노래를 맨드는데 우리음계를 사용해야하는가? 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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