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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명예조합원 형님을 알게된건.. 조합활동 이전이다. 예전 모뎀에 접속해서 채팅도 하고 PC 통신을 할때 나는 하이텔의 '노래만큼 좋은 세상' 이란 동호회 회원이었다. 회원이라 해도 그냥 가끔 접속해서 mp3 민중가요만 조용히 다운 받아가는 일이 나의 주된 회원활동이었다. 그때 받은 노래는 /to 하고 누군가에 쏙딱거리다 그녀가 꼭 들어보라고 한 성만 형님의 '어머니 당신께 드려요' 하는 노래였다. 음.. 그냥 민중가요구만.
그후로 까맣게 잊혀지다가.. 나는 여기저기 굴러먹다 마트에 취직을 하게되었는데..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젠장 노조탄압 일을 하는 부서였다. 당시 위원장, 사무장이 선전전하러 지방의 어느 점포를 방문이라도 하게되면 몇시에 들어와 언제 나갔고.. 그들이 돌린 소식지는 이러하다는 사진과 함께 방문보고서가 마치 중요한 업무를 한 건 했다는 듯이 실시간 보고되며 전점에 참조로 공유되는 그런 부서였다. 나는 자연스레.. '아.. 여기도 노조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자연스레 입사부터 그들의 소식지를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다. '생리휴가 보장하라? 그런 휴가라는게 있나? 취업규칙 서명반대? 취업규칙이 뭐여? 아무튼 다 맞는 말 같구먼.'
그 위원장, 사무장이 우리 점포에도 방문한 날이면 팀장은 초긴장 상태였고 보안팀에 따라붙으라 어쩌러 실시간으로 무전지시를 내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CCTV가 녹화된 비디오를 다시 돌려 가며 화면을 사진찍는가 하면 코를 쥐고 한국인들은 노조하면 안된다며 인종차별? 하던 프랑스 임원들에게 영문 보고서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팀장의 주요업무중 하나는 인사과서 입사하는 신입직원들의 주민번호를 평소 구워삶은 정보과 형사에게 전화로 불러주며 혹시 노조활동가가 아닐까? 의심하며 신원조회를 의뢰하는 일이었다. (요즘은 누구건 신원조회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나는 우리매장 근처에 민노총 집회가 있는 날이면.. 열사의 상여를 매고가고 있는 그들의 농성사진을 찍어오곤 했는데 그러면 우리 팀장은 그 사진을 보고서에 편집해 보고서에 넣고는 이만저만해서 오늘 장사에 잘 못했슴다 라는 영문 보고서를 또 누군가에 일삼아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
"야 임마.. 이런 사진을 이렇게 가까이 찍어오면 큰일나 임마. 니가 멀 모르는데.. 그 사람들에 그렇게 가까이 가면 멱살잡히고 카메라 뺏기고 돌맞아 임마. 돌 맞는다고. 앞으로 멀찌감치서 찍어 오라고." "예???... 알겠슴다."
입사와 동시에 구사대 부서원으로서 알게 된 노조 그들은 30여명으로 파업해 서울의 한 점포에 타격을 입혀 결국 그들이 원하는 단체협약을 처음으로 채결한 강성 노조원들이었다. 그들은 어떨땐 신출귀몰?하며 일주내 순천,부산,울산, 서울, 경기지역 점포를 쑤시고 다니며 실시간 보고서를 몰고 다녔다. 항상 위원장, 사무장 2명이 다녔는데.. 그들은 날개라도 달은양 세계 어디라도 갈 듯한 기세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회복지재단, 본드공장, 시골초등학교, 고속도로 휴게소 등등을 전전한 나는 고향에서 정착해 취직하고 싶었다. 돈을 벌고 장가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노조원 그들이 뭘 잘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야하는지 어떠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감시하고, 정보과를 찾아가 선점 집회신고를 하여 보고하는 행위는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본사에서는 전국의 점포의 이러한 상황 보고를 집계하여 프랑스인 임원/사장에게 다시 보고하였다.
나는 단지 돈을 벌고 싶을 뿐인데.. 왜 본의 아니게 '나쁜'일을 해야할까? 내가 이러려고 취직했나? 이러한 고민을 한 3년여 한 끝에.. 내가 나쁜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조원이 되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부서를 내맘대로 옮길 수는 없었고.. 그렇게 두눈감아버리고.. 반대하지 않는 자는 동의하는 것, 공범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범죄를 지을 수는 없다. '그래.. 나도 노조에 가입하자. 나도 저들 편에 서야한다. 옳은 얘기구먼. 그러면 이제 나도 나쁜짓 않하고 돈 벌수 있겠지' 하는 고심과 고심끝에.. 나는 CMS 비밀조합원이 되었다. 나도 조합원. ㅋㅋ 최소한 나쁜 짓 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007첩보 작전하듯 사무장을 후미진 식당을 멀찌감치 떨어져 돌아서 돌아서 만났다. CCTV, 피켓들은 보고서 사진으로만 보아 왔던 위원장,사무장 그들을 나는 먼저 알아보았다.
...
1년후 나는 부천의 조합사무실을 조끼를 받아와 입고 출근하였고... 직장생활을 한 50여년을 족히 해도 경험하지 못할만한 이러저러한 많은 일들을 격었다. 지나놓고 보니 나는 수많은 도움속에 힘들땐 누우며 다져지며 잘 버텨왔다. 몸뚱이로 법이란 걸 채득하였고, 지나놓고 보니 그렇게 나는 다져졌다.
공개후 순회투쟁을 한다해서 마침 휴무가 맞아 따라갔단 해운대 순회투쟁에 함께 오셔서 불패의전사를 목놓아부르시던 성만 형님을 처음 만났다. 아니.. 하이텔 노래만큼 좋은세상서 예전에 mp3로 들었던 그 노래를 만드신 분을 만난 것이다.
집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서.. 나는 성만형님이 주는 기타를 들고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내가 듣기에.. 성만형님의 노래는 현대민요다. 전혀 다른 듯 들리는 성만형님의 노래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관통하며 꿰여주는 실은 '민요', '민속악', '현대민요'이다. 국악의 정서가 형님 노래들 저 밑에 출렁출렁, 덩실덩실 흐르고 있다. 살아가며 어찌어찌 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쌓일 수 밖에 없는 한에 대해.. 승화시켜 다시 살아가야하는 이유와 신명을 얻듯, 희망을 넘어 새로운 힘으로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시작과 끝은 삶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것. 이게 말은 쉬운데 정말 힘들다. 그가 머금은 생명을 온전히 느끼며 함께 그윽한 것.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누구나 나의 삶은 결국 내가 스스로 살아 나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를 수 있는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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