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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악기 연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Vinnie Moore - April Sky.mp3 (7.13 MB) 다운받기]
[차수한세-arioso.mp3 (8.57 MB) 다운받기]
친구들 안녕하세요? 벌써 개학을 했다고요? 아저씨네 핵교는 아직도 방학중이고 공사가 많아요. 기한내 공사를 마치고 친구들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전기공, 건축공, 냉난방공 노동자분들께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다 친구들 엄마 아빠가 교육세를 내주신 돈으로 이런저런 공사를 하고 있어요. 친구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요. 오늘은 아저씨가 악기 얘기를 좀 들려줄까 합니다.
아저씨는 친구들처럼 가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80년대 고등핵교를 들어가니 축제라는걸 하는데.. 선배형들이 둥둥 울려대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북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려 며칠을 고민하다 사물놀이 써클에 가입하게 되었지요. 그후로 군대가기 전까지 타악을 10여년 했어요. 풍물은 사회성과 박자감각을 길러주는데 탁월한 악기입니다. 지금은 풍물을 치며 함께 농사를 짓지 않지만 누군가와 모여서 악기를 메기고 받고 연주합니다. 또 타악은 강약을 기본으로 하며 음과 음 사이 공간, 시간으로 결정되는 악기이기 때문이죠. 아주아주 복잡한 가락을 몇번 쳐야지 하며 속으로 숫자로 외워서 칠까요? 아닙니다. 감각으로 치는거예요. 그게 외워서 치는거 보다 더 정확하지요. 삼천포 가락을 외워서 치는건 컴퓨터가 아닌 이상 안될겁니다. 영남농악 처음부분도 다 감각으로 치는거예요.
그 후로 여기저기 굴러먹으며 사회 첫발을 내딛으며 취직과 퇴사를 반복할 즈음.. 나에대한 자신감도 잃고 정체성도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를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생각한게 다시 내가 좋아하는 국악을 해보자였습니다. 국악이 머가 좋으냐 하신분들은 한번 해보시면 알거예요. 탈춤이 그저그렇게 보여도 조금이라도 '직접' 추어보신 분들은 무지무지 잼있다는 걸 알게 되듯이요. 2005년경 집에서 큰소리나는 장구나 쇠를 '혼자서' 두딜길 수도 없고 고민하다 찾은게 만만해 보이는 두줄 달린 해금이었죠. 부는 악기는 늙으면 심이 딸려 할수 없으니 늙어서까지 하려면 켜는 악기를 해야한다는 소릴 가끔은 들었었는데... 켜는 악기를 선택하고 나이가 드니 관절이 션찮어져서 또다른 어려움이 있네요.
연주해보니 타악은 박자감각을 익히는데 탁월하다면 해금은 음감을 익히는데 탁월한 악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박자감각은 서양 타악의 기계적 박자감각을 뛰어넘는 공간과 공간 사이에 출렁이는 에너지를 포함한 그런 박자를 말합니다. MR에서 느끼는 그런 기계음 같은 느낌이 서양 타악이라 생각해요. 국악은 그런 에너지들로 개인과 공동체의 한을 녹여 신명나게 삶을 살아가도록 바꿔놓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국악, 음악의 지향이며 완성입니다.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가끔씩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을 봅니다. 어떤 놈은 한쪽 눈이 멀었거나 꼬리가 잘려있기도 합니다. 모두 짝짓기 싸움질을 하다 그렇게 된 것이지요. 운좋게? 새까를 갖지 못하게 중성화 수술을 하고 귀가 잘린 녀석들은 살이 퉁퉁하게 찌고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짝짓기를 할 필요를 거세당했기 때문이지요. 사자나 개들을 보면 누가 오야붕을 먹느냐로 피터지게 싸움질을 해댑니다. 오야붕먹고 많은 암컷들을 거니르며 '번식'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왜 갑자기 엉뚱한 얘길 하냐고요? 악기를 들은 순간은 짝짓기 기싸움을 멈추게 됩니다. 악기는 곧 평화이지요. 너무나 비약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인간의 전쟁도 결국 동물들의 짝짓기 싸움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아저씨는 하곤 해요. 총대신 악기를 들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지요. 인류문명과 함께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바로 동물의 짝짓기라 생각합니다. 그럼 인간도 다 중성화 수술을 한다면.. 아마 전쟁이 사라질 겁니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악기는 사람을 살릴뿐더러 사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악기는 칼보다 강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대문명을 멈추고 농경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태어났으니 현대문명에 그냥 살아갈 뿐인거죠.
아저씨는 아직도 사람과 관계 맺는게 서투른데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 맺음에 있어 첫단추가 뭘까요? 음.. 누군가와 있어 즐거운게 아니고 '혼자있어도 즐거웁기' 라고 생각해요. 내가 즐겁지 않은데 다른 사람과 있는데 즐거울 수는 없는 일일거예요. 스스로 즐거웁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와 관계 맺기의 첫단추입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나쁜 말에 좋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좋은 말에는 더욱 즐거울 수 있게 되거든요. 아니 상대방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죠. 악기연주는 여기에도 진가를 발휘합니다.
내가 하는 연주는 내가 듣기 좋아야하고, 내가 먼저 감동먹어야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연주를 못해 속상해요 라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도대체 언제 스스로 만족한 연주를 할 수 있을까요? 장담하건데 앞으로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내가 하는 연주는 흐르는 같은 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똑같은 연주를 두번 다시 하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연주는 아무게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틈나는대로 연습하여 하는 노동자 연주라는 나만의 특성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배우는 연주와 고급반 연주와 전문연주자 연주의 차이를 두는 것은.. 자신을 잃어가는 첩경입니다. 한마디로 번듯한 것만 제대로라고 쳐주는 자본주의 세태에 병든 상태라는 겁니다. 무조건 내연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연주는 지금 아니고는 두번 다시 반복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연주를 들으며 기쁨을 느낌니다. 그 뿐입니다. 연주자가 뭘 엄청난걸 보여주려 욕심을 부린다면 나까지 송두리채 망해버립니다. 정체성을 상실합니다. 결국 내가 노력했던 시간들과 내 삶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위에 두개의 바흐 곡을 올려놓았는데요. 똑같은 바흐 곡을 두고 전혀 다른 색깔로 연주하였습니다. 비니무어 April Sky 는 전기기타를 이용해 깔끔한 락으로 원곡을 살리며 연주하였고 차수한세 Arioso는 조용한 묵상곡으로 흐느끼듯 마찬가지로 원곡을 살려 연주하였습니다. 친구들~~~ 살아가면서 무수한 사건들을 맞닥뜨릴텐데요. 그래요. 똑같은 사건을 보며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은 다 다를 수 있는거예요. 그러나 친구들이 어려서 배웠던, 사람을 위한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계속해서 간직한다면 친구들이 사는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질 겁니다. 아저씨도 이런 생각을 했지만 나이들고 세상이 정신없이 변해버리니 혼미해집니다. 물론 친구들은 머가 옳은지 알면서 못할지라도 '이게 옳은데' 하며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고민하다보면 친구들도 어느새 성큼 옳은 생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줄 놓지 않고 정신 배싹 차려야 하겠습니다.
친구들의 건강을 빌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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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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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어도 즐거웁기' 저도 그걸 연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다행히 사랑이가 곁에 있어서 그런 수련에 많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읽는 라디오를 하면서도 역시 마찬가지고요.저는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른다거나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능이 꽝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거나 자기만의 악기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럽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악기연주의 멋을 잠깐이나마 느껴봤네요. 차수한세 Arioso도 좋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랑 좋은 음악 잘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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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는 사람과 땅을 파지 않는 사람은 큰 차이가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치이는 마치 미사일을 쑬때 0.5도 틀어져도 떨어지는 곳은 수백미터가 달라지 듯 저마다 죽을때 많은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아닐 수도 있겠죠. ^^ 그러나 약자들이 지금보다는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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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뚱그려 혼자 즐거웁기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가 노력하는 참선, 형이상학의 종착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깨달음은 그냥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염불이나 참선이나 기도를 통한 목적의식적인 행위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신론자인 저에게는 깨달음이란 신과 맞닥뜨리는 그런 즐거움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론은 직접 느끼는 것이지요. 햇볕의 따스함 속에 있는 온 우주,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절대자를요.One River & Many Well.. 존경하는 Mathew Fox라는 신학자의 주장이기도 한데.. 이게 저의 신관이기도 합니다. 저 밑에 진리의 강이 흐르지만 파고 들어간 우물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다. 어떤 이는 곧바로 파내려가 진리의 강을 만나지만.. 어떤이는 지그자그로.. 어떤이는 ㄱ자나 ㄹ자로 파고내려가 만나고... 어떤이는 ㅈ자로 파내려가다 절벽 낭떨어지를 만나 떨어져 내려 진리의 강을 만나지 못하는... 그렇다고 제가 진리의 강을 아직 만난건 아닙니다. 저도 땅을 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정한수 떠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곧 종교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혼자있어도 즐거웁기는 우리의 행복과
주체적인 행동과 참 많은 것을 함축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삶에 이런 기술이 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관찰되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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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는 방식을 내가 누구인지 침전해가는 것과 신에게 온전히 모든걸 맡기는 2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유는 잘 모르겠음) 첫직장인 종교단체서 일하다 홧병나서 그만두고 나와서 유신론자로 살지, 무신론자로 살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제가 선택한 방식은 유신론자로서 신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엔 무척 처절했음)책을 통해 알게된 성공회 신부로 지금도 활동 중인 매튜팍스라는 신학자는 얼마전 돌아가신 교황이 교황이 되기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라는 곳의 수장이었는데.. 그때 당시 매튜팍스 라는 신학자를 이단으로 몰아 단죄하고 가톨릭 신부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이 신부가 주장했던 내용이 뭐냐면.. 신학자니까 신학을 공부하다가 전통신학을 분석한 결과 신학에는 2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이어오는 타락속량 신학. (원죄를 지었으니 예수를 믿어야 천당간다. 고행과 극기를 강조. 좌뇌?) 다른 하나는 오리게네스로 부터 이어오는 창조신학. (대자연속 신을 느끼며 정의롭고 기쁘며 어린아이 같으며 인간은 절대자의 모형으로 태어난 원복을 받은 존재임을 강조. 우뇌?) 뭐 둘다 잘못된 얘기는 아니지만.. 타락속량신학은 강조하다보면 독성을 가진 신학이 되며(이 신학자는 Toxic Religion 이라 표현했습니다) 창조신학이 올바른 방향이다 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핍박받던 히브리 노예들이 믿던 노예교로써 당시에 도망갔던 노예들에 대한 기록조차 남은게 신기할 정도의 약자들의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기득권 집단의 종교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교회에 가난한 이들이 없습니다.) 저는 이 신학자 주장을 내 마음에 비춰봤을때 옳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입사 퇴사를 반복하다 지금 핵교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로 밥을 벌어먹고 있죠. 내일은 평생교육원에 즐거운 해금 배우러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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