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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좌파4]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양자역학과 좌파4]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기관지노힘  제81호

A는 A이면서 A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파동으로 알려져 있던 빛이 입자와 같이 운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빛도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 관찰에 의해 증명되는데, 개기일식 때 별빛이 태양 주위의 중력에 의해 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1919년). 빛은 물질의 또 다른 존재형태였던 것이다. 엥겔스도 그의 책 [자연 변증법]에서 "에너지("빛, 운동")를 물질의 존재 형태이며 내재된 속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으로 드브로이는 입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본질적으로 파동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입자성이란 일정한 공간에 국한되어 있고 서로 충돌하는 특성을 말하며, 파동성이란 전 공간에 퍼져있고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중첩하여 보강-간섭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 두 개념은 상호 배타적이며 반대되는 개념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혼란에 빠진 이유는 미시세계의 이러한 물리적 특성을 “일반 상식”(특히 형식논리학)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식논리학은 ‘A는 항상 A와 동일하다(동일률).’ 와 ‘A는 A가 아닌 것 (not-A)과 같을 수 없다(모순율).’이라는 기본법칙을 가지고 있다. 근대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형식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형식논리학에 따르면 파동성이 A라면 입자성은 not-A가 된다. 그리고 A는 non-A가 절대로 될 수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A가 not-A의 특성을 나타내므로 모순율에 위배된다.


변증법의 핵심에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때 대립물이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통일을 이루면서도 서로 배제하는 가운데 서로 침투하는 관계에 있는 것, 즉  모순 속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모순 관계로 입자성과 파동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렇듯 형식논리학이 답을 주지 못하는 곳에서 변증법은 좋은 해답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변증법의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개념은 더 상세한 해명과 발전을 필요로 한다. 

 



미시세계의 우연성과 거시세계의 합법칙성 : 양-질의 전환


 양자역학에서 파동성과 입자성을 만족할 수 있는 물리적 해석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보른(Max Born)이었다. 일반적으로 파동성은 공간에 퍼져 있는 것이지만 입자성은 한 장소에 국한되어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른은 파동 방정식으로는 입자 자체를 기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보른은 한 장소에서 파동함수의 세기는 (입자를 관찰 할 때)  그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파동함수가 특정 위치에서 입자의 존재확률을 나타낸다.' 뜻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입자가 항상 명확한 경로를 지나간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된다. 즉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두 슬릿(구멍)을 통과할 확률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스크린 상에 도달한 전자는 두 슬릿중 적어도 하나를 통과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렇다면 간섭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른의 해석은 파동함수가 특정위치(예를 들면 스크린)에서 입자를 관찰할 때 그 곳에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미미한 차이 같지만 나중에 엄청나게 다른 해석으로 발전한다. 일단 ‘관찰’이라는 말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보른의 통계적 해석은 자연현상을 아이러니하지만 아주 정교하게 해석해준다. 이 해석은 입자 하나하나의 측정 결과를 정교하게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어느 곳에 얼마인지만을 예측한다. 그러나 입자가 실제 어디에서 발견되는지는 모른다. 이런 점에서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 매우 정확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유사한 시도들을 여러 번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평균적 분포를 양자역학만큼 정확하게 예측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중 슬릿 실험에서 엄청나게 많은 전자를 순차적으로 통과 시킬 때 스크린 위의 전자 분포를 그 확률로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러나 실제 개별 전자들이 어디에 부딪힐 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이러한 평균 예측 결과는 여러 과학자들의 정교한 실험결과들과 잘 일치한다. 양자역학으로 원자의 주기율표에서 부터 햇볕이 빛나는 방법이나 전자회로의 작동원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확률적 해석은 양자역학만의 특별한 해석이 아니다. 19세기에도 확률-통계학은 일반 물리학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기체 이론에서 개별 분자는 완전히 무작위적인(우연적인) 운동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기체를 구성하는 거대 분자 집합은 통계적으로 정교한 역학 법칙(필연성)에 지배받는다.


이러한 법칙을 큰 수의 법칙(law of great numbers)이라고 하는데, 하나하나의 개별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연에 의해 일어나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많은 수가 모인 집단에의 사건들은 일정한 규칙(합법칙성)을 따른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전체 인구로 보면 인간의 평균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변증법에서는 양-질의 변환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에 의해 미시세계에는 대한 우연성과 확률성이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거시세계에 까지 인과론(합법칙성)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미시세계에 우연성이 지배하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우연‘에는 종류가 있다. 흔히 주사위를 던질 때 각각의 숫자가 나타날 확률은 1/6이고 결과는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은 자연법칙의 본질적인 우연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사위를 던져 나타나는 숫자는 초기 손에서 떨어질 때의 각도, 속도, 위치와 관련이 있고, 그때 바람의 세기와 방향 그리고 땅에 떨어졌을 때 탄성, 표면 거칠기와 모양 등등에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알면 주사위의 숫자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완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결과를 결정하는 많은 요인들을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더 깊이 있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연 현상의 본질적인 우연성 때문일까? 물리학자들 사이에도 이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 해석을 둘러싸고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그룹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특성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는 어떤 원인(숨은 변수)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룹에는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그리고 드브로이가 있다. 또 한 그룹은 자연이 근본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요인, 즉 완전한 우연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는다. 이 그룹에는 양자역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그룹으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있다. 

 

참고문헌

1. The Möbius Trip (강추)

2. 맑스주의와 현대과학(번역중)

3. 정리되는데로 링크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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