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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마지막 승부수, 총파업!’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마지막 승부수, 총파업!’

 

마지막 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다.

더 이상 토론도, 이 이상의 설득과 타협의 여지도 없다.

11월 말 혹은 12월초 국회에서의 ‘날치기 강행처리’냐 ‘물리적 저지냐’만이 남았다.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안된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조항에 대한 재협상 약속하면 마지막 타협의 여지?’

없다!

그럴 수 없다!

결코 한미FTA가 비준돼서는 안된다.

 

‘개방이냐? 쇄국이냐?’,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

더 이상 이것은 쟁점도 아니다.

아니 한미FTA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쟁점일 뿐이다.

한미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상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 의한 ‘경제통합협상’이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관세나 무역이 초점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행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 정책, 제도, 관행을 오직 자본의 이익을 위해 바꾸는데 그 초점을 둘 뿐이다.

한미FTA는 “자본의 극단적 보호주의”이다.

한마디로 한미FTA는 “투자자 권리를 최상위 권리로 끌어올려, 국민주권을 투자자주권으로 대체시키는 위헌적 협약”이다.

“한국의 정치영토를 미국까지 확장”하는 협약이 아니라, “한국을 미국의 일개 주로 편입시키는” 협약이다.

그래서 ‘제2의 을사늑약’이다.

국내외 초국적 자본에 의한 ‘포괄적 식민화’이다.

 

한미FTA는 ‘자본의 극단적 보호주의’일 뿐이다

 

‘국익’을 위해서라고?

“한미FTA는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 될 것”이라고?

정확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라.

‘양국의 독점자본에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라고.

‘국익’, ‘국가경쟁력’이라는 말로 가려져 있지만, 한미FTA가 목표로 하는 것은 ‘밖으로부터의 충격에 의한 내부 구조조정’이다.

한미FTA는 IMF외환위기가 10번 터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제2의 IMF’다.

‘개방하면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단 개방하면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망한다.

한미FTA는 IMF 때보다 수십 배나 더 심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뜻한다.

교육과 의료와 공공서비스의 붕괴를 의미한다.

농촌과 농업의 해체를 뜻한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지배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을 뜻한다.

한미FTA가 미칠 영향을 둘러 산 ‘경제적 이해타산’은 더 이상 논란거리도 아니다.

 

한미FTA, '계급적 문제'다

 

한미FTA, 이것은 분명 ‘정치적 문제’이자, ‘계급적 문제’이다.

한국 사회가 이후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나아가 ‘앞으로 그 결정을 누가 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사안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한미FTA를 강행하려는 세력이 재벌(초국적 자본)과 친미 경제관료, 그리고 조중동으로 이루어진 ‘한미FTA 삼각동맹’이며, 그 정치적 대변자이자 집행자가 MB정권과 한나라당이라는 점을.

2006년에는 그 집행자가 신자유주의 친미친자본세력에 굴복했던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었고, 지금은 그 집행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5년 여만에 이들과의 마지막 격돌을 앞두고 있다.

‘한미FTA 삼각동맹’이 MB정권과 한나라당을 앞세워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를 내던지려 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비준’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는 비겁한(?) 논리 외에는 어떤 논리도 설득력도 갖지못한 MB정권과 한나라당은 의회 내 다수파를 내세워 ‘국회비준’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ISD조항(투자자-국가소송제) 하나만을 붙들고, ‘나쁜 FTA’라는 논리 더 이상의 전망을 가질 수 없는 민주당은 협상파와 저지파로 분열되어 있다.

 

노동자민중의 통제 구축을 위한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우리는 우리의 노동과 삶이 국내외 독점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지우지되는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FTA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간 공방과 타협에 의해 결정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FTA 철회’의 깃발을 들고 거리와 광장에 나선다.

우리는 십수 년전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의 결과가 한국사회와 노동자민중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음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이제 막 이런 현실을 극복하면서 대안적 발전전망을 모색하려고 하는 시점에 다시 국내외 초국적 자본과 지배세력이 ‘한미FTA’라는 차단막을 치려하고 있다.

우리는 ‘한미FTA를 둘러싼 마지막 공방’이 2008년 이후 촉발된 세계대공황이라는 국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한다.

한국사회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맞물려, ‘거품경제의 붕괴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와 대중빈곤의 심화에 따른 저항의 폭발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한미FTA 비준’은 외부적 충격을 통해 이러한 위기를 위로부터 통제하고 일거에 돌파해 나가겠다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과 지배세력의 공세에 다름아니다.

 

'국회 비준' 강행에는 '총파업'으로!

 

따라서 우리는 ‘한미FTA 국회비준 반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보호’와 ‘보상’으로 우리의 정치적 요구를 한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자본의 무정부적 전횡’을 끝장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생산과 분배 전체에 대해 노동자민중 스스로 통제하고 계획하고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국내외 초국적 자본에 의한 생산과 분배의 통제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통제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투쟁은 비준 저지 그 자체에 못지 않게 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통제 구축을 위한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권’을 넘어 ‘생산과 분배에 대한 노동자민중 통제’를 내세우고 그 가능성을 실력으로 입증해 나가야 한다. 그 첫걸음이 ‘국회비준’에 대해 ‘총파업’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미 2006년에 금속노동자들이 한미FTA 협상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 나선 바 있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의 총파업으로 그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을 때이다.

‘개혁과 진보’를 넘어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승부수가 필요하다.

노동자민중의 운명은 노동자민중 스스로 결정해 나가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7.3.27. 한미FTA 졸속타결 저지 각계인사 1,000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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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국회비준 날치기 저지 촛불문화제(2011.11.19.토.오후6시, 서울시청광장)

한미FTA 국회비준

날치기 저지 촛불문화제

 

2011.11.19.토.오후6시, 서울시청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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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누구일까요?(김여진)

 누구일까요?

 

 김여진

[한겨레] 등록 : 20111110 20:18 | 수정 : 20111111 11:50

 

‘사소한’ 사람들입니다

단 한번도 ‘국가 이익’과 같은 편에 서본 적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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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무엇에 대해 쓰이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 여러 사람들이 아우성칩니다.

흐느낍니다.

아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봅니다.

 

오래되고 오래된 문제들, 가장 가까운 얘기부터 해볼까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이야기부터요.

300일이 되는 날 공개적으로 전화통화하는 자리에서 저는 울었지만 그녀는 웃었습니다.

건강하셔야 한다는 제 당부에 당신이나 잘하라고, 아프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끝끝내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사쪽의 손을 들어준 중앙노동위원회의 발표가 있던 날,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날,

“우선 모두의 생활이 걸린 한-미 에프티에이 강행처리를 막아야 합니다. 수많은 한진이, 수많은 해고노동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관심 가져 주십시오”라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땅을 밟지 못하고 300여일을 떠 있던 그녀의 발은, 이 땅에,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삶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치는 날.

자식의 시험에 차마 행운을 빌지 못하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한진의 해고노동자입니다.

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사채로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에 대학 등록금은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아비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에 등이 휠 아이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도 이 부당한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어 크레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아비입니다.

조금 더 오래전에, 결국 목숨을 끊은 다른 아비가 있던 그 자리이지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이엠에프 때, 나라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조정’되었던 수많은 부모들이 있습니다.

나이 오십도 전, 아직 대학을 다니는 자식,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 자식이 있던 그 부모들이 있지요.

회사를 쫓겨나 알량한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라도 해보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돈마저 다 잃고 빚더미에 앉았지요.

어디 버틸 수가 있나요?

커다란 대형마트에, 통닭집, 꽃집, 빵집 할 것 없이 그 큰 덩치의 대기업들이 골목상권까지 다 들어왔는데요.

경비일도 청소일도 구하기 쉬운 게 아닙니다.

훨씬 더 젊은 소장에게 머리 숙여야 하고 짤릴까 두려워 최저임금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써야 합니다.

 

올림픽을 한다, 월드컵을 한다, 아무튼 뭘 한다고 할 때마다 살던 자리에서 쫓겨나던 사람들은 어떻구요.

더 외진 곳으로 더 불안한 곳으로 쫓겨나고 또 쫓겨납니다.

 

올해 돌아가신 많은 분들 중에 또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있죠.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 정부의 뻔뻔함 속에 한 분 한 분 소리 없이 세상을 뜨고 계신 군대위안부 할머니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보상금을 다 줬다고 하죠.

우리 정부는 그 돈으로 경제개발 했습니다.

그러니 이분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이미 받을 걸 다 받은 겁니다.

 

네.

제가 얘기한 사람들은 ‘사소한’ 사람들입니다.

국익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사소한 ‘손실’의 일부입니다.

어쩌자고 저리 일일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입장에 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청계천에서 잠 안 자고 미싱 돌리던 그때부터,

큰비 쏟아지는 날 은마아파트 지하에서 숨이 끊어져도 어떤 위로도 보상도 받지 못하는 지금까지,

누가 시킨 건도 아닌데 말입니다.

단 한번도 ‘국가 이익’과 같은 편에 서본 적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에프티에이 체결되면 ‘국익’이 얼마나 증가할 텐데,

선진국이 될 텐데,

경쟁력이 높아질 텐데,

허구한 날 국익하고는 상관없는 저쪽 편에 서 있는 저 사소한 사람들을 상관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저들이 누구냐구요?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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