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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 형, 그리고 한내 제주위원회 1주년 기념식

'야성' 형, 그리고 한내 제주위원회 1주년 기념식

 

뜻밖에 ‘야성’ 형을 사진으로 만났다.

10년이 넘었다.

형이 간암으로 돌아가신 때가 2002년이었던가.

그 전 해, 그러니까 2001년에 서울에 있는 아산병원에 입원해 있던 형의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해 초, 내 아내도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제대로 돌봐 드리지도 못했다.

더 이상 치료할 여지도 없이 제주도에 내려갔던 형은 얼마 후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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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주도에 가끔 내려갈 때면 빼놓지 않고 만나뵜던 유일한 선배가 야성 형이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제주도 도농 의장으로 있던 형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할 지 상의해 와서 함께 토론을 했던 탑동의 어느 다방이.

내려갈 때마다 찾아뵜던 모슬포 집과 비닐하우스도.

그리고 훨씬 그 전, 91년도던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형에게 보냈던 편지 구절도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 아마 ‘다랑쉬굴’ 발견과 관련한 내 소감이었을 거다.

“우리에게 남겨지고 기억되는 4.3.은 다랑쉬굴이지만, 48년의 4.3.은 희망이었을 거”라고 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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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지금, 황사평 천주교 공동묘지 어딘가에 누워있다.

그간 두 차례밖에 찾아뵙지 못했다.

10주기가 될 때 형을 추모하는 책이라도 함께 만들었으면 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10여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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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아니라,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실물을 직접 보고 싶다.

 

2월 11일, 노동자역사 한내 출범 1주년 기념식 사진전에 걸린 형의 사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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