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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76회 – 폭염의 한가운데서 수해소식을 접하고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성민입니다.

 

여름에 무럭무럭 자라는 감귤을 보면서

열매솎기와 가지묶기를 하느라 바쁩니다.

크기가 작거나 기형이거나 지나치게 많이 달렸거나 하는 경우 솎아주는데

올해는 열매가 너무 달리지 않아서 웬만하면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두기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들은 따주는데

문제는 따줘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달려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따내려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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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매를 솎아내고 늘어진 가지는 끈으로 묶어야 하는데

묶어야 할 가지가 많지 않아서 일은 수월합니다.

“일이 편해서 좋아해야 하는 거야?”라며 쓴웃음을 지으며

내년 수확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안쪽으로 가니 나무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파리가 힘이 없고 잔가지가 죽은 것들이 많아서

걱정을 하며 이런저런 노력들을 해보고 있는데

아직 상태가 나아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나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해줬습니다.

“돈이 되는 열매들만 신경쓰다보니 정작 중요한 나무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네. 미안하다.”

 

나무들도 뜨거운 여름을 나기가 힘들텐데

나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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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나오면 옆밭에는 유채꽃이 피어있고 그 뒤로는 한라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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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중장비들이 유채꽃을 밀어버리고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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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공사장 소음과 먼지를 참으며 지냈더니 타운하우스 세 동이 떡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라산을 막아버린 그 집에는 수시로 관광객들의 차가 드나듭니다.

조용한 이곳에서 밤에 술 먹고 노래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쉬고 있으면 자기 집처럼 거리낌 없이 저희 하우스로 들어오는 이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 짜증과 황당함을 일일이 대응하기도 뭐해서 그냥 참고 지내곤 합니다.

 

텃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데 어떤 분이 들어오시더니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와 과일을 파냐고 묻더군요.

“지금 저게 팔려고 심어놓은 것으로 보이세요?”

“차로 10분만 가면 마트가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필요한 거 사세요.”

라고 쏘아붙이려다가 마음을 돌려서 상냥한 표정으로

“이건 제가 먹으려고 심어놓은 거라서 팔게 없습니다. 참외나 몇 개 드릴까요?”

라고 하고는 참외 두 개를 따서 드렸습니다.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하고 나서

제 기분도 좋아져야 하는데

자꾸 뒤끝이 찜찜한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에게 시골 농부는 스스럼없이 막 들어가서 편하게 몇 개 얻어올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그러면서 내 행동이 선하기는 했지만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때 10년 전 성민이의 얘기가 들렸습니다.

 

 

얼마 전에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봤는데 이마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더군요.

아~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주름의 모양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가지런한 모양이 아니라 찌푸린 인상을 썼을 때 나타나는 그런 주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괴물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더군요.

어릴 적에는 귀엽다고 주위에서 많이 이뻐 해주던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내 안에 있는 괴물과 싸우다가는 주름은 더 깊어질 것이고

결국 괴물에게 먹히고 말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괴물과 싸우지 않고 피하면서

주문을 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당하고 버림받고 짓밟히더라도 착하게 살자”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성민이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착하게 살자’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이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제게 그 주문이 다시 필요해졌네요.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당하고 버림받고 짓밟히더라도 착하게 살자”

 

 

3

 

엄청난 폭우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100년만의 폭염이 활개 치는 이곳에서는

“비가 좀 내려서 숨통이라도 띄웠으면 좋겠다”라고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이 아무리 더운들

재난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기에

비를 바라는 마음은 접어둡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놈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시국에 한가하게 농사지으며 신세한탄 하는 얘기나 늘어놓은 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라며

저의 이기주의를 질책합니다.

 

그 질책 앞에서 맞대응은 못하고

이래저래 눈길만 돌리는데

감귤나무에 병충해가 두 종류나 번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뜩이나 해야 될 일들이 밀려있는데 병충해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미치겠네”라며

큰소리로 허세를 부리며

농약을 사러 달려갔습니다.

 

2주전 방송에서 여름이 피크를 지났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그 설레발에 100년만의 폭염으로 화답한 요즘

이래저래 해야 될 일들만 쌓여갑니다.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조만간 아버지 산소에 벌초도 해야 하는데...

 

 

 

(임재범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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