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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서명

아주 오랜만에 본 셜록 홈즈.

 

그녀와 놀러갔던 친구네 집. 우리는 한 다발의 셜록 홈즈 씨리즈가 책장에 꼽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와~ 탄성을 질렀다. 곧바로 한 권씩 뽑아 읽기 시작, 읽기 시작한다고 할 때부터 약 한두어시간 가량 단 한마디 말도 서로 안 하고 책장만 넘기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내어 고백하자면, 난 그 때 내가 뽑은 셜록 홈즈의 책의 단 한 줄도, 줄은커녕 단 한 글자도 읽지 못 했다.

책상의자를 방 한가운데 쪽으로 돌려놓고 앉아있던 나의 발치에 앉아, 그 날 그 집에 같이 갔던 그녀가 나에게 기대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등에 규칙적으로 닿던 숨, 팔뚝을 스치던 단발머리, 이런 것들 때문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팔을 비키지 않았다. 한시간 이상을 아무 말도 않은 채.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린 참으로 애절한 사랑을 하였다.

그런 감정을 어떻게 보이고 다루는지 몰라, 서로를 슬프게 하기만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다른 아이와 귀속말을 하며 장난을 쳤고, 그녀는 내 앞에서 다른 반 아이를 데리고 와 서로 가장 친한 친구 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그로부터 십년이 좀 모자른 시간이 흘러 어느날, 아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던 그녀는 예수쟁이가 되어가지고 언제 만나 술먹자는 내 말에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던졌다.

 

오랜만에 본 셜록 홈즈 얘기를 하려는데 어쩌다가 한 줄도 읽지 않은 셜록 홈즈 책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불어과외를 하러 갔던 집에 셜록홈즈의 완역 씨리즈가 있었다. 또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당장 한 권을 뽑고, 이제부터 올 때마다 하나씩 빌려갈께,했는데, 처음에 뽑았던 그 한권이 첫권이자 마지막권이 되어버렸다.

<네 개의 서명> 숨겨놓은 보물을 둘러싼 살인, 복수, 추격.

 

인도에서 디립다 고생하던 남자가 숨겨놓은 보물을 갈취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자 셋과 이 남자는 종교적 맹세를 통해 서로에게 굳은 믿음과 신뢰를 갖고 이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하는 사람은 영국장교들.

보물을 갈취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네명이 감옥에 가게되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들이 간수인 영국장교들과 거래를 타협한다. 보물의 얼마만큼을 떼어주는 대신 네명 모두의 탈출. 그러나 보물지도를 가지고 사실 확인을 나갔던 영국장교 하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보물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이 때부터 응징과 복수의 칼을 세운 남자, 간신히 감옥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와 보물을 되찾으려하는데...

 

당연히 셜록 홈즈의 추리로 남자의 복수극은 실패한다.

결국 배신한 영국장교 하나만 잘먹고 (잘 살지는 못함, 언제 배신의 칼을 맞을까 두려워하며 살았지) 그 아들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인도에서 디립다 고생했던 남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너무나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셜록 홈즈, 이럴땐 아무리 정의가 어쩌느니 해도 결국 영국놈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남자도 보물을 갈취하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바 있다.

그 보물도 애초에 그런 식으로 빼앗은 것이다. 그걸 뺏겼다고 누구에게 복수할 처지가 그 놈도 아닌 것이다.

결국 무언가 찜찜한 일을 하면 그것은 나중에 몇배 몇십배 더 찜찜하게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역으로, 내키지 않아도 찜찜한 일이 되지 않도록 애쓰면 당장은 헛고생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 몇배 몇십배 보람찬 일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인 것이다.(라는 생각을 국민학생처럼 혼자서 가만히 하고있었음)

 

마지막 장면

왓슨 박사: 나는 사랑을 얻고,  존스 경사는 범인을 잡았는데, 홈즈, 자네는 사건을 다 해결하고도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어쩌나..

셜록 홈즈: 나에겐 이것 밖에 없지, 코카인,하며 그 쪽으로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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