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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비명

그 완벽한 아이가 밤에 비명을 지른다.

자다가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가슴 속에 응어리가 있는 것이다.

응어리, 가슴에 맺힌 그 응어리는 나로 인한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최고 애착대상인 부모, 즉 나와의 충만한 시간.

엄마가 일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아빠가 일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아이는 계속 참아왔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응 알았어,대답하고는 어린이집에 갔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훌륭하시다는 선생 열, 또래친구 수억 다 필요없다.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 냄새를 맡고, 엄마와 눈을 맞추고, 엄마 입에서 나오는 엄마 말을 듣고, 엄마가 밥을 먹여주고, 엄마가 옷을 입혀주고, 엄마가 친구가 되어주는 것, 오로지 이것을 원한다.

아아, 이 안쓰럽게 사랑스러운 것.

그런데 나는, 사실, 며칠 전 읽기 시작한 소설이 더 재미있다.

이제 얼마있으면 새 일이 시작될 직장 준비에 더 마음이 급하다.

엄마는 너를 최고 사랑해,하고 으스러뜨릴 듯 껴안고 눈을 맞추어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직장 준비를 바삐 하고 잠깐 짬이 날 땐 궁금한 소설책을 집어 들고 싶은 것이다.

아이의 이 집착은 생존본능일 것이다.

약한 것의 생존본능.

그러나 그는 나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본다(더할 수 없는 사랑의 눈빛).

나를 보면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안도와 평화가 보인다. 내가 없으면 그에게 안도와 평화가 있을까, 불안하다.

나는 외면하기도 잘 하면서, 실은 가슴으로 전전긍긍한다.

이렇게 완벽한 아이는 흔한 사랑 조차 충만히 받지 못하고, 인간과 인생과 세계의 괴리를 일찌기 체험하며 못난 인간의 허울많은 인생을 시작하나보다. 그래서 세계는 부조리 투성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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