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2'에 해당되는 글 7건
- 채식주의 - 비혼주의 (4) 2007/02/22
- 연대와 소통에 대한 뻔한 글쓰기 (5) 2007/02/22
- 오늘의 네코무라씨 3 (2) 2007/02/22
- 오늘의 네코무라씨 2 (1) 2007/02/22
- 오늘의 네코무라씨 1 (3) 2007/02/22
- 호곡, 놀랍당.... (2) 2007/02/22
- 고백 (3) 2007/02/22
개토님의 [연대와 소통에 대한 뻔한 글쓰기] 에 관련된 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성애자로 애인이 있는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본 상태다.
앞으로 어떤 애인이 생기더라도, 나는 이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하고 싶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제도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소유관계이며,
자본주의를 대물림하게 만드는 큰 고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결혼을 할 경우 내가 맞닥뜨리게 될 그 모든 억압과 소유관계와 자본주의적 관계들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혼'은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저항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비혼'이 억압과 착취를 드러내는 한가지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비혼'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도 '결혼'에 얽힌 사회모순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결혼'의 방식을 달리해서 내가 모르는 '즐거운 결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혼'을 운동으로 하게 되면,
'비혼'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상처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비혼'을 선택해서 상처받은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상처줄지 모른다.
나는 내가 '비혼'을 선택한 것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연대고 소통이고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나는 '비혼'이지만, 샴푸를 사용하고(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비누를 쓰면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자전거를 못타고, 육식을 한다.
샴푸는 누군가 환경에 해가 되지 않게 만들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고,
육식은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비혼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공유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연대와 소통의 시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 혹은 육식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채식, 혹은 육식거부를 하게 된 이유를
공유하고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지만...아닐지도 모르겠다.
'비혼'이나 '채식-육식거부' 등이 사회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사회도 취향에 대해서 꽤나 융통성있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유로운 취향의 사람들을 연대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구심점을 찾는 것,
이게 현재 운동의 핵심과제가 아닐까...하고 개토는 생각해본다.
작은 단위의 활동가들이 자기 운동의 대중을 만들고
그 대중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근거로 큰 단위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그 단위들이 모이고 또 모여 전지구적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이 모든 논쟁들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지점부터인가 운동이 대중성을 상실했고, 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운동 '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운동'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를 조금씩 생각해나가는 것이
왜 소모적인 논쟁인가?
에고..........
'일'의 압박 속에 글쓰기는 정말 힘들고나...
EM님의 ["숨겨진" 의도 (마지막)] 에 관련된 글.
아직도,
근본주의라던가, 환원주의(계급모순으로의)와 같은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EM님의 글을 읽고 그런 단어를 떠올린다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EM님이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된 글을 쓰셨기에,
나는 연대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만 하나 쓰고 싶다.
나는 EM님이 말씀하신 '보편타당성'이 '연대와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편타당성'이 없는 '연대와 소통'은 불가능하고,
'연대와 소통'이야말로 운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부분,
그 부분이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제와 자본과 환경파괴와 기타 모든 억압으로부터(이상 가나다 순) 생명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해서' 채식을 한다면,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가부장제와 자본과 환경파괴와 기타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
두가지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은,
연대를 만들어내고, 소통을 만들어 내고, 세계를 변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식을 운동으로 하게 되면,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는 연대가 불가능하게 된다.
채식을 개인적 (운동의) 실천으로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사회를 꿈꾼다'는 것으로 들린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억압과 착취가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선전 선동으로써의 채식만을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정치적의도'를 가진 '개인적 (운동의) 실천'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것조차도 사실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힘든데(문자 그대로 힘들다)
이러한 방식의 실천이 오히려 그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획일화'를 만들어내는 도덕교과서적 실천의 전형으로 비춰지거나,
종교적 실천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삶의 방식'이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말하는 이가 설사, 상대를 설득하고자하는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듣는 이에게는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옳아.'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옳다고 말할 때는, 상대가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식이 '옳은' 개인적 실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채식을 하지 않기때문에 당신은 옳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대체 누가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운동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윤리나 종교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일반인(?)'들에게 진보블로그를 추천하면,
주로 들었던 소리가
'참 대단하신 분들이네...나는 아무래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거기는 못가겠어.'였다.
'삶의 방식'을 운동으로 강조하게 되면, 윤리나 종교적 운동이 되어서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한 줌의 사람들끼리는 연대하고 소통하기 쉬워지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라디오 듣기가 운동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나는 '고양이 키우기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각자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
그것은 당연히 '취향의 자유'를 위한 권리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취향의 자유, 삶의 방식'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공간이다.
'탈근대군주론'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거대한 연대체'가, 나는 그러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운동은 '보편타당성'을 근거로 소통해서 '거대한 연대체'를 만들어내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육식거부'를 당신 삶의 방식(취향보다 혹시 덜 거부감을 일으킬까?)으로 존중해주길 원하는 거라면, 나는 당연히 존중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더 존중받기를 바란다.
그런데,
당신이 '채식'을 '취향'이 아닌 '운동'으로 존중받고 싶다면,
나는 그 운동을 존중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모두가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먹거리'를 원한다면,
당신이 '채식주의자'인 것을 강조하기 보다,
나와 당신이 모든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와 연대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거야 뻔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소심해서(^^;), 당신이 나때문에 불편한 것은 아닌지,
내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당신과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어쨌거나 당신이 '채식'을 '취향'이 아닌 '운동'으로 존중받고 싶어한다면,
나는 당신을 존중하기 위해 그정도의 걱정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신이 정말로,
더 많은 사람이 채식(육식거부)을 해야만, '억압과 착취'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억압과 착취'를 몰아내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육식거부'를 해야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그정도의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잠깐 일 좀 했을 뿐인데, 개토는 일주일이나 블로그에 안들어왔다.
호곡, 호곡....이상해....시간이 이상하게 간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토는 한번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해서,
지난 일주일간은 일을 좀 했습니다.
블로그를 끊거나 한 건 아니구요...휴우........
이래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하는 군요......
간만에 일해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갑니다.
여하튼, 대략 한학기분 등록금은 벌고 있으니 다행.
사실은, 지금도 일하고 있어야 해서.....
블로그에 언제 또 들어올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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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도 옳은 것 같고,
이래서 진보블로그가 좋네요 ㅎㅎ 정말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 ㅎㅎ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염...
응 소모적이지 않은것 같아요. 의미 있다고 생각함.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잘 생각이 풀리지는 않지만...
근데..."채식, 혹은 육식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채식, 혹은 육식거부를 하게 된 이유를 공유하고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 당연하죠.^^ 채식은 당위(=운동?)가 아니라 실천 방법의 하나니까. 그리고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채식이라는 실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 지점은 확실히 한가지 말할 수 있어요.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그것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수 있는 방법이라는거에요. 밥먹을때마다...인식하게 되니까. 스스로도 주위사람도. (근데 이거 자체로 상대방이 불편하고 상처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_-)
비혼이 당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운동이 아닌것은 맞는거 같은데 그렇다고 취향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건 아닌거 같아요.(뭐 그런 뜻으로 말한것인지 모르겠지만)
결혼"제도" 폐지- 이성애자에게만 허용되는 제도이자, 그 제도 틀거리에 사람만 혜택을 주어 가부장제 모순을 고착화하고 사람들을 가부장제 질서로 포섭하는 -를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지 맙시다 하는 것은 운동이 될 수 없나? 이런 생각도 다시 드는구먼요.. 뭔소리랴.,-_-
나는 운동이라는 개념에서 당위는 잘 모르겠고 "연대하라-조직하라"라는 의미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서로를 조직하는것. 그런 의미로서의 운동.
당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