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3'에 해당되는 글 2건
-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 (5) 2007/09/23
- 단체들이랑 일하기 싫다 (18) 2007/09/23
1. 커뮤니케이션?
다른 모든 동물들처럼 인간은 자신이 취합한 정보들에 대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 편안한 것과 편안하지 않은 것 등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우연에 의해(여기까지 인간은 세계에 대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의존적이었다),
인간이 눈을 중심으로 진화하게 되어, 직립하게 되고,
손이라는 복잡한 도구를 갖게 되면서,
인간은, 단순히 정보(특히 이미지)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보(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리는 얼룩말은 사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달리는 얼룩말에 '돌을 던지면' 돌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 얼룩말을 죽인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는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하게 된다.
누군가 얼룩말에 돌을 던져서 얼룩말을 잡으면,
그걸 '보고 있던' 다른 개체들도 그 정보를 입수하여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개체가 정보를 뇌에서 구성하는 방식은 개체의 경험이나 뇌의 물리적 형식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도 돌을 던져보지 않은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이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을 경우,
전체 구성원이 사냥을 나갔을 때, 그는 다른 구성원들이 서로 주고 받는 몸짓과 눈짓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커뮤니케이션이란 공통의 경험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지각이란,
초원위에서, 바람과 풀들과 나무들과 얼룩말들 가운데, 특별히 약한 얼룩말을 '골라내어', '주목하는' 일이며
커뮤니케이션이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하고, 시선을 돌맹이로 움직이는 정보(이미지) 등을
'지각하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하고, 시선을 돌맹이로 움직이는 것은 일종의 코드이다.
그 코드는 우리의 환상과는 달리, 전혀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경험적일 뿐이다.
돌맹이를 던져보지 않은 이에게 그 코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과 대화가 될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돌맹이를 던져본 부족은
돌맹이를 던져보지 않는 자가 돌맹이를 던지는 이미지(정보)에 자주 노출되도록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2. 고립된 단자들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에서 볼츠는
라이프니츠가 완전히 닫힌 체계인 '고립된 단자'들 사이에
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존성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고 했다
라고 말한다.
신을 '세계'로 대치하면, 내게는 좀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고립된 개체들은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존성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먹고 자고 싸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세계란 필연적인 조건이고
그 조건들의 동일함, 조건에 대한 의존성의 동일함이 커뮤니케이션을 낳는다.
그런데 인간은 눈과 뇌와 손을 갖게 됨으로써
세계에 대해 의존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조건은 동일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는 인간에 대해 의존적이다.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존성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체와 개체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환상은
세계에 대해 의존적이지 않은 자기자신을 상정함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고립된 인간의 근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은, 그곳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걸까?
3. 이미지
돌맹이를 손으로 들어올려 던지기까지
인간의 뇌가 어떤 경험을 겪었는지는 그저 분분한 추측이 될 뿐이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돌맹이를 들어올려 던졌다.
정보(이미지)를 가공하여 다른 정보(이미지)로.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인간은 이미지없이는 인간이 아니다.
태초에 이미지가 있었다.
4. 미디어
이미지는 미디어이다.
5. 돈은 이미지이고 미디어이다.
그보다 강력한 이미지와 미디어.
6. 문자
내가 겪은 것을 타인에게 겪게 하는 것.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다.
단체들이랑 일하기 싫다.
일정이 수시로 바뀌고, 모든 상황에 대해서 거의 통보에 가까운 정보를 던져주고,
마감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만 일이 진행되고,
필요한 자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봐주는 일은 절대로 없고,
때로는 내가 고민고민해서 요구한 자료들을 주는 것에 대해서조차 굉장히 아까워하거나,
사실은 매우 귀찮아한다.
심지어, '그런 식으로 자료를 요구하다니, 어이가 없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내가 나 좋자고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도 대충 자료받아서 심미적인 요소 고려하지 않고 막일하면 편하다.
자료 고르는 것도 굉장한 일거리인데, 그냥 보내주면 내가 찾겠다는데,
그거 웹하드에 올려주기가 그렇게 힘든가?
조합원이냐고? 아닌데요.
조합원이 아니라서 잘 모르나 본데...
그냥 조합원한테 시키기로 결정하시지, 왜 이제와서 그런걸 따져요?
죄책감이라도 느끼라는 건가요?
내 노동은 그들에게 있어서, 기계의 노동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조금도 존중받고 있지 못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기들 편할 때, 전원버튼 켜고 돌리면 그만이다.
방금도 그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날 밤중에, 일거리를 던져주고 10월 2일까지 끝내달라는 건,
추석동안 일하라는 건데.
남한테 그렇게 일 주면 기분이 좋을까?
어쨌든 넘겼으니 자기는 마음이 편할까?
11시가 넘어서 문자하나 달랑 남기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문자란 정말 편리한 거겠다.
미안한 이야기 한마디 할 필요 없고, 쓸데없는 감정노동 안해도 되고,
메일 보냈으니 확인하세요.^^ 웃는 이모티콘 하나면 친근한 느낌 살짝 주면서.
메일에는 답장을 '빨리' 달라는 귀여운 독촉도 있었다.
추석에 일을 주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없었을까?
참 대단한 일들 하셔서, 난 뭐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다시는 그 단체와 일하고 싶지 않다.
자신들의 노동도,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지겹다.
짜증나.
정말 짜증이 나네.
내가 무슨 5분 대기조인가.
기획도 안해놓고 사람 불러서 급하다고 일 시켜서 일정맞춰 일해줬더니
일정이 늦춰졌다고 한달 넘게 연락없다가 추석연휴시작될 때 문자하나 보내 마무리 해달라니.
솔직히 작업할 마음이 안난다.
맨날 하는 소리.
저희는 단가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그 소리도 지겨워.
언제 단가 맞춰 준 적 있나?
단가 맞춰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줄 생각도 없으면서,
왜 사람 곤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들 예산이 있을 거 아닌가. 예산이 얼마니, 거기 맞춰 일해달라 말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건가?
그건 근거없는 착한 척인가 순진한 척인가 그냥 돈이야기 꺼내는 습관인가.
아, 예산보다 적게 부를 지도 모르니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는 생각인가?
자원활동이 아닌 일은 안하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급하다고 하면,
나도 돈이 없으니 어차피 일하는 김에 조금이라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에 덥석 맡지만,
즐겁고 멋지게 일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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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란 거 완전 무서운 거구나~_~ 내 이럴 줄 알았어...
언니, 돌맹이가 아-트 라고 생각해온 사람은 어떡해요?
혼란해요 ㅋㅋㅋ
커뮤니케이션이든, 돌맹이든, 어찌되었던 가끔은 아트도 폭력이 된다는 생각은 해요 ^^ 뭐, 세상에 공짜없고 동전에 한면만 있는거 아니듯이 ㅋ
그나저나, 궁금한건
몸은 어떠세요?
언니랑 나랑은 많이 먹는데 왜 아플까!!! ^^
커뮤니케이션.. 소통? 이게 약이자 독이군요! 이런..
읽어보고 싶은책이었는데. 개토가 이렇게 써놓으니 더 보고 싶네.안어려워? +ㅗ+
달군 / 대충 읽다가 말다가 해서 모르겠어. 한국판 서문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요새 내가 너무 바빠서 책을 차분히 읽을 수가 없어...어쨌든 책은 절판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