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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완성하는 게 아니다 - 강풀의 순정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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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헌책방에 갔다가 <강풀의 순정만화>(문학세계사, 2004)가 있길래 두권을 모두 샀다.
심심풀이용이었고, 읽는데 시간이 그리 걸리긴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읽지 않고 대략의 평을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순정만화를 보면서 순정만화스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럴 때도 있는 것 아니겠어.
 
작가의 말.
"순정만화를 그리면서 많이 행복했다.
나는 사랑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중요한 사랑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다 보니, 마감에 쫒겨 고달프면서도 내내 행복했다. 작업하면서 내가 행복했던 느낌이 조금이나마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거면 흡족하겠다."
전달되었다.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카툰은 앞 장 내용의 요약이면서 반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슬램덩크나 열혈강호에서 진지모드로 있다가 갑자기 코믹모드로 바뀌는 장면이 생각나게 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났던 노래가 있다.

 

  윤민석 - 참 좋은 풍경 같은 사람

 

노래도 좋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새벽길]이라는 온라인 대화명을 쓰기 전, 하이텔과 하늘사랑, 그리고 세이클럽에서는 [좋은풍경]이라는 대화명도 사용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닭살이다. 풍경님, 풍갱이...



- 엘리베이터 안에서 학생(한수영)이 놀라지 않게 뭔가 말을 건네야 한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먼저 상대방 학생이 했던 말,
"아이 씨발 조땐네."
나라도 놀랐겠다. 이어지는 차렷자세... ㅋㅋㅋ
하긴 욕도 마냥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강숙에게서 욕을 먹고 나서 김연우가 하는 말,
"하하. 전 그런 욕 상관 없어요. 저기... 어떤 좋은 사람이 있는데... 목소리를 참 듣고 싶었는데... 그 사람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씨...발"이란 말이었어요."


- 만화 속 주인공인 김연우는 거의 나로 감정이입을 해도 될만한 인물이다. 나이는 30이지만, 그 나이나 내 나이나...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나를 떠올리게 하니...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못한다.
'꼭 먼저 말해야 되나...? 해,해도 되는 거였어요...?'
문제는 그에 적당한 상대방이 없다는 거. 만화에서는 동갑내기(띠동갑)인데...
'바보같이 버벅대는 게... 그래도 귀엽단 말야??' 나에게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 '요즘 들어 자주 만나는데 아무리 자주 봐도 만날 때마다 더욱 긴장됩니다.'
'이 늦은 시간에도 마주칠 수 있다니... 저는 요즘 운이 참 좋습니다.'
'저쪽에서 나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그거면 된다구...'
'오늘 아침은 모든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그냥, 괜히 즐거워.'
사람을 좋아하면 그렇게 된다니까...
어떤 계기로든 자주 접할 기회를 만들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우연을 가장해야 하니까... 메신저에 대화상대로 추가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다 말을 건네는 것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강박관념인가...  

     
- 이름가지고 사람 놀려서는 안된다. 그런데 강숙이라... 원숙이형은 지금 뭐할까.
아래 장면 보고 졸라 웃었다.
"짤랑~ 짤랑~ 짤랑~ 짤랑~ 으쓱~ 으쓱~" : 어렸을 때 TV유치원 율동...?
"짤랑짤랑 짤랑짤랑 으쓱~ 으쓱~" : 저걸 왜...? 미쳤나...?
"쑤욱~! 수욱~!"  : "야!" 너! 이름 갖고 장난하려고!
 
- '너에게 더 이상 어떤 의미도 주고 싶지 않아.
너와 나 사이에 의미 있는 날을 만들고 싶지 않아.' (권하경의 생각)
첫눈에 무엇인가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할 때,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아마도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일꺼야.

-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맘이 편해지는 것은 서로간에 모두 그래야 한다. 일방적이면 안되는 것이다.

- 서로간에 '내가 얼마나 자꾸 자꾸 자기 생각 하는지... 알까? 깊어가는 내 마음을...?'

이런 상태인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직 그런 단계조차 되지 않았으니...
 
- "가라고 해보라고! 넌 내게 가란 말 못해. 너도 날 필요로 하니까 가라고 해! 그럼 잘..."
"가!"
'네가 나중에 더 상처받을 일을 생각하면 더 차갑게도 말할 수 있어.
더 정나미 떨어지게 말할 수도 있어.
얼마든지 더 잔인하게 말할 수도 있어, 난.'
'나중에 더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강가딘님이 나에게 그만 만나자고 할 때 아마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강숙은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고,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괜찮다고 했고, 나중에 다시 잘 이어지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끝이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네.

 
- 크리스마스날 눈을 기다리는 상대방을 위해 일부러 스프레이로 눈을 만들어내는 이벤트, 이 정도는 해야 연애를 할 수 있는건가. 쉽지 않다. ㅡ.ㅡ;;
게다가 "저기... 눈 맞아줘서 고마워요."
이건 내 모드가 아니다.
 
- '요즘... 저에게 자꾸 핸드폰을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워낙에 전화 올 데도 없었지만... 그 이전엔 핸드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살았거든요...
요즘은 제 핸드폰에 이전엔 거의 없던 문자메시지란 것이 들어 있어서 그걸 자꾸 보고 또 보게 돼요.
맨날 봐도 그 글이 그 글인데 지우지 않고 차곡차곡 저장해 놓고는 자꾸자꾸 다시 보게 됩니다...'
나도 그랬는데... 지금은 다 지웠다.
 
- 담배 많이 피운다고 수영이 걱정해주자 - 처음이라나 -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한다.
예전에 진희에게 담배 끊으라고 했었는데...진희는 어떻게 지내나 모르겠다. 벌써 안본지가 10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진희 결혼식 때 주례를 이수호 선생이 봤던가. 보고 싶다.

  
- "별로 말도 안 하고 그냥 옆에만 있어도.. 난 좋던데...?"
"너 임마 그래도 최소한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꼭 말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냐...? 그리고 말야. 야, 뭐 사람 만나는 일이 결론짓고 그래야 하는 거냐? 지금도 어쨌건 둘이 같이 가고는 있는 거잖어."
"지금은 일단 그 사람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면 되지 뭐. 넌 지금 같이 있잖아."
한수영이 강숙에게 해주는 조언 치고는 너무 세련되었다. 고딩 맞아? 비현실적이다.
  
-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사람이 있긴 한데...
"엄마... 나 사실 말야. 요즘 좋은 사람이 생겼어.
그런데 그게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야.
보고 있으면 마냔 좋은데... 그게 왜 좋은 건지 몰라서 그래...
분명해지면 꼭 이야기해줄게..."
 
- 2권 처음에 나오는 생각들.
한수영: 내 손을 놓지 마요. --> 좋은 사람이에요. 아저씬...
'아, 아저씨... 손 빼지 마요. 그냥 잡아요. 내 손을 놓지 마요. 내 손을 잡아줘요.'
'손을 계속 잡아서 나에게 용기를 줘요. 나 아저씨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어.'
'이 사람이야, 좋은 사람...'
김연우: 이렇게 계속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 고마워요. 나를 잡아주는 손...
'이렇게 계속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나는 왠지 불안하네요. 이렇게 함께 걸을 수만 있다면...
그거면 좋겠는데요. 외롭지 않게.. 함께...'
강  숙: 너와는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 --> 늘 함께 할 거야. 뭐든지... 꼭 함께 할 거야.
권하경: 이제는 나도 너에게 뭔가 주고 싶어... --> 나도 너에게 뭔가 줄 수 있어야 할텐데... 그래야 할텐데...
'나는 늘 너에게 받기만 하고... 난 너에게 해준 것이 없으니까...'
규철: 아니요. 내가 안 괜찮아요. --> 왠지 이번만큼은 계속 같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먼저 가는 건 싫어서요...
붕어빵아줌마: 나는 그 쪽이 옆에 있어주면 좋긴 하지만... --> 그래도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 규철: 그녀를 두고 떠나던 날..
'나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 내 못난 모습이 싫었지만... 나는 이미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거든...
그녀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보고 싶었지만...
날 바라보고 있을 그녀 모습에 내가 흔들릴까봐... 나는 그럴 수 없었어...'
"뒤돌아볼 수가 없었어...
내 마음이 약해질까봐...
내 우는 모습을 보일까봐...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니까, 뒤돌아보면 너무 괴로우니까, 마음이 약해질까봐,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먼저 만나자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용기보다는 내 처지 때문에...

  
-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뭐든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되도록 그쪽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저 붕어빵을 굽는 것뿐이지만...'
 
- "소중함을 몰랐어... 늘 옆에 있었는데... 마음을 열었어야 했는데...
고마워요... 아저씨... 아저씨로 인해서 나를 돌아봐요. 아저씨로 인해서 더 소중한 것을 얻어요."
"난 요즘 뭐랄까.. 난 꼭 구원을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해..."
나도 누군가에게 구원받은 느낌까지 주고 있지 않을지라도 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 '사랑했었대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문제가 사랑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대요.
그냥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며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사랑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대요.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인 걸 깨달았대요.
그 사람이 편하게 웃으면 웃을수록 괴로웠대요. 사랑했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 같았지만... 그것은 너무 큰 것이었대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초라하게 보이기 싫었대요.
사랑했기 때문에 싫었대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나의 부족함으로 고민할 때마다 먼저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
"아시죠? 우리의 미래가 더 불확실한 것을... 아저씨하고 나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요.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내가 용기 없을 때마다 나를 잡아 끌어주는 목소리...'
"우리 항상 이야기해요. 불확실한 거 생기면 함께 이야기해서 확실하게 만들어서 이겨 나가요.
우리의 미래가 훨씬 더 불확실해요. 하지만, 항상 이야기해요."
'용기 없고 불확실한 나에게 먼저 내밀어주는 용기 있는 확실한 손...
이 손을 잡을게요. 나 비록 용기 없더라도...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늘 고민하고 있지만... 용기를 내볼게요.'
만화 안에 나름의 사랑과 행복에 대한 철학이 있다.
   
- 실패한 사랑이라고 좌절하는 강숙에게 한수영이 주는 말.
"야! 실패 아냐! 사랑이 뭐 완성시키는 물건이냐?
실패한 사랑이 어딨어!
그 과정도 다 사랑이잖아! 그 순간순간이 다 사랑이잖아!
넌 지금도 사랑하는 중이야!" 
사랑은 완성하는 게 아니다. 내가 부딪쳤던 그 순간이 사랑이다. 이런 말을 하는 한수영은 고딩이 아니다. 고로 순정만화는 만화일 따름이다.
  
- '그녀는 날 잡지 않았었어... 오히려 내게 어떤 이유도 묻지 않았어...
그녀는 내게 왜 이유를 안 물었을까... 이젠 그게 헤어진 이유가 되어 버렸어...
말할 걸... 그랬어... 어떻게든 말할 걸 그랬어...
분명하게 말해줄 걸... 힘들지 않도록...
다른 이유들로 힘들지 않도록 말이야...'
 
- '나는 항상 속으로만 생각하고...
정작 말은 아끼고... 생각한 것을 말하지 못하고...
생각과 말은 항상 다르고..
당신이 좋아요...
당신 때문에 세상이 변화되었어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좋아요...
당신 때문에 난 행복해졌어요...
당신이 없으면 안될 것 같아요...
당신을 하루 종일 기다려요...
당신 생각만 하면 나는 행복해요...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을 ... 난... 난 당신을... 나는.. 나는...
더 이상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을래요.'
"사랑해요."
"확실하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요. 비록 나 용기는 없지만... 난 당신을 사랑해요."
"분명하게 말할게요. 당신을 사랑해요."
 
- '그러고 보니..
넌 늘 내가 무언가 필요할 때 내 옆에 있어 주었구나...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널 볼 수 없구나...
내가 필요할 땐... 늘 내 옆에...
내가 외로울 땐... 늘 내 옆에...
내가 혼자 있을 땐... 넌 늘 내 옆에...
내가 필요했던 것은.. 아... 숙아...
내가 늘 이곳에 왔던 이유... 이제야 알 것 같아...
나는 이곳에서 그 사람을 기다린 게 아니었구나...
어느새... 난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너였어... 내가 자꾸 이곳에 오는 이유...
너였어.. 이곳에 있으면 니가 나를 찾아오기 때문에...
내가 기다린 것은 너였어...
너였어... 이젠 늦었지만... 너였어...'
권하경의 독백인데, 이건 비약이다. 역시 만화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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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5 17:47 2006/05/05 17:47

3 Comments (+add yours?)

  1. 로자 2006/05/06 23:42

    흐음... 사랑의 고민이 깊어가시는군요. -.-; 잘 되시길 바라고, 안 되어도 씩씩하게... ^^;

     Reply  Address

  2. 정양 2006/05/12 17:31

    음..
    '닭살'도 꽤 괜찮은 대화명이다.

     Reply  Address

  3. 새벽길 2006/05/13 01:04

    전혀 깊어가지 않습니다. 잘 되면 좋겠지만, 사.랑.까지 연결되지는 않네요. 쩝...
    대화명을 바꿔볼까여? '닥쌀' 같은 것으로...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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