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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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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2010.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서울: 후마니타스.
 
조돈문 교수의 이 책을 보고 정말로 뭔가 진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레디앙에 책의 머리말과 제4부 평가와 함의가 실린 것을 보고 제1부에서 제3부 사이에 참여예산제와 같은 지방정부의 경험이나 PSol과 같은 노동자당 외의 좌파정당의 흐름 등의 내용을 기대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것은 조돈문 교수가 이전에 브라질 노동자당 또는 노동운동과 관련하여 쓴 논문들을 보완하여 쓴 것이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 대한 계급분석 및 전투성게임/제도성게임 등을 통한 노동운동의 대응 등은 의미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
 
레디앙에 실린 4부를 보면 조돈문 교수의 논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토론거리가 된다. 그 논지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고...

 
룰라 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완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진전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억제된 반면, 좌파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제어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가 크게 진전된 것이다. 이런 역설적 현상은 계급 형성 혹은 주체의 형성 시각에서 설명될 수 있다. 계급의식이 발달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의미의 물질적 기초가 전제되어야 하고, 계급 형성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이런 여건이 좌파 정권인 룰라 정부에 의해 제공되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IMF 협약을 준수할 의무, 막대한 외채 및 공공 부채 규모, 연립정부 및 과반수 의석 확보 문제 등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으로 인해, 정부의 의지 여부에 관계없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역량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좌파들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의 핵심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으며, 실천 의지만 있다면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당이 성장함에 따라 당의 성격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정책을 관철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요구되었고, 공직자들의 비중과 당에 대한 기여도가 증가하면서 당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되었으며, 그와 함께 실용주의는 당 내에서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각종 선거에 참가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념정당‧계급정당에서 점차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었다. 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당원 구성에 있어 노동계급의 비율이 감소하고 중간계급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당의 지지 기반이 커지면서 지지 기반도 당원 구성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비율 감소와 계급적 이질성의 증대 현상을 겪게 되었다.
 
집권 시점까지 변혁적 프로그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대안 계획 “Plan B”가 존재했다가 결국 파기되었다는 것은 변혁적 실천 의지가 총체적으로 부재했다고 보기보다는 변혁적 실천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결여되고 소극적 의지에 머물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 자본제 국가의 모순과 함께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대한 집권 프로젝트의 제약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다수파와 좌파 소수파들의 대립‧갈등은 계급 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 계급 이익들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다수파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좌파 소수파들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한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노동계급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딜레마가 CUT 내 이념적 흐름들 사이의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다.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다양한 정책들의 실천을 통해 노동계급의 이념적 결집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 있어 조직적 형성보다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더 큰 기여를 했으며,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개혁적 양식의 정체성이 주도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서로 대립‧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계급의 이익 유형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시기라고 해도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의 수렴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성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계급정당이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한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개입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수렴은 기대할 수 없다.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하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헌신성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 변혁의 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산관계의 변혁적 실천에 대한 참여를 통해 주관적 의미 부여 기준과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변혁과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변혁적 요구를 동원ㆍ조직하여 제도성 게임과 전투성 게임을 병행하며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성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로 하여금 변혁 정책을 확대‧집행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당면 계급 이익에 무게 중심을 두며 담론과 정책들을 생산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체성 형성‧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보다는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이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주도했다. 도를 더해 가는 반대파의 비판과 반발에 맞서 CUT 지도부는 룰라 정부와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은 이행을 위한 도구적ㆍ과도기적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존재 양식은 더욱더 보강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에 기초한 개혁은 변혁적 사회주의 정권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개혁적 실천은 개혁주의(reformism)에 매몰될 수도 있고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행을 지향한 실천이 될 수도 있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개혁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보고, 개혁을 체제 이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며,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허물며 체제 이행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접근법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부의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변혁 시나리오 자체의 타당성은 검증된 바 없다. 룰라 정부가 Plan B를 파기한 것은 단순히 룰라 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라 룰라와 노동자당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정치경제적 안정의 중요성 및 재정적ㆍ경제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결과라는 점을 변혁 시나리오는 간과하고 있다.
 
변혁 시나리오가 경험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변혁적 계급 형성의 전제 위에서 ‘동원과 결과의 정치’(politics of mobilization and outcome)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하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크게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변혁적ㆍ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다. 개혁적 계급 형성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과 일반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동원을 통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력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과 함께 ‘설득과 영향의 정치’(politics of persuasion and influence)를 통해 변혁적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설득의 정치와 함께 동원의 정치를 병행하고, 영향의 정치와 함께 결과의 정치를 병행하여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적 합리성이 요구된다.
 
브라질에서도 계급 투표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좌파 정부 집권의 성과로써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 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이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것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의 정치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 예산제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통치 모델을 만들어 통치 능력을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노동계급 정당 혹은 좌파 정당을 선택할 때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 대안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 조건이 악화된 뒤다. 즉, 악화된 구조적 조건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만큼 집권 후 수립ㆍ집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의 범위도 상당 정도 제한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제약을 만나게 된다. 사유재산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경제적 질서와 안정성의 기초를 이루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대적 원칙들이다.
 
룰라 정부의 경험이 확인해 준 것은 좌파 정권이 변혁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이 진전되어야 하며, 계급 존재 양식을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단순한 집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ㆍ통치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집권 전략을 규정하고, 집권 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변혁적 정부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고 의회정치는 의석의 게임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유화된 기업들을 재사유화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연대 세력들의 동원만으로 재사유화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여론을 향한 설득과 영향의 정치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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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성공…룰라의 실패 (한겨레, 김순배 기자, 2010-01-22 오후 08:18:16)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중도 실용 좌파’의 성공적 모델로 추앙받는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그는 임기 8년째에 퇴임을 앞두고 80% 가까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룰라 정부는 정치적 안정 속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룰라는 진정 성공했는가? 브라질 노동자당의 2003년 1월 집권은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의 실험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좌파는 룰라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틀에 갇힌 자본제 국가의 한 유형에 불과했을 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펼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노동계급의 계급형성이 진전되고 계급 존재양식을 개혁적·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에도 시민들의 불만과 반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조직화하면서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논의를 위해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과 계급적 성격에 대한 분석은 물론, 노동운동의 역사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및 노동운동의 전략 등도 짚었다. 조돈문 지음/후마니타스·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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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 신자유주의 대동맹 (레디앙, 2010년 01월 23일 (토) 09:27:49 이재영 / 기획위원)
[인터뷰-조돈문] "진보 사회과학 날카로운 발톱 되찾겠다"
 
사회적 후퇴 현상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이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두 정부가 들어서면서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정권 운영에 많이 참여했다. 공식 직책을 맡은 사람도 있었고, 직책이 없더라도 정권의 자문 네트워크에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간여했다.
 
아직도 이 두 정권에 미련을 두고 있는 세력이 일부 있고, 두 정권에 실망한 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은 더 진보적인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보적 사회과학계에 내부 균열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사회과학이 제 목소리를 못낸 것이다. 진보적 사회과학의 날카로운 발톱이 무디어졌고, 비판적 이성을 잃은 것이다. 자유주의 정권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권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기대, 그들이 개혁적이지 않음이 드러났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련이 진보적 사회과학 위기의 원인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렇게 쉽게 역주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자유주의 정권들이 역주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와 주체 형성을 못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초선될 때는 그 지지가 여러 계층에게서 나와 계급적 특징이 없었다. 그런데 재선에서는 계급적 차별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은 1기 집권 때 계급적 정책을 폈고, 그를 통해 지지세력을 만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신자유주의 시절을 거쳤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 주체가 누구냐 하는 데서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이를 이끌었다. 한국의 전통적 보수세력은 친시장적, 친신자유주의적이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 성향의 중도개혁세력은 북한이나 미국 문제에서 조금 더 개혁적이다. 두 번째 세력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전통적 보수세력이 신자유주의를 펼쳤다면, 중도개혁세력이 반대했을 텐데, 중도개혁세력이 신자유주의를 주도하고 전통 보수세력이 수용하는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군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화한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부, 페루의 후지모리 정부가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추진했다.
 
양 세력의 대동맹은 시민들에게 신자유주의가 대세고, 이런 보편적 국가노선에 저항하면 집단이기주의라는 식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합의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의식이 보수화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도 자신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시장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 대동맹의 시민 교육이다. 게다가 개혁적 시민단체와 언론들도 비판적 기능을 포기하고 자유주의 정부들에게 암묵적 동의를 해줬다.
 
정치 참여는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다. 자기 연구의 결과를 관철하고 영향을 주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스럽고, 지식인의 의무다. 그러나 모든 정치 참여가 동일하지는 않다. 지배세력은 이미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굳이 대변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약자의 힘은 워낙 취약하므로 지식인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 동기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필요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학문적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사회적 활동을 펼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 판별할 수 있다.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그 연장선상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룰라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인데, 시민들이 긍정적 평가 70%라는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데 비해 좌파들은 룰라 정책에 비판적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권이 사유재산제, 부르주아민주주의 등 제도적 제약에 발목 잡혀 진보적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구권 붕괴 이후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에 성공한 것은 브라질이 처음이라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그 기대만큼 제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복지정책과 사회정책은 상당히 폈지만, 시장질서를 변화시키는 정책은 없었다.
 
룰라 정부는 어떻게 출범할 수 있었을까? 왜 좌파적 변혁을 할 수 없었을까? 인민들이 좌파에게 표를 주는 것은 다른 모든 대안이 효과 없음이 입증된 뒤다. 즉 사회경제적 최악의 조건에서다. 그래서 좌파 정권은 최악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정책 구사를 제한당하는 것이다. 룰라가 집권했을 때 국가부채가 엄청났고,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사회정책을 펼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브라질 정부에게는 돈이 없었다. 기업 국유화할 돈도 없었다. 외채를 갚으려 긴축재정을 쓸 수밖에 없어 정책대안이 적어졌다. 좌파 집권의 조건이 정책 수행의 유리한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도 집권한다고 모든 것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브라질만큼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기도 어려운 조건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집권 이전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의 경험에서 교훈 얻고 배워야 하는데, ‘개량’이라 매도하며 학습하지도 않는 것이 안타깝다. 브라질을,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돈문 교수 "한국 진보진영, 룰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한국, 이왕구기자, 2010/01/25 21:50:05)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책 낸 조돈문 교수
2003년부터 브라질 6차례 방문… 룰라 정권의 경제·복지 정책 분석
"작은 변혁부터 실천… 지지 얻어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분석한 책은 국내에서도 여러 권 나왔지만 이 저서는 국내 학자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룰라 정권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유학 중 한국과 멕시코 노동계급 비교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는 등 일찍부터 중남미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 교수는 "1994년께부터 룰라를 주목해왔다"고 했다. 브라질 노동운동사를 정리한 이 책의 1장은 당시 쓴 논문이다. 그는 2002년 봄 브라질 대선 레이스에서 룰라가 선두를 놓치지 않자 그해 여름부터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룰라가 취임한 2003년 이후 브라질을 6차례 다녀오며 글을 썼다. 조 교수는 "룰라 정권은 경제정책에서는 전임 우파 정권과 연속성을 지니되 상당 정도 차별성을 보여주었고, 사회정책에서는 두드러지게 차별적이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긴축재정 운용, 고금리 유지 등이 전자의 예이고 저소득층 생계 지원,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 등은 후자의 예다.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룰라 정권의 성공은 좌파와 중도우파를 포괄하는 국내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같은 시기 출범한 한국의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공공부채는 5배 이상이었고, 한국은 외채가 수출규모보다 작았지만 브라질은 외채가 수출규모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과감한 사회복지 예산을 쓰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지요. 룰라 정권이 자본주의 게임 규칙을 바꾸는 실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빈곤층의 규모를 줄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 교수의 말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룰라의 노동자당도 순수계급정당을 포기하고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에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반면 우리 '진보' 정권은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대동맹을 결성했지요.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요. 환란 이후 삶의 질이 악화됐는데도 시민들의 사회ㆍ정치의식이 보수화된 책임은 두 정권에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이 바로 진보 진영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롤라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빈곤층 자녀 대상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우니' 같은 성과를 보여주었기에 재집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당다운 트레이드마크를 보여준 것이지요." 조 교수는 또 롤라가 집권 전부터 지역에서 공공투자부문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예산제'등 차별화된 통치모델과 통치능력을 보여준 점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진보 진영이 '새 세상이 올 것이다'는 말만 해서는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집권 전에 작은 변혁들을 실천해서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유도해야 합니다."
 
비판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등을 지낸 조 교수는 최근 진보적 학술단체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우리 진보 진영이 브라질의 경험을 배우지 못하면 집권도 실패할 것이며, 집권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진보 지식인과 진보 정당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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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석부리 사내가 나타났다. 룰라였다" (레디앙, 2010년 01월 26일 (화) 09:30:29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①] "그는 왜 변혁적 실험을 하지 않았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룰라 정부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해관계 중심의 당면 계급 이익과 생산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근본 계급 이익이 서로 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집권 전략의 덫'이라고 말한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이 책의 머리말과 4부 '평가와 함의'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숨 막히는 순간들이 지나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노동자당과 룰라가 향후 4년 동안 어떤 일을 할지를 내가 본 드라마가 모두 투사해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들을 가슴에 품고 룰라 정부를 지켜보며 오늘까지 브라질을 연구해 왔다.
 
동구권 붕괴 이후 국가사회주의의 파산은 사회주의 모델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좌파들에게는 억울한 누명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의 우데발라와 임노동자 기금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실험은 없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은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의 실험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고, 전 세계 좌파들이 대거 브라질로 모인 것은 그러한 기대감 속에서 룰라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고자 한 것이었다. 거리는 환희의 구호들로 가득 찼고, 나 또한 여느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무리들 속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룰라야, 어디 있니? 나는 너를 보러 여기 왔다!”
 
그렇게 룰라 정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변혁의 실험은 없었다. 룰라가 배신자라고 규탄을 받는 가운데서도 나는 실험의 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에서 검증된 대안, 그것을 찾을 곳은 다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에 거는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덧 나의 물음은 ‘룰라 정부가 어떤 변혁적 실험을 실시했고,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는가?’에서 ‘왜 룰라 정부가 변혁적 실험을 하지 않았는가?’로 바뀌게 되었다. 연구 결과는 노동자당과 룰라를 위한 ‘과학적(?) 변명’의 모습을 띠기도 했다. 변혁적 실험 자체를 현실화할 수 없게 하는 제약들에 대한 연구는 결코 유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값진 실천적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노동계급에 관한 한 브라질은 한국과 공통점이 많았다. 군사독재 시기 어용 노조 패권하에서 민주 노조 운동이 시작되어 대안적 조직체를 형성하면서 노동운동은 이중 구조(dual structure)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노동계급은 민주 노조 운동을 구심점으로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었다. 경제 위기 이후 민주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공세가 전개되면서 민주 노조 운동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정체 혹은 후퇴하는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기를 마감하며 브라질 노동계급은 집권에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온건 신자유주의 세력이 강경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되었을 뿐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는 참담한 수준이다. 첫발을 제대로 내딛기도 전에 분당 사태를 맞았고, 아직도 패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실천보다 파워 게임에 익숙하고, 변혁적 전망보다 정치 방정식에 목숨을 거는 행태는 보수정당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동지도, 당원도, 시민도 모두 수단으로 삼는 천박한 도구주의적 행태다. 파벌 중심주의와 결합해 유능한 인재들조차 완장 부대로 만들거나 조직에서 몰아내는 폐해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변화의 시도들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4부 평가와 함의

"신자유주의와 변혁정권 사이" (레디앙, 2010년 01월 27일 (수) 09:05:15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②] 노동자당 집권과 룰라 정부 성격 
 
1. 브라질 노동계급과 노동자당의 집권
1979년과 1980년에도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하여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확산되는 파업 투쟁의 물결은 반복되었고, ABC 지역 금속노동조합은 공식적 노동조합 조직체의 지원 없이도 전국적 수준의 파업 투쟁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신노동조합운동이 형성되면서 전국적 수준의 지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뻴레고라 불리는 전통적 어용 노동조합 세력과 어용 노조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에 맞서 전국적 수준의 대안적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을 조직했으며, 이를 통해 CUT가 결성되었다. CG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유지를 지지하며 국가‧자본에 대한 호응성(accountability)을 바탕으로 제도성 게임을 추구한 반면, CU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폐기를 주장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호응성에 기초해 전투성 게임을 추구했다. 이렇게 양극화되며 형성된 브라질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들의 전국적 결집체로 CUT를 결성하여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노동자당은 각종 공직 선거들에 참여했으며, 지방의회와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공간에서 노동계급과 하층 서민들을 대변하고, 부패 정치인들 속에서 청렴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차별화하며 지방의회에서부터 지분을 확대해 나갔다. 지방의회에 이어 지자체들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노동자당은 새로운 행정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참여 예산제와 같은 정책 대안들을 중심으로 행정‧통치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 룰라는 1989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한 이래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모두 차점자로 브라질사회민주당의 까르도주 후보에 패배했으나,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사회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노동자당 룰라의 대선 승리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 성과인 동시에 계급 형성을 더욱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룰라 정부의 성격 : 성과와 한계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연속성을 지적하는 주장들의 준거는 경제정책이며, 비판의 핵심은 룰라 정부도 까르도주 정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교하면 <표 10-2>에서와 같이 일정 정도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까르도주 정부와의 연속성은 통화주의 정책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긴축재정 운영, 고금리 유지, 브라질 통화의 고평가였다. 하지만 이러한 통화주의 정책들은 외견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외환 보유고의 다섯 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외채, GDP의 57%에 달하는 정부 부채와 그로 인해 누적되는 재정 적자, 좌파 정부에 의한 인플레이션 유발 우려와 선거 국면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000%의 인플레이션을 10년 정도 경험한 브라질인들의 공포심 등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려하면 룰라 정부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구조적 조건들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하고, 시장 개방을 조절하며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 중심의 중남미 경제통합을 거부하고 메르꼬수르 중심의 지역 경제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등 개입주의 경제‧통상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를 조직하여 사회보장제도와 재정 및 세제 개혁 등 정부의 주요 경제‧사회정책의 수립 방향을 협의하도록 하는 한편, 경제사회개발은행과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산업 발전과 수출 촉진을 위한 적극적 시장 개입과 인프라 구축을 추진했다.
 
룰라 정부의 차별성은 경제정책보다 사회정책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항목들의 예산을 직접 지출 부문을 중심으로 대폭 증액했고,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기초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 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노동 빈곤층의 임금 인상을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주로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부조 정책을 추진했다. 한편, 농촌 지역 무토지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해 토지 수령 가족 수를 확대하되 경작 가능 토지 제공, 농업용수 공급, 기술 및 신용 지원 등 효율적 경작을 위한 지원도 병행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실질적 효과를 수반했다. 사회정책의 성과는 빈곤층의 대거 감축과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통한 실질적 불평등 완화였다.
 
노동자당은 창당 이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을 꾸준히 주창해 왔으며,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이 그 핵심이었다. 룰라 정부가 노동자당의 국민들과의 오랜 약속들 가운데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한 것은 토지개혁밖에 없으며, 그것은 전임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다소 진전되었으나 급진적이라 부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한편, 외채의 경우 지불 중지를 선언하지 않고 재정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모범적으로 변제해 나갔고, 국유화의 경우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전개되던 사유화를 중단했을 뿐 국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처럼 룰라 정부하에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은 거의 추진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변혁적 정책 실천의 부재 현상은 룰라 정부 2기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2기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을 구성하는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PAC)의 내용을 보아도 석유화학 부문과 수력 에너지 부문의 정부 지분을 증대하고, 정유 공장 건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바이오 디젤 공장 및 에탄올 공장 신설 등 에너지산업에 대한 적극적 투자 정책을 추진하지만 소유권 구조의 급진적 전환은 결여되어 있다. 국영 브라질 은행이 파산 직전의 지역 은행 몇 개를 인수한 사례는 있지만 주요 은행의 소유권 구조를 변혁한 사례는 없다.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 정책은 거의 추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룰라 정부의 성격은 까르도주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차별화되고, 노동자당이 지속적으로 주창하던 사회주의 변혁 정권과도 차별화된다. 결국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적 소유권 체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기반 위에서 빈곤 및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소하는 자본제 국가의 한 유형에 불과한 것이다. 즉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복지국가 혹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브라질은 여타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사독재의 개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를 풍미한 포드주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었는데, 룰라 정부는 군사독재와 포드주의 실종으로 후퇴되었던 사회경제적 민주화 과정을 복원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간지식층에서 비정규직으로 (레디앙, 2010년 02월 01일 (월) 09:19:14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③] 3. 룰라, 지지 기반 변화와 권력 재창출 
 
룰라는 2002년 대선과 2006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002년 대선 승리는 까르도주 정부에 대한 평가였고, 2006년 대선 승리는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까르도주 임기 말 시민들은 브라질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을 실업, 빈곤, 치안 순서로 꼽았다. 시민들이 룰라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까르도주 정부의 실패에 대한 응징이었으며, 까르도주와 같은 브라질사민당 후보인 세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브라질사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 제공자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시민들은 룰라에 대해 빈곤 해소 등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고, 2002년 대선 투표 행태는 경제 투표에서 사회 투표로 전환되었으며 기존의 정책 패러다임과 지배 질서에 대한 거부의 표현으로 룰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2002년에 이어 2006년에도 브라질사민당 후보를 거부하고 노동자당의 룰라를 선택했으며, 이는 룰라 정부 1기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룰라 정부 첫 해인 2003년 -0.2%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이래 연평균 4.5% 수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성장률의 부침도 적어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구가해 왔다. 적극적인 사회정책의 성과로 빈곤층도 대거 감축되었고 경제적 불평등도 크게 완화되었다. 시민들의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는 임기 내내 50~70% 수준의 긍정적 평가를 유지했고, 결국 2006년 대선에서도 룰라를 선택하게 되었다.
 
2002년과 2006년 대선에서 룰라는 60~61%의 득표율을 유지하여 득표율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투표 행태와 지지 기반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표 10-4> 참조).

2002년 대선에서 룰라 지지율에 있어 계급 범주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있었지만 계급 위치와 투표 행위 사이의 상응성은 부족했다. 계급 위치가 투표 후보의 이념적 성향과 불일치하는 경향성을 보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문직 프티부르주아로서 이들의 계급적 위치는 특전적 계급 블록에 속하지만 진보적 후보인 룰라를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선택했다. 반면 비등록 임금노동자와 비취업자 같은 비특전적 계급 블록 범주들은 상대적으로 평균 이하 수준의 낮은 룰라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
 
반면, 2006년 대선에서는 계급 위치와 계급 입장 사이의 명확한 상응성이 표현되었다. 전문직 프티부르주아 같은 특전적 범주의 룰라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여 룰라 지지율이 절반에 못 미친 반면, 비등록 임금노동자와 비취업자의 룰라 지지율이 상승하여 평균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높은 룰라 지지율을 보여 주었다. 결국 2006년 대선에서는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을 중심으로 친룰라 블록이 형성되었고 특전적 계급 범주들을 중심으로 반룰라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계급 범주별 계급 위치와 계급 입장 사이의 상응성이 크게 강화되며 2006년 대선에서 진정한 의미의 계급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의 계급적 성격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까르도주 정부 시기 특전적 계급 범주들과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진전되지 않았던 데 반해, 룰라 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완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진전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억제된 반면, 좌파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제어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가 크게 진전된 것이다.
 
이런 역설적 현상은 계급 형성 혹은 주체의 형성 시각에서 설명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폐해로 인해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불만이 증폭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계급의식이 발달하며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의식이 발달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의미의 물질적 기초가 전제되어야 하고, 계급 형성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이런 여건이 좌파 정권인 룰라 정부에 의해 제공되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 가족 지원금 제도 및 적극적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을 통해 비특전적 계급 범주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물질적 혜택을 제공했으며, 그러한 국가권력은 지켜야 할 대상이 되어 비특전적 계급 범주 구성원들 스스로 국가권력과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며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구심점으로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4. 룰라 정부와 사회주의 변혁성 실천의 부재
룰라 정부는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와 높은 지지율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CUT와 노동자당 내 좌파들의 실망과 불만도 그만큼 높았고 상당 부분이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와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높은 지지율은 룰라 정부가 정치적 안정 속에서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소한 데 대한 긍정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반면, 좌파들의 불만은 룰라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틀에 갇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펼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는 룰라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국내외 자본계급을 포함한 지배 블록의 공포심과 전 세계 좌파들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왜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변혁적 실천을 추진하지 않았을까? 룰라와 권력 핵심의 실천 의지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외적 여건과 실천 역량의 제약 때문인가? 후자는 룰라 정부와 권력 핵심의 설명이고, 전자는 좌파들의 비판이다.
 
룰라 정부를 둘러싼 외적‧구조적 여건이 변혁적 실천을 어렵게 했다는 주장은 경험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1998년 말 외채 위기 속에서 까르도주 정부가 IMF와 체결한 협약에 대해 2002년 말 룰라를 포함한 유력 대선 후보들은 모두 협약에 준수할 것을 서명했고, 룰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기존에 작성된 체크리스트에 따라 정기적인 평가가 실시되었다. 브라질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물가와 화폐가치를 안정화할 것, 공공 부채 감축을 위해 공공 부문의 기초 재정 흑자를 GDP 대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유지할 것 등이 체크리스트의 핵심을 이루었다. 실제 룰라 정부는 체크리스트와 정확히 일치하는 통화주의 정책을 집행했다.
 
그러나 IMF와의 협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통화주의 정책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여건 또한 존재했다. 룰라가 취임할 당시 외채 규모는 외환 보유고의 다섯 배를 넘어섰고 연간 수출 총액의 세 배가 넘었다. IMF의 지급 보증 없이는 국가 파산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IMF와의 협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룰라 정부는 통화주의 정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협약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으로 IMF와 서약을 체결했고, 막대한 외채 규모로 인해 IMF 지급보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룰라 정부는 외채 지불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또한, 정부의 공공 부채 역시 GDP의 57% 수준으로서,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공공 부채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정 적자와 공공 부채 속에서 룰라 정부가 은행 및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룰라 정부는 외채 지불 중단도 기간산업 국유화도 실시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선 승리를 위한 선거 연합 전략과 그에 따른 연립정부 구성으로 인해 변혁적 정책들을 입안하기 어렵게 하는 내부 검열의 암묵적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내부 검열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의회 내 의석 과반수 미달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룰라 정부 출범 당시 노동자당은 상원 내 제3당, 하원 내 제1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제1당을 차지하고 있던 하원 내에서조차 노동자당의 의석 점유율은 18%에 불과했다.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은 의회 내 과반수 확보를 위해 군소 좌파 정당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모의 우파 정당들을 포괄하는 정당들과 연대하게 되었다. 변혁적 법안은 연대 정당들의 동의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IMF 협약을 준수할 의무, 막대한 외채 및 공공 부채 규모, 연립정부 및 과반수 의석 확보 문제 등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으로 인해, 정부의 의지 여부에 관계없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역량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 핵심의 변명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반면, 좌파들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의 핵심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으며, 실천 의지만 있다면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노동자당이 룰라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변혁성을 상실했고, 노동자당의 온건화는 창당 이래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정적 분기점은 1994년 대선 패배 이후라고 지적한다.
 
창당 시점에서 노동자당의 주요 조직적 기반은 신노동조합운동의 노동조합들과 도시 주민운동 조직체들이었으며, 여기에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과 진보적 지식인 집단들이 결합하는 양상을 띠었다. 노동자당의 성격은 신노조합운동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그 정체성의 핵심은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이념적 목표를 지닌 노동계급 계급정당이었다.
 
노동자당이 성장함에 따라 당의 성격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표 10-5> 참조). 특히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정책을 관철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요구되었고, 공직자들의 비중과 당에 대한 기여도가 증가하면서 당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되었으며, 그와 함께 실용주의는 당 내에서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각종 선거에 참가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념정당‧계급정당에서 점차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었다. 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당원 구성에 있어 노동계급의 비율이 감소하고 중간계급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당의 지지 기반이 커지면서 지지 기반도 당원 구성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비율 감소와 계급적 이질성의 증대 현상을 겪게 되었다.
 
노동자당의 실용주의가 강화되고 노동계급의 계급성이 약화되는 추세를 더욱 돌이킬 수 없게 하면서 당의 성격 변화를 주도하게 된 계기는 대통령 선거였다. 1989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룰라는 2위로 득표해 결선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고, 결선투표에서 47%를 득표함으로써 비록 패배했지만 룰라의 향후 당선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 1994년 대선 패배 이후 룰라와 노동자당은 대선 승리를 선거 전략‧전술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 결국 노동자당이 지키고 축적해 온 모든 가치에 대해 대선 승리를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게 되면서 노동자당은 선거 정당으로 전환되었고 이념적‧계급적 정체성은 주변화되었다.
 
이러한 실용주의 강화, 노동계급의 계급성 약화, 대중정당화, 선거 정당화의 결과는 노동자당의 온건화였다. 1994년 대선 시기까지 노동자당은 은행 및 광물자원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을 강조하며 사회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했으나, 1994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자당식 사회주의를 민주적 혁명으로 재정의하면서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에 대한 거부에서 민주주의의 급진화로 중심을 옮겨갔다. 1998년 대선 공약에서는 사회주의와 이행의 프로그램들이 빠졌고, 2002년 6월 22일에는 국내외 자본과 보수 진영의 이념 공세에 직면하여 발표한 “브라질인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브라질이 체결한 기존의 국제조약들과 협약들을 존중하며 물가 안정과 재정 흑자 등 경제 안정을 보장했다. 노동자당이 변혁성을 포기했다는 것이 공개서한을 통해 재확인되었을 뿐이며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은 이제 공개적으로 포기된 것이었다.
 
노동자당이 온건화되고 대통령 후보 룰라가 공개서한에서 국제 협약의 존중과 경제 안정을 약속했다고 해서 변혁적 실천 의지가 실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권 시점까지 변혁적 프로그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대안 계획 “Plan B”가 존재했다가 결국 파기되었다는 것은 변혁적 실천 의지가 총체적으로 부재했다고 보기보다는 변혁적 실천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결여되고 소극적 의지에 머물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평가로 판단된다. 이런 소극적 의지에 더해 변혁적 실천을 어렵게 하는 외부의 구조적 여건이 상호작용하면서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룰라는 배반자인가? (레디앙, 2010년 02월 04일 (목) 10:28:16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④] 당면 이익 성과, 근본 변혁 기피 
 
5. 룰라 정부와 노동계급: 계급 이익과 호응성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룰라 정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이익의 내적 이질성을 고려하여 두 유형, 즉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으로 나누어 고찰해야 한다. 물론 룰라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 기대를 모았던 것은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가 실현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였으나,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한계를 보여 주었다.
 
룰라 정부가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사적 소유권 체계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넘어서는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은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룰라 정부 2기의 경제정책은 1기에 비해 시장 질서에 대한 개입의 수준을 다소 높이기는 했지만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초 위에서 추진되었다. 2기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PAC의 경우 항구‧공항‧철로 등 인프라를 강화하는 한편, 4개 정유 공장, 46개 바이오 디젤 공장, 77개 에탄올 공장을 신설하는 등 에너지산업에 대한 정부 투자를 대폭 증대하여 에너지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부문과 수력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 지분을 대폭 증대하고, 파산 위험에 직면한 3개 지역 은행을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은행들은 여전히 사적 자본의 수중에 놓여 있었고,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국유 기업 사유화 정책을 중단했을 뿐 까르도주 정부 시기 사유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한편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저임금층의 임금을 끌어올려 임금격차를 줄이는 한편, 전반적인 실질임금 수준의 상승을 가져왔고,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괄목할 만한 신규 고용 창출을 이루었다. 또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 등 각종 이전소득 지원 제도들을 통해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며 부의 재분배를 실시했고, 폭스바겐 등 사측의 구조 조정 기도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전개하는 사업장들에 대해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정부 대출금 조기 상환 위협을 가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룰라 정부는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 향상과 고용 안정 보장을 위해 노력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룰라 정부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했다는 점에서 친노동계급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의 노동계급적 성격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역학 관계에서도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으로 나타났다. 까르도주 정부는 노사정 협의 기구들을 무력화하거나 폐기했으나, 룰라 정부는 경제‧사회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경제사회발전위원회를 설치하여 노동계급 대표들을 참여토록 했고, 노사정 협의 기구인 노동법 포럼을 설립하여 노동법 개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도록 했으며, 산업부문별 노사정 협의체인 경쟁력 포럼을 구성하여 산업 발전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도록 했다. 이처럼 노사정 협의 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압박하며 노동계급을 주요한 한 축으로 설정한 것은,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자본계급이 시장 권력에 의거하여 일방적으로 지배하던 관행을 중단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적 발언력을 보장하기 위한 친노동계급적 개입이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 운동 과정에서 룰라는 CUT 측이 제시한 ‘일곱 가지 목표’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으며, 룰라 정부 출범 후 CUT는 국책은행의 융자 대출을 노동기본권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기업들로 제한하도록 요청하고, 각종 경제‧산업 정책들의 수립 과정에 개입하며 노동 측 입장을 반영토록 했다.
 
룰라 정부의 노동계급적 성격과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은 자본계급에 비해 노동계급에 대해 호응적이며, 자본계급 이해관계보다는 노동계급 이해관계에 복무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노동계급 계급 이익 복무는 당면 계급 이익에 한정되었을 뿐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은 기피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 시각에서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상반된 평가가 가능하며,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상이한 이념적 입장들을 표현하며 룰라 정부 재임 기간 동안 줄곧 노동계급의 내적 갈등 요인으로 작동했다. 이는 2009년 8월 4~7일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제10차 CUT 총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표 10-6> 참조).
 
CUT 내 이념적 흐름들은 노동자당 내에도 상응하는 이념적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CUT의 집권파 역시 노동자당 내에서도 다수파를 구성하고 있고 신노조 운동에서부터 룰라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룰라와 함께해 온 핵심 세력들이다. CUT 집권파는 아치꿀라상오로 불리며 CUT 총회 대의원의 80%를 점하고 있고, 제2정파 CSD는 10% 정도를 점하고 있으며 AS와 이념적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노동자파(OT, O Trabalho), 좌파통합(AE, Articulação de Esquerda), 마르크스주의 좌파(EM, Esquerda Marxista) 등 좌파 소수파들은 나머지 10% 정도를 구성하며 주로 트로츠키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다수파는 사회주의적 수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점차 사회주의 대신 노동자 중심주의를 표방하며 이념적 경직성 대신 노동자 이해관계 신장을 위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옮겨갔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언급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현 단계의 대안 사회 모델로 설정하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핵심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다수파는 룰라 정부를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자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주체로 설정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좌파 소수파는 명시적으로 사회주의를 대안 사회 모델로 삼고 이념적 원칙에 충실한 흐름들이다. 이들은 당면 계급 이익보다 근본 계급 이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며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대 세력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들은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위에서 노동계급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려는 룰라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처럼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좌파 흐름들의 시각에서 보면 룰라 정부의 변혁적 실천 결여는 대단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룰라 정부 출범 이후 좌파 흐름들의 CUT 탈퇴는 계속되었으며 이들은 CUT로부터 이탈한 다음 각각 별도의 노동조합 총연맹체들을 결성했다. PSTU 측 급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CUT를 탈퇴하여 꼰루따(Con Luta)를 결성했고, PSol 측 온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연대(Intersindical)를 결성했고, 공산당 계열 PCdoB 측은 노동자총연맹(CTB, Central dos Trabalhadores e Trabalhadoras do Brasil)을 결성했다.
 
좌파 소수파들의 핵심적인 요구는 까르도주 시기 사유화된 국유 기업들의 재국유화다. 재국유화 등 변혁적 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룰라가 연립정부를 파기하고 대통령령으로 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회주의를 버리고 CUT와 MST 등 대중운동 조직체들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실패의 결과이므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파와 좌파 소수파들의 대립‧갈등은 계급 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 계급 이익들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다수파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좌파 소수파들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가지 계급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고, 노동계급 관점에서 투사된 두 가지 전망이 충돌하는 것이며,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지니는 두 개의 계급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노동계급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딜레마가 CUT 내 이념적 흐름들 사이의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가 CUT와 노동자당을 주도해 옴으로써 노동계급 내 당면 계급 이익 중심성을 재생산하게 되었으며, 계급 형성 과정에 있는 브라질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mode of existence)에서 변혁적‧혁명적 계급 양식이 아닌 개혁적 계급 양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브라질 노동계급은 CUT의 주도하에 계급 형성에 있어 큰 진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혁명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다양한 정책들의 실천을 통해 노동계급의 이념적 결집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 있어 조직적 형성보다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더 큰 기여를 했으며,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개혁적 양식의 정체성이 주도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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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정당 집권전략의 덫 (레디앙, 2010년 02월 09일 (화) 09:52:27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⑤] 재정위기와 노조의 경제주의 
 
1) 대중정당 집권 전략의 덫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는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 전략을 채택하고 1994년 대선 패배 이후부터는 집권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당이 지켜 온 정체성과 가치들이 주변화될 수 있게 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는 IMF와의 협약 준수 서약서에 서명했고, 국내외 자본들의 공세와 주식시장 및 통화의 극심한 불안정 상황을 맞이하여 브라질이 체결한 국제 협약들을 존중하고, 물가와 통화의 안정, 외채와 공공 부채 문제 해결에 대한 약속을 천명하기도 했다.
 
노동자당과 룰라의 집권 전략에 따른 일련의 조치들과 약속들은 룰라의 대통령 취임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들을 제약하는 덫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러한 ‘집권 전략의 덫’ 효과는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좌파 정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중정당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것은 집권을 위한 공약들을 집권 후 파기할 경우 대중정당으로서 신뢰도를 상실하게 되어 국민적 지지를 유지‧동원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당과 룰라는 집권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경작 가능 토지의 적극적 배분, 빈곤층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통한 생활수준 보장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해로 유발된 사회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채와 공공 부채를 삭감하고 물가 인상을 억제하고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중주의적 사회정책과 긴축재정 통화주의 정책은 상호 모순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전자를 포기할 경우 까르도주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신자유주의 정부가 되는 것이고 후자를 포기할 경우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수반하는 1930~40년대의 대중주의 정부를 재현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딜레마는 ‘재정적 위기’의 딜레마로서 선진 자본주의 복지국가들에 일반화된 현상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복지 증대 요구에 부응하여 사회적 지출을 증대하면 재정 적자가 커지게 되고, 국가 재원 확대를 위해 조세수입을 증대하고자 하면 시민들의 불만이나 자본축적에 대한 제약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복지국가들은 만성적 재정 적자에 빠지거나 복지 지출을 삭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딜레마는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이라는 자본제 국가에 내재된 보편적 딜레마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는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여 권력을 창출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요구들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집행해야 하는 정당성의 과제를 지니는 한편, 공공 재원을 확보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윤 창출과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축적 과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본제 국가에 일반화된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이 복지국가의 경우 사회적 지출과 재정 안정의 딜레마로 표현된 것이며, 룰라 정부의 경우 그러한 자본제 국가 일반의 모순과 복지국가의 딜레마가 중첩적으로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룰라 정부의 경우 대중정당화와 그에 기초한 집권 전략으로 인해 그러한 모순과 딜레마들이 선거 공약 형태로 확정되면서 집권 이후 정책적 제약의 덫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좌파 정권의 경우 자본제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모순과 딜레마들의 제약이 더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은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에서 확인될 수 있다. 좌파 정당의 집권 기회는 우파 정부에 의해 사회구조적 문제점들이 크게 악화되고 우파적 대안들이 모두 고갈된 뒤에 주어지는 것이다. 시민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의 유지를 희망하고 있으며, 시스템의 안정적 조정이 불가능할 때 비로소 변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좌파적 대안들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룰라 정부가 출범할 때의 경제사회적 여건은 외환 보유고 대비 외채의 규모, 공공 부채와 재정 적자 누적, 무역수지 악화와 산업 기반 훼손과 같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으며, 열악한 구조적 조건은 시민들로 하여금 노동자당과 룰라를 선택하게 한 원인이 된 동시에 룰라 정부의 정책적 대안들을 크게 제약했다.
 
결국, 룰라 정부는 집권 전략에 기초한 시민들과의 약속 및 열악한 구조적 조건으로 인해 정책적 대안을 선택함에 있어 극히 제한된 수준의 자율성밖에 지니지 못했으며, 그 과정에서 변혁적 정책들이 이중적으로 배제 압박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자당과 룰라에게 집권 프로젝트만 있었고 사회 프로젝트 즉 통치 프로젝트는 없었다는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 자본제 국가의 모순과 함께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대한 집권 프로젝트의 제약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자본제 국가 일반의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 및 복지국가의 딜레마는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천적 여지도 있음을 브라질의 경험은 보여 주고 있다. 즉, 수단은 목적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타당하듯이 집권 프로젝트는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기초하여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계급 이익 갈등과 변혁의 실종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서로 대립‧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계급의 이익 유형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당과 룰라의 대선 승리와 높은 지지율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과 시민들의 물질적 이해관계 및 사회적 요구들 사이의 수렴을 나타낸다. 그것은 노동자당의 집권 전략과 룰라의 선거공약으로 구체화되었다. 룰라 정부는 빈곤 퇴치와 소득 재분배를 위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집행했지만 은행 및 사유화 기업들에 대한 국유화는 추진하지 않았다. 이러한 당면 계급 이익의 적극적 추진과 근본 계급 이익의 포기 행위는 대중적 요구와 선거공약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는 것인 동시에 노동계급과 그 대행 조직들의 선택 또한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이익들 사이의 모순 관계 속에서 CUT와 노동자당의 다수파는 모두 당면 계급 이익을 선택했다. 이러한 선택은 브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의 노동계급 대행 조직들에서 발견된다.
 
노동계급 정당은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화하며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집권 전략을 수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여타 계급들을 포괄하는 계급 연합 전략을 추구하게 되고,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들을 중심으로 선거공약을 조직하게 된다. 그렇게 집권한 다음 선거공약들을 중심으로 정책들을 수립하여 집행하게 되는데, 룰라 정부의 경우 고용‧빈곤‧치안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핵심을 구성했으며 은행과 사유화 기업 국유화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노동조합 또한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호응하게 되며 근본 계급 이익 대신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경제주의(union economism)이며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자들에 의해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노동조합이 경제주의에 매몰되는 것을 벗어나서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가능성으로는 두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첫째, 노동자들의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은 자연발생적 현상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 호응해야 하는 노동조합들은 경제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노동조합 경제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정당의 인위적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 레닌과 루카치 같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이다.
 
둘째, 네오마르크스주의 현금 고리 이론(cash nexus theory)에 따르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수렴할 수 있다. 그러한 수렴 현상은 예외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 없이는 당면 계급 이익을 증진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근본 계급 이익을 수용하여 변혁적 실천에 헌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 이런 두 가지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자당은 이념적 전위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서 CUT의 이념적 흐름들의 분포와 유사한 구성을 지니고 있어 CUT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근본 계급 이익을 확산시킬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한, 경제 위기 시기라고 해도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의 수렴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성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 시민들은 노동자당과 룰라를 선택했으나, 이는 근본 계급 이익을 통한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근본 계급 이익의 개입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의 대안이었다. 노동계급 정당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경제 위기 담론을 발전시켜 변혁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기보다 위기의 심화를 부정하며 경제 사회적 안정과 현상 유지를 보장한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계급정당이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개입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수렴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계급정당이 대중정당 집권 전략을 기획하여 집권을 성사시킨 점을 고려하면 대중정당 집권 전략의 덫에 걸린 좌파 정권을 구출하여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운동이며, 브라질의 경우 CUT였다.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해 CUT에게 요구되었던 역할은 룰라 정부에 대해서는 변혁 정책의 집행을 압박하고 노동계급 구성원들에게는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CUT는 두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CUT는 룰라 정부에 대해 변혁 정책의 수립‧집행을 압박할 역량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CUT는 노동자당을 통해 정권 창출에 기여했지만, 힘의 역학 관계는 이미 ‘룰라 정부>노동자당>CUT’로 역전되어 있었다. 변혁적 정책은 고사하고 연금제도 개혁과 같은 당면 계급 이익 관련 정책들의 수립 과정에서도 CUT의 입장은 관철되지 못하는 정도였다.
 
둘째, CUT는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노조원들의 헌신과 단위 노조의 경제주의에 개입하여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CUT가 룰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그러한 실천은 노조원들과 룰라 정부를 괴리시킬 뿐이기 때문이었다.
 
당면 계급 이익 중심의 주체 형성에 비해 근본 계급 이익 중심의 주체 형성이 어렵다는 것은 브라질의 사례에서 잘 확인할 수 있었다. 당면 계급 이익은 구체적인 물적 자원의 문제로서 수혜자 중심의 방어동맹 형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과 가족 지원 제도를 중심으로 하층 시민들의 지지가 조직화되어 노동자당과 룰라의 정권 재창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공세에 맞선 복지 동맹의 형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반면, 근본 계급 이익은 권력 자원의 문제로서 수혜자가 불분명하며,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요구에 노동조합이 호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실천에 노동자 대중이 호응하는 것으로서 노동자 대중의 수동성과 소극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체 형성의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하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헌신성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 변혁의 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은행들과 기간산업의 전면적 국유화 조치를 취할 수 없더라도 정부는 개별적 실험 공간들을 제공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가 농지개혁을 위해 추진했던 정책들을 원용할 수 있다. 소유주가 재정적 위기 상황에서 경영을 포기하거나, 기업과 생산 설비가 유휴 상태로 방치되어 있거나, 소유주가 노동기본권을 유린하거나 부정부패 등 심각한 수준의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정부는 해당 기업과 생산 설비의 사적 소유권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산관계의 변혁적 실천에 대한 참여를 통해 주관적 의미 부여 기준과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변혁과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변혁적 요구를 동원ㆍ조직하여 제도성 게임과 전투성 게임을 병행하며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성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로 하여금 변혁 정책을 확대‧집행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득실 (레디앙, 2010년 02월 11일 (목) 10:23:52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⑤] 비개혁주의적 개혁의 가능성 남아 
 
3) 노동계급 형성과 계급정당 집권의 득실
노동계급 계급 형성의 성과로서 계급정당의 집권이 이루어지지만, 계급정당의 집권은 다시 계급 형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룰라 정부가 노동계급 형성의 수준에 미친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동조합 가입 및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최소화되었고, 룰라 정부의 노동자 호응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노사정 협의 기구 및 정부 기구들을 통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정서적 보상도 받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조직률 하락이 멈추고 CUT의 조직력이 증대됨으로써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이 진전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또한 룰라 정부는 노동계급의 조직적ㆍ정서적 구심점을 구성하며 CUT를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내적 결속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노동계급 정권이 출범하게 되면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기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계급 형성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계급 형성의 구심점으로서 노동계급 정권이 노동계급의 계급 존재 양식과 계급 형성의 유형을 결정함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동계급 정당은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을 잃지 않더라도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화하며 집권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된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계급정당은 양자 사이의 균형과 조합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대중정당 집권 전략과 친화성이 높은 당면 계급 이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게 되며 근본 계급 이익은 주변화된다. 그렇게 집권한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충실한 정책들을 수립ㆍ집행했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당면 계급 이익에 무게 중심을 두며 담론과 정책들을 생산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체성 형성‧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보다는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이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주도했다.
 
노동계급 이익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양면을 지니고 있듯이 노동계급과 CUT도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CUT가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소수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겪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내부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될수록 좌파 소수파들은 룰라 정부와 CUT 지도부의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극렬하게 비판하고 CUT 탈퇴도 마다하지 않게 되며, 실제 좌파들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이탈했다. 도를 더해 가는 반대파의 비판과 반발에 맞서 CUT 지도부는 룰라 정부와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은 이행을 위한 도구적ㆍ과도기적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존재 양식은 더욱더 보강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에 기초한 개혁은 변혁적 사회주의 정권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개혁적 실천은 개혁주의(reformism)에 매몰될 수도 있고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행을 지향한 실천이 될 수도 있다. 개혁주의는 개혁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개혁을 절대시하며, 개혁에 배타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반면,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개혁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보고, 개혁을 체제 이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며,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허물며 체제 이행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접근법이다.
 
룰라 정부와 계급 이익의 실천을 둘러싼 CUT 내 갈등 과정에서 다수파가 제시한 집합적 프레임웍(collective framework)은 개혁주의의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 2010년 대선을 결정적 국면으로 파악하여 신자유주의 세력과 노동자당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대중정당 집권 전략을 재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모델들 사이의 각축은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제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노동자당이 승리하더라도 당면 계급 이익을 넘어서는 근본 계급 이익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룰라 정부의 정체성은 반(反)신자유주의로 규정되어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거부가 변혁적 실천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은 룰라 정부 1기뿐만 아니라 2기에도 확인된 바 있다.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CUT가 룰라 정부의 집합적 프레임웍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에 배타적으로 헌신하고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CUT는 룰라 정부나 노동자당과는 다른 집합적 프레임웍을 견지하며 룰라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변혁적 실천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러한 실천의 출발점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CUT 내 좌파 소수파들이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CUT에 남아 있는 주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2006년 총회에서 선출되어 2009년 총회에서 재선된 CUT 지도부가 이전 집행부들에 비해 룰라 정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CUT가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것은 CUT 내 동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4) 변혁 시나리오와 전략적 선택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CUT와 노동자당 안팎의 좌파들이 룰라 정부에 요구하는 변혁적 정책의 핵심은 은행과 기간산업의 국유화로서, 그 출발점은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사유화된 기업들이다. 좌파들의 변혁 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이용하여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에 따라 임시 조치(medida provisória)로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 정책들을 집행한 다음 CUT와 MST 등 진보적 대중조직체들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함으로써 의회가 3개월 이내에 임시 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부의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변혁 시나리오 자체의 타당성은 검증된 바 없다. 룰라 정부가 Plan B를 파기한 것은 단순히 룰라 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라 룰라와 노동자당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정치경제적 안정의 중요성 및 재정적‧경제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결과라는 점을 변혁 시나리오는 간과하고 있다. 여기에 변혁 시나리오의 반사실적 실험(counterfactual experiment)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첫째, 변혁 시나리오는 룰라 정부의 공약과 재정적ㆍ경제적 제약 조건들을 간과하고 있다. 룰라 정부의 정책적 선택지들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핵심적 요인들은 막대한 외채와 공공 부채의 규모였다.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는 복지국가의 재정 위기 문제가 룰라 정부가 출범할 당시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주어진 재정적ㆍ경제적 조건 속에서 룰라 정부가 재국유화 등 변혁 정책들을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 대안은 재정 적자를 무릅쓰면서 변혁 정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재정 적자 누적에 따른 공공 부채 증대, 브라질 통화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물가 폭등이 즉각적으로 수반되며 극심한 경제적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공공 부채의 증대를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복지 서비스 등 사회적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공공 부채의 증대는 억제할 수 있으나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출은 모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공약화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가지 대안 모두 시민들의 반발과 불만을 야기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사회적 지출 삭감은 복지 서비스 수혜자들에게 상당한 박탈감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에 대국민 약속 위반에 대한 분노와 결합되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적인 수준까지 비등할 수 있다.
 
둘째, 변혁 시나리오는 시민들의 반정부 저항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국내외 언론, 초국적 자본들, IMF와 세계은행 등 초국적 기구들이 적극적 공세를 펼치며 정치ㆍ경제적 불안정을 조장하면, 사회적 지출 삭감과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증폭시켜 브라질 경제에 2002년 6월 검은 목요일보다 훨씬 더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또한 국유화 등의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내외 자본가들이 자본 유출과 자본 파업을 통한 대응 수준을 넘어 자본계급의 집합적 동원도 추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임노동자 기금 제도의 법제화 추진에 반발한 1983년 스웨덴 자본계급의 시위 행위나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법제화와 차베스 정부의 변혁 정책에 맞선 2001~03년 베네수엘라 자본계급의 직장폐쇄와 총파업 행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세력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하는 행위는 의회주의를 거부하는 행위로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헌신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며, 정치적 안정은 의회주의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셋째, 변혁 시나리오는 변혁 주체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과 동원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룰라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은 룰라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룰라의 빈곤‧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 사회정책에 대한 지지의 성격이 강하다. 룰라 정부하에서 복지 정책의 수혜자들을 중심으로 계급 투표 성향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룰라의 지지 기반 확대가 당면 계급 이익 실천의 결과이며, 따라서 복지 서비스의 철회는 룰라에 대한 지지 철회를 수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룰라 정부가 사회정책의 희생 위에서 국유화 등 변혁 정책을 추진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기보다 룰라 정부로부터 이탈하여 반룰라 진영에 합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과 변혁 정책에 대한 지지 또한 보장된 것이 아니다. 근본 계급 이익은 당면 계급 이익과 함께 노동계급 이익의 한 축을 구성할 뿐이며, 양자는 갈등ㆍ모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물질적 생존을 위한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런 자연발생적 경향성은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와 룰라 정부의 소득재분배적 사회정책에 의해 재생산되어 왔고, 룰라 정부와 CUT의 집합적 프레임웍에 의해 상당 정도 내면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대다수는 당면 계급 이익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에서 당면 계급 이익의 희생 위에서 추진되는 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고 체제 이행을 추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변혁 시나리오의 전제는 경험적 근거가 취약하다.
 
변혁 시나리오가 경험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변혁적 계급 형성의 전제 위에서 ‘동원과 결과의 정치’(politics of mobilization and outcome)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하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크게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변혁적ㆍ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다. 개혁적 계급 존재 양식에서 변혁적 계급 존재 양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계급 형성의 구심점을 이루는 룰라 정부의 정책적 실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핵심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통해 변혁의 제도적 기초를 이루는 동시에 변혁적 계급 형성을 통한 이행 주체의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개혁적 계급 형성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과 일반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동원을 통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력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과 함께 ‘설득과 영향의 정치’(politics of persuasion and influence)를 통해 변혁적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설득의 정치와 함께 동원의 정치를 병행하고, 영향의 정치와 함께 결과의 정치를 병행하여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적 합리성이 요구된다.
 
끝없는 설득과 여론의 정치 필요 (레디앙, 2010년 02월 18일 (목)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⑥] 5)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함의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 과정은 한국 노동계급과 공통점이 많다. 양국 모두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주도하는 민주 노조 운동이, 군사독재 시기 국가와 자본의 비호 아래 어용 노조 조직체가 패권을 행사하던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 대안적 노동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가 형성되었고 조직 노동의 분열 속에서 민주 노조 운동이 주도하여 계급정당을 조직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를 추진했다. 군사독재 시기가 끝나고 민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 발발한 경제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위기 타개책으로 집행되었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정권 창출 과정의 정당성을 지닌 민주 정부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사회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저항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별성 또한 작지 않다. 신자유주의 시기 이후 브라질에서는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했지만 한국에서는 보수 우파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했다. 브라질은 노동자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계급 정당 후보는 대선에서 2.3%를 득표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 정당이 분당 과정을 거치며 더욱 왜소해졌다. 국가권력 장악을 둘러싼 각축전은 브라질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 반신자유주의 노동계급 정당이 경쟁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정치적 보수주의 경향을 지닌 강경 신자유주의 세력과 정치적 자유주의 경향을 지닌 온건 신자유주의 세력이 각축하고 있으며 노동계급 정당들은 주변화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과 브라질의 노동계급이 유사한 구조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의 성과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경험은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해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자동적으로 계급 투표로 구현되어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길을 터주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지만,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은 브라질의 경험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진전되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 증대되는 한편, 노동조합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내적 결속력이 약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추진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상대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쉬워졌고, 시민들이 시장 지배 질서를 내면화하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시민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진전될 수 없었고, 계급 형성의 구심점이 약화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시민들의 불만을 계급 투표로 전환시키기 어려웠다.
 
브라질에서도 계급 투표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좌파 정부 집권의 성과로써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 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이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것이 요구된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친시장 세력인 정치적 보수주의 기득권 세력에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결합하면서 거대한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형성되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며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주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저항하는 민주 노조 운동 세력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더욱 어렵게 했다.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은 시민들의 불만과 반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조직화하면서 반신자유주의와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의 정치가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 예산제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통치 모델을 만들어 통치 능력을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룰라 정부의 경험은 잘 보여 준다.
 
시민들이 노동계급 정당 혹은 좌파 정당을 선택할 때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 대안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 조건이 악화된 뒤다. 즉, 악화된 구조적 조건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만큼 집권 후 수립ㆍ집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의 범위도 상당 정도 제한되는 것이다. 대중적 요구와 재정 건전성 과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복지국가의 문제점들이 좌파 정권 출범 시에는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제약을 만나게 된다. 사유재산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경제적 질서와 안정성의 기초를 이루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대적 원칙들이다.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동원의 정치를 통해 은행 및 기간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는 변혁 시나리오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룰라 정부의 경험이 확인해 준 것은 좌파 정권이 변혁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이 진전되어야 하며, 계급 존재 양식을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단순한 집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ㆍ통치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집권 전략을 규정하고, 집권 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변혁적 정부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함으로써 제도 변화의 축적을 통해 체제 이행의 기초를 마련하는 한편 이행 주체의 형성도 진전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 정부가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적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좌파 정부의 변혁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법 제도 및 재정 자원의 제약과 국민 여론의 설득 문제는 국유화를 어렵게 하지만 사유화는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까르도주 정부와 룰라 정부가 잘 보여 주었다. 사유재산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고 의회정치는 의석의 게임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유화된 기업들을 재사유화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연대 세력들의 동원만으로 재사유화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여론을 향한 설득과 영향의 정치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브라질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관되게 저항했으나 일반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조건의 전반적 악화라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전략과 결과에 기초한 반면, 시민들의 지지는 앞선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체의 경험과 평가 때문은 아니었다. 따라서 시민들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부여한 정당성은 경제 안정화 정책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전이된 것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구체적 효과를 경험하고, 그것이 경제 위기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은 지지를 철회했다. (18쪽)
○ 브라질 노동운동은 군사독재 시기부터 전투성 게임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성장했으나, 민주화와 더불어 참여 공간이 확장되면서 부문 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전투성 게임 일변도의 전략에서 후퇴하여 제도성 게임을 병행하는 전략적 행위자로 변모했다. 까르도주 정권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반노동자성을 더욱 강화하고 노동조합을 배제함에 따라, 제도성 게임의 여지가 사라지게 되었으나, 전투성 게임 또한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19쪽)
* 제도성 게임(institution game)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제도화된 장치들을 이용하는 전략을 의미하며, 전투성 게임(militancy game)은 제도화된 장치들이 없는 상황에서, 혹은 있더라도 제도화된 장치들을 이용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자본가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는 전략이다. 노동조합이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국가와 자본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온건한 것들인 경우에는 제도성 게임을 택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전투성 게임을 선택한다. 이런 전략의 차이는 노동조합의 내적 역학에도 영향을 준다.
 
1. 노동운동의 역사적 변천과 이중 구조의 형성
○ 브라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총파업으로 기록되는 1989년 3월의 총파업은 당시 시 정부들을 장악하고 있던 노동자당 출신의 시장들이 버스 운행의 정지를 명령하거나 파업 노동자들에 합류하는 등 노동자당의 성장에 의존한 바도 컸다. (59쪽)
○ 전투성 게임의 지속과 적극적 정치 참여에 대한 CUT의 의지가 확고해진 것은 1978~80년 파업을 통해서다. 룰라의 설명에 따르면 “압력이 없으면 자본가들은 우리와 협상하지 않을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기계가 멎자 그들은 항복했다.” “나는 1977년까지는 비정치적인 지도자였다. 파업을 통해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두 현상의 관련은 ……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새로운 임금정책을 펼쳐 노동계급의 전취물을 빼앗아 갈 수단이 있는 한, 10%의 임금 인상을 얻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60쪽)
 
2.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삶의 조건
○ 브라질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높은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제외하면 까르도주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은 거시 경제지표들에서 전반적인 실패로 나타났다.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율은 향상되었으나 투자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헤아우 고평가 환율 정책에 따른 수출의 어려움, 시장 개방에 따른 수입 증대, 고이자율에 따른 자금 압박으로 인해 국내 업체들은 투자에 소극적이었으며, 외국자본 유입은 크게 증가했으나 초국적 기업들은 국내 중소업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대신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기업의 부가가치는 증대되기 어려웠다. 이처럼 낮은 경제성장률과 무역 적자의 증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경제적 실패를 보여주고 있으며,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억제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달러에 긴박된 헤아우라는 새로운 통합 체제의 도입이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외의 주요 요인들로 꼽을 수 있는 통화 억제 정책, 높은 이자율, 헤어우 고평가 환율 정책 등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패키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95쪽)
 
3. 신자유주의 시기 노동운동의 대응 전략
○ 전투성 게임의 승패는 노동조합의 동원 역량에 의해 좌우되며, 이를 위해서는 일반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높은 호응성, 노동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노동조합의 체계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CUT는 노동조합의 지도부 중심 관료주의적 지배를 배격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공장위원회와 산업 안전 요원(CIPA)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생산 현장에서 노동법규 및 단체협약 조항들이 준수되는지를 감시하며, 생산과정의 변화와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인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동시에 미래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특히 공장위원회의 경우 노동조합과 역할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CUT 노동조합이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러한 여지를 사전에 방지했으며, ABC 지역에서 특히 CUT 노동조합이 강한 곳에서 공장위원회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는 점은 이러한 CUT 전략이 유효했음을 반영한다. (104-05쪽)
○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당면 계급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되도록 방치하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관한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11쪽)
○ SMABC와 아치꿀라상오가 주도한 CUT 주류 세력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새로운 전략으로 작업장에 국한된 쟁점을 넘어서서 사회문제들을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진보 없이 임금ㆍ고용 등 작업장에서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노동조합은 빈곤ㆍ보건ㆍ주택ㆍ교통ㆍ교육ㆍ소득분배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91년 CUT 4차 총회 결의문에서 좀 더 체계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포괄적인 시각은 현 CUT 위원장인 주아우 펠리시오(João Felício)가 조직노동자들에만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자유무역협정, 외채 문제, 토지개혁, 기타 고용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개입하는 노조 운동을 지지하며, 매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할 필요”를 강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CUT의 기본 입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관련된 새로운 전략의 입장은 파업뿐만 아니라 노사정 위원회 등 다양한 개입 수단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노동조합이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것을 요청받고 있으며, 이는 노동운동의 환경적 여건이 변했고, 그에 따라 전투성 일변도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요인은 경제적 여건과 경제 발전 모델의 변화다. 둘째,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 강화와 노동자당의 성장이다. 셋째 요인은 민주화다. 민주화 시기에는 국가ㆍ자본ㆍ노동 모두에게 일방적 지배와 무조건적 저항과 같은 과거의 행위 양식이 아닌 참여와 협의라는 새로운 행위 양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민주화 시기에 노동조합의 무조건적 저항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지지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113-115쪽)
O CUT는 총파업 투쟁이 어려워지자 총파업 대신 동원이 가능한 부분에 제한된 파업 투쟁과 여타 사회운동 단체들의 대중 시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후퇴했다. 1996년과 2001년에는 노동법 개악과 노동 유연화 기도에 맞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전국 수준의 대중 연대 투쟁을 전개했으며, 총파업이라는 표현 대신 ‘전국적 대투쟁의 날’로 표현했다. 이러한 연대 투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사회운동 세력을 총망라해 조직한 투쟁 전선 때문이었다. (129쪽)
○ 까르도주 정권하에서 노동조합의 강력한 전투성 게임을 제약한 주요 요인들로는 민주화와 노조의 사회적 책임성 증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 노동계급 내 이질성 증대로 인한 주체 역량 약화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의 정당성은 강화되었고,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노사정 각각에 기대되는 역할 자체도 변했다. … 노동조합과 노동자당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이제 이들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통치 역량을 보여 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단순한 반대 투쟁은 이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성에 반하는 것으로 상당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었다.
둘째, 까르도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 정부의 부패와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까르도주가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사유화 계획으로 선거 유세를 펼쳤다는 점에서 까르도주의 당선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야기되는 고용 문제는 전투성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 세계화로 인한 경쟁의 심화와 경제 위기 속에서 실업률이 상승함으로써 1990년대 들어 고용 문제는 노동자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고용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임금 상승과 같은 잉여가치의 배분 문제와는 달리 고용 문제는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율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파업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를 막을 수는 있어도 기업의 재정 위기에 따른 파산과 정리 해고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고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산업 정책과 경영권에 개입해야 하는데, 이는 1991~93년의 부문 협의회 활동이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넷째, 노동계급의 내적 이질성과 노동조합의 내적 분열은 노동조합의 동원 역량을 약화시켰다. 정규직 비중이 높은 공공 부문의 사유화와 제조업의 위축, 정규직 비중이 낮은 서비스 부문의 팽창, 전 부문에 걸친 비정규직화 현상은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낮추어 1989년 32.8%에 달했던 비농업 부문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년 뒤에는 21.0%로 크게 낮아졌다. … 노동계급 내 이질성으로 인해 노동조합들의 연대 투쟁이나 산업 단위의 투쟁을 조직하기가 어려워졌으며, 해고의 위험이 높아지고 대안적 취업 기회가 없는 여건에서 파업 투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 의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135-139쪽)
 
제2부 자동차 산업과 노사 관계
4. 자동차 산업 구조의 재편과 이중 구조의 재생산
5. ABC 지역 자동차 산업의 위축과 산업 활성화 시도

 

○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 분석
첫째, 막대한 정부 부채와 그에 따른 긴축재정 정책은 사회정책을 통한 불평등 해소에 상당한 제약을 주었으나,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예산을 크게 증대함으로써 사회정책을 통한 불평등 개선 의지를 실천했다.
둘째, 불평등 해소 전략은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었고, 시민들로부터 빈곤 문제 해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으로부터 수혜를 받은 주요 집단은 비공식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무토지 농민과 빈민층이었다. 이처럼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노동계급 정체성을 유지하되 좀 더 구체적으로 노동계급 내 비특전적 부분을 사회정책의 전략적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이런 전통적 지지 기반과 사회정책 수혜집단의 불일치 현상은 노동자당 안팎의 다양한 갈등과 저항을 유발할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셋째, 룰라 정부는 공적 부문 퇴직자의 연금 수령액을 사적 부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연금 수령액 상한액 상한선을 낮추는 연금제도 개혁을 실시하여 노동자당 의원들과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서 거센 저항을 받았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막대한 규모의 정부 부채와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절대다수는 연금제도 개혁에 동의했으며 CUT도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을 수용했다. (238-39쪽)
 
6. 노동자당의 집권과 계급적 기초
○ 노동계급 정당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보호ㆍ신장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실천하며,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주요 구성원인 동시에 지지 기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동계급 정당과 노동계급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우며, 이것이 바로 노동계급 정당의 딜레마라는 것이다(Przeworski, 1980; 1985; Esping-Andersen, 1990; 1991; Piven, 1991).
노동계급 정당 딜레마론에 따르면, 노동계급 정당이 창설되면 세 단계의 딜레마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 딜레마는 제도 정치에 참여할 것인가 여부, 둘째는 순수 계급정당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계급 연합을 통한 대중정당으로 전환할 것인지 여부, 셋째는 개혁 혹은 혁명 사이의 선택이다. 각 단계에서 노동계급 정당은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단계마다 직면하는 두 선택지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반면, 두 선택지들을 동시에 선택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딜레마인 것이다. (244쪽)
노동계급 정당이 결성되어 제일 처음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는 선거제도를 포함한 제도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제도에 참여하게 되면 자본계급 지배를 재생산하는 국가기구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법적으로 허용된 제도적 경로를 통해서만 활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 구성원들은 변혁 운동에 대한 적극적 참여 대신 대의 기구 구성을 위한 투표 행위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사회혁명의 목표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의 기구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없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없게 되는 반면, 선거에 참여하면 선거를 통해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선동하는 한편 노동자 대중의 의식과 조직력을 평가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 시대를 위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 정당은 선거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계급 정당이 선거제도에 참여하기로 선택하고 나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선거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당면 목표가 되면서 두 번째 딜레마를 맞게 된다. 노동계급이 전체 계급 구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므로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지지만으로는 선거전에서 승리할 수 없고,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 계급 구성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타 계급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노동계급 정당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할 수는 없으며, 타 계급의 이해관계도 대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다소 희생될 수 있다. 노동계급 정당이 선거제도에 참여하기로 선택한 이상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순수한 노동계급의 계급정당으로 남을 수 없고, 노동계급과 타 계급들을 포함한 계급 연합 형태의 대중정당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 연합 정당을 선택하고 나면, 노동계급 정당은 개혁과 혁명 사이에서 세 번째 딜레마를 맞는다. 노동계급은 사회혁명을 위해 계급정당을 구성했지만,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계급 연합에 참여한 여타 계급들의 이해관계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계급만을 위한 사회혁명을 선택할 수 없다. 설혹, 노동계급 정당이 사회혁명의 경로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계급 정당은 개혁의 경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 번째 단계의 딜레마에서 노동계급 정당이 순수 계급 정당은 노동계급과 계급 연합한 파트너 계급의 이해관계도 수렴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대중정당으로의 전환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계급 정당에 대해 지녀 왔던 충성심뿐만 아니라 계급 정체성과 계급의식까지도 약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노동계급 정당이 계급 간 이해관계의 대립을 강조하기보다 대중정당으로서 상이한 계급들 간의 공존 가능성과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사회적 통합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244-246쪽)
○ 노동자당의 성장은 집권 지자체들을 통해 참여예산제, 취학 지원금, 인민은행 등 소외 세력들의 참여와 빈곤ㆍ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한 독자적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행정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Samuels, 2004; Meneguello, 2002; Guidry, 2003; 오삼교, 2004).
노동자당은 1989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46%를 득표하면서 미래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노동계급을 넘어 지지 기반의 확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동자당의 전략적 선택으로 노동계급의 조직화에 비해 전문적 정책 생산 역량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당원 및 당 지도부 구성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노동자당 출신 주지사, 상하원 의원, 전국 지도부 자리들은 대학교수ㆍ의사ㆍ은행원 등 창당 시기 주역이었던 노동계급과는 다른 중간계급 구성원들로 채워졌고, 당내 중간 간부층에서도 중간계급이 과다 대표되었다. 노동자당의 기초를 이루는 노동조합 총연맹 CUT의 내부 구성도 금속 산업 생산직 노동자의 중심성이 약화되고, 은행원, 교사, 사회복지 및 기타 공공 부문 노동자 등 화이트칼라 출신들의 비중이 높아짐으로써 중간계급의 비중이 강화되는 데 한 몫을 했다.
1998년 대선 패배 직후 룰라와 노동자당 핵심은 집권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작업들을 수행하게 되었다. 비당원 지식인들도 포용하여 조직한 시민연구소를 중심으로 대선 전략 기획과 함께 정책 개발 기능을 수행하게 한 것도 이런 계기에서였다. 이때부터 노동자당 자체도 선거 승리를 위한 캠페인 기구로서 미국식 기업형 정당의 성격을 강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자당은 점차 사회주의적 변혁보다 정치적ㆍ경제적 안정을 강조하게 되었고, 노동계급 정당의 성격보다는 중간계급 친화적인 대중정당의 성격을 강화했다. (253-54쪽)
○ 등록 임금노동자가 비등록 임금노동자보다 룰라 지지율이 높은 것은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기업주와의 동일시 정도가 낮고,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으며, CUT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계급 투표가 여전히 유의미한 투표 행태로 남아 있는 것은 노동자당이 계급 연합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어 노동계급적 성격이 약화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타 정당들, 특히 세하의 사민당에 비해 노동계급적 성격이 더 강하며 저소득ㆍ소외 계층을 더 잘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275쪽)
 
7. 룰라 정부 집권 2년의 경제정책과 ‘성공(?)의 덫’
○ 룰라는 브라질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구조 개혁들을 논의하고자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 등 다양한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구성했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 위원들은 룰라가 직접 선임했고, 전체 위원의 50%는 재계, 15%는 노조, 그리고 나머지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저명인사들로 구성되었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7개 주제별 위원회로 출범한 다음 2개를 추가하여 사회보장, 세제 개혁, 노동 개혁, 중기 개혁, 청년 취업, 비공식 부문 등 전체 9개 주제별 위원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사회보장제도 개혁, 재정ㆍ세제 개혁, 공공 민간 파트너십 등의 주제들을 논의하여 다양한 제안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으며, 연금제도 개혁의 경우 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제안에 입각해 만들어진 정주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어 수정 통과되었다. 그러나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뿐 주요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재계가 과다 대표되고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와 사회 세력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별 위원들이 특정 단체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295쪽)
성프란시스꼬강 문제처럼 시민 단체 참여자들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길 돌리기 프로젝트를 강행하여,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활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296쪽)
○ 브라질의 낙후된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산업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민영 공동 프로젝트(PPP)를 추진해 2004년 12월 22일 마침내 합작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기업은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최단 5년에서 최장 3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최소 2천만 헤아우를 투자해야 하며, 정부는 조세수입과 정부 소유 자산에서 60억 헤아우를 조성해,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사기업의 투자에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였다. 정부는 개발은행을 통한 재정 지원, 이자율 인하, 조세 혜택 등을 통해 PPP 프로젝트의 정부-민간 협력사업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인프라를 개선해 산업ㆍ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299쪽)
○ 이런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중심으로 한 개입주의 경제정책은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규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과 가장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기구들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거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 기구들의 역할이 기대 수준에 크게 못미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통화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정책이 사회적 합의 기구들의 영향력 밖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동계와 재계 등 시민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반대했음에도 고금리정책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300-301쪽)
○ 경제사회개발위원회가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은 대표성을 지닌 교섭 기구가 아니라는 구조적 한계와 경기회복 국면에서 자본 측의 양보를 얻어 내기 어렵다는 국면적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에 비해 경쟁력 포럼이 1990년대 초의 부문 협의회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경쟁력 포럼의 구조적 한계보다는 전적으로 경기회복이라는 국면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무엇보다도 국면적 제약을 극복하며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활성화시키지 못한 것은 룰라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며, 그 배경에는 통화주의와 2004년의 성과 및 그에 대한 해석의 오류가 있었다. 이와 같이 개입주의 경제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없었고, 그 결과 룰라 정부의 차별성은 부각되기 어려웠다. (305-06쪽)
 
8.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과 계급 정체성
○ 법정 최저임금은 퇴직연금, 실업수당 및 다양한 공적 부조금들의 지급자격과 수령액 산정의 기준들에 연계되어 있어, 최저임금 인상은 공공 지출을 증가시키고 재정 적자를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재정 적자 증대라는 연관 효과로 인해 최저임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하려던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룰라 정부 또한 이런 연관 효과로 인해 최저임금 두 배 인상 공약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퇴직연금과 각종 공적 부조금 제도로부터 최저임금 연계 산법을 해소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법제화하지는 못했다. (328-29쪽)
○ 룰라 정부가 추진한 연금제도 개혁의 핵심 내용은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퇴직자들의 연금제도를 통합해 공적 부문 퇴직자의 연금 혜택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간의 퇴직자 연금 혜택의 형평성을 높이는 한편 연금제도의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CUT는 전반적으로 기존의 연금제도를 선호하고 있어 연금제도 개정 내용에서 정부와 의견 대립을 보여주었다. 공적ㆍ사적 부문 연금 수령액의 통일된 상한을 CUT는 20배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당시 최저임금의 10배에 해당하는 2천4백 헤아우로 조정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조정 연금 수령액 상한은 공적 부문의 경우 상한의 하향 조정이지만 사적 부문의 경우 월 1,869헤아우에서 소폭이나마 상향 조정된 셈이다. 정부는 상한액 이상의 연금을 수령하려면 사적 부문의 보충 연금 기금을 이용하도록 하는데, CUT는 보충 연금 기금도 공적 연금 기금으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연금 소득도 과세 대상으로 포함하려는 데 비해 CUT는 연금 소득과세에 반대했고, 연금 수령 최저 연령도 정부가 기존의 근속연수 남 35년, 여 30년에 남 60세, 여 55세로 연령 기준을 추가하려는 데 비해, CUT는 연령 기준을 추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을 선호했으며 타협안으로서 과도기를 둘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연금납입금 부담률은 수혜자와 고용주가 1대 2의 비율을 유지했고, CUT의 양보와 수정 제안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분에서 정부는 CUT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당초 계획대로 법안을 제출했지만 CUT는 정부안을 수용했다.
연금제도 개혁안에 대해 노동자당의 하원 의원 71%, 상원 의원의 거의 100%가 반대 의견을 지니고 있었는데, 반대의 주된 이유는 공공 부문 연금 수령액 상한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한편, 2003년 5월 9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의 85%는 연금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78%는 의회에 제출된 연금제도 개혁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UT는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을 결국 수용했으나 개혁안의 최대 피해자인 공공 부문 노조들은 극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공공 부문 노동조합들은 2003년 7월 초 연금제도 개혁 백지화를 요구하며 한 달 이상 파업 투쟁을 전개했는데, 주로 연금 수령액 상한을 초과하는 공공 부문 고액 소득자들이 중심이었다. (330-32쪽)
○ 룰라 정부의 불평등 해소 전략은 사회 예산의 항목별 배분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공식 부문 종사자들을 주요 수혜 집단으로 하는 실업보험과 임금 보전 정책, 공공 부문 종사자 지원 정책, 직업훈련 중심의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예산 지출 증가 정도는 사회 예산 평균 증가율에 크게 못 미친다. 반면, 가족 지원금 제도 중심의 사회부조 정책과 농지개혁 중심의 농업정책 부문에 대한 예산 지출은 사회 예산 평균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팽창했다. 룰라 정부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식 부문보다는 비공식 부문,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계급 특전적 부분보다는 최저 소득층 비특전적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전개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노동계급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특전적인 공식 부문 조직노동자들보다는, 주로 비공식 부문 미조직노동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이 갖는 노동계급 정체성은 부정할 수 없으나, 룰라와 노동자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과 사회정책의 수혜 집단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전통적 지지 기반의 불만과 반발의 여지는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반발이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334-35쪽)
 
9. 룰라의 2006년 재선과 계급 투표
○ 계급 투표란 노동계급은 생산 현장에서의 착취 관계와 시장에서의 열등한 구매력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자원 재분배를 원하기 때문에 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반면, 자본계급과 중간계급은 생산 현장과 시장에서의 특전적 위치를 보호하고 시장 개입과 자원 재분배를 차단하기 위해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우파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계급 투표론은 투표 행위의 핵심적 동기를 경제적 동기로 간주한다.
좌파 정당이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계급 투표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경제적 동기에 기초한 계급 투표가 지배적 투표 행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계급 위치에 따른 객관적 계급 이해관계를 인지하고, 계급 이익의 실현을 위해서는 계급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계급 관계의 모순적 성격을 파악하는 계급의식이 발달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 위치 → 계급 이익 → 계급의식 → 계급 투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정도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높은지, 사회경제적 조건 등 외적 요건들이 얼마나 유리하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최근에는 미국 노동자들이 민주당 대신 공화당의 레이건과 부시에 투표하는 현상을 둘러싸고 ‘공화당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 공화당’ 논의로 전개되는 등 계급 투표 소멸론은 경험적 근거와 함께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계급 투표 소멸론이 제시하는 인과적 메커니즘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약화로 계급 투표 소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전후 경제성장에 기초한 포드주의적 계급 타협과 복지국가의 발달로 인해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된 노동자들이 중간계급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 광산, 선박 제조, 철강업 등 전통적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단일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동자 주거 공동체가 와해되고 그 결과 노동자 문화가 약화되어 노동자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쉽게 포섭되었다는 것,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과 도시의 팽창으로 노동자 주거지역이 확대되며 노동자들 간의 대면적 접촉 기회가 줄어들고 노동자들 사이에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이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이 집합적 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 주요한 요인들로 지적된다.
둘째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산업화 단계를 넘어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계급 간 문화적 차별성이 소멸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물질적 삶의 조건이 크게 향상되면서 소비 행위는 생존을 위한 소비에서 정체성 표현을 위한 소비로 바뀌고, 시민들이 다양한 집단들에 소속됨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과 생활양식이 더욱 복잡 다양하고 가변적이 되어, 소비 유형과 생활양식에서 개인 간 차별성이 존재해도 계급 간 차별성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주관성과 가치관에서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이 약화되고 계급 간의 차별성이 소멸되면서 계급 투표 행위 양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앞의 두 이론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 문화 속에서 새로운 투표 행위 유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론적 주장이다. 정치의 핵심은 더 이상 계급적 이해관계와 물질적 문제들이 아니라 환경, 평화, 여성 인권, 성 취향, 자율성 등 탈계급적ㆍ탈물질적 삶의 질 문제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계급 정치에서 삶의 질 중심의 문화정치로 이행하면서, 투표 동기도 물질적ㆍ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탈물질적, 정체성 동기로 바뀌게 되어 계급 투표 행위 대신 탈물질주의 투표 행위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에 따르면 노동계급이 좌파 정당 대신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예컨대, 노동자들은 환경문제에서 환경보호 대신 성장주의에 친화적이고, 자유주의-순응주의 문제에서는 성 소수자, 사회질서, 성 분업, 낙태 등과 관련하여 순응주의적이기 때문에 좌파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중간계급이 환경문제와 자유주의-순응주의 문제에서 진보성을 보이면서 좌파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후속 연구들은 계급 투표 성향이 약화되었으나 소멸되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다. 이런 경험적 연구들은 또한 계급 투표 성향이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문화정치의 발달과 더불어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이 강화되는 추세와 병존하고 있음도 보여 준다. 그러나 제3세계에 대한 연구는 별로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계급 투표와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 관련 연구 결과들이 제3세계에서도 경험적으로 타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연구들이 필요하다. (343-45쪽)
○ 노동자당의 대중정당 전략과 함께 노동자당의 노동계급 중심성이 약화되고, 지도부의 계급 구성에서도 노동계급의 비중이 감소해 중간계급의 비중이 증대하면서 노동자들의 당원 비율도 하락하고 노동자들의 헌신성도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노동자당이 노동계급 정당에서 대중정당의 모습을 강화해 가면서 지지 기반의 계급적 성격도 변화되어 2002년 대선과 2006년 대선에서 가장 높은 룰라 지지율을 보인 계급 범주는 등록 임금노동자 집단이 아니라 각각 전문직 프티부르주아와 비공식 부문 프티부르주아였다. (366쪽)
○ 사회적 약자들이 신자유주의 공세하에서 시장 지배 이데올로기가 풍미하는 가운데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으나, 룰라 정부하에서 계급 이해관계에 대해 자각하며 계급적 의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계급적 자각과 의식의 발달 현상은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과 박탈로부터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박탈 속에서 형성된 불만은 잠재 역량으로 존재하다가 노동계급과 사회적 배제 세력들에게 우호적인 정권하에서 잠재 역량이 현실화되며 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은 물질적으로 박탈되던 과정하에서보다 물질적 수혜 속에서 계급투표 성향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경우 룰라 정부 정책들이 비특전적 계급들을 지향하며 전개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룰라 정부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고, 룰라의 집권을 지지했던 구성원들도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룰라 정부에게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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