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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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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2007.
 
벌써 김진숙 님의 책을 읽은지 십여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김진숙 님의 책을 들고 다니면서 다 봤다.
책에 있는 내용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웹 등을 통해서 읽은 것이지만, 새롭게 접한 것도 있고, 또한 활자로 인쇄된 게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숙 님의 글은 가슴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울림은 육성으로 들었을 때 훨씬 더 생생하다.
하지만 이젠 이런 글이, 이런 감동적인 연설과 추도사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감동은 그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지언정 ‘노무현의 눈물’에서, 서프에서, 노사모에서 재생산되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대중들에 대한 호소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저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감동과 설득력보다 논리와 대안이 필요하다. 김진숙 님의 글이 그 마지막을 태우는 불꽃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 어머니가 광주에 내려가시면서 글자크기가 켜서 보기에 좋다고 『소금꽃 나무』를 가방에 넣어가셨다. 그 전에 그의 추도사 동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사실 6일날 있는 ‘그날이오면’ 초청 강연시에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싸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한평생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어머니 같은 이들에게 이 시대의 화두인 비정규 노동의 문제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이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임을 어떻게 쉽고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래에 책의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옮긴다. 책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 여유가 되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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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바다 위를 달리고, 길 위를 달리고, 하늘을 가르는 것도 그들이다.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들이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도 그들이다. (4쪽)
  
노무현 정권의 필살기는 투쟁이나 구속이나 수색 같은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분야들을 좀 더 대중화해 일반인들도 누구나 향유할 수 있게 한 점과 음지에서 했던 일들을 양지에서 내놓고 하게 한 게 아닐까. 이게 절차적 민주주의다. 저 시절엔 기가 질려 “동네 사람들아!”를 못했다면, 이 시절엔 절차대로 한 일이니 아무리 불러도 동네 사람들이 안 오는 거다. (26쪽)
 
→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어느 날 소나기가 내려 오후 작업을 못 하고 명휴를 했는데, 비는 철철 오고 빨래하기도 그렇고 갈 데도 없고 해서 노느니 장독 깬다고 그 책(『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을 들척거렸다. 그 책을 끝내 들추지 말았어야 했을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
가슴에 큰 산 하나가 들어앉아 그 산에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양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산 사람. 그러나 그 삶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끌어안고 뒹굴었던 사람.
난 뭘까. 그의 삶에 비한다면 내 삶은 뭘까. (47쪽)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내가 곧 그들이라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도 치욕스럽지도 않았다.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 내가 달라져야 그들이 달라진다는 생각.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변화되어야 내가 딛고 선 땅도 변화된다는 생각.
눈물은 곧 다짐이 되었고 가슴 벅찬 환희가 되었다.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 평화시장의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며 나를 더 깊은 자책과 질퍽한 공감의 늪으로 빠뜨렸던 건 평화시장과 똑같은 자갈치에서의 경험이 더해져서였을 게다. (48쪽)
  
어딜 가 봐도 비슷한 조건이란 사실을 나는 일찌감치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갈 뿐이었다. 한번도 그런 조건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아니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벌레처럼 징그럽고 싫었다. 벌레가 뭘 할 수 있으며 벌레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전태일은 너는 벌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인간이 당연히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해서 절규하고 있었다. 희망.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지금까지 나를 버터 왔던 건 그때의 자책과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는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면서 사는지는 솔직히 되물을 시간도 없고 자신도 없다. 그러나 삐삐 차고 핸드폰 들고 아반떼를 살까 레간자를 살까 고민하면서 당구장을 들락거리고 호텔에서 수련회를 하면서 박찬호나 차범근을 떠들어대며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간부들에게 전태일은 그저 11월쯤이면 한 번씩 회자되는 옛날 위인쯤인 게 여전히 안타깝다.
전태일의 삶을 심장으로 느끼지 못하고는 노동자 정신을 말할 수 없고, 전태일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노동자의 계급성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가용이 점점 커지고 컴퓨터 용량이 커질수록 더 분명해져야 하는 사실임에도……. (49-50쪽)
    
→ 나 또한 새내기 때 처음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별로 질도 좋지 않았던 그 책에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김진숙도 그랬구나.
다만 내가 전태일보다 글쓴이인 조영래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진정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에서도 콤플렉스를 느낀다면 이상한 걸까.
나는 지금 버티고 있기나 한 걸까.

 
운동하는 게 청교도처럼 사는 게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고, 넘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끊임없이 성찰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고...
  
싸워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험해 보인다. 싸워서 얻은 해방감을 단 하루도 누려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겠다고 목숨까지 거는 이들이 무모해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57쪽)
 
강석용 씨 같은 어쩌면 동화 속에 사는 소년 같은 그분의 맑은 심성이 ‘실존’하므로 난 노동 해방을 믿는다.
노동자. 그들의 깨끗한 양심과 건강한 의지가 일구어 갈 새 세상. 아, 노동 해방! 그러나 필요한 건 조직이다. (74쪽)
  
→ 지역에 뿌리박은 계급적 산별노조는 언제나 건설될 수 있을까. 산별노조가 제대로 되었다면 한미FTA 반대 총파업에 나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여론의 압박과 내부의 반발에 떠밀려 부분파업을 철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울산에서 그 신화 같은 투쟁의 역사가 있기까지 수천수만의 강석용이 있었으리라는 확인은 참으로 기쁘고 뿌듯하다. 소련이 망하고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졌던 그날도 변함없이 용접 가스를 마시고, 쇳가루에 밥을 섞어 먹으며 신나 냄새를 공기보다 더 많이 마시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사람들. 절박한 생존권의 벼랑 끝에서 나무뿌리를 부여잡듯 그렇게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버텨 온 사람들.
그들이 붙잡고 있던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제법 그늘까지 드리운 산별노조라는 고목나무가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고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투쟁의 시기가 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집행부의 실천 지침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지금도 한반도 구석구석 곳곳에서 무딘 쇠를 벼려 칼을 만들고 묵은 땅을 갈아엎을 쟁깃날을 담금질하고 있을 보석 같은 사람들. 소련이나 동구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우리의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77쪽)
 
→ 그들에게서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런 것조차 없어 흔들리는 이들이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전망이 필요하진 않을까.
 
죽어서 천당 보내 준다는 하느님은 안 믿어도 살아서 천당 만들고야 말 조합원들은 믿는다는 분. TV도 뉴스만 잠깐 보고는, 11시 전에 잠이 와서 못 견딜 때는 “동기야, 니가 지끔 잠들어 불먼 사장 발가락에 때나 뽈고 살 수밖에 더 있겄냐” 하며 이를 갈며 책을 보고 각종 유인물을 읽고, 노보에 투고할 글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쓰신다는 분.
울산 모 동지에게서 노동자의 양심과 진실을 만났다면 이분에게선 노동자 특유의 낙관과 희망을 본다. 우리의 희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분들이 모여 노동자라는 이름을 빛나게 하고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정치가 아무리 썩고, 관료가 아무리 타락하고, 자본가․경찰․군대․학교 등 온 세상 구석구석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해도 끊임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곰팡이를 쓸어 내는 이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세상은 그래도 조금씩 맑아져 마침내는 정말 살아 볼 만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90쪽)
 
LNG 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 했습니까?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떼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120쪽)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 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버글거리던 구더기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120쪽)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21쪽)
  
→ 책에는 단지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한 연설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이는 ‘김주익노동해방열사 추모 및 악질자본 한진과 노무현 노동탄압규탄 전국대회’라는 다소 긴 명칭의 집회에서 한 김진숙동지가 한 추도사이다. 다시 봐도 절절한 글이다. 당시 이 추모사를 퍼오면서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추모사”라고 하였다. (동영상은 http://blog.naver.com/gimche/140006677674 참조)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라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122-123쪽)
  
굳이 초청하지 않아도 오고, 요청하지 않아도 부르니까 존재의 귀함을 종종 까먹게 되는 사람. 흔한 것들은 종종 짓밟히고, 늘 곁에 있으리라 믿는 것들에게 우리는 때때로 얼마나 가혹한가. 그런 것들이 귀하다는 걸 깨닫는 건 대부분, 그 꽃이 진 뒤거나, 그가 떠나 버린 다음이다. (138쪽)
   
→ 이 대목에서 나는 낮별지기 님을 떠올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투쟁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연대의 노래를 부르기도 쉽지 않을텐데...
 
죽어서도 웃는 자를 보는 일은 곤혹스럽고 살아서 우는 자를 보는 일은 무력하다. (141쪽)
 
→ 허세욱 동지는 왜 그렇게 웃고만 있는지... 죽은 후에마져도... 이번에 광주에 내려가서 함께하였던 윤한봉 선생 장례식에서 접한 윤한봉 선생도 웃고 있었다.
  
정작 참으로 견디기 힘든 건, 사람에게 받게 되는 상처일 겁니다.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받아야 했던 상처. 고스란히 듣기만 할 뿐 한마디도 되돌려 줄 수 없는 상처들.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은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54쪽)
 
→ 김진숙은 비정규직을 민들레에 비유한다. 해방의 봄을 부르는 민들레...
 
현대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에서, 만도기계에서, 한진중공업에서, 병원에서, 은행에서, 공공 기관에서, 수백만의 노동자가 잘렸지만 단 한 명도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하지 않았듯이, 무심한 냉대와 비수 같은 말 한마디가 언젠가 고스란히 내 심장에 꽂히게 되리라는 걸 상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155쪽)
   
이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을 때
온몸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 가는 사람들.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을 보라.
우리가 잃은 게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의 눈빛을 보라.
연대를 말하려거든 100일째 펄럭이는 천막엘 가 보라.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 (160-161쪽)
   
저는 우리가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제는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우리가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사슬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돼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자리에서마저 쫓겨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낮은 곳에 피었다고 꽃이 아니기야 하겠습니까. 발길에 채인다고 꽃이 아닐 수야 있겠습니까. 소나무는 선 채로 늙어 가지만 민들레는 봄마다 새롭게 피어납니다. 부드러운 땅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길게 자랄 수 있지만 꽁꽁 언 땅을 저 혼자 힘으로 헤집고 나와야 하는 민들레는 그만큼만 자라는 데도 힘에 겹습니다. 발길에 채이지만 소나무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 더 멀리 씨앗을 흩날리는 꽃. 그래서 민들레는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162-163쪽) 
  
→ 김진숙 동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마 그가 했던 여러 특강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된 것이리라.
그는 “그분들을 만나면 죄스러움에 견딜 수가 없”고, “그냥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자꾸 울게 된다”고 얘기한다.
  
일요일도 없고, 재고 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조카 앞에서 나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민주노총 사업장은 대부분 주40시간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단련비도 없고 효도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제 조카의 1,000만 원도 안 되는 연봉 앞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서 그들의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건 산하노조의 투쟁이건 비난이 난무할 때, 조중동만 탓하기엔 참 옹색해져 버렸다. (192쪽)
 
→ 그의 반성이 우리 모두의 반성이 되어야 할 텐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밀어내는 것도 자본이고, 이제 와서 아빠 힘내시라고 노래 불러 주는 것도 자본이고, 집도 사고 차도 사야 하는데 당신이 아프면 큰일이라고 걱정해 주는 것도 자본이고, 사고가 나면 남편보다 먼저 달려와 주는 것도 자본이고,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본은 이제 안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220쪽)
 
학번을 앞세워 소개하는 게 별 뜻 없이 그저 익숙한 방식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학번이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학년을 구분 짓는 효율적인 숫자가 아니라 신분의 높낮이를 규정하고 나아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면 그건 또 다른 권력의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225쪽)
 
어머니 기억나시는지요. 오락가락하던 비가 개이고 혈구산에 걸린 무지개를 잡을 거라고 따라가다 길을 잃어 울며 돌아 온 제게, 무지개는 사람 손으로 못 잡는 거라고 말씀 하셨더랬죠. 아버지처럼 땅 두더지는 되기 싫다고, 고깃국에 하얀 쌀밥만 배터지게 먹고 살 거라고 사립문을 박차고 나와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은 지 십 수 년이 지났건만, 무지개 같은 건 사람 손으로 못 잡는다는 그 말씀만큼은 차마 잊혀지질 않습니다. (229쪽)
  
계란으로 바위치기래도 할 수 없고 대답 없는 메아리래도 어쩌겠습니까. 힘이 약해 만날 당하고 깨지기만 하는 약자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라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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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3 15:07 2007/07/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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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젊은바다 2007/07/03 19:57

    제 생각엔 논리도 대안도 넘쳐나는 것 같아요.

    도리어 그 어떤 논리도 이제 감동을 주지 못하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그 어떤 대안도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게 문제인거 같아요.

    논리와 대안이 감동을 대신 할 수는 없어요.
    물론 거짓 감동과 온갖 감언이설이
    우리를 메마르게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감동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여전하지 않을까요?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7/07/04 02:50

    그것도 타당하긴 한데, 저는 거꾸로 논리와 대안이 없는 감동은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물론 감동이 없다면 참 힘들 거예요.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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