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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을 넘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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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하종강의 노동과 꿈>에 쓴 글입니다. 거기에 칼럼방이 있어서요. 이 글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는, 박래군 님이 편집인으로 있는 잡지에 실린 글의 원문입니다. <사람>에 실릴 글은 아래 글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될 겁니다. 2월호 특집이 "진보정당"이고, 거기에 인권운동과 진보정당운동, 초록당이 꿈꾸는 세상, 한국사회당이 꿈꾸는 세상, 민주노동당 사태와 진보정당이 가야할 길, 그리고 한국진보정당의 역사와 현재적 의미라는 5개의 글이 들어가는데, 제가 민주노동당과 관련된 글을 맡았습니다. 민주노동당 내의 하나의 경향만, 그것도 편향된 흐름만 반영되었다고 나중에 저나 <사람> 편집부가 욕먹을지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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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이 조금 무겁습니다. 어쩌면 너무 정치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정당에 대한 얘기는 삼가려고 했는데, 재개하는 글이 정당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부족하고 짧은 글이나마 자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종강 선생님께서 허용해주신 지면을 헛되이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의 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래 글은 제가 어떤 잡지에 쓴 글의 원문입니다. 절반 정도로 줄여서 써야 하는데, 항상 하던 것처럼 중언부언하다보니 잘 줄여지지가 않더군요. 하지만 역량있는 편집부에서 잘 축약하시겠지요. 나중에 글이 나오게 되면 그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아마도 이 글에 담긴 저의 판단이 다르게 생각하실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진보정당에 대해 저와 같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읽어주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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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을 넘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향해
  
1. 들어가면서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3% 남짓한 득표율에 머문 이후 민주노동당의 위기,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내에 진입한지 4년이 다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원내 의석이 한 석도 없었던 2002년 대선에 비해 득표 절대치나 득표율 모두 떨어진데다가, 개인의 명망도에 기반하여 등장한 두 명의 후보에게도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대선패배만이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말하게 된 이유일까. 사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던 화두였다. 민주노동당에겐 이를 극복할 아주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고, 아주 여러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이 아니어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많다. 그 고민의 시작은 정당이 답인가, 정당이라면 어떠한 정당인가, 정당이 아니라면 어떤 운동체가 가능할 것인가 등에 대한 답변을 던지는 것에서부터일 터이다.

지금은 정치의 중심이 정치조직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한계는 있었지만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나름의 성과를 냈기 때문에 이를 계승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 정당이 어떠한 성격의 정당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정리한 것은 아니다.

2. 민주노동당에서 종북주의, 패권주의가 왜 문제되는가
  
민주노동당 외곽에 있는 많은 이들은 북한 체제와 그 선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從北)주의 청산 문제를 주된 화두로 하여 신당 건설에 나서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신당파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이래서 안돼!”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의 전망이라는 긍정적인 틀을 가지고 논의를 해나가자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왜 더이상 진보정당으로서 전망이 없는지, 왜 민주노동당의 혁신은 불가능한지에 대해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미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에 친 민중적인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되어버렸다는 이유로, 우리 국민들에게 또는 대다수 당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남한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유로, 이미 싸늘해진 시체가 되어버린 민주노동당을 떼메고 가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되어버린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숨통을 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라는 식의 마인드로는 아마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질질 끌려다닐 것이다. 있는 대로 드러나야 새로운 진보도 가능하다.

종북주의 및 민족지상주의, 그리고 이에 기반한 패권주의에 대한 청산이 왜 지금 이 시기에 요구되는가.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관료주의, 패권주의, 종북주의 문제가 최근에 문제가 된 이유는 언론을 통해 밖으로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당원들이 당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고, 따라서 종북주의 문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스스로 자정할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종북주의, 패권주의로 인한 무능과 전횡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극복되기 힘든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당내 투쟁을 더욱 격화시켰고, 당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활동이 당내 파벌싸움으로 과장되어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본령인 대중정치활동은 실종되었다. 정파대립관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민주노동당 사태는 이러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물론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이 진보정당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으로 한정해 볼 때 이는 당의 운영메커니즘과 관련된 신뢰 및 내부 민주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자민통(자주민주통일) 세력이 주로 저지른 집단적인 지구당 변경, 위장전입, 대리투표 등을 통한 지구당 장악사례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주소지, 거주지 등에 따라 획일적으로 당적을 규정하는 당규를 제정해야 했다. 이것은 정당으로서 정치활동을 잘하기 위한 조직체계가 아니라 정파 서로간의 불신으로 인해 야기된 필연적인 결과였으며, 민주노동당이 내부정파정치에 묶여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시스템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하는 한 당 혁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패권주의 세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건설되는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과는 다른 질의 신뢰를 쌓을 것이며, 당의 정체성에 맞는 조직형태와 운영방식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 이념상의 스펙트럼은 여전히 다양하겠지만, 최소한 내부의 상식적 룰이 지켜질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내부정치가 아닌 대국민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좀더 정치활동을 잘하기 위한 조직체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직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자민통 세력에 대해 이들과 함께 당을 꾸리는 데 따른 문제점과 서로간의 세계관의 차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과거 비판적 지지 입장이었던 자민통 세력과 함께 정파연합당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 변할 것이다, 아니 스스로 변하지 않더라도 당원수가 10만 정도 되면 상식을 가진 당원이 다수가 되어 그들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2004년경부터 더이상 용인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특히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 서는데 있어서 주된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 경남도당 회계부정사건을 비롯한 각종 회계 및 재정운영문제, 대대적인 당적이동 및 당비대납 등을 통한 비상식적인 지구당 장악사태, 고위당직자의 조선노동당에 대한 충성서약 사건, 정책위의장 후보의 성소수자 폄하 발언, 2004년 여성당직자 폭행사건, 2005년도 당기관지인 「진보정치」, 「이론과 실천」의 정파 기관지로의 전락 등 독단적인 패권주의 행태는 상대적 다양성의 가치를 짓눌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념적, 조직적 기초가 다르고 세계관이 상반된 흐름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한 정당에서 공존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민주노동당 내 비자민통 세력들의 경우 중요한 고비 때마다 자민통 세력과의 긴장감 때문에 운신의 폭이 한없이 좁았던, 혹은 스스로를 좁혔던 것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3.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가진 문제는 단지 종북주의, 패권주의의 문제에 그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살펴보자. 민주노동당은 당 밖의 좌파세력에게는 민족주의ㆍ사민주의 세력의 정파연합당으로서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겠지만, 진보의 재구성이 요청되는 현 시기에는 민주노동당 안의 시각을 통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물론 의미있는 성과도 있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운동의 시도와 정착이 그것이다. 한미FTA 저지투쟁에서 알 수 있었듯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 투쟁에 결합하고 사람을 조직하고 선전한 조직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했다. 민주노동당이 없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많은 이들이 이 투쟁에 참여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지역운동단체들이 정치활동을 금기시하면서 정당과 자신을 분리정립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주는 성향을 내비치고 있음에 비추어, 정당이라는 틀로 지역에 개입하고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만들어내려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범여권이라는 틀 속에서 노무현정권이라는 사이비개혁세력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대중들은 노무현정권과 가장 멀리 있는 세력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했고, 민주노동당은 범여권에서 조금 더 ‘과격하고 친북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대중의 에너지를 부분적인 것, 개혁적인 것에 가두어 왔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총련의 패권주의에 의해 학생운동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민주노동당 또한 고사하고 말 것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임을 선언하면서 노동자들이 정치에 떨쳐나서도록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창당 목적으로 제시된 바 있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달성해내었는가.
  
과거 먹고살 만한 수준의 돈과 일자리(고용)가 보장되면 충분하다는 일반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는 ‘회사와 이에 대립하는 노동조합’이라는 틀에 머물렀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각성을 가로막아왔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회사 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대변해줄 정치세력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가 결의된 배경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는 어떠한 효과가 있었을까. 이번 대선만 하더라도 민주노총은 일명 ‘8010 사업’으로 조합원 80만 명이 10명의 지지자를 만들어낸다는 구상에 따라 선거운동기간 동안 전국으로 지도부를 총가동하여 정치순회를 벌였고, 특히 이석행 위원장은 “내가 곧 권영길”임을 강조하면서 선거운동을 독려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권영길 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의 투표성향은 다른 이들과 커다란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더 이상 제고하지 못했다고 본다. 노조에서의 정치교육을 통해 노동자 당원의 수는 늘어났지만, 당원이 된 이후 이들은 여전히 당으로부터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아무도 이들에게 민주노동당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이들은 당원 가입 이외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대상화되는 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특권적으로 대변함에 따라 그 배타적 지지를 받는 민주노동당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정당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민주노총당, 따라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부정적 이미지는 보수언론에 의해 덧씌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이랜드일반노동조합지원대책위원회>를 꾸려서 활동해왔던 민주노동당 용산/마포/은평/서대문 노동위원회 당원들의 활동이 많이 부각된 바 있지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주된 활동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민주노동당을 아는 이라면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여성, 녹색, 인권, 소수자 운동에 대한 피상적 인식이 문제였다. 작년 말부터 범민련 세력이 민주노동당에 속속 가입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민주노동당으로 전체역량을 총집중시키고’ 김일성 주석 탄생 백주년인 ‘2012년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의 성명서에도 드러나 있다. 그러나 범민련이 진보정당의 가치를 과연 인정하고 있던가.
  
범민련 남측본부는 기관지 「민족의 진로」에서 동성애와 트렌스젠더, 이주노동자문제 등을 부정적 사회문제들로 묘사하여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몰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마당에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과연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운 범민련 세력이 민주노동당에 밀려들어오는 것은 사회주의 하에서의 사형제를 무조건 반인권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고 한 이가 버젓이 사무총장이 되었으며,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파행적 현상'이라는 발언을 한 이가 정책위의장이 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성소수자위원회나 여성위원회, 장애인위원회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운동의 목표와 지향이 돼야 하는 평화, 인권이라는 가치를 운동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현실은 민주노동당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민주노동당은 선거만 하는 정당이었다. 4년의 주기에서 6개월 정도만 선거와 무관한 시스템이었고, 나머지 3년 6개월은 선거준비위 활동, 선거대책위 활동, 선거본부 활동, 그리고 선거평가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선거평가가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장 밑바닥의 기초조직인 분회는 철저하게 선거구에 맞춘 지역편재로 이루어져 선거시기 동원을 위한 조직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대중투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참여하지 않은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었다. 이라크 파병반대투쟁, 한미FTA 반대투쟁, 비정규직 철폐투쟁 등에서 민주노동당원들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특정한 대중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치켜들 수 있는 깃발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정당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운동단체일 뿐이었고, 정당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투쟁들은 민주노동당이 없었어도 가능했으며, 민주노동당은 각종 범국민대책위, 무슨 국민행동, 민중연대, 한국진보연대(준) 등의 소속단체였을 뿐, 정당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이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건설된 것은 아니다.

4. 민주노동당의 혁신은 가능한가
  
당 혁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이번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당 혁신에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과연 당 혁신 노력이 없었던가. 종북주의 논란을 야기했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벌어졌던 수많은 당원들의 서명활동과 중앙위원회 및 당대회에서의 안건 제출은 당 혁신 노력이 아니었던가. 대선후보선출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당의 체질변화가 도모되었다. 명망가 국회의원에 의존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한 당 쇄신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민통 세력의 묻지마 정파투표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또한 진보대연합 논의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것은 당내 정파들의 활동일 뿐이고,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평당원들은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당당모(민주노동당의 진로를 고민하는 당원모임), 민지네(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모임)나, 당직선거에서의 부정에 대해 평당원들이 나서서 검찰에까지 고발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다가 안되니 탈당하거나 무관심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알버트 허쉬만이라는 경제학자가 [Exit, Voice, and Loyalty]라는 글에서 정식화한 것처럼, 사람들은 지도부가 맘에 들 때는 충성을 하고, 이에 불만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목소리(voice)를 내서 항의를 하지만,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침묵하거나 탈출(exit)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던 민주노동당 평당원 모임 내지 지지자들의 모임은 이제 다 사라졌고, 하루 방문자 수가 5000이 넘었던 그들의 홈페이지마저 없어졌다는 사실은 민주노동당의 상황이 탈출밖에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게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인되는 많은 계기와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때마다 당 혁신을 말해왔지만, 역량 부족, 준비 부족, 현실을 핑계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꼴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난파선이나 다름없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들, 이를테면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해서도 당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 또한 구조의 일부였기 때문이며, 민주노동당이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민주노동당 혁신이 가능하다 해도 지금까지의 여러 계기들 속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 활동을 중지한 사람들, 처음부터 민주노동당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지켜보던 당 밖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과연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당원 규정에서부터 의견그룹의 존재형태, 교육 및 토론시스템, 지역조직 체계 및 운영 메커니즘 등에 이르기까지 바꿔야 할 것이 쌓여있다. 그러하기에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요구되지만, 현재의 민주노동당 상황은 이를 수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또 다시 총선이라는 현실 정치일정을 핑계로 이러한 문제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당원들과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는 것은, 이번 대선패배로 사망선고를 받은 진보정당운동이 다시 소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간단한 예로 당직과 공직이 기득권으로 파악되는 현실을 민주노동당이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새로 만들어지는 진보정당 또한 이를 보장하지 않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조건은 아닐 것이다.

5.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으로 나아가자
  
민주노동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패배해온 대상은 자민통, 종북주의 세력이 아니라 바로 현실성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다는 생각, 민주노총 및 민주노동당 관료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현실성이 바로 진보정당운동의 발목을 잡아왔던 실체였던 것이다.
  
정치란 타이밍과 메시지, 그리고 내용(contents)이다. 민주노동당 안으로는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제기함에 의해, 민주노동당 밖으로는 진보의 재구성을 제기함에 의해 메시지는 전달되었다. 물론 좌파적 의제를 일상에서 구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진보의 다원주의, 즉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 건설의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되,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넘어서 건설하고자 하는 신당이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으로 인식될 것인지,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강내희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좌파는 숫자라기보다는 입장”이며, “이론적, 정치적 입장은 정확함, 분명함, 열정, 용기 등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지 숫자, 크기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진보운동 판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부만 보아서는 안되며, 새로운 진보담론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이 진보정당의 목표로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집권을 목표로 현실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으로 충분하다.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시행착오 삼아 노동자 중심성을 명확히 하면서 집권을 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그런 진보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남은 것은 타이밍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서려면 실기(失期)하지 않아야 한다. 다가오는 1-2년 사이에 원칙적인 진보정당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진보운동에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바로 지금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풍부한 논의와 거침없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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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22:50 2008/01/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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