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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협상은 타결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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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내가 한 것은 거의 없지만, 부족하나마 협상이 타결되어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저번 12월 31일에 있었던 추모문화제에는 갈 수 없었다. 그 동안 집회에 거의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추모하는 집회에 가는 게 염치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용산범대위에서 1월 9일 엄수되는 용산참사 철거민 열사들의 장례를 위한 장례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건 등록을 해야 하겠지. (장례위원 모집관련 글은 진보블로그 메인화면에서 왼쪽 상단 귀퉁이에 있는 검은 리본을 클릭하면 나온다. 이제 1월 9일이 지나면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규탄 리본 배너가 사라지려나...)
 
여전히 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과제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수사기록 3,000여쪽도 비공개 상태이고... 나이가 뉴타운·재개발은 중단되기는커녕 전국적으로 진행중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건 더 어려울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협상이 타결되었고, 총리 명의의 사과를 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볼 테니까. 그 만큼 앞으로 이어질 질기고 힘든 싸움은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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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정부 책임인정, 협상타결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09년12월30일 11시30분)
1월 9일 장례...국무총리 사과 포함
 
용산참사 협상이 전격 타결되었다. 합의에는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총리가 인정하고 재개발 대책을 마련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서울시와 재개발조합은 철거민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용산4구역 전철연 세입자에게 지난 1년 여 간의 피해에 대한 생계대책을 제공키로 합의했다고 전해졌다.
 
그동안 철거민 유족들은 정부사과, 유족과 용산 철거민 생계대책 마련을 장례의 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유족들은 이번 합의가 장례를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충족한다며 이 합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에서 사망한 철거민 5명에 대한 장례는 2010년 1월9일 치를 예정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354일만이다.
 
그동안 서울시, 용산구청과 용산범대위는 협의를 지속해 왔다. 용산범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총리실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하여 협상이 난항에 달했으나, 연말이 다가오면서 정부와 서울시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해 타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타결에는 종교계의 측면지원도 컸다.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용산참사의 연내 해결을 위한 공식 성명을 냈고, 자승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은 용산참사현장 방문과 대통령 방문을 통해서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기독교계에서도 기독교봉사단 등에서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범대위는 장례이후에도 검찰 수사기록 3000쪽 공개와 1월6일부터 진행될 항소심 재판을 통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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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유가족·정부 협상 타결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2009-12-30 오후 12:13:36)
1월 9일 장례식…오세훈 "단 하루도 편할 날 없었다"
 
지난 1월, 철거민들의 농성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 용산 참사를 두고 유가족과 재개발 조합(용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정부 사이의 협상이 타결됐다. 서울시와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측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9일까지 협상을 벌인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고, 30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협상을 벌여 보상 협상을 마무리짓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10년 1월 9일 5명의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서울시의 중재 노력과 종교계 등의 도움으로 유가족-조합 중재안이 합일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용산 참사 이래 서울시장으로서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며 "일일이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협상 고비와 어려움을 거쳐 마침내 오늘의 결과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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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345일만에 해결…1월9일 장례(종합)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김승욱 기자, 2009-12-30 12:11)
장례비ㆍ위로금 조합 부담…민형사책임 안묻기로
합의이행추진위 구성…정부 사과문 형태로 유감 전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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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345일만에 타결…총리 사과 (레디앙, 2009년 12월 30일 (수) 14:45:18 손기영 기자)
"장례 치른다고 모두 해결된 것 아냐" 
보상, 이행위원회 구성 등 합의…이대통령, 끝내 사과 안 해

 
류주형 용산 범대위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풀어야 할 과제를 ‘방탄총리’의 유감표명으로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용산참사는 정권 차원에서 벌어진 사태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과 범대위 관계자들은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 이후에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검찰 수사기록 3,000쪽 공개를 위한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으며, 용산참사 1주년 추모행사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또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투쟁을 위해 용산 범대위를 새로운 조직으로 전환할지 여부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이들은 내년 1월 25일까지 남일당 건물에 있는 분향소를 철수하기로 했으며, 수배 중인 박래군,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장례 이후 ‘대표자회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용산 범대위는 이날 낮 12시 참사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으며, 보상금액 등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태연 용산 범대위 상황실장은 “약 2주일 전부터 정부와 서울시 측과 협상을 추진했고, 며칠 전 유가족의 생계대책 문제 등에 대한 서울시 측의 태도 변화에 의해 협상이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며 “이후 국무총리실 측에서 정운찬 총리 사과로 사태를 풀겠다는 메시지가 왔다”고 밝혔다. 용산 범대위는 조만간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장례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용산 범대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2009년이 다 저물어가는 연말이 되어서야 정부가 비로소 용산참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노력했던 범대위, 아니 국민 모두의 성과”라며 “1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용산참사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검찰은 아직도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용산참사의 진실은 은폐되어 있다. 학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철거민들은 차가운 감방에 구속되어 있다”며 “범대위는 장례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뉴타운 재개발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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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과제로 남아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09년12월30일 15시34분)
"망루화재는 여전히 의문사"
 
2009년을 하루 앞 둔 30일 경찰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의 보상과 철거민들에 대한 대책을 서울시와 용산범대위가 어렵게 타결했다. 이와 함께 정운찬 국무총리의 사과도 이뤄졌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를 통해 정부가 대통령은 아니지만 총리가 직접 그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성과로 남는다. 그동안 유가족과 용산범대위는 정부의 사과를 문제해결의 선결과제로 제시해 왔다. 범대위는 “요구조건 대부분이 수용되어 즉각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1월 9일 국민적 애도 속에 철거민들의 장례를 엄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망루에서 죽은 철거민들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10월 29일 용산참사 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손을 들어주고 철거민 7명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여전히 철거민들에게 멍에로 남아 있다.
 
이날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앞 협상타결 기자회견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고 이상수 씨 유가족 권명숙씨는 “아직은 공식타결이라고 말을 못한다. 애초 요구했던 열사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안됐다. 지금부터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구속자 석방까지 다시 투쟁해 나갈 것”이라며 “개운치는 않지만 냉동고에 더 이상 그분들의 시신을 두고 있을 수 없어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열심히 은혜를 갚으며 진상규명 투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 양회성 씨 유가족 김영덕 씨도 “총리의 사과만으로 이분들을 보내드릴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추운 냉동고에 둘 수 없다는 뜻에서 장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 이상림 씨의 유족 전재숙 씨도 “반쪽의 합의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남편의 시신을 더 냉동고에 둘 수 없는 유족들의 마음이 여러 미해결 문제 앞에서도 장례를 결정하게 한 가장 큰 배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석만 용산범대위 대변인은 “장례가 용산참사의 해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7명의 철거민들은 아직도 구속되어 있고 망루에서 있었던 일은 의문사로 남아있다. 검찰은 여전히 수사기록 3천 쪽을 은페 하고 있어 아직 용산참사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범대위위와 여러 사회단체들이 주장해온 무분별한 뉴타운,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도 역시 큰 과제로 남았다. 이번 합의문에는 철거민들이 생업 중단 상태에서 받았던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한 위로와 생계비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참사 당일 부상자 치료와 장례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난색을 표해왔던 임시상가 등의 생계대책도 포함되어 있다. 김태연 용산범대위 상황실장은 “만족하지는 않지만 임시상가에 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홍석만 대변인은 “2009년 용산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름이었고, 민주주의의 보루였고, 자본의 탐욕에 맞선 인권의 보루였다”며 용산투쟁이 남긴 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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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우리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프레시안,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용산범대위 협상대표, 2010-01-01 오후 12:12:47)
[기고] '용산 참사', 그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신념의 강자'들의 이야기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철탑 망루에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었던 여섯 사람. 그가 철거민이었던 경찰이었던 간에 먹고 살기 위해 그 추운 겨울 새벽 남일당 빌딩 옥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왔던 건설 자본과 자본의 달콤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21세기의 권력은 이렇게 1년 전 용산에서 여섯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아니 그들은 여섯 명을 죽였다. 이 '죽음'과 '죽임'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기억에서 내려놓으려고 애를 써도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용산 참사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은 모든 언론의 첫머리 기사를 장식했고 국민들은 이제야 냉동고에 모셔둔 다섯 분의 장례를 치룰 수 있다는 사실을 반가워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서울시에 공을 돌리는 척하면서 자신이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달라며 애틋한 표정으로 일관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적 난제를 앞장서서 해결한 장한 일꾼의 모습으로 종교인들의 손을 잡고 승전보를 알리듯 기자들 앞에 섰다. 남일당 현장도 100여 명의 기자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웠고 오열하는 유족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용산 4구역 세입자들로부터 협상과 장례를 비롯해 이후 이행 절차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 중 한사람으로 직접 서울시와 용산구청 관계자들을 20회 이상 만나며 협상을 직접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있다.
 
용산 참사 문제가 발생하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야당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나섰다. 용산 범대위나 유족들은 만나지도 않겠다는 서울시와 정부의 태도에 답답해하던 차에 유력한 인사들이 나서서 해결해보겠다는 말에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그 누구도 필자를 포함한 협상 대표들을 만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서울시장을 면담할 때도, 총리실장을 만날 때도 '우리'는 밖에서 면담 결과를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용산 범대위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보도가 되었을 때도 서울시는 한 종교단체의 성직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을 뿐 직접 만나 협상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는 시한을 정해놓고 그 시간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모든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여기저기서 자신이 해결사가 되겠노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또 생겨났지만 용산 범대위 협상 대표인 나는 정부 관계자 누구에게도 우리의 요구를 직접 전달해 보지 못했다. 해결사를 자처했던 야당 정치인이나 종교인들도 이상하게 나와 함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즈음 신임 총리가 내정되었고 퇴임하는 총리가 용산 문제를 정리할 것이라는 둥, 새로 임명되는 총리가 취임직후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이라는 둥 하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용산 범대위는 고심 끝에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시 관계자를 만났지만 지난 8월 종교단체를 통해 전달되었던 내용을 직접 듣는 것에 불과했다. 언론에서는 새 총리가 용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보도를 했고 취임 후 가장 먼저 용산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새 총리가 용산을 방문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들고 올 것이라 확신했다. 새로 부임한 총리로서 유족들 앞에 사과하는 것이 부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동감했고 더불어 유가족 보상과 세입자들의 생계 대책을 위한 해결책도 들고 올 것이라고, 부끄럽지만 기대를 했었다.
 
실제로 정운찬 총리는 취임 직후인 추석 연휴를 맞아 남일당 분향소를 방문했다. 방문 사실은 총리가 분향소에 도착하기 1시간 전에 내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분주하게 총리를 맞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시민들의 통행마저 가로막은 채, 총리는 분향을 하고 유족들과 마주 앉았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미리 써온 원고를 울먹이며 읽어내려가던 신임 총리는 "사인 간의 일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서울시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정운찬 총리의 방문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용산 문제는 중앙 정부의 일이 아니라는 말로 유족과 우리들의 분노만 더 키웠을 뿐이었다. 정 총리는 조문 이후 용산 문제에 대해 차가운 반응으로 일관했다. 중앙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총리가 총리실에 담당자를 정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했었지만 연락을 해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총리실의 한 행정관이 유족 한 분에게 전화를 해서 국정감사 기간이라 바쁘니 국정 감사가 끝나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것이 고작이었다.
 
그 후로도 나와 서울시 고위관계자의 만남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똑같은 제안만을 되풀이 했다. 정부의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그는 그건 서울시가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두 달여간 지리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용산 범대위가 일부러 장례를 치루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으면서도 끈을 놓치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자신들이 내놓는 제안은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서 고인들을 냉동고에 모셔두고 장례 치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리를 비난했다. 유가족들의 입장은 완강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였고 이러한 불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대책을 듣고 싶어 했다.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매도된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앞으로 아이들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뿐이었다.
 
12월이 절반 정도 지나기 시작하자 서울시는 '연내 해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연내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압박하더니 '연내 합의'라도 하자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리의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다. 보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총리의 사과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수십 번을 확인했다. 총리실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기도 했고, 총리가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듣겠다며 만났다는 유력 인사들에게도 용산의 협상 대표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끝까지 총리실 관계자는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진 서울시는 자신들이 총리실에 협조를 구하고 우리의 요구 사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테니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자고 졸라댔다. 그 이후, 12월 20일을 시작으로 총 여섯 번의 마라톤 협상이 진행되었다. 알려진 것처럼 마지막 협상은 12월 29일 오후 4시부터 30일 오전 6시 40분까지 저녁식사와 최종안 검토를 위한 두 번의 정회를 제외하곤 쉼없이 진행되었다. 용산범대위가 장례를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제시한 정부의 사과,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생계 대책, 임시 상가와 임대 상가를 포함한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에 합의하기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긴장과 첨예한 대립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요구의 핵심이 어느 보수 신문의 이야기처럼 '돈'에 있었다면 이와 같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가신 분들의 '목숨'을 어떻게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345일 동안 상복을 벗지 못한 유가족들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을 하며 생존권을 위해 투쟁해 온 세입자들의 하루하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협상에 임했다. 용산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방패에 맞아 쓰러지고, 아무 이유 없이 경찰에 연행되었던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도 지울 수 없었다. 300일 가까이 비닐 천막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진상 규명과 정부 사과를 촉구하는 미사를 매일 저녁 봉헌하던 천주교 사제들의 그 결연한 진심이 내 심장에도 흐르고 있었다.
 
협상을 위해 앉은 자리는 피를 말리는 자리였다. 이제는 고인들을 편히 모셔야 할 때이고 유가족들을 일상으로 돌려보내 드려야 한다는 중압감과 다섯 유가족의 문제만이 아닌, 이땅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가 되어버린 용산의 싸움을 최소한의 성과 없이 끝낼 수는 없다는 신념이 함께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오해의 여지를 우려해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 상세한 내용을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 중, 사실인 것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도 있지만 구구절절 바로잡고 싶은 생각도 없다. 부족하지만 우리 모두는 승리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으나 용산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재개발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많은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던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가 책임을 느낀다고 했고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일이며 제도 개선을 약속하는 것을 재가 받았다고 한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져도 들어줄 수 없다던 임시 상가, 임대 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나마 이루어졌고, 고인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기로 했다. 2010년을 시작하는 오늘 하루 정도는 안하무인이며 막무가내인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지난 1년간 우리가 참 잘 싸워왔다는 격려를 서로 나누어도 좋을 듯하다.
 
용산 범대위 성명서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문제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구속자들의 항소심 재판과 불구속자들의 1심 재판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이 참혹한 사건의 진상 규명이 이번 정권에서 불가능하다면 다음 정권, 그 다음 정권에서는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인혁당 사건, <민족일보> 사건처럼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도 결국 그 진실은 밝혀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용산의 싸움은 유족들이나 용산 범대위 또는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이들만이 해 온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은 민주주의를 믿고 인권을 존중하는 이 땅의 모든 양심들이, 무자비한 공권력을 앞세운 권위주의 정권은 물론 정권보다도 더 커다란 힘을 가진 건설 자본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펼친 것이다. 용산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이고 이 땅 양심 세력의 승리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도 국민이라는 것을, 여기에 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1년간 용산 참사와 함께 하며 참으로 아이러니한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며 살았다. 국민을 힘으로 억압하고 짓누르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정권과 수조 원의 이익이 눈앞에 있으면서도 서민들을 위해서는 단돈 만 원도 더 내놓을 수 없다는 자본의 실체를 보며 절망과 참담함을 느꼈지만, 1년 동안 한결같이 용산 참사와 함께 해 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과,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던질 수 있는 이들의 신념을 보며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도 느꼈다. 다음에 기회가 허락한다면 꼭 그 따뜻한 마음들과 신념의 강자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용산 참사 다섯 분의 열사들의 장례 준비를 시작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감사한 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쪽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하지만 우선 지난 1년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고인들의 곁을 지켜오신 유가족들께 감사드린다. 유가족들이 흔들렸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돌아가신 분들과 옥에 갇힌 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단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끝까지 함께 한 용산 4구역 세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로운 감옥에서 당당함과 의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밖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며 투쟁하고 있는 일곱 명의 구속 동지들, 6개월이 넘게 24시간 순천향 병원과 남일당 분향소를 지켜 온 전철연 식구들, 글로, 그림으로, 노래로, 시로, 작품으로, 만화로 용산을 기억하는 일에 헌신했던 문화예술가들, 광화문·청와대 앞에서 거듭되는 경찰의 강제 연행을 각오하고 단식 농성을 진행했던 용산범대위 대표자들, 8개월 간의 수배생활을 이겨내며 우리를 이끌어 준 용산범대위의 수배자 석 점(경찰들은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들 중 남성은 '점'으로 여성은 '꽃잎'으로 그 수를 센다. 우리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년을 하루같이 용산만 생각하며 휴일도 없이 월급도 없이 함께 했던 범대위 활동가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오늘의 승리가 있었을까?
 
그리고 특별히 노구를 이끌고 군산에서 상경하셔서 죽을 때까지 용산에서 유족들과 함께하시겠다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우리 시대의 스승, 거리의 신부, 깡패 신부 문정현 신부님, 오체투지를 마치시고 다시 용산에서 단식기도를 하시다가 심장이 멎으셔서 의식을 잃고 3일 만에 '부활'하셨던 문규현 신부님, 부러진 손목으로 오체투지를 마치고 천막 기도장을 지키셨던 전종훈 신부님, 남일당 본당 신부를 자처하시고 물심양면으로 용산의 안주인 역할을 해주신 이강서 신부님, 그리고 온 기독교를 대표하여 혈혈단신 용산을 지키며 일당 백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신 최헌국 목사님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 사회를 보며 200일 추모제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고 200일 추모제 사회를 보고 난 후 300일 추모제 사회를 맡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 약속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지만 300일 추모제를 마치며 용산범대위는 절대 400일 추모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아직 다 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용산을 기억하고 용산에서 울고 웃었던 모든 이들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해 1월 9일 장례식에서 그동안 나누고 확인했던 우리들의 의지와 투쟁, 우정과 평화를 확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례가 치러지더라도 용산의 신성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서 자본에 의한 개발이 지속되고 쫓겨나는 이들이 생겨나는 한, 정당한 국민의 요구를 공권력으로 짓밞는 일이 계속되는 한 우리에겐 2010년 1월 10일, 1월 11일은 용산 참사 발생 356일째, 용산 참사 발생 357일째일 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즌 2'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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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2009년 12월 32일”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10년01월01일 9시13분)
[사진] 용산참사 현장, 새해 맞아 500개 연등 점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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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살인진압 희생자 장례 및 향후 진상규명에 대한 범대위 입장
 
지난 1년 가까이 유족과 용산범대위는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철거민 5명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라며 투쟁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사인(私人) 간의 문제’라며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치해 왔다. 오히려 진상규명과 정부사과를 요구하는 유족과 범대위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했다. 그리고 2009년이 다 저물어가는 연말이 되어서야 정부가 비로소 용산참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노력했던 범대위, 아니 우리 국민 모두의 성과이다.
 
그러나 우리는 1년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당연한 전제와 상식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그동안 철저히 기만당했다. 유가족과 범대위가 이번 합의를 두고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장례의 최소조건으로 정부의 사과, 유족과 용산 철거민 생계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 요구 조건 대부분이 수용되었으므로 범대위는 오늘 이 시각 이후 즉각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다가오는 1월 9일 국민적 애도 속에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장례를 엄수할 것이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용산참사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검찰은 아직도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용산참사의 진실은 은폐되어 있다. 학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철거민들은 차가운 감방에 구속되어 있다. 또한 가진 자들의 탐욕을 위해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뉴타운·재개발은 전국 방방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뉴타운·재개발 정책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
 
범대위는 장례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뉴타운·재개발 정책의 개선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땅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끝으로, 지난 1년간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철거민과 연대하고,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해주신 국민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2월30일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 유가족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첨부 1] 합의내용
 
하나, 정부를 대표하여 정운찬 국무총리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
하나, 유가족 위로금, 용산철거민 피해보상금, 장례에 소요되는 비용은 재개발조합 측에서 부담한다.
하나, 이번 합의내용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도록 종교계 지도자들을 포함한 이행위원회를 구성한다.
 
[첨부 2] 장례위원회 구성 등 향후 계획
 
□ 장례위원회
- 12월30일(수) 이후 범대위는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
- 장례 절차와 관련한 세부 계획은 추후 발표.
 
□ 장례식
- 일시: 2010년 1월 9일(토)
- 장소: 서울 시내
- 각계각층이 참가하여 범국민적 애도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한다.
 
□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재개발 관련 제도?정책 개선을 위한 대책 강구
- 범대위는 장례 이후에도 용산 살인진압의 진상을 규명하고 돌아가신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또한 범대위는 뉴타운?재개발 제도 및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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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18:09 2010/01/0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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