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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반년 추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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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참여하지 못했던(아니 않았던?) 용산참사 관련 집회에 다녀왔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반년이 되었는데도 그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이것이 그 해결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 또한 너무 무뎌진 것은 아닌지 싶기도 했고... 참사현장에서 있는 집회에 참여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19일 추모콘서트에도 참여했다. 그간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안치환, 한동준, 손병휘, 윤미진 씨 등이 나왔다. 마무리는 꽃다지가 했고... 한동준은 자신이 이런 현장에서 사랑노래를 불러도 되는지 어색해했지만, 다들 박수로서 호응해주었다. 너를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의 서약, 이들 노래는 결혼식장에서 자주 불리워지는 노래였지만, 여기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  
  
20일 용산참사 반년 추모대회에는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참여했다고 하는데, 대회의 기조는 여느 집회보다 급진적이었다. 노래부르는 가수들도 그렇고, 연사도 그러했으며, 사회보는 이도 그랬다. 게다가 추모미사가 늦어진 관계로 밤 9시가 다 되어 열려서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이 분명한 것이기에 경찰들로서는 신경이 거슬렸으리라. 그래서 대회 내내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고 빨리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이 흘러나왔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더 집중적이었고, 결의를 다지는 듯 했다. 오랜만에 집회현장에서 불리워진 노래공장의 <들불의 노래>('반동의 피로 붉게 도색하리라...' 이런 무시무시한 가사가 있는)나 박준의 <깃발가>가 분위기에 맞는 듯 했으니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민중가요가 다시 흘러나오는 이 상황이 지금이 어떠한지를 말해준다고나 할까.
 
이런 목소리를 저들은 과연 듣고 있을까. 대책위와 유족들은 다시 한번 천구식을 거행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진상규명은 요원한 이 현실. 수사기록 3000쪽이라도 빨리 공개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시간나는 대로 용산 관련 행사에 참여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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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참사 반 년의 밤’ (레디앙, 2009년 07월 21일 (화) 09:19:01 손기영 기자)
용산참사 반 년 추모대회…유족들, “2년간 흘릴 눈물 다 흘려” 
 
"용산 참사는 진행 중…다시 관 들고 나서겠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09-07-21 오전 9:33:17)
[현장] 용산 참사 반년 범국민추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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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11:32 2009/07/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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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웅, 『통의동 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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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일기: 초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 3년의 공직 실록 1999-2002』
김광웅 지음. 2009. 생각의나무.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일기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인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여만에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는지도 모르겠고...
 
글 중에서 내가 관심이 있는 부분만 발췌하였다. 아래에서는 발췌하지 않았지만, 김광웅 교수의 글에서는 지역인사 편중 논란이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도대체 지연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동향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일까. 지역인사 편중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의 관료제나 보수정당의 경우보다 진보세력이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아무리 개혁적이라고 해도 진보세력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한 진보진영에서 지연이 논란이 된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 1999-06-22: 일단 정부가 출범하고 장들이 임명되면 당초의 개혁의지는 꺾기고 새 사람이 욕심내 기관을 운영하게 마련이다. 예산처가 그 막강한 권한을 어찌 각 부의 장관에게 일부라도 위양하겠는가?
기획예산위의 정부개혁실장을 맡은 이계식 박사는 늘 행자부의 김범일 실장이 개혁과정의 끝 무렵에 위원회의 직제를 너무 작게 만들어주어 개혁을 지속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불평을 한다. 행자부나 과거의 총무처가 갖고 있는 ‘직제권’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실감한 예였다. 아무리 조직 개편을 근사하게 했어도 신설 기구에 넉넉한 직제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그 다음부터는 행자부에 굽실대며 청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 정부 관료의 상하관계를 형성하는 한 단면이다. (31쪽) 
→ 행자부, 행안부를 왜 폐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년에 MB정부는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을 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것은 직제개편 과정에서였고, 여기에서 행안부가 휘둘렀던 권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계속 저항을 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기획재정부가 대는 합리화 논리는 다른 부처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나마 기재부는 나름의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버틴 것으로 봐야 한다.
 
○ 공무원 보수
- 1999-07-11: 우리나라 공무원 중 장ㆍ차관은 최하위직에 비해 봉급이 6.2배에 이르고,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그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즉 일본은 그 비율이 7.7배, 미국은 7.4배, 영국은 12.6배, 그리고 싱가포르는 47.0~59.2배에 이른다. 책임과 권한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느냐가 선진국의 기준이라면 우리의 경우는 한참 더 올려주어야 마땅한데 어려울 때일수록 하후상박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41쪽)
  
- 1999-08-02(월): 공무원의 보수부터 증액해야 한다. 정부수립 이후 오늘까지 공무원의 보수 비율은 계속 줄었다. 1978년에 정부총지출 중 공무원의 보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27.9%로 최고조에 달했었다. 그 후 계속 하강세를 보이다가 1999년에는 11.8%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OECD국가들 중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보면 평균해서 약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평균 21.9%).
공무원의 생활이 어려우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실제로 국민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힘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51쪽) 
→ 현재의 상하공무원 간 보수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이건 인사행정의 문제인데...
 
○ 1999-09-08(수): 대학이 그렇고 출발이 하위직이라는 점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하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한데 교육부의 간부들 중에는 대학을 유린한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교육부는 다른 부처와 달리 9급에서 1~3급으로 승진한 사람의 비율이 40%대로 너무 높다. 수준이 청와대와 맞먹는다. … 물론 능력이 있으면 하위직에서도 얼마든지 계급이 상승할 수 있으나 고위 정책을 입안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자질은 정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런 식으로 하다간 인사 감사를 통해 이룩해보려던 인사개혁은 물 건너가겠다. (67쪽) 
→ 이 대목은 우선 행정고시 등을 통한 고급공무원의 채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데, 기존의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롭게 볼 부분도 있지만, 이게 타당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9급에서부터 올라온 공무원들이 보수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된 인사개혁안을 제출하고자 한다면 이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참고로 공무원노조는 행정고시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 2000-01-07(금): 왜 정부에는 힘 있는 기관과 힘이 없는 기관이 있다고 할까? 정부면 다 정부고 힘이 있으면 다 있고 없으면 다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정부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봉사하는 것으로 역할을 인지하기 마련인데, 대부분 국민을 압도하고 있다. 인ㆍ허가권을 갖는다든가, 자금을 지원한다든가, 법규를 만들어 규제한다든가 시장을 통제할 수단이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각 부처는 국민인 고객을 상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힘 있는 부처 어쩌고 하는 것은 정부부처 중에 통제수단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감사권, 조사권, 인사심사권, 예산권, 직제(조직)권을 갖는다든가 하는 것을 이른다. (97쪽)
 
○ 2000-02-11(금): 삼성의 인사시스템은 1992년부터 매우 유용하고 체계적으로 구축됐는데 위원회 설립 이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취임 후 과장들에게 기업의 예를 배워오라고 그렇게 주문을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다시 리뷰하고 가능한 우리도 빨리 기업의 인사운영 방식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111쪽) 
→ 정부와 기업의 인사운영 방식이 같아야 하나. 이럴 때 보면 김광웅 교수가 주장하는 논리가 일관되기보다는 즉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감사원 감사
- 2000-02-11(금): 감사의 기본취지가 잘못된 것을 밝혀내는 데 치중하지 그것을 고쳐 앞으로 잘하게 한다는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공무원들이 나쁜 일을 한다는 전제를 밑에 깔고 업무의 잘못을 밝혀내려고 한다. 동시에 회계감사만 해도 벅찰 터인데, 직무, 정책감사를 하려고 든다. 그들은 결코 정책 분야의 전문인일 수는 없다.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감사를 하는 예로, 용역보고서가 연말에 들어왔는지를 출판사와 인쇄소에 가서 확인하려고 든다. 보고서의 내용과 질이 어떠한지는 따질 줄 모른다. 감사는 정책에 관한 것을 따지는데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강변한다고 직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사는 심지어 실로 엉뚱한 내용까지 들춘다. 감사원이야말로 개방직으로 유능한 외부 인력을 흡수하여 제발 아날로그 시대의 감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111-112쪽)
 
○ 2000-09-18(월): 2년 반 내내 개혁을 주도해왔던 기획예산처는 결국 오늘 아침 신문에 의하면 공기업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신문의 표제는 석탄공사가 연 800억 원의 적자를 내고도 건재하다는 것이 141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적발한 감사원의 발표이다. … 이러고도 개혁을 해왔다니 참담할 뿐이다. 이유는 노조의 반발이 큰데다가 공기업의 임원들이 대개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간 사람들이어서 정부의 개혁이 항상 벽에 부딪친다는 것이다. 관료개혁의 한계를 또 다시 느끼게 된다. 정부개혁은 관료에게 맡겨놓으면 안 된다.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해야지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 위원회의 직제 개정 건도 그 희생물인데, 구조조정이 뭔지도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맡겨지니 성사될 리 만무하다. 앞으로 장관은 관료만 하던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된다. 관료출신이더라도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이어야 한다. (227쪽) 
→ 공기업 개혁을 비판하다가 슬그머니 관료 주도의 개혁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의 결과는 지금과 같다. 방만경영. 이 때는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 때인 모양이다.
 
○ 개방형 임용제
- 2000-11-03(금): 정부혁신추진위원회에 보낼 안건으로 개방형 임용제에 관한 것을 정했다고 한다. 정부의 개혁이 이런 식으로 가니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개방형 임용제에 관한 것은 아직 시행한 지가 8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추진위원회의 민간인 10인과 관련 부처의 장관들이 모여 이 문제를 새로 논의하겠다니 참으로 딱하다. 제발 사각에 묻혀있는 개혁 안건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그런 것은 하지 않고 다 해놓은 것을 재론하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개혁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의제를 설정하면 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회의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추진위원회는 각 부처별로 이견이 있어 쉽게 합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논의했으면 한다. (205쪽)
 
- 2001-01-06(토): 개방형 임용제는 현재까지 78개의 자리를 개방했는데, 공무원이 67명으로 과반수가 훨씬 넘고 민간인은 그 중 11명에 불과하다. 67명 중에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앉아 자리를 차지한 공무원이 26명이나 된다. 개방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보수며 근무여건 등에 회의를 느끼는 민간부문의 전문인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인데다가 정부의 각 부처도 자기 식구들에게 자리를 주려고 하지 남에게 양보할 생각을 갖지 않는다. 더욱이 그 중 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자리는 38개 직위에 불과하다. 자체 전보면 굳이 우리에게까지 와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은 폐쇄형 그 자체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간부들이 용역을 주자고 한다. 지난 공무원 여론조사에서 이화여대팀이 충분히 파헤쳐놓은 자료는 보지 않고 또 용역을 주겠단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개방형 제도가 왜 잘 안 되는지, 또는 그나마의 효과는 어떠한 것인지를 공무원들에 다 물어 잘 분서해놓았다. 관료들의 단점은 해놓은 것을 활용할 생각을 아니하고 중복되는데도 또 새롭답시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하는 데 있다. (275쪽)
 
○ 광주일고
- 2001-02-14(수): 대통령 집무실에 가서 인사운영의 쇄신책에 관해 특별보고를 했다. 두 수석이 배석한 가운데 통계자료를 가지고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를 했고, 정무직은 정치적인 임명이라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나 정부산하기관의 인사문제는 편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특정고(광주일고)의 고위직 승진이 과거 정부에 비해 두드러졌다는 사실도 설명했다. (292쪽)
 
- 2001-06-16(토): 아침 간부회의에서 또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공통점은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예산총괄심의관(임상규)이 “위원회가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이냐, 인사정책지원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각 부처에 주어야 할 서버의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고 했단다.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10대 과제에 들어가 있는 것을 새삼 안해주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 한국의 관료들은 말을 멋대로 한다. 자신의 기관더러 뭐 한 것이 있느냐고 하면 그들은 억울하지 않을까? 
→ 역시 광주일고는 빠지지 않는다. 하긴 호남에서 명문고하면 일고를 빼놓을 순 없을 테니, 호남정권에서 호남명문고가 약진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티를 내야 할까.
하지만 김광웅 교수가 광주일고를 유독 지적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예산총괄심의관이 맘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면, 그 개인에 대해 비판할 일이지 왜 이를 학연과 결부지어 판단하는 걸까. 그 사람도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만큼 김광웅 교수가 가르쳤을 텐데, 그렇다면 행정대학원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나. 임상규 씨는 노무현 정부의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지금은 순천대 생명산업과학대 웰빙자원학과 교수로 있단다. 역시 전직 관료들은 굶어죽고 살지는 않는구나.
 
○ 고위공무원단 제도
- 2001-03-27(화): 작년에 대통령에게 보고한 고위공무원단에 관한 것은 그 현실성이 없는데도 하겠다고 덤볐다가 최근에 총리실에서 사정을 문의해오는 통에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제도이다. 그런 것을 용역도 하고 제도도 만들어보겠다고 하니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되지도 않을 제도를 연구하며 낭비만 하는 골이 된다. (307쪽) 
→ 개방형 임용제와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그리 멀지 않은데, 개방형 임용제는 되고,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안되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지금 시행되고 있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보면 김광웅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할런지...
 
○ 계급 통합
- 2001-06-21(목): 하위직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계급을 부분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것은 앞으로 조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조직은 어차피 피라미드에서 마름모꼴로 바뀌어야 한다. 중간층이 두터워지고 상위직도 하위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위직의 태반은 민영화되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계급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즉 9급과 8급, 그리고 7급과 6급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 맡은 직무가 중요하고 그 성과와 책임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계급관에 사로잡혀 있으니 큰일이다. 언젠가는 계급에 대한 애착이 무너지고 일 중심으로 마음이 모아질 것이다. (351쪽)
 
○ 공무원노조
- 2001-11-20(화): 새로 부임한 한덕수 정책기획수석은 그동안 생각을 나눌 기회가 없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의견에 내가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다. 노동 수석의 얘기처럼 공무원 노조는 일반과 같이 직장 단체로 인정을 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생각이다. 노조활동의 미성숙이나 노동생산성 문제, 그리고 경제 사정 등을 감안할 때 주 5일 근무제도 그렇고, 공무원 노조도 그렇고 더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한다. 노동부 장관과 산자부와 행자부 장관의 입장이 판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위원회는 민간 기업부터 40시간 일하도록 하고 공무원은 교사나 민원이 아닌 정책부서부터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리고 24시간 근무하는 경찰이며 병원은 맨 나중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도 기능직과 현업 부서에서 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까 우선 직장 단체의 이름으로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면서 OECD 가입조건으로 내세웠던 공무원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노조문제의 실질적 내용정리는 위원회가 하면서, 이 일과 근무시간 단축을 노사정이 해오던 대로 빨리 마무리 짓기로 했다.
장관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노사정, 노동부, 복지수석 등의 의견이 다 다른 것이 이채로웠다. 정책수석과 위원회는 의견이 다른 듯하지만 방향은 같고 신중히 해나가자는 데는 이의가 없어 다행이었다. (418-419쪽)
 
- 2002-02-07(목): 공무원노조 설립에 관한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아침에 프라자 호텔에 모였다. 노사정위원회, 교육부, 행자부, 노동부, 인사위, 정무, 노동복지 등. 각 부처의 입장을 먼저 개진했다. 의견은 2월 안으로 정부 단일안을 내는 것이다. 위원회의 입장은 지난 가을의 회의 때처럼 공무원 노조는 노사의 틀이 아닌 특별권력 관계로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복무규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 명칭도 공무원 단체로 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행자부와 정무 쪽이 같은 의견을 개진했다. 1996년 10월 OECD 가입 때 약속도 노사관계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릴 것과, 1998년 2월 6일의 사회협약도 정부 출범 전의 일로 공무원 노조를 인정키로 한 것은 직장협의회에서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할 적의 경우인데, 실제로 협의회를 통해 공무원 보수를 포함해서 근로조건이 많이 향상되고 있는 실정을 결코 외면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무원 노조를 만들 경우 공무원이 신분보장을 포기해도 좋은가에 관해 합의가 있어야 한다. (455-456쪽)
 
- 2002-04-23(화): 행자부 장관, 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정무수석, 그리고 노동복지 수석과 모모야마에서 조찬회의를 했다. 공무원 노조와 주5일 근무제에 관한 의논인데, 주로 노조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는 회의였다. 노사정 위원장 빼고는 거의 모두가 공무원 노조의 명칭을 직장단체를 쓰지 않고 노조라는 명칭을 써도 되는 것으로 양보하자는 의견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에 규정을 해도 좋다는 의견이었는데, 이는 헌법이나 국가공무원법, 공무원 복무에 관한 규정 등이 공무원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것과 너무나 거리가 먼 주장들이다. 행자부 장관조차 특별법이 아닌 것도 좋다고 하는데, 공무원의 노조활동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신분보장 등에 관해 근본적인 변화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단체협상권을 인정해도 교원노조처럼 법령, 조례, 예산 등은 근로기준 법정주의에 따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인데, 그런 생각들은 미처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장영철 노사정 위원장은 자신이 공무원 노조를 인정하는 문서에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버틴다. 결국 입법절차를 밟기로 했다. 노사정에서 합의가 안되면 안 되는대로, 그리고 노동부나 행자부 둘 중에서 제안을 하는 형식으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자세한 논의를 하는 단계로 가기로 했다. 다만 정부쪽 협의의 당사자가 중앙인사위원회라는 것이 걸린다. 상당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각오가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486쪽) 
→ 공무원 노조를 직장 단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공무원노조가 아닌 공무원단체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고, 결국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의 시기상조론을 펼치는 것도 참 우습다. 노조활동의 미성숙? 경제 사정? 도대체 그렇다면 언제 허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을까. 게다가 근로조건이 많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노조가 불필요하다는 논리는 또 무엇인가. 공무원노조가 단지 근로조건 향상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무원노조와 신분보장을 대립시키는 것도 검토할 부분이다.
노동부 장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무직 관료들이 공무원노조에 부정적이다가 바뀌고 있는 것을 김광웅 교수의 일기는 보여준다. 김대중 정권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인정하고서도 여러 가지 제약점을 들어 공무원 노조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음이 글의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 2001-11-22(목): 의회 운영의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왜 같은 질문에 녹음을 틀어놓은 듯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다. KOC의 판단에 대해 정치적 복선 어쩌고 하면서 계속 문화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는데 답변은 항상 똑같다. 의원끼리라도 교통통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인봉 의원이 검찰총장과 국정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데 이에는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니 중앙인사위원장도 책임을 느끼고 사직할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다. 답변할 기회가 없어 답하지 못하고 끝난 후 시스템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의원들은 질의에서는 그렇게 날카로워도 영외에서는 항상 친절하다. 왜 그럴까? 여야 의원끼리도 마찬가지다. (420쪽) 
→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예결특위 단상
- 2001-11-28(목): 예결특위에 앉아서 느끼는 단상 몇 가지를 적는다.
첫째, 의원들이 나라 예산을 다루면서 자신이 속한 지역 문제 내지는 다른 지역 문제를 지나치게 다룬다. 국회는 나라의 문제를 모두 용해해 해결해야 할 장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의원 서로가 호칭할 때 그렇고 국무위원이 의원을 호칭할 때도 그러는데, 정작 서로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실제로 마음속에서도 존경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호칭 관행부터 없앴으면 한다. 셋째, 질의 시간을 지키는 의원이 하나도 없다. 이런 기초훈련이 안 돼 있는 것이 의원들이다. 넷째, 의원들만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말분 정부쪽의 의견은 말할 기회를 거의 박탈당한다. 답변의 기회가 뒤로 미루어지는데 산회 때까지 발언할 수 있는 국무위원은 댓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명 이상이 늦은 밤까지 관련도 없는 문제를 들으며 앉아 있어야 한다. 되도록 일문일답으로 그때그때 문제가 석명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의원들은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한다. 동료 의원들이 여러 번 한 이야기를 보좌관이 써주었기에 그대로 읽고 있다. 여섯째, 국무위원도 그렇지만 의원들의 이석이 너무 잦다. 국회는 아직도 너무 비능률적이다. (423-424쪽)
 
○ 2002-01-07(월): 관료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문장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고 남을 설득시킬 줄 모른다. 자료를 적절히 구사해 얼마든지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데도 고식적이고 판에 박힌 말만 되풀이할 뿐 논리도 자료도 없이 매일매일 똑같은 일만 한다. 지난 예산 국회에서도 답변 자료를 써주는 것을 보면 도움은커녕 하나도 참고가 되질 않는다. 처음에 시도했던 어학 공부하기도 언젠가 슬쩍 없어졌고, 적어도 한 지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권고도 듣는 둥 마는 둥 전혀 반응이 없다. 언어 표현 등을 고치라고 한없이 주문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440쪽)
 
○ 정책토론
- 2002-01-19(토): 정부정책평가위원회의 행사가 오전 청와대에서 열렸다.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이 정부가 새롭게 한 획기적 운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모여 행사를 하는 일종의 쇼라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대단히 돈을 들인 듯한 보고대회 간판부터 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다 아는 것을 왜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문에 이미 비판이 다 나와 있다. 정부가 미처 보지 못한 것, 잘못된 것 등을 중심으로 그 원인은 무엇이며 배경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되었는지를 대통령 앞에서 ‘토론’하는 것이 옳다. 시간을 쪼개 보고하고 대통령은 한 말씀하시고 또 짜놓은 각본대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정책을 평가하려면 사건중심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천착했어야 옳았다. 예산을 5억 원씩이나 들여 61회의 전체회의, 240회의 조별회의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부처별, 지자체별 평가순위를 매긴 것도 어찌 보면 학생을 다루는 것 같아 평가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깊이가 없어 보인다. 좀 더 내실을 기하는 운영방식이 아쉽다. (449쪽)
 
○ 인사기구의 문제
- 2002-05-23(목): 신임 위원장 임명에도 이견이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할 인사위원장 자리를 호남 출신, 그것도 지방자치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다. 민정쪽 사람은 한마디로 인사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저 소문 등이 포함된 네거티브 리스트나 갖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행자부 출신들이 공직기강비서직을 맡고 있다. 이들은 대개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사람들이다. 인사, 예산, 조직을 관리하는 관료들의 공통된 성향이다. 문제는 민정수석실은 철저한 ‘엽관주의 논리’를, 행자부의 인사 파트는 ‘계급제적 연공서열주의 논리’를, 그리고 중앙인사위원회는 ‘실적주의의 논리’를 펴니 조화가 이뤄질 수가 없다. ‘정치관료’의 인사를 망쳐놓은 공직기강비서실 때문에 직업관료 인사를 개혁해간 인사위원회가 덤터기로 책임을 함께 지게 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관 간의 연계가 잘못되어 있다. 즉, 중앙인사위원회는 정책기획비서실이 아니라 공직기강 쪽과 연계돼 역할을 분담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양 비서실이 힘이 대등하면 갈등을 빚고 우리는 그 등쌀에 새우등이 터진다. 그러나 인사제도의 개혁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카운터 파트는 정책기획수석실일 수밖에 없다. (504쪽)
 
- 2002-05-24(금): 인사기구 간에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근본원인은 서로의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정의 공직기강은 선거 때 고생했거나 내지는 친인척들을 위해 자리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인사의 기본원리가 엽관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국회에 가서도 그랬고, 또한 일반론으로 민주주의가 선거를 거치기 때문에 미국도 그렇고 선진 어느 나라도 선거 팀이 정부를 맡을 수밖에 없다. 정무직의 인적배경은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전문성 등 능력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소위 ‘정치관료’가 판을 치면 ‘일반 직업관료’가 주눅이 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사의 집행을 주로 맡는 행정자치부는 계급제적 연공서열주의의 논리에 집착해 있다. 반면 중앙인사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실적주의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 이러니 인사기구 서로가 불협화음을 연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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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한권의 책] 교과서로는 알 수 없는 관료사회와 인사개혁 현장 (세계, 민기범 생각의나무 비소설팀장, 기사입력 2009.05.15 (금) 17:12)
통의동 일기-초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 3년의 공직 실록/김광웅 지음/생각의나무/2만2000원
 
“지금이야 사람들이 얼마나 사 보겠어? 그래도 100년쯤 지나고 나면 찾는 이가 제법 많아질 거야.”
“그야 그렇죠, 선생님.”
 
반백의 노교수가 최종 교정지를 넘겨주며 한마디를 보탠다. 편집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원고더미만큼이나 묵직한 ‘100년’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노교수는 행정학자 김광웅이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장, 한국공공정책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서울대 공공리더십센터 상임고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산하 ‘좋은 책 선정위원회’ 위원장, 희망제작소 상임고문 겸 ‘좋은 시장학교’ 교장, ‘미래대학 콜로키엄’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통의동 일기’는 김광웅 교수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내며 매일 썼던 공직 일기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좋은 정부’ ‘바람직한 정부’를 위한 바탕 자료를 삼고자 썼던 원고가 200자 원고지로 모두 7000여장. 저자의 성실함과 열정이 존경스럽다.
 
이것을, 민감하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을 덜어냈다 해도, 저자가 3분의 1로 줄이고 편집자가 다시 10%를 줄여 독자 앞에 내놓았으니 좀 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두 사람 모두 같다. 분량뿐 아니라 편집자로서 책을 연출하는 데 있어 대중성과 사료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고민이 많았다.
 
‘통의동 일기’는 학자적 균형감각과 혜안으로 관료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인사위는 인사행정의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개혁 사무를 관장하며, 3급 이상 공무원의 채용과 승진 심사, 각 행정기관의 인사 감사, 인사·보수 등 인사관계법령의 제정 및 개정안을 심의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사기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알던 관료의 언어와 행태, 청와대와 각 부처의 관계, 정부부처 간의 갈등, 정책과 관리 혁신, 정부와 의회·언론·지식인 집단·NGO와의 관계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준다. 실로 교과서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부 관료사회와 인사개혁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통의동 일기’를 읽다 보면 사막처럼 지루할 것 같은 공직사회에서도 인간 냄새가 폴폴 난다. 수많은 고위직 공무원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인사개혁의 중심에 선 저자의 열정과 감동, 고뇌와 탄식이 이어진다. 공무원들에게 ‘글 좀 제대로 쓰라’고 주문하는 그답게 문장들도 천의무봉은 아니지만 매끈하기 그지없다.
 
책이 나오면 연락드리겠다고 하자 반백의 노교수 왈, “이번에 책으로 나온 건 해가 떴을 때 얘기고, 해가 진 뒤가 더 재밌어. 사실은 그게 진짠데 …… 그건 책으로 못 내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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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7:47 2009/07/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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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의약품 접근권은 보장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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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약품과 관련된 논란은 특허권이 가진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한국에서 특허청으로 대표되는 국가기구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사례이다. 특허청이나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입장이 궁한 것을 보면 의제설정 자체가 막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책학에서 좋은 연구대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시민사회단체를 제외하고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 어쩐다. 아무튼 많이 알리는 수밖에...
 
어제는 우연히 경인방송에서 방영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게 되었다. 푸제온 강제실시와 딱히 연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푸제온 강제실시 논란이 떠오르더라.
 
필수의약품과 관련한 논란 중에서 희귀의약품 공급은 전형적인 시장실패의 영역일 터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고, 정부가 나서서 마스터 플랜을 세워야 하며, 희귀의약품 공급을 위한 공공제약회사를 세우자고 하는 최상은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바로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특허청도 푸제온과 같은 필수의약품의 공급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공공이란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관련기사만 발췌하여 담아놓는다.

 


필수의약품 강제실시 제 2라운드 논리 싸움 '치열' (메디컬투데이 권선미 기자, 2009-04-02 17:25:35)
태국 "강제실시 통해 1억 달러 이상 경제적 이익 얻어"
 
필수의약품의 경우 인권적 측면에서나 법률적 측면, 경험적 측면에서 제약사가 약가를 이유로 공급하지 않는다면 강제실시를 통해서라도 의약품 접근성이 보장돼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혈병이나 에이즈 등 희귀난치성 환자의 치료를 위한 필수의약품의 경우 제약사가 신약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생명에 심각하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공급 정책의 경우 무엇보다 인권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성이 높다는 것.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필수 의약품 접근권 보장 방안마련 토론회 의약품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라는 주제로 푸제온 등 지난해 필수의약품 공급거부로 큰 논란을 빚었던 사안에 대해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임준 가천의과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먼저 보건의료의 경우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시장이 작동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희귀난치병질환자들이 많이 복용하는 필수의약품의 공급이 중단될 때 이들은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어 "인권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필수의약품의 공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만일 필요하다면 정부차원에서 공공제약사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말해 보건의료의 경우 소비자주권이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보장을 통해 경제적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공급자에 대한 집합적 대리인으로 보험자(건강보험)의 역활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적 측면에서 환자의 생존을 위해 필수의약품이 공급돼야하며 필요하다면 정부가 공공 제약사 설립등을 통해 약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정정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변호사 역시 필수의약품의 강제실시에 대해 "건강은 다른 인권의 행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본적인 인권으로 규정돼 있다"며 "강제실시에 대한 법적 근거는 충분히 마련돼 있으나 이에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논란이 된 제품의 강제실시가 이뤄진 태국의 사례 역시 소개됐다. 태국의 Dr. Yot Teerawttananon 박사는 "태국의 경우 강제실시를 통해 에이즈약 등 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상당히 증가시켰다"며 "실제로 태국의 경우 강제실시를 통해 1억 3200만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태국의 강제실시의 경우 정부가 약 접근성 확보를 위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강제실시가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필수의약품의 강제실시에 대해 다국적의약산업협회 관계자는 "강제실시를 논하기 전에 이런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제약사의 노력 등이 무시되고 있다"며 "신약 개발을 위해 한 건당 평균 10억달러 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희귀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의 경우 다른 신약과 마찬가지로 수십억의 개발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환자 규모가 적기 때문에 비용 증가는 당연한 것"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의 경우 희귀의약품 개발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신형근 국장은 "최근 다국적제약사의 특허신약 정책이 선진국국에 대해서는 최고가를 요구하면서 약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이나 빈국에 대해서는 약 공급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며 "국민 보건을 담당하는 복지부의 역할이 중요하며 필수의약품 등 공급을 실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특허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비판했다.
 
가천의과대학교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 역시 "약을 생산하는 제약사가 희귀난치성약의 경우 자신들이 희생해서 약을 공급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부정적"이라며 "정말 희귀난치성 질환은 약이 없으며 약이 있는 것은 이들 제약사에서 특허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논란에 대해 필수의약품 등 의약품 공급을 주관하는 복지부 관계자는"기본적으로 특허가 남용됐을 때 건강권이 문제가 됐을 때는 강제실시가 수단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그러나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강제실시를 알아본 결과 이를 시도할 때 약 2배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정부의 입장에서는 강제실시에 대해 입장이 변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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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의 인권이야기] 기술 발전도, 의약품 이용도 가로 막는 특허독점 (인권오름 제 150 호 2009년 04월 29일 10:46:33,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활동가)
‘푸제온 강제실시’를 둘러싼 논의들
 
최근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을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써 ‘강제실시제도’에 관한 포럼 및 토론회가 연이어 있었다. 건강권과 특허권을 둘러싼 여러 쟁점과 주장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 있었는데 혼자 열 받고 끝내기에는 건강권에 반하는 치명적인 말이라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특허가 기술발전을 이끈다는 거짓말
특허제도는 기술의 공개를 통해 기술의 이용을 도모하고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제약회사는 특허로 보장된 독점권을 이용하여 오히려 기술발전과 그 이용을 막고, 천문학적인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산단가가 700원 남짓한 글리벡을 노바티스는 23,000원에 판매해서 세계 제약회사들 중 톱 5에 들 수 있게 된 대신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백혈병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백혈병 치료제인 스프라이셀 역시 생산단가가 1,900원 남짓한데 그 약값은 55,000원이다. 로슈와 트라이머리스는 돈이 안 된다며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연구와 푸제온에 내성이 생겼을때 사용할 차세대 약물의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이 푸제온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가 관련기술을 개발해도 사용할 수가 없다. 특허로 보장되는 독점권 즉 ‘유일함’은 환자에게 생명의 빛이 아니라 칼날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세계 각국의 환자와 활동가들은 ‘특허에 의한 살인(death under patent)’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러한 독점의 칼날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강제실시제도이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로서, 특허권자 외에 정부나 제 3자가 특허로 보호된 그 기술을 이용하게 하는 제도이다.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되면 특허권자인 제약회사 외에 제3자가 똑같은 의약품을 만들고 공급할 수 있다.
 
로슈가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에이즈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인 ‘푸제온’을 한국에 5년째 공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에이즈환자가 많지도 않은데 약값을 올려주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푸제온 약값은 푸제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약가제도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푸제온 약값을 올려주게 될 경우 선례가 되어 약가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복지부는 약값을 올려주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연간 2200만원을 낼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건강할 자격이 없다’는 로슈에 대해 복지부는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킬 방법이 없다며 손을 땠다. 그래서 결국 작년 12월에 환자단체와 사회단체는 ‘푸제온’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도록 강제실시해야 한다며 특허청에 청구하였고, 6월말에 그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누구나 건강할 권리, 누구에게는 보장할 수 없다고?
3월 31일 특허청에서 있었던 ‘강제실시제도 전문가포럼’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강제실시 외에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자기잘못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차별적으로 보험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는 주장을 했다. 민간보험회사에서도 대놓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에이즈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을 차별하자’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성적으로 문란하여, 부도덕하여, 불법적이어서’ 에이즈에 걸렸다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 대가로 죄인취급을 해야 한다는 편견과 차별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의 눈과 기준으로 ‘문란함’과 ‘부도덕’과 ‘불법’을 규정하는가? 의학적으로나 국제사회의 경험으로 볼 때 오히려 그러한 차별과 편견이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에이즈의 지구적 확산에 대처하기위해 구성된 UNAIDS같은 국제기구는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빈곤, 성차별, 성소수자차별, 이주민차별을 철폐하고, HIV감염인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계획을 주문하고 있다. 환자를 차별하자는 그 연구위원의 주장이야말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는 사회연대를 원리로 하고 있다. 질병의 발생이 개인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의약품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 하에 마련하여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싼 약값을 낼 수 있는 사람만이 건강할 ‘자격’이 있다는 제약회사의 주장이나, 이에 즉각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환자를 차별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보건정책연구자의 말이 오가는 한국사회의 수준은 정말 급이 떨어진다.
 
제약회사에게 돈벌이가 되는 의약품제도로 바꿔라?
한편 ‘강제실시 전문가포럼’과 4월 2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필수의약품 접근권 보장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다국적 제약산업 협회의 변호사는 ‘G20의장국이자 OECD가입국인 한국에서 강제실시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태국정부가 7가지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를 한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태국정부는 2006년과 2007년에 비싼 에이즈치료제, 항암제 등을 건강보험체계에서 공급하려고 강제실시를 발동한 바 있다. 그는 강제실시는 가난하고 무법천지인 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G20의장국이자 OECD가입국으로서 ‘급 떨어지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G20의장국은 2008년 브라질, 2009년 영국에 이어 2010년에는 한국이 맡게 된다. 2008년 의장국이었던 브라질은 2007년 5월에 에이즈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동했다. 게다가 OECD가입국인 미국 역시 9.11 이후 탄저병의 확산 ‘우려’에 대해 강제실시를 고려를 하는 것만으로도 약값을 대폭 인하시켰다. 미 의회 화물승강기에 탄저균 포자가 검출되면서 2001년 9월말 당시 32건의 노출 사례, 13명 감염사례, 이중 3명이 호흡기 감염으로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 탄저병 치료제로는 바이엘의 ‘시프로’가 유일했기에 미국정부는 시프로의 대량생산과 가격인하를 요구했으나 바이엘이 거부했다. 톰슨 미국보건장관이 2001년 10월 23일에 “바이엘이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면 미국 내 특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하자, 바이엘은 생산량을 4배로 늘리고 4불 50센트에서 95센트로 가격을 인하하였다. 그가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말은 푸제온 강제실시는 에이즈환자의 건강권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윤을 위해 근거도 없는 비싼 약값을 지불하도록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바꾸라’는 주문의 다른 표현이었기에 너무도 섬뜩했다. ‘제약회사의 이윤을 보장하지 않는 각국의 의약품통제정책이나 약가제도는 불법이며 무시해야 한다‘는 억지를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이 두 사람의 주장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한국의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바꾸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뭐가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필수약제를 건강보험체계에서 공급하려고 강제실시를 발동했던 태국사회가 부끄러운가? 건강권을 무시하는 말이 통하는 한국사회가 부끄러운가? 6월말이면 시민사회가 청구한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다. 특허에 의한 살인을 받아들일 것인지, 건강권을 보장할 것인지 한국사회가 어떤 결정을 할지에 따라 약가제도와 건강보험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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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제온' 강제실시 발동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 (특허청 보도자료, 2009-06-19 13:03)
특허청, 시민단체의 강제실시 재정청구 기각
 
특허청(청장 고정식)은 지난 '08. 12. 23 에이즈감염인연대 '카노스'와 정보공유연대 'IPleft' 등 시민단체가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신청한 강제실시 재정청구에 대해 기각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은 HIV 복제가 나타나는 말기 에이즈환자에 적용되는 치료제로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와 보건복지가족부와의 3차에 걸친 약가협상 결렬로 4년간 국내에 공급되지 않자, 시민단체가 특허법제107조제1항제3호 규정에 의해 특허청에 강제실시를 청구하였다. 특허청은 특허법상 강제실시 발동의 요건에 충족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 및 포럼 등을 통해서 분야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부의 의견 그리고 청구인 및 피청구인 측 주장을 청취하고 검토하였다.
 
그 결과, "푸제온의 경우는 강제적으로 통상실시권의 설정을 인정할 정도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또 강제실시의 실익도 없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기각하기로 했다" 고 발표하였다.
 
구체적으로 "특허발명의 실시물인 푸제온은 일부 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푸제온의 공급을 위한 조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는 인정되나, ▲푸제온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현재 무상공급프로그램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통상실시권이 허여되더라도 청구인에 의해 푸제온이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공급되기 어렵다는 점▲푸제온 이외의 후천성면역결핍증 치료제가 국내 시판 단계에 와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각이 불가피하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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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강제실시 기각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6-19 오후 5:26:58)
인권위 권고 무시…인권위는 "통상 문제, 가능성 없다"
 
국내 환자와 외국 제약업체 사이에서 특허청이 제약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청은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신청한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날 특허청에 내놓은 의견에 배치되는 결과다.
 
강제실시 조치가 시행되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한국 HIV/AIDS 감염인연대 '카노스(KANOS)'와 정보공유연대 'IPleft'등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푸제온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것을 청구했었다.
 
인권위 역시 환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푸제온과 관련한 특허권의 강제실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인권위는 이날 "푸제온은 기존의 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에 저항성이 생긴 AIDS환자의 생명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현재 안정적인 푸제온 공급 방안이 신속하게 마련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푸제온이 2004년 5월 국내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후 보건복지가족부와 해당 제약사인 한국로슈가 약가 협상을 계속해 왔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서 아직 국내에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푸제온을 개발한 제약사 로슈는 1회 주사분 가격이 3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가 하루에 푸제온 주사를 2대씩 맞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너무 높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인권위 역시 이런 입장이다. 로슈가 정한 가격대로라면, 에이즈 환자는 푸제온 가격으로 한달에 180만 원 이상을 써야 한다. 생업을 구할 수 없는 에이즈 환자가 감당하기에 무리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특허청은 이날 나온 인권위 입장을 무시했다. 반면, 인권위는 이날 "많은 나라에서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거나 발동해 왔다"며 "푸제온 관련 특허 발명을 강제실시한다고 해도 통상 문제가 유발되거나 해당 제약사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었다. 현재 푸제온이 반드시 필요한 국내 에이즈 환자 수는 보건복지가족부 측이 155명, 제약사인 로슈측이 68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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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에이즈 약 특허권 중단 권고 (한겨레, 안창현 김양중 기자, 2009-06-19 오후 07:28:56)
특허청 “요건 충족 안돼” 의견 묵살
한달 180만원…싼 ‘복제약’ 필요 

 
푸제온은 2004년 5월 국내에서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정부와 제약사의 약값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4년 이상 공급되지 않았다. 특허 발명의 강제 실시권 발동은 외국에서도 여러번 있었다. 타이 정부는 2008년 1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해 강제 실시를 결정해, 제약사 노바티스가 저소득 가구에겐 글리벡을 무상 공급하도록 했다. 미국 정부도 2001년 탄저병 치료제 ‘사이프로’에 대해 강제 실시권 발동을 협상 카드로 내밀어 독일 제약사로부터 절반 값에 납품받은 바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은 “의약품의 접근성 증진을 위해 개별 국가들이 강제 실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 인권단체인 나누리플러스의 권미란 활동가는 “환자의 생명권과 지적재산권 보호와 충돌할 때 국가는 인권을 우선적 가치로 중시해야 한다는 인권위의 의견을 특허청이 무시한 것”이라며 “세계무역기구 선언문도 에이즈나 결핵, 말라리아 등 유행병은 강제 실시를 허용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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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AIDS藥 푸제온 강제실시 안돼" (메디컬투데이 권선미 기자, 2009-06-21 06:59:57)
인권위, 강제실시 바람직 vs 특허청 강제실시 요건 안돼
 
강제실시 논란이 컸던 로슈의 에이즈약 푸제온의 강제실시를 특허청이 기각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허청은 19일 에이즈감염인연대 '카노스'와 정보공유연대 'IPleft' 등 시민단체들이 중심으로 제기한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재정처분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5일 로슈가 푸제온의 무상공급프로그램을 통해 제품 공급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푸제온을 2명만 신청한 상태다.
 
이날 브리핑에서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국 김영민 국장은 "현재 식약청에서 푸제온을 대체할 수 있는 약제가 나오고 있으며 로슈에서 푸제온의 생산원료 등을 독점하고 있어 강제실시를 허용해도 이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강제적으로 통상실시권의 설정을 인정할 정도로 푸제온의 강제실시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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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치료제, 특허권 강제실시해야" (매일노동뉴스, 2009년 6월22일, 한계희 기자)
인권위 "필수의약품 지적재산권보다 생명권 우선"
 
국가인권위원회가 에이즈(AIDS) 치료제인 ‘푸제온’에 대해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제3자(국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인권위는 최근 환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청장에게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을 강제 실시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푸제온 공급이 헌법과 유엔 사회권규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건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적재산권 보호와 생명권·건강권 보호 사이에 충돌이 있다 해도 국가는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푸제온이 기존 치료제에 저항성이 생긴 에이즈환자의 생명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현재로 안정적인 공급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외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경제활동이 원활치 않은 에이즈 환자가 한 달에 180만원이 넘는 약값을 자비로 감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이후 많은 나라에서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거나 발동해 왔다”며 “푸제온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한다고 해도 반드시 통상 문제가 유발될 것으로 보기 어렵고 보상규정에 따라 제약회사의 실제 경제적 손실도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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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기업의 이익 대 환자의 생명권, 무엇이 우선인가? 
특허청의 푸제온 강제실시 기각 결정 규탄 기자회견
 
푸제온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에이즈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약제이다. 로슈는 2004년 한국에서 푸제온 허가를 받았으나 약가 때문에 오늘 이 시간까지 정상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푸제온 공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 채 환자들을 방치해왔다. 마침내 보건복지부장관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푸제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강제실시 뿐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단지 ‘말’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로슈가 사회적으로 아무리 지탄을 받아도, 복지부가 아무리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아도, 환자들이 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 12월 23일 한국HIV/AIDS 감염인연대‘KANOS'와 정보공유연대IPLeft는 특허청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6월 15일 헌법과 UN 사회권규약 등에 근거해서 푸제온 강제실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푸제온은 필수약제이지만 현재까지 안정적인 공급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 지적재산권 보호와 생명권 보호 간에 충돌이 생겼을 때 국가는 인권을 우선적 가치로 존중·보호·실현해야 한다는 점, 강제실시권 발동이 통상문제를 유발하기보다 오히려 약가를 국내수준에 부합하도록 조정하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는 점, 제약회사의 경제적 손실보다 에이즈 환자의 생명권 침해 긴급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인권위는 푸제온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호를 위한 국가적 의무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인권위의 판단은 점점 생명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가고 있는 의약품 특허권에 대한 전 세계적인 각성 움직임과도 맥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특허청은 6월 19일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하였다. 비록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푸제온 공급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공급이 중단된 경위가 단지 약가협상의 결렬“ 때문이라면서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는 특허권을 제한할 경우 발명실시의 보호라는 특허권의 본질적 내용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약가협상 결렬로 공급을 거부하는 경우 현행 제도 내에서는 강제실시 이외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판단이다. 필수의약품의 공급 거부로 인해서 생명권이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발명실시의 보호라는 추상적인 이유만을 내세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특허청은 푸제온 강제실시 허여가 어떻게 발명실시를 약화시키는지, 특허권자가 어떤 손해를 받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근거조차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가장 중요하게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기각함으로써 훼손되는 생명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푸제온 공급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푸제온을 공급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강제실시를 기각시킨 것은 모순적이다. 특허청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기위해 어떤 방법으로 푸제온을 공급시킬 것인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둘째, 특허청은 푸제온 이외 기타 치료제가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푸제온이 환자의 생명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특허청 판단의 전제와 모순되는 것이다. 푸제온 이외의 신약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공급될지는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며, 공급된다 하더라도 에이즈치료의 특성상 다양한 치료제 선택의 경우를 열어두어야 한다. 셋째, 로슈가 현재 무상공급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일단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로슈의 무상공급은 문제의 ‘해소’가 아니라 문제의 ‘은폐’ 내지는 ‘잠정적 연기’에 불과하다. 특허청은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무상공급을 기각 근거로 삼는 안일한 자세를 취했다. 넷째, 청구인이 실시방법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기각사유로 들었는데,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 당시 인도 모 제약사의 모 의약품을 얼마에 공급할 수 있다는 구체적 계획이 제시되었으므로 글리벡 강제실시는 허여되었어야 일관성이 있지 않은가? 특허청은 ‘기각을 시키기 위해’ 갖가지 사유를 갖다 붙였다는 의혹을 면하기 어렵다.
 
강제실시는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한 제도이다. 의약품 때문에 공중의 건강이 위협받는 순간은 약값이 너무 높거나, 아예 공급 자체가 되지 않아서 환자들이 필요한 약을 먹을 수 없는 경우이다. 강제실시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우리는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한 특허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강제실시가 가능한 순간은 언제인가? 환자들이 아무 문제없이 약을 잘 공급받고 있을 때인가? 강제실시 제도의 목적과 필요라는 기본적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특허청의 정신 나간 이번 결정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복지부 장관마저도 인정했던 푸제온의 유일한 공급방법을 특허청이 기각해버린 것은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기각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환자사회시민단체는 특허청의 결정에 대한 국제적 항의 행동과 행정 소송 등을 비롯한 다양한 조치 등을 강구해 나갈 것이다. 거대한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속에 무고하게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내팽개친 특허청은 이번 결정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무책임한 특허청이야말로 ‘단지’ 존속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
 
2009년 6월 23일
한국HIV/AIDS 감염인연대‘KANOS',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공공의약센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인권운동사랑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공공의약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사회진보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정보공유연대IPLeft, 진보신당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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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의 인권이야기] 생명권을 기각당한 우리들에게 (인권오름 제 158 호 2009년 06월 24일 14:41:55,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활동가)
    
로슈가 짓밟은 생명들과 약값
2003년에 미국에서 에이즈 신약 ‘푸제온’이 출시되었을 때도 비싼 약값 때문에 사회단체의 항의가 있었지만, 비싼 약값이 에이즈환자의 치료와 지원에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그렇게 빨리 이 땅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2004년 11월에 푸제온이 한국에서 보험등재가 되었지만 초국적 제약회사 로슈는 약값이 마음에 안 든다며 아예 약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대표인 윤가브리엘이 기존의 에이즈치료제에 내성을 보였습니다. 한국에 공급되고 있는 약으로는 더 이상 치료의 진전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러고도 그는 대견하게 2년을 버텼습니다. 2006년 8월에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에이즈회의를 참가하고 돌아오자 그는 바로 입원을 했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랴부랴 울며불며 푸제온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고, 다행히 미국에 있는 Aid for AIDS란 단체로부터 무상으로 푸제온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슈는 2005년에 약가인상을 해달라고 복지부에 요구했다가 약값을 올려줄 이유가 없어 기각당하고도 다시 2007년에 약가인상신청을 냈습니다. 치료에 필수적인 약이지만 2008년 1월에 약가협상이 결렬되어 공급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했지요. 가브리엘은 다행히 푸제온을 구해 건강이 나아졌지만 ‘생명에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고 말했지요. 그래서 요행이 아니라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써 의약품을 이용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약은 사기업의 상품이라는 복지부의 답
로슈가 또다시 약가인상 신청을 한 걸 받아들인 복지부에 찾아갔습니다. 복지부는 ‘보험등재 고시에도 불구하고 업체의 상업적 이유로 계속 공급을 하지 않은 채, 수년간 몇 차례에 걸친 가격 인상 시도를 수용할 경우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였다’고 약가협상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푸제온이 다른 에이즈치료제와 비교하여 고가이고, 혁신성을 인정할 근거가 없는 바, 약가 인상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답니다. 즉, 근거도 없이 약가를 인상해줄 경우 건강보험재정의 낭비를 초래하고 약가제도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었습니다. 복지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복지부는 로슈가 원하는 대로 약값을 올려주든지, 강제실시를 발동하든지 2가지 방법밖에 없다며 의약품, 의료보험제도와 관련된 법상에 의약품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음을 시인했습니다.
 
특허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사익과 공공의 이익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특허제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특허권자만 독점 생산할 수 있는 약을 제3자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입니다. 특허남용으로 사람이 죽어갈 때 그 폐해를 막기 위해 있는 제도입니다. 로슈에게 로열티를 주는 대신 우리에게도 푸제온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국이나 브라질정부가 에이즈치료제를 비롯한 필수약제를 건강보험체계 속에서 공급하기위해 강제실시를 발동했던 것처럼, 복지부가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그렇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푸제온은 어떻게 되는 거냐, 에이즈환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기자들이 묻자 복지부에서는 이렇게 답을 했다지요. ‘푸제온이 필요한 환자는 1명밖에 없더라’고. ‘나 여기 있소’, ‘내가 왜 죽어가나요?’라는 말도 못한 채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고 있던 100여명의 환자들을 두고 말입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했던가요? 그럴거면 헌법에 왜 건강할 권리와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시해둔건가요? 우리가슴에는 큰 멍이 들었습니다. 
 
환자가 죽더라도 약값은 내릴 수 없다는 특허독점의 위력
그래서 왜 푸제온이 그다지도 비싸야하는지 듣기위해 로슈사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작년 7월 4일이었습니다. 로슈는 모언론에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연간 2200만원으로 푸제온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푸제온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냐고, 우리가 왜 1년에 2천200만 원을 내야만 하는지 우리를 납득시켜보라고 했습니다. 로슈 사장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2가지 자료를 던져주었습니다. 하나는 세계은행에서 전 세계 국가를 고소득, 중간소득, 저소득 국가로 분류한 자료와 2008년도 건강보험 재정현황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고소득국가로 분류되어있고,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나지 않았으니 선진 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일본)의 가격을 기준삼아 약값을 정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200만원 미만으로는 절대 공급 못 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나가버렸습니다. 특허로 보장된 독점의 위력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왜 2200만원인지는 따지지도 묻지도 않아도 되는 것,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푸제온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특허권이었습니다. 그 날은 뇌가 없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국가도 국민의 생명을 버린 마당에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말도 안 통하니 어찌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특허제도와 약가제도의 폭력에 맞선 노력들
특허로 보장된 독점을 악용하여 근거도 없이 비싼 약값을 요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급을 거부하는 일이 글리벡, 푸제온, 스프라이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점은 한국의 특허제도와 약가 제도 때문이므로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습니다. 태국복지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미국정부와 초국적 제약회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7가지 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실행했던 태국의 경험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에이즈환자와 활동가들에게 건강할 ’권리‘를 구매력에 따른 ’자격‘으로 취급하는 로슈의 횡포에 대해 알렸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로슈규탄 국제공동행동‘에 동참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로슈 창립일인 10월 1일부터 각국에서 로슈에 항의전화 캠페인, 로슈앞 시위 등을 벌이고, 프랑스, 영국, 벨기에, 미국, 러시아, 프랑스, 카메룬,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말라위,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호주, 스리랑카, 베트남 등 세계 각지의 단체 및 개인들이 ’살인을 중단하고 푸제온 공급(Stop Killing and Give Us Fuzeon!)‘을 촉구하는 국제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오히려 강제실시 청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가 기각된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참 많은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미FTA협상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지적재산권하면 껌뻑 죽는 한국정부입니다. 몇 년 전 액트업파리(ACT UP-Paris)의 한 활동가가 그랬었지요. 한국정부는 맹목적으로 친미적이라 환자의 생명을 위해 강제실시를 제대로 활용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요. 복지부에 팽 당하고 로슈가 버린 생명이었기에 우리는 유일하게 남은 방법인 강제실시를 작년 12월 23일에 청구하였습니다.
 
로슈마음대로 프로그램, 무상공급
강제실시를 청구한지 2달이 지날 무렵 로슈 본사는 한국에서 ‘동정적 접근 프로그램(compassionate access programme)’을 시작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푸제온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네들은 참 쉽습니다. 4년이 넘도록 공급안하더니 강제실시를 청구하니까 이름도 근사하게 ‘동정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약을 줍니다. 전 세계적 독점가격을 유지하기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특허에 의한 살인’에 맞설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인 강제실시를 막는 그네들의 참 손쉬운 방법일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비참했습니다. 그네들은 우리의 생명을 쥐락펴락 하는 게 그렇게 손쉽다는 사실에 원통해서 술인지 눈물인지 모르고 마셨습니다.
 
강제실시의 필요성을 인정한 인권위의 의견도 무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푸제온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호를 위한 국가적 의무에도 부합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기각했습니다. 특허청은 ‘푸제온은 일부 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푸제온의 공급을 위한 조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입장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푸제온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강제실시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푸제온을 공급할 수 있는지 답을 해야 앞뒤 말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로슈가 현재 무상공급 하고 있어 일단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 문제가 해소되었다 점, 청구인이 푸제온과 똑같은 약을 어떻게 생산, 공급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각사유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상공급은 로슈가 스스로 밝혔듯이 ‘임시적 조치’에 불과하며 로슈의 이익을 위해 언제 끊길지 모르는 그야말로 ‘로슈마음대로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 당시에도 인도 모 제약사의 모 의약품을 얼마에 공급할 수 있다는 구체적 계획이 제시되었을 때조차도 강제실시는 기각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특허청은 ‘기각을 시키기 위해’ 갖가지 사유를 갖다 붙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생명권’이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버려진 바람 빠진 공 같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만 내면, 좋은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처럼 말하던 한국정부의 겉모습은 우리들의 싸움으로 양파껍질 벗겨지듯 속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약가협상이 결렬된 것은 약가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로슈 때문입니다. ‘묻지마 근거’가 통했던 것은 유일하게 푸제온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독점권을 보장한 특허제도 때문입니다. 복지부와 특허청은 ‘사람 죽이는’ 제도를 만들었고, ‘사람 죽이는’ 로슈를 옹호한 것입니다. 길다면 긴 과정을 되돌아보며 곁에 있는 여러분들을 봅니다. 가브리엘이 그리고 우리들의 생명이 제약회사에게 저당잡혀야 할 이유가 없음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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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약 '푸제온' 촉발 '의약품 접근권' 논란 일파만파 (메디컬투데이 권선미 기자, 2009-07-13 15:21:40)
  
에이즈약 '푸제온'의 강제실시가 막힌 이후 의약품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권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민주당 박은수 의원에 따르면 이윤을 넘어선 의약품 공동행동 공동 주최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푸제온 강제실시로 드러난 의약품 접근권의 문제’를 주제로 간담회가 열린다.
 
박은수 의원은 간담회에 앞서 “푸제온, 노보세븐 등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의 공급 거부 문제가 계속되면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이는 국가가 제약회사의 특허독점권에 대해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방안도 갖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푸제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강제실시 뿐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환자사회시민단체는 2008년 12월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올 6월15일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위해 푸제온 강제실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6월19일 강제실시 기각 결정을 내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번 간담회는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한 특허청 결정뿐만 아니라 그 전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한국 의약품 접근권의 제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는 자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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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약 접근권, 제약산업 현실 변화 필요" (약업신문 이호영 기자, 2009.07.14 12:42 PM)
최상은 서울대약대 교수, 기금마련으로 공공제약회사 설립 주장 
 
14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최상은 교수는 박은수 의원실이 주최한 '푸제온 강제실시로 드러난 의약품 접근권의 문제'를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희귀의약품이라고 하는 영역은 비용효과적이지 않은 제품으로 약 생산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결국 희귀의약품 시장은 실패한 영역으로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의약품 분야에 있어 필수전염병 예방접종,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등 개입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사회전체가 희귀질환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아 부각이 되지 않았었다"며 "이제 의약품 접근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번 푸제온의 강제실시 청구가 남긴 교훈으로 약가제도와 우리나라의 제약산업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라며 "국내 제약업계에서 희귀의약품에 대한 개발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는 앞으로의 과제"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특허기간을 연장해주면서까지 희귀의약품 개발을 촉구하고 세금혜책 등을 지원하며 약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제3세계의 경우 사회 연대나 세계적 연대를 통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며 "신흥공업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실 속에서, 약가 협상실패 시 매번 강제실시를 거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며 “희귀질환자가 의약품 신약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질병 정보, 진단 체계 구축 등 전반적인 마스터 플랜을 가진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의약품 개발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연구나 질병 정보 진단 체계 등을 구축하는 문제 등에 대해 정부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실패한 시장인 희귀의약품에 대한 공적인 기금이 마련되어서 희귀의약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공공제약회사를 설립해 공급을 담당할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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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푸제온' 강제실시 기각, 국제협약의 한계(?) (뉴시스, 임설화기자, 2009-07-16 10:24)
   
특허청의 '푸제온' 강제실시 기각결정은 국제협약의 한계와 생명권에 대한 무성의함을 보여준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변진옥 정책위원은 최근 국회 '푸제온 강제실시로 드러난 의약품 접근권의 문제'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강제실시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변 위원은 "지난 6월 다국적사인 로슈의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청구가 기각됐다"며 "하지만 환자와 시민단체의 공급요구를 무시하던 로슈가 환자들에게 무상공급을 선언했고 이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어 "여전히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의약품은 보편적 접근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략 세계인구의 30%인 17억명의 사람들이 필수의약품에 불충분하게 접근하거나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은 심각한데 비해 트립스(TRIPS) 협정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강제실시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한 예는 많지 않으며 오히여 최근에는 의약품 가격협상을 위한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는 "전반적으로 강제실시는 실시자체를 위해서보다는 특허를 가진 다국적 제약사들의 독점가격의 인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푸제온의 강제실시 청구에 대한 기각 결정문에서 '푸제온의 공급을 위한 조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한바 있다. 그러나 단지 약가협상의 결렬로 피신청인이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허권을 제한할 경우 '발명실시의 보호'라는 특허권의 본질적 내용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 위원은 "특허청은 푸제온이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대체가능성, 병행치료의 필요성 및 효과, 내성발현에 대한 대처 필요성, 공급사 로슈의 주장 및 제한된 공급현황 등에 대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은채 청구를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공의 이익'은 존재하지만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특허청의 해석이 모호하는 지적이다. 또 "푸제온의 강제실시 불허의 결정문을 볼때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는 물론이고 중요한 사안에 대한 판단자체가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결정은 특허권자의 논리가 매우 합리적이라서가 아니라 강제실시 제도 자체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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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0:41 2009/07/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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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의 SF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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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세 권의 SF를 읽은 지는 꽤 되었지만, 그냥 읽고 넘기기는 아까워서 블로그에 내용의 일부와 내가 느낀 생각을 공유한다.

 

한국 SF 대표 작가 단편 10선
김보영, 복거일, 이영도, 이영수(듀나) | 황금가지 | 2007.12.28 출간
 
『얼터너티브 드림』은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 웹저널 <크로스로드>에 연재되었던 10편의 한국 SF 중단편을 모은 것이다. 책 표지에 한국 SF 대표 작가 단편 10선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그 느낌은 여기에 SF 대표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면 넘 약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SF는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외국의 것도 그러하지만... 듀나와 이영도, 복거일 정도가 눈에 뜨인다. SF를 읽을 때 내가 기대하는 것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인데, 이 점에서 부족한 점이 보인다. 겨우 인간복제 수준에 머무는 빈곤한 상상력이 아쉽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그랬으면 한다.
  
처음에 나오는 듀나의 '대리전(代理戰)'은 외계인과의 전쟁을 부천으로 가져와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부천에 가본 적은 없지만, 바로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상당히 익숙한 설정으로 보여 처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숙주를 쓰고 등장하는 외계인과 이를 쫒는 주인공, 그리고 해결사들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코가 빨갛고 피부가 엉망인 50대 중엽의 추리닝 차림 아저씨가 반쯤 헬륨이 든 둥근 풍선 같은 걸 계속 앞으로 밀면서 달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뒤에 멀쩡하게 생긴 두 젊은 여자들이 지구 방위대 전자총을 휘두르며 그 남자를 쫓고 있었단 말이야.
자외선 가리개를 쓴 작달막한 중년 아줌마들이 작은 숄더백들을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었던 거야. 해결사들이었어.

 
뒤의 단편에서도 언급되지만, 이제 르귄의 소설에서 보았던 앤시블이 대중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SF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앤시블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오경문의 '오래된 이야기'는 성경의 창세기를 SF로 만든 것인데, 나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아마도 외국에서는 이런 류의 것들이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것.
 
이영도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그나마 흥미롭고 또한 생각할 점도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라자'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했다. 이는 미래의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외계인의 문학작품인 동화를 번역해야 하는 경상도 출신의 번역가 할머니와 그를 경호하는 북한군 출신의 경호원이 겪는 얘기를 다루고 있다. 외계인이 언급되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얘기를 하고 있달까.
 
이를테면 동화를 통해 외계인과 교류를 시작한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하다. 이를 자녀들의 성숙과정과 비교한 대목이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계인만큼이나 이질적인 자들의 방문을 경험했다. 그들은 고통과 함께 찾아오며, 도무지 의사가 통하지 않고, 우리의 안정된 생활을 서슴없이 파괴한다.
그 불청객들이 어느 정도 지구의 언어를 익히고 나면 우리가 그들에게 건네주는 첫 번째 정보가 무엇인가? 지구에서 태어나는 그 외계인들에게 우리가 주는 것은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들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마법, 오래전에 사라진 신분 계급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오류투성이의 정보들이다. 외계인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동화다.
그들은 우리의 아이로 행동하길 원했고, 우리 또한 그들의 아이로 행동해야 했다. 우리의 동화를 들려주고 그들의 동화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영어 제국주의를 꿰고 있는 번역가 할머니가 경호원에게 들려주는 대목은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그녀는 경호원에게 자신이 한글로 '위탄어'로 된 외계 동화를 번역하는 게 언어의 세력 판도를 봤을 때 부질 없는 짓이라고 끊임없이 투덜댄다. 경호원인 박대위는 통일이 되면서 과거 북한의 문화어를 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작업을 재촉하지만, 번역가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외계의 지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구의 모든 시각을 동원한다? 내 눈엔 반대로 보여. 그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내재된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 다양한 시각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지. 다른 말을 쓰는 자들이 현실에 등장했으니까. 지난 세기에 자본이 그랬고, 이제 외계인이 그렇지. 둘 다 인간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써. 자본은 경제학의 언어를 섰고 외계인은 자기네 빌어먹을 말을 쓰지. 다른 말을 쓰는 오랑캐가 나타나면 사람은 단결하고 개성을 살해하는 법이야. 이 최후의 저항이 끝나고 나면 지구의 언어는 급속하게 하나로 통일될 거야. 영어일 가능성이 높지."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특별한지는 중요치 않아. 오직 세력만이 중요하지. 내가 화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도 이것이 자연법칙이기 때문이지. 저항이나 혁명 따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거야."

 
결국 외계인과의 교류에 반대하는 지구주의자의 습격을 받고 난 후 번역가 할머니와 경호원은 카이와판돔이 일종의 사투리임을 알게 되면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게 된다. 사투리로 상징되는 사라지는 것들,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이면서 말이다.
 
김보영의 '땅 밑에'도 가끔씩 꿈꿔보는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땅 밑으로 가는 것을 등산에 비교하는 것은 쉬운 발상은 아니다. 하긴 정상이 있다면 정하(頂下: 가장 낮은 곳)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땅 밑으로 가는 건 앞뒤 외에는 다 막혀 있다는 점에서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과연 땅 밑에, '모든 것'이, '만물과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있을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김덕성의 '얼터너티브 드림'은 이런 게 어떻게 실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신비로운 물을 마시고 자각몽을 꾸는 게 얼터너티브 드림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꿈 속에서 죽으면 현실에서 죽는다는 설정이 황당하다. 결국 수만의 사람들이 살육당하고, 자신의 가족도 죽고,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알게 된 여친마저도 자신이 꿈에서 살육한다(당연히 현실에서도 죽었겠지). 이런 장면을 어떻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 도대체 이게 뭐야.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이는 우파적인 성향을 넘어 반사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과연 그렇게 살육 장면을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넘의 물레방아 표시가 관악산에 있다니...
 
이한범의 '사관과 늑대'는 말을 하다 만 느낌. 상상력이 그럴싸하여 이를 장편으로 만들면 쓸만한 그림이 되겠다 싶었다.
 
고장원의 '로도스의 첩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도스 섬 공방전'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선집에서 흥미롭게 본 것 중 하나. 아마 작가는 막판의 반전을 포인트라고 내세우고 싶겠지만, 중간쯤 읽다보면 결말을 알 수 있게 된다. 역시 시간여행은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 주인공의 말을 통해 나오는 저자의 시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논쟁여지가 있지만. 이를 테면 이슈마엘 교수가 "인류가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쓸모 있는 기술을 발견하고도 그 위력에 압도되어 뒷걸음치는 것만이 능사일까? 역사가 말해 주고 있듯이 이미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기술을 아예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방치해 둘 수 있을까? 문제는 역사복원학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네. 역사복원학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원자력은 물론이고 어떤 신기술도 우리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네."라고 말할 때 들었던 복잡한 감정.
역사복원학, 시간안전국 이런 것이 현실화될 시기가 올까. 아니 오는 게 바람직할까.
  
복거일의 '꿈꾸는 지놈의 노래'는 생명공학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자체로 흥미가 반감되었던 작품. 게다가 여자친구의 딸로 나오는 신지가 자신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사람으로 외삼촌인 자신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자유주의자 복거일의 보수적인 면모가 보이더라. 미래에서도 여성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남편에게 인계하는 물건인 모양.
 
노성래의 '향기'는 흥미진진한 작품. 돼지인간이 된 주인공이 돼지의 몸을 가졌을 때의 장점인 향기를 분별해지는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집착해서 인간으로 돌아가기를 연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신윤수의 '필멸의 변'은 용두사미식의 전개를 보여 아쉬웠다. 초반에 그렇게 벌려놨으면 제대로 수습할 것이지. 상당한 분량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소화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인간복제 문제는 괜시리 꺼려지기 때문에... 
 
도대체 하진석은 뭐하는 넘일까. 필멸인이었으면서도 할 일이 있다고 죽음을 미루고 불멸자로 되었으면서, 그리고 그 와중에 엄청난 부하들의 희생을 치루었으면서 기껏 애들 데리고 아프리카 가서 편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하다니... 하긴 설정 자체도 조금 이상하긴 하더라만...
 
아무튼 얼마 전에 읽었던 스타메이커에 비해서는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이럴 때 보면 내가 철학 같은 것을 싫어하는 걸 재확인할 수 있다) 술술 잘 넘어가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엔 약하다. 다음 단편집은 수준이 좀더 향상될까.

 

그렉 이건. 감상훈 옮김. 2003. 행복한책읽기.
 
해설 중에서:
하드 SF란 하드 사이언스, 즉 자연과학에 밀접한 事象을 주요 소재로 다룬 이공계 성향을 SF이다.
사이버펑크 운동가들이 주창한 급진적 하드 SF와 전통적인 하드 SF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뉴에이브적인 ‘스타일’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펑크의 표면적인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이테크 소도구 및 패션으로서의 반체제였으며, 이것은 컴퓨터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간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1980년대적 상황에 대한 사이버펑크 특유의 문학적인 해답이었다.
 
폴 J. 맥컬리, 이언 맥클라우드 스티븐 박스터, 에릭 브라운, 그렉 이건 등의 가장 눈에 띄는 작가적 특징이라면, 스털링이 사이버펑크 작가들에게 요구했던 ‘첨단기술에 대한 교양’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첨단기술에 대한 전문지식’(hi-tech fluency)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뉴웨이브나 사이버펑크 작가들이 보여준 정치적인 결속력 대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수학과 생물학과 컴퓨터 사이언스의 학위이며, SF의 코드에 대한 전통적인 고민에 잠기기보다는, 그 핵을 이루는 문학 기술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독자 앞에 내보일 수 있는 ‘내부 기술인’으로서의 자세이다.

 
소설의 대체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는 아니었는데, 해설을 보고 나서야 전체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물론 해설에 언급된 것처럼 『쿼런틴』을 읽기 위해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소설 본문에서 닉과 포콰이의 대화에 녹아들어간 형태로 설명되어 있는 양자론의 기본 명제들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긴 한데, 조금 귀찮다. 나의 경우에는 대략 스킵.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하드SF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나도 전직경찰인 주인공이 모드를 둘러싸고 고민하는 대목, 즉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꽤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이 서술하는 만큼의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했을까. 아니 이에 대한 흥미로운 각주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면 좋았을 수도 있으니 번역자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까.
 
2034년 11월 15일 ― 어느날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름이 명왕성 궤도의 두 배나 되는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 버블이 태양계를 완전히 감싸버렸던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혼란과 폭력을 불러온 이 초유의 사태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은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내놓을 수 있었던 설명은 단 하나였다 ― 상상을 초월한 과학기술 능력을 가진 외계 종족의 간섭에 의해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전체가 ‘격리’(quarantine) 당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2066년 ―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주도 퍼스의 사립탐정인 닉 스타브리아노스는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24시간 엄중하게 감시받고 있는 병원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젊은 정신지체 여성 로라 앤드류스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21세기도 이미 반이 지난 지금, 대뇌 생리학을 위시한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의해 인류는 자신의 능력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고 있었다. 나노머신으로 인간의 뇌신경을 재배션하는 형태로 뇌의 일부를 수정(modify)함으로써, 제한적이나마 일종의 생체 컴퓨터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실용화된 것이다. 모드(mod)라고 불리는 이것들은 현재의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능가하는 영향을 인간에게 끼치고 있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닉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워크스테이션급의 가상 컴퓨터에서 정신 상태를 ‘최적화’하는 경찰용 프로그램을 망라하는 가지각색의 모드를 머리에 ‘깔아놓은’ 상태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신흥 독립국인 <뉴홍콩>에서 단서를 찾은 닉은 추적을 시작하는데….
 
모든 경찰관들은 예외없이 P1에서 P6에 이르는 표준적인 ‘강화 모드’(priming mod)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 근무에 적합한 정신 상태를 만들어 내서, 진정한 의미에서 당사자를 ‘강화’하는 것은 P3다. P3가 하는 일이란 나의 뇌를 불구로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효율적이고, 가역적이며, 또 사용자를 이롭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모드에 관해 신경질적이 되거나 에둘러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강화 모드는 경찰관의 질을 높이고, 인명을 구한다 ― 그리고 강화모드는 일시적으로 우리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든다.
나의 인생을 가르고 있던 칸막이는 단순했고, 명쾌했으며, 절대적이었다. 근무 중에는 강화 상태였고, 비번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모호한 부분은 전혀 없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침식할 염려도 없다.
(79쪽)
 
닉은 테러를 당해 집에 폭탄이 터져서 아내 카렌을 잃는다. 닉도 폭발의 와중에 집밖으로 튕겨나갔으며, 강화 모드들이 자동적으로 가동되었다. 이런 상황은 강화 모드로 상징되는 과학기술이 과연 인간적인 것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P3를 불러냈다. 이 모드가 의식 아래로 슬그머니 끼워 넣는 고양감이 평소보다 더 노골적이다. 정신 강화야말로 합당한 존재 방식이다. 머리 회전이 빨라지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마음이 흐트러지는 일도 없다. 이것들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P3가 장려하는 분석적 마음가짐은 이런 태도가 독단적으로 강요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격을 변화시키는 모드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 모드를 쓰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사용자들에게 인식시킨다. 비강화상태의 나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기적인 프로파간다라고 부르는 시니컬한 견해 쪽의 손을 들어준다. 강화 상태일 경우에는 이런 주장들을 평가해서 결론을 낼 만한 정보도, 전문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 (91쪽)
  
“‘당신’과 ‘당신 육체’ 사이의 선 말이에요… 당신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충동과, 육체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충동들 사이의 경계선. 공복감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건 성욕에도 해당되는 얘기가 아닌가요? 양심의 가책은? 동정심은? 아니면 논리 그 자체는? 만약 당신이 우선순위를 스스로 알아서 결정한다면, 그 순위를 결정하고, 향유할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먹는 행위는 당신을 변화시키고, 안 먹는 행위도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목에 진통제를 분사한다는 행위도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모드를 써서 공복감을 없애는 행위와, 약물을 써서 통증을 없애는 행위의 차이는 뭡니까? 모두 똑같은 일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일들을 똑같이 하찮은 일로 치부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그보다 좀더 덜 극단적인 것과 ‘똑같은 일’이 되어 버릴 테니까. 그러나 신경 모드는 진통제와 ‘똑같은 것’이 아녜요. 모드 중에는 인간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조차―”
“그렇다면 사람의 가치관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얘깁니까?”
“서서히 변화하죠. 좋은 이유에 의해.”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의해 농락당하며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하지만 누가 행복해진다는 거죠? 모드를 쓴 사람은 아녜요. 그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건 상당히 고풍스러운 생각이군요. 변화는 자살과 마찬가지라는 식의.”
“흐음, 그럴지도 몰라요.”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위선자의 말처럼 들렸는지도 모르겠군요. 약간의 나노 외과수술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유일한 모드의 경우에는 아마 나를 완전히 새로운 종의 일원으로―”
(140-142쪽)
  
‘진정한 <앙상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캐넌>(전범, 규범)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충성 모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 모두 자신들의 충성의 대상인 ‘진정한 <앙상블>’은 현재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앙상블>’이란 무엇인가? <캐넌>의 멤버들의 대답은 각자 달랐다. 그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단 한 가지, <앙상블>을 자처하는 연구기관의 연합은 가짜이며, 사기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이 기괴한 사고방식을 옆에서 계속 떠받쳐 주던 뤼가 사라지고 다시 혼자가 된 지금,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인 곡예를 내가 실제로 터득했는지 안 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현재의 <앙상블>은 진정한 <앙상블>이 아니다 ― 도대체 이런 터무니없는, 시시콜콜한 궤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든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상식이나 일상적인 논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내게는 <앙상블>에게 충성을 다할 합리적인 이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 내게는 오로지 충성 모드라는 해부학적인 사실이 존재할 뿐이다. 이 모드가 가리키는 진정한 <앙상블>이란 나의 몸이 그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하고― 이것은 터무니없는 난센스이다….
현재의 <앙상블>은 진정한 <앙상블>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앙상블>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진정으로 <앙상블>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건 미친 짓이야. 만약 <캐넌>의 모든 멤버들이 자신들의 충성의 대상을 기존의 권위와는 상관이 없는, 일종의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로서 자유롭게 해석해도 된다면… 그것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 때 머릿속에 해답이 번득였다. 이제는 어떻게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나는 발을 내딛던 중에 동작을 멈추고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종교개혁에 참가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188-290쪽)
 
“그 모드는 나를 행복하게 해줬습니다. 흥분이나  고양감, 혹은 도취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단지… 카렌이 살아 있을 때 그랬던 것과 똑같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설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죠.”
“물론 진심입니다. 사실이니까요. 그건 견해의 차이 운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모드가 실제로 하는 일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건 신경 해부학상의 문제입니다.”
“그럼 아내가 죽었을 때, 당신은 상쾌한 기분으로 있었다는 얘긴가요?”
“냉혹하게 들린다는 걸 잘 압니다. 물론 지금도 아내가 살아남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고, 그런 사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죽음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 겁니다.”
포콰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은 혹시 한 번도…?”
“혹시 뭐란 말입니까? 내가 한 일이 소름끼치는 농담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뜻입니까? 이런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지 궁금하다는 겁니까? 내가 자연스러운 슬픔의 절차를 통과해서, 본래의 자연스러운 정서적 욕구를 고스란히 지닌 채로 슬픔을 극복했어야 했다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모드는 완전무결한 하나의 패키지이고, 이 문제의 모든 국면에 관련된 신념들 일체를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 그 모드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신념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좀비 보이스카우트를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모순이 있다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비한 부분을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나의 선택을 결코 농담으로 간주할 수 없고, 후회할 수도 없습니다. 그 선택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하지만… 만약 모드가 없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지, 또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해했던 적은 한 번도 없나요?”
“왜 그래야 합니까? 왜 그런 데 신경을 써야 합니까? 당신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뇌를 가지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까? 지금의 내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인위적인 상태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사람은 모두 인위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뇌는 자체적으로 배선을 바꿉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자기의 이상에 맞춰 형성하려고 합니다. 신경 모드가 그런 일을 실로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말로 가져다준다는 이유만으로―그걸 괴물 보듯이 할 수 있는 겁니까? 자연도태나, 우연한 사건이나, 자력으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바꿔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헛된 시도가 불러오는 뇌의 재배선이, 완벽한 인생의 시금석이라도 된다고 당신은 정말로 믿고 있는 겁니까? 좋습니다. 과거 몇천 년 동안 인류는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왜 다른 것들에 비해 최상의 선택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어리석기 그지없는 종교와 의사 과학적 이유들을 발명해 왔습니다. 신의 행위는 언제나 완벽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신이 아니라면 진화가 그것을 대신했습니다. 어느 쪽을 믿든 간에, 그걸 건드린다는 건 신성 모독이었죠. 그리고 인류의 문화 전체가 이런 헛소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진실을 직시하십시오. 그런 것들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태의연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가 지금 내 상태에 행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극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흐음, 적어도 나는 왜 내가 행복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는 몇 조에 달하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최종 결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뇌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진화의 정점인 것은 명백하다는 주장으로 나 자신을 기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273-275쪽)

 

그렉 이건 외 지음|김상훈ㆍ이수현 옮김, 행복한 책읽기
The Hard SF Renaissance Edited by David G. Hartwell & Kathryn Cramer
 
○ 유전자 전쟁 Gene Wars |폴 맥콜리|
 
「유전자 전쟁」은 통제를 벗어난 생명공학, 과학기술의 정치학, 포스트 인류의 등장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계속적이고 동시 진행되는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는 세계화와 유전자 변형 농작물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폴 맥콜리 소개에서)
 
주인공 에반은 어릴 때부터 유전자를 끼고 살아온 인물이다. 여기에 나오는 돌고래인간이나 ‘자유롭게 신체 형태를 재조정하는 수많은 극미 기계들에 감염되어 점점 더 기괴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해보면 능히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이다.
 
에반이 아내에게 하는 말. “인간이란 어떤 것인지를 기억하고 있었을 무렵의 당신이 생각나는군.” “오래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 (22쪽)
 
○ 내가 행복한 이유 Reasons To Be Cheerful |그렉 이건|
 
합당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 행복감이 공허하고 병적인 행복으로 바뀌는 기준이란 무엇일까? (68쪽)
 
뇌종양에 걸렸다가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으나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 “아무 것도 도움이 안 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 가 된 주인공은 다시 수술을 받고 스스로 온갖 충동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복구한 것이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행복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탓에 자기가 원하는 쾌락의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부여받는다. 다시 말하면 세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행복이나 쾌락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프로그램해서 네트워크의 개량을 당신에게 맡길 수는 있어요.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의식적이고 신중하게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당신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에요.” (64쪽)
 
하지만 해설에 나오는 것처럼 세계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제어할 수 없다면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한 충동이나 감정이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의학적 치료 후 알게 된 줄리아와의 관계가 애매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렉 이건은 이런 식의 글을 자주 쓰는 것 같다. 쿼런틴에서도 주인공은 여러 모드 속에 있을 때 본래의 자신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본래의 자신을 추구하지도 않고... 과연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는 누구일까.
 
“내 안에 묻혀 있는 행복 기계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되풀이해서 인식하고 있다. 지금 나는 두라니가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 두개골 속에 챙겨 넣었음을 명명백백하게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의 일부라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사실을 사실로―그 어떤 종양이 강요하는 것 이상으로 깊게―받아들여야 한다. 행복 그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행복이 없는 인생은 견딜 수 없지만, 행복 그 자체는 목표가 되지 못한다. 나는 행복의 이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런 선택에 만족해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나의 새로운 자아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간에, 나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69쪽)
 
○ 붉어지기만 하는 빛 An Ever-Reddening Glow |데이비드 브린|
 
“그토록 우주선이 많았다니. 자기들 생각만 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며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이런 우주선들 탓에 전 우주는 매일, 매년, 매이온―10억년― 단위로 변화하고 있다. 모든 천체들이 지금보다는 가까웠던 옛날 옛적에는 다른 종류의 이동수단으로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에 살던 존재들은 절제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절제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BHG 구동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극기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전 우주의 팽창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규모의 사건에 우리가 티끌만큼 기여한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우리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도 사태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후방 미러를 보는 일이 거의 없으며…잠깐 멈춰 서서 마냥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98-99쪽)
 
이 글을 공유지의 비극, 외부효과 등의 경제학적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는 항성 간 비행과 우주 팽창 사이의 관계가 논의된다. 우주가 팽창하게 된 원인을 BGH 구동기관 등을 써서 빨리 우주비행을 하려는 우주선의 영향이 쌓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욕심 때문에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것. 그래서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윤리적 우주선들도 있지만, 이들의 간청과 논쟁과 협박은 설득력이 없었다. 해설에서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외계인들이 인류더러 더 책임 있게 행동하라고 요청하는 황당한 논리라고 얘기한다. 대략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그런 충고가 현실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칫 인류는 공멸할 수도 있으니까...
 
○ 공룡처럼 생각하라 Think Like A Dinosaur |제임스 패트릭 켈리|
 
우리는 공룡을 굉장히 둔하고 멍청한 동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 공룡은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외계의 생명체로 나온다. “초광속 물리학에 통달하고 지구를 경이로운 은하계 문명에 소개해 준 현명하고 고귀한 파충류라는 식”으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묘사된다.
 
주인공 마이클은 지성체 연구를 하는 학자이지만, 부업으로 지역 안내인도 한다. 공룡들이 사는 별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스캐너와 조립기를 통해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방정식의 평형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외상이 발생하는데, 공룡들은 인간들의 ‘눈물 짜는 이주 공포’를 잘 참지 못하며, 하넨(공룡) 기술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인간들도 공룡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힐 거라 믿는다. 기분 좋게 잉여 육체를 처분하는 것이다.
 
공룡과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이주할 때는 잉여 육체가 직접 자기 몸을 죽인다. 정말이지 조화로운 이들이다. 그들은 인간에게도 그런 과정을 시도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124쪽)
 
이 단편은 카말라 샤스트리를 공룡의 별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조화가 깨지면서 생겨난 잉여인간의 처리를 둘러싸고 마이클이 하는 고민을 드러낸다. 카말라는 공룡의 별인 겐드에 도착하여 재조립되었으나, 잉여인간은 남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공포로 인해 더 이상 이주하지 않으려는 잉여물에 대해 그 처리를 못하겠다고 마이클이 주저하자 공룡들은 자신들끼리 언쟁을 벌이면서 마이클에게 간접적으로 상황을 알려준다. 물론 공룡은 조화라는 이름으로 살육을 즐긴다. 공룡들은 ‘인간에겐 조화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많은 세계로 풀어 주는 건 잘못’이며, ‘인류 이주를 연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지금 내가 우주에서 인류가 누릴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알려 주고 있다. 내가 그만두든 말든 대기실 D에 있는 카말라는 죽은 목숨이라는 것. 평형은 바로잡혀야 하며, 바로 지금 해야 한다는 것. (132쪽)
 
대기실 D에 있는 카말라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녀는 아무 권리도 없는 잉여물이었다. 그래서 마이클은 왕복선 밖으로 잉여물을 내몰아서 그녀를 제거했다. 망설이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 ‘공룡처럼 생각하라!’. 하긴 그 대상이 단지 잔여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을 듯. 이 글은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쿵쿵 소리가 느려졌다. 멈췄다. 그리고 나는 영웅이 되었다. 내가 조화를 지키고, 별들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에 킬킬거렸다. 나는 공룡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135쪽)
  
해설 중에서: 「공룡처럼 생각하라」는 1996년 휴고 상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이 글은 고전적인 하드 SF 형식을 취하며, 하드 SF 독서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톰 고드윈의 논쟁적인 글 ‘차가운 방정식’(The Cold Equations)과 문답을 이루고 있다. 이 글은 문학적인 정치 행동이며, 의문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고전 작품의 서브텍스트로 존재하는 성 정치 아래를 파고드는 진짜 하드 SF다. 그러나 이글은 오른쪽이나 왼쪽이 아니라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 그리핀의 알 Griffin's Egg |마이클 스완윅|
 
“다행히도 위기관리 프로그램에는 딱 이런 상황에 맞는 사고 계획이 있어요. 불완전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확인 가능한 기록에 따르면 여기 남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군사 지휘 경험이 많습니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분 있습니까?” 예카트리나는 기다렸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준군사적인 조직으로 전환합니다. 어디까지나 관리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장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없을 것이고, 현재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군사 조직은 해체합니다. 그 점이 최우선입니다.” (209쪽)
 
그녀는 군터에게 성적인 의미는 없이 세게 입을 맞추고, CMP를 불렀다. “초기 계획을 다 다시 돌려. 감염자들을 다시 일터로 보낼 거야. 모든 작업 일정을 조정해.”
“지시대로 수행합니다.”
“이 상황이 장기적인 전망에 어떤 변화를 주지?”
프로그램은 몇 초 동안 말 없이 데이터를 처리하다가 말했다.
“필요하지만 무척 위험한 회복 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전망은 낮고 안정성은 낮은 상황으로 진입합니다. 여가가 생기면 비감염자들은 이 정부에 빠른 속도로 불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냥 그만두면?”
“전망이 극도로 나빠집니다.”
예카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좋아, 가장 긴급하게 다가올 새로운 문제점은 무엇일까?”
“비감염자들은 지구의 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요구할 것입니다. 미디어를 즉각 복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
그녀는 CMP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계속 다른 일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사보타주 범인들을 추적해서 전범 재판을 여십시오.”
“그건 제외야. 마녀 사냥이나 희생양, 재판 같은 건 없어. 우린 모두 함께 갈 거야.”
CMP는 감정 없이 말했다. “폭력은 정부의 왼손입니다. 진지한 고려 없이 그 잠재력을 버리는 것은 성급합니다.”
“그 문제는 논의하지 않겠어.”
  (220-222쪽)
 
“바일, 너는 동료 시민들에 대한 범죄를 고발당하여 서 있다. 자기 변호를 위해 할 말이 있나?”
“들어봐, 당신들에겐 이럴 권리가 없어. 나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정부조직이 있잖아.”
“모두가 이즈마일로바의 정부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판사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CMP를 통제하고 있고, 우린 CMP가 감염자들을 통제해주지 않으면 부트스트랩을 운영할 수 없어.” 두 번째 사람이 덧붙였다.
“그러니 그녀를 피해서 일하는 수밖에.”
“정확히 무슨 죄목으로 고발된 거지?” 군터는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좋아, 어쩌면 내가 뭔가 잘못했을지도 모르지. 가능성은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당신들이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은 해 봤어?”
정적.
“말이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거야? 포스너? 그거라면 미안하지 않은데, 사과하지 않을 거야.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막 대할 순 없어. 그들은 여전히 사람이야. 권리가 있다고.”
정적.
“하지만 내가 무슨 첩자라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내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예카… 이즈마일로바에게 일러바친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건 사실이 아냐. (…) 난 첩자도 뭣도 아니라고. 이즈마일로바에게 첩자 같은 건 없어. 첩자가 필요하지도 않고! 그녀는 그저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뿐이야.
맙소사, 그녀가 당신들을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 그녀가 얼마나 엉망이 됐는지 못봤을 거야! 이즈마일로바에게도 그만두는 게 좋아. 그런데도 버티는 건―“
무선으로 음산하고 어두운 전자음이 일어났고, 그는 상대방이 그를 비웃고 있음을 깨닫고 말을 멈췄다.
“달리 말하고 싶은 사람 있나?”
군터를 끌고 온 작업복 중 하나가 나섰다. “재판장님, 이자는 감염자가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지원과 지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속적인 안녕은 우리의 끝없는 노동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자는 자기 입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법정이 이 범죄에 대한 징벌을 내릴 것을 청원합니다.”
(…)
“바일, 제정신이라는 건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다. 너는 유죄다. 그러나 우린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야. 이번 한 번은 경고만으로 풀어주겠다. 그러나 지금은 절박한 시기야. 다음에 또 불쾌한 짓을 하거나, 이번 만남처럼 사소한 일을 꼬마 장군에게 보고할 경우에는―공식적인 심리를 생략할지도 모른다.”
(238-240쪽)
 
크리슈나가 설명하는 동안 이즈마일로바는 팔짱을 끼고 어깨를 비딱하게 기울인 채 듣고 있었다. 설명이 끝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고결한 바보짓이지만, 그래도 바보짓에 불과해. 당신은 우리의 정신을 인간 진화 경로에 낯선 무엇인가로 고치고 싶어하는 거야. 생각의 자리를 제트기 파일럿의 소파로 바꾸려는 거지. 그게 해답이라고 생각해? 관둬. 일단 이 상자가 열리고 나면 그 내용물을 주워 담기란 불가능해. 그리고 당신은 그 상자를 열 만큼 설득력 있는 논증을 펴지 못했어.”
군터가 항의했다. “하지만 부트스트랩 사람들은! 그들은―”
이즈마일로바가 말을 끊었다. “군터,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위험한 데다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갱생에 대한 대가로 나머지 사람들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면… 글쎄, 대가가 너무 높잖아. 미쳤든 아니든 지금은 그래도 인간인데.”
“내가 인간이 아닌가? 날 간질이면 웃지 않을 것 같아요?” 크리슈나가 말했다.
“당신은 판단할 위치가 못 돼. 당신은 자기 신경 배선을 바꾼 데다가 고결함에 고취되어 있어. 스스로에게 무슨 시험을 해 봤지? 인간 표준으로부터 일탈한 부분을 얼마나 면밀히 기록했지? 당신 수치는 어디 있어?” 그녀는 몇 주나 걸릴 분석을 들먹이고 있었다. 순전히 수사학적인 질문이었다. “당신이 완전한 인간으로 판명나더라도―그리고 난 그럴 것 같지 않지만!―장기적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지?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광기를 향해 걸어가는 걸 무엇이 막아주지? 광기가 무엇인지는 누가 결정해? 누가 프로그래머를 프로그램하고? 아니, 불가능해. 난 우리 마음을 가지고 도박을 하진 않겠어.” 그녀는 방어적으로, 화가 난 듯이 되풀이했다.
“예카트리나. 얼마나 오랫동안 깨어 있었던 거야?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약물이 당신 대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군터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됐다는 듯, 대꾸도 없이 한 손을 흔들었다.
해밀턴이 말했다.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이게 없으면 부트스트랩을 어떻게 돌리려고? 지금 조직은 우리 모두를 꼬마 파시스트로 바꿔 놓고 있어. 광기가 걱정스럽다면, 지금부터 1년이 지났을 때 우리가 어떤 꼴일 것 같아?”
“CMP는 확―”
“CMP는 프로그램에 불과해! 아무리 쌍방향이라고 해도 유연한 사고방식은 아니야. 프로그램에겐 희망이 없어. 새로운 것을 판단할 수 없어. 오래된 결정, 오래된 가치들, 오래된 습관, 오래된 두려움밖에 강요하지 못한다고.” 해밀턴이 외쳤다.
갑자기 예카트리나가 날카롭게 외쳤다. “내 앞에서 사라져!”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더는 듣지 않겠어!”
“예카트리나―” 군터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는 통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가마를 향해 손을 내리기 시작했다. 군터는 그녀가 듣기를 멈춘 것을 알 수 있었다. 약물과 책임감이 그녀를 이 꼴로 만들었다. 모순되는 요구로 그녀를 몰아세우고 당황스럽게 만들다가 떨리는 몸으로 붕괴의 절벽 앞에 서게 만들었다. 하룻밤만 푹 자도 회복될 수 있을지 몰랐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말로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엔진을 파괴하기 전에 달려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 순간 군터는 그녀에 대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예카트리나. 사랑해.”
그녀는 그쪽으로 고개를 반쯤 돌리면서 산란해진, 어쩌면 조금은 짜증스러운 투로 말했다. “도대체 지금―”
그는 작업 멜빵에 꽂힌 볼트건을 들어올리고, 조준하고, 쏘았다. 예카트리나의 헬멧이 산산히 부서졌다. 그녀는 쓰러졌다.
(251-253쪽)
 
「그리핀의 알」은 달 식민지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린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다. SF 자체보다 위에서 옮겨놓은 대화가 말하는 정부조직, 권력, 이성에 대한 얘기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다고 하면 잘못 파악한 것일까.
 
거의 절반 정도를 읽을 때까지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한차례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대략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약간의 역량이 있고 예카트리나 이즈마일로바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와 비슷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바일 군터나 크리스나가 아니라...
 
○ 다른 종류의 어둠 Different Kinds of Darkness | 데이비드 랭포드|
 
휴고 상 단편부문 수상작이라는 「다른 종류의 어둠」은 아이들과 수학,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무기, 그 쓰임과 악용에 대한 하드 SF이다. 미래 사회를 그럴 듯하게 그렸다. 이런 식이라면 미래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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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9 17:49 2009/07/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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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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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Nepali, The Internationale ] 에 관련된 글. 
 
이전 네이버블로그에 올려놓았던 인터내셔널가 관련 글들을 옮겨오면서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하였다.
 

인터내셔널가(1928-30), 오토 그리벨(Otto Griebel; 1895~1972)
위의 사진은 나치지배 독일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의식을 형상화한 '인터내셔널가'라는 작품이다. "노동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열을 지어 행진하는 모습이 화면상에 강고한 수평선을 창출함으로써 강한 연대감이 표출되도록 했다. 경직된 구도와 배열이 화면을 딱딱하게 굳게 했음에도 꿈틀꿈틀 움직이는 붓길이나 강렬한 색상이 혁명의 잠재력과 폭발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저항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출처 : 기관지 노동자의 힘 www.pwc.or.kr)
 
그런데 내가 삐딱한 것인지 노힘의 그림 해설이 그지 와닿지 않더라. 물론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바라봐야겠지만, 위 그림은 민주노총의 정규직 대공장 조직노동자를 보는 것처럼 건장한 백인 남성노동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흑인노동자도, 여성노동자도, 장애인도, 아마 이주노동자도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이들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인터내셔널은 이 그리벨이 묘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넘어서야 한다.
 

최도은 - 인터내셔널가

 

1. 인터내셔널가의 세계 각국 버전
 
2004년 5월경에 인터내셔널가의 세계 각국 버전에 대해 정리한 적이 있다. 바로 아래 사이트에 나오는 노래들에 대해 아는 선에서 나름의 해설을 부친 것이다.
  

http://www.hymn.ru/internationale/index-en.html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위 페이지에 있는 오디오 파일들의 주소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링크걸었던 것들이 별 소용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해설내용만 담아놓는다. 오디오파일은 위 사이트에 가서 직접 듣거나 다운 받으면 된다.

 
words by Eugène Pottier (1871)
music by Pierre Degeyter (1888)
The Internationale, originally a French song, is now a well known song available in most major languages.
It was the official anthem of the Soviet Union in the years 1918 through late 1943 (sung in Russian, of course). It is also the anthem of Communist parties and many socialist movements worldwide. 
 

 Russian
MP3 (5.6MB, 3:59, 192kbps) | RealAudio (4:06, 40kbps) by the choir and orchestra of Bolshoi Theatre, conducted by G. Rozhdestvensky (1977)
소련의 볼쇼이 극장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서 부른 것이다. 처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이었는데, 붉은 군대 합창단 버전과 같이 너무 형식적이고 의례화된 느낌이 들어 요즘은 조금은 꺼려진다.
 
MP3 (7.4MB, 3:58, 256kbps) by the choir and orchestra of Soviet radio, conducted by A. Gauk (from CD “Songs of Russian Proletariat”, 1998; recorded in 1956) | MP3 (3.6MB, 3:47, 128kbps) — pseudostereo version from the movie Reds (USA, 1981) (from the soundtrack CD)
이 버전은 영화 <레즈>에 삽입된 버전과 비슷하다. 피엘송에서 검색해보면 O.S.T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존 리드의 삶을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시종일관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특히 존 리드가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선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터내셔널가가 인상적이다.
 
MP3 (4.8MB, 2:32, 256kbps) — first verse of the Internationale sung in Russian, followed by the US anthem; by the NBC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Arturo Toscanini, tenor Jan Peerce, and Westminster Choir directed by John Finley Williamson (recorded in December 1943 in New York; reissued on an LP by RCA in 1963; during the Cold War, the footage with the Internationale was censored from the film made in 1943 of Toscanini conducting Verdi’s Hymn of the Nations with the Internationale and The Star-Spangled Banner added at the and of Verdi’s score) | MP3 (29.2MB, 15:34, 256kbps) — full recording of Giuseppe Verdi’s cantata “Inno delle Nazioni” from which the preceding fragment was taken
들어보면 알겠지만, 인터내셔널가 다음에 미국 국가가 나온다. 그래서 조금은 황당한 버전. 도대체 인터내셔널가와 미국 국가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아마도 여기서 인터내셔널가는 소련국가로서 사용된 듯하다.
 
A cappella: MP3 (1.1MB, 1:11, 128kbps) — soundtrack of Doctor Zhivago (1965) (from CD “Doctor Zhivago”, 1995)
영화 <닥터 지바고>에 보면 1분 정도 이 노래가 연주 없이 아카펠라로 배경으로 깔린다.
 
English
MP3 (8.9MB, 3:48, 320kbps) — modern version by Billy Bragg (from CD “The Internationale”, 1990)
적기가 등의 노래를 부른 바 있는 빌리 브래그가 인터가를 포크풍으로 편곡하여 불렀다. 이는 젊은 세대가 많이 부를 수 있도록 쉬운 단어와 현대영어에 맞춘 가사로 불렀는데, 영국에서는 널리 불리워지고 있다고 한다. 포크버전 중에서는 최근에 많이 접해서 익숙한 버전이다.
 
Chinese
MP3 (4.1MB, 4:24, 128kbps) by Tang Dynasty band, in rock style (from CD “A Dream Return to Tang Dynasty”, 1992)
평소에 즐겨듣던 중국 락 버전이 Tang Dynasty band의 1992년 앨범에 실린 것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사건 당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던 학생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노래를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Dutch
MP3 (12.4MB, 6:38, 256kbps) — one verse sung in Dutch followed by a long instrumental play; sung by Tom Van Landuyt accompanied by an ad-hoc band (from CD prepared for delegates to the 59th statutory congress of the Belgian Metalworkers’ Union (de Centrale der Metaalindustrie van België), 2005; recorded in 2005)
이 사이트에 실린 인터내셔널가 버전 중에서 제일 길다.
 
Japanese
MP3 (4.4MB, 4:40, 128kbps) by Soul Flower Mononoke Summit group
소위 이박사풍 버전으로, 일본의 Soul Flower Mononoke Summit이라는 그룹이 인터내셔널가를 아주 흥겹게 부른다. 
 
 
2004/08/17 19:48
이 편곡은 보통 볼쇼이합창단이나 붉은군대합창단과 같은 장엄하지만 약간은 생기가 사라진 곡이나, 재즈나 포크, 락풍으로 번안된 곡과는 달리 곡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약간의 추임새가 분위기를 북돋우고, 절로 흥이 난다. 인터내셔날가와 같은 무거운 노래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 그게 진보가 아닐까.
이 노래를 민중가요 포탈사이트에서 발견하여 민지네(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모임)에 처음 소개했을 때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다. 우리의 진보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위기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내셔날가를 이런 풍으로 편곡해서 보급한다면 대히트일텐데. 민중가요의 확산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게 민중가요냐, 아니냐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이 노래를 올린 이유는 거원의 제트 오디오를 이용하여 MP3를 WMA로 바꾸어 2M내에서 파일을 올릴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이제는 MP3파일을 저장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거기에다 링크를 거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 같다.
  

2004/12/02 이 노래와 관련해서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
marishin님의 진보블로그에서 '솔 플라워 모노노케 서밋'의 인터내셔널가를 소개한 포스트를 보았다. http://blog.jinbo.net/marishin/?pid=107
네이버에서 외부로 엮인글 설정이 안되어 그냥 주소를 적었다. 별 내용은 없지만 말이다.
여기에 보니 
한글로 된 그룹 소개 페이지도 있다!고 나온다. 왜 내가 검색했을 때는 찾지 못했을까? 
암튼 이리저리 맞춰보면 이 그룹이 부른 인터내셔널가는 1997년에 발매된
<레베러즈 칭동>(Levellers Ching-Dong)에 실려있는 것 같다. 
SOUL FLOWER MONONOKE SUMMIT
SF-038
ALBUM 1997.8.16
Respect Records / RES-2 
 
 
2010. 7.
솔 플라워 모노노케 서밋의 라이브 공연이 유튜브에 올아와있음을 알고 이를 링크한다. 하지만 노래 많이 튀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 음질까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

 
Korean 
MP3 (3.0MB, 3:15, 128kbps) (from North Korean LP “Music for formal occasions”)
북한의 공식행사에서 의전용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버전으로, 처음에 들을 때에는 어느 언어로 부르는지 가사가 잘 들리지 않지만, 귀기울여 보면 한국어임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의 가사의 형태로 남아있으며, '국제가' 또는 '국제공산당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고 한다. 후렴에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MP3 (3.8MB, 4:19, vbr122kbps)
서울지하철노조 노래패 소리물결에서 부른 것이다. 왜 최도은 버전은 없을까.
 
Polish
MP3 (1.7MB, 1:46, 128kbps)
상당히 서정적인 연주가 인상적이다.
 
Serbo-Croatian
MP3 (770KB, 1:52, 56kbps) | RealAudio (1:52, 16kbps) by The Artistic Ensemble of the Yugoslav Peoples Army’s Home — Belgrade
전형적인 애국가풍의 노래이다.
 
Tagalog (Philippines)
MP3 (2.3MB, 2:24, 128kbps) by a cultural group of the New People’s Army (Philippines) (1984?)
필리핀이라고 해서 영어로 부르는 줄 알았는데, 영어가 아니다.
 
Instrumental recordings 
MP3 (1.3MB, 1:21, vbr128kbps)
애국가를 연주만 할 때의 그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MP3 (2.1MB, 1:31, 192kbps) by the orchestra of Polish Army, conducted by Arnold Rezler (from German CD “The (Former) Anthems of (Former) Socialist Countries”, 2002)
폴란드 군악대의 버전은 위의 버전보다 조금 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행사 때 써먹으면 좋을 듯하다. 물론 의전용으로.
 
MP3 (1.1MB, 1:11, 128kbps) by the Central Band of the Czechoslovak Defense Ministry
위의 폴란드 군악대의 연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MP3 (3.1MB, 3:46, 112kbps) by some Chinese orchestra
연주곡 중에서는 가장 긴 버전인 듯하다.
 
MP3 (1.3MB, 1:26, 128kbps) by the Brass Band of the Hungarian People’s Army
군악대의 연주곡은 다들 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버전.
 
MP3 (1.1MB, 1:09, 128kbps) by Berlin Regimental Band “Wachregiment Berlin”, conducted by Guido Grosch(recorded by the German Radio Company in 1936; this is the only official recording of the Soviet anthem made in Nazi Germany, for the 1936 Olympics, in which the Soviet Union did not participate)
나찌독일 치하에서 열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소련 국가로서 연주되었던 노래라고 한다. 물론 소련은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연습용으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2. 고종석, 나의 <인터내셔널> 청취기 2004/06/12 19:37
 
시사저널 제639호 2002/01/24에 실린 고종석의 글이다. 고종석은 대표적인 자유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인터내셔널가가 가진 보편성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위의 인터내셔널가에 관한 글을 퍼오면서 이 글이 생각나더라. 

 

<인터내셔널>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 초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하며 대학원에 다니던 그 시절, 내 가장 큰 (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즐거움은 ‘민중 가요’를 듣는 것이었다. 그 야만적 세월에 욕지기를 느끼면서도 사회를 바꾸기 위해 뭔가를 해볼 의지도 용기도 없던 나는 그저 더 나은 세상을 그리는 노래를 남 몰래 듣는 것으로 내 겁 많은 영혼을 위로했다. 물론 그 시절에조차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환상을 품지는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한데, 집단의 폭력에 대한 공포가 내게 거의 생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밑줄을 치며 <자본론>을 정독할 열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단적 선동성으로 가득 찬 민중 가요들을 즐겨 들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밉살맞을 만큼 모순적이었다. 
 
그 시절 나는 몇몇 대학들 앞에 포진한 이른바 사회과학서점엘 자주 들렀다.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불법으로 생산된 민중 가요 테이프들의 가장 일반적인 유통 경로가 사회과학 서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사들인 테이프가 100개는 넘는 것 같다. 음질이 그리 좋지 않았던 그 테이프들에는 일제 시대 항일 운동가들이 불렀던 혁명 가요에서부터 1970년대 말 이래 청년의 정액처럼 힘차게 솟구쳐 나온 운동 가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중 가요가 담겨 있었다.
 
나는 학교나 거리의 시위 현장에서가 아니라 그 테이프를 통해 <공장의 불빛>이나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5월> 같은 노래를 배웠다. <인터내셔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제작처가 밝혀지지 않은 한 테이프에 <인터내셔널>이 영어로 담겨 있었다.
 
시절 바뀐 1980년대 말부터 ‘허밍’으로 읊조려
좀더 좋은 음질로 내가 <인터내셔널>을 듣게 된 것은 1980년대 말 비디오로 본 <레드>라는 영화에서였다. 미국 저널리스트로 러시아 혁명의 참여적 관찰자가 된 존 리드의 생애를 그린 그 영화에서 1917년의 10월 혁명 장면에 당연하게도 <인터내셔널>이 삽입되었다. 이 영화 속에서, <인터내셔널>의 소박 단순한 멜로디는 화면 속의 군중 모습과 포개지며 그 선동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즈음부터 나는 술이 약간 들어가면 <인터내셔널>을 허밍으로 읊조리는 버릇이 들었다. 물론 세월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뜻이겠다. 전두환 시절 같았으면, 아무리 술이 들어가도 내 집요한 자기 검열은 그런 호사를 방해했을 것이다. 아니, 노태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완강히 살아있었다면, <인터내셔널>을 읊조리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The Reds에 삽입된 International < 출처: 피엘송 > 
 
1992년에 난생 처음 파리에 가보았다. <인터내셔널>의 고향인 그 도시에서 나는 이 노래의 프랑스어 가사를 익혔다. 그 뒤로 <인터내셔널>은 내가 애창하는 ‘샹송’ 넘버에 끼게 되었다.
 
1990년대의 다섯 해 동안 파리에 살면서 나는 자주 페르라셰즈 묘지에 들러 <인터내셔널> 작사자 외젠 포티에의 무덤을 찾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 노래를 부르며 혁명이 완전히 사라져 안전해진 시대를 비겁한 역설로 구가했다.
 
환란의 여파로 서울에 돌아와 살며 나는 한동안 <인터내셔널>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세밑에 한 젊은 친구가 내게 새해 선물로 CD 한 장을 주었다. 그 CD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인터내셔널>로 채워져 있다. 내가 가사를 아는 프랑스어만이 아니라, 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독일어 그리고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여러 언어들로 <인터내셔널>이 담긴 CD다. 요즘 나는 일자리에서, 잠자리에서 이 CD를 듣는다. 1980년대에 일자리에서, 잠자리에서 민중 가요 테이프를 들었듯. 나는 비록 앞으로도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일이 없겠지만, 이 노래는 내 눈길을 늘 사회적 소수파에게로 가 닿게 만들 것이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여 일어서라/ 굶주린 도형수들이여 일어서라/ 이성이 그 분화구 안에서 천둥친다/ 이젠 끝이 왔다/ 과거를 백지 상태로 만들자/ 노예들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세계는 근본부터 뒤바뀌리라/ 지금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나 이제 모든 것이 될 터/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라네/ 단결하세 그러면 내일/ 인터내셔널이 인류가 될 테니".  

 

3. 인터내셔널가 2005/05/18 11:23
 
이번 노동절 때 인터내셔널가에 대한 얘기를 써보려다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올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2002년도에 써두었던 글을 옮겨온다.

 

  이름 : 길잡이 번호 : 176
  게시일 : 2002/01/25 (금) PM 09:21:38 (수정 2002/01/25 (금) PM 09:22:20) 조회 : 18
  
  인터내셔널가에 대한 고종석의 개인적 소회가 나온 김에 인터내셔널가 얘기를 해보자.
  
  요새는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지만, 80년대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멜로디는 차치하고라도 가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또한 정파대립이 극심했던 것도 한 이유이다. 그래서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당시 집회에서 애국가 대신으로 민중의례시에 유행하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으로 시작하는 민족해방가를 주로 불렀다면, 인터내셔널가는 끼리끼리 골방에서 부르는 노래였다. 그리고 또한 레드 콤플렉스도 작용하였다. 민족해방가까지는 허용된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내셔널가는 좀더 확고한 신념(?)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했던 88년도에 이 노래를 접했다. 당시엔 지금과 다른 가사가 번안되어 불리워졌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 우린 울었다.…" (이 가사는 예전 노래책에 나와 있는데, '역사의 새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악보가 나와있다)
  처음부터 뭐랄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전율 같은 것이 왔다.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노래가 몇 개가 있는데, 소리물결에서 부른 '민중의 노래(레미제라블 삽입곡)', '녹슬은 해방구', '영원한 노동자', '저 평등의 땅에',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한 '투쟁의 물결' 등이 그런 노래였다. 아마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노래를 약간 과시 삼아 불렀다. 내 자신의 신념이나 세계관이 이러하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런 우쭐한 태도로 말이다. 그래서 집회나 행사 등의 뒷풀이 등이 끝난 뒤에는 과친구, 선후배들과 모여 인터내셔널가와 과가(불나비를 개사한 것이다)를 불렀다. 그것으로 남과 구별된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다. 그 때 내 나이또래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러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젊을 때의 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불리워지는 인터내셔널가 가사는 시인 김정환이 '노문연(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으로 있을 때 번안한 것으로, 90년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공연하면서 이를 정식으로 불러 퍼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버전보다 더 혁명적이고 원어 가사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든 행진곡 풍의 노래가 그렇듯이 인터가 또한 여럿이서 함께 부를 때 빛이 난다.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때면 다수의 대중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우선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내걸고 혁신하다가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을 내릴 무렵 열렸던 소련의 공산당대회에 관한 기사가 문화방송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폐회 장면에서 인터내셔널가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소련의 붕괴를 알리는 장송곡이었달까? 그때 난 인터내셔널가가 일국의 국가로서 사용되는 것에 분노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련의 국가는 따로 있었다. -_-;;)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마 91년 지하 노동운동 세력이 합법적인 진보정당을 내걸고 나와 당의 깃발을 올린 한국노동당 창당대회장(아마 무역회관 코엑스 빌딩이었던 듯하다)에서 창당선언문을 낭독할 때 인터내셔널가를 배경음악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약간 충격적이었고(확실하게 빨갱이의 음악이었으니까..), 그 노래를 만명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부른 최초의 순간은 92년도 올림픽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백기완 민중후보의 대통령 선출대회였던 듯하다. 이후에 인터내셔널가는 점차 큰 부담 없이 불리워지는 노래가 되었다. 작년 노동절 때 대학로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합창한 것도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인터내셔널가는 그 연주 또한 감동적이다. 현재 내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인터가의 피아노곡(청년진보당(현 사회당)이 정치연수원을 개원하고 1기 간부학교를 마치고 난 졸업식때 공연된 것의 녹음)이며, 또 Z.E.N이 첫곡으로 내놓았던 '아빠와 전태일'의 간주도 인터가이다. 가끔 티브이에 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좌파의 이야기를 다룰 때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올 때가 있다. 
   
  우리가 인터내셔널가를 대중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은 영화를 통해서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장면은 켄 로치 감독이 만든 'Land and Freedom'에서 친한 동지를 땅에 묻으면서 나오는 부르는 것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당시 민중들의 투쟁과 갈등을 그린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는 원곡이 소리가 작은 관계로 볼륨을 높여야 잘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장면은 존 리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Reds]에서 리드가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선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터내셔널가이다. 또 [양철북]에서도 이 노래가 나오고, [1900년]에서도 나오며, [에어포스 원]에서 악당의 콧노래로도 나온다. 
      
  참,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때 우리는 아지를 한다. 그 전주처럼 사용되는 아지(agitation)은 인터내셔널가를 함께 부를 때 주문과도 같다. 나는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사용하여 하는 아지밖에 몰랐는데, 최근에는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레히트의 시 '예심판사 앞에 선 16세 봉제공 엠마 리이스'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판사앞에 섰을 때
  그녀는 요구받았다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가
  그 이유를 대라고
  이에 답하고나서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그녀의 소리가 매섭게 외쳤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자본가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 앞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투쟁! 투쟁! 투쟁투쟁투쟁!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 들어라 최후 결전 승리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라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자유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이 절은 맨 마지막에만 부른다)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 반복
  
  3 억세고 못박혀 굳은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태양은 지평선에 떠온다
  
  * 반복

  

4. '인터내셔널가'에 얽힌 이야기들 (장석원)  2006/05/02 20:37
 
레디앙의 장석원 기자는 뭘 이렇게 쓸데없는 것을 많이 알고 있는 거여. 116주년 노동절을 맞이하여 퍼다놓을 수 있는 괜찮은 기사.
기사에 언급되는 노래에 맞는 버전을 피엘송에서 구해 추가하였다.

 


인터내셔널가 부르려면 저작권료 내야할까?

'인터내셔널가'에 얽힌 이야기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오늘은 메이데이.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해방을 향한 영원한 투쟁을 선언한다. 이 때 반드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인터내셔널가”다.

인터내셔널가는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걸까?

  

인터내셔널가의 아버지는 파리꼬뮌에 전사로 참여했던 프랑스인 외젠 포티에Eugene Pottier다. 사회주의자였으며 운수노동자였고, 시인이었던 그가 파리꼬뮌을 기념하기 위해 1871년에 쓴 시가 노래의 기원이 됐다. 당시의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시를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불렀다. 그러던 중 1888년 역시 프랑스인인 피에르 드제이테Pierre Degeyter가 곡을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내셔널가의 멜로디는 이때 처음 생겨났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노래는 아닌 셈이다.

  

드제이테는 곡을 만들면서 운율 등을 고려해 가사를 일부 수정했다. 따라서 포티에가 파리꼬뮌의 시기에 쓴 원작 시는 그 이후 프랑스 안에서도 점차 잊혀졌다. 지금은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부른 인터내셔널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참여했던 제1인터내셔널의 주제가가 됐다. 그러나 첫 번째 인터내셔널은 이 노래가 나온 다음해인 1872년에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분열로 인해 사실상 문을 닫았다.

드제이테가 새로 곡을 붙인 인터내셔널가는 1889년 두 번째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자 즉각 사회주의자들의 찬가로 채택됐다. 이후 유럽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75종이 넘는 다양한 가사가 존재

  

   
▲ 1900년대 인터내셔널가 악보의 표지
아마 ‘생일축하’노래 정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불려지는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일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사들이 존재할 정도다.

  

가장 많은 것은 영어로 된 인터내셔널이다. 영국에서만 두 가지의 다른 가사가 존재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수입된 가사를 부르다가 전국단일노조 운동을 벌였던 아나코생디칼리스들인 IWW가 1900년대에 만든 새 가사가 표준이 됐다. 이외에도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르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영어가사가 존재한다.

    

이처럼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서로 가사가 다르고 특히 인터내셔널의 영어 번역은 구어체의 문장과 딱딱한 단어들의 남발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영국의 좌익 뮤지션인 빌리 브랙Billy Bragg은 1990년 미국의 저명한 포크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와 함께 새로운 영어 가사를 만들었다. 쉬운 단어와 현대영어에 맞춘 가사로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영국에서는 빌리 브랙의 새 가사가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나이 많은 좌익들을 제외하고는 새 가사로 바뀌는 추세라고 한다.

Pete Seeger - International
  
Billy Bragg - International

  

British Translation Billy Bragg's Revision American version
First stanza

Arise, ye workers from your slumber,
Arise, ye prisoners of want.
For reason in revolt now thunders,
and at last ends the age of cant!
Away with all your superstitions,
Servile masses, arise, arise!
We'll change henceforth the old tradition,
And spurn the dust to win the prize!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Stand up, all victims of oppression,
For the tyrants fear your might!
Don't cling so hard to your possessions,
For you have nothing if you have no rights!
Let racist ignorance be ended,
For respect makes the empires fall!
Freedom is merely privilege extended,
Unless enjoyed by one and all.
  So come brothers and sisters,
  For the struggle carries on.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world in song.
  So comrades, come rally,
  For this is the time and place!
  The international ideal,
  Unites the human race.

Arise, you prisoners of starvation!
Arise, you wretched of the earth!
For justice thunders condemnation:
A better world's in birth!
No more tradition's chains shall bind us,
Arise you slaves, no more in thrall!
The earth shall rise on new foundations:
We have been nought, we shall be all!
  'Tis the final conflict,
  Let each stand in his place.
  The international soviet
  Shall be the human race
  'Tis the final conflict,
  Let each stand in his place.
  The international soviet
  Shall be the human race

Second stanza

No more deluded by reaction,
On tyrants only we'll make war!
The soldiers too will take strike action,
They'll break ranks and fight no more!
And if those cannibals keep trying,
To sacrifice us to their pride,
They soon shall hear the bullets flying,
We'll shoot the generals on our own side.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Let no one build walls to divide us,
Walls of hatred nor walls of stone.
Come greet the dawn and stand beside us,
We'll live together or we'll die alone.
In our world poisoned by exploitation,
Those who have taken, now they must give!
And end the vanity of nations,
We've but one Earth on which to live.
  So come brothers and sisters,
  For the struggle carries on.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world in song.
  So comrades, come rally,
  For this is the time and place!
  The international ideal,
  Unites the human race.

We want no condescending saviors
To rule us from their judgment hall,
We workers ask not for their favors
Let us consult for all:
To make the thief disgorge his booty
To free the spirit from its cell,
We must ourselves decide our duty,
We must decide, and do it well.
  'Tis the final conflict,
  Let each stand in his place.
  The international soviet
  Shall be the human race
  'Tis the final conflict,
  Let each stand in his place.
  The international soviet
  Shall be the human race

Third stanza

No saviour from on high delivers,
No faith have we in prince or peer.
Our own right hand the chains must shiver,
Chains of hatred, greed and fear.
E'er the thieves will out with their booty,
And give to all a happier lot.
Each at the forge must do their duty,
And we'll strike while the iron is hot.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So comrades, come rally,
  And the last fight let us face.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human race.

And so begins the final drama,
In the streets and in the fields.
We stand unbowed before their armour,
We defy their guns and shields!
When we fight, provoked by their aggression,
Let us be inspired by life and love.
For though they offer us concessions,
Change will not come from above!
  So come brothers and sisters,
  For the struggle carries on.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world in song.
  So comrades, come rally,
  For this is the time and place!
  The international ideal,
  Unites the human race.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e

  

이외에도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모두 대여섯개 이상의 다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 프랑스 가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고,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집어넣으면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에스파냐어의 경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라는 지리적 차이 때문에 가사에 변형이 생기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어 가사는 하나뿐이다. 망명 중인 레닌이 초기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해 ‘공인’한 이후 아무도 가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레닌의 권위 때문이었는지 당에 대한 공포였는지는 알 수 없다.

The choir and orchestra of Bolshoi Theatre - International
   

서로 다른 한글 가사도 3개나 있다

일제시대-북한 가사의 후렴에는 ‘판갈이 싸움이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판갈이’ 구호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일어나라 저주로인 맞은
주리고 종된 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 넘쳐
결사전을 하게하네.
억제의 세상 뿌리 빼고
새 세계를 세우자.
짓밟혀 천대받은 자
모든 것의 주인이 되리.

[후렴]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우리를 구제 못하라
우리는 다만 제 손으로
헤방을 가져오리라
거세인 솜씨로 압박 부시고
제것을 찾자면
풀무를 불며 용감히
두드려라 쇠가 단김에

[후렴] 반복

우리는 오직 전세계의
위대한 로력의 군대
땅덩어리는 우리의것이니
기생충에게는 없으리
개무리와 도살자에게는
큰 벼락 쏟아져도
우리의 머리 우에는
찬란한 태양이 비치리

[후렴] 반복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글로 된 가사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어, 우리말로 된 인터내셔널가가 또 있다고?’하며 놀라겠지만 한국어 인터내셔널가는 모두 3종류다.

 

우선 일제시대에 ‘인터나쇼날’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첫 번째 가사가 있다. 정확히 인터내셔널가의 한글 번역이 언제 이뤄졌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대략 1922년 일본어 가사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추정된다. 한글 가사와 일어 가사는 서로 내용이 달라 일본가사를 번역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일본 가사의 특이한 후렴구조가 한글 가사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일본가사를 참고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지금도 북한에서 불려지고 있다. 다만 제목은 ‘국제가’ 또는 ‘국제공산당가’라고 한다. 주로 의전용으로 사용되며 북한 민중들이 일상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전쟁을 통해 좌익과 이에 연관된 모든 것들이 분서갱유 당했기 때문에 ‘인터내셔널가’는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 80년대 들어 민중음악 활동가들이 외국에서 악보를 다시 들여오면서 복원됐다.

연세대 총학생회(한열아 부활하라!!) - 역사의 새주인

 

처음에는 영어 가사를 직역한 듯한 노래말로 매우 투박한 인상이었다. 제목도 “역사의 새 주인”이었다. 이후 보다 매끄럽게 한글 가사를 다듬은 노래가 전노협 시기 노동운동 노래패를 통해 보급됐다. 이 가사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다.

메아리 - 인터내셔널가

 

인터내셔널가의 어두운 면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해방, 국제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가 항상 영광 속에서만 불려졌던 것은 아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20세기 초반까지 대다수의 나라에서 인터내셔널가는 금지곡이었다. 이에 상관없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집회와 모임에서 노래를 합창했지만 이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1917년 혁명 이후 인터내셔널가는 소비에트연방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틀러와의 전쟁 중인 1944년 이 노래 대신 새로 만든 ‘소련찬가’를 국가로 삼았다. 인터내셔널가의 국제주의를 소련찬가의 애국주의로 교체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코민테른(제3 인터내셔널)을 해체했다.

Red Army Chorus - International
   

그 이전인 1935년 모스크바는 프랑스 공산당에 프랑스어 인터내셔널가 중 군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구절을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프랑스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소련이 프랑스 군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전 세계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에게 국제주의와 국경을 넘어선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다. 이념은 달라도 사회민주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모두 이 노래를 부르지만 때로는 이념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지금도 공산당원들과 사회당원들이 서로 다른 가사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른다. 칠레 사회당과 공산당의 인터내셔널가도 조금 차이가 있다.

 

인터내셔널가와 얽힌 비극적 기억 중의 하나는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사건이다. 당시 광장에 모여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들은 운동가로 이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1980년 서울의 봄 때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들이 많은 사람이 아는 고향의 봄이나 애국가를 부른 것과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학생들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노동자 군대의 각성’을 노래하다 인민해방군이 보낸 탱크에 희생됐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인터내셔널

   
▲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포스터
인터내셔널가는 워낙 많이 알려진 노래고 또 노동운동과 좌익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만큼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나 기록 영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인터내셔널가가 자취를 감췄다고 했는데 한번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65년 개봉된 영화 <닥터 지바고>에는 1분 정도 이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장면이 있다. 아마 전쟁이후 인터내셔널가가 남한에서 공공연하게 공개된 첫 번째 사례이겠지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챈 사람은 그리 만치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혁명을 취재한 미국의 공산주의자 언론인 존 리드의 삶을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시종일관 이 노래가 흘러나와 인터내셔널가를 배우는 교재로는 딱 안성맞춤인 영화였다. 그러나 워런 비티 같은 인기스타가 나오고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은 영화임에도 1981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국내개봉은 못했다.

  

인터내셔널가가 가장 인상적으로 사용된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국제여단의 전사들이 파시스트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동지를 묻으며 장송곡 대신 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제주의라는 노래의 테마를 이보다 더 잘 살려낸 장면은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을 수 있는 영화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에어포스 원>이다. 해리슨 포드가 테러리스트 잡는 대통령으로 나온 이 ‘무협영화’를 보면 러시아에 체포된 카자흐스탄의 독재자 장군이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 감옥 안의 죄수들이 독재자를 위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반북집회에 모인 우익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격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카피레프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터내셔널가는 좌파의 노래고 오래된 곡이니까 저작권과 상관없이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 노래는 지금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인터내셔널가는 2014년까지 저작권을 보호받는다. 이 노래를 작곡한 피에르 드제이테는 1932년 사망했다. 작가의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을 인정하는 프랑스 법에 의해 2002년까지 보호를 받지만 두차례의 세계대전동안의 기간을 제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2014년까지 보호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프랑스의 한 영화 제작자가 이 노래를 사용하기 위해 1,000유로를 지불하기도 했다.

2006년 04월 28일 (금) 14:15:19                                                                            장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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