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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보고서 초안에 대한 검토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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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공공연구소에서 국가재정에 관한 보고서를 내려고 하는데, 그 초안에 대해 미리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을 적어봤다. 예산이나 재정이 내 주전공은 아니지만, 내가 해왔던 공부와 많이 관련이 된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런데 나 또한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비판의 날만 세운 것은 아닌가 싶다. 자신이 비판당하는 입장에 처해보면 알겠지만, 비판하는 것은 쉬워도, 비판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제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제 연구실 옆자리에 있는 친구가 자신의 논문계획서에 대해 지도교수가 딴지놓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갈등관리, 주민투표에 관한 사항이라서 내가 하는 범위에서 상담을 해주었더니 내가 상당히 많이 아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하지만 아마도 상대방은 분명 나보다 더 많이 연구를 했을 텐데도 말이다. 내가 publish된 논문이나 글이 있었다면 다르게 느꼈을까. 
 
아무튼 국가재정에 대해서도 진보진영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인식을 풍부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보수정치꾼들과 우파 학자들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국가재정이 진보운동에 주는 의미
첫째, 국가재정은 사회공공성운동의 재정적 기반이다. 진보운동이 사회공공성 강화를 외친다면 그것의 현실화 여부는 긍극적으로 국가재정의 확보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진보진영이 부문별로 공적재정의 지원을 강조해 왔으나 국가재정을 전체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이제 국가재정 체계를 총괄적으로 정리하고 개혁방향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가재정은 계급적 의제이다. 정부는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이 때 누가 얼마를 내고, 어디에 사용하느냐를 둘러싸고 계급적 이해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가재정은 진보운동이 계급정치를 구현할 중요한 공간인 셈이다.
셋째, 국가재정은 미래 집권을 향한 훈련장이다. 진정 권력을 얻고자하는 세력이라면 국가재정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운영전략을 지니는 것은 필수과제다. 이제 국가재정을 통해 국정운영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재정운동은, 다른 진보적 활동이 그러하듯이, 긍극적으로 계급형성운동에 기여한다. 국가재정은 자본주의체제 내 계급세력간 조정의 결과로 정해지는 것이기에 그 목표가 어느 수준을 넘기도 어렵다. 국가재정운동이 가져야 할 진정한 목표는 국가재정을 둘러싼 계급간 이해 갈등을 기초로 연대와 공공성을 향한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요약하면, 진보운동이 벌이는 국가재정운동은 자본주의시장이 낳은 계급간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공공적 토대를 강화하는 물질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며 긍극적으로 국가재정이 갖는 계급적 성격을 공론화하고 이 과정에서 진보적 정치주체을 키우는 계급형성운동이다. 이것이 경제위기 부상하는 ‘국가의 복귀’의 시대, 진보운동이 국가재정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 1. 국가재정에 개입하는 것의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면서, 긍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이를 국가재정운동으로까지 항상시킬 수 있는지? 국가재정운동을 인정한다고 해도 계급형성운동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매개고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운동진영에서 시도하고 있는 국가재정에 대한 개입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국가재정운동이 진보적 정치주체 양성으로 이어진다고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2. 국가재정은 주로 보수세력들 사이의 각축으로 드러났고, 여기에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별로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국가재정이 진보운동이 계급정치를 구현할 중요한 공간으로 논하는 것은 몇 단계 뛰어넘는 것이다. 국가재정이 계급적 의제인 것은 분명하나, 현재의 국가재정의 쟁점에서 계급적 이해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국가재정이 계급적 의제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 진보세력이 국가재정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운영전략을 지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국정운영능력 제고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지방재정에 대한 파악과 함께 지방정부에서부터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 지방정부에서 모범적인 운영사례조차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재정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자연스레 국정운영능력과 연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진보세력이 장악했던 지방정부의 운영능력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우선되어야 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지방정부에 대한 개입지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4. 정치와 경제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대체로 기존의 국가재정 논의는 재정을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면서 계급적 함의를 탈각시킨다. 따라서 국가재정이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의 문제를 풀어낼 때 해결될 수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 책임운영기관의 문제
→ 책임운영기관의 문제는 특별회계의 측면뿐만 아니라 인사관리, 조직관리, 평가, 사유화의 전단계라는 측면 등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책임운영기관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선 다른 면까지 지적해야 한다. 책임운영기관에 대해서는 별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임운영기관이 법인화가 된다는 것은 「공공기관운영법」상의 공공기관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인화의 부작용을 지적한다면, 공공기관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기금 의사결정 지배구조의 민주화와 관련하여
→ 기금뿐만 아니라 국가재정 전반에 걸쳐 시민,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추가하여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 변화양상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밝히면 좋을 듯하다.
김대중정부에서부터 기금개혁을 포함한 국가재정법 제정 등 재정개혁은 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다른 재정개혁보다 기금개혁이 우선되었던 것은 기획예산처의 권한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는 견해도 있었다. 무소불위의 기획재정부의 문제는 국가재정을 분석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 중기재정운용계획의 도입 관련
→ 초안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기 재정운용계획이 중요한 만큼 이를 추진하는 정부의 성격이 중요하다. 어떤 정부가 어떠한 재정전략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재정의 정치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정부의 중기재정운용계획뿐만 아니라 노무현정부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 한다. 단지 이를 시행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선거파퓰리즘은 주로 우파경제학자들에 의해 정치와 경제를 단절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명박후보의 747공약이 선거포퓰리즘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국가재정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하면 이를 우파경제학자들의 논리와 차별점이 없다.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비판의 가장 주요한 근거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중기 재정운용에 대한 국회의 심의권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
 
□ 사업별 예산제도에서 분야별 프로그램예산제도로
→ 이러한 변화는 그 동안 예산제도 개혁에서 주장되어온 것인데, 노무현 정부는 이외에도 행정학계에서 주장되어온 상당한 정부개혁내용을 실시했다. 하지만 그것이 기대했던 효과를 냈는지 여부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의 자체가 유야무야되고 있다. 분야별 프로그램예산제도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그 의미에 대해 원칙적인 언급을 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이러한 예산개혁은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 상향식 편성(Bottom-up)에서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으로
→ 총액배분자율편성이 상향식 예산편성이 지니는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할 수는 있겠으나, 이전에도 예산부처의 목적이 우선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 탑다운 예산은 이러한 문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탑다운 예산편성은 기관별로 총액예산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하며, 성과관리와 예산을 실질적으로 연계하고자 한다. 결국 성과관리가 가진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 연관성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총액인건비제와 총액배분자율편성이 연계가 있다면 총액인건비제가 공공부문노동자들에게 가하는 제약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국가재정 산정방식: 재정통계 수치 혼동
→ 국가재정 산정방식은 지난 노무현 정부 하에서 정부규모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다. 단지 재정통계 수치 혼동문제만을 지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정규모 산정방식과 관련한 정부규모 파악 논쟁을 간단히 정리해주고, 이에 대해 그 이후 논의의 진행경과와 함께 현 시점에서의 함의에 대해 서술해주어야 한다.
특히 이 논의는 단순히 작은정부-큰정부 프레임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 국가재정 세입구조: 왜 한국의 국가재정은 작은가?
→ 총직접세 강화뿐 아니라 기존 논의에서 얘기되는 세입확충방안에 대한 분석도 포함하여 대안으로 제출하면 좋을 듯하다.
 
□ 변형된 재정지출: 특혜와 낭비로 얼룩진 민간투자사업
→ 민간투자사업의 문제점 지적에 있어서 지방정부에서 훨씬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의 경우 민자사업을 추진할 유인이 많은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민자사업의 문제점은 대부분 잘못된 수요예측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그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민자도로의 통행량 예측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를 감시통제해야 할 관료들이 오히려 토건자본과 한통속이 되어 공사비를 부풀리는 문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민자사업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의 지배구조 문제, 심의과정 부실 문제가 지적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추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민자사업도 신중해질 것이다.
민자도로의 경우 건설업자들이 선호를 보이는 이유는 여전히 최소운영수입보장제가 작동한다는 점보다는 이명박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인해 현재의 수도권 교통량을 고려할 때 운영 수익이 충당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공재원을 통한 SOC 확충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동차 이용 축소와 대중교통망 확충의 수요 관리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 국가재정 관리체계: 예비타당성조사의 도입과 후퇴
→ 대안 문제를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 국가재정 건전성 논란
→ 국가재정 건전성은 경제학자들이 일상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인 만큼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면 이들 경제학자들의 논의와 차별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국가재정 건전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 국가재정과 지방재정: 지방정부 재정취약성 해결 방안
→ 지방재정 안정화 방안의 쟁점이 지방세 확충 vs. 지방재정조정제도 강화만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국고보조금의 매칭펀드제와 지방소득세ㆍ소비세 도입으로 인한 지역불균형 심화, 지방교부세 급감 분석, 이명박정부의 강력한 재정 조기집행 방침에 따른 세출 급증과 세입 급감 문제, 그리고 이에 따른 지방채 발행 문제 등에 대해 지적해야 한다. 
 
□ 결론-대안에서
→ 자원 배분의 공정성과 시민 의사 반영을 위한 시민예산제도의 도입
이에 대해서는 이미 노무현정부에서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냈던 윤성식 교수가 2002년도에 제기한 바 있다. 행정부와 의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바람직한 예산편성에 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예산을 편성하도록 제도적 조치를 강구하자는 것이다. “예산의 일정액을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편성하거나 시민단체의 제안이나 일정 숫자 이상의 서명을 받은 청원을 심사하여 예산을 할당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일정 주민을 무작위로 선정하거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예산심사를 하도록 하거나 여론조사를 통해 주민의 의사에 의한 예산편성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민예산제도는 자원배분의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실질화하면서 이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입한다고 보면 된다. 이를 보완하여 이해관계자 및 시민 대표가 국가재정에 참여하고 이를 감시ㆍ통제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기한다.
그 전제는 시민예산학교 등을 통해 시민들이 국가재정을 좀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다.
→ 결론부분은 대안에 관한 것인데, 앞에 있는 논의에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총직접세 강화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그리고 진보운동진영의 진보적 국가재정개혁방향이라고 한다면, 주체형성 전략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된 논의가 빠져 있다. 적어도 시민운동진영의 국가재정논의와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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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02:07 2009/07/1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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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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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삼아(?) 트위터를 만들어봤다.

http://twitter.com/gimcheol

gimche가 들어가는 것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쓰고 있더라. 물론 외국인인데, 그의 이름과 전혀 매치가 안된다. 왜 그렇게 사용자이름을 정했을까.

이걸 밝히면 내가 메신저로 사용하는 뜨건멜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어도 아닌 국적불명의 언어를 자신의 사용자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를 대화상대로 추가한 것이 해명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알바니아 쪽에 gimche와 관련된, 뭔가 호기심을 유발하는 게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직은 내가 아는 이들 중에 트위터를 만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앞으로 나와 연결된 이들이 많아질까. 손쉽게 글을 쓸 수 있기에 편리하긴 할텐데...

 

트위터를 만들기는 했지만, 앞으로 많이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지만, 평소 내 습성으로 보아 거기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나 제대로 사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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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01:47 2009/07/16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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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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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샐 때 가끔씩 생각나는 노래 중에 <시다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기에는 타이밍이라는 잠이 안오는 약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만 해도 도저히 잠을 이길 수 없어서 시험공부를 할 때면 이 타이밍을 먹었다. 그래도 올 잠은 오더라만...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날을 새서라도 반드시 해야할 일이 생기게 되면 타이밍 같은 걸 먹지 않아도 날을 새게 된다. 소위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체력이 바닥이 나서 골골거린다. 물론 밖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지만...
 
민중문화운동연합 노래모음 제10집 누이의 서신에 실린 <시다의 꿈>은 박노해의 시에 서울대 노래패 출신인 김보성이 곡을 부친 것이다. 역시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부친 여느 시들처럼, 시보다는 노래가 나에게는 훨씬 익숙하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20주년이 되던 해에 이 시집에 헌정하는 음반에도 실려 있는데, 역시 그 맛이 민문연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진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지난 6월 청계광장에서 열렸던 제13회 인권영화제 두번째날에 보았던 김태일 감독의 다큐 영화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를 보고난 후에 이 시다의 꿈 노래를 떠올렸다. 7-80년대 노동자로 일했던 효순씨가 바로 시다였고, 그 흔적은 2000년대 후반 이랜드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윤경씨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다를 들먹이며 '귀족노조 민주노총' 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시다의 꿈을 부족하나마 지금의 노동운동이 잇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곤 한다. 이 비난이 부당한 것임에도 먹히고 있는 현실, 이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2004/09/24 01:10
오늘 연구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다의 꿈>을 웅얼거렸다. 고3 때 타이밍을 먹으면서 밤새워 공부를 했던 기억과 함께, 그 뒤 대학에 들어와서는 타이밍이 없어도 날을 샐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타이밍이라는 것이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떠올렸다. 지금도 타이밍이 나올까?
 
2004/08/31 13:37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다국적 기업의 제3세계 노동착취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월드컵 때는 축구화와 축구공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제3세계 국가의 아이들이 위험한 노동환경 하에 노출되어 착취당하고 있다는 글이 나왔다. 그들의 눈물이 축구공에 서려있다는 것이다.
 
종목과 장소는 바뀌었지만, 아마추어리즘, 평화의 제전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올림픽의 이면을 까보이면서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과연 웃고 즐길 수 있는지 반문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8월 27일자 한겨레신문 데스크칼럼에 권오상 님이 이에 대해 글을 썼다. 다른 신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당위론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겨레에서 이런 글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권오상님의 글을 보면서 불현듯 학교 다닐 때 가끔 읊조리곤 했던 노래가 떠올랐다. 시다의 꿈! 한국의 70년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들도 전태일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제 목표량은 시간당 바지 120벌입니다. 그 삯으로 1.25~1.50달러 정도 받습니다. 평일엔 960벌을 꿰맵니다. 목표를 채우기 위해 화장실 가는 것도 참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면, 감독관의 도장을 받아야만 합니다. 초과 근무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이지만 저녁 8시에도 끝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늦게 일이 끝나면 어두워져 겁이 납니다. 오토바이 택시(모토덥)들이 저를 태우려고 하지만, 타기 싫어서 집까지 뛰어갑니다. 초과 근무를 모두 하면, 월급은 60~65달러가 됩니다. 방값에 5달러를 쓰고, 가족에게 10~20달러를 보냅니다. 나머지는 음식과 약값으로 들어갑니다. 제 월급에서 저축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뒤 홀어머니와 여섯 형제를 부양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프놈펜에서 아디다스 옷을 바느질하는 25살 된 한 캄보디아 여성 의류 노동자의 고백이다. 이 글은 아테네 올림픽이 개막되기 직전 세계적인 구호단체 옥스팸, 세계 의류업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국제연합단체 깨끗한 옷 입기 캠페인, 그리고 국제노동조합운동 기구인 글로벌 유니언스가 펴낸 <올림픽 페어플레이>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지구촌 한쪽에선 ‘인간 중심의 올림픽’, ‘상업화 지양’을 외치며 화려한 조명 아래 연일 올림픽 경기가 벌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올림픽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는 의류업체들의 부당 노동행위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주당 45시간 초과노동은 흔한 일이고, 미성년 노동자들의 고용, 혹독한 노동환경, 산업재해, 성폭행 등 보고된 사례들의 실상이 심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승리를 상징하는 그리스의 여신 ‘니케’는 스포츠 의류 생산이라는 ‘올림픽 경기’에서 올림픽 정신을 위반한 기업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국제구호·노동단체들은 올림픽 개막 직전 아테네를 찾아가 35개국 50만명의 서명이 담긴 노동조건 개선 청원서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는 “우리와 계약을 한 의류업체들은 법과 규칙, 안전 규정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발뺌을 했다. 돈을 대주는 후원자의 허물을 들춰낼 필요도,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럴싸한 이념으로 포장한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려고 혈안이 된 선수들의 대결을 성사시키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면 되는 ‘흥정꾼’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그들의 관심은 변화와 개혁이 아니다. 체조 양태영 선수와 관련해 “오심은 인정하지만 판정 번복은 없다”는 국제체조연맹과 “판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올림픽조직위 쪽의 태도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스포츠 의류 노동자들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시민단체인 새사회연대가 낸 이 보고서엔 캄보디아말고도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불가리아 등 6개국 186명의 노동자 회견 내용이 실려 있다. 실제 지구상엔 제3세계에 수백만명이 넘는 스포츠 의류 노동자들이 부당 노동행위를 겪으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선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행사의 스폰서 선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기업들을 제외해야 한다. 건전한 노동에 바탕한 기업만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추구하는 올림픽의 스폰서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국제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제 아테네 올림픽도 저물어가고 있다. 대회도 애초 우려했던 시설과 안전 등의 분야에서 큰 문제 없이 끝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이는 선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고, 판정을 둘러싼 시비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올림픽에 가려진 채 지구촌 곳곳에서 스포츠 의류 노동자들이 겪는 비인간적인 생활상은 실로 비참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물론이고 대한올림픽위원회와 국내 스포츠단체들이 새롭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들이다.
 


민문연 - 시다의 꿈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헛된 꿈을 싹뚝 잘라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떨려 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림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장군같이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
찬바람 부는 공단거리 휘청이며 내달리는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난다


        시다의 꿈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때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몽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뭄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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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 07:01 2009/07/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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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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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노래를 찾다가 이 노래를 발견하여 먼저 옮겨온다.

지금 이 노래가 말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이게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게 얼마 전이다.

 

2004/09/21 02:13

귀례이야기. 오늘 하루 내내 귓가에서 맴돌았던 노래이다. 아침에 학교에 있을 때부터, 수원에서 ㅇㅇ형과 저녁식사를 할 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노래가 계속 생각이 났다. 순이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이유가 뭘까?

 

노찾사 3집(1991)에 실려있기는 하지만, 원래 1980년대의 비합법 테입에 이 노래가 실려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테입인, 밀물에서 나온 [우리들의 노래]라는 테입(그 제작년도는 잘 모르지만 80년대 중반이 아닐까 싶다)과 노래모임 새벽의 민중문화운동연합 9집 [그날이 오면](1986)이라는 테입에도 이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 테입들을 도대체 누가 가져갔는지...

 

노찾사 3집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찾사 2집의 연장선상에서 발매된 것으로, 지난 시기 비합법 테입으로 제작되었던 민문연(새벽)의 노래들 중 괜찮은 것을 골라서 음반으로 낸 것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실려있다. 그리운 이름, 사랑노래, 녹두꽃, 선언2 등이 그러하다. 사실 귀례이야기가 음미할 만한 노래로 나에게 다가온 적은 없었는데, 어제는 이상했다.

 

테입 [그날이 오면]은 노래운동사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안치환과 김광석, 그리고 윤선애가 참여를 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만 귀례이야기는 윤선애가 부르지 않은 것 같다.

 

80년대 초반에 나온 다른 노래와 유사하게 이 노래도 복음송을 노가바한 듯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 노래는 서울대 메아리 81학번이었던 이창학('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작사,작곡자)의 순수창작곡이다.

 

가사에는 전혀 귀례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순이가 나오기에 도대체 왜 제목이 귀례이야기인지 궁금해했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노래극 '부설학교'(이 노래극을 위해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지만, 남아있는 곡은 문승현이 만든 '사계'와 이창학의 '귀례이야기'뿐이라고 한다)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 '귀례'가 바로 그 '부설학교'극의 주인공이었고, 주인공의 독백하는 노래가 '귀례이야기'이다. 이렇게 짜맞추고 보니 노래가사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순이가 아니라 공순이다. ㅡ.ㅡ;;)

 

지금 생각하니 이런 분위기의 노래를 즐겨불렀던 것 같다. 시다의 꿈, 오늘만 넘기면, 깜박잠, 갈 수 없는 고향 등의 노래가 그렇다. 귀례이야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다만 귀례이야기는 너무 청승맞다는 생각 때문에 약간은 기피했었다.  

 

민문연이 나중에 대중적인 노래를 부르는 '노찾사'와 좀더 운동에 복무하는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노문연)'으로 갈라졌던 사정을 이해한다면, 민문연과 노찾사의 음반에서 같은 노래를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민문연의 곡 음질이 썩 괜찮지는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서 들어야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졸업인 시기는 아니지만,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기억되어야 한다. 공순이는 바로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오늘은 잠들 때까지 이 노래를 들을 것 같다.  

 

 

  노찾사 3 - 귀례이야기

 


민문연 9, [그날이 오면] - 귀례이야기 

 

1. 뒤로가는 고향 하늘 보며
   두근거려 서울 온지 오년
   그까짓돈 몇푼 쥐고 싶어서
   여기저기 공장을 떠다녔지
   그러나 쉬지않고 벌어야 할
   공순이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것이 곧 졸업이지요

2. 열다섯 교복을 벗어던지고
   병든 부모 어린 동생 떠나며
   혼자 벌어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가고 싶어 울기도 했어
   그러나 쉬지않고 벌어야 할
   공순이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것이 곧 졸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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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 05:54 2009/07/1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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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끊임없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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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넘었다. 새날이 밝아오기는 한데, 비가 오는 탓인지 아직은 어스름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내 켜져 있었을 불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광채를 발휘하고 있는 붉디 붉은 것들이 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 집에서는 신림2동(서림동), 신림9동(대학동), 그리고 나머지 관악구 지역이 잘 보인다. 이런 신림동의 밤 야경을 즐기게 된 것도 산 중턱에 있는 이 집에 이사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신림동에서 몇몇 고층 아파트의 윗층들 말고 이런 야경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이 즐거움에 재를 뿌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교회의 십자가들이다.

특히 이 시간대에는 다른 불빛들이 다들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더 붉은 빛이 더욱 빛나서 짜증나게 한다.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면 좋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저 십자가들을 만든 사람들이 미워지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온누리에 붉은 십자가가 휘황찬란한 것을 기쁘게 바라보고 계실까.

 

이틀을 날샜더니 어제, 그제 계속 정신을 못차렸다. 회의나 세미나 때 조는 것은 나의 일상사이기는 하지만, 그제 공공성과 노동권 프로젝트 회의 때 소장께서 지적하도록 졸았던 것은 아무래도 쪽팔리는 일이다. 어제는 새벽 5시에 자서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생활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줄창 하고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오늘도 날을 새기는 하지만, 낮에는 졸지 않도록 노력한 후에 월요일부터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전한 이가 되기로 했다. 앞으로는 생활리듬을 깨는 일이 없기를...

 

오늘은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는 날로 정했다. 우선 이것들을 말끔하게 해야 다른 것들도 손에 잡힐 것 같다. 이를 정리하는 게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미뤄놓은지 한달이 넘었고, 다음주에는 도서관에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할 것은 많은데 시간이 없구나. 있는 시간이라도 알차게 쓰는 게 중요하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자본가들이 말하는 시테크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데...

 

오늘도 하루내내 비가 오겠지? 연구실에 갈까 말까 고민이 되긴 한데,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어영부영 할 테고, 자칫 드러누워 퍼잘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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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 05:36 2009/07/1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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