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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드디어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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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거대한 전환>이 출간되었다.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7월에야 나온 것이다. 그 만큼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의미일 터다.
 
사실 책을 번역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어설픈 번역이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경우조차 있다. 물론 원저자는 자신의 책이 이렇게 오역되고 엉뚱하게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이번 번역은 나름 가치가 있다. 그 만한 공을 들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접하고 자신의 이론적 무기로서 벼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를 수용할 만한 층이 얼마나 될런지는 의문스럽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민음사 본을 사두었는데, 이를 선배에게 빌려주었다가 결국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려받지 못하고, 새로운 번역본을 접할 처지가 되었다. 폴라니의 책을 봐야 한다면 걍 예전 책은 깨끗하게 잊고 새로 번역된 것을 봐야겠지. 그런데 여유가 있으려나. 우선은 사두고 부분부분 참고하는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나는 아직 홍기빈이 이미 지나쳤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원전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형편에서는 그 원전들에서 얻을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기에 굳이 시간을 낸다면 이게 먼저다. 당분간은 장식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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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자본주의는 사탄의 맷돌 ‘자기조정 시장’은 없다” (경향, 김학순 선임기자, 2009-07-10 17:46:03)
ㆍ국가가 개입…진정한 경제는 인간의 ‘자유’에 토대 둬야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 길

  
진정으로 바른 생각은 위기를 맞아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요즘 들어 새삼 주목받는 비주류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그렇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기존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가 피어오르자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서가에서 먼지만 잔뜩 머금고 있던 폴라니의 노작을 다시 꺼내들기 시작했다.
 
폴라니의 대표작이 1991년 <거대한 변환>(원제 The Great Transformation)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뒤 곧 절판됐으나 개정판이나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수요가 많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문판 해제를 쓴 프레드 블록의 말대로 냉전기간 자본주의 옹호자와 소련식 사회주의 옹호자들 사이에 지극히 양극화된 논쟁에서 폴라니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논리가 설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거대한 전환>은 어느덧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법·입법·자유>와 <노예의 길>에 버금가는 역작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칼 폴라니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묘사하기 위해 차용한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이란 용어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시 '저 옛날 그분들의 발자취가'에서 쓴 표현이다. 사탄의 맷돌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장책해 1769년에 세운 '알비온 밀가루 공장'과 연관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 공장은 블레이크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이 공장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제분업자들이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1791년 전소됐다. 당시 화재를 묘사한 그림 중에는 불길을 공장 위에 올라앉은 악마로 그린 것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돈과 기계에 얽매인 현대사회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 감독·주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스>의 장면들.
 
폴라니는 이 책에서 ‘자기조정 시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유토피아’라고 일축한다. 그런 제도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라도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은 오로지 시장가격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경제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가설에도 반기를 든다. 폴라니는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1776년을 자본주의의 원년으로 보지 않는다. 1834년의 스피넘랜드법(빈민구제법)의 폐지에 따라 인민들이 먹고 살 길은 임금노동으로만 가능하게 되고 노동시장의 형성과 함께 ‘자기조정 시장’이 완성돼 현재의 자본주의가 도래했다고 여긴다.
 
그는 목가적인 공동체를 해체하고 만 시장경제를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빌려 ‘사탄의 맷돌’이라고 흥미롭게 표현한다. ‘사탄의 맷돌’은 산업혁명이 인간을 통째로 갈아서 바닥 모를 퇴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는 공포의 상징이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시장 스스로 자유시장 영역을 만들지 않았으며 국가가 시장을 구축해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가의 개입이 해결책은 아니다. 국가, 정부, 시장이 아닌 ‘사회’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핵심사상 가운데 하나다. ‘사회’에는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집단이 포함된다.
 
그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노동·토지·화폐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 토지, 화폐는 인위적으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재화뿐 아니라 노동, 토지, 화폐도 교환하는 시장이 존재한다. 그렇더라도 이를 시장에서 ‘자유방임’으로 거래하면 곧바로 재앙이 시작된다는 게 폴라니의 견해다.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임에도 현실에서 이들이 거래되는 시장은 허구의 도움을 얻어 조직된다. 그는 진정한 경제가 인간의 ‘자유’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65년 전인 1944년 초판이 나온 <거대한 전환>이 지금 조명을 받는 이유는 좌우의 이념에서 벗어나 치밀한 비판적 접근을 거쳐 독특한 해법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하이에크나 마르크스를 모두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경제 현상분석을 통해 세기가 바뀐 오늘날에도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위력을 발휘한다.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들리는 가운데서 폴라니가 시장경제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완벽한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는 논의의 실마리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하다.
 
옮긴이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꼼꼼한 번역과 세밀한 주석, 친절한 해제가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추가된 해설만 100쪽이 넘는다. 홍 위원은 국내 최고의 폴라니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3만8000원 
 
▲ 칼 폴라니는 누군가
평생을 인간의 고통 근원에 대해 고민
시장 만능주의에 맞선 비주류 경제학자

 
헝가리 출신 유대계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는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그리 널리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경제이론은 애덤 스미스에서 출발해 알프레드 마셜에 이르러 체계적인 틀을 갖춘 자본주의 경제학은 물론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체계화된 사회주의 경제학과도 차별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그렇지만 경제 자체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간과하기 힘들다. 시장, 상품을 비롯해 경제학적 개념의 기원과 인간의 ‘살림살이’로서 경제활동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타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선택을 중시했다. 그가 평생 고민했던 것은 인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였다. 그 고통은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경제 민주주의 운동의 기반이 됐다.
 
빈의 저명한 경제주간지 <오스트리아 대중경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부터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그의 수제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도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장 만능주의에 맞섰다. 그후 나치의 위험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와 런던대에서 강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교수 자리를 얻었으나 아내 일로나 두크즈네카의 공산주의 전력 때문에 입국 비자를 얻지 못해 캐나다에 살면서 ‘방문교수’로 활동했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공정, 호혜에 대한 폴라니의 생각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이론’과 스티글리츠의 ‘공정무역’ 개념에 접목됐다. 국내에 번역된 주요 저작으로는 <거대한 전환> 외에 <초기제국에 있어서의 교역과 시장>(민음사), <사람의 살림살이>(풀빛) 등이 있다.
 

 

2009/03/29 08:21 
한겨레21 제753호는 칼 폴라니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한 인물에 대해 이런 식의 기획기사를 한겨레21이 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참 이례적이다. 홍기빈이 폴라니의 <거대한 변형>을 번역해서 내놓겠다고 하였음을 들은 것이 1년이 넘은 듯한데, 드디어 5월에 나올 모양이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칼 폴라니 이론를 살펴보는 게 의미있어서 이런 기획이 마련되었겠지.
 
안수찬 기자는 1991년에 일어판을 번역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간행되긴 했지만 곧 절판되었고, 한국에서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는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만 하더라도 폴라니의 이론을 접한 다음부터 그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이런 욕구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지금까지는 홍기빈이 2002년에 번역하여 내놓은 책세상문고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정도가 폴라니 이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문헌이라고 하지만, 그 외에도 <현대 정치경제학의 주요 이론가들>(아카넷, 2003)에서도 폴라니에 대해 요령있게 정리하고 있다. 
 
아래의 글들에서는 마르크스, 케인즈, 하이에크에 이어 이제는 폴라니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글쎄다. 과연 그러할까. 폴라니를 경제사학자로서 시장에 대한 날카로운 식견을 보여준 것은 인정하지만, 그를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이전 3명의 인물들에 대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홍기빈이야 자신이 폴라니에 대해 석사논문을 썼으니 그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며, 그가 정리하고 있는 것을 신뢰하긴 하다만, 기존 이론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래 기사들에서 공정무역을 폴라니 이론의 핵심으로 놓은 것도 의외다. 좀더 폴라니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접해보면 수긍하게 되려나. 최근 경제/시장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고 있는데, 폴라니의 이론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자본주의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확산되어 온 과정을 제대로 살피고자 한다면 시장/경제/자본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검토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허구를 폭로하고 있는 폴라니 이론이 기여할 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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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의심하는 당신 떠나라, 폴라니의 세계로 (한겨레21 2009.03.27 제753호, 안수찬  정인환 기자)
고3 교실 같은 회사에서 세계 경제를 비관하는 애널리스트와 무덤에서 불려나온 폴라니의 대화 
 
세상이 바뀌고 있다. 신자유주의 30년, 자본주의 100년의 기틀이 거대한 전환의 초입에 들어섰다. 인류 문명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창간 15주년을 맞은 <한겨레21>은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로부터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선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폴라니의 가상 대화를 꾸몄다. 이어 폴라니의 삶과 사상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21세기적 함의를 짚는 좌담도 마련했다. 그와 함께 개척할 우리의 미래도 그려보았다. 이제 시장과 자본은 더 이상 인간이 기댈 것이 못 된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때가 왔다.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용기 있게 펼칠 때가 왔다.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말하자면, 칼 폴라니가 새 시대의 출발점이다. 편집자 

  
애널리스트: 출근하면 회의실부터 가요. 갈색 원탁이 있고 붉은 의자가 있고 백색 칠판이 있어요. 아침 7시면 회의가 시작돼요. 그전에 담배부터 피워요. 단 몇 초나마 우울과 긴장을 눅이지요. 공식적으로야 서울 여의도 모든 건물은 금연 빌딩이에요. 그래도 담배마저 못 피우게 하면 사달이 날 거예요. 스트레스가 워낙 많거든요. 애꿎은 청소부 아줌마만 꽁초 치우느라 욕을 봐요.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 두 대가 있어요. 하나로는 지난밤 미국 증시를 살피고, 다른 하나로는 뉴스를 봐요. 비관과 낙관 사이를 자맥질하죠. 최근에 눈여겨봐둔 기사들이 있어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2008년 10월 <뉴스위크> 기사예요. “서구식 자본주의 모델이 실패했다.”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2009년 1·2월호죠. 국제통화기금(IMF)은 3월6일 정책보고서에서 “시장만능주의의 가정이 실패했다”고 했어요. “앞으로는 과거 30년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3월9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죠. “자유방임주의 시대는 끝났다.” 3월16일 <가디언>에 실린 브라운 영국 총리 인터뷰예요.
 
저는 예전과 다름없이 매주 보고서를 내요. 불길한 예감은 절대로 실현될 리 없다고 꽁꽁 힘주어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죠. 그런 기사들 가운데 당신을 만났어요. 1년 전이었지요.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에 브래드퍼드 드롱 버클리대 교수의 경제 칼럼이 실렸어요. 그 칼럼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폴라니의 말처럼, 시장은 인간의 교류와 대화와 상호 의존이라는 오래된 토대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토대는 이미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사람들은 시장의 종말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몇몇은 당신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어요. 제가 발 딛고선 이 땅,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경고했다는 칼 폴라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폴라니: 나는 한국 신문 이야기를 하지. 2008년 10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악마의 맷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어. “시장경제의 재앙은 경제를 다시 사회적 통제 안에 가두어둠으로써만 피할 수 있다고 칼 폴라니는 보았다.” 경제평론가 정태인이 2008년 12월 <경향신문>에 ‘대전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지.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차례로 30년간을 지배했고 이제는 폴라니의 시대다.” <중앙일보>는 2008년 9~10월에 세 차례에 걸쳐 나를 인용하는 칼럼을 실었어.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윤영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내 개념과 분석을 빌려 “월스트리트의 붕괴” “시장만능의 신화”를 비판했어. 2009년 2월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우석훈 연세대 강사는 “이제 폴라니의 시대가 온다”고 발표했어.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칼 폴라니’를 직접 인용한 칼럼은 중앙일간지를 통틀어 두세 건에 불과해. 그런데 2008년 하반기부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나를 갑자기 들먹이기 시작한 거야. 내 책 <거대한 변형>이 5월에 새로 완역돼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연세대 사회학과에서는 나를 주제로 잡은 공개 연쇄 강좌도 열리고 있다는군. 오히려 내가 물어야지. 1964년에 죽은 나를 무덤에서 되살리는 당신들, 도대체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거야?

» 시대별 패러다임과 폴라니의 비판
  
아주 오랫동안 폴라니는 잊혀진 이름이었어. 나는 케인스·하이에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 그들은 20세기를 차례로 지배했어. 학계에 그들의 제자가 생겼고, 미국과 영국의 정부가 움직였지. 케인스는 루스벨트에게, 하이에크는 레이건에게 영감을 줬어. 그런 대접, 나는 못 받았어. 유럽에서조차 내 이론은 경제학 커리큘럼에서 곧잘 빠졌지.
 
70년대 이후 미국 대학에서는 케인스마저 공부하지 않는다지? 미국 유학파가 지배하는 한국 학계에 칼 폴라니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비미국인’의 10%가 한국인이었어. 결국 한국 경제학자들의 절대다수는 하이에크의 자식들이야. 지금 하이에크 세계의 붕괴 앞에서 그들은 당혹스럽겠지. 그래도 폴라니의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하이에크의 <법·입법·자유>에 버금가는 내 주저는 <거대한 변형>이야. 1944년에 처음 출간됐지. 이게 한국에 번역된 게 1991년이야. 일어판을 번역한 것인데 그나마 절판됐다더군. 프랑스에서도 1983년에야 번역됐어. 국제학회인 ‘칼 폴라니 정치경제학회’가 만들어진 것이 1987년이야. 이후 사회학·정치학·인류학 분야에서 나를 인용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생겼지.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도 내 영향을 받았어.
 
그래, 나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조금씩 부활한 거야. 이유가 있어. 나는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를 차례로 베어버렸거든. 그들의 이상과 프로그램이 현실에서 차례로 파국을 맞기 전까지는 내 자리가 없었던 거야.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관념을 나는 끝까지 부정했어. 반면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만나지. 그럼 경제결정론의 칼자루를 누구한테 쥐어줄까? 노동자? 경제관료? 금융자본가? 그런 식의 접근을 나는 반대해. 그들의 후예가 학계를 지배하는 곳에서 나는 경제학자 축에도 못 끼었던 거지.
 
‘폴라니의 아이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자라고 있어. 유럽에서는 내 접근법을 기초로 하는 ‘경제인류학’이 독립 학과로 만들어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기존 경제학과 별개의 ‘사회경제학’을 공부하는 학과를 세우려는 노력이 생겨났지. 결정적인 것은 2006년 의회를 장악한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을 끌어온 일이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라는 학자의 영향을 받아 그런 논의가 시작됐다는데, 경제에 ‘공정’의 개념을 들여온 게 바로 나거든. 공정·호혜에 대한 폴라니의 이론이 바야흐로 세계 체제에 접목되는 순간이 시작된 거야. 스티글리츠는 2001년 <거대한 변형> 영문판의 서문도 썼는데, “자기 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에 특별한 결함이 있다는 폴라니의 생각은 아주 최근에 와서야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어.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단순해. ‘시장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러니 시장을 가만 놔둬라.’ 거짓말이야. 오히려 시장은 인간을 옥죄지. 실현되지 않을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지. 만약 네가 폴라니에 대해 궁금해지고 있다면, 그건 시장주의의 주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야. 환영해. 폴라니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애널리스트: 우리 사무실은 고3 교실 같아요. 몇 주 뒤면 주요 경제 일간지에 ‘랭킹’이 발표되거든요. 업종별 애널리스트 순위가 매겨져요. 펀드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들을 평가해요. 인간이라는 상품에 공개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거죠. 6개월에 한 번씩 있어요. 피가 말라요. 순위에 따라 연봉이 조정돼요. 공개되는 랭킹은 분야별로 5명 또는 10명인데, 요즘은 주식시장이 좋지 않으니까 10등 안에 못 들면 쫓겨날 각오 해야 돼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어요. 흔적이 없어요. 달팽이들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져요. 여의도를 아예 떠나는 것 같아요.
 
점심 때 밥 먹으면 병신이래요. 제 담당 업종에는 애널리스트가 30여 명 정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회의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도 못 먹고 시장 분석하느라 점심도 거르겠죠. 대신 저녁에는 펀드매니저를 만나 ‘접대’를 하겠죠. 룸살롱도 가고 골프도 칠 거예요. 저는… 그냥 하루 종일 담배만 피워요. ‘진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1년에 2억~3억원씩 벌어요. 그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연봉을 받으려면 랭킹에 들어야죠. 그 랭킹은 펀드매니저가 매기는 거고요.
 
“ㅇ사 2008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2% 증가했습니다.” “이유가 뭔가.” “4분기가 전통적으로 이 업종 성수기입니다.” “보고서에 그렇게 쓸 건가?” “아닙니다.” “그럼 이유가 뭔가.” “저가 신상품 ‘ㅋ’에 대한 구매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틀렸어. 경쟁사들도 저가 상품은 내놓았잖아. 이유가 뭔가.” “….” “좀 돌아다녀. 사람들도 만나고. 이유를 알아내란 말이야. 다음, 반도체 부문 브리핑해.”
 
보세요. 회의 시간만 되면 저래요. 다들 ‘논거’를 대지만 실은 ‘직관’이죠. 솔직히 경제가 끝장나버렸다는 식으로 분석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분석을 해서는 ‘랭킹’에 들어갈 수 없어요. 어머니는 종로에서 구멍가게를 하세요. 그렇게 제 뒷바라지를 하셨지요. 빈궁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아요. 애널리스트니까 돈 많이 벌겠다고 주변에서 부러워하지만, 그게 다 암세포를 만드는 일이에요. 그동안 번 돈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올가을로 예정된 결혼 준비를 하느라 다 썼어요. 그래봐야 신접살림 차릴 전세 아파트 값도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늙으시면 병원비 부담도 적지 않겠죠. 장래를 계획하는 일이 모두 목돈을 마련하는 일로 연결돼요.
 
제가 절대로 시장 보고서에 쓰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대로 가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거예요. 지금 세계 경제는 벼랑에 몰렸어요. 그냥 가면 빠져 죽을 테니까 일단 핸들은 꺾어야겠지요. 그게 돈을 찍어 뿌리는 거예요. 체제 붕괴 조짐이죠. 뿌린 돈은 결국 인플레를 일으킬 거예요. 그러면 정규직·비정규직, 고액·저액 가리지 않고 모든 급여 생활자는 거리로 나앉을 거예요. 이건 저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는 비밀이에요.
 
가끔 대학 때 생각이 나요. 미국 유학 다녀온 교수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요소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리고 덧붙였지요. “그런데 시장이란 게 사실은 ‘불가지’의 영역이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의 법칙을 설파하면서 그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구시렁대는 학문을 제가 공부했던 거죠. 그 교수들도 비밀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비관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억지로 낙관했던 거 아닐까요. 그들도 박사 학위 받으려고 미국 교수들을 접대했던 거 아닐까요.
 
폴라니: 마르크스는 당신의 계급을 저주했겠지. 케인스는 당신 같은 금융분석가를 휘하에 부리려 했을 테고. 하이에크는 당신의 역할을 찬양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행복하지 않지? 당신의 노동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 이 경쟁에서 언제 밀려날지 두렵다는 느낌…. 인간의 그런 불안과 공포까지도 위로해주는 것이 진짜 경제학이야.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라.” 내 이론의 핵심이야. 어떤 경우에도 ‘상품화’시키면 안 될 것이 세 가지 있어. 노동·자연·화폐야. 재화를 교환하는 시장은 필요해. 그렇다 해도 노동·자연·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방임’으로 거래하면 곧바로 재앙이 시작되는 거야.
 
노동은 인간의 다른 이름이야. 인간을 사고판다고? 인간은 상품 가치와 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야. 토지를 비롯한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시장에서 버려지거나 낭비되면 복구할 수도 없어.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야. 구매력은 개인이 뜻한 대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니지. 오히려 국가 또는 세계 금융 체제에서 ‘생겨나는’ 것이야. 인간·자연을 상품화한 뒤에 화폐까지 사고팔 수 있다는 환상을 심은 게 바로 ‘시장 자유’, 즉 ‘자기 조정 시장’의 결정적 폐해야.
 
노동·자연·화폐의 상품화로 피해받는 건 인류 문명 전체야. 노동자·농민은 물론 생산기업까지도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신화의 피해자야. 금융시장에서 화폐가 거래되는 방식 때문에 생산기업은 주기적으로 파산될 수밖에 없어. 그 기업이 만들어내는 재화가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일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모두 항상적인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는 거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만 두면 인류의 자유가 증대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완전히 거짓말이야.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거듭되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국가의 개입이 해결책인 것은 아니야.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국가 대신 ‘사회의 개입’을 내세우는 셈이야.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주의나 파시즘을 싫어했지. 시장을 사회로부터 떼내어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떼내어 절대화하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어. 두 방식 모두 인간 사회를 황폐화하는 것은 똑같잖아.
 
원래부터 경제는 인간 사회의 한 부분이야. 마치 정치와 문화가 사회의 한 부분인 것처럼. 그런데 왜 유독 경제만 정치·문화와 달리 사회적 합의 구조에서 예외가 되어야 하지? 경제는 사회 구성원의 소통·도움·합의 등에 의해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어. 요즘 말로는 ‘시민사회’를 생각하면 되겠군. 시민사회에는 노동자, 농민, 생산기업가 등이 모두 포함되지. 이들의 경제 문제를 ‘사회적으로’ 푸는 세 가지 방식이 있어. 공동체·협동조합을 통한 상호부조, 시장을 통한 재화의 교환, 국가를 통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 등이야. 이런 요소의 공존이 ‘폴라니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뼈대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매일 여의도 금융가에 쏟아지는 수많은 분석과 지혜의 다만 일부라도 다양한 사회 요소의 공존과 소통을 위해 할애한다면 어떨까?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퇴근하는 당신의 노동 가운데 일부를 공존·호혜의 질서를 만드는 데 쓴다면 어떨까?
 
애널리스트: 학창 시절, 대학 교지 편집실에 있었어요. 편집장까지 했지요. 마르크스를 공부했어요. 군대 갔다와서 복학하니까 소비에트는 붕괴했고 마르크스의 시대도 끝나고 있었어요. 편리한 머리들이 잊어버려서 그렇지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재경부 공무원이 되고 싶었죠. 국가권력을 빌려 부자들의 돈을 거둬들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 돈을 쓰고 싶었어요.
 
수업 시간엔 하이에크를 배웠지만 마음으로는 케인스가 되길 꿈꿨어요. 하이에크는 자유경쟁을 믿었고, 케인스는 정부 개입을 믿었죠. 저는 고시에 합격할 거라고 믿었어요. 무성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매미가 찌릉찌릉 우는 여름을 세 번 보낸 뒤에 시험 공부를 접었어요. 2001년 중소기업에 취직해 2천만원 정도 받았어요. 대기업으로 옮겨 그 두 배를 받았죠. 3년 전 증권사로 옮기면서 다시 몸값을 높였어요.
 
사무실 입구에는 백색 칠판이 있어요. 이름을 적고 시간을 적고 목적지를 적어요. 서로 경쟁을 시키는 거죠. 기업에 찾아가 정보를 구하는 일을 ‘탐방’이라고 해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탐방’할 일이 많죠. 기관투자가에게 전화 걸어서 시장 정보를 직접 브리핑하는 걸 ‘콜 넣는다’고 해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콜 넣을 일도 많죠. 하루에 50통씩 콜 넣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회의실 가서 담배를 피워요.
 
금융이라는 게 원래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 있는 사람을 연결해 생산적인 곳에 쓰이게 하는 장치죠. 그런데 돈이 돈을 따먹는 일이 반복됐죠. 미국은 그런 식으로 돈을 벌었고 신흥국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았죠. 모래 위의 집이었어요. 이제 무너지고 있지요. 저도 거기에 한몫했죠. 그래도 펀드 가입한 임금 생활자들에게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여의도에는 집회가 많이 열려요. 저는 그냥 지나쳐요. 달리 뭘 할 수 있겠어요. ‘월드비전’에 기부금을 내요. 진보신당에 가입해 당비도 낼 생각이에요. 지난 10여 년 동안 제 몸의 세포는 모두 바뀌었어요. 마르크스의 것도, 케인스의 것도 아니지요. 365일 가운데 360일을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래도 가끔 옛날 생각이 나요. 플라타너스 그늘 무성한 벤치에 앉아 내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던 때가 가끔 기억나요. 칼 폴라니, 당신에게 기대를 걸어도 되는 건가요. 그런 세상을 당신이 품고 있는 건가요.
 
폴라니: 한국의 학자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는군. “금융경제는 탐욕인데, 폴라니는 탐욕을 경계한다. 최근 금융위기와 관련해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시장에 대한 폴라니의 사회적 접근은 다양한 대안에 대해 풍부한 영감을 준다.”(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주의의 심화를 통한 사회경제의 재조직화의 방향을 제시해준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이에크주의자들이 판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여러모로 독보적인 학자야. 스스로를 ‘급진적 제도주의 경제학자’라고 부르지. 이 교수는 “폴라니를 새로 읽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어. △성장에 대한 강박을 떨쳐냈다는 점에서 시장주의는 물론 케인스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 구분된다 △삶의 기본 터전을 파괴하는 시장주의를 비판하면서 협동조합 등 공동체적 연대규범에 주목한다 △산업과 국가를 거부하는 무정부 생태주의와는 달리 돌봄·협력·소통의 질서를 국가·세계 체제 차원으로 확대한다 △시장을 폐기하지 않고 ‘살림살이 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주장한다 등으로 폴라니 사상의 핵심을 설명했어.
 
한국 사람들은 폴라니를 몰랐지만, 실은 폴라니적인 일을 꽤 벌여놓았어. 노동운동은 모든 협동조합의 기초야. 영농조합이나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것은 생산자 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지. 환경운동은 생태적 가치를 확산시켜왔지. 생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귀농한 사람들도 있잖아. 공동육아나 생협도 ‘살림살이 경제’의 기초가 되지. 희망제작소나 아름다운재단에서 펼치는 사회적 기업 운동, 사회 기부 운동도 마찬가지야. 이들을 종횡으로 엮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은 내가 설파한 ‘토론 민주주의’의 출발이야. 진보정당이 그런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창비그룹에서 주창해온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상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살림살이 경제를 세계 체제 차원으로 확대하는 씨앗이 될 수 있어. 심지어는 공동체적 전통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와 사회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가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지평도 마련할 수 있어.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일궈온 ‘좋은 사회’를 위한 작은 성과를 계속 덧대고 엮어내는 일이야. 이제, 질문을 돌려줄게. 너는 그런 일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니? 파국을 두려워하며 당장의 연봉을 올리는 경쟁에 머리를 파묻는 대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연대에 나설 자신이 있니? 그런 일을 2009년 한국 사회에서 네가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 그런 세상을 정말 네가 품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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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9년 폴라니언이 세상을 바꿨을 때 (한겨레 2009.03.27 제753호, 안수찬 기자)
공정가격에 수출하고 수익은 녹색사업에 재투자하는 사회적 기업인이 ‘세계공정무역연합 총회’ 다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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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사멸은 자유·평등의 개막 (한겨레21 2009.03.27 제753호)
출간에 앞서 미리 살펴본 칼 폴라니의 혁명적 노작 <거대한 변형>
 
인터넷 포털 구글의 검색창에 ‘자본주의’(Capitalism)란 단어를 입력한다. 찰나의 순간, 눈앞에 2960만여 건의 정보가 펼쳐진다. 홍수처럼 쏟아진다. 정보의 수명은 그렇게 갈수록 짧아진다. 그래서다. 고전이 사라지는 시대, 칼 폴라니의 노작 <거대한 변형: 우리 시대의 정치적·경제적 기원>의 내구성이 새삼스럽다. 1940년대 쓰인 책이 6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빛을 발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를 꿰뚫어본 그의 예지에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영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한겨레21>은 오는 5월 발간 예정인 폴라니의 저서 <거대한 변형>(홍기빈 옮김·도서출판 길 펴냄)의 완역본 원고를 미리 입수해 그 일부를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다. 그런 제도가 잠시나마 존재하면 사회의 인간적·자연적 실체는 없어지고 만다. 인간은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환경은 쑥밭이 될 것이다.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지만, 그렇게 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 조정 기능은 손상을 입고 산업의 일상적 작동이 무너지는 등 다른 방향에서 사회는 위태롭게 됐다. 시장 체제의 발전은 바로 이런 딜레마 사이에 정해진 길을 따라 흘러가, 마침내 그 시장 체제에 기반한 사회조직 전체를 무너뜨리기에 이른 것이다.

 
허구로 조작된 시장   
시장에 의해 통제되는 경제란 우리 시대 이전의 그 어떤 때에도 심지어 원리 차원에서나마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19세기 내내 학문의 이름으로 지겹게 울려퍼졌던 주문(呪文)과는 달리,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시장이라는 제도는 후기 석기시대 이래로 아주 일반적인 것이 됐지만, 경제생활에서 시장이 부수적인 역할 이상을 차지한 적은 결코 없다. 역사나 민족지를 뒤져보면 다양한 종류의 경제형태들이 보이며 또 그 대부분은 시장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되는 경제란 우리 시대 이전에는 엇비슷한 모습조차 찾을 수 없다.
 
노동·토지·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매매되는 것들은 모두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은 이 세 가지에 관한 한 결코 적용될 수 없다.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활동은 생명의 다른 영역과 분리할 수 없으며, 비축할 수도, 사람 자신과 분리해 동원할 수도 없다. 그리고 토지란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며, 구매력이란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판매를 위해 생산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노동·토지·화폐가 거래되는 시장은 바로 그런 허구의 도움을 얻어 조직된다. 따라서 이런 ‘상품 허구’는 사회 전체와 관련해 결정적인 조직 원리를 제공하는 셈이며, 이 원리는 사회의 거의 모든 다른 제도에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 즉 이 원리에 따르면, 시장 메커니즘이 현실 세계에서 상품 허구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어떤 제도나 행위도 결코 허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토지·화폐에 관해서는 이런 원리를 적용할 수 없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사회는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다. 구매력의 양과 그 사용을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결정하는 것도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이런 체제 아래서 인간의 노동력을 그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리하다 보면 그 노동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람’이라는 육체적·심리적·도덕적 실체도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리하게 된다. 인간들은 갖가지 문화적 제도라는 보호막이 모두 벗겨진 채 사회에 알몸으로 노출되고 결국 쇠락해간다. 악덕, 인격 파탄, 범죄, 굶주림 등을 거치면서 격심한 사회적 혼란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갈 것이다. 자연은 그 구성 원소들로 환원돼버리고, 주거지와 경관은 더럽혀진다. 또 강이 오염되며, 군사적 안전이 위협당하며, 식량과 원자재를 생산하는 능력도 파괴된다. 마지막으로, 구매력의 공급을 시장기구의 관리에 맡기면 영리기업들은 주기적으로 파산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사회의 실체 및 사회의 경제조직이 보호받지 못하고 시장경제라는 ‘악마의 맷돌’에 노출된다면, 무지막지한 상품 허구의 경제체제가 몰고 올 결과를 어떤 사회도 단 한순간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의 연합   
자유방임이란 전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인간 만사를 그야말로 제 갈 길 가도록 내버려두기만 한다면 자유 시장이란 결코 나타날 수 없었다. 자유무역과 직결된 주도적 산업이던 면화제조업만 하더라도 보호관세, 수출장려금, 간접적인 임금보조금 따위의 도움을 빌려 나타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유방임이라는 것 자체도 국가에 의한 법령과 집행을 통해 나타난 것이었다. 자유방임 경제가 의도적인 국가 활동의 산물이었던 반면, 그 뒤에 나타난 자유방임 제한 조치들은 완전히 자생적으로 시작된 것들이었다. 자유방임은 중앙 계획에 의한 것이었지만, 중앙 계획은 중앙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조직의 세속 종교 교리로서 온 문명 세계를 품 안에 넣었던 경제적 자유주의이기에, 지난 10년 동안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다고 해서 즉시 물러날 리는 없다. 사실 그 원리가 부분적으로 빛을 잃어버리면 오히려 그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이 더욱 강화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항상 자유방임 원리의 신봉자들이 앞으로 나서, 모든 어려움은 사실 자유방임의 여러 원리들을 모두 완전하게 적용하지 못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오늘날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주장이다.
 
통속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면서 조야한 계급이론에 갇히고 말았다. 무수한 시장을 만들어내자는 사회적 압력과 그를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지형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도 이윤에 눈먼 한 줌의 금융가들의 움직임으로 모두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라는 엄청난 사건조차도 자국 정부를 꼬드겨 (국가를) 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전쟁으로 끌어넣으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로 설명해버렸다.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적대적으로 맞서는 계급들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관점에 선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이렇게 이 둘은 서로 어깨를 겯고서, 시장 사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보호주의가 맡는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포괄적인 조망을 할 가능성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겨난 긴장이 정치로
계급적 이익이란 사회의 장기적 운동을 설명하는 데 제한적인 도움밖에 되지 않는다. 누구나 무수한 방식으로 다양한 이익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기에 교회·지자체·각종 결사체의 분회·동호인 모임·노동조합·폭넓은 단결 원리에 기반한 정당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지역적·기능적 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게 된다. 이제 인구의 서로 다른 여러 부분들에 걸친 광범위한 사회적 이익이 시장의 작동으로 인해 위협에 처하게 됐다. 다양한 경제적 계층에 속하는 개인들이 그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계층의 차이를 넘어 힘을 합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집단주의 운동이라는 것의 원천은 어떤 단일한 집단이나 계급이 아니었다. 물론 그 운동의 결말은 관련된 계급 이익의 성격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볼 때 그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게 한 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었다. 이런저런 개별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재난에 처한 여러 사회적 이익의 내용을 묶어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일이라고 본다. 경쟁적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담지자, 즉 인간에게 타격을 가했다. 국제 자유무역은 자연에 의존하는 최대의 산업, 즉 농업에 대한 위협이 됐다. 금본위제는 여러 가격 수준의 상대적 변화 추이를 보면서 사업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생산조직들에 재난을 가져왔다.
 
긴장은 시장의 영역에서 생겨나지만 곧 그것을 넘어 정치 영역으로 확산되며, 이로써 전 사회를 휘어감게 된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계속 기능하는 한 개별 국가들 내에서는 그 긴장이 잠복된 형태로만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해체되자 시장 문명 전체가 그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게 됐다. 영혼도 무엇도 없이 그저 물질적 안녕의 자동적 증대라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는 제도들이 눈먼 기차처럼 달려가게 됐고 마침내 그로 말미암아 한 문명 전체가 파괴됐다.
 
‘낡은 세계’는 무너졌으며, 그 폐허로부터 각국 정부가 자신들 국내 제도를 뜻대로 자유롭게 조직하면서 서로 경제적 협력을 이루는 ‘새로운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와 금본위제가 지배하고 있던 당시, 세계연방의 창설이라는 생각은 중앙집권화와 획일화라는 악몽으로 여겨진 바 있다. 이는 옳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시장경제가 종말을 고하자 각국이 국내에서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효과적인 협력을 이뤄나가는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볼 만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자유주의경제는 자유라는 우리의 이상을 그릇된 방향으로 오도했다. 시장경제에서 대량 실업이나 빈곤이 발생하면 실로 야수적인 자유의 제한이 함께 나타나지만, 투표자·생산자·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이런 사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어떤 집단이 생존하려면 모든 성원이 일정한 정도로는 집단의 결정에 순응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권력의 기능이다. 그리고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개개 성원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의견이다. 일단 마음속에 의견이나 욕망을 가지면, 우리 모두가 권력의 창출 과정 그리고 경제적 가치 평가의 구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 자유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장경제에서는 자유도 평화도 없다
시장경제 아래서는 자유도 평화도 제도화될 수 없었다. 그 체제가 목표로 삼는 것은 이윤과 물질적 안녕을 창출하는 것이었지 평화와 자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사멸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자유의 시대’의 개막이 될 수 있다. 소수만의 사회적 특권에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그런 원천적으로 오염된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여가와 안정을 빌려서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킬 것이고, 그 새로운 자유의 덩어리에다 다시 옛날부터 존재하던 여러 자유와 시민적 권리들을 추가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인간이 그러한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의 원수로 변해 자유를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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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하는 ‘세계인’ (한겨레21 2009.03.27 제753호, 정인환 기자)
폴라니의 폭풍 같은 삶… 파시즘·세계대전 겪으면 저작 완성, 강단 생활은 주로 미국에서 
 
“내 삶은 곧 세계인, 나는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왔다.”
칼 폴라니는 1958년 1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격동의 시대, ‘세계인’의 삶은 유목민의 삶이었다.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못했고, 쫓기듯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었다. 생계는 불안정했지만, 사상은 풍요로웠다. 말하자면, 시대를 앞서 산 게다.

 
루카치·만하임과 교류하며 인문학 섭렵
폴라니는 1886년 10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이던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엔지니어 출신인 아버지는 철도사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자산가였고,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던 어머니는 비엔나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꼽혔다. 제국의 또 다른 수도였던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대학 시절엔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대가로 성장할 죄르지 루카치와 ‘지식사회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카를 만하임과 교우하기도 했다. 급진적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인문학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한 그는 1912년 변호사 자격을 따냈지만, 법조인의 안정적인 삶에는 애초 관심이 없었다. 그는 1914년 헝가리 급진당을 창당해 서기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국군의 기병장교로 참전해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세계대전’을 목격한 그는 1924년 비엔나로 활동 무대를 옮겨 저명한 경제주간지 <오스트리아 대중경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폴라니 필생의 ‘맞수’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의 질긴 인연은 이 무렵 싹텄다. 당시 비엔나에선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사회주의의 대두로 상처 입은 시장론자들이 ‘자본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었다. 대표적인 이론가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였고, 그의 수제자가 바로 하이에크였다. 폴라니는 <오스트리아 대중경제>의 지면을 통해 미제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이 시기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이고 있었다.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을 지탱해온 금본위제도 무너지고 있었다. 이내 대공황이 닥쳐왔다. 이 모든 혼란을 자양분 삼아 파시즘이 독버섯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비엔나도 안전하지 않았다. 영국으로 거처를 옮긴 폴라니는 1937년부터 옥스퍼드와 런던대학이 개설한 ‘노동자교육협회’(일종의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시작하는 한편 당시 ‘세계의 공장’이던 영국 경제에 대한 연구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뉴딜 정책이 대공황의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할 무렵 절정에 이른 파시즘은 또 다른 세계대전을 불렀다. 폴라니는 두 차례의 전쟁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시장을 우상으로 떠받든 자본주의의 출현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사회적 관계의 일부에 불과했던 경제활동(시장)이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복속시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미 버몬트주 베닝턴대학에서 ‘방문 연구원’ 신분으로 집필에 몰두한 폴라니는 58살이 되던 해인 1944년 마침내 <거대한 변형>을 세상에 내놓는다.
 
노작 출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를 부른 것은 미 명문 컬럼비아대학이었다. 이번엔 미국행이 쉽지 않았다. 열혈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부인 일로나 두친스카의 ‘전력’이 문제였다. 때는 1947년, 바야흐로 냉전이 막을 올렸고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 광기에 눈이 먼 채였다. 두친스카의 입국사증(비자)은 거부됐고, 폴라니 가족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외곽의 피커링에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폴라니는 배편으로 피커링과 뉴욕을 오가는 생활을 이후 6년여 이어갔다.
 
하이에크와의 질긴 악연
‘방문교수’란 불안정한 신분으로 컬럼비아대에서 그가 가르친 과목은 경제제도의 기원을 탐구하는 ‘일반경제사’였다. 1953년 67살의 나이에 은퇴할 때까지 그의 ‘신분’엔 변화가 없었다. 강단을 떠난 뒤에도 그의 연구열은 식을 줄 몰랐고, 1957년엔 또 다른 노작 <초기 제국의 무역과 시장>을 펴냈다. 말년엔 대안 학술지인 <공존> 창간 준비에 정열을 기울이기도 했다. 칼 폴라니는 1964년 4월 피커링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풍 같던 삶을 조용히 마감했다.
 
<거대한 변형>이 출간된 1944년, 하이에크도 자신의 대표작 <노예로 가는 길>을 펴냈다. “모든 집단주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력 비판한 이 책은 훗날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하이에크는 1974년 화폐와 경기변동에 관한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그의 후예인 밀턴 프리드먼도 2년 뒤 같은 상을 받았다. 1992년 4월 숨질 때까지 그는 냉전의 종말과 소비에트의 붕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이 지구를 뒤덮는 모습을 지켜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거대한 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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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상상력의 원천 (한겨레21 2009.03.27 제753호, 사회 안수찬 기자, 정리 정인환 기자)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다. 참고 견디면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꿈꾸지 마라. 옛 체제는 무너졌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자본주의는 막을 내렸다. 그 체제를 수호해온 이들도 무겁게 인정한 바다. 미래는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자본주의, 어쩌면 자본주의 이후의 체제일 터다. 바야흐로 ‘거대한 변형’의 시대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겨레21>은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우석훈 연세대 강사·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 3명의 경제학자에게 ‘위기 이후의 체제’에 대해 물었다. 지난 3월1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2시간 남짓 진행된 좌담에서 세 사람은 “칼 폴라니에게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 현실 진단부터 해보자. 우리가 겪고 있는 작금의 위기는 폭과 깊이 면에서 어느 정도나 심각한 수준인가?  
 
=홍기빈(이하 홍):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위기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다. 문제의 심각성을 예측·진단하고, 과거와 비교할 수 있어야 리스크(위험수위) 계산도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로선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존 케인스가 말한 ‘불안’의 고전적 상황을 맞고 있다. 리스크 계산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고는 있는데, ‘U자형’이니 ‘L자형’이니 말들만 많지 어느 한쪽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를 정도니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것 자체가 증후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정태인(이하 정): 현 상황은 콘드라티예프의 경기순환 사이클로 치자면 경기순환의 맨 밑바닥이다. 파생상품에 얽힌 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부실자산을 정리할 ‘배드뱅크’를 만든다 해도, 정확한 부실자산의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말 그대로 경기하강 국면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간 상태다. 국제정치적으로 미국 패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달러가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이곤 있지만, 곧 혼돈 상황이 올 텐데 그 다음 패권을 누가 쥐게 될지도 불분명하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간다 해도 에너지 가격 급등이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기후변화도 한계에 도달해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어 그 이상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대혼돈의 시기가 올 것만은 확실하다.
 
=우석훈(이하 우): 20세기의 역사를 돌아보자. 1929년 대공황으로 수정자본주의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반 제1차 석유파동이 나면서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는 ‘영광의 30년’을 마감했다. 1980년대 이후 대처리즘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제무역 질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그 체제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100년을 한 사이클로 봤을 때, 세 번째 다가온 근본적 위기다. 위기를 맞으면 이른바 ‘레짐’(체제)이 바뀌게 된다. 첫 번째 위기 때는 케인스의 이론이 있었고, 두 번째 위기 때는 하이에크의 이론이 있었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선 이론을 내놓은 사람이 없다. 근거가 있건 없건 다들 한마디씩 하고는 있는데, 세계 자본주의가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한 이론가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홍: 현 경제위기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경제의 조직원리 차원으로 확대돼 있다. 지난 30~40년 동안엔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합의된 경제원리였다. 시장이 가장 합리적인 사회조직이라고 합의하고 모든 문제를 시장에 맡겼다. 적절한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건 시장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장원리를 통해 균형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뛰어난 사회적 조직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회철학이 지배한 시기였다. 그 정점이 바로 금융시장이었다. 금융시장은 어느 시장보다 정보 이동이 훨씬 빠르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보가 금융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따라서 금융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면, 사회 전체가 가장 완벽한 균형 상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금융시장은 정보를 모을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위험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미래 계획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1929년 공황은 농업 불황이 촉발시킨 것이란 주장이 정설이다. 이번 위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파생상품 때문에 나온 것이고, 그것이 어마어마한 부채가 돼 지구촌을 누르고 있다. 지난 30~40년 동안 지구촌을 지배해온 시장 우위라는 틀이 논리적으로 파산한 셈이다.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면 경제와 사회를 다시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인가? 내놓을 만한 대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는 지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주주 가치 경영의 창시자라 할 잭 웰치도, 지난 10년간 영국의 재무장관을 맡으며 지구적 금융 체제의 설계를 주도했던 고든 브라운도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바를 완전히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쪽에 1930년대의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케인스주의 등과 같은 대안적인 지적 틀이 준비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현재의 지적 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정: 지금 지구촌이 겪고 있는 위기는 기실 미국 경제가 예전부터 스스로 예고해온 바다. 1980~90년대 저축대부조합(S&L) 사태나 2001년 말 터져나온 엔론 사태가 전조였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금융시장에 제동을 걸었어야 하는데, 되레 규제 완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한없이 파장이 커지고 말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했고, 위기의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마저 자신의 경제학이 틀렸음을 고백했다. 아직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시장만능론에 미련을 가지고 있지만, 위기의 장기화가 곧 이들이 틀렸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케인스주의적 해법이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
 
=우: 한동안 케인스 해법이 신자유주의 방식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는 할 것인데, 45~75년의 30년 기간처럼 전면적인 수요 진작에 의한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의 포디즘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생산 방식 자체가 포디즘에서 탈포디즘으로 이행한 상태이고, 여기에 생태적 제약조건이 걸려 있으며, 국가의 작동 방식도 훨씬 다원화된 상태라서, 전성기 때의 케인스의 발전모델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월스트리트 금융질서를 제압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나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등은 ‘월스트리트의 자식들’로 부를 만하다. 이들을 데려다 금융 개혁을 하려다 보니 굉장히 미적거리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위기를 맞아 기득권층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오바마가 루스벨트보다 불리한 것은, 루스벨트는 미국 패권 확립기에 집권했기에 개혁의 성공에 대해 곧바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돼 있었지만, 오바마는 미국 패권 쇠퇴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러와 함께 유로나 아시아 통화가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영국이 과거에 그랬듯이 미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홍: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팀 면면을 보자. 금융 쪽 ‘올드보이’를 불러모았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다. 워낙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으니,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의 인맥이라 할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나 서머스 의장 등이 발탁된 측면이 있다. 이들이 강력한 달러화를 바탕으로 월스트리트의 현 체제를 디자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에 생긴 버그를 잡으려면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현재로선 금융 시스템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른바 ‘녹색뉴딜’을 통해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는 측면도 있다. 대공황 직전까지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버팀목인 금본위제를 유지·관리해온 금융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공황과 함께 은행가들은 길바닥으로 내던져졌다. 금융 전문가가 무시당하는 상황이 온 거다.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로선 금융 시스템도 살리고, 적극적인 재정정책도 취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고 있는 모양새인데, 1930년대였다면 금융계는 모두 날아갔을 것이다. 미 금융권의 정치적 입지가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면, 미래를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 오바마 행정부도 기술적으론 대안이 없어 보인다. 임기 6개월 정도를 맞으면 국제 통상체계와 금융체계와 관련해 뭔가 나와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나온 것이 없다. 달러본위 체제가 바뀌는 순간이 오면, 지금까지 갖고 있던 금융자산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대규모 자산 파기 현상이 벌어질 텐데, 그 규모를 몰라 무서우니 일단 뒤로 미루고 있는 모양새다. 그새 금융위기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정: 금융·재정 정책상 쓸 만한 것은 다 쓰고 있는 것 같다. 잘못하다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금융 마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공적자금이 무한정 들어가고 있는데, 시간이 흘러도 부실채권이 스스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빠른 속도로 일단 드러난 부실채권부터 상각해야 할 텐데 가이트너나 서머스 모두 미적거리고 있다. 부실채권을 매입할 투자자를 모은다는 게 가이트너나 버냉키의 해법인데 부실채권의 규모를 몰라서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가 투자를 할까. 방법은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정부가 기준을 정해 부실채권을 빨리 정리하는 것뿐이다. 또한 새로운 금융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래저래 위기는 길어질 것이다.
 
재정정책은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서 경제 붕괴와 사회 혼란으로 들어서는 걸 막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이붓는 의료개혁은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 현재의 민간보험과 병원을 그대로 둔 채 건강보험을 새로 만들어 경쟁시키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건강보험이 고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린 뉴딜은 획기적인 발상이다. 특히 스마트 그리드와 단열재 시공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이라면 일자리도 꽤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에 민간의 돈이 투입되도록 하기 위해 파생상품 시장을 만든다면 그건 또 하나의 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홍: 케인스 얘기가 새삼 나오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지금 미국의 경제학자 가운데 케인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다. 1970년대부터 미 대학에서 사실상 케인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서 케인스 경제학 하면 무조건 정부가 나서 돈을 푸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물론 케인스의 사상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기류는 이른바 ‘트리클다운’(부유층과 거대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 저소득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 이론과 결합될 위험이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가장 필요로 하는 급소에 돈을 풀어야 하는데, 무조건 은행과 GM 같은 거대기업에 돈을 풀어 금융자본과 대기업만 안정시키면 된다는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오바마 정권이나 조지 소로스 등이 생각하고 있는 녹색 뉴딜을 통한 경기 회복도 아직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녹색 담론이라는 것이 아직도 재난 담론의 성격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90년대 말의 닷컴 붐과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꼭 그런 식인 것은 아니다. 긴급 편성한 경기부양 자금 8천억달러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몫도 있고, 의료보험 개혁용 예산도 그렇다. 이런 건 이명박 정부와는 정반대다. 금융 부문의 위기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현재는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다. 이자율이 너무 낮아서라기보다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각 금융기관이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생긴 유동성 함정이다. 어느 정도 금융위기가 지나가면 전세계가 동시에 불려놓은 유동성 때문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생길수도 있다. 특히 유가와 곡물가가 위험하다. 그래도 정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 말고는 없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가 말한 ‘보텀업 경제학’(아래로부터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오바마는 로버트 루빈과 로버트 라이시를 두 명의 ‘밥’(Robert의 애칭)이라고 부르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생각난다. 둘 사이의 조정이 쉽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 ‘루빈 사단’(서머스·가이트너 등)은 정부와 백악관에 있고 라이시는 그렇지 않다.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
 
-사회: 현실 진단도 그렇고 해법도 그렇고 온통 불확실성뿐이다. 폴라니 얘기를 해보자. 이론과 정책 측면에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영감을 주는 게 있을 텐데.
  
=홍: ‘시장’ 대신 ‘투자자’로 말을 바꿔보자. 폴라니의 핵심 명제는 인간 세상의 만물이 상품화하고 있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돈을 주면 모든 것이 맘대로 동원 가능해진다는 거다. 뒤집어 얘기하면, 돈이 안 되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돈으로 거래될 때만 상품이라는 게, 그게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아무도 사지 않으면 무용지물, 그게 바로 상품이다. 사람도, 화폐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장에 팔겠다고 그림을 그려 내놓았다가 팔리지 않으면 나 혼자 창피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딴건 몰라도 사람과 자연, 화폐가 안 팔리는 상황이 오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폴라니가 경고한 것도 딴건 몰라도 사람·자연·화폐까지 상품화했다가 이게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면 사회 자체가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실제 사회가 무너질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이나 화폐, 자연이 알아서 먹고살아야겠다고 자기 길을 가게 된다. 결국 계속 상품화하는 움직임도 나올 것이고, 반대로 상품이 아니게끔 만들려는 움직임도 나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말하자면 큰돈이 돌 수 있는 판을 만들어내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거다. 4대강 사업도 그렇고 영리법인을 뼈대로 한 의료 민영화 움직임도 그렇다. 이는 폴라니적 의미의 ‘상품화’다. 다시 말하지만 누군가 돈을 풀 때만 쓸모있는 게 상품화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을 모두 투자자가 돈을 투여해 더 많은 돈을 뽑아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뭐가 돈이 되는지를 가장 잘 아는 게 투자자라는 주장이다. 사실상 ‘투자자 독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폴라니는 이런 게 부도덕한 것을 넘어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봤다. 실현이 불가능한 주장이란 얘기다. 인간·자연·화폐까지 상품화하면 사회가 견뎌내지 못하고 사달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과 의료 민영화 추진은 물론, 교육도 ‘비즈니스’로 바꿨고 금산분리를 완화해 금융시장도 돈 놓고 돈 먹는 판으로 만들었다. 폴라니가 말한 만물의 상품화와 투자자 독재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는 현 지구촌 경제위기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 어떻게 보면 폴라니는 그동안 경제학이 놓치고 있던 사회적 요소 혹은 총체성에 관한 또 다른 지평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든 국가든 상당히 강력한 환원주의가 작동하고 있던 셈인데, 폴라니는 비환원주의 그리고 총체성에 대한 경제적 복원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기가 비경제적 요소들도 경제적 요소로 환원시켜서 화폐나 금리 그리고 수익성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라면, 폴라니 시스템은 그러한 경제적 요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요소들을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 재화와 서비스를 가능한 한 많이 누리는 것, 즉 성장이 곧 행복(welfare)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사고를 뒤집어야만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기실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였던 마르크스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주류 경제학의 환경경제학(environmental economics, 예컨대 탄소배출권 같은 해법)을 뛰어넘는 생태이론을 모색하고 중앙 계획이라는 수단이 그린 뉴딜과 같은 정책을 단숨에 실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의 실천이 보여준 것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대위기를 맞아 1930년대의 경험을 들춰보다가 폴라니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굳이 얘기하자면 케인스 역시 이성의 힘이 가져오는 생산력 발전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며 위기 때의 정부 역할을 강조했지만 적절한 조정이 이뤄지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선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굳게 믿을 만큼 그는 낙관적이었다. 그에게 시장은 적절히 다룰 수만 있다면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천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30년대에 이미 꿰뚫었다. 그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재생에너지와 안전한 먹을거리가 그다지 넓지 않은 범위에서 호혜적으로 배분되는 지역 공동체를 능히 그려낼 수 있다. 호혜성(reciprocity)이야말로 우리가 내면 깊숙이 원하고 있는 생명복지(lifare·생명을 뜻하는 life와 복지를 뜻하는 welfare의 합성어로 정태인 교수가 만든 표현)의 원리일 것이다. 전기·가스·철도·우편 등 근거리를 넘어서는 전국적 네트워크, 그리고 교육·의료·주거 등 필수재는 국가가 재분배(redistribution)의 원리에 입각해 최대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녹색 가치는 철두철미하게 관철돼야 한다. 말하자면 ‘녹색 공공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시장은 이런 기초 위에 사회의 일부로 착근돼야(embedded) 한다. 이 부문은 경쟁의 원리가 지배할 테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공정성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폴라니의 미완의 꿈을 지금 이루지 못하면 우리 모두의 끔찍한 공멸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가, 누가 이런 사회를 먼저 만들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일이다.
 
-사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폴라니가 줄 수 있는 교훈을 얘기해보자.

=정: 얘기할 게 뭐가 있나.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데. (웃음)
 
=우: 케인스 좌파가 있고 케인스 우파가 있다고 설정한다면, 케인스 좌파는 주로 복지국가의 유형을, 케인스 우파는 재정정책을 전적으로 부자들과 특정 산업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독트린은 고용과 복지에는 거의 흉내만 내는 단기 대책이고, 진짜 장기 대책은 10년씩 사업 기간이 되는 4대강 정비 등 토목사업 등에 집중돼 있다. 건설을 단기 대책으로, 복지를 장기 대책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케인스식 재정정책과는 장·단기의 배치가 반대인 셈이다.
 
=홍: 경제는 형식과 실질로 나눌 수 있다. 형식은 화폐로 표현되고, 경제적 범주는 무역량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실체는 바로 사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지만 투자자는 돈을 풀지 않는다. 기업도 고용을 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투자를 하지 않고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화폐경제, 형식경제가 실질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애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살림하고 살아가는 데 굳이 투자자가 돈 풀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시장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모든 걸 상품으로 바꿔 팔 수밖에 없지만, 폴라니가 말한 ‘호혜성’에 기댄다면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관계라는 게 두 집단이 뭔가 주고받을 때, 사회적 신뢰나 구조를 바탕으로 화폐란 매개가 없이도 노동과 재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협동조합을 보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신뢰와 인간관계를 바탕을 서로 도움을 준다. 국가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제행위의 목적은 투자자의 돈을 불려주는 게 아니라 나라 전체의 번영이나 국민의 행복과 안녕이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투자자가 돈을 풀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실질적 경제가 가능하다고 세뇌당해왔다. 이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일자리나 먹을거리 문제도 풀 수 있다. 이젠 시장이나 투자자에 의지해야 인간의 삶이 가능하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 미국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나라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다. 서유럽의 스웨덴이나 스위스·독일 등을 보면, 폴라니가 말한 ‘사회적 경제’가 국민경제의 10~20%를 차지한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적지 않다. 생산협동조합 형태로 많이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호혜적 경제’란 게 실제 존재한다. 우리도 1990년대까지 ‘곗돈’ 문화가 있었고, 품앗이도 있었고, 계층 간 연대도 존재했다. 이런 호혜적 문화가 사라진 게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유럽은 예전부터 존재해온 이런 관계를 근대화시킨 거다.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재창조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속된다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차원의 공황으로 갈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본다. 이럴 경우 호혜성을 확대해나가면서 살아가는 게 한 가지 길일 테고, 저생산과 인플레이션이 높은 중남미처럼 일종의 파시즘 형태에 가깝게 가는 길도 있을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파시즘이 발호했다.
 
정답은 없다. 열려진 길이다.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그리로 가게 될 것이다. 케인스의 시대는 권모술수의 시대였다. 공무원이 사회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선 군부 엘리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이에크의 시대엔 최고경영자(CEO)가 사회적 영웅이 됐다. 기업 경영자와 펀드매니저가 존경받는 시대였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찬가지였다. 그 끝에서 우리 사회는 CEO 출신 대통령을 선택했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 앞에 우리 사회가 보인 애도의 물결은 CEO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표시가 아닐까? 폴라니가 상정한 시대엔 성직자와 사회활동가, 예술가가 대접받는다.
 
=정: 이명박 정부로선 건설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서 더 많이 지으면 어떻게 될까? 가격 폭락이 일어나 우리 내부에 있는 금융 문제,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100조원 규모), 부동산 가계대출(가계대출의 30%라면 200조원 규모)이 폭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론 공급을 늘리면서 한편으론 투기 수요를 최대한 부추기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 투기 버블을 일으키는 것은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그 다음해쯤 대폭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마이너스 1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전세계가 모두 침체에 빠져 있는데 나 홀로 버블이 지속될 수는 없다.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데 거꾸로 현재의 네트워크 산업이나 의료를 민영화하려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1년에 재정적자가 20조~30조원씩 날 텐데 세금을 더 거두거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적자를 메우는 방법이 공기업 민영화다. 전기·가스·철도·물·우편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내가 알기론 이미 가스공사 민영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금을 투입해 일시적으로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건강보험을 무너뜨리는 영리법인화, 병원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꾀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의 생활은 물론 생명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사회: 한국 경제가 특히 위기에 취약한 이유는 뭔가?
 
=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유효수요 부족이다. 내수가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돈이 전부 부동산과 증권으로 몰리고 있다. 부동산과 증권이 경쟁한 게 지난 10년 세월이다. 한국 금융자산에서 연기금이 제일 큰데, 이게 증시로 흘러들어가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부동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현 집권세력은 그렇게 못할 것이다. 결국 아래로 향해야 할 돈 상당 규모가 부동산·건설족에게 갈 것이다. 그리로 들어간 돈은 거기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혁신 능력이 워낙 떨어져 있으니 신상품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버블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결국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더욱 협소해질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도 따라간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시나리오일 텐데, 국제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는데다 국내 자본의 내부 모순까지 더해진다면 한국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게 뻔하다. 이런데도 4대강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뿌리면 땅값은 계속 올라갈 테고….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 내수가 적은 건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내구 소비재부터 줄이기 마련이다. 선진 각국에서 내구 소비재 소비를 줄이면 수출로 버텨온 한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건설을 빼고는 내수랄 게 없으니, 이명박 정부로선 이쪽을 유일한 살길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로 가면 버블은 언제든 붕괴할 수밖에 없다.
 
=홍: 부동산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경제도 살펴야 한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의료·교육 등 인간이 생명 활동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까지 돈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필수 서비스를 안정적인 수익이 들어오는 시장으로 본 거다. 내구 소비재야 안쓰면 그만이지만, 병원과 학교는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상품화하자는 것, 기업 활동 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 이를 토대로 한국을 국제적인 금융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이었다. 투자법인화 얘기도 그래서 나온 거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단순히 경기침체나 버블 붕괴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루는 각 영역이 침탈을 당하게 된다.
 
=우: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돌봄 노동’을 인정하고, 이를 수행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정부가 돈을 대준다. 한국에선 이를 기업화하려 하고 있다. 사교육 업체가 코스닥에 상장됐을 때, 한국의 서비스 부문 기업화가 갈 데까지 갔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교육 업체가 증시에 상장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밖에 없다. 이제 고용이나 육아의 상품화가 기다리고 있다. 유럽은 사회적 경제 영역에 두고 있는 것을 우리는 기업의 영역으로 보내지 못해 안달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사회: 보수 진영엔선 ‘선진화 전략’을 말한다. 선진국이 되면 경쟁이 치열해도 국가 경제가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몇 년 고생해서라도 빨리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인데.
 
=우: 형식논리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실제론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우리 사회가 안에서부터 붕괴될 것이다. ‘사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고찰했어야 한다. 사람은 먹여만 준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 해체 과정에 급격한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일본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부 시절 우정국 민영화를 밀어붙인 여파로 니트족(직업이 없고 직업을 구할 생각도 없으며 진학도 하지 않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사람)이나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 문제가 악화하면서, 영원히 집권할 줄 알았던 자민당 정권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너무 오른쪽으로 가다 보니 기존 보수파가 더욱 오른쪽으로 가게 된 것 같다. 역설적인 게 우리나라에서 복지사회를 처음 말한 게 독재자 전두환이다. 의료보험의 뼈대도 그때 만들어졌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뤄지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적 장치가 해체되는 거다. 오바마의 미국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셈이다.
 
=정: 망한 데 따라가는 거지. (웃음)
 
=홍: 보수 진영의 경제 담론의 비현실성이 완전히 폭로되는 대목이다. 그런 주장의 골자는, 세계 경제의 노동 분업의 위계 구조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를 점해 거기에서 나오는 우위를 이용해 이른바 ‘공동체’에 해당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그 세계 경제의 위계 구조가 근본부터 흔들리면서 그들이 타깃으로 삼았던 ‘금융 허브’니 ‘서비스 경제’니 하는 게 대몰락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아일랜드·두바이 등의 현 상태를 보라. 단순한 현실적인 파산일 뿐이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지난 30년간 이뤄져온 지구 경제의 위계 구조를 정당화하던 이론적·지적 배경이 급격히 바뀌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내가 보기엔 현 정권이나 보수 진영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져 마땅하다. 그래도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이른바 ‘인지 구조의 모순’이 벌어지는 게 두려워서 하던 일을 더욱 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내걸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구호의 성격이다.
 
=정: 이 정부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정부다. 미국이 지금 위기의 모든 걸 보여주지 않나. 그런데 이 정부는 위기를 빌미로 시장만능 정책을 더 강화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켜서 반영구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트리클다운’ 경제학은 전세계 어디서도 실현되지 않았다. 라이시는 보텀업 경제학으로 트리클다운을 뒤집었다. 이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박병원 전 경제수석이 물을 무서워하면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며 금융 자유화 등 이른바 선진화 전략을 계속 추구하려 하는데 그건 수영 배우는 일이 아니다. 이미 난파선으로 판명난 배에 전 국민을 끌고 올라타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낫을 보여줘도 기역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다.
 
-사회: 폴라니가 대안 체제의 기초로 언급한 게 이를테면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지방자치 같은 것이다. 이런 건 우리 사회에도 이미 씨앗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는데.
 
=우: 분명 ‘맹아’는 있다.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 40만~50만 명가량 된다. 3인 가구를 평균으로 보면, 생협을 통해 식생활을 해결하는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지역경제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기존의 새만금식 개발주의가 있을 수 있고,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농업·식품가공업·문화 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키우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지역경제 측면에선 폴라니적 상상력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이런 맹아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가 문제인데. 사회적 경제, 호혜적인 부문을 국민경제의 20~30%까지만 끌어올려도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시민사회나 자활 공동체를 모두 합해도 국내총생산(GDP)의 1%, 총고용의 5% 정도나 될까? GDP 10%, 총고용의 20~25%까지만 끌어올릴 수 있다면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홍: 지금으로선 난망한 일이지만 사회적 경제, 특히 생협운동 진영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노조운동 쪽과 협력관계를 만드는 게 살길이라고 본다. 생협운동을 하다 보면 일정한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도시와 농촌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하는데, 조직된 노동자 집단은 도시를 대표하는 사회세력이다. 영국에선 노동조합이 생협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된다. 노동자들이 생협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능성이 나올 수 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폴라니가 절대 반대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하나의 논리로 인간경제를 제단하는 것이다. 시장만으로, 국가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여러 경제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사회와 시장, 국가가 공존하면서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폴라니적 해법이다. 한 가지 더 있다면, 폴라니는 노동조합, 지방자치체, 소비자 생산자 조합 등 다양한 인간 집단의 내부적, 또 상호간의 활발한 의사소통과 연대가 인간적이고도 효율적인 경제의 필수 요소라고 보았다. 범진보 운동의 다양한 세력들의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그 어떤 하나로 전체를 통일시킨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현재와 같은 다급한 요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연대가 그렇게 먼 일만이 아닐 것이다.
 
=정: 폴라니의 이론은 사회경제를 생태적으로 변모시키는 데 필요한 이론적 자원이 될 수 있다. 그의 이론체계는 노동운동, 환경운동, 공동체운동, 기부운동, 시민운동, 진보운동을 모두 아울러서 배치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특히 군 단위 풀뿌리 지역에서 사회경제(social economy)를 만드는 일은 위의 모든 운동이 힘을 합쳐서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아래로부터의 성장이며 복지이다. 풀뿌리에 기반한 호혜성이야말로 아래로부터의 성장의 밑걸음이다. 그걸 무너뜨린 게 새마을운동이었다. 복원해내야 한다.
 
=우: 사회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폴라니를 본다면 분산형·비국가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과 생태운동의 결합인 에코페미니즘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흐름들이 조금 더 사회운동의 전면으로 등장하고, 이들이 경제적 장치로서 사회적 경제라는 지향점을 비로소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노동자들의 상호부조라는 노동조합의 전통을 환기해볼 때,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그리고 지역운동이 폭넓게 결합할 수 있는 다리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정부만 장악하면 된다”는 간단한 운동론보다는 사회·경제·문화·윤리 등의 복합적 요소들을 이해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비환원주의적 요소에 의해 운동 방식의 ‘단순화’에는 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사회: 경제에서 시작한 얘기가 민주주의와 재분배, 사회적 다원성으로 확대된 느낌이다.
 
=홍: 경제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주는 논쟁이 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활동이 합리적으로 이뤄지려면 적절한 가격이 결정돼야 하는데,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가사회주의자들은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폴라니는 시장도, 공산주의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물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추상적인 수치만 나올 뿐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얼마나 원하는지, 생산과정은 얼마나 고된지를 통계로 포착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토론이다. 노동조합에선 생산에 대해 토론하고, 소비자 집단은 욕구와 선호체계를 말해야 한다. 경제활동 참여자 모두 가격이나 정부 관료에 의존하지 않고 토론을 하는 과정이 곧 폴라니식 민주주의다.
 
-사회: 그런 사회로 어떻게 하면 나아갈 수 있느냐가 문제일 텐데. 그 과정에서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고.
 
=우: 어떻게 이행하느냐는 내용은 폴라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하이에크 체제가 붕괴하지 않으면 폴라니식 체제로 갈 수 없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 자크 데리다 같은 이들이 ‘해체’를 말한 것은 아닐까? 위기의 시대, 폴라니가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 세계가 복지국가의 출현을 목도한 것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다. 어려운 시기가 좀더 계속될지도 모른다.
 
=홍: 폴라니가 여타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것은 인간의 도덕적·윤리적 선택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폴라니는 시장자본주의가 태생적 모순 때문에 언젠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면서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이 서로 원수가 되고, 산업자본과 민중이 장악한 의회가 맞설 것이라고 봤다. 사회가 마비된 상태에서도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그대로 무너질 것이냐, 아니면 기능이 멈춘 사회를 폭력적으로 움직여 다시 기능하게 할 것이냐가 남는 문제일 것이다. 후자의 논리가 파시즘이다. 폴라니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형제자매와 연대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기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정치경제적 차이는 없다. 다만 윤리적 원칙이 다를 뿐이다. 이제 윤리를 말해야 할 때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성격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정치란 철저히 경제와 분리된 사안이며 민주주의란 철저히 전자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고전적 자유민주주의의 사고 틀에 갇힌다면 인간 사회에 미래와 희망은 없다고 하겠다.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나와 평등한 이웃이 실업과 빈곤과 인간 파괴를 겪는 현실을 외면하고 투표와 법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무슨 기괴한 드라마인가.
 
폴라니는 산업사회의 기능성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 기능성의 톱니바퀴로 스스로 전락의 길을 선택할 위험이 크다고 보았고 파시즘이 바로 이러한 사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의 개인성을 빌려서 영혼을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오로지 사회라는 단위에서의 집단적 연대를 통해서만 인간의 영혼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이것이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산업사회에서의 민주주의가 떠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보았다. 시장지상주의로 조직된 현재의 경제체제가 과연 사람들 모두의 살림살이를 원만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지 지극히 불투명해진 지금,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인 것, 나아가 인간의 영혼과 가치라는 정신적·내면적 문제로까지 확장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다.
 
무역에 대한 폴라니의 비전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시장지상주의적 사고가 낳은 것이 전 지구적인 자유무역이었다고 한다면, 국가권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체제의 상상력은 일국 경제의 폐쇄적 자급자족 혹은 일정한 크기의 폐쇄적이고 호전적인 지역적 블록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이것이 1930년대의 전환기에 나타난 선례였다. 현재의 세계무역의 구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응당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말해 이것은 미국·유럽 등의 서방 국가들에게 비서구의 근로 인민들이 물품을 제조해 바치도록 만들어진 지구적 산업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화·용역·자본의 흐름 모두가 자연적인 지리적 조건에 의해 인근 국가들끼리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서방 국가들 및 그 앞잡이 역할을 하는 위성 지구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도록 돼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독특한 무역투자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이 지구적 불균형의 질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 바다. 그런데 이 질서가 만약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국가적 개입의 강화로 나타난다면, 이는 필시 무역과 금융에 걸친 보호주의의 강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그들과의 관계에 경제의 작동을 크게 의존하는 비서구 나라들에 더욱더 큰 고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시장이나 국가를 통해서만 실물과 화폐가 오고 가야 한다는 이분법을 벗어나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을 보게 된다면, 지리적인 인근 지역과의 경제적 협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게 된다. 폴라니가 그의 1945년 쓴 논문 ‘전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에서 발칸 지역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경제질서로 지역적 계획경제를 이야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정: 국내 차원에서는 폴라니의 이론대로 어느 정도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작년에 잠깐 화제가 됐던 ‘세 박자 경제론’이라는 게 이 틀에 맞춰져 있다. 문제는 국제 차원인데 폴라니는 30년대에 시장경제의 안정적 작동을 위한 골드스탠더드(금본위제)가 결국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공황이라고 파악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달러본위제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글로벌 불균형과 달러 패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현재의 핵심 과제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이 끝없이 마찰을 하면서 새로운 국제 체제를 만들려고 할텐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아마도 두 개 이상의 통화가 사실상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배리 아이켄그린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예측에 동의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우: 폴라니 시스템에서는 대화와 이해와 같은 소통,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시 중요하게 대두된다. 민주주의라는 담론의 영역에서는 누군가를 뽑고 그에게 모든 결정을 일임하는 경직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스위스와 같이 직접민주주의를 상당 부분 정치 과정과 사회 과정에 복원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민투표, 국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화와 사회 구성원 사이의 논의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중앙에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이렇게 결정된 것들에 국민 모두가 따른다는 민주집중제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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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는 유토피아가 무너진 날 (시사IN [85호] 2009년 04월 28일 (화) 11:17:26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글로벌 금융 위기는 20세기를 지배했던 위대한 경제사상들의 묘비명이다. 마르크스·하이에크·케인스 등 ‘살아 있는 죽은 경제학자’와 상이한 시각에서 시장경제를 묘사했던 칼 폴라니라면 지금의 금융 위기와 시장이라는 주술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이 시장경제라는 목표는 과연 달성될 수 있는 것인가? 그 이상대로 실현되었던 적이 있었나? 혹시 카프카의 ‘성(城)’처럼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모두 한번 들어가보려고 주변만 서성이다 늙어 죽고 마는 그런 곳은 아닐까. 30년간 지구를 지배해온 ‘과학적 진리’에 이렇게 허술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완전한 유연성’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시장경제 작동을 위한 필수 요소는 완벽하게 탄력적인 노동시장이다. 하이에크의 스승 미제스는 “실업이 발생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나온 일자리와 임금 수준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감히 일의 성격과 임금을 놓고 가리고 흥정하려 들기 때문이다”라고 쏘아붙인다. 그런데 미제스 말대로 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예컨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던 ㄱ씨는 수강생이 줄어들거나 더 적은 임금으로 교수 일을 하려는 자가 나타나면 그 즉시 문자로 해고를 통고받는다. 그러면 ㄱ씨는 수입이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그 다음 날, 마침 일자리가 난 광주의 어느 아파트 수위직으로 가족을 버리고 옮겨간다. 서툰 재주에 그나마 다음 달 또 잘리자, 이번에는 강원도 어딘가로 광부 일자리를 찾아간다….
 
이런 세상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필자는 경제학과 교수들을 단박에 불쾌하게 만드는 법을 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주장하는 경제학과 교수들부터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려면 종신고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다. 제아무리 선량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경제학과 교수도 이렇게 막돼먹은 주장 앞에 서면 즉시 낯을 붉히며 짜증을 내곤 한다.
 
너무 엽기적인 사례였나? 그렇다면 최근 미국이 단행한 ‘시가회계기준 완화’는 어떤가. 주지하듯 시가회계 아래서 모든 기업은 자신들의 모든 자산가격을 구입비용(역사적 원가)이 아닌 ‘현재 시장가치’로 기입해야 한다. 올해 정도부터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국제 시가회계기준(IFRS)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자산가치가 내려앉은 지금, ‘시가회계’를 적용했다가는 미국의 주요 은행이 모두 파산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자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는 어색해하는 제스처조차 없이 주요 은행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산가치를 ‘재량껏’ 산정해 장부에 올리라고 했고, 시가회계의 원칙은 졸지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시장경제 창출의 최대 수혜자라 할 금융기관조차 그 시장경제의 원칙을 정말로 ‘무지막지하게’(juggernaut-like) 적용받게 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경제’라는 이상은 본래부터 달성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이런 유토피아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란, 사실 생산력 발전으로 인류 진화의 새 장을 열겠다고 했던 공산주의 사상 이상으로 허망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겠다고 우격다짐을 하게 되면 그 반대 방향의 우격다짐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결국 아름답고 조화로운 시장의 자기 조정은커녕 사회 전체가 두 방향의 우격다짐 사이에 휘말려, 등이 터지고 가랑이가 찢어지게 되는 대혼란만 빚어지는 게 아닐까. 
 
바로 이것이 칼 폴라니가 그의 주저 <거대한 전환>에서 내놓은 핵심 주장이다. “이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가 잠시나마 존재하게 되면 사회의 인간적·자연적 실체는 없어지고 만다. 인간은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환경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를 취했지만, 그렇게 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 조정 기능은 손상을 입고 산업의 일상적 작동이 무너지는 등 다른 방향에서 사회는 위태롭게 되었다.”
 
시장 사회는 한편으로 완벽한 시장 기율을 확립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잔혹한 매질을 가한다. 그런데 채 몇 대 맞기도 전에 너무 가혹하다고 온갖 변칙을 만들어내 요리조리 몸을 뺀다. 그러다가 다시 스스로에게 너무 기율이 빠졌다고 시장 원칙을 강요하다가 다시 몸을 빼낸다. 전체 사회가 이렇게 어이없는 ‘골룸’과 ‘스미골’의 자작 2인극에 휘말려 들게 되면, 역사 전체는 엄청난 폭과 깊이의 변동을 겪는다. 폴라니는 산업혁명 이래 ‘자유무역-제국주의-파시즘과 사회주의-세계대전’으로 얼룩진 19세기와 20세기 미증유의 역사적 격동을,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다가 벌어진 ‘거대한 전환’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폴라니가 스스로 인정하듯,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역사를 이렇게 간단한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폴라니는 인간 역사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장이 인간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해서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특징이 되었는지,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만이 인류가 번영과 문명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유토피아의 신화는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신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단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역사·인류학·정치학·국제정치학·경제학·사회학·철학과 사회사상 등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철저하게 논증한다.
 
1944년에 출판된 <거대한 전환>은 처음에는 거의 무시되었다가, 20세기가 끝날 무렵에야 사회과학의 고전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침잠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이에 근거한 사회적 운동과 담론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더욱 적었다. 이 점에서 폴라니의 대극에 서 있다 할 하이에크의 <노예로의 길>(이 책도 1944년에 출판되었다)과 크게 대조된다. 후자가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운동의 지적·정신적 원천으로 작동했음에 반해, 폴라니의 시장 비판과 그가 대안으로 제시했던 ‘살림살이 경제학’(substantive economics)은 사실상 일부 경제인류학자 이외에는 거의 들어본 이조차 없었으니까.
 
그런데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1930년대에 착공된 국가자본주의형 체제는 40년이 지난 1970년대에 와서 무너졌다. 그때 건설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도 올해로 거의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때맞추어 대규모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특정 형태의 정치 경제 체제의 평균수명이 40세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러한 주먹구구식 추측이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여러 교리가 현실 조직 원리로서 한계에 처했다는 지적은 사방에서 나온다.
 
주주 가치 경영의 창시자라 할 잭 웰치는 주주자본주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마저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했다. 지금 누군가 현 사태 앞에서 지난 30년간 그랬던 것처럼 세금 감면과 탈규제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주장한다면 짜증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폴라니의 시각이 지금처럼 적실성을 가질 수 있는 시기를 만나기 힘들다.
 
물론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지난 30년간 번성해온 금융 체제와 질서를 회생시켜보려는 노력은 이미 진행 중이며, 노무현 정권을 이어 ‘한국형 신자유주의’ 건설에 전념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도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이렇게 엉거주춤한 현재의 ‘인격 분열적’ 상황이, 1930년대와 같은 ‘거대한 전환’이 막 시작되는 찰나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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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04:33 2009/07/1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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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당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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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act님의 [해적당 ] 에 관련된 글.
2006년 스웨덴에서 창당되었던 해적당이 유럽의회에서 의석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어린이 장난 같은 당명을 가지고 여론조사에서 좌파정당을 제끼고 3위의 지지율을 얻었던 해적당이 7.1%의 득표로 의석을 얻은 것이다. 해적당의 활약은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초기 녹색당만큼의 체계화되지는 않은 듯하지만, '단일 의제'정당으로서 성공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소수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좌파정당에게 현실정치의 이름으로 타협하고 기성의 룰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현실주의자들에게 강력한 반론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좌파정당이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777해킹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사실 저작권, 국가의 인터넷 감시 및 통제 체제는 테러방지의 핵심이다. 그리고 해적당은 저작권, 국가의 인터넷 감시문제 뿐만 아니라 의약특허의 문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정보공유연대, 진보네트워크 등이 하고 있는 역할을 정당정치의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 대해 기성정당들은 생까고 있다. 독일에서도 창당된지 3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들의 활동이 주목받은 적은 거의 없다. 이것은 카피레프트 운동이 가진 파괴력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스웨덴 해적당이 커가는 과정은 인터넷상의 지적재산권과 감시의 문제가 붉어지면서 논란이 되는 것과 일치한다. 이 점에서 스웨덴을 제외한 여타 국가에서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정책의제화되는데 있어서 일종의 무의사결정(non-decisionmaking)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더욱이 미국문화의 압도적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해적당 출범이 더욱 요청되는 상황이 아닐까. 이것이 인터넷저작권 문제를 오히려 더 공론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려면 정보공유, 인터넷민주화운동세력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해적당이 보여준 것처럼 정치에서 벗어난 사회이슈는 없다. 이를 쟁점화하고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정치를 통해서, 정치의 핵심매개체인 정당을 통해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해적당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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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익명 인터넷 서비스 '다크넷?'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서명덕기자, 2006.08.17 (목) 16:42)
 
스웨덴 한 정당 단체가 '다크넷'(darknet)이라는 익명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스웨덴 해적당(Pirate Party, http://www2.piratpartiet.se)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다크넷 서비스를 공식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온라인 사용자들이 주고 받는 각종 데이터나 파일들을 추적할 수 없이 ‘완전 익명’으로 접속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레락스(Relakks, http://www.relakks.com)라는 스웨덴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 사용자들이 파일을 주고받을 때 인터넷 연결 정보를 암호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해적당은 ‘스웨덴 정부의 저작권법을 개정하라’는 기치아래 지난 1월 조직된 정당 단체다.
 
리카드 팔크빈지(Rickard Falkvinge) 해적당 대표는 “완전히 익명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합법적인 이유가 많다”며 “사적인 정보들을 나눌 권리는 민주 사회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며, 인터넷에 익명으로 접속할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 없이는 이러한 권리는 지켜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들은 컴퓨터에 새로운 IP 주소를 부여하고, 기계의 고유번호에 따라 사용자를 식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IP 주소는 특정 컴퓨터를 추적하는 정보로 활용되고 있다. 매달 5유로를 내고 레락스를 사용하는 컴퓨터는 사용자가 어디에 있든지 스웨덴 지역 익명 IP 주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원리를 통해 접속자를 보호한다. 이론대로라면 온라인 접속 중인 사용자들의 ‘위치 정보’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팔크빈지(Falkvinge) 해적당 대표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많은 비판을 들었다”며 “네트워크를 통해 주고받는 것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서비스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활동을 숨기고 싶은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기술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단지 이러한 기술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해외 일부 네티즌들은 ‘진정한 익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과금 체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레락스에 익명으로 접속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이 서비스가 정말 ‘익명’ 기반인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크넷을 믿는 것과 ISP를 믿는 것이 뭐가 다른가”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또 일부 해외 매체에서는 “시큐어스타(SecurStar Ltd.)라는 프랑스 회사가 약 2년 전부터 이미 다크넷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매달 6.6유로를 내면 IP 위치정보를 사용자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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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입성 예고 (내일, 이지혜 리포터, 2009-04-20 오전 11:47:51)
법원 다운로드사이트 운영자 가혹처벌에 시민분노
 
스톡홀름 법원이 세계 최대 P2P 다운로드 사이트 중 하나인 ‘파이러트베이’ 운영자에 대해 무거운 형을 선고하면서 스웨덴 젊은층 사이에서 인터넷 탄압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이를 기회로 스웨덴 독립정당인 ‘피라트파르티에트’(해적당)가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현재 21%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해적당은 오는 6월 7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점치고 있다고 프랑스 ‘르몽드’가 주말 보도했다.
 
스톡홀름 법원은 저작권 침해 공모로 ‘파이러트베이’ 운영자 4명에게 금고 1년에 300만유로(약 52억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이에 2006년 창설된 스웨덴 독립정당 ‘해적당’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며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다가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하는 크리스티안 엥스트롬(49) 해적당 당수는 “인터넷상의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현실에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해적당에 투표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엥스트롬 당수는 “파일을 교환했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스웨덴 국민, 특히 젊은이들은 이제 유럽의회 선거에 표를 행사할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이번 판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정치인들에게 분명히 보여달라”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로 실제 해적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판결 5시간만에 신규 가입당원이 1800명에 달했을 정도다. 현재 해적당의 당원 수는 1만6500명으로 녹색당(MP)과 좌파(VP) 보다 많다. 또 지난해 12월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웨덴인의 21%가 해적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엥스트롬 당수는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리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확신한다”며 “유럽의회에서 인터넷상 자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해적당’은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며 유럽 인권조약에 명시돼 있다”며 “개방된 사회에서 허가 없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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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불법파일 천국' 오명 벗나 (전자신문, 김유경기자, 2009-04-21)
 
유럽연합(EU)이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가운데 세계 최대 ‘비트토렌트’ 방식 파일 공유 사이트 중 하나인 스웨덴의 파이러트베이(Pirate Bay) 운영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파이러트베이에 대한 유죄 판결은 그동안 논란이 적지 않았던 비트토렌트 파일 다운로드에 대한 유죄 판결인데다 불법 파일 공유의 천국으로 인식돼온 스웨덴에서 법원이 공짜 콘텐츠 다운로드가 불법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스웨덴 법정이 스웨덴의 최대 파일 공유 사이트인 파이러트베이 운영자 4명에 대해 저작권 침해 혐의로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법원은 또 워너브러더스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EMI·컬럼비아영화사 등 파이러트베이로 인해 피해를 본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에 총 360만달러(48억4300만원)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비트토렌트 방식 파일 다운로드란 분산된 서버에 저장된 대용량 파일을 동시에 내려받는 것으로, 파일 전송 속도를 단축시켜준다. 파이러트베이는 비트토렌트 파일 형태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영화·게임·음악·TV프로그램의 목록과 위치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P2P 마니아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아왔다. 파이러트베이에 따르면 사이트 이용자는 2200만명에 달한다.
 
지난 2004년 이후 파이러트베이와 유사한 ‘슈퍼노바’ 등 기존 비트토렌트 방식 파일 공유 사이트들의 운영이 지지부지해진 반면 파이러트베이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단체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운영을 지속해왔다. 지난해 운영진이 구속될 당시 이들은 “파이러트베이는 비트토런트 파일에 대한 목록을 제시할 뿐 이후 이용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콘텐츠 업계는 일제히 환영했지만 냅스터 등 유명 사이트들이 폐쇄된 이후 또다른 온라인 콘텐츠 불법 공유 사이트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만큼 저작권 침해를 뿌리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에릭 가랜드 빅캠페인 대표는 “진짜 문제는 일반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공짜로 콘텐츠를 얻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점”이라며 “법적 제제가 가해지더라도 새로운 사이트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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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에 당당히 발 들여놓는 스웨덴 ‘해적당’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2009-06-08)
 
각국에서 선전한 진보 성향의 정당도 많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인터넷 지적재산권(copyright)을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해적당(The Pirate Party)’이 초기 개표 결과 7.1%를 득표, 758개 의석 가운데 18석이 할당된 스웨덴 몫 가운데 1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눈길을 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AP통신은 이 정당의 예상 득표율을 7.4%로 소개했다.
 
해적당은 지적재산권을 무력화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를 표방하는 한편, 특허 시스템을 파기하고 인터넷 환경의 감시를 줄이는 것을 정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당의 후보 1번으로 유럽의회 입성이 확실시되는 크리스티앙 엥그스트롬은 “정말 환상적”이라며 개표 결과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개인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터넷에서 새로운 정보를 올바로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한 가지 이슈에 대한 태도 만으로 뭉친 이 모호했던 정파는 지난 4월 세계 최대의 파일 무료공유 사이트인 ‘파이어러트 베이’가 고발한 4명의 남성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가파르게 지지율이 상승했다. 창당한 2006년 스웨덴 총선에서 1%도 넘지 못했는데 3년 만에 6%포인트 안팎의 상승을 기록한 것이다. 인터넷 ‘해적질’을 옹호하는 이들은 현재 이 재판의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엥그스트롬은 젊은 유권자들의 호응이 이같은 당의 도약을 가져왔다고 평가한다.그는 “우리 정당은 30세 이하 유권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거대 정당들이 이들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동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개인의 순수성과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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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해적당, 청년층 지지로 유럽의회 의석 확보 (IDG, 2009.06.09 08:53 Mikael Ricknäs)
 
온라인 상의 시민권을 주장하는 스웨덴의 해적당(Pirate Party)이 지난 선거에서 7.1%의 표를 얻음으로써 유럽의회에서 최소한 1석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이런 성공에는 젊은 층의 투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스웨덴 방송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21세 이하의 투표자 중 24%가 해적당을 지지했다.
 
해적당의 총재 리카드 팔크빈지는 이번 선거의 결과는 정치 지도자들과 정당 전략가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지금부터 유럽 내에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팔크빈지는 구세대가 젊은 세대의 생활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적당은 저작권법의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허 시스템을 없애고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해적당은 저작권법의 개정이 “충분히 가치있는 목표일뿐 아니라 유럽의 기본 원칙 위에서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스웨덴에서 해적당의 창당을 이끈 정서는 유럽 전체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해적당의 주요 이슈는 역시 유럽연합의 통신법과 위조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유럽연합과 일본, 미국 등 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지적재산권 강화 조처다.
 
한편 해적당은 유럽연합의 조직을 개편하는 프로젝트가 빨리 진행되면, 유럽의회에서 추가 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유럽연합의 27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승인한 리스본 조약은 유럽의회에서 스웨덴의 의석을 18석에서 20석으로 늘릴 계획이며, 이는 해적당의 추가 의석 확보로 이어진다. 또한 해적당은 현재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내년에 선거가 열리는 스웨덴 의회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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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당, 유럽의회에 진출하다 (casaubon 블로그, 2009/06/16, 10:59 AM)
Après les élections européennes
Emergence du pouvoir pirate
vendredi 12 juin 2009, par Philippe Rivière
 
스웨덴의 젊은 정당, 해적당(Piratpartiet)이 2009년 6월 7일 유럽의회선거에서 7.1%를 득표하여 원내 진출을 하였다. 스트라스부르의 의석 두 개를 확보한 것이다. 하나는 IT 회사 창립자인 49세의 엥스트룀(Lars Christian Engström)이고, 다른 하나는 룬트(Lund) 대학 경제학과 학생인 21세의 안데르스도터(Amelia Andersdotter)이다. 대단히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번 선거로, 엥스트룀은 의원 의석이고, 안데르스도터는 옵저버 의석[1]을 갖게 되었다.
 
일단 이 새로운 정당에 대해 심각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립한지 단 3년만에 해적당은 5만 명의 당원을 모집하여, 스웨덴 정당 중에 3위의 정당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중도당(Moderata samlingspartiet) 바로 다음이 이 해적당이다.[2] (당원가입이 무료라는 지적도 있다.) 해적당 강령은 파일공유의 합법화에 기반한다. 이 때문에 18세부터 30세 사이의 남성들이 2009년 해적당에 대거 가입하였다. "The Pirate Bay"라는 한 스웨덴 웹사이트가 "토렌트"에 특화된 검색엔진을 제공한 것 또한 큰 입당동기로 작용하였다. 토렌트는 영화나 음악, 소프트웨어 등의 P2P 다운로드를 허용해준다.[3]
 
이 사이트 운영자들은 1년 징역에 3천만 크로네(280만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지만, 이들은 동 검색엔진이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을 주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글 검색이 가리키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다. 구글의 경우 괄목한 성장을 거둔 비디오 사이트 YouTube(구글의 자회사다)가 "해적판"의 상당한 카탈로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저작권 존중 표시를 해 준다. 그러나 "Pirate Bay"의 경우는 그런 표시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표현법의 차이인 것이다. 이때문에 헐리우드 제작사 변호사들의 편지를 부추겼다. 게다가 이 사이트에는 해적기가 나부끼고 있다.
 
 Un COPYRIGHT vous protège des PIRATES...
(Publicité pour la firme Dormelle & Van Mater, gérants, Columbia Copyright & Patent Co. Inc., Washington D.C., date inconnue — Ioan Samelli.) 
   
Pirate Bay에 대한 선고와 파일공유 제거 시도는 스웨덴 젊은이들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뒤흔들었다. 스웨덴 가구의 80% 가량이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고, 이는 핀란드와 함께 유럽 최고 수준이다.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P2P 다운로드[4]는 오디오 카셋트나 디스크 시절때와 마찬가지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문화산업계"는 이를 안좋게 보고 있다. 문화도 소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경우, 파일공유에 있어서 저작자에게 만족할만한 해결책을 제공하진 못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지적재산권(지식재산권)과 디지탈 지재권에 대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산업시대를 네트워크 시대로 이주시키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기술에 대해 식견이 있는 정부당국 책임자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엘리트들 또한 보통은 최신 추세에 대해 둔감하다[5]. 프랑스 문화부장관 알바넬(Christine Albanel)이 머뭇거리면서 발표하는 것만해도 알 만하다.
 
그렇다고 한 관점을 지지하는 정당까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특정 주제를 정책화시키는 정당까지 등장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해적당만큼이나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며 정책 반영을 시키려는 정당은 환경관련 정당들 정도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의석을 얻기에는 수 십년이 걸려야 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정당이나 대마초 합법화를 위한 모임도 의석까지 얻진 못하였다. 사냥을 위한 모임은 정책안에 대한 저항 표시를 하는 정도다.
 
Artistes et mouchards Retour à la table des matières
기존 정당들은 모두 "정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그리고 정보혁명에 대해서만 흥미를 갖고 있다. 지재권에 대해 좌파 정당들은 서로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정당 정책 대부분은 지재권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디지탈 사회"에 대한 보고서들 또한 잘못봐도 단단히 잘못보고 있는 형편이다. 사회관계가 뒤흔들릴 수 있는 현상을 갖고 단순히 "사업기회가 늘어났다"고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6]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또한 다수의 예술가들이 모르고 있으며, 오히려 대중에 대한 권리전쟁의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니 정책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문화를 되살리려는 제안이 많이 나왔다. 소비자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의미를 갖고 말이다. [7]
 
프랑스에서 인터넷과 저작법에 대한 논쟁(« Hadopi ou la déconnexion(아도피 법안인가, 아니면 접속해지인가) », La Valise diplomatique, 6 mai 2009)을 보면, 녹색당이나 사회당 의원들이 주로 네티즌 관련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해적당 프랑스지부가 있었다면 그들이 나서서 이용자의 인터넷 라인을 막아버리는 법을 차단시켰을 것이다. 6월 10일, 헌법재판소(Conseil constitutionnel)는 이 Hadopi 법안을 위헌판결내렸다. 무엇보다 이 법안이 익명성을 침해하며,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은 "표현과 소비의 자유를 구성"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유럽의회의 분석도 마찬가지였다. 시민은 인터넷을 통해 근본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8]
 
Ultracapitalistes et cybercommunistes Retour à la table des matières
울트라-자본주의자이냐, 사이버 공산주의자이냐. 이 질문은 좌파나 노동운동가, 생태주의자들만 던지는 질문이었다. 우파는 이론상의 "리버럴"에 대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개인용 컴퓨터에 "쿠키"를 설치한다거나, 제약회사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독점 기업들을 위한 지재권에 대해 법적 상업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유럽만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해적"에 대한 논의에서 자유주의자(libertarien)들의 이야기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해적당 당수인 팔크빙에(Rickard Falkvinge)는 자신을 "울트라-자본주의자"로 칭하였다.
 
스웨덴 잡지 포쿠스(Focus)에 나온 팔크빙에의 인터뷰다. "보수주의자들은 순수 자본주의를 옹호하지 않습니다. 사민주의 정도 지지하는 겁쟁이들이죠. (...) 전 자신을 울트라-자본주의자로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관여해 있는 위치때문에 드리는 얘기입니다.(...) 현재의 싸움은 시민의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제일 큰 주제이죠. 보건이나 교육, 핵, 국방 등, 이런 쓰레기같은 문제들이 40년을 끌었어요.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해적당은 디지탈 공산주의의 한 형태를 방어해줍니다. 능력껏 기여할 수 있고, 필요한대로 재화를 뿌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하죠."[9]
 
그 옆에 제일 젊은 의회의원인 안데르스도터는 유럽의회에서 받는 월급 일부를 암네스티 인터내셔널과 스웨덴 Attac*, Ordfront**, UN 여성개발기금(Unifem)에 기부한다. [10]
 
* 역주: Association pour la Taxation des Transactions pour l'Aide aux Citoyens, "시민을 돕는 거래세 도입 위원회"인 ATTAC은 국제 자본거래에 거래세(토빈세)를 도입시키자는 취지로 1998년 프랑스에서 탄생한 비정부조직이며 36개국에 지부가 있습니다.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고 있으며, 주로 좌파 정치인과 노조가 연계되어 있습니다. Attac 스웨덴지부(Attac Sverige)는 2001년에 세워졌습니다.
** 역주 : Ordfront는 1969년에 세워진 스웨덴의 대형 출판사로서, "정치적, 종교적 독립"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출판사(socialistiskt tryckeri och förlag)"를 모토로 갖고 있습니다. 매년 "오르트프론트 민주주의상(Ordfronts demokratipris)"을 수여합니다.

 
해적당을 디지탈 자유 외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구분할까?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보건 문제만은 해적당에 입장을 사이트에 표명하였다. 새로운 제약 연구에 대한 자금보조를 요구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11] 하지만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어떨까?
 
해적당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우리 당은 인터넷상의 시민권 외에 있어서,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나머지 이슈에 대해서는 다른 정당에도 투표할 수 있습니다.[12]" 좌-우를 잘 구분하지 않으니, 해적당으로서는 이 원칙을 어느 때고 적용시킬 수 있다. 해적당 사이트의 발표[13]에 따르면, 해적당의 목표는 스웨덴 의회인 릭스닥(Riksdag)의 다수당이다. 해적당의 목표가 낙관적일까? 이번 유럽의회 선거의 7%로 생각해보면 그 무게감이 상당할 수 있다... 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않을련지. 
 
Notes (원주 및 역주)
[1] 리스본 조약은 스웨덴에게 20자리의 의석을 주지만, 승인이 아직 안끝났다. 따라서 스웨덴은 18석만을 가졌고, 나머지의 "아직 못채운 의석", 두 자리를 6월 7일 투표로 정했다. 이 자리는 이미 옵저버의 지위를 갖고 있다.
[2] The Pirate Bay 사이트와 해적당의 역사에 대해서는, 리델(Anders Rydell)과 줍트베르크(Sam Subdberg)의 저작물을 참조. Piraterna, Ordfront, 2009, 아직은 스웨덴어 버전만 있다.
[3] http://thepiratebay.org/.
[4] « Peer to peer » : 중앙 서버 없이, 이용자들끼리 파일을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
[5] hackers 컨퍼런스인 DefCon의 창립자인 모스(Jeff Moss)를 행정부에 임명한 사람이 바락 오바마였다. 오바마가 그를 미국 국내보안 자문이사로 임명하였음을 지적해야겠다. « L’administration Obama fait appel à un hacker réputé pour protéger les Etats-Unis(오바마 행정부, 해커를 나라지킴이로 임명하다.) », 20minutes.fr, 8 juin 2009. http://www.20minutes.fr/article/331...
[6] Pour en finir avec la mécroissance(나쁜 성장을 멈추기 위하여)의 스티글러(Bernard Stigler)가 무엇을 기여했는지 알아보려면 다음을 참조하시오. Quelques réflexions d’Ars industrialis, Flammarion, 2009, http://arsindustrialis.org/publications.
[7] 참고 : Philippe Aigrain, Internet & Création, InLibroVeritas, 2008. 다음 주소에서 무료로 전자책 버전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http://paigrain.debatpublic.net/?pa....
[8] 유럽의회 의원들 88%가 "통신사 개혁 패키지(Paquet Télécom)"* 수정안에 찬성하였다. 참고 Guillaume Champeau, «
Bruxelles se félicite de la sacralisation de l’amendement Bono(EU, 보노 수정안을 기꺼이 신성하게 만들다) », Numerama, http://www.numerama.com/magazine/13....
* 역주 : 이 패키지는 2007년 EU의회 정보사회이사회장인 Reding이 EU의 통신사 규칙을 바꾸기 위해 내놓은 제안입니다. 27개 회원국 통신사의 통합이 그 내용입니다. 또다른 의원인 Bono가 수정을 하였고, 그 내용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인터넷 접속 해지를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P2P 사용자의 인터넷을 끊어버리려 했던 프랑스의 Hadopi법안과 이 패키지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 Reding의 입장입니다. 아직 결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9] Claes Lönegård, « Hjärnan bakom piraterna » (해적당의 브레인), Fokus, Stockholm, 5 juin 2009, http://www.fokus.se/2009/06/hjarnan....
[10] « Amelia 2.0 », Lundagård (룬트대학 학보), Lund, juin 2009, http://www.lundagard.se/2009/06/01/....
[11] « An alternative to pharmaceutical patents »을 참조, http://www.piratpartiet.se/an_alter....
[12] Vegard Andreas Larsen, « Svenske Piratpartiet ble i går stemt inn i EU-parlamentet(스웨덴의 해적당, 어제 유럽의회로 입성하였다.) » , Hardware.no, 8 juin 2009, http://www.hardware.no/artikler/pir....
[13] http://www.piratpartiet.se/internat....
 
http://blog.mondediplo.net/2009-06-1...pouvoir-pi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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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다운로드 첨단화 ‘골머리’ (동아, 이정은 기자, 2009-07-23 03:16)
 
스웨덴의 ‘해적당(Pirate Party)’은 지난달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1개 의석을 얻어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해적질’로도 불리는 인터넷에서의 영화나 음악 파일 공짜 내려받기나 비(非)상업적인 이용의 합법화를 주장해온 이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층이 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드라마 영화 음악 등 각종 파일을 불법으로 내려받는 누리꾼들이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는 각종 법안이 약화되는 반면 규제를 피해가는 불법 파일이용 방법은 점차 진화하는 추세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해온 이른바 ‘삼진 아웃제’도 주춤거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불법 사용자들의 인터넷 접속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견해를 보인다. 인터넷에서 파일을 실시간 재생하는 ‘스트리밍’이 일반화되면서 공짜 파일 이용은 더욱 일반화되는 추세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들은 울상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조사에 따르면 돈을 받고 판매하는 노래 한 곡에 20건의 불법 내려받기가 이뤄졌다. 지난해 5월 프랑스에서 한 달간 개인 간 파일공유(P2P) 사이트를 통해 이뤄진 불법적인 영화 파일 내려받기만 1370만 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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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리포트] 독 해적당 “인터넷 검열 NO” 내걸며 급성장 (한겨레,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2009-08-05 오후 08:55:48)
  
독일의 해적당이 인터넷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주장하며 연방 의회 입성을 노리고 있다. 해적당은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 때 스웨덴에서 7%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킨 정당이다. 독일의 해적당은 당시 득표율이 0.9%에 그쳤지만 성장이 매우 빠르다. 2006년 독일 해적당 창당 때 30~40명에 불과하던 당원이 약 2700명까지 불어났다. 하루 걸러 지방 당사가 새로 생겨날 정도다.
 
해적당은 음반·영화사가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이들에게 원래 부정적인 의미로 붙인 이름인 ‘해적’을 당 이름으로 삼은 정당으로, 소프트웨어·유전자기술·학술연구 결과 등에 대한 저작권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터넷 검열에도 반대한다
 
독일에서는 지난 3월 사민당 소속 하원의원 외르크 타우스가 아동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부터 인터넷상의 ‘정보의 자유’가 크게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타우스는 아동 포르노 근절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했을 뿐이라고 해명하며, 국가의 인터넷 검열에 대해 비판했다. 타우스는 이후 사민당을 탈당해 해적당에 입당했기 때문에, 해적당은 현재 독일연방 의회에 의석 한 석을 갖고 있다.
 
집권 여당인 기민련 소속의 가족부 장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아동 포르노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해적당은 이 법안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부작용이 더 크다며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검열 법안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현재 약 13만4000명이 서명했다. 
 
해적당처럼 한 가지 주제를 파고들어 독일에서 성공한 전례로 30년 전 ‘환경’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녹색당을 들 수 있다. 해적당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녹색당과 공통점이 있다. 해적당은 누구나 인터넷 포럼을 통해 강령과 정책에 대해 참여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으며, 당내 토론과 합의 등은 인터넷에 모두 문서화해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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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06:27 2009/07/1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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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해킹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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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7일 저녁 7시경에 처음 발생했다고 '777 해킹사태'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한미 주요기관 인터넷에 대한 DDoS 공격이 일회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초보적인 수법을 사용한 것 뿐인데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주기적으로 3차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도 특징적이다.
 
국정원은 그 배후가 북한이라고 추정해서 논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이 백악관에서도 이와 유사한 추정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와서 이게 어디로 흘러나가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실제로 공격당한 사이트들도 이러한 추정에 불을 보태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자신이 의심받을 짓을 왜 했을까.
 
이쯤되면 국정원이 테러방지법 개정안, 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 등을 통과시키기 위해 일부러 꾸민 자작극이라는 추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농담이다. 이런 말 했다고 충분히 명예훼손 운운할 분들이기에 덧붙였다) 실제 이번 777해킹 사태로 이익을 볼 쪽이 어디인가 살펴보면 국정원, 보안업체 등이 아닐까 싶다. 
 
우선 안철수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짧게 쓴 글이 거의 모든 언론에 보도되고, 안철수 연구소가 내놓은 보안대책이 즉각 기사화되는 것에서 드러나듯 보안업체들은 제 철 만난 듯 활동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의 주가도 상승했다잖은가.
 
국가를 보면 KISA(한국정보보호진흥원)나 방통위는 대응이 서툴렀다는 점에서 이번에 입은 위신의 추락을 만회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정보보안이 강조되면서 인터넷 감시와 통제의 흐름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된다는데 뭐라고 토를 달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로서도 이러한 위기상황에 충분히 대응가능한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관련법을 제정하고 개정하게 된다면 무소불위의 국정원을 통제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리라. 게다가 지금도 해커를 크래커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인터넷 상에서 둥지를 틀고 저항하려는 흐름들에 대해 불온의 딱지를 부치면서 옥죄려는 시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보보안에 좀더 투자하면 되는 것일까. 글쎄다. 그건 우리의 과제는 아닌 것 같은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인터넷이라는 게 현실 세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파시즘은 인터넷에서부터 도래할지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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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DDoS 공격 '숙원사업' 해결에 활용?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2009-07-08 오후 7:20:03)
"테러방지법 등 처리 위한 언론 플레이 의심"
 
국가정보원이 한미 주요기관 인터넷에 대한 DDoS 공격의 배후로 북한이나 종북세력을 지목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정원이 이번 해킹 사건을 숙원사업인 국가대테러기본법 제정안과 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처리에 이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정원은 8일 오후 국회 정보위 소속 여야 의원들에 대한 개별 브리핑이나 문건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고 복수의 여야 의원들이 밝혔다.
 
그러나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박영선 의원은 "국정원은 처음부터 배후가 북한이라고 하기에 '근거가 뭐냐'고 물었더니 '수사 중이라서 오후에 보고하겠다'고 답했다"며 "오후에 다시 전화해보니 '아직 수사 중'이라며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정보위원들에게 전달한 3페이지짜리 문서에도 "북한 또는 추종세력으로 분석된다"는 짤막한 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박영선 의원도 "테러방지법 통과가 목적이라는 의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실 사망 사건이 났을 때 사이버모욕죄를 서두른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이 문제는 원인규명이 먼저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게 검찰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인데 그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있는지도 서두르지 말고 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위기대응팀장인 공성진 의원은 다음 주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방문해 국정원의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응 방안을 긴급 점검키로 했다. 국가대테러기본법 제정안과 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등은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목돼 야당과 시민사회진영이 강하게 반발하는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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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테러'냐 '사이버북풍'이냐 (미디어오늘, 2009년 07월 09일 (목) 08:00:05 김종화 기자)
[아침신문 솎아보기] 분산서비스거부(DDoS) 2차 공격 개시
 
문제는 IT강국이라며 '구닥다리' 기법에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전자신문은 1면 기사 <"10기가 보안장비만 갖췄어도 DDoS 공격 막을 수 있었다">에서 "청와대·국방부는 물론이고 은행과 기업 등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이틀간 무력화한 분산 서비스 거부(DDoS) 공격에 이용된 '좀비 PC' 하나가 초당 쏟아낸 트래픽은 1∼20Kb 에 불과해 10Gb 급 DDoS 보안장비만 갖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8일 관계부처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DDoS 공격을 당한 청와대·국회·국방부·외교통상부 등 주요 정부부처는 DDoS 보안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아 작은 트래픽 공격도 잡아내지 못하고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반면에 DDoS 장비를 일부 갖춘 네이버 등 민간업체는 메일 검색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됐다고 전자신문은 보도했다.
 
정부는 지난 4월 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국가정보원·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2009년 정보보호 역점과제'를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하지만 DDoS 공격 등 사이버테러에 대비한 장비투자 예산은 50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 전자신문은 "9000여개에 달하는 공공기관 가운데 현재 DDoS 보안시스템은 1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러나 정부는 예산 편성과정에서 보안부문 투자가 불요불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종종 삭감해왔다"고 지적했다.
 
전자신문은 정부의 사후 무대책도 문제를 삼았다. 정보보호진흥원 관계자는 "2∼3일 전에 민간 쪽에서 DDoS 공격이 들어오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 징후를 미리 파악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끝날 공격으로 인식해 사전 대책은 전혀 수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3면 머리기사 <북 사이버 선전포고 10일만에…핵실험때처럼 예고 뒤 도발?>에서 "북한 또는 북한 추종세력이 7일 미국과 한국 주요 기관의 인터넷사이트에 사이버테러를 한 주체로 추정되면서 또다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며 "4월 5일 장거리로켓 발사와 5월 25일 2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던 북한이 이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공세의 장소를 넓혔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 <국정원 근거없이 "공격 배후 북 추정">에서 "국정원은 정보 판단의 구체적 근거는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국정원은 이번 공격과 관련된 국내 한 업체에서 친북 성향의 증거물이 발견된 점을 일부 근거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실제 일각에선 국정원이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점에서 '사이버 북풍' 등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며, "국정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테러법 통과를 목적으로 한 언론플레이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민주당 우제창 원내대변인의 말을 전했다. 9개 전국단위 종합 아침신문 가운데 DDoS관련 사설을 쓰지 않은 곳은 한겨레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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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보안전문가들, 사이버 공격 北 배후설에 '물음표'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2009-07-09 오후 6:01:18)
미 정부 관계자들은 北 의심…'우기기 경쟁'으로 끝나나
 
1983~1991년 미 법무부의 사이버범죄팀을 이끈 '시큐어IT엑스퍼트'의 마크 래쉬는 전쟁법규상 논리폭탄과 TNT 폭탄은 차이가 없다며 북한이 공격 배후일지도 모르지만 공격이 북한에 있는 컴퓨터에서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래쉬는 이번 공격이 스크립트를 활용하는 평균적인 '스크립트 키티'로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면서, 그렇지만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정도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한 '코어 시큐리티 테크놀로지'의 톰 켈러만은 경기침체기에 해고된 IT 전문가 등을 언급하며 돈을 받고 컴퓨터 기술을 과시할 '용병'이 많이 있다며 이번 공격이 경제적 동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격자의 인터넷 주소가 북한이 아닌 미국의 IP라고 분석한 국내 전문가도 있다. 보안전문업체 '쉬프트웍스'의 홍민표 대표와 이대로 연구원은 9일 14시간 가량 직접 분석한 악성코드의 유포지가 미국 IP(75.151.XXX.XXX)라고 밝혔다고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했다. 홍 대표는 "악성코드가 유포되는 흐름을 따라 들어갔더니 영문 윈도 서버 2000이 깔려있는 미국 인터넷 주소의 가상 서버였다"고 말했다.
 
북한발 공격으로 추정된다는 국정원의 추정에 대해 홍 대표는 "북한의 경우 외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주로 중국 IP를 사용한다"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런 대규모 공격을 할 땐 IP를 세탁하기 때문에 북한 IP인지 알아채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국정원이나 미 정부 당국에서 북한 IP라는 근거자료를 내놓지 않는 것도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신의 경우는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의 관리 3명이 사이버 공격을 한 인터넷 주소가 북한으로 추적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들은 하지만 이것이 꼭 이번 공격에 북한 정권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보안업체 '시만텍'의 딘 터너 세계정보네트워크 국장은 이 공격을 감행한 단체를 특정 짓는 것을 경계하며 "우리는 배후가 누구인지 모르며 공격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없을지 모른다"고 통신에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그 공격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공격에 사용된 컴퓨터가 어디에 있는지 밝혀낼 수 있겠지만 그런 정보가 우리에게 공격을 감행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지는 못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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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목받는 테러방지법·사이버위기관리법 (경향, 장관순기자, 2009-07-09 18:16:39)
ㆍ국정원 권한 강화대표적 MB악법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한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안은 사이버 공격을 사전 탐지·차단하고 위기 발생시 신속 대응키 위한 국가 차원의 종합 대응체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국정원장은 휘하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설치하고, 국가사이버위기관리 종합계획 및 기본 지침을 수립하게 된다. 또 정부는 필요시 국정원장이 직접 사고 조사를 할 수 있게 했다.
 
공 의원은 일반적인 테러 방지를 다룬 국가대테러활동에 관한 기본법안도 지난해 동시에 대표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국정원장 소속으로 국가대테러센터를 설치하며, 이 센터가 테러용의자의 출입국·금융거래·통신 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두 법안은 모두 관련 수사권한을 부여하는 등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토록 하고 있어 국정원의 권력기관화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따른 민간사찰, 과잉수사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행 법체계로도 대테러 기능 수행이 충분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날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안이 시행되면 국정원장을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 현상이 일어나고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해서도 “국정원장이 금융거래 정보 내역을 영장 없이 볼 수 있는 등 문제가 있어 법무부도 반대의견을 낸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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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사이버 공격]“‘디도스’는 지극히 초보적인 공격…안이한 태도가 피해 키웠다” (한겨레, 김재섭 기자, 2009-07-09 오후 07:55:46)
접속 폭주 언제든 발생…실제 미 정부는 피해 적어
안철수 교수 “대책없이 있다가 본보기로 당한것”

 
사흘째 이어진 미확인 사이버 공격에 주요 국가기관과 금융·언론·포털·보안업체 누리집(홈페이지)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데는,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접속 폭주 상황에 대비한 대응체제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특정 사이트에 몰래 침투해 자료를 빼내거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해킹과 달리, 과도한 트래픽을 유도해 접속을 방해하는 디도스 공격은 지극히 초보적인 형태의 사이버 공격이다.
 
9일 인터넷 보안업체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7~9일 사이에 일어난 디도스 공격은 겉으로만 보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실력’을 뽐내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기관과 금융권 등의 근무시간이 끝난 오후 6시 이후의 밤 시간대를 공격 시점으로 잡아 결과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했고, 대문에 불과한 누리집을 대상으로 접속 요청을 폭주시켜 접속을 지연시키는 디도스 공격만 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나쁜 해커’가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인터넷 통신망을 겨냥했거나 중요 자료가 담긴 컴퓨터(서버) 해킹을 함께 시도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착한 해커’의 소행으로 보는 근거이다.
 
보안 전문가들은 이번 공격으로 발생한 피해 역시 공격의 강도가 아니라 누리집 운영자의 안이한 태도 탓이 크다고 본다. 누리집 접속 폭주는 디도스 공격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누리집 운영자는 접속 폭주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의 대응 역시 적절하지 못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도 이날 블로그를 통해 “이번 사태는 대책 없이 있다가 결국 본보기로 당한 것”이라며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디도스 공격 대상에 미국 정부기관과 기업의 누리집도 포함돼 있었으나 우리나라 정부기관과 기업들에 비해 피해는 크지 않았다. 상황 발생 즉시 한국 쪽의 접속 요청을 과감하게 차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누리집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접속이 안 됐을 뿐 장애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국내 은행들과 네이버, 안철수연구소 등의 누리집도 공격 초기에는 장애가 발생했으나 대부분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면서 곧 정상화됐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뱅킹 이용자들은 이번 디도스 공격에 대한 각 은행의 대응 모습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번 디도스 공격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로 그 은행의 평소 인터넷 보안 상태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디도스 공격을 잘 활용하면 ‘사이버세상의 민방위훈련’ 효과를 살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별로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예상해, 공격 강도에 따른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상황에 따른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
 
보안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격 대상이 된 누리집 운영자들은 누리집 접속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접속 경로(포트)를 바꾸는 과정에서 해커에게 틈을 내보이지 않았는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디도스 공격을 막기 위해 이전에 설정해놓은 접속 경로를 바꾸거나 프로그램을 손보는 과정에서 해커에게 침투 길을 열어주는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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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05:59 2009/07/1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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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저자 팀 하포드 인터뷰 (조선, 0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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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시간여유가 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헌책방에서 사다놓은 팀 하포드의 『경제학 콘서트』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아래 조선일보의 인터뷰 글을 읽고 읽을 맘이 싹 가셨다. 글을 쉽고 재미있게 쓴다는 건 참 좋은 것이긴 한데, 그 기저에 놓인 관점이 후진 것이어선 곤란하다. 
 
그래도 일단 사놓은 것이니 읽어보긴 해야겠네. 나중에... 물론 『경제학 콘서트2』는 당연히 구매하지 않을 거다. 
아래 글은 조선일보 기사에서 발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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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도 무릎친 이 남자 (조선, 런던=김홍수 특파원, 유하룡 기자, 2009.04.25 09:43)
'경제학 콘서트' 저자 팀 하포드 인터뷰
빈둥대는 직장 상사, 왜 당신보다 연봉 많을까
"당신도 앞으로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그 목적"

  
"사실 경제학자들은 미래를 예견하는데 서툽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미래에 대한 예견을 내놓지만, 나는 이런 경제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위기에 앞서 몇몇 경제학자들은 주택시장의 거품, 세계 경제의 불균형, 금융시스템의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적인 문제점들이 결국 총체적으로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큰 그림'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 같은 게 대표적으로 게임이론을 적용한 정책인데, 경매 시스템 설계를 정교하게 잘해야 합니다. 대학생이나 학자를 모의 경매 참가자로 참여시켜 미리 실험을 해 본다거나, 많은 변수를 적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든가 해서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가급적 많은 경쟁자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경쟁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그는 거시경제학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거시경제학이 문제를 전망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심지어 올바른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규제는 (금융회사의) 투명성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어떤 문제가 초래되는지는 우리가 이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AIG 사태가 좋은 사례지요. AIG 문제에 미국 정부가 개입한 후 미국의 모든 정치 시스템이 AIG 사태와 관련되어 버렸습니다. 민간 기업에 정부나 정치가들이 갑자기 개입하게 되면 양자 간에 공평한 권리의 배분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AIG의 거액 보너스 파문으로 미국 정부가 50억달러 이상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 임직원의 보너스에 90%까지 세금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계약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기를 자초한 장본인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분노한다는 사실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벌금형 세금은 이런 계약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정부가 개입하는 해법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비합리적인 보너스를 수령한 임원들에게 그런 고액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보너스를 포기하고 해고를 면하거나, 아니면 보너스를 받는 대신 해고당하거나 양자택일(兩者擇一)을 요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 많은 논문을 다 읽는가요?
"모두 다 읽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 내용 요약본을 본 뒤 관심이 가는 내용만 다 읽어요. 또 한 달에 4~5개의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논리 구성을 위해 많은 텍스트를 읽고 생각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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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포드의 재미난 '경제학 카운슬링' (조선, 유하룡 기자, 2009.04.25 03:25)
 
〈Q〉 "늘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가 너무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베아트리체, 영국 런던 거주)
〈A〉 "문제는 무례함이 아니라 '기대의 불일치(a mismatch of expectations)'에서 나옵니다. 정시 도착만이 유일한 균형(equilibrium)은 아니죠. 만약 친구가 1시간쯤 늦으면 당신도 1시간쯤 늦게 오면 되고, 친구가 정시에 오면, 당신도 정시에 도착하면 됩니다. 물론, 둘 다 균형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항상 늦고 당신이 항상 정시에 도착한다면 그건 균형이 아니겠죠.
내 생각엔 당신이 지각하는 쪽으로 옮기는 게 이치에 맞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친구가 늦을 걸 알고 있지만, 친구는 당신이 정시에 도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만약 오후 8시에 친구를 만날 계획이라면 오후 7시에 보자고 말하세요."
 
〈Q〉 "동생에게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도와주세요."(팀 멀리, 캐나다 오타와 거주)
〈A〉 "선물을 받는 사람은 대개 선물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비용보다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합니다. 예컨대, 30파운드를 주고 산 스웨터는 20파운드 정도로 생각하는 식이죠. 그 결과 10파운드라는 사중손실, 즉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런 탓에 '선물은 무익(無益)하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선물을 주는 목적에는 '정서적 가치(sentimental value)'라는 부분이 있죠. 상품권이 선물로 좋지 않은 이유는 많은 경우 사용 기간이 만료되거나, 이베이(eBay)에서 할인해 팔 수 있어 감상적 가치도 없을 뿐더러 사중손실을 만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최적의 선물 전략은 이런 겁니다. '사중손실은 최소화하고, 정서적 가치는 최대화하라'. 비싸지 않은 걸 사고 거기에 편지나 사진을 함께 줘보세요. 상품권을 줄 바엔 차라리 현금을 봉투에 넣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Q〉 "만약 많은 정치인이 부패했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이익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는 게 합리적 선택 아닐까요. 경쟁하면 부패도 줄어들지 않을까요."(판지카르, 인도 거주)
〈A〉 "옳은 생각이지만, 디테일이 조금 부족하네요. 미하일 드루고프(Drugov) 옥스퍼드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부패 시스템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누군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지위를 얻으려면 먼저 그 지위를 얻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뇌물을 정치인 누군가에게 제공해야만 하죠. 그럼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겠죠.
물론 경쟁이 뇌물을 감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클릿가드(Klitgaard) 전 클레어몬트대 대학원장이 말한 유명한 부패 등식이 있습니다. '부패(corruption)=독점(monopoly)+자유재량(discretion)-책임감(accountability)'입니다. (경쟁이 늘면 독점이 주니 부패도 줄어든다는 의미) 그렇다고 경쟁이 항상 부패를 감소시킬까요? 아닙니다. 뇌물 액수는 줄어도 (경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한다면) 뇌물을 줘야 하는 대상은 늘어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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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등 제조업에 강해 경제위기 잘 견딜수 있는 구조” (조선, 런던=김홍수 특파원, 2009.04.25 03:28)
그가 보는 한국 경제, 세계 경제
 
―당신은 책에서 한국 경제의 성공을 매우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는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외환시장 불안 등 많은 약점을 노출했지요. 이런 약점을 보완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매우 좋은 질문인데, 뚜렷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원칙적인 얘기를 하자면 규제가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명심하고, 시장 상황을 항상 면밀히 관찰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경제가 한 분야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영국의 경우, 북해(北海) 석유와 금융 분야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지요. 원유(原油)는 고갈되고 있고, 금융 분야도 과거 수준으로 회복할지 의문입니다. 다행히 한국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산업 등 강점을 가진 제조업 분야가 많아 (경제위기에) 매우 내성(耐性)이 강한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모두가 보호주의(protectionism)는 공멸의 길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세계 각국은 앞다퉈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아주 나쁜 조짐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보호주의로 이득을 보는 것은 소수의 이익단체나 로비스트뿐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보호주의를 비난하는 것이 더 쉽고 개방경제나 시장 자유 원칙을 실행하기 쉽지요.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을 때에는 앞에서 말한 이념들이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호주의에 대한 견제가 쉽지 않습니다."
 
―탄소세(稅)나 혼잡 통행료 같은 수단이 환경 보호를 위한 훌륭한 경제정책 모델이라고 칭찬했지만, 북극의 빙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안은 없습니까?
"북극 얼음이 아직도 녹고 있는 이유는 아직까지 이에 대처하는 적절한 정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녹색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녹색 세금 징수액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아마도 8년 내에 세수(稅收)가 사라질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녹색 성장을 대안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녹색성장 정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지요. 이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저에게는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은 책에서 제3세계 노동착취형 공장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틴 울프(FT 수석칼럼니스트)의 견해에 동조했는데, 이런 시각은 경제학자가 사회정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베트남의 가난한 근로자가 만든 티셔츠를 사면 나쁜 놈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좋아하지 않지요. 경제학자들은 현 상황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개선책을 찾아,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정의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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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큰 정책이나 이론보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경제의 본질' 이해해야 할 때 (조선,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09.04.25 03:29)
그에게 왜 귀 기울여야 하나
 
팀 하포드(Harford)는 그의 책 '경제학 콘서트'(1,2권)에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남들이 무심코 지나가거나 오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도록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경제학적 분석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료보험이나 선거 같은 정부와 관련된 문제들의 분석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자신이 직접 방문해 경험한, 카메룬 정부의 국민을 위하지 않고 정부만을 위한 정책들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성(異性)에 대한 남녀의 선호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자신과 저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경제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 때문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하포드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가 처한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 같은 큰 정책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주변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차분히 경제의 본질을 반추해 보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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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0:13 2009/07/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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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2007)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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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데이비스가 쓴 이 책의 토대가 된 논문(창비에 실렸음)을 가지고 꽤 진지한 토론을 했던 것 같은데, 그 토론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책의 내용과 관련 서평만 발췌하여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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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 김정아 옮김. 2007. 『슬럼, 지구를 뒤덮다: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돌베개. Kike Davis. 2006. Planet of Slums. Verso.
 
○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의 많은 주제들이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근대 도시 가운데 서울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도시는 없습니다. 전쟁의 폐허만 남았던 도시가 이제 뉴욕에 버금갈 비참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거대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로 변모했으니까요.
국가와 기업이 사적 이윤을 위해 민중의 공간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부유층 문화를 확산시킬 때, 서울의 주민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자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연대해 국가와 기업의 철거 책략에 맞섰던 영웅적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서울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데이비스, 2007: 8).
 
옮긴이의 말
 
○ 데이비스가 밝히는 전지구적 도시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은행과 IMF 주도로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제3세계 구조조정이다. 20세기 후반에 구제국 금융자본 주체들은 정치적 독립을 이룩한 제3세계를 다시한번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식민지 해방 이후 집권한 탈식민 엘리트의 부패와 무능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빈민과 공공부문 중간계급을 짓밟았던 구조조정은 민간 사업자, 외국 수입업자, 마약상, 군 장성, 정치가들에게는 대박을 터뜨릴 기회였다.”
진보적 정치 세력들도 일단 집권한 후엔 중간계급 헤게모니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했다. 공공주택 사업 등 복지 정책이 실시되는 경우에도 그 열매는 대부분 중산층에게 ‘가로채기’ 당했다. 요컨대, “도시계획은 유산계급의 이익과 욕심을 강화시키는 수단이자 빈민의 주변화를 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307-08쪽)
 
○ 『슬럼, 지구를 뒤덮다』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슬럼 주민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설정함으로써 도시 빈민의 주체적 역량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관과 정부 기관의 통계를 근거로 사용하면서 빈곤에 대한 행정적 시각에 물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상 이 책은 주체적 저항의 측면을 간과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포스트모던 저항 담론과 대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저자는 비공식 노동의 확신으로부터 다중적 주체를 끌어내는 포스트 이론에 대해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패러디 형태를 띠고 있다. 유목민은 포스트모던 주체의 대명사로 쓰이지만, 돈이라는 초영토에 편입하여 세계 시민을 자처하는 제3세계 도시 엘리트가 디지털 유목민이라면, 일거리를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주 노동자도 유목민이고, 상시적인 퇴거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변두리 빈민도 유목민이다. 들뢰즈의 계열 개념도 슬럼에 적용되면 불길한 의미를 띠게 된다. 카프라의 수평화나 만델브로의 프랙탈 등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전형적인 개념들도 제3세계 슬럼에 적용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뒤틀린다. (308-310쪽)
 
○ 실제로 이 책이 말하는 파국은 언제나 조건부 파국이다. 즉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파국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바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우리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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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시의 갱년기
 
○ 증가한 인구의 95%는 개발도상국 도시 지역에 집중될 것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인구 800만 이상의 신흥 거대도시(megacity)와 2,000만 이상의 초거대도시(hypercity)가 출현한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빈곤 집중 지역이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할 것인가는 미지수다. (16-19쪽)
 
○ 도시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농촌 연속체에 걸쳐 있는 모든 지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도시화란 연속체 전체의 구조적 변형인 동시에 각각의 지점들 사이의 상호작용 강화를 뜻한다. 시골은 엄청난 규모의 이주민을 양산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도시화된다. 도시가 농촌으로 파고드는 상황이다. (22-23쪽)
 
○ 도시경제의 규모와 도시인구의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서로 무관해진다. 산업화 없는 도시화가 생산 증대와 고용 증대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린 실리콘 자본주의의 냉혹한 추세를 보여준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그리고 상당수 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는 성장 없는 도시화는, 테크놀로지 선진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전지구적 정치위기―1970년대 후반의 전세계적 채무위기와 뒤이은 1980년대 IMF 주도의 제3세계 경제 구조조정―의 유산이다. (27-28쪽)
 
○ 미래의 도시는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 등으로 지어진 도시다. 21세기 도시 세계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싸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 도시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살고 있는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생활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회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33쪽)
 
2장 슬럼이 대세다
 
○ 슬럼의 유형 (46쪽)
A. 도심
 1) 공식 슬럼: 셋집(용도변경 주택, 빈민용 셋집), 공공주택, 합숙소, 간이숙소 등
 2) 비공식 슬럼: 스쿼터(허가, 무허가), 노숙자
B. 변두리
 1) 공식 슬럼: 사적 임대, 공공주택
 2) 비공식 슬럼: 해적형 분양지(주인 거주, 임대), 스쿼팅(허가(택지개발 시행), 무허가), 난민 수용시설
  
○ 오래된 건물을 주택으로 전용하는 도시의 가장 특이한 예는 카이로의 ‘사자들의 도시’(City-of-the-Dead): 무덤을 창조적으로 개량하여 일상의 문제를 해결. 공동묘지의 비석과 묘석을 책상이나 침대머리, 탁자나 선반으로 사용했고, 묘비들 사이에 줄을 매어 빨래를 말렸다. 유골함 뚜껑을 뜯어내고 유골함을 옷과 냄비와 컬러 TV를 수납하는 편리한 붙박이 선반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3세계에서 더 흔한 것은 용도변경 주택이 아니라 셋집이나 영구 임대주택이다. 인도 뭄바이의 경우, 15㎡의 방에 6인 가족이 보통 거주하며, 변소 1개를 7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한다. (50-51쪽)
 
‘간이숙소’는 미국에서는 한물간 주거 형태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대도시에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전통적인 무단 점유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53쪽)
 
○ 전 세계 도시 빈민의 대다수가 사는 곳은 이제 도심이 아니다. 1970년부터 전 세계 도시인구 증가분을 흡수해온 곳은 제3세계 도시변두리에 위치한 슬럼 마을이다. 스프롤현상은 북아메리카의 독특한 것이 아니다. (54쪽)
 
○ 전 세계적으로 임대제도는 슬럼 생활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으로 분열적인 사회관계 그 자체다. 임대제도는 도시 빈민이 자신의 (공식ㆍ비공식)지분을 화폐화하는 주된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의 수단일 때가 많다. (61쪽)
 
세입자들은 흔히 슬럼 주민 가운데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힘없는 계층이다. 재개발과 강제퇴거에서도 세입자들은 보상이나 재정착의 대상에서 제외될 때가 많다. 오늘날의 슬럼 세입자들은 단체를 조직하거나 집세 파업에 돌입할 능력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소규모 임대와 轉貸는 빈민의 주요 축재 전략이며, 집이 있는 사람들은 좀더 가난한 사람들의 착취자로 신속하게 변모한다. (63쪽)
 
“한 사람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그가 사는 주택의 위상에 따라 형성되는 것 같다.
거주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집단적 대응력이 약화된다. 토지획득 방식, 마을 형성의 ‘단계’, 설비에 대한 주민들 사이의 우선권, 마을지휘구조, 사회적 계층, 그리고 무엇보다 보유관계를 기반으로 정착지가 분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택보유 형태의 차이로 인해 선거구의 정치적 성향은 더욱 다변화된다.” (Peter Ward, 1990: 197)
 
3장 국가의 배신
 
○ 급속한 도시 성장을 가로막는 제도적 방해물을 제거했던 것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경우에는 식민지 내란 진압과 국가 독립의 역설적 결합이었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에는 독재정권 및 저속성장 체제의 전복이었다. (78쪽)
 
○ 중앙정부가 주택 공급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최소화되는 상황은 최근 들어 IMF와 세계은행이 세워놓은 신자유주의 경제강령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채무국에 부과된 SAP는 모든 종류의 정부 주도 프로그램을 축소하도록 요구했고, 주택시장 민영화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제3세계 사회국가는 SAP가 복지국가 정책에 조종을 울리기 전에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87쪽)
 
○ 방콕의 경우에도 빈민들의 압도적 다수는 새로 지은 고층건물 단지보다 과거의 슬럼을 선호한다.
 
슬럼 퇴거를 계획하는 대행업자들은 값싼 고층 아파트를 주민들을 위한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슬럼 주민들은 슬럼에서 퇴거당해 이러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 재생산 수단이 축소되고 생계형 생산의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이러한 아파트 위치로 인하여 일자리 확보는 더 어려워진다. 슬럼 주민들이 슬럼을 떠나지 않고 강제퇴거에 맞서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이들에게 슬럼이란, 환경은 낙후되어가지만 생산은 아직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도시계획자에게 슬럼이란, 그저 없애야 할 도시의 해악을 불과하다. (90쪽)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좌파 연합이 권력을 획득한 콜카타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인도공산당(CPI(M))이 오랫동안 슬럼 주민 ‘해방’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당은 중산층과 상류층의 표밭을 일구는 데 혈안이 되었고, 빈민에게 새집을 준다는 애초의 약속은 완전히 잊었다. “빈민의 요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립서비스’는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예산의 절대다수의 콜카타의 중소득층과 고소득층 주민의 욕구를 채우는 데 사용된다. 콜카타 메트로폴리스개발청의 투자액 가운데 부스티 개선에 쓰이는 자금은 10%에 불과하다.” 베트남의 경우에도 혁명적 주택 정책은 국가 엘리트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조작되고, 실제 빈민에게까지 흘러들어가는 자금은 거의 없다. (92쪽)
 
○ 아프리카, 남아시아,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에서 도시 부유층에 대한 지방정부의 과소 과세는 지나친 정도를 넘어서 범죄적이다. 또 재정이 어려운 도시들은 퇴행적 판매세와 공공시설 이용료 징수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세부담이 부자 쪽에서 빈자 쪽으로 일방적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심화된다.
 
책임의 일부는 IMF에 있다. 제3세계 재정의 감시자를 자처하는 IMF는 관여하는 국가마다 공공시설에 대해 이용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퇴행적 주장을 펴는 반면에, 재산이나 과시적 소비, 부동산에 과세하는 것과 같은 반대급부적 조세 정책을 제안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세계은행은 제3세계 여러 도시에서 ‘좋은 통치’(good governance)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로 진보적 조세를 지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통치’의 가능성을 조성하기보다는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할 수 있다.
 
제3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수의 빈민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도시 민주주의는 상례라기보다는 예외에 가깝고, 아프리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슬럼 빈민이 투표권을 갖고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투표에 의해서 지출이나 세원의 의미 있는 재분배가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도시의 의사결정권을 대중 참정권에서 분리하기 위한 다양한 구조적 전략이 동원되어 왔다. 메트로폴리스의 정치적 파편화, 지방당국 및 중앙정부에 의한 예산관리, 각종 독립 기관 설립 등이 이러한 전략에 해당한다. 도시개발을 전담하는 세력은 지방 권력을 무력화시키게 마련이다. (94-95쪽)
  
4장 자조라는 거짓말
 
○ 부드러운 제국주의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은행, 유엔개발계획(UNDP), 기타 원조 기구들은 정부라는 다리 없이 직접 지역 단위 및 주민 단위 NGO와 연결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가의 중재 역할이 약화되면서, 대형 국제기구들은 대형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수천 개의 슬럼 및 도시 빈민 집단에서 민중 기반을 확보했다. 세계은행, 영국국제개발부(UK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포드재단,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 등 국제적인 대부ㆍ기부업체는 대형 NGO를 중개자로 삼고, 대형 NGO는 지역 NGO나 토착민 수혜자에게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것. 이제는 이것이 도시개발 원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이러한 조직 및 자금 확보의 3단체제는 흔히 ‘권한부여’(empowerment), ‘시너지’, ‘참여통치’의 결정판으로 간주된다. (103쪽)
 
울펀슨이 이끄는 세계은행은 제3세계 정부로 하여금 NGO들과 각종 옹호 단체들을 ‘빈곤축소전략보고서’(PRSP, Poverty Reduction Strategy Papers) 작성에 합류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는 원조가 실제로 표적집단에게 돌아갔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울펀슨은 반세계화 운동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1994년 마드리드 정상회담의 적들을 만찬 손님으로 만드는 데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PRSP 프로세스는 ‘시민사회’의 힘을 세력화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동일하고 외부에 대하여 배타적인 ‘철의 삼각’(프랑스 등 주요국 내각에 기반한 초국적 전문가들, 다자간ㆍ양자간 개발대행업체들, 국제 NGO들)을 공고히 했을 뿐이다”(Abrahamsen, 2004: 185).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로 재직할 때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가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차라리 ‘부드러운 제국주의’라고 해야 마땅하다. (104쪽) 
  
민주화와 자조, 사회자본, 시민사회 세력화 등의 온갖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NGO계의 실질적 권력관계는 전통적인 후견주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제3세계 NGO는 지역사회 리더십을 전용하고 이전까지 좌파가 차지했던 사회 공간을 패권화하는 데 있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이는 1960년대에 지역사회 조직들이 ‘빈곤과의 전쟁’으로 혜택을 입었던 상황과 흡사하다. 세계사회포럼(WSF) 창설에서 핵심을 담당했던 전투적 NGO를 비롯한 훌륭한 NGO들이 예외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NGO와 ‘시민사회 혁명’이 도시 사회운동 전반을 관료화ㆍ탈급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일부 세계은행 연구진도 인정한 바 있다. (105쪽)
 
25년 이상 자카르타 빈민을 연구해온 레아 엘리넥(Lea Jellinek): “마을에는 규모는 매우 작지만 유명한 은행이 있었다. 이 은행은 마을 여성 주민들의 필요와 역량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풀뿌리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프랑켄슈타인처럼 거대한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즉 애초에 은행의 기반을 형성했던 저소득층에 대한 신용 제공 및 기타 지원을 축소하면서, 거대하고 복잡한 상명하달식ㆍ기술지향적 관료주의 체제로 변질된 것이다.”
 
중동의 관점을 취하는 바야트의 지적에 따르면, “NGO가 독립적ㆍ민주적 기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실제보다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NGO가 전문화됨에 따라, 풀뿌리 운동으로서의 동원력은 약화되는 한편, 새로운 형태의 후견주의가 정착되는 양상이 드러났다.” 프레더릭 토머스는 콜카타에 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더구나 NGO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은퇴한 공무원과 사업가가 NGO 고위층을 꿰찼고, 고학력 실업자 중에서 선택된 사회사업가나 슬럼에 가본 적도 없는 주부 등이 NGO 하위층을 채우고 있다.”
 
뭄바이의 주택문제 활동가 P.K. Das는 슬럼 NGO들에 대해 좀더 가혹한 비판을 내놓는다(Das, 179-80). “NGO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주민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고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이상을 박탈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계급투쟁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NGO가 채택ㆍ선전하는 실천 방안은 억압받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인도주의적 감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외부의 회의를 구걸하는 것이다. 사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이들 대행업체 및 조직들이 체계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선동적인 방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조직들은 주민들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의 정치적 해악들을 경계하게 하는 대신, 지역사회의 문제들에 매몰되어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105-06쪽)
P.K. Das. 1995. “Manifesto of a Housing Activist.” in Sujata Patel and Alice Thorner (eds.). Bombay: Mosaic of. Modern Culture. Bombay: Oxford University Press.
 
○ 제3세계 전역에서 가난한 스쿼터가 무상 토지를 개척하던 시대는 끝났다. ‘희망의 슬럼’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시 라티푼디아와 정실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경계 지역에서 비매 정착지(non-market settlement)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 내지 차단되면서 가난한 도시들의 안정성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제3세계 슬럼에서 발생한 가장 극적인 결과는 세입자 비율의 증가와 인구밀도의 폭등이다. (124쪽)
 
인구변화가 역동적이고 일자리가 부족한 메트로폴리스에서 주택과 차세대 도시 부지의 상품화 현상은 예외 없이 집세 상승과 인구과밀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세계은행이 제3세계 도시 주택위기의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시장의 힘이란, 사실은 예로부터 이러한 위기를 초래했던 원인일 뿐이다. 그러나 시장이 저 혼자 위기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날까지 국가가 능력을 발휘해온 분야는 대규모 주택 건설보다는 대규모 주택 파괴 쪽이었다.”(126-27쪽)
 
5장 불도저 도시계획
 
○ 도시 내 차별분리란 이미 만들어진 현실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진행되는 계층 간 전쟁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전쟁에서 국가는 ‘진보’, ‘미화’, 나아가 ‘사회정의’라는 미명하에 개입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땅 주인ㆍ외국인 투자자ㆍ엘리트 주택소유자ㆍ중간계급 통근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경계를 재편한다. 도시재개발은 사적인 이윤과 사회적 통제를 동시에 극대화하려 한다. (132쪽)
 
○ 제3세계 도시 빈민들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컨퍼런스, 국빈 방문, 스포츠 행사. 미녀 선발대회, 페스티벌―를 두려워한다. 이로 인해 당국이 주도하는 도시 대청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계가 자기네 나라의 슬럼을 보는 것을 싫어하고, 슬럼 주민들도 정부가 자기들을 ‘쓰레기’ 내지 ‘그림자’ 취급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근대 올림픽은 특히나 어두운,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나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숙자들과 슬럼주민들을 베를린 지역에서 무자비하게 쓸어버렸다. 이후 멕시코시티, 아테네, 바르셀로나 등의 올림픽에서도 도시재개발 및 강제퇴거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141-42쪽)
 
○ 메트로폴리스 공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부유층과 빈민층의 교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요새화된 폐쇄형 테마파크 주택단지와 가장자리도시는 자국의 사회적 풍경에서 이탈하여, 디지털 세계화의 하늘을 떠다니는 사이버캘리포니아로 통합된다. 시브룩에 따르면, 이러한 “도금된 새장”에 살고 있는 제3세계 도시 부르주아 계급은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 ‘돈’이라는 초영토(superterrestrial)에 속하는 유목민이 되었다.” 한편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은 진흙탕 같은 슬럼의 생태 속에서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다. (158-59쪽)
 
6장 슬럼의 생태학
 
○ 도시 빈민의 가장 큰 걱정은 지진이나 홍수보다 훨씬 흔한 위험인 화재다. 사실상 세계 제일의 화재 발생 지역은 슬럼이다. 가옥이 불에 타기 쉬운 자재로 되어 있고, 인구가 엄청나게 밀집되어 있으며, 난방과 취사를 위해 옥외 화력에 의존해야 하는 슬럼은 자연 발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곳이기 때문이다.
슬럼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닐 때가 많다. 지주들이나 개발업자들은 사법처리 비용을 감당하거나 공식적인 철거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방화라는 간편한 방법을 선호한다. 마닐라는 미심쩍은 슬럼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특히 악명이 높다. (168쪽)
베르너에 따르면, 필리핀 지주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른바 “뜨거운 철거” 방식은 “들쥐나 고양이를 등유에 흠뻑 적신 후에 불을 붙여 말썽 많은 슬럼가에 풀어놓는 것이다. 개는 너무 빨리 죽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 불쌍한 짐승들은 죽기 전까지 수많은 판잣집에 불길을 옮기기 때문에, 불을 끄기가 매우 어렵다”(Berner, 1997: 144).
Berner, Erhard. 1997. Defending a place in the city: localities and the struggle for urban land in Metro Manila. Quezon City : Ateneo de Manila University Press
 
○ 대부분의 제3세계 도시의 거리들은 교통 혼잡으로 마비 상태다. 도시는 스프롤현상을 보이며 성장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대중교통이나 입체교차 고속도로 등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통은 공중보건의 측면에서 재앙 그 자체다. 개도국의 도시에서는 악몽 같은 교통 혼잡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사용량이 급증한다.
자동차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조장하는 강력한 힘은 바로 불평등이다. 대중교통의 질이 낮아지면 자가운전자가 늘어나고, 자가운전자가 늘어나면 대중교통의 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172-74쪽)
 
○ 국제적인 개발대행업자들은 철로보다 도로에 투자하고 지역 교통 민영화를 부추기며, 이를 통해 파괴적인 교통 정책을 조장한다. 중국은 한때 자전거의 고향이었지만, 지금 도시계획 담당자들은 자동차에 상식에 넘어서는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제2세계 교통사고 사망자는 매년 100만명 이상이며, 그 중에 2/3가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 대중교통 승객이다. 라고스에서는 버스를 ‘단포’ 혹은 ‘몰루에’라고 부른다. 각각 ‘날아다니는 관’, ‘움직이는 시체실’이라는 뜻이다. 차들이 거북이 걸음이라고 해서 치사율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카이로 전역에서 자동차와 버스는 평균 시속 10km 미만으로 기어다니지만, 해마다 차량 1,000대당 8명의 사망자와 60명의 부상자라는 사고율을 유지하고 있다. (174-75쪽)
 
○ 전 세계적 위생위기의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위생위기의 원인은 식민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 제국은 식민지에 현대식 위생설비 및 상하수도 인프라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인종구역과 방역선을 통해 전염병이 주둔군과 백인 교외에 침입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키베라에 위치한 라이니사바 슬럼에서는 1998년 4만 명의 주민이 구덩이 변소 10개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타레 4A에서는 2만 8,000명이 공중화장실 2개를 함께 썼다. 결국 슬럼 주민들은 “날아다니는 화장실”이나 “스커드 미사일”에 의존하게 된다. “배설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까운 지붕이나 골목으로 던지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렇듯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배설물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형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패트병 음료를 입에 문 10살짜리 꼬마들은 나이로비 통근자들에게 인분 덩어리를 휘두르며 위협한다. 운전자가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인분을 열린 창문으로 던져넣겠다는 것이다.”
“1990년 델리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1,100개 슬럼에 거주하는 48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은 변기 160개와 이동식 변소차 110개가 고작이다. 화장실이 부족해 슬럼 주민들은 공원 같은 야외 공간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이로 인해 슬럼 주민들과 중간계층 주민들 사이에는 배변권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조성된다.” (182-83쪽)
 
○ 식수와 식량이 온통 하수도와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으므로, 슬럼 주민들이 아무리 철저하게 예방조치를 취해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콜카타의 경우 엄마들은 악명 높은 옥외 변소시설을 사용하게 된다. 옥외 변소는 흙 대야가 들어 있는 작은 벽돌 헛간을 말하는데, 흙으로 만든 변기를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로 인해 “부스티의 옥외 변소 주변의 똥 덩어리들은 곧장 연못과 물탱크로 흘러든다. 사람들은 다시 이 물로 몸을 씻고 옷을 빨고 설거지를 한다.” (187쪽)
나이로비에서 수도설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가구들은 상수도를 매우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정치적 인맥이 있는 기업들은 시정부의 상수도를 엄청난 가격으로 슬럼에 되판다. (188-89쪽)
 
○ 슬럼 주민의 이중고. “도시 빈민은 저개발과 산업화 사이의 접촉면이며, 도시 빈민의 질병 패턴은 저개발과 산업화를 동시에 반영한다. 도시 빈민은 저개발로 인해 전염병과 영양실조라는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되는 한편으로, 산업화에 따르게 마련인 다양한 만성적ㆍ사회적 질병에 시달린다.” (191쪽)
 
○ 채무국이 IMF와 세계은행에 자국의 경제권을 넘겨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약인 SAP는 “흔히 보건비 지출을 포함한 공공지출 삭감을 요구한다.” 가나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인해서 1975∼83년 사이에 의료 재정과 교육 재정이 80% 축소했을 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의사의 절반이 무더기로 이민을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계 곳곳에서 국제 채권자들은 의료비 삭감, 의사와 간호사의 이민, 식량 보조금 중단, 생계형 농업에서 수출용 작물 생산으로의 전환 등을 요구한다. (192쪽)
 
7장 구조조정이라는 흡혈귀: 제3세계 빨아먹기
 
○ 제3세계의 거시경제 정책이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제3세계는 가상(virtual)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포괄적ㆍ참여적 민주주의를 포기했고,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에 수반되었던 공공복지 확대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1980∼90년대에 빈곤과 불평등이 증가했던 원인을 하나만 꼽는다면, 그것은 국가의 후퇴다”(『슬럼의 도전』). SAP이 직접적인 공공부문 지출 및 소유 축소를 강제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이 책이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국가가 보조금 지급 권한을 상실하면서 국가 역량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쪽)
 
8장 잉여 인간?
 
○ 비공식 노동계급,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계급이자 역사상 유례없는 계급이다. 1980년대에 비공식 부문 고용은 공식 부문보다 2∼5배 빠르게 성장했다. 제3세계 대다수 도시에서 비공식적 생존 지상주의(survivalism)가 주요 생활양식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 (227쪽)
 
에필로그 도시의 묵시록
 
○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같은 이들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엄숙한 사변을 통해 세계화의 ‘리좀 공간’ 내에서 ‘다중’의 새로운 정치학을 타진하고 있지만, 현실을 토대 삼는 정치사회학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슬럼 주민이 구조적 방치 및 박탈에 반응하는 방식은 한 도시 안에서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전 세계 슬럼에는 획일적 주체나 일방적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양각색의 무수한 저항운동이 존재한다. 실제로, 인류 연대의 미래는 새로운 도시 빈민이 전지구적 자본주의 내 최악의 밑바닥 위치를 전투적으로 거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2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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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그늘 '슬럼' 지구를 뒤덮다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2007-07-03 11:43)
 
가슴을 옥죄는 묵시록과 같은 책이다. 도시의 팽창과 함께 악성종양처럼 커져가는 슬럼, 그 속에서 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사는 인간군상이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펼쳐진다. 슬럼은 후기자본주의가 솎아낸 잉여인간을 담는 쓰레기장이자 똥통으로 각종 질병과 분쟁, 전쟁의 무대로 철저히 유린되다 결국 폭발해버리면서 지구의 미래조차 산산조각낼 것이라는 경고메시지가 이어진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저서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에서 도시의 슬럼화는 1970년대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를 제3세계의 발전모델로 삼도록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이런 자본주의 혁명의 시녀로 제3세계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를 거대 슬럼도시의 표본으로 제시한다. 킨샤사에는 주민이 600만명이지만 자동차나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는 인구는 주민의 5%도 안되고 주민이 살아남는 방법은 "사방에 널린 채마밭, 꾀, 장사, 불법반입, 무리한 흥정, 임시변통, 절도"등이다. 평균소득은 연간 100달러 이하이며 인구 3분의2가 영양실조이고 성인 5명중 1명이 HIV바이러스 양성이다. 모부투 독재정권이 32년간 통치하면서 중간중간에 들어온 미국과 IMF, 세계은행의 지원을 가로채 자신들만의 배를 불린 결과였다.
 
도시 슬럼화의 원인으로 개발도상국들의 무리한 도시계획도 지목됐다. 올림픽 등 대규모 이벤트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그 예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에 대규모 철거가 있었으며 베이징올림픽을 준비 중인 중국 정부도 비슷한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슬럼을 개선하려는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구호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며, 정부들은 슬럼을 주류경제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잊은지 오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저자가 제시하는 슬럼의 미래는 참담하다. 제3세계 야생의 도시들, 실패한 도시들인 슬럼은 전쟁기획자들로부터 21세기 특유의 전투공간으로 낙점된다. 그래서 이 지역들은 '어둠의 힘', '악의 축', '테러분자의 은신처', '악당들을 지원하는 소굴' 등으로 낙인찍혀 밤낮없이 무장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정체모를 적들을 추적하는 지옥불이 떠도는 곳이 된다.
 
2006년에 출간된 후 많은 지지와 논란을 함께 일으켰던 책이다. 옮긴이 김정아씨는 "일부에서는 비판도 없지 않았는데 가장 큰 비판은 슬럼 주민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설정함으로써 도시 빈민의 주체적 역량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2006년 판 책머리에 "책의 속편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슬럼 기반 투쟁의 역사와 미래를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고, 한국어판 서문에 "근대 도시 가운데 서울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도시는 없다…책의 많은 주제들이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적었다. 원제 'Planet of Slums'. 3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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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서울, 이문영기자, 2007-07-06  23면)
 
슬럼. 짧게는 ‘도시의 빈민굴´, 길게는 ‘도시사회 병리현상의 하나로 빈민이 많거나 주택환경이 나쁜 지구´라 정의되는 곳. 한국에서 슬럼은 분명 정치적 현상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는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현상을 진단한 책이다. 용도변경 주택, 야영 및 노숙, 난민수용소, 무허가 토지개척, 해적형 분양지, 슬럼 지주들의 셋집 등 세계 곳곳의 슬럼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각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이 슬럼 형태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도 분석했다. 지은이는 전지구적 슬럼화 이면에 도사린,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정치’와 국경 안의 ‘국민국가 정치’의 상호공조를 폭로한다.
   
지은이의 지적은 한국 상황에 빗대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저자 또한 세계 슬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에 각별히 주목한다. “가난한 주택소유자·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거나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라는 등의 서술은 한국의 슬럼화가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예견하는 슬럼화의 앞날은 가히 ‘묵시록적 미래’라 할 만하다. 2030∼2040년이면 슬럼 인구가 20억에 육박하고, “경제적 지구화에 전지구적 공중보건 인프라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파국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슬럼, 준슬럼, 슈퍼슬럼, 이것이 도시진화의 결과”라는 도시계획전문가 패트릭 게디스의 섬뜩한 말도 아예 책 첫 장에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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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세계화에 내몰린 달동네의 세계화
(경향, 임영주 기자, 2007-07-06-15:40:01)
 
슬럼의 광범위성과 심각성을 세계 각 도시의 사례와 통계 수치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이미 하나의 문제 제기를 하는 셈이다. 책은 또 슬럼의 원인과 효과를 추적한다. 슬럼화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로 개발도상국을 구조조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빈민과 슬럼을 증가시켰다. 내몰린 빈민의 현실은 1976년부터 1992년 사이 19개 채무국에서 146건의 IMF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외부적 요인뿐 아니라 해당 국가내 탈식민 엘리트의 부패와 무능도 슬럼화를 부추겼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들이 누리던 계급적 특권과 독점적 공간을 반납할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구제금융은 자금을 확보하는 호기가 됐다. 탈세와 적은 세금 부담으로 빈민층보다 오히려 혜택을 많이 받는 ‘중간 계층의 가로채기’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대형 NGO의 과시형 프로젝트는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의 전달자 역할만 할 뿐 슬럼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비정규직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양산되는 결과로 수렴된다. 이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나 신자유주의 이론 양자 모두가 포착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3세계 농촌의 몰락, 워싱턴 정치경제 권력의 비대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의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문제들과도 연결돼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괴물, 슬럼을 둘러싼 현실이다. “후기자본주의는 이미 인간 선별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무섭게 말한다. “미래의 전투가 벌어질 지역은 전 세계의 붕괴한 도시들을 구성하는 길거리, 하수구, 고층 건물, 판자촌 등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명의 충돌’이다”라고 덧붙인다. 전지구적 슬럼화로 인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강조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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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음지, 슬럼이 우리 미래라면?
(한국, 이훈성 기자, 2007/07/06 19:19:40)
'슬럼, 지구를 뒤덮다' 심화되는 경제 구조조정으로 제3세계 도시 빈민 급속 확산
 
“슬럼, 준슬럼, 수퍼슬럼. 이것이 도시 진화의 결과”라는, 도시계획가 패트릭 게디스의 글귀로 문을 여는 이 사회과학서엔 묵시록적 정조가 짙다. 저자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도시에서 하층민의 비합법적 주거지대인 슬럼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을 산업 성장에 따른 이촌 향도에서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농촌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도시에 일자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농촌 경제가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1980, 90년대 심화된 제3세계의 채무 위기와 강요된 경제 구조조정이 슬럼 확대와 맞닿아있다는 진단이다.
 
유엔의 보수적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슬럼 인구는 10억 명 이상이다. 도시 주민 25%가 도시 면적 5%에 밀집돼 있다는 또 다른 통계는 슬럼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지역차는 있지만 슬럼 주민은 공통적으로 인구 과밀, 열악한 주거, 공공설비 부재 등의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슬럼이 개발 지역으로 편입될 때 생기는 이익은 다른 주머니로 흘러 든다. 남의 땅을 불법 점유해 슬럼을 지었던 ‘스쿼터’ 중 일부는 개발의 혜택을 입지만, 대부분의 이득은 지주, 사업가, 공무원 등 상류층의 몫이다. 이들 중엔 정부 보상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슬럼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슬럼의 생태학’이라 이름 붙인 장에서 저자가 나열하는 빈민가 주거 환경은 아연하다. 식민지 해방 이후 집권한 엘리트의 무능과 부패, 재산권ㆍ생존권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거부하는 상류층의 행태에 슬럼 확대의 책임을 묻는 저자는 열악한 위생과 경제적 배제가 계속될 경우 인류의 미래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 경고한다. 입주민에 대한 배려 없는 ‘도시 정비 사업’으로 사라져간 달동네, 쪽방, 비닐하우촌 등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슬럼은 이미 지나간 역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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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구 3명 중 1명 슬럼 거주…2030~40년 2배로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2007-07-06 오후 09:03:23)
신자유주의 세계화·기득권층 부패가 확장 부추겨
 
마이크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 역사학 교수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가 예측하는 미래도시는 처참하다. “21세기의 도시세계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싸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도시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살고 있는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생활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회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현재 60억을 넘긴 세계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10억 인구라면 그 도시인구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다. 도시인구 3명 가운데 1명이 슬럼가에 사는 셈이다. 지금 이미 그런 상태다.
평균이 그런 만큼 나라에 따라서는 도시 슬럼인구가 99%를 넘는 곳도 있다. 에티오피아가 99.4%고 탄자니아가 92.1, 수단이 85.7%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84.7%, 파키스탄 79.2%, 인도 55.5%, 베트남 47.4%, 터키 42.6%, 중국 37.8% 등이다. 한국은 이 부류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한’도 도시 슬럼인구 비율이 37.0%나 된다. 멕시코가 19.6%로 돼 있어 이 통계수치를 어느 정도로 믿어야 할지 의문이지만, 저자 역시 멕시코의 수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점을 자세히 지적하고 있다.
 
슬럼인구는 지금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못사는 나라들에서 더욱 그렇다. 상파울루의 슬럼가 파벨라는 1990년대에 연평균 16.4%씩 증가했는데, 아마존 지역 도시의 80%가 판자촌이다. 베이징에는 해마다 20만명의 ‘망류’(도시로 불법 유입한 빈곤층 농민)들이 들어와 슬럼가를 채우고 있으며 그 총수는 1억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남아시아 쪽은 도시가구 성장의 90%가 슬럼지역에서 이뤄졌다. 뭄바이의 연간 유입인구 50만 가운데 40만이 슬럼가에 정착하는 인도의 슬럼가 인구는 전체 인구보다 2.5배 빠르게 성장하며, 아프리카 쪽 도시 슬럼가의 성장속도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시 전체 성장속도의 2배에 이른다. 지구상에는 이미 20만개 이상의 슬럼가가 존재하는데, 유엔 해비탯은 슬럼인구가 해마다 2500만명씩 늘고 있다고 밝혔다. 2030~40년 무렵이면 도시인구의 45~50%가 슬럼화해 그 수가 20억에 이를 것이다.
 
슬럼이 이처럼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영국과 미국에서 신보수주의 정권이 등장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펼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70년대 중반에 이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오일 쇼크로 휘청거리던 제3세계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서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예컨대 “워싱턴(파리도 포함시킬 수 있다)·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이 잉태하고 발육시킨 프랑켄슈타인”이라 했던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독재정권에 대해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은 어떻게 했던가.
“파리클럽은 모부투의 채무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대가로 공공부문을 더욱 축소할 것, 시장을 더 개방할 것, 국영기업을 민영화할 것, 외환규제를 없앨 것, 다이아몬드 수출을 늘릴 것 등을 요구했다. 수입품이 홍수처럼 콩고로 밀려왔고 국내산업은 문을 닫았으며, 킨샤사에선 또다시 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세계은행은 아프리카를 냉전전략 차원에서 접근한 미국이 눈치를 줄 때마다 모부투를 부추겨 외국계은행에서 엄청난 돈을 꿔쓰게 했는데, 그 돈이 대부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로 직행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랬다. 그들의 그런 부패와 냉전, 그리고 내전이 콩고를 초토화했다. 나라마다 꼭 같진 않았지만,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를 기억하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못사는 나라들을 압박하는 이런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야전사령부가 국제통화기금이다. 농업보조금 없애라는 게 구조조정의 단골품목 가운데 하나다. 그 결과 제3세계의 소규모 자작농들은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는 제1세계 농기업이 지배하는 세계 상품시장 틈바구니에서 쫄딱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농촌 주민들이 갈 곳은 도시밖에 없다. 그리하여 식민지시절에도 제국주의 종주국들의 사악한 계산 때문에 저지당했던 도시화가, 그것도 노동력 수요가 늘지도 않은 불황기에 폭발적으로 진행됐다. 대책 없는 도시 팽창은 당연히 슬럼 폭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슬럼 폭발 책임이 그들 ‘외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치가, 고위관리, 공무원, 군인, 건설업자들 등 상대적으로 가진 ‘내부’의 기득권층이 부동산 투기, 임대사업, 심지어 화장실사업까지 벌여 빈민들의 고혈을 짜냈다. 동남아 16개 도시 상위 5%의 지주가 53%의 토지를 소유하며, 인도에서는 도시공간의 약 4분의 3을 도시가구 6%가 장악하고 있다. 나이로비는 한 슬럼가 주택의 57%를 정치가와 공무원들이 소유하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공중화장실을 외채상환을 위한 현금인출기로 만든 것이다.” 이 말은 48만 가구가 사용할 화장실이라고는 160개의 변기와 110개의 변소차밖에 없는 델리, 화장실 하나를 6천명 이상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베이징, 이마저도 없어 “악취를 풍기는 거대한 똥통”이 된 나이로비, 라고스, 뭄바이, 다카 등에서 그나마 국제통화기금 혜택을 본 가진 자들이 화장실 임대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걸 두고 하는 얘기다. 요금은 한 가족 한 번 사용에 기본급의 절반. 1회 6센트 하는 곳도 있다. 어린이 노동, 장기매매도 횡행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빚은 비극이다.
  
저자가 동원하는 방대한 자료들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역자가 인용한 서평 구절을 재인용한다. “이 책은 논증이라기보다는 묵시록이다. 그러나 당신이 묵시록을 원한다면, 이 책의 저자보다 훌륭한 묵시록을 쓰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묵시록을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엉망진창 세상을 묵시록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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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제3세계 슬럼 비참한 현실 고발
(동아, 유성운 기자, 2007-07-07 03:06)
  
멕시코시티는 50년 안에 인구 5000만 명의 메트로폴리스가 된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제3세계의 도시인구는 급속도로 팽창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 하수시설 등 주거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인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 슬럼의 극빈층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이용한 각종 불법의 횡행.
 
저자가 분석한 원인 중 흥미로운 것은 슬럼가의 악순환의 요인으로 대형 비정부기구(NGO)들의 성과주의를 지목한 것. 저자는 인도의 인도레 프로젝트나 아라냐 재정주 프로젝트처럼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대형 NGO 프로젝트의 관련자들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상을 받지만 수혜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저자가 몇 년간 수집한 많은 자료와 함께 이뤄지는 제3세계 슬럼의 비참한 현실 및 비리의 고발과 냉철한 분석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하지만 결말에서 도시 슬럼가 주민들의 군사적 연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순식간에 저자의 시각에서 균형을 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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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슬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괴물
(세계, 조정진 기자, 2007.07.06 (금) 17:21)
‘산업화·도시화의 그림자’ 도심 빈민가 확산
美 경제모델 모방·고실업·양극화 등 원인
중산층 거주지는 요새화 … ‘계급투쟁’ 양상
   
‘공동묘지의 비석과 묘석을 책상·침대·탁자·선반으로 쓰고 묘비 사이를 연결해 빨랫줄로 사용하는 카이로 ‘사자들의 도시’ 주민들, 옥상에서 맨몸뚱이로 야영하는 프놈펜·알렉산드리아 빈민과 노숙마저 경찰과 폭력조직에 월세를 바쳐야 하는 로스앤젤레스·뭄바이 홈리스들, 하룻밤 새 세워졌다 철거됐다를 반복한다는 이스탄불 판자촌 ‘게체콘두’(‘하룻밤 사이에 세운다’라는 뜻)의 스쿼터(무단점유자)들*, 화장실 하나를 6000명이 쓴다는 베이징 달동네 주민들….’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정부와의 37일간의 공방 끝에 결국 쓰레기 언덕 하나를 얻어내는 하층민의 인생. 터키 작가 라티페 테킨의 작품 ‘베르즈크리스틴: 쓰레기 언덕의 이야기’의 내용이다.
  
이들에겐 생존의 필수품인 물과 하수시설, 화장실도 사치다. 화재·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 위치도 송유관·화학공장·정유공장·쓰레기매립지·화장장 등 혐오시설 인근이다. 그나마 올림픽, 미인대회, 국빈 방문, 국제회의 개최, 신도시 건설 등의 이유로 불도저의 밥이 되기 일쑤다.
  
정육점 직원·트럭 운전사를 하며 공부한 학생운동권 출신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통해 문명시대를 자부하는 21세기 최대 부끄러움이자 모순인 도심의 빈민층 거주지 ‘슬럼(Slums)’ 문제를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조망하고 있다. 한국에선 슬럼이라고 하면 1950년대 해방촌을 메운 달동네 판자촌을 떠올린다. 그러나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거주자들도 모두 슬럼 주민이다. 또 IMF 환난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노숙자들, 쪽방 주민들, 각종 쉼터 생활자들까지 합하면 그 규모와 내용은 더 확장된다. 우리나라는 유엔이 제공한 ‘국가별 슬럼 인구 순위’ 자료에서 페루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 12위를 기록하며, 도시의 슬럼 인구는 37%로 추산된다. 게다가 88서울올림픽을 1년 앞두고 자행된 대규모 철거는 세계 슬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이 책은 비록 미국 학자가 썼지만 타워팰리스와 쪽방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건강하지 못한 도시 구조를 바라보는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탁월한 통찰력과 방대하고 정밀한 데이터, 세계 현실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형태의 슬럼들을 분석했다. 
전 세계적 문제인 슬럼의 원인을 지은이는 ▲제3세계 농촌의 몰락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 발전모델로 합의한 워싱턴 컨센서스 ▲경제의 비공식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의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가 낳은 다양한 문제 ▲식민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은 독재정부의 무능과 부패 ▲중간계급의 배신 ▲IMF가 강요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임을 논증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한마디로 슬럼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기획이 낳은 괴물 그 자체’ ‘비정규직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 그는 또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굴복한 기만적인 대형 NGO(비정부기구)들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지은이는 제3세계 도시계획은 계급투쟁 양상을 띤다고 진단한다. 중산층은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천루·호화아파트단지·강변 산책로·관광객 편의시설 등을 건설하기 위해 빈민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빈민은 슬럼이라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을 새로운 ‘계급투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지은이는 도시가 슬럼화되면서 중산층 거주지는 요새로 이원화되기 때문에 중산층과 상류층은 이러한 도시의 끔찍한 실상을 점점 모른 척하며 살게 됐다고 판단한다. 그는 앞으로의 전쟁은 정규군과 빈민들이 벌이는 유격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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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배설물 · 쓰레기 '아비규환' 슬럼가에선 악몽 아닌 현실
(부산일보, 이상헌기자, 2007. 07.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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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 vs 쪽방'…한국, 세계 12위 슬럼대국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2007-07-09 오전 8:54:53)
[화제의 책] '슬럼, 지구를 뒤덮다'
 
"21세기 도시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지 않는다.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으로 지어진 공해, 배설물, 부패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 도시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사는 전 세계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 생활 여명기에 세워진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볼 것이다."
 
▲ <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최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넘어섰다. 제3세계의 도시를 둘러본 이라면 누구나 실감하듯이, 도시는 그 자체로 '괴물'이 됐다. 
애초 '슬럼(slum)'은 '사기'를 뜻하는 속어였으나 19세기 중반부터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를 뜻하는 단어로 변했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에서는 제3세계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규모 슬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슬럼은 1950년대의 '추억 속의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책을 읽는 이들 중 상당수조차도 슬럼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아시아 대도시에서는 '간이 숙소'의 형태가 남아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전통적인 무단 점유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많은 사람은 경제 발전에 따른 도시화는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슬럼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젠가는 없어질"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인 생각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동아시아, 서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성장 없는 도시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프리카는 극단적인 예다. 탄자니아, 가봉, 앙골라 등 경제성장률이 매년 2~5%씩 후퇴하는 나라에서 도시 인구가 매년 4~8%씩 증가하고 있다. 산업의 몰락으로 도시가 활기를 잃었는데도 제3세계의 도시는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다. 대도시가 앞장서면 소도시가 인근 농촌을 흡수하면서 뒤를 따른다. 성장 없는 도시화의 결과는 슬럼의 확대로 나타난다.
 
성장 없는 도시화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농촌의 몰락 탓이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제3세계 농업은 전 세계적인 구조 조정의 물결 속에서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은 채무국으로 하여금 농업을 지원하던 정책을 중단하여 달라고 요구했다.
 
"구조 조정의 결과 제3세계 농업으로 가던 보조금이 끊어졌다. 그 결과, 소규모 자작농은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받는 제1세계 농업기업이 지배하는 세계 상품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쫄딱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시의 고용 창출이 중단된 후에도 농촌의 인구가 고향을 탈출해 도시 슬럼으로 몰려가는 대탈출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 슬럼이 도시를 덮기 시작하자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미덕"이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유행을 국가들이 좇기 시작하자 이런 슬럼의 확대는 더욱 가속화했다. 그 결과 슬럼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1세기 지옥'이 됐다. 강제 퇴거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2~3㎡의 땅을 얻는 대가로 고향을 등진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바로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온갖 위협이다. 이 책이 6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슬럼의 생태학'은, 슬럼을 그냥 내버려둘 경우 전 지구적 재앙의 진원지가 바로 도시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방치된 쓰레기로 뒤덮인 도시의 공터는 들쥐나 모기 같은 해충의 천국이다. (…) 다르에스살람에서 평균 쓰레기 수거율은 25%에 미치지 못하며, 카라치는 40%, 자카르타는 60%에 불과하다. (…) 아크라에서 끝없이 쌓여가는 쓰레기더미는 검은 비닐봉지로 가득한데, 이 속에는 아크라의 가난한 여성의 자궁에서 낙태된 태아들이 담겨 있다." "가장 극심한 의료 격차는 이제는 도시와 시골 사이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발생한다. (…) 케이프타운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결핵에 걸리는 비율은 부유한 백인에 비해서 50배 높다. (…) 대체로 농촌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던 전염성 질병이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 오늘날의 거대 슬럼은 신종 질병이나 옛날 질병을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키워서 전 세계로 확산시킬 인큐베이터다."
 
굳이 전 지구적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아니더라도 이미 슬럼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노동 과정에 편입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영원한 잉여 대중으로 찍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경제와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지면서" '도시의 묵시록'을 넘어 '세계의 묵시록'을 예고한다.
 
이런 파국의 징후 앞에서 이른바 '주류'의 대응은 사태를 더 악화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교외의 폐쇄형 주택 단지나 무장한 '안전 마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한 예다. 한국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맥락에 놓인 이런 새로운 공간에 거주하면서 '주류'는 "자기네가 뒤에 남긴 도시의 암흑가에 대한 도덕적ㆍ문화적 통찰을 잃게 된다."
 
이런 비판적 성찰의 부재를 뒤따르는 것은 바로 21세기 판 '아마겟돈'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이미 '황폐화된 국내 도시'야말로 미래 전쟁을 대비하는 최적의 훈련 장소라고 제안한다. 그들에게 슬럼은 "디트로이트와 로스앤젤레스의 슬럼에서 훈련받은 미래의 군인"들이 활약할 새로운 전장이다.
 
그렇다고 슬럼의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운 저항의 주체로 거듭나리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그들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는 비공식 경제의 찌꺼기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약육강식의 야만 상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유목민'과 같은 낭만적인 저항의 주체는 '먹물'의 머릿속에는 있을지언정 슬럼에는 없다.
  
이 책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미 "1988년 72만 명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가난한 주택 소유자,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을 통해 세계 슬럼 퇴거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국 독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언급한 서울의 역사를 우리는 벌써 망각한 게 아닐까?
 
"이 책의 많은 주제가 특히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근대 도시 가운데 서울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도시는 없습니다. 전쟁의 폐허만 남았던 도시가 이제 뉴욕에 버금갈 비참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거대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로 변모했으니까요. 국가와 기업이 사적 이윤을 위해 민중의 공간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부유층 문화를 확산시킬 때, 서울의 주민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자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연대해 국가와 기업의 철거 책략에 맞섰던 영웅적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서울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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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도시 슬럼화는 재앙의 전주곡
(이코노믹리뷰,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2007-07-13 10:57)
 
도시의 스카이 라인이 바뀌고, 우선 첫눈에 보기에도 말쑥하고 또 요즘 건물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어디로 가는가. 한쪽에서는 새롭게 재개발된 지역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 청약으로 시끌벅적하지만 원주민들의 상당수는 불도저와 용역 직원들에 맞서 보상과 이주 문제로 처절하게 싸운다. 서울의 발전은 이러한 과정의 끊임없는 연속이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슬럼화 현상의 원인과 효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슬럼이 향하는 재앙적 수준의 종착점을 고발한 책이다. 자본주의에 있어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슬럼은 국지적인 현상이며, 저개발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과정상의 고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신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인도나 중국, 남미의 비참한 슬럼 지역…, 이것이 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고 세계는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한다. 우선 도시 슬럼화는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규모와 인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슬럼이 준슬럼화되고, 준슬럼이 다시 슈퍼 슬림화되는 것, 이것이 도시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슬럼화의 고통은 슬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상상 초월의 고통이다. 슬럼의 형성 지대는 최악의 거주장소다. 세계 최악의 풍수(風水)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의 ‘비야미세리아’ 주민들이 사는 곳은 바닥난 호수, 쓰레기장, 공동묘지 등으로 이루어진 범람지대로 해마다 집들이 통째로 홍수에 쓸려가기 때문에 가재도구마다 자기 대문번호를 일일이 새겨놓아야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슬럼 지대는 습지, 범람지대, 쓰레기장, 화학폐기물 처리장, 철도변, 사막 가장자리를 개척한 곳이다.
 
상파울루의 ‘오염계곡’으로 불리는 쿠바탕에서 송유관이 폭발하는 사고로 인글 파벨라에서 500명 이상이 불에 타 죽었고, 멕시코시티의 산후아니코 지역에서는 액화 천연가스가 마치 원자폭탄같이 폭발하는 사건으로 무려 2000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수백 명이 자다가 목숨을 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죽었다. … 사람들은 불덩이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졌다. …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화염의 불빛이 이 처참한 광경을 대낮처럼 환히 비췄다.”
 
위생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케냐의 키베라에 위치한 라이니사바 슬럼은 1998년 4만명의 주민이 구덩이 변소 10개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타레 4A에서는 2만 8000명이 공중 화장실 2개를 함께 썼다. 인도의 방갈로르 슬럼에 사는 여성들은 씻거나 용변을 보기 위해 밤을 기다린다. 이들이 이용하는 지대는 습지대거나 들쥐 등의 설치류가 출몰하는 방치된 쓰레기장으로 이들은 밤에 용변을 보기 위해 낮에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슬럼에 산다는 것은 이렇듯 재난과 죽음, 그리고 질병과 동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지구적 슬럼화의 주범은 무엇인가. 저자는 엄청난 속도의 도시화를 추동하는 힘이 주범이며 또한 그 힘은 산업 발전으로 인한 고용 증대가 아니라 제3세계 채무위기와 뒤이은 IMF 주도 구조조정으로 불거졌다고 말한다. 즉 제3세계 농촌의 몰락, 워싱턴 정치경제 권력의 비대화, 경제의 비공식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의 요소들이 낳은 괴물이 바로 암울한 슬럼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특히 고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파국으로 가는 폭탄이다. 2002년 CIA는 “1990년대 후반 세계 노동력의 1/3에 해당하는 10억이라는 노동자가 실업·준실업 상태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누가 흡수하는가. 지하 경제의 정부 역할을 하는 무장 반군이나 범죄 조직들이다.
  
전 세계적 슬럼화가 가져올 위기와 절망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는 불과 1세기 만에 슬럼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미 세계화를 부르짖고 편입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1세기가 아니라 10년, 20년 내에 닥칠 심각한 위기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조건부 파국이라고 한다. 상황을 바꿀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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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슬럼, 지구를 뒤덮다
(매일신문, 석민기자, 2007년 07월 14일)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슬럼, 지구를 뒤덮다/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스스로 '국제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환경주의자'라고 밝힌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 역사학 교수)는 '세계 도시의 슬럼화'라고 부를 수 있는 전지구적 현상의 구체적인 풍경들을 하나하나 조망하며, 그 원인과 효과를 추적하면서 '제3세계 농촌의 몰락' '워싱턴 정치경제 권력의 비대화' '경제의 비공식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의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다시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획이 낳은 괴물 그 자체가 '슬럼'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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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20:34 2009/07/0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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