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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대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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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대안 될까 (한겨레, 한승동 기자, 2014.03.02 20:42)
한 주를 여는 생각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
“하나의 유령, 프티부르주아(소자산계급) 사회주의라는 유령이 중국과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세계 각지에서 마르크스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모두가 이미 그 정치·사상적 동력을 상실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멸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신좌파 인물 추이즈위안(51)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빗댄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당대 서구세계의 한계를 돌파할 필연적 대안으로 그렸듯 그는 이 책에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찍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맞설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형 ‘베이징 컨센서스’ 가능성을 제시해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그는 ‘충칭 모델’ ‘충칭 실험’에도 핵심 이론가로 깊숙이 관여했다.
추이즈위안은 서구 정치사상으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개념을 가다듬은 뒤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충칭 모델 경험으로 그것을 보완하는 이론적·실천적 작업을 벌인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강조한다. 충칭 실험의 상징이던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는 실각했지만, 이 모델의 실질적 입안자인 황치판 충칭시 시장은 중국공산당 18기 3중전회에 제출된 중대한 개혁방안의 초안 작성자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 발전전략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한 이 논의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국유자산 개발이익 분배, 여유사회 앞당긴다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충칭모델에서 국영경제는 민간자본 위축이 아니라 번영을 견인했다. 그 개발방식에는 푸둥 개발 성공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 핵심은 국가 행정권력이 주도하는 공공소유 토지자산 운용 수익과 그것의 사회적 배분이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지은이 추이즈위안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이론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영원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머무르도록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프티부르주아 계급의 보편화가 미래의 희망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프티부르주아의 몰락을 예고했지만,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노동계급의 프티부르주아화야말로 사회주의 건설의 관건이요 해결책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요, 그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건 그가 관여해 온 충칭 모델, 충칭 실험의 목표이기도 하다.
프티부르주아 계급이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프티부르주아 계급(소자산 계급)이라는 개념은 농민을 포함한다. 그 점에서 …중산계급(중산계층) 개념과는 다르다. …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샤오캉(小康) 사회의 전면적 건설과 연결될 수 있다. 중국의 혁명과 건설, 특히 경제체제 개혁 이래의 정책은 사실상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실천과 혁신을 포함한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이론적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2011년까지 쓴 논문들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바로 이 ‘이론적 설명’을 위한 것인 셈이다. 샤오캉 사회 건설은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 총서기가 제시한 당면 과제였다. 샤오캉 사회란 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사회, 한마디로 먹고살 만한 사회다.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지향점인데, 거기에 농민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그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정통 마르크시즘, 그리고 카를 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주의가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가 당시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농민, 특히 소농을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대농장 발전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파악한 결과 ‘노농연맹’에서 실패한 점이라고 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대두는 바로 사회민주당이 외면한 소농들의 지지를 가로채간 결과라는 것이다.
상하이 변방 푸둥이 10여년만에 첨단도시로 변신한 핵심 요인은 
공공토지 운용이익 사회로 돌려 민간 경제활동 촉진시켰기 때문
노동자·농민이 프롤레타리아 넘어 
먹고살 만한 소자산계급 올라서는 ‘샤오캉사회’ 달성 비결이 여기 있다

게다가 사민주의는 노동시장 경직화를 동반하는 노동자 고임금 현상을 해소하지 못해 저효율과 생산량 감소, 취업률 하락, 사회 침체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추이즈위안은 진보 세력이 서구 사민주의 정책을 따라가선 안 된다며, “서구 사민당은 급진적인 영감을 일찌감치 잃어버렸다. 사민당의 강령은 기존 시장경제 체제의 형식에 도전하고 이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구조적 격차와 계급계층 제도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시키는 데 치중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197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미드의 노자합자 기업을 원용한 중국식 주식합자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주주가 자본주권을 갖고 노동자는 노동주권을 갖는 노자합자 기업은 고정적 고임금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노동주권을 지닌 노동자도 함께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민주의적 경직성에 빠지지 않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은 미드의 생각과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의 자유주의적 강령을 종합해 ‘자유사회주의’라 부른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의 부제가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다.
1978년의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개발과 그 부작용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대응은 부작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수용하는 체제내 편입파, 이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 비판파 두 부류로 갈렸다. 그중에서 비판파들은 다시 시장화·사유화 개혁정책을 받아들이는 비판적 자유주의파와 정치적·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절차·기회·결과의 공정성까지 요구하며 정통 구좌파를 버린 탈자본주의적 신좌파로 또 갈렸다. 이 지식인 지형은 그 뒤 변형을 거쳐 신좌파 주류가 비판적 자유주의파로 수렴되는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가 추이즈위안이다.
그가 “진행형”이라고 한 충칭 모델의 핵심내용은 국유자산 가치 증대와 민간 재부 확대의 동시 추구, 지표거래를 통한 도농 통합발전의 촉진이다. 이게 ‘충칭 실험의 제도적 토대’다. 이번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보시라이 실각으로 충칭 실험이 끝났다고 보는 건 잘못이라며, “충칭의 모색을 … 미드의 ‘자유사회주의’ 이론의 시야 속에 놓고 본다면, 단기적인 정치투쟁의 시각을 넘어서 더욱 광범위한 시야로 중국 개혁개방의 의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유자산 가치 증대가 필연적으로 민간자본 위축을 초래할 것 같지만, 충칭 실험의 결과는 그 반대로 국유 증대가 민간 번영을 견인했다고 했다. 충칭 실험을 밀고나간 자신감은 ‘푸둥 논리’에서 나왔다. 상하이 변방 농촌 푸둥을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첨단도시로 바꾼 푸둥 개발의 핵심은 공공소유의 토지자산 운용이었다. 미리 예측된 가공의 토지개발 수익이 설정되면 개발공사가 이를 근거로 은행 대출을 받고 외자를 끌어들여 개발의 시동을 걸었다. 이 ‘공회전 시동’으로 개발 사이클이 시작되면 토지가격이 상승하고 눈덩이 굴리기식 가속 개발이 이뤄진다. 그 국유자산 운용 이익을 사유화하지 않고 국유주 지분에 대한 이익분배 형식으로 사회화(이익의 사회적 배분)한다. 그 결과 세율을 낮출 수 있게 돼 민간기업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민간 재부도 확대된다. 주택취득세율의 경우 중국 대도시 평균이 3~5%일 때 충칭은 1.5%를 유지했으며, 기업소득세는 평균 33%일 때 충칭은 15%를 유지했다.
‘지표거래’도 국유 토지자산 운용 극대화를 위한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농촌의 건설용지를 농경지로 복원함으로써 확보된 건설용지 활용지수가 ‘지표’인데, 이를 토지거래소에서 거래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정부(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황치판이었다. 상하이 경제위원회 주임으로 푸둥 개발을 성공시킨 이가 그였고, 그 경험을 충칭에 이식한 것도 그였다. 이를 서구적 개념으로 이론화해 중국 안팎으로 발신한 사람이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 방문학자로 가 있기도 한 추이즈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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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7:25 2014/03/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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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학벌이 높을수록 행복 수준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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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조금 씁쓸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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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학벌이 높을수록 행복 수준 높아"<직능원> (세종=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2014/02/27 14:04)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학력· 학벌이 높을수록 행복한 이들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한국교육고용패널의 27세 내외 2천51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행복한 청년의 특징'이란 보고서를 27일 발표했다.
현재의 행복 수준을 0점(전혀 행복하지 않다)∼10점(매우 행복하다)으로 매기게 해 0∼3점은 행복 수준이 낮은 집단, 4∼6점은 보통, 7∼10점은 높은 집단으로 분류했다.
조사 결과 고등학교 이하 졸업자 중 행복한 청년의 비율은 58.7%, 전문대 졸업자는 63.6%, 4년제 대학 졸업자는 65.9%로 학력이 높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또 같은 4년제 대학이라도 상위 30위권 대학 졸업자 가운데 행복한 청년의 비율이 71.9%로 전체 4년제보다 높아 학벌에서도 차이가 났다.
취업자의 64.4%는 행복한 청년이나 실업자는 그 비율이 47.8%에 그쳤다. 취업자 중에서는 자영업자(65.7%), 임금근로자(64.6%), 무급가족종사자(55.0%) 순으로 행복 수준이 높았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상용직(66.3%)의 행복 수준이 가장 높았고, 일용직(33.3%)은 상용직의 절반 수준이었다.
배우자 소득을 포함해 본인의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경우 행복한 청년의 비율이 61.0% 안팎이나 200만∼300만원이면 70.2%로 가파르게 증가했고, 300만원 이상이 되면 68.9%로 소폭 낮아졌다. 장래 희망 직업을 결정한 집단에서 행복한 청년의 비율이 69.0%, 결정하지 못한 집단(59.9%)보다 높았다.
성격별로 외향적(71.6%)이고 정서적으로 안정(75.2%)되고, 친화적(72.7%)이고, 개방적(68.4%)인 성격인 사람이 더 행복했다. 남자는 마르거나(53.8%) 비만(57.5%)인 사람보다 과체중(68.5%)인 경우 행복한 사람이 더 많았지만, 여자는 보통(62.0%)이나 저체중(61.2%)인 사람이 행복 수준이 높았다.
보고서는 "학력과 학벌이 높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높은 학력 프리미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학력·학벌 중심에서 능력·역량 중심의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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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2 02:30 2014/03/0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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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낙하산인사, 어떻게 볼 것인가(tbs라디오 140219 전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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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estiny ("별에서 온 그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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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詩, 문대현 曲 -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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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시 들어도 좋구나.
20년도 넘은 노래인데 말이다.
아마도 시가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은 2009/01/29 00:51에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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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는 정호승 시인이 1979년 펴낸 처녀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 실린 시이다.
조세희의 난쏘공과 같이 1970년대의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검색해서 보니 "
의지적인 어조와 이기적 삶에 대한 비판적 태도, '슬픔'을 시적 화자로 설정하여 청자인 '기쁨'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함(의인화)"라고 나와 있다. 아마도 이 시가 수능이나 논술에서도 출제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접하는 것보다 현실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실감나지 않을까.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용산 참사는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칼님이 블로그에 올린 시를 보고 생각이 나서 문대현 님이 이 시에 곡을 붙인 동명의 노래를 담아놓는다.
돌칼님이 평한 대로 '낮은 멜로디와 조바꿈이 인상적인 노래'이다.
 

이런 식의 노래도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이 노래가 어느 앨범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의 버전은 서울대 중앙노래패 메아리가 1992년 봄 공연에서 부른 것이다. 

 

 

 

 

정호승 詩, 문대현 曲 - 슬픔이 기쁨에게

 
(詩낭송 1~6행)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저녁놀도 없이 해지는 나라
오늘도 해가 진다 어디로 가나

 
(詩낭송 7~13행)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우리 죽어서 별에 묻히기 위해
언제 다시 헤어질 때 너를 만나나
홀로 새벽 강가에 우는 사람들
눈물의 칼을 씻고 바다로 간다

 
(詩낭송 13~19행)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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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03:42 2014/02/13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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