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부,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 추진

View Comments

 지난 기사를 검색해보다가 정부가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음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 정부도 비준하려 하지 않았던 것인데, 무슨 일로 이명박 정부가 방침을 바꾸었을까. 설마 자신감의 표현은 아닐 테고...
아무튼 예전에 썼던 글도 담아놓는다.

 
----------------------------------------
정부,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 추진 (한겨레, 김기태 노형석 기자, 2009-05-22 오전 07:09:05)
EU의 FTA 조건 수용…한-미 FTA와는 충돌할 듯
자국문화 보호 조치 인정…스쿼린쿼터 유지 근거

 
정부가 애초 방침을 바꿔, 각 나라 문화의 다양성을 국제법으로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문화다양성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핵심 관계자는 21일 “문화다양성 협약의 일부 내용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과 상충돼 고민을 거듭했으나, 유보조항 없이 협약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한 당국자도 “유럽연합은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한 국가에 대해서만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는 원칙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며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안은 관련 부처 협의를 거쳐 현재 법제처의 검토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빠르면 올해 안에 비준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협약이 국회 비준을 거치게 되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을 해석, 적용할 때 협약 규정을 ‘고려’(take into account)해야 한다. 또 국내적으로는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제) 등 문화부문의 보호 장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여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다른 통상 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 협약에서는 ‘각 체약국이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문화다양성 협약이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에 얽힌 예민한 통상 현안 때문에 원안 그대로 비준할 수는 없다고 밝혀왔다. 정부가 방침을 바꾼 것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협약 비준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협약의 국회 비준을 환영하지만, 정부가 외국의 요구에 따라 문화를 통상의 종속변수로만 놓고 판단해온 그간의 과정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 
‘문화다양성 협약’ 우리 문화상품 보호·육성 ‘발판’ 마련 (한겨레, 김기태 기자, 2009-05-22 오전 07:13:54)
국내비준 영향은
EU서 요구한 ‘관계정립’ 20조 해석 따라 강제력 차이
“다른 통상협정과 동등” “국제법적 기속력” 의견 갈려
 
‘문화다양성 협약을 우리나라가 비준하면,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제)도 다시 늘어날까?’
한국 문화계의 염원대로 문화다양성협약 비준을 정부가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크린쿼터 등 문화 정책의 미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일단 스크린쿼터 같은 우리 문화상품을 보호 육성하는 발판 하나는 마련됐다는 해석이 많다. 다만, 그 발판이 얼마나 튼튼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의 위상을 놓고 국제법학자나 통상전문가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협약에 얽힌 국제 분쟁 판례가 쌓여있지 않으며, 국가별 시각차도 크다.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주도한 유럽연합(EU)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상대 국가에게 협약의 비준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협약 채택에 찬성했지만, 파장을 우려해 국내 비준은 미루고 있다. 반면 미국은 문화다양성협약에 반대한다. 따라서 협약의 위상은 이해 당사자 사이의 힘싸움 결과에 따라 유동적일 가능성이 높다. ‘폭발력이 검증되지 않은 폭탄’인 셈이다.
 
협약의 내용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것은 다른 국제조약과의 관계를 규정한 20조(‘관계정립’ 조항)이다. 다른 조약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협약은 단순히 ‘선언’에 그칠 수도 있고, 강제력을 지닌 국제법으로 격상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한 때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되, 20조는 유보조항으로 남겨두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였다.
 
우리 정부가 애초 방침을 바꿔 협약 20조를 포함해서 원안 그대로 비준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튼 것은 유럽연합 쪽의 요구에 따라 문화다양성 유지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달리 일각에선 거꾸로 ‘20조’의 법적인 파괴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분쟁 해결을 둘러싼 견해도 분분하다. 협약을 보면, 규정 위반 여부를 두고 분쟁이 생겼을 때 해결방식은 ‘기속력이 없는’ 해당 국가 사이의 조정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분쟁해결기구도 없다. 박덕영 연세대 교수(법학)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기구가 문화다양성협약을 고려는 하겠지만 협약이 일정한 우위를 점하는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이 다른 통상협정의 틀 속에 묻힐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자유무역협정 분쟁 기구들의 결정 사례를 보면 문화다양성협약이 국제법으로 유효하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문화다양성협약과 유사한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나 ‘식량농업 식물 유전 자료협정’과 관련한 세계무역기구의 결정을 보면 문화다양성협약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이 효력있는 국제법의 위상을 갖게 되면, 우리나라 영화, 방송, 미디어, 애니메이션, 언어 분야 뿐 아니라 국내 외국인 등 소수자 문화 관련 예산과 제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문화다양성협약이 국내에서 유효하고 적극적으로 해석되기 위해선 문화계와 관련 단체, 정당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제협약이다. 정식 이름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이며, 2005년 10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33차 총회에서 채택됐다.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각 나라 고유의 문화와 언어, 전통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삼고 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나 방송쿼터 등 문화상품 보호제도를 정당화는 제도적인 장치인 셈이다. 협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권리와 의무 보장 △다른 나라의 문화교류 및 다른 나라 내의 문화개발에 기여해야 하는 국제적인 의무 등으로 돼 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채택 당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됐다. 협약 채택을 앞두고 벌어진 표결과정에서 유네스코 회원국의 절대 다수인 148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의사를 밝힌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뿐이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미국의 문화상품이 전세계를 석권하는 것에 대한 각국의 공감대가 이뤄진 결과였다. 올해 5월초까지 캐나다, 프랑스, 독일, 중국,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 98개국이 비준을 완료했다.
 
====================================================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환영한다 2005/10/22 05:46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3차 총회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촉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을 찬성 148, 반대 2, 기권 4라는 압도적 표차로 채택되었다. 이 협약은 WTO 등을 외피로 하여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어 온 양국간, 다자간 통상협약의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특히 스크린쿼터제도를 유지할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세문연)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국의 문화정책 수립의 자주권을 국제법으로 보장”하고, “문화상품과 서비스의 독특한 성격을 인정한 것”이며 “문화교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분쟁의 해결절차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문화사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협약은 각국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보호 및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협약 당사국이 이를 위해 적절한 국내적 조치 및 소멸위험에 있는 문화적 표현에 대한 특별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와 같은 자국 문화상품 보호제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문화상품과 서비스의 국가간 흐름이 단순한 상업적 가치로 취급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협약의 제20조는 ‘문화다양성 협약을 다른 어떤 조약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며 다른 조약들을 해석·적용시 이 협약의 관련규정들을 고려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유네스코 총회에 앞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협약안이 자유 통상 원칙을 어기는 무역장벽이 된다'며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밝히며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협약 채택 후에는 루이즈 올리버 유네스코 대사는 협약안 채택에 극도의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이번 협약 채택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2003년 탈퇴 19년만에 유네스코에 복귀했으나, 다시 2년 만에 문화부문의 외교적 고립을 당한 셈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여기에서도 한쌍으로 반대를 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은 몇 가지 장벽이 남아 있다. 우선 미국이 문화다양성협약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명한다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물론 올리버 대사는 탈퇴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교토기후협약에 대해서도 미국이 딴지를 놨던 전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약은 30개국 이상의 비준을 거쳐 3개월 뒤에 국제협약으로서 정식 발효되며, 이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구속력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회 비준은 지난달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에서 실시한 국회의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187명 중 과반수인 97명이 협약 비준에 찬성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아 통과될 것이다.
 
한편 세문연의 성명에 나온 것처럼 외교통상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 뉴질랜드, 멕시코, 일본과 함께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된 것에 대한 독자적인 성명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나선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뉴질랜드는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당시 시청각서비스(영화, 방송, 음반 등) 분야를 전면 개방하여 주요 방송사가 외국자본에 매각되고 자국의 문화컨텐츠를 생산할 기반을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고, 멕시코는 94년 발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하면서 스크린쿼터를 폐지하여 연간 백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던 영화강국에서 순수 멕시코 자본만으로는 1년에 수편의 영화를 만들기도 어려워진 상태로 전락했으며, 일본은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며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미국은 2002년 기준으로 문화산업 분야에서 벌어들인 순익이 600조원에 달하는 나라라고 한다. 이렇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나라이거나 무차별적인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하며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과 함께 한국이 ’문화다양성 협약‘을 훼손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21일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은 문화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해 협약의 채택에 찬성했으나, 이 협약이 WTO 등 다른 협약상의 권리 및 의무의 변경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나온다. 문화다양성협약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또한 ‘문화다양성 협약’의 채택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나라들의 의견은 빼고, 협약채택에 반대한 미국의 억지 주장만을 여과없이 나열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신문 10월 21일자 기사에 따르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문화다양성협약이 스크린쿼터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게 사실이나, 동시에 다른 조약의 권리나 의무를 수정하는 것으로 해석돼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어 양면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한국의 경제부처 관료들은 머리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국제주의자라고 하면 아무 말도 않겠지만, 꼭 미국 국무부 소속 관료같다는 느낌마져 든다.
 
경제와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 나름의 준거기준을 제공하고 있는 이번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환영하면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보도자료와 민중언론 참세상의 관련기사, 외교통상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의 성명, 문화다양성 채택의 의미와 전망을 해설하고 있는 필름 2.0의 기사, 그리고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의 정책논평을 덧붙인다. 
 
                                                                                       
유네스코 총회「문화다양성 협약」채택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 협약)이 20일 오후(파리 현지 시간) 채택됐다. 지난 17일 압도적인 지지로 문화분과위원회를 통과한 동 협약안은 이례적으로 본회의에서도 표결에 부쳐져 한국 등 찬성 148개국, 반대 2개국(미국, 이스라엘), 기권 4개국(니카라과, 온두라스, 라이베리아, 호주)으로 채택이 결정됐다.
  
그동안 동 협약이 문화다양성을 제한하거나 문화상품 및 서비스 무역을 방해할 수 있다며 협약안 채택에 줄기차게 반대해온 미국은 28개 수정 조항을 제안하는 등 제동을 걸었으나 대세를 바꾸지 못했다. 협약 채택 후 미국 루이즈 올리버 유네스코 대사는 협약안 채택에 극도의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이번 협약 채택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찬성국 중 한국, 일본,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아프카니스탄 등 6개국은 본회의 발언을 통해 일부 조항의 모호성, 해석상 오류 가능성, 기존의 국제규범과의 충돌 가능성 등에 대해 지적했다.
 
이번에 채택된 문화다양성 협약은 기본원칙, 당사국의 권리와 의무, 다른 조약과의 관계 등을 담은 35개 항과 분쟁시 화해 절차를 규정한 부속서 6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 협약은 각국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보호 및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협약 당사국이 이를 위해 적절한 국내적 조치 및 소멸위험에 있는 문화적 표현에 대한 특별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최소 30개국 이상이 비준서를 제출한 시점에서 3개월 경과 후 효력이 발생하는데, 한국이 협약 당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비준절차가 필요하다. 지난 9월 ‘세계문화를 위한 연대회의(세문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 중 75%, 전체 국회의원 중 52%가 협약 비준안에 지지 의사를 밝힌 반면, 반대 의사를 밝힌 의원은 없었다.
 
□ 문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팀(전화 : 02-755-5668 / 이메일: sklee@unesco.or.kr)
 
□ 관련 자료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영문)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국문)
제33차 유네스코 총회
 
-------------------------------------------
모처럼 '시장'에 대한 통쾌한 승리, '문화다양성' (참세상, 라은영 기자, 2005년10월21일 19시24분)
유네스코, 압도적 표차로 협약문 채택, 이례적인 '미국' 왕따 현상도
 
'시장'과 '반시장'의 대결에서 '시장에 반대'하는 주장이 압도적인 승리를 이뤘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20일(현지시각) '문화콘텐츠와예술적표현의다양성보호협약(문화다양성협약)'을 압도적 표차로 채택했다. 특히 유네스코 154개국 대표가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 대부분의 참가국들이 찬성 148, 반대 2, 기권 4로 '국제협약'으로 인정한 것 뿐 아니라 WTO 무역 체제 규정에 '파열구를 냈다'고 볼 수 도 있다. 표결 결과 탈퇴 19년 만에 2003년 유네스코에 복귀하며,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반대해 온 미국은 국제 회의 역사상 유례없이 '왕따'신세가 됐다.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WTO 문화의 영역을 시장화, 사유화 하려는 것에 대해서 저지를 시킨 것으로 더 이상 WTO, GATT 그리고 FTA 등 국제 협상에서 문화를 일반 상품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을 저지시킨 쾌거"라 평가했다. 또한 "이런 협약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교육, 보건, 의료 등 상품이 될 수 없는 공공 영역들의 싸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뒀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네스코 총회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각국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협약이 채택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자유화 진전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제한하는데 남용될 수 있다"며 '협약안이 자유 통상 원칙을 어기는 무역장벽이 된다'며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밝히며 압력을 행사했다. 또한 총회에서 미국은 28개 항목 각각에 수정안을 제시하며 '협상 지연전'을 펼쳤으나 모두 기각되는 참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협약이 채택됐다고 해서 바로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이 협약은 최소 30개 국에서 비준되어야 국제 협약으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또한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구속력을 발휘할 없는 한계도 있다. 이제 범국제적 협약이 채택됐으니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국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협약 채택은 헐드리우로 대표되는 상업자본과 문화 패권주의에 일침을 놓았다는 점, WTO 무역 체제의 예외 규정을 국제 협약의 합의로 이끌어냈다는 것,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한 지역, 토착, 특성적 문화들을 국제법 차원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범세계적 합의 규정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의의는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다양성과 WTO의 역관계
이 문화다양성 협약은 각 국이 '문화 다양성 증진을 위한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문화적 표현들이 소멸 위기에 처한 상황에 따라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했다. 또 개발도상국내 문화 산업의 강화, 개도국 예술가와 문화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특별 대우, 문화다양성 국제기금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규정했다.
 
또한 쟁점 중 하나였던 다른 국제협약과의 관계 설정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은 '이 협약이 다른 협약들에 종속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다른 국제협약의 의무를 이행할 때 문화 다양성 협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다자무역체계로 전세계적인 패권을 자랑하는 WTO 무역체계와 규정에 예외적 규정이 생긴 것이다.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합의 결과가 특히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유네스코 회의에 정부기관들이 참여하는데, 역대 역사상 수 많은 협약 중에 미국이란 나라라 철저히 왕따를 당하고 고립된 경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는 "세계 각국들도 미국의 일방적 문화 패권 주의와 일방주의가 세계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양기환 사무처장은 "국내 문화적 측면에서도 문화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문화를 돈벌이 산업논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교류라는 서로가 더불어 함께 사는 공정과 교류를 통한 문화 영역들이 확대될 것이고, 또한 직접적으로 스크린쿼터 문제의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방송, 음반등 시청각 분야에 대한 시장화와 일원화 움직임을 저지하고 방송의 공공성 중요(항목 6조-당사국 권리 규정)보장을 장려하는 정책들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선택과 집중으로 인해 지원이 취약했던 순수예술 분야에도 지원의 의무가 강제되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 대한 국가 지원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성명> 참여정부의 외교통상부는 더이상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를 자처하지 말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 지난 17일(프랑스 파리 현지시간) 제33차 유네스코 총회 문화분과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20일(현지시간) 본회의에 상정되어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공식 채택되었다. 협약은 154개국이 참가한 투표에서 찬성 148개국, 반대 2개국(미국, 이스라엘), 기권 4개국(호주, 라이베리아, 온두라스, 니카라과)의 결과로 통과되었다. 우리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다시한번 전세계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환영하고 축하하는 바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쁜 소식과 함께 좋지 않은 소식도 들어야 했다. 유네스코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아 이번 총회에서 전세계 문화NGO를 대표하여 ‘문화다양성 협약’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협약에 대한 논의과정 전체를 모니터했던 ‘국제문화전문가단체 국제운영위원회(CCD-ILC)’의 긴급 보고서에 따르면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투표이후 성명서를 발표하여 투표결과가 만장일치가 아니었고 협약이 합의에 의해 채택되지 않았음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또한 ‘협약의 일부 문구가 모호하며 ... 조항 중 일부가 명백하지 않아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논쟁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특히, 다른 협약과의 관계를 규정한 협약 20조에 대해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항이 기타 국제협정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동 협약과 기타 국제협정과의 관계를 명시한 제20조는 기타 국제협정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거나 변경, 손상하는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대표단은 동 협약의 조항 하에서 채택되는 조치가 문화분야뿐만 아니라 기타 분야의 국제협약에 명시된 권리 및 의무와 배치되지 않는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는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91개 유네스코 회원국이 논의하고 합의한 도도한 흐름을 애써 외면한 채 외교통상부가 앞으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려 하는지 국제사회의 조롱을 자처하면서까지 보여주고 있기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채택된 ’문화다양성 협약‘의 제20조 1. (b)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b) 당사국은 이미 가입한 기타 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혹은 기타 국제협정에 가입할 때, 본 협약의 관련 조항을 고려한다.” 이 조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타 국제협정의 문화에 관한 조항이 항상 명백한 것은 아니고, 따라서 기존 협정을 존중함과 동시에 문화조항의 해석과 적용은 문화다양성 협약에 의거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장 반발했던 협약 제20조에 대한 한국 대표단의 성명서는 이 조항의 문구를 부정하거나 훼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투표이후 한국과 함께 4개국이 협약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미국은 협약에 반대하는 의사를 다시한번 표명했고, 뉴질랜드는 20조와 관련하여 더욱 비판적인 성명서를 발표했고, 멕시코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기타 협정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일본은 만장일치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유감과 함께 투표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이 앞으로도 유네스코에 적극 참여할 것을 희망했다고 한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나선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뉴질랜드는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당시 시청각서비스(영화, 방송, 음반 등) 분야를 전면 개방하여 주요 방송사가 외국자본에 매각되고 자국의 문화컨텐츠를 생산할 기반을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멕시코는 94년 발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하면서 스크린쿼터를 폐지하여 연간 백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던 영화강국에서 순수 멕시코 자본만으로는 1년에 수편의 영화를 만들기도 어려워진 상태로 전락했다. 일본은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며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은 어떠한가? 2002년 기준으로 미국이 문화산업 분야에서 벌어들인 순익이 6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 300조원 이상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이며, 단일산업으로는 이미 우주·항공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을 능가하는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나라이거나 무차별적인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하며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들과 함께 ’문화다양성 협약‘을 훼손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국정부의 성명서 발표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를 자처하고 나선 것에 다름아니다.
 
또한, 오늘 발표된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는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외교통상부의 보도자료는 유네스코 총회의 표결결과와 ‘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20조에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정부의 입장과 함께 다음과 같이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 “동 협약 채택시 미국은 문화다양성 협약이 성급하게 성안되어 흠결이 있는 협약인 바, 동 협약의 모호한 규정은 상품, 서비스 및 사상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제하고, 인권 및 근본적인 자유를 침해하는데 오용될 수 있으며, 자유무역을 통제하는 근거가 될 수 있어 동 협약의 채택에 반대하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채택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나라들의 의견은 완전히 도외시한 채, 미국의 억지 주장만을 여과없이 반복하고 있는 이 보도자료가 과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의 보도자료인지, 미국 국무부의 성명서인지 분노를 넘어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국제사회가 미국의 일방주의와 문화패권주의에 일대 경종을 울리며 만들어 낸 ‘문화다양성 협약’의 취지를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경제부처가 훼손하고 왜곡하려 든다면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2005년10월21일,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문화연대 미술인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미술인협회 새건축사협회 서울연극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영화마당 영화인회의 영화진흥위원회노동조합 우리만화연대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민족음악인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한국연극협회 한국연예협회 한국영화감독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한국출판미술협회 한국출판인회의 (가나다순)
 
--------------------------------
'문화다양성협약 채택' 의미와 전망 [필름 2.0 2005-10-21 14:20, 강병석 기자]
 
33차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다양성 협약’의 정식명칭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문화 컨텐츠가 여타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의 지위에서 협상 대상이 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 WTO의 다자간무역협상과 지역간, 양자간 무역협상으로는 문화 컨텐츠와 같은 비(非)무역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실제 WTO 출범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문화 개방 압력이 줄곧 이어져왔으며,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문화, 특히 시청각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이어졌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 컨텐츠의 사회, 문화적인 상징성을 인정하고 국제법 차원에서 문화 약소국의 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는 문화 다양성이 상징적 해석을 넘어 실질적 권한을 획득함으로써 스크린쿼터 논란을 비롯해 각종 국내외 문화정책 수립 및 무역 분쟁과 관련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체 6장 34개조, 4개의 부속서로 이뤄진 ‘문화다양성 협약’은 세 가지의 주요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협약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개별 국가의 문화주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제 5조와 6조를 통해 자국 내에서 문화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 및 개선할 수 있도록 각국이 채택한 정책 및 방안을 합법적으로 인정한다. 그간 미국의 통상압력에 시달렸던 한국 스크린쿼터제도가 대표적인 예.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들이 정당한 권한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지원 또한 명시돼 있다. 문화 약소국이 표현의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도록 국제 협력과 연합을 강화한다는 것. 각 개별국가는 양자간, 지역간, 국가간 협력을 강화하고 문화 개발 정책을 통합할 것을 약속하고(12, 13조), 개발도상국 내 문화산업의 강화, 예술과 문화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특별 대우를 명시하고(13조, 14조), 국제기금을 통한 경제적 지원까지 규정하고(18조) 있다. 국가적 차원의 문화 주권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 확대, 발전 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쟁점으로 부각돼 온 여타 국제협약과의 관계 설정은 20조에 명시돼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회원국이 기타 협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반면, 이러한 국제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문화다양성 협약을 반드시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여타의 국제 협약에 좌우되거나,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구체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채택 절차 역시 많은 의미를 갖는다. 투표 참여국 154개국 중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의 반대 만으로 통과된 것. 지난 10월 4일, 유네스코 총회를 앞두고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회원국 통상 장관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문화 다양성 협약이 WTO의 세계무역 자유화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협약 채택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18년 만에 유네스코로 복귀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유네스코에서 우리가 함께 기울여온 모든 바람직한 노력이 문화다양성 협약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동참과 협력을 촉구한다”고 '경고'하고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안한 28개 수정조항은 모두 기각된 채 협약이 채택됨으로써 일방적 무역 자유주의를 밀어붙였던 미국의 문화 노선에 국제적으로 강력한 제동이 걸리게 된 셈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2007년 6월까지 30개 회원국의 비준을 받을 경우, 즉시 집행 기구를 구성하고 2007년 10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회원국의 비준 여부가 한계로 지적되고 있지만, 협약 추진을 EU에 위임한 EU 25개 회원국이 2004년 9월부터 진행돼 온 협의 과정 내내 공동 입장을 취하고 적극 지지해왔다는 사실은 협약 발효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오히려 비준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한계가 국가간 협상에서 통상마찰을 일으킬 여지를 남겨 놓았다. 하지만 국제협약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은 국제적 공동전선은 이를 상당부문 무마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둘러싸고 벌여졌던 스크린쿼터 논란은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과 함께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총회에 앞서 지난 17일 열렸던 유네스코 문화분과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진 바 있으며,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총회 연설을 통해 “협약안 채택으로 2001년 ‘문화다양성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귀중한 이정표를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크린쿼터 유지를 위한 국제적, 국내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이 주목되며 이후 국회비준 절차 역시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7년 협약 발효 이전, 스크린쿼터 축소를 위한 미국의 공세 역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
[민주노동당 정책논평]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환영하며 (2005. 10. 21.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 조속한 국회 비준과 국내 문화다양성 보장을 위한 조치가 따라야 - 
 
마침내 유네스코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되었다. 이 협약은 154개 회원국이 참여한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채택되었다. 헐리우드 등 거대 문화자본과 자유무역주의자를 대변해온 미국과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국제사회는 문화다양성 보장이 인류의 권리이자 인류 발전의 기반임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 협약은, 국제사회가 문화다양성의 사회적 가치를 보장하도록 하고, 국제사회의 다양한 의제에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반영토록 하며, 특히 통상에서의 문화적 예외를 인정한다. 따라서 이제, 경제 가치에 의해 종속되어온 문화적 가치의 복원과 함께 스크린쿼터제 등 국제 문화자본에 맞서 국내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이 협약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문화 표현의 권리, 언어를 비롯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문화다양성의 보장과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는 한편, 협약의 독립성과 영향력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가 문화다양성 존중에 필요한 국제 협정을 권고하도록 하였다. 즉, 문화적 표현은 인류의 권리이자 사회의 의무임을 확인하였고 상징적으로 논의돼온 문화다양성 보장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부여하였으며, 스크린에 제한된 다양성 논의의 범위를 언어와 사상 그리고 표현의 영역까지 넓혀 주었다.
  
그러나 문화다양성협약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 협약은 타 협약이나 협정에 대해서 강제력을 갖지 않고,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WTO 체제에서의 FTA 등 통상협상에서 문화다양성 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국내에서의 문화다양성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또한 필요하다. 우선 국회는 이 협약을 조속히 비준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국회와 정부는 문화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행 법의 개폐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문화적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청소년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온 법령을 개폐하고, 국내 문화자본에 예속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소수자 등의 문화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하위쿼터제의 개발 및 운영, 문화 표현과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지원제도의 마련, 공정이용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저작권제도 개선 등이 그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4 23:37 2009/05/24 23:37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골프장 경기보조원, 최초로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 인정받아

View Comments

이런 판결이 나온 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일간 신문에서는 이를 작게 다루어서  그냥 넘어갔겠지.
캐디는 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특수고용직들이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노동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택배노동자들, 그리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이 게속되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아마 묻혀버릴 게 틀림없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
“캐디도 근로자” 판정, 왜 중요한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2009/05/18 [04:59])
골프장 경기보조원, 최초로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 인정받아
  
학습지교사, 간병인,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그리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 사람들은 실제로는 소속된 회사가 있는 노동자임에도, 형식상으로는 위탁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왔다.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과 최저임금, 복지, 그리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열악한 지위에 놓여있다. 더욱이 현 정권 들어서 실업대란과 함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되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부당노동행위와 대량해고 사태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과 법의 공정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이 시기, 노동위원회가 골프장 캐디(경기보조원)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정을 내려 사회적으로 환영을 받고 있다.
 
경기보조원들로 구성된 전국여성노동조합 88CC분회에 대해 노동조합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결정(4월 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과,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키고 해당기간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주문(4월 16일 중앙노동위원회)이 잇따라 나온 것. 최근 공개된 판정문을 통해 그 의의를 살펴본다.
 
노동위원회, 88컨트리클럽 캐디 ‘부당해고’ 구제결정
용인에 있는 88CC에서는 지난 1년간 58명의 조합원이 제명, 출장유보 등 사실상 집단해고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여성노동조합 88CC분회는 합법적인 노조로 10년간 활동해왔고, 공기업인 국가보훈처가 위탁 운영하는 88관광개발㈜과 노사협의도 몇 차례 성사시켰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사측은 노조탈퇴를 종용하며 작년 7월부터 조합원 부당징계를 통해 압박을 가해왔다. 급기야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등의 이유로 조합원을 제명, 대량 출장유보 징계를 내렸다.
 
이에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조합원들에 대한 출장유보조치에 대해 취소하고, 정상적으로 출장했더라면 받았을 수입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상의 노동자로서의 권리(조합원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사측에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거나 회유한 행위를 중단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판정은 중앙지방위원회의 ‘부당해고’ 관련한 결정이다. 사측이 지난해 9월 24일 제명처분을 한 사건에 대해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원직에 복직시킬 것과 해고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지급하라고 한 것. 이는 한국에서 경기보조원에 대해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것이다.
 
고경섭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한 것은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연장근로를 하려면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회사가 그만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실제로 거기까지 나갈 수 있을지 봐야겠지만, 일반근로자들처럼 퇴직금도 지급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도 근로기준법 보호받을 수 있어야
‘캐디가 노동자인가’ 논쟁은 지난 10년 간 지속되어왔다. 우리 법은 경기보조원들이 손님들에게 받는 돈인 ‘캐디피’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회사 쪽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지위를 부정해왔다.
 
이번 판단은 “회사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경기보조원들의 역할과 “캐디피를 얼마나 받을지 회사가 정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캐디피가 실제론 ‘임금’과 같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기존 판결보다 획기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중노위의 결정이 모든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에 대해 인정해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고경섭 노무사는 “88CC는 이미 노사간 단체협약도 체결한 적이 있고, 회사 내 경기보조원의 근로조건을 규정한 수칙이 있어 모집이나 휴가 등 조건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보다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캐디라고 해서 근로자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사실관계를 조금 더 들여다봐서 근로자에 가까우면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것 정도는 (법적으로) 구성됐다”고 평가했다.
 
국가보훈처에 “노사간 대화의 채널 마련” 요구
나아가 이같은 판정은 근래 몇 년간 변화하고 있는 대법원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 대법원 판례를 보면, 경기보조원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는 해당(1993)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1996)고 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대법원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판단에 있어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11일 박선숙 의원실에 보낸 의견서에서 “(대법원의) 과거 판례들이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근로자성을 판단해왔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인정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대법원의 태도가 선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예로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근로조건에 관한 일부 사정이 결여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유만으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시”(2001)한 것과, 고정급이나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사회보장제도 등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요인”을 통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부인해선 안 된다(2006)고 한 것을 들었다. 민변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판례이론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기보조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은 “타당”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한편, 소송당사자인 88cc분회 조합원들은 노동위원회 판정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며 13일부터 국가보훈처 앞에서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김은숙 전국여성노조 88cc분회장(37세)은 “지난 10년간 법적인 다툼보다는 노사화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며, 88cc의 실제소유주인 국가보훈처가 “대화의 채널”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숙 분회장은 “경기보조원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다른 경기보조원들에 대해서도 (88cc분회 조합원들이) 상징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4 22:09 2009/05/24 22:09

8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블로그 분류 수정 및 추가

View Comments

진보블로그의 분류를 수정했다.
그동안의 분류가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귀찮기도 해서 놔두었는데, 이번에 티스토리블로그의 글이 임시조치를 당한 것을 계기로 '펌글에 코멘트를 다는 형태의 글' 또한 진보블로그에 쓰기로 한 것이다. 아마 당분간 도배 형식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다만 대문 노출이 되지 않도록 신경쓰는 글의 수를 늘리고, 전공 관련 글들은 되도록 다음의 카페로 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여러 사안에 코멘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그리고 여기에 펌글을 올릴 때에도 그대로 Ctrl+C와 Ctrl+V를 애용하는 것보다 링크를 걸면서 주요하게 주목할 만한 대목만 담아오도록 해야겠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려고 노력을 했는데, 내가 정리 능력이 부족한 때문인지 요약하는 것이나 줄이는 게 쉽지 않더라.
 
진보블로그에서도 용량이 적은 파일이면 음악파일 뿐만 아니라 문서 파일도 첨부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첨부파일이 필요한 것은 여전히 티스토리블로그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지.
 
행정 및 정책에 관한 분류를 만들기는 했는데, 여기에 올릴 수 있는 글이 얼마나 될지...
블로그에 신경쓰기보다 빨리 논문을 쓰는게 우선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ㅠ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4 21:59 2009/05/24 21:59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잭 런던 <강철군화>를 다시 읽어볼까나

View Comments

2009/03/14 08:27에 쓴 코멘트 추가보완
<강철군화>가 20년 만에 재간되었다고 하는데, 20년 전에 나왔던 것과 내용이 다른 걸까. 20년 전에 내가 읽었던 <강철군화>는 감동이었다. 그것을 소설 자본론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지만, 당시 <자본론>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그에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정도의 생각할 꺼리를 남겨두었다고나 할까.
 
아래 서평에서 장정일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책이 의미 있다고 보았다. 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역시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었고... 아마 지금 다시 봐도 <강철군화>는 흥미진진할 것 같다.
 
이재유의 서평은 다시 한번 <강철군화>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이는 레닌의 질문이기도 하였다. 이재유는 이에 대한 답을 간결하지만 너무 추상적으로 하고 있어서 붕 뜬 느낌이다. 다시 읽는다면 나는 또 무슨 생각꺼리를 얻어낼 수 있을까.  

 
----------------------------------------------
'강철군화'의 시대…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프레시안, 이재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건국대 강사, 2009-05-16 오후 2:44:23)
[철학자의 서재] 잭 런던의 <강철군화>
 
<강철군화>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은 바야흐로 '강철군화'의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나라이다. 철거민을 비롯한 도시 빈민들이 '강철군화'에 의하여 짓밟혀 목숨을 잃고, 불에 타 죽는다. 수만의 평화적인 촛불 또한 '강철군화'에 의하여 '불법'(한국의 실정법이 보장하지 못하는 인권에 대한 모든 요구는 불법으로 매도 당한다. 실정법은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낼 수 있는 한에서만 시민권을 보장할 뿐이며, 이익을 내지 못하는 모든 인간 활동은 무가치한 것이며, 그런 활동을 요구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취급 당한다)으로 낙인 찍히면서 무참하게 꺼져 간다.
 
0교시 수업을 없애서 졸지 않고 수업하게 해 달라는 고등학생들,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대학생들, 생존의 위협을 그나마 덜 받는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는 이주 노동자들, 최소한의 이동권 보장과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장애인들, 성 소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염원과 희망의 촛불이 '강철군화' 앞에 서서히 꺼져 갔다. 이러한 모든 부당한 일들은 이미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펴냄)에게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하에 더욱 광포하고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를 배회하고 있는 '자본'이라는 저 유령이 날뛰고 있는 이곳, 이 시점에서 과연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혹자들은 <강철군화>가 소설 정치경제학이니, 소설 자본론이니, 100여 년 전에 이미 오늘날 자본의 첨예한 모순을 예견했느니 하면서 이 책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일종의 예언서처럼 평을 하기도 한다(마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자본주의를 딱 들어맞게 설명을 하고 있느니 또는 아니니 하는 부르주아들의 호들갑과 어딘지 모르게 무척 닮아 있다).
 
그런데 <강철군화>에 대한 이런 평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평들에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평들에는 '봐! 결국 해봐야 강철군화에게 무참하게 짓밟히잖아!'라는 교묘한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잭 런던은 이러한 평들에 깔린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는 <강철군화>에서 먼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이미 사회주의 국가를 꼭 올 수밖에 없는 사회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은 미완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꼭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잭 런던은 20세기 초와 이로부터 700년이 지난 가상 시점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잭 런던이 우리에게 남겨 준 과제인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강철군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사회주의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한 마리로 말한다. "권력! 우리 노동계급이 그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강철군화>에서 나타난 노동계급의 권력 쟁취를 위한 실마리
그렇다면 이 권력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처음에 잭 런던은 부르주아 의회를 장악하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소설 전체에 걸쳐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환상인가를 너무나 절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이런 점에서 의회주의자들은 의회 진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회 장악이 아니라면 고전적인 방법대로 폭력 혁명을 통해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우리도 힘으로 봉기하는 거지요."
"그때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혈 속에 잠겨 있을 거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필자 수정) 힘이란 게 어디에 있지요?"
 
도대체 폭력혁명을 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 즉 힘은 정말로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역사를 통틀어서 보면 대체로 그 힘이란 '강철군화' 앞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혁명은 도처에서 실패했고, 사회주의권은 무너져 버렸다. 이제 그 힘을 어디서 찾아서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 다시 의회주의로 돌아가서 자본주의 체제만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표를 통해서? 이미 잭 런던은 그것이 환상임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밝혀냈다.
 
그러면 도대체 그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그 힘을 현실화시켜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여자들이야말로 파업의 가장 강력한 추진 세력임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서 한사코 반대의지를 굳혔다. 그들의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또 그 총파업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사람들의 기분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대중의 유머 감각에 적중했다. 그 아이디어는 전염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학교에 걸쳐서 어린이들까지도 수업을 거부했으며, 학교에 오는 교사가 있더라도 텅빈 교실로부터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총파업은 거대한 국가적 야유회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총단결이라는 생각도 그처럼 확고한 증거로서 나타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대적인 놀이판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위험도 없어졌다는 점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유죄인 판에, 어떻게 어떤 사람들만 처벌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 하나-여성의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 확보
여기서는 크게 2가지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처럼 보인다. 첫째,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 스스로를 반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형성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이다. 둘째, 노동계급의 총파업을 어떻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민중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놀이판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둘 중에서 선차적인 것은 첫째이다. 여성, 그리고 여성의 노동이 모든 사회적 생산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즉 자본을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인데, 이 노동은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의 할 일에 대해서 말해 보자. 첫째 할 일은 출발점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여성이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사회화, 즉 상품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화를 시켜봤자 결국 여성의 몫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으로 그 부담을 여성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즉 여성이 자본과 임금 노동자인 남성 노동자에게 이중적인 착취와 억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노동계급→자본이라는 먹이사슬 체제처럼 구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신체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자본은 이 노동자가 기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노동자 역시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데, 이렇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인간 '생산'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임금도 지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내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부불노동(임금으로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착취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을 가사노동, 돌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노동계급 자신 내부에서의 착취의 계기를 근절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경제주의적 경향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을 더욱 더 억압과 착취의 사슬로 옭아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제주의적 경향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상승에만 초점을 두는 것인데, 개별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임금 상승에 따라서 노동자 자기 생산을 위한 더 많은 요구를 여성에게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대 자본 투쟁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의 모든 임단투 투쟁은 일단 아이들의 공동 양육과 공동 교육을 위한 물적 조건 확보에 맞춰져야 한다. 공동 양육과 공동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자본으로부터 쟁취해야 한다. 이렇게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될 때, 노동계급의 진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이는 노동운동이 고민하고 있는 지역운동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둘-노동계급의 총파업을 대대적인 놀이판으로 만들기
둘째 할 일에 대해서 말하려면, 첫째 할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할 필요가 있다. 공동 양육, 공동 교육은 철저하게 자본 교육, 제도권 교육으로서 공교육에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반 자본 교육, 비 제도권 교육, 노동계급 교육으로서의 사교육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 사교육 체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상상력 풍부한 열린 인간을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 생산의 방법으로는 각 연령 별로, 각자 하고 싶은 영역 별로 코뮌을 형성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코뮌들이 상호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 개인들로 자신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회적 개인은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각 활동 단체들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부모나 누나, 형들이 파업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일상생활을 잠시 접고 여행 가듯이 파업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각 코뮌 단위로 각각의 깃발 아래서 먹고 놀고 자유로이 담소를 나누면서 휴식을 가지는 파업이 될 것이다. 물론 이 파업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파업, 나아가서 모든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파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모든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사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사표 던지고 논다는데, 그것을 불법이라고 잡아 갈 것인가? 설령 잡아가더라도 감옥에는 온통 나의 동지들일 테니 그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감옥에서 놀면 될 테니까 말이다.
 
자본에 대항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본이 무엇을 하던 간에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만드는 일이다. 몇 푼의 임금 인상이 새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동계급 자신 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악한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강철군화>를 완성하는 길일 것이다. 또한 자매,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우리 노동계급의 손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100년 전 한 소설가의 경고…'결국 전쟁인가?' (프레시안, 장정일 소설가, 2009-03-13 오후 4:06:17)
[화제의 책] 20년 만에 재간된 <강철군화>
 
궁리에서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 가운데 1차분 세 권을 읽었다. 연번대로 나열하면 <비포 아담>(1907)·<버닝 데이라이트>(1910)·<강철군화>(1908)인데, 괄호 속은 작가가 작품을 발표했던 연도다.
 
책을 좀 읽은 내 또래의 독자들은 1989년도에 한울에서 출간된 <강철군화>의 강렬함을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같은 출판사는 의욕적으로 <마틴 에덴>·<잭 런던 모험소설>을 연이어 펴냈고, 마지막엔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까지 내놨다. 여담이지만, 잭 런던에 혹해 그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순식간에 읽고 난 후 남은 것은 허전함이었다. 아니 배반감이란 표현이 더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라는 실망감을 역자 서문에 솔직히 적어 놓았다.
 
실제로 그 여행기는 잭 런던의 우생학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고약하게 드러나 있으며, 제국주의 일본·러시아·중국에 끼어 신음하는 조선의 운명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행여 이 책을 찾아 읽으실 독자는,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책세상 펴냄)을 함께 읽으시라. 알고 보면 잭 런던의 기분 나쁜 '조선 관찰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 지식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한계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반짝 소개된 잭 런던은 오랫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다가, 몇 년 전에 잭 런던의 미완성 유고인 <암살주식회사>(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되었다. 여담을 더 하자면, 이 소설이 쓰인 계기가 재미있다. 당대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엄청나게 씀씀이가 늘어났던 반면, 스물네 살 때 첫 단편집을 낸 이래로 쉬지 않고 작품을 쓰다 보니 상상력과 소재가 고갈됐다. 그래서 돈을 주고 이야깃거리를 샀는데, 34세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소재를 판 사람은 25세의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였다.
 
<암살주식회사>는 1910년 3월에 잭 런던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70달러를 주고 샀던 열네 편의 짧은 소설 개요 가운데 하나다. 그는 개요를 받자마자 반 넘어 썼던 이 소설을 중도에 포기했는데, 사후 40여 년이 훨씬 지난 1963년에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L 피시가 결말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잭 런던의 화제작 <강철군화> 이후, 작가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다. 참고로 싱클레어 루이스는 훗날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펴냄). ⓒ프레시안
다시 '잭 런던 걸작선'이다. 나는 세 권의 책을 받고나서, 국내 초역된 두 권의 책이 궁금하기보다, 재간된 <강철군화>가 더 반가웠다.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
 
<강철군화>가 처음 번역되었던 1989년 7월, 이 소설은 일개 문학 작품이 얻기 어려운 '소설 자본론'이란 명망을 얻었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소설의 줄거리보다, 소설 속의 정치·경제적 분석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자본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번역서가 나오고 난지 불과 몇 달 뒤인 11월,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고, 몇 년 뒤인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됐다. 그러면서 <강철군화>는 시나브로 절판의 수순을 밟게 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망각됐다.
 
이 소설은 공상적 사회주의가 완성된 2632년, 우연히 발견된 미국 혁명 투사들의 기록을 발굴하게 된 형식을 취한다. 부연하면 이 소설의 시간적 무대는 사회주의 혁명 투사들이 미국의 과두지배 계급에 대항해서 일으켰던 1차 봉기가 실패하고, 새로 준비된 2차 봉기를 목전에 둔 1912년과 1932년 사이다. 소설 속의 과두계급은 의회·법원·군대는 물론이고 언론·학교·교회까지 물샐 틈 없이 장악하고 있는 독점 자본가들이다. 향후 300년간 지속될 작중의 과두계급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빈곤·실업·산업 재해에 무방비인 채 노예로 살아가며, 언론인·지식인·종교인들은 끽 소리 없이 과두계급에 기생한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서를 펼치면 <강철군화>가 재현하고 있는 묵시록적인 풍경이 작가의 공상이 아니라, 잭 런던이 생존했던 시대(1876~1916)의 가감 없는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분화하면서 최초의 양극화를 맞이하는 시기였으며, 독점이 가속화되던 때였다. 중산층은 나날이 몰락하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당연히 노동운동이 불타올랐으나, 독점재벌의 사주를 받은 파업 파괴자들의 총격에 쓰러져 갔고, 경찰과 언론이 그런 불법을 비호했다.
 
<강철군화>는 앨런 브링클리가 쓴 방대한 저서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 펴냄)에 쓰인 것처럼 "미국 역사에서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시기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많은 지지를 받은 때는 없었다"(2권, 501쪽)던 그 시절에 나왔다. 하므로 이 소설은 열아홉 살 때 사회당과 처음 접촉하고 스물다섯 살 때 사회당 후보로 오클랜드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던 사회주의자로서의 작가의 이력, 1860년대 초부터 번성한 폭로작가들(muckrakers)의 전통, 그리고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작 10만 명도 되지 않던 사회당 지지자들이 1912년에는 100만으로 늘어났던 그 시대의 혁신주의 정신이 낳은 혼합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잭 런던의 사회주의적 지식과 사태 분석이 이루어낸 예언의 정확성이다. 그는 국내의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한 나라의 파시즘을 추동하게 되며, 출구를 찾지 못한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분석하면서, 미구에 있을 제1차 세계 대전을 미리 예언했다. 길지만 인용한다.
 
"(미국의) 과두지배체제는 독일과의 전쟁을 원했다. 그들이 전쟁을 원하는 이유는 열두 가지쯤 되었다. 그러한 전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카드를 다시 섞어 새로운 조약과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과두지배체제는 얻을 게 많았다. 더 나아가, 전쟁은 국가의 많은 잉여를 없애주고, 모든 나라를 위협하는 실직자 군단을 줄이고, 과두지배체제에게는 그들의 계획을 완성하여 수행할 수 있는 숨 쉴 여유를 줄 것이다. 그런 전쟁은 사실상 과두지배체제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전쟁은 해산할 필요가 없는 대규모 상비군을 창출한 것이며, 대중의 머릿속에 '사회주의 대 과두지배체제' 대신 '미국 대 독일'이라는 쟁점을 심어줄 것이다."
 
잭 런던은 1907년에 쓰고 1908년에 발표한 <강철군화>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1912년 12월 4일에 미국 공사(公使)가 독일 수도를 철수했다. 그날 밤 독일 함대는 호놀룰루를 급습해 미국 순양함 세 척과 밀수 감시선 한 척을 침몰시키고 도시를 폭격했다. 다음 날, 독일과 미합중국 둘 다 전쟁을 선포"했다고 건조하게 써놓았다. 2년 뒤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의 적중시킨 것이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란 말인가? 20년 만에 새 번역으로 재독한 <강철군화>는 과두지배와 파시즘에 대한 20세기 초의 공포를 비웃게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세계 대전을 점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석유와 군산업체의 이익에 휘둘린 미국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을 보건대,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국지적인 저강도 전쟁을 잦게 하리란 우려는 할 수 있다.
 
<강철군화>에 자세히 설명되었듯이 과두계급이란 한 나라의 부를 몽땅 차지한 한줌의 독점재벌과 그들의 정권을 가리킨다. 이들은 국가의 행정기관을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무료 '서비스 기관'으로 축소시키고, 국가의 사법기관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법을 무마해주는 '로펌'으로 전락시키며, 국가의 공권력은 '용역(깡패)회사'로 만든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오치 미치오의 <와스프(WASP)-미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살림 펴냄)를 보면, 헤밍웨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잭 런던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학교 이사회에 나가 "이런 책을 읽히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후 맥락이 모자라긴 하지만, <비포 아담>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철군화>가 '소설 자본론'이라면 이 소설은 '소설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잭 런던은 자서전적인 소설 <마틴 에덴>이 출간된 1909년 이후, 진지한 작가 생활을 포기했다고 본다. 무명의 작가에게 작품의 소재를 양도받은 행각이 그런 심증을 갖게 하는데다가, 쓰다가 말았던 <암살주식회사>가 암살단을 만들어 비윤리적인 사업가를 한 명씩 제거한다는 '윤리적 광인'들의 순진 소박한 문제 해결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애독자로 거느리기도 했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 후퇴다.
 
▲ <버닝 데이라이트>(잭 런던 지음, 정주연 옮김, 궁리 펴냄)
<마틴 에덴> 이후로도 잭 런던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타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평이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자서전적 소설 <버닝 데이라이트>는 누구나 흉내 내고 싶은 태양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남자라면 자신의 힘으로 도시를 건설해 봐야 한다! 그런데 버닝 데이라이트는 무려 두 개의 도시를 세우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한 아르카디아를 만들어, 거기에 은거한다.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스토우 부인과 마크 트웨인을 잇는 미국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잭 런던은 '미국의 꿈'을 실현한 행운아이면서,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스르는 '빨갱이'가 됐다. 성공한 부르주아이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을 추구했던 그는 입방아를 찧기 좋은 먹이였다. 내가 본 미국 문학사는 잭 런던을 거의 난외로 처리하거나, 소략하게 다룬다. 그러면서 예의 '자기모순에 빠진 작가'라느니 '알코올 중독자'면서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였다는 인물평을 앞세운다.
 
이런 꼬투리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마르크시즘의 영향력과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원천 소거하기 위한, 강단 연구가들의 정직하지 못한 술책이다. 대체 자기모순이라곤 없으며, 술독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가 아니었던 작가가 어느 세상에 존재하는가? 주류 미국 문학사가 떠받들고 있는 헨리 제임스·헤밍웨이·피츠제럴드·포크너도 알고 보면 더했다.
 
작가에 대한 풍문을 제거하고 나면, 훨씬 윤택해지는 텍스트가 잭 런던이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가 자국의 양극화와 20세기 최초의 세계화로 몸살을 전운(戰雲)을 앓던 시대였던 만큼, 그것과 똑같은 국내 문제와 21세기의 세계화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들에겐 더욱 각별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
‘잭 런던 걸작선’ 미국 사회주의 싣고 오다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2009-03-13 오후 09:24:19)
 
 
〈비포 아담〉잭 런던 지음·이성은 옮김/궁리·9800원
〈버닝 데이라이트〉잭 런던 지음·정주연 옮김/궁리·1만2800원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곽영미 옮김/궁리·1만1800원 
 
잭 런던(1876~1916)은 우리에게는 <야성의 부름> <하얀 엄니> 같은 어린이·청소년용 동물 소설의 작가로 주로 알려져 왔다.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다룬 그의 또다른 대표작 <강철군화>(1908)가 1980년대 말에 번역 소개된 일은 그를 이념소설의 작가로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혁명의 전령사로 일컬어지는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어머니>(1907)에 견줄 만한데, 미국과 러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두 작가는 어린 나이서부터 갖은 직업을 전전하며 고학을 거쳐 작가로 입신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비포 아담’ ‘버닝 데이라이트’ 국내 초역
전설의 ‘강철군화’ 혁명가 일대기 직조

체제 도구 된 사법부·언론, 변절한 노조 등 우리사회 현실에도 시사하는 내용 많아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9편의 장편소설과 200여 편의 단편, 500여 편의 논픽션을 남긴 잭 런던의 문학세계를 갈무리한 선집이 나왔다. 출판사 궁리가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이 그것으로, <강철군화>와 <비포 아담> <버닝 데이라이트> 등 세 권의 장편을 1차분으로 선보였다. 선집은 올가을 <야성이 부르는 소리>로 이어지며, 2011년 초에 전체 일곱 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1차분 세 권 가운데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는 이번이 국내 초역이다. 1907년작인 <비포 아담>은 ‘아담 이전’이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원시 인류의 삶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소설은 20세기 초 현대 미국의 한 젊은이가 꿈에서 경험하는 원시인의 흥미진진한 삶을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인 ‘큰 이빨’은 원래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생활하는 나무부족의 일원이었으나 의붓아비에 의해 쫓겨난다. 이웃 동굴부족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맴돌던 그는 가까스로 동굴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며 거기서 평생의 동무가 될 ‘늘어진 귀’를 만난다. 큰 이빨과 늘어진 귀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처럼 소년다운 모험을 즐기며 성장한다. 호랑이 ‘칼송곳니’를 놀려먹는가 하면 들개 새끼를 데려와 애완동물처럼 키우다가 잡아먹기도 하며, 통나무 둥치를 뗏목 삼아 강을 건너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도 한다.
 
성장한 큰 이빨은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며 온순한 암컷 ‘재빠른 것’을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동굴부족의 우두머리인 ‘붉은 눈’이 재빠른 것에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그 일이 조금 잠잠해지는 듯하자 더 큰 위험이 닥친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불부족’이 동굴부족을 공격한 것이다. 부족원들 대부분이 몰살당한 가운데, 큰 이빨과 재빠른 것은 몇몇 부족원들과 함께 살아남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멀고 험한 여행을 떠난다….
 
<버닝 데이라이트>(1910)는 ‘해가 불타고 있어!’(Daylight is burning!)라는 말로 동료들을 깨운다고 해서 ‘버닝 데이라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내, 일럼 하니시의 이야기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그가 금 채굴과 밀가루 매점매석 등으로 한몫을 잡아 도시로 떠나기까지를 그린다. 2부의 무대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1부에서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연상시키는 야성미와 남성성의 소유자로 그려졌던 데이라이트는 “규모가 큰 포커판”(205쪽)인 캘리포니아의 재계에서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동안 냉혹한 자본가로 면모를 일신한다. “난 버닝 데이라이트야. 신도 악마도 죽음도 파멸도 두려워하지 않아”(193쪽)라는 말은 황금신 마몬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적 인물 데이라이트의 자기 선언이라 할 법하다.
 
2부의 후반부는 신데렐라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속기사로 일하는 디디 메이슨에게 매혹된 데이라이트가 끈질긴 청혼 끝에 디디의 승낙을 얻어 내는데, 그 대신 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전원으로 들어가 단순 소박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결말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글렌 엘런 농장에서 농업공동체를 꿈꾸던 잭 런던의 낭만적 이상주의가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강철군화>는 전세계가 사회주의로 통합된 27세기에 와서 발굴된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가의 일대기 형식을 취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1912년에서 1932년까지 미국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어니스트 에버하드. 그 기간은 소설 속 현재인 27세기에서 보자면 까마득한 과거이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1908년보다는 미래에 해당한다. 런던이 가상한 이 근미래 시점에 미국은 일곱 개의 트러스트(독점재벌)가 전체 산업과 국가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자본가와 중산층이 몰락하는 등 사회 양극화가 심해진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집회와 파업에 나서고 대중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사회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강철군화’로 표현되는 과두지배체제는 군대와 민병대, 비밀경찰, 폭력단 등을 동원해 탄압한다. 지배권력의 무기가 폭력만은 아니어서, 체제와 기득권에 봉사하는 언론과 종교, 학계와 사법계의 폐해 역시 심각하다.
 
“미국의 언론은 자본가계급에 기대어 살을 찌우는 기생충들이에요. 언론의 기능은 여론을 조작해 기존 체제에 봉사하는 것이고, 그 봉사를 썩 잘해내고 있죠.”(131쪽)
어니스트의 신랄한 어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비판 언론에 대해 운송을 중단시키고 폭도들을 동원해 인쇄시설을 불태우는 장면은 섬뜩하기조차 하다.(182~3쪽)
 
<강철군화>에서 잭 런던이 ‘예언’한 사태 가운데 한층 불길한 것은 “거대 노동조합들의 변절과 노동귀족의 생성”(231~2쪽)이다. 1937년 이 소설의 러시아어판이 나왔을 때, 트로츠키가 찬사를 보낸 것이 바로 이 대목이거니와, 대기업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이원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이 ‘기록’에서 어니스트 등이 주도한 봉기는 강철군화의 발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혁명은 일단 좌절한다. 그러나 고리키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강철군화> 역시 패배의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마무리된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영원히는 아니에요. 우린 배웠어요. 내일 우리의 대의는 다시 일어날 것이고, 지혜와 훈련으로 더 강해질 거예요.”(362쪽)

직공·해적 경험과 마르크스·다윈 흔적 곳곳에
■ 잭 런던의 문학은
 
잭 런던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신문배달, 얼음배달, 통조림공장 직공을 거쳐 굴 양식장을 터는 해적질을 하다가는 거꾸로 해적을 감시하는 해안 순찰대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바다표범 잡이 원양어선의 선원을 거쳐 부랑아로 떠돌다가 교도소에서 중노동을 하기도 했다. 열아홉 살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18개월 만에 속성으로 공부를 마치고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입학했으나 역시 집안 사정으로 한 학기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이십대 초반 알래스카 골드러시 합류를 포함해 다양하고 생생한 경험은 그의 문학의 속살을 찌워 주었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세상과 부대끼는 동안 마르크스와 니체, 다윈 같은 당대의 첨단 사상은 순전히 독학으로 습득해야 했다. 그의 사상에 때로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비체계적이고 즉흥적인 독서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가령 <강철군화> 중 ‘꿈의 수학’ 장이 마르크스 잉여가치설의 빼어난 문학화라 할 수 있다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위로부터의 혁명을 밀고나가는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모습에서는 니체적 초인의 모습이 만져진다.
 
올해로 탄생 200돌을 맞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역시 런던의 소설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원시 인류를 등장시킨 <비포 아담>에서 진화론의 영향은 뚜렷하게 보인다. 주인공인 현대 미국의 젊은이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 원시 인류의 이야기를 ‘생물학적 기억’이라고 표현한다. 유전자를 통해 뇌에서 뇌로 전달된 종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본능은 단지 우리의 유전적 형질에 찍힌 습관에 불과하”(23쪽)다. “진화가 바로 열쇠였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29쪽)는 문장은 진화론에 대한 런던의 경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나무부족과 동굴부족, 불부족이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세 부족의 운명은 적자생존의 법칙과 인류의 단계별 진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강철군화>에서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 상황에 응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사적 유물론의 결합이라 할 만한 형태가 나타난다. 어니스트가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대목을 보자. “기억하십시오, 진화의 물결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진화의 물결은 계속 흘러, 경쟁에서 연합으로, 작은 연합에서 큰 연합으로, 큰 연합에서 거대 연합으로, 마침내는 모든 연합들 중 가장 거대한 연합인 사회주의로 흐르게 됩니다.”(157쪽) 1896년 사회노동당에 가입했던 잭 런던은 1901년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세상을 뜨던 해인 1916년 사회당을 탈당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사회주의적 대의와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혁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거의 사그라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1903)의 성공 이후 그에게는 돈과 명예가 함께 굴러들어왔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호화 농장과 최고급 요트, 포도주 양조장의 소유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강철군화>의 과격한 혁명론과 <버닝 데이라이트>의 낭만적 이상주의 사이의 괴리는 그의 굴곡진 삶과 비체계적인 독서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3 03:49 2009/05/23 03:49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희망 전도사 장영희 교수의 별세소식을 듣고

View Comments

5월 10일 밤에 연합뉴스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장영희 교수. 예전에는 장애인으로 평생 목발에 의지하여 살아왔고, 암 때문에 고생을 했던 그가 왜 조선일보에 글을 쓰나 못마땅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것이 매명이 아닌 바에야 뭐라고 할 건 아니고...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만한 『내 생애 단 한번』을 헌책방에서 사놓은지 꽤 되었는데,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에세이을 읽을 여유조차 내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각박하게 사는 것인지...
 
장영희 교수는 희망 전도사, 희망의 메신저라고 불리웠다. 그가 일부러 그렇게 되고자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기 승리를 일궈온 삶 자체가 그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희망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아마 그러하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시사저널은 장 교수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커버스토리로 다루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희망이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규석의 만화 '천사의 죽음'을 보고서도 거기에 공감을 했다. 그 희망이라는 게 어쩌면 가진 자들이 불어넣는 허위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장영희 교수는 희망을 다르게 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리 열심히 제대로 사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삶 자체가 내 자신은 물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훨씬 더 좋은 조건이잖아.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고...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내 생애 단 한번』을 읽어야겠다. 어머니께만 장영희 교수가 이런 책을 썼다고 하면서 읽어보시라 권유할 것이 아니라...

 
----------------------------------------------
‘기적같은 삶’ 이야기로 남기고… (연합뉴스, 노형석 기자, 2009-05-10 오후 06:31:01)
장영희 서강대 교수 별세 
 
--------------------------------------------------
‘아프지만 불꽃같았던’ 에세이스트 삶…장영희 교수 별세 (경향, 한윤정기자, 2009-05-10 17:44:02)
 
‘내 생애 단 한 번-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57·영문학)의 삶은 자신의 에세이 제목과 닮았다. 한 살 때 앓은 중증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살았으며 암을 세 번이나 앓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로서 그는 문학이란 든든한 버팀목에 기대어 그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많은 독자와 제자, 이웃들로부터 사랑받는 삶을 살았다. 그가 지난 9일 낮 12시50분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장애를 의식하지 못했을 만큼 씩씩했던 그에게 2001년 병마가 찾아왔다. 당시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완쾌했으나 2004년에는 척추암이 재발했다. 다시 2년간의 항암치료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1년 만에 암 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장 교수는 지난 4월 말까지 두번째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원고를 손질했고, 눈 감기 하루 전 혼수상태에서 완성된 책을 받았다.
 
그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
[가신이의 발자취] 당신의 영전에 ‘승리의 월계관’을 (한겨레,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2009-05-11 오후 07:33:51)
장영희 서강대 교수
장애·병마로 얼룩진 인생마라톤 ‘역주’
희망의 이름 ‘장영희’ 잊지않겠습니다

 
---------------------------------------------
‘희망 전도사’장영희의 남겨진 꿈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감명국)
장애인으로서 암 투병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활발하게 후학들을 가르치고 집필 활동을 해온 장영희 교수. 그녀는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낼 ‘찬란한 유산'을 남겼다  
 
--------------------------------------------
삶의 원천이 되어준 가족의 힘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김지혜)
부모의 헌신이 큰 버팀목 구실…아버지와 약속 지키려 투병 중에도 교과서 작업 매달려 
 
밝고 긍정적이었던 그녀의 삶 자체가 힘든 사람들에게 저절로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원천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분신과도 같았던 가족들이다. 
 
--------------------------------------------
“울지 마, 포기하지 마 뼈만 제대로 추리면 살아”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조철)
고통에 굴하지 않고 ‘희망’ 전파했던 고 장영희 교수의 글들 
 
유방암 판정을 받았던 2001년 전까지 장교수는 장애에 대해 편견이 깊은 나라에서 긍정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아낸 ‘장애인 장영희’의 진솔한 이야기로 갈채를 받았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는 그녀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라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임을 전했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남긴 글들은 ‘향기로운 꽃 폭죽이 터지듯’ 많은 사람의 감성을 적셨다. 아픔이 오래 묵으면 지치련만 장교수는 고통을 미소와 여유로 전환시키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픈 이들에게 그녀는 “질시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용서가 더욱 귀중하고, 죽음이 있어서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실연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더욱 귀중하고, 눈물이 있기 때문에 웃는 얼굴이 더욱 눈부시지 않는가. 그리고 하루하루 극적이고 버거운 삶이 있기 때문에 평화가 값지고,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라는 글로 위로했다.
 
그녀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을 묶으면서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삶을 살아가는 데, 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하며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고,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라고 말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인간에게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장교수는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라며 문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녀는 한 매체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영미시 산책’이라는 코너에서 ‘희망’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희망은 우리의 영혼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습니다. 행복하고 기쁠 때는 잊고 살지만, 마음이 아플 때, 절망할 때 어느덧 곁에 와 손을 잡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입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그칠 줄 모르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가 삶에서 공짜로 누리는 제일 멋진 축복입니다.”
 
장교수는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시 구절이 인상 깊었다면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독자들과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살아보니 인생은 일사천리로 쭉 뻗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숲 속의 꼬불꼬불한 오솔길도 지나고, 어디 봐도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광야도 지나고, 빛줄기 하나 없는 터널도 지납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도 나옵니다. 하지만 헤매본 사람만이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끝까지 해보라’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삶은 예측불허. 진흙탕 길도 끝까지 가면 씽씽 잘나가는 고속도로로 연결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내게 힘이 되는 말’ 중에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라는 말을 띄우고는 덧붙여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길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장교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에필로그의 마지막 대목은 그녀의 유고를 암시한 듯 독자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느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에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
그녀는 너무 순수해서 눈부셨다 (시사저널 [1022호] 2009년 05월 20일 (수)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의 ‘장영희 회고’ / 장애인 문학인으로서 나의 중요한 ‘역할 모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2 02:41 2009/05/22 02:41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