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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2007.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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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날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습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백수인 처지에 성탄절이 다른 평일과 별다른 차별성이 있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성탄절에 왠 일로 학교에?'라는 얘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아직도 그런 것에 신경쓰느냐라고 힐난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 연구실에 가기 싫었습니다.
 
사실 어제, 그제 연이틀간 거의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잠이 부족한 점도 원인이긴 합니다. 눈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4시가 넘어서까지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늦잠을 잤고, 그래서 학교에 갔을 경우 식사해결 문제도 있고 해서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
 
그렇다고 집에서 영양가 있게 보냈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절박한 그 무엇에 부딪히지 않는 한, 역시 집에서 뭘 한다는 것은 제게는 쉽지 않습니다.
 

저번주부터 이번주까지 소설책만 두권을 봤습니다. 다니엘 키스의 <생쥐에게 꽃다발을>(<앨저넌에게 꽃을>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요)과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입니다. 제가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다크 서클을 떠올리기도 하고, 장애인에 관한 소설책을 뜬금없이 왜 읽느냐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래도 두 권 모두 참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앨저넌을 읽으면서는 참 많이 울었고, 어둠의 속도는 손에서 책을 떼기 어렵게 할 정도로 몰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동기부여를 해준 네오스크럼 님께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되시면 많은 분들이 읽어보길 바랍니다. 장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드디어 해경 프로젝트가 끝났습니다. 이것 땜에 24일 종일 시간을 썼습니다. 아니 11월과 12월에 많은 시간을 투여했지요. 제가 맡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편집하는 작업 때문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24일 뿐만 아니라 22일에도 연구실에서 저녁부터 날새서 편집작업을 했습니다.
 
700여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제가 한글 편집을 그래도 나름대로 하는 편이어서 끝까지 신경을 써야했지요. 덕분에 한글2007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용한 파워포인트(PPT) 또한 다시 익힐 기회가 되었고요. 아무래도 양적 방법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양적 연구방법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야겠지요. 
 
배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만, 그리 많은 것은 아니네요. 말 그대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참여한 것이니... 내년 초에 잔금이 나온다고 하니 적어도 1, 2월은 이것으로 생계유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23일에는 전진 회원총회가 민주노총 대전본부 1층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15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여기에서 당의 진로에 대한 전진의 입장을 정한다는 생각에 참여폭이 컸던 듯 합니다. 항상 하던 장소엔 2층의 넓은 회의실도 있는데 굳이 1층회의실을 사용한 이유는 장애인 회원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인데도 모든 회원들이 따라주었습니다.
 
오후 1시 반경부터 시작한 총회는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총회는 말의 향연이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참 말을 조리있게 잘 합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런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그런 것 같고... 물론 저는 확고한 신당창당론자이기 때문에 별 다른 동요는 없었지만 말이죠.
 
그 대체적인 결정 내용은 레디앙에 실려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하도록 하지요.
 
전진, '비례대표 불출마' 결정 (레디앙, 2007년 12월 24일 (월) 14:03:11 김은성 기자)
23일 총회에서 종북주의 청산 등 결의, 분당 문제는 결론 못내려

 

앞으로 2월까지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이 있습니다. 논문 쓰는 것은 당연하고, 제가 참여하고 있는 용역이나 활동(공공부문 개혁, 공기업 개혁,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도 해야 하며, 관심 있는 주제들(정당공천제, 동사무소 통폐합, 정부조직 개편, 복지국가 및 복지전달체계, 사회투자국가)에 관한 자료들도 읽고 정리하며 글을 쓰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외에 별도의 시간을 내기로 한 것이 바로 진보신당 창당과 관련된 활동입니다.
 
진보신당 창당이 조속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 전에 민주노동당 활동에 대한 철저한 평가에 기반한 당 혁신과 개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일환으로 올바른 대선평가와 당 쇄신을 위한 임시 당대회 소집을 촉구하는 당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진행된 것을 보면 민주노동당 혁신과 개조가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이미 이러한 시도가 불가능한 정당이 되어버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그래서 제가 아는 이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데, 제가 속한 지역위에서는 그리 호응이 많지 않더군요. 그 이유가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하고요. 평소에는 이러한 서명이 있으면 어느 지역보다도 참여도가 높았던 지역인데 말이죠. 
 
하긴 대선 선거운동에 어느 지역보다 열심이었던 지역위인 만큼 이러한 임시 당대회 소집에 대해 지역위 집행부가 소극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당원들마저 소극적인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좀더 당원들을 많이 만나봐야 할 듯 합니다. 당 혁신 및 분당 논의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당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당원들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가 많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적극성을 이끌어내고 싶고요.
 

22일에는 홈에버 시흥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왔더군요. 하지만 준비가 안된 탓인지 입구 앞에서 집회를 여는 것 말고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랜드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KTX 동지들의 경우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몰랐는데, 투쟁을 접었다고 합니다. 70여명 남은 이들 중에 절반은 계약직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길을 모색한다는 거죠. 이랜드 투쟁도 이렇게 흐지부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아무튼 그 집회에 당 대오는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당에서 각 지역위에 참여를 독촉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구로, 금천의 당원 몇명만 보고 오지 않았더군요. 제가 속한 지역위도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다른 경로로 알고 온 당원들이 있었을 뿐 당의 연락체계로 온 이는 없었습니다. 대선 전과 대선 후가 다른 걸까요?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투쟁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그러할수록 앞으로 계속되는 투쟁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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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5 21:12 2007/12/2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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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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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민주노총은 끊임 없이 계급투표를 외쳤습니다. 실제로 계급투표 전술이 먹혔는지 여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대로입니다. 이에 대해 참세상에서 다뤘는데 읽어볼 만합니다. 아래 글은 참세상 기사의 주요 부분을 옮겨온 것입니다. 
    
“일상적 계급투쟁 없이 계급투표 가능한가”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7년12월20일 15시36분)
민주노총의 ‘계급투표’ 전술에 대한 엇갈린 평가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80만 명의 조합원이 주변인 10명을 조직해 투표하면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내용의 ‘행복8010’이라 이름 붙인 대선 전략을 채택했다. 노동자 계급이면 민주노동당의 후보였던 권영길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계급투표’ 전술이다.
 
일단 민주노총은 “애초에 제기했던 ‘민중참여경선제’가 좌절되면서 계급투표를 조직화 하는데 난관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중참여경선제가 좌절되고 이후에 공백이 있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공공연맹 사무처장을 지내기도 한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조합원은 “민중참여경선제 자체가 당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를 받아들였으면 오히려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민중경선제가 되려면 내 외곽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활발한 지지와 이를 가능하게 할 구조가 있었어야 하는데 당원제로도 집중이 안 되는 상황에서 민중참여경선제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노동부장도 “정당은 자신의 노선과 이념과 맞게 대중을 설득하고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지 여론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라며 “민중참여경선을 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론을 더 많이 반영했으면 됐을 것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민중참여경선제의 부결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그간 ‘계급투표’가 가능할 조건을 마련했는가라는 근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스스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계급적 정치의식이 부족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이 자기대중을 명확히 노동계급으로 하지 않았던 것에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이라는 토끼를 잡기 위해 원래 자기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들을 확실히 챙기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우문숙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이 확실하게 노동계급을 중심세력으로 틀어쥐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냈어야 하는데, 대중성, 대중정당 등의 표현을 쓰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른 정당과 차별성을 잃어버렸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히려 민주노총이 그간 해왔던 투쟁 자체가 조합원들에게 명확한 계급의식을 갖게 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근본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일단 ‘계급투표’라는 말 자체에서부터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노중기 교수는 “노동자 계급은 다 민주노동당 찍으라는 말인데, 이는 조합원들을 전형적으로 대상화하는 잘못된 전술”이라며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한 일상적인 정치활동이나 일상적 계급투쟁이 부재한 상태에서 투표 때 무조건 권영길 찍으라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중기 교수는 “비정규법과 노사관계로드맵 등 중요한 계급적 선택의 기로에서 민주노총은 계속 타협적이고 비자주적인 선택을 해왔다”라며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데 정규직 중심의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일상적 계급적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계급투표가 가능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의 일상적 투쟁의 부재가 계급투표의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런 지적에 이성우 조합원도 같이했다. 이성우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은 당원에게, 민주노총은 조합원에게 신뢰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계급투표 전술은 공허하다”라며 “계급투표 전략은 기본적으로 일상적 투쟁을 통한 신뢰를 기반해야 하는데, 대선 때 반짝하는 전술로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사실 계급투표의 진수는 강남, 서초, 송파구에 사는 이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종부세가 수도권의 신지역주의를 낳았다고 하면서 서울시에서의 구별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과 버블세븐 지역의 개표현황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단지 종부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이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 다음날인 20일자 어느 신문에서는 강남구의 한 투표소 주차장에 가득찬 외제자동차들을 찍었더군요.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는데 철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보수언론들이 끊임없이 계급투표를 할 것을 선동했던 사실이 작용했음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어떻게 하면 저들처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이번 투표 결과는 천지개벽 수준이다. 가령 2002년 대선 때 관악구에서 노무현 후보는 58.4%, 이회창 후보는 37.2%를 얻었으나 이번엔 그 비율이 29.1%(정동영) 대 45.4%(이명박)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에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12.3%)까지 감안하면 우파 진영의 득세가 뚜렷하다.
 
전통적으로 서울은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큰 흐름을 좌우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호남 지역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80%가량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서울에선 영 힘을 쓰지 못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과거엔 투표 경향이 자신의 원래 출신지(본적지)와 연동됐지만 요즘엔 지방 출신이라도 수도권의 독자적 정책 이슈를 갖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수도권의 신(新)지역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공시지가 6억원 이상의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일수록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강남구(66.4%).서초구(64.4%).송파구(57.8%) 순이었다. 양천구도 목동 아파트 지역이 위치한 갑구에서 57.1%의 지지를 보냈다. 서울에서 이 당선자가 득표율 1~4위를 차지한 곳이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인 셈이다.
 
반면 관악구(45.4%).금천구(47.2%).구로구(48.8%).은평구(49.8%) 등에선 1위를 하긴 했지만 득표율은 서울 평균치보다 낮았다.
 
또 다른 버블세븐 지역인 경기도 성남 분당, 용인 수지, 안양 동안(평촌)에서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훨씬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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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2 11:16 2007/12/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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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트, 재미있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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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일 정도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셔서 제 집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전에는 별로 하지 않았던 - 하더라도 학교의 구내식당을 이용했던 -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집에서 꼬박꼬박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다시 추운 날씨에 학교로 올라가기는 뭐하고 해서 집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작업을 하게 되지요. 
 
그렇다보니 달라지는 생활패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어머니가 가끔씩 마실을 겸해서 하고 만 피망 고스톱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는데, 컴퓨터에 띄워져 있으니 잠깐만 하고 로그아웃할까 하다가 사이버머니를 좀 잃게 되면 열받아서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것이죠. 쩝...  
 
그리고 일일연속극을 보게 됩니다. 아침에 뉴스가 끝나면 바로 MBC에서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를 보고, 바로 SBS의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를 봅니다. 저녁에는 7시 40분경에 MBC에서 '아현동 마님'을 보고, 조금 있다가  KBS1로 채널을 돌리면 '미우나 고우나'를 합니다. 한 일주일 그렇게 보고 있으면 스토리를 쫙 꿰게 되고, 앞으로의 전개 또한 빠삭하게 됩니다. 이 넘의 일일연속극은 출생의 비밀, 교차로 연결되는 관계들, 우연의 연속 등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나오더군요. 이런 것이 없으면 연속극을 만들 수 없나 봅니다. 하긴 어머니께서도 그런 거 다 알면서 보신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암튼 그렇게 보게 되어 그 다음 스토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드라마가 '뉴하트'입니다. 태왕사신기에 이어서 방영하는 것인데요. 이전에 태왕사신기에 쏟아지는 비난과는 무관하게 재미로 띠엄띠엄 봤다가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던 만큼, 뉴하트는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어머니와 함께 한방에 있는 이상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과 눈이 컴퓨터 화면에 가있어도 귀가 드라마에 열려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겁니까. 결국 앞으로 수목마다 이거 방영하는 시간을 기다리겠군 하는 예감이 들더군요. 월화에는 이산을 보는데... ㅡ.ㅡ;; 어쩌다가 이렇게 드라마광(?)이 되었는지... 
  
재미는 나름 있지만, 그래도 "야 재밌다"하고 넘어가면 너무 섭하지요. 조금 삐딱하게 보려니 이 또한 의사의 입장에서 본 것이더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래 글에 나오는 것처럼 병원자본과 시스템의 문제를 놓치게 됩니다. 약간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암투와 갈등도 묘사하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해소되는 구조인 듯 하더군요.   
 
얼마전에 만난 의사인 제 친구들은 '싼 값의 양질의 의료'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 땅의 의료체계가 의사의 희생 하에 구축되었다고 하면서 이를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리고 의사들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개업의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대학에서 임상을 하지 않는 의대 교수들도 이러한 현실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제가 아는 게 짧은 관계로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끝났습니다.   
 
사실 그들의 말대로 뉴하트에 나오는 최강국 같은 의사가 현실에서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전국민 건강보험체계를 고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보완이 필요할지언정 말이죠. 
 
암튼, 뉴스메이커에 실린 김헌식 님의 글을 보고 공감하여 담아왔다가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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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1 22:36 2007/12/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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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진보정당운동은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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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제가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기관지인 [전진] 제16호(2007.11.30)에 쓴 것입니다. 의도를 하고 쓴 것은 아닌데, 기존에 나와 있던 민주노동당의 2007년 활동에 대한 평가글들을 짜집기하여 이리저리 엮다 보니 백서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분량도 많은데다가, 중언부언하고 있고요. 읽다 보면 '어디서 본 구절인데..'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짜집기성 글임을 상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제 의견입니다.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2년 대선의 결과보다 못한 참패를 하면서 당내외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선결과에 대해 평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저는 이러한 평가가 단지 대선 시기에만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원내로 진출한 이후 시기부터 4년여를 종합적으로 철저하게 평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은 그 4년여 활동의 결과물이니까요. 그럴 때만이 이번 대선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 평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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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진보정당운동은 무엇을 했는가?
 
1. 자유주의 우파진영의 위기 = 좌파의 위기?
 
2007년 대선과 함께 2007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한반도에서는 좌파세력이 마땅한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면서, 대선 또한 신보수주의세력의 난장판이 되고 있다.
 
올해 대선은 현 집권세력인 소위 민주화 세력에 대한 강한 실망감이 보수세력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이어져서 지속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묻지마 지지’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염두에도 두지 않겠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통령 후보의 조건으로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논란은 문제삼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다는 쪽이 더 많지만, 도덕성보다는 경제를 내세우는 보수진영의 공세가 먹혀들고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10년에 대한 강한 책임추궁 경향이 정치상황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유권자의 행위결정이 각 정당이나 후보의 이념이나 정책, 인물의 신뢰성 등 미래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의해 이뤄지는 ‘전망투표’가 아니라, 10여년 동안 집권해왔던 자유주의 우파 정부와 대통령의 통치행위 전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즉 ‘반노무현 정서’에 기반한 ‘회고투표’의 성격을 띠게 된 결과 이명박ㆍ이회창 지지가 범여권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쟁점화되기 어려운 조건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해 범여권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이를 뒤엎을만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의 위기를 양산해내고 있다. 국민들은 기존 집권세력의 자기반성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선정국을 주도하지 못하는 도덕성 프레임으로 승부를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주의 우파진영의 위기가 좌파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정국의 핵심쟁점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각 정당들 사이의 차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연장 문제나 한미 FTA 체결 문제 등에서 보이듯 각 정당들은 정책과 대변하는 가치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에 명확한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를 주요 의제로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현 집권 세력을 신임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세력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범여권과 야합하여 비정규악법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이 양극화, 부동산 가격 급등, 청년 실업 등의 문제를 가지고 현 집권세력을 맹공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범여권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유주의 우파세력과 진보정치세력 사이에 별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까지 포함한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루자는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에 속한 학자들의 제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진보-개혁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차별의 프레임을 내포한다. 2006년 진보개혁의 위기를 다루었던 경향신문의 기획기사에 따르면,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집단이나 인물로는 민주노동당(15%)이 가장 많이 지목되었으나, 참여연대(14%), 노무현 대통령(11%)과 열린우리당(11%)이 그 뒤를 이었다. 용어사용도 문제이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진보진영을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집권당과 범여권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자 하는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적대적 공생관계임을 제대로 폭로하면서, 민주노동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가치와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응집력 있는 당조직 체계를 만드는 데 실패하였으며, 진보정당 나름의 운영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한데다가, 결정적으로 당내 경선이 혁신과 변화를 내다볼 수 없는 결과를 산출하면서 좋은 대안정당으로 선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하였다.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는 와중에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2위까지 나왔던 적이 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이들을 조직하고, 특별한 헛발질을 하지 않는다면, 이번 대선에서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게는 대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없었다.
 
당은 항상 그렇듯이 그때그때 터지는 투쟁현안에 대해 집회를 만들어내거나 성명서를 쓸 뿐, 이를 한 데 모을 수 있는 전반적인 전략을 제시하지 않았다. 전략만 없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의지를 불러낼 실력, 지도력도 없었다.
 
물론 정당은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체제라는 대안의 집합, 구조 속에 위치하며,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에도 여전히 열린우리당에 가까운 ‘2중대’로서 인식되었고, 자신의 독자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유주의 우파 정당과 단절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2007년 진보정당운동 또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에서는 민주노동당 내의 상황을 중심으로 2007년 정당운동을 평가해보기로 한다.
 



2. 당 정체성 혼란과 정책적 무능의 전면화
 
1)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때에는 보통 자신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 사회적 약자의 문제, 지역정치의 사안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이에 입각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원들은 기존의 보수정당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사고하며, 다른 꿈을 꾼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얻는다. 하지만 2007년의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에게 그러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 자신의 가치와 정책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체제는 제도권 내에서 경쟁하는 정당으로 단지 극우 내지 우파 보수정당만을 허용했으며, 여기에서는 좌파정당은 물론 사민주의 정당이나 중도성향의 정당조차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민주노동당을 보수독점적 정당 구조의 예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거대 보수정당들이 투표자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선택의 구조가 닫힌 이후 뒤늦게 제도권으로 진입한 결과 제도권 내 권력과 선거 경쟁에서 주요한 행위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선거 시기마다 비판적 지지론이 진보정당의 제몫찾기를 방해한 점도 있지만, 보수정치세력이 좌파정치세력을 유의미한 변수로 파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판적 지지론은 자유주의 우파를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2002년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선전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지나 보다 하는 환상을 주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13%를 득표하였고, 총선 직후인 2004년 5월 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결과 그 지지율이 21.9%까지 올라갔다. 울산에서는 정당득표율이 35.4%로 치솟았고, 한나라당을 1% 내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민주노동당은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 또한 제3당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치에서 제도권 밖의 운동적 요소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되어 형성된 기성 정당들의 체제에 좌절감을 느낀 유권자들은 기권을 선택하거나 제3정당을 지지함으로써 정당 체제 전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표출하는 항의투표를 했다. 1992년 정주영의 국민당,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그 예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 또한 그 상당 부분이 당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87년 체제에 대한 실망과 항의를 표출하려는 측면이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열정이 사라지자 지지 또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2007년 하반기에 18대 총선 비례대표후보선거를 겨냥한 집단입당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당원 가입 배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원의 수는 증가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의 모습에 실망하여 탈당하거나 활동을 중지하는 당원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 민주노동당은 2006년에 이어 계속되는 한미FTA 저지투쟁 과정에서 정당으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고, 이슈를 선도하지 못했다. 한미FTA 논쟁에서 노무현 정권과 보수 언론은 개방 담론을 선점하고, 진보진영의 FTA 반대 움직임을 쇄국론으로 몰아붙였지만,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은 몇 차례의 집회와 지역별 선전전 등을 통해 수공업적으로 한미FTA의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미FTA가 야기하는 문제를 공론화한 것에는 공중파 등에서 방영한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역할이 컸을 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의제 설정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을 통해 FTA 정국을 만들어내고, 단식을 끝내고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반대 여론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키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아무 것도 실행되지 않았다”(김형탁, 대변인 사임의 글, 2007-11-13).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사업본부장은 지난 8월 입당을 하면서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은 해내는 훈련 등이 잘 돼있는 조직”이며, 한미FTA와 관련한 강연을 다니면서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교육ㆍ선전하는 조직이 민주노동당이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40%가 넘는 민중들은 민주노동당이 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것을 넘어 그 대안까지는 보여주어야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운동권 단체라면 한미 FTA 반대를 외치고 다니면 되지만, 정당은 FTA가 타결될 경우 노동자ㆍ민중들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가는지, 그것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담론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당은 전국적 정치담론의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치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체 언론으로서 기관지인 「진보정치」와 「이론과 실천」을 발간한 것도 담론투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진보정치연구소의 경우 법정으로 정해진 연구비가 필요한 시기보다 뒤늦게 배정되고, 다수 자주계열이 중심이 된 지도부가 진보정치연구소를 정파적 시각으로 바라봄에 따라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기관지의 경우 대부분의 당원들로부터 ‘자민통 세력의 소식지’로 낙인찍혀 외면받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민주노동당이 담론투쟁에서 떨쳐나설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KSOI의 2006년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9%가 민주노동당은 시민운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답했다. 민주노동당에 당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많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을 당이라기보다는 운동단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좋은 대안 정당으로서, 실현 가능하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당이 내걸고 있는 평등, 연대의 가치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당원들은 계속되는 반대집회에 동원되는 대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 저지투쟁의 성과가 조직화로 연결될 리는 만무하다.
 
3) 민주노동당이 진행한 정책과 활동에 대한 평가가 부재한 것은 2006년과 마찬가지이다. 2006년 5ㆍ31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였으면서도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이를 지도부의 정치적 견해로 정리해내지 못했다. 참패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에 휩싸여 평가를 해야 하는 문제의 본질은 사라져버린 바 있다.
 
2007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예비경선은 결선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경합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평가는 각 선본에서 제출되지 않았다. 아마 각 선본 내부에서 공유되는 것은 있었을지 모르나, 당원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지난 11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되었던 ‘100만 민중대회’의 경우 권영길 의원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부터 그 효과가 대선에까지 이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집회의 조직화에 온 힘을 쏟았던 행사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자발적인 붐이 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할당 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결국 단지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그 성사를 위해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 대선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서가 제출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아가 제기되는 여러 의제와 사안들을 민주노동당의 가치와 정책에 적합한가를 기준으로 평가하였는가, 이러한 가치와 이념을 당원들이 체득하고 있는가 또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거제시상수도운영사업의 수자원공사 위탁관리 동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4명의 시의원과 1명의 도의원을 배출한 거제시위원회의 경우 공공재의 사유화 반대라는 당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거제시 상수도 운영사업의 수자원공사로의 위탁관리에 동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당 정책을 접할 수 없어서 발생한 것이라는 해명과 함께 사과문이 발표되었지만, 물 사유화 문제에 대하여 당 소속 지방의원들조차 당이 내걸고 있는 가치와 정책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4) 당의 가치와 정책보다 개인이나 정파의 입장이 우선시되어 진보정당이라면 당연한 상식들이 파괴된 경우도 있었다. 종북파세력이 당내 다수파를 계속 유지하면서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은 2007년에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안을 제정하자 “독도에 군대를 주둔시켜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가 공개사과한 경우나,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해 정책위의장이 핵의 자위적 측면을 인정한다고 밝혀 물의를 빚은 사례와 같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이 완전히 몰각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종북파들의 민족문제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쟁점화해나가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했다.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존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수준은 이미 충족되었으며, 유권자의 80%가 남북대화에 의한 평화공존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기존 정치세력들 중 누구도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사회는 민족ㆍ통일문제를 진보의 기준으로 파악하지 않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종북파의 그늘에 있는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주체사상 글 포교행위’ 성명서 삭제 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7월 20일 '정보통신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제목의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 게시판의 불법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정보통신부의 공문에 대한 항의 성명서였다. 성명서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종교집단의 포교 행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걸어 처벌한 역사는 없다"면서 "당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일부 '북한찬양 문건'은 사회과학적 차원에서 인정되는 사상 관련 문건이 아니라 주체사상에 대한 신앙 고백 내지는 포교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서는 당 정책연구원이 작성해 대변인실을 거쳐 당 명의의 공식 성명서로 발표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성명서에 대한 한국진보연대(준)의 항의 공문이 당에 접수된 이후 8월 2일 열린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성명서 문제가 갑자기 기타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한국진보연대(준) 자주통일위원회'는 공문에서 "북측의 공식 입장을 포함한 북 관련 내용들을 종교적 맹신의 수준으로 폄훼한 매우 배타적이고, 일방적인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담당 정책연구원이 지적한 것처럼 “당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은 '북한이 최고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자기 확인과 독백의 내용”이고, “한국진보연대가 말한 '북측 공식입장을 담은 발표문'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에서 종북파가 주도하는 당 최고위원회는 호들갑을 떤 것이다.
 
최근 단지 통일방안 정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타당한 코리아연방공화국안이 대선 공약의 국가비전으로 상정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애초에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여 메인슬로건으로 채택되지 못하여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으로 메인슬로건이 채택된 바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결정하는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국가비전 제시는 사실상 후보의 메인슬로건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이 당내 민주적 절차에 의한 충분한 논의도 없이 졸속으로 이뤄졌다. 이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19명은 지난 10월 9일 권후보의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이 연구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비전이라는 핵심공약으로 결정된 데 대한 항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노동당은 보수진영이 유포하는 경쟁과 성장의 신화에 맞서 진보적 관점에서 사회양극화와 민중생존 파탄을 해소할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완전한 통일국가 이전의 통일방안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당면한 대선에서 제시할 사회체제의 상을, 남북을 포괄하는 개념에 담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17대 대선에서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용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만큼 대선승리에 무기력한 개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동 사무총장은 당 홍보물에 자의적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집어넣으면서 5만여부를 폐기하는 소동을 야기하고 잠적하였다. 정파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자민통 세력의 행태는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5)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논란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전략이 부재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문성현 대표는 2006년 11월 보건의료노조 간부 삭발식에서 “공익사업장 파업권을 전임자 임금 때문에 바꾼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10월 8일 민주노동당에 공문을 보내 “민주노동당이 한국노총에 대해 행한 과거의 언행에 대하여 공개사과와 향후 재발방지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할 경우 2007년 대선 정책연대 대상후보에 포함한다”는 결정을 통보하고, “귀 당 책임자가 노총을 방문하여 사과문을 전달하고, 언론을 통해 공개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을 요구하자, 문성현 대표는 답변시한을 하루 앞둔 10월 15일에 한국노총에 “공당대표로서 적절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공식적 사과의 뜻을 분명히 전달”한다는 사과공문을 보냈다. 여기에는 “한국노총과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 할 것”이며 “굳건한 연대를 실현하기를 희망”한다는 표현도 들어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이 보낸 공문을 정책연대를 구걸하는 서약서로 해석했으며 이를 기정사실화하였다가 이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를 철회하자 민주노동당을 정책연대 대상 후보에서 제외하였다.
 
문성현 대표는 당 내외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자 11월 2일에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던 자신의 과도했던 발언 부분만을 사과하도록 했고, 정책연대와는 추호도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하도록 지시”했다고 해명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은 명백한 거짓이며, 실무자가 실수로 작성했다는 변명 또한 구차하였다. 김형탁 전 대변인이 언급한 것처럼, 문제는 자세인데, 문성현 대표는 사과공문을 보냈을 때의 태도나 사과공문을 철회할 때의 태도나 어느 것 하나 당당함이 없었고, 옳다고 판단하여 결정을 내렸으면서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최고위원회 또한 다수가 정책연대 거부 결단에 반대하였으며, 책임회피로 일관하였다. 당의 정체성에 비추어 지극히 명백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한 논의를 거듭한 끝에, 전진, 해방연대, 전해투, 당노조(공공노조 민주노동당지부) 등이 중앙당사 앞에서 합동으로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의 행동에 나서자, 비로소 ‘사과 철회, 정책연대 유보’라는 애매한 결론을 내렸을 뿐이었다. 물론 이렇게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최고위원인 줄 알았다면 과연 선출되었을까.
 
게다가 김선동 사무총장은 한국노총에 대한 부당한 예산지원의 감시와 견제라는 민주노동당 소속의 지방의원들의 임무에 대해 한국노총 지역본부와 상의해서 진행한다는 내부지침을 공유했노라고 발언했다. 이는 당내에서 논의된 바 없는 일로서 발언 자체가 월권이다. 하지만 김선동 사무총장은 이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하여 민주노동당 지방의원들의 자율적 의정활동을 봉쇄하면서도, 한국노총의 관변단체로서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언행은 충분히 당원소환의 대상이 된다. (당규 제17호 당원소환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당의 모든 선출직 및 공직선거 당선자가 당의 강령, 당헌․당규를 위반하거나, 당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킨다고 판단될 경우 당원이 해당자를 직접 소환할 수 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할 사유제한 조항을 철회하고 기간제한으로 돌아서면서 경총과 정부와 야합, 비정규직 개악입법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다. 나아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다시 경총과 정부와 경총과 야합해서 단위사업장에서의 노조결성의 자유(복수노조 건설)를 팔아먹었으며, 수많은 업종을 파업시 대체근로 절반 허용, 필수유지업무 지정 등으로 사실상 파업권을 부정하는 형태의 필수공익사업장으로 묶어놓고 노동기본권을 옥죄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금도 자기 의사를 대변할 조직결성의 자유를 제약받고 있으며, 특히 동일한 사업장 내에서 이중으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다.
 
그것 뿐인가. 한국노총은 비정규직의 처절한 투쟁이 격화하는 시점에 정부를 대리하여 외자유치 활동에 나섬으로써 신자유주의 공세에 노골적으로 가담했다.
 
10월 19일에는 “주 44시간 노동, 토요일 격주휴무”라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120일 넘게 장기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건설노조 소속 인천 전기원들의 천막농성장에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용역깡패들이 난입하여 침탈하였고, 한국노총 소속 경인전기원노조 조합원들이 관제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반노동자 집단인 한국노총과 연대를 도모하려 했다는 것만으로 노동자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훼손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무원칙한 표구걸행위는,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부인하고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6) 당 정체성이 의심받는 상황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 대선 과정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선 이갑용 전 울산동구청장의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등록 서류접수 자체가 거부된 사안이 그 예이다. 이갑용 전 구청장은 1600여명의 당원추천을 받아 당선관위에 대선후보등록을 신청했지만, 선관위는 당규상에 공직후보는 피선거권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하여 서류접수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당규상에는 후보가 되려고 하는 당원이 후보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고 있을 경우 선관위는 후보 접수를 받고, 후보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에 후보등록을 취소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갑용 전 구청장이 피선거권이 제한된 이유는 바로 당의 입장에 충실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노조를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무유기로 기소되어 대법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갑용 당원의 당원으로서의 권리는 국가기구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될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의 건설과정에서 자본과 권력은 사규를 들어, 혹은 선거법등을 들어 입당권리와 당원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당건설은 이러한 탄압에 맞서 결연히 투쟁하는 과정”이었고, 이갑용 당원의 권리 또한 그런 차원에서 보장받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 19일의 중앙위원회에서도 ‘당원의 권리는 자본과 권력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결의문은 채택되지 못했고, 이갑용 당원은 결국 대선후보 등록을 하지 못했으며, 경선에 출마했던 나머지 세 후보진영은 그리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노동자정당으로서 당 정체성이 달린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연대를 제외하고는 여기에 적극적인 연대를 한 의견그룹도 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면서 과연 민주노동당은 교사, 교수,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한편 경선과정에서 권영길 후보는 보수정치인들이 전형적으로 얘기하는 경륜을 내세웠고, 선대위를 꾸려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등에서 그리 진보적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민중들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 현충원, 군대, 중소기업 등을 방문한 것들이 그 예이다.
 
또한 17대 국회에서 마지막이 될 국정감사에서도 단병호,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이 몇 차례 부각되었을 뿐, 의정활동을 대선과 연결시키고, 의회에서 당이 이끌 수 있는 이슈를 발굴해내고 쟁점으로 만들어내는 활동을 소홀히 했다. 총선을 이유로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 사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진보정당의 의원다운 행태는 아니다.
  
3. 당조직 체계의 응집력 상실
 
1) 지난 2007년 상반기에 제기되었던 개방형 경선제, 민중참여경선제 논란은 민주노동당의 골간을 버텨왔던 진성당원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3월 11일 정기 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선출 시 당원 이외의 참여를 허용하는 개방형 경선제 당헌 개정안은 재석 1,050명 중 663명이 찬성하여 부결되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이석행 지도부가 중심이 돼서 추진해오던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민중참여경선제 또한 6월 16일의 중앙위원회에서 재석 과반수에 미달하여 부결되고 대선 후보를 당원 직선으로 선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2/3에 가까운 대의원들이 개방형 경선제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진성당원제는 기층당원의 의사에 기반한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차이를 보여주는 준거기준이며,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최대자산이다. 당원이 의미 있는 정치적 실천의 단위로 존재하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당들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성당원제를 형해화하고, 대중을 대상화하는 화석화된 제도정치에 스스로를 재단하는 조치에 민주노동당의 다수 대의원들이 손을 들어주었다. 여전히 진성당원제는 유지되고 있지만, 1개월분의 당비를 납부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당원의 권리가 약화되었다.
 
개방형 경선제는 당원 및 지지자 확대사업의 변형일 뿐이다. 개방형 경선제의 도입을 통해 더 많은 지지, 후원자를 조직하여 더 많은 득표를 할 수 있다는 발상과 논리는 진보정당의 것이 아니다. 개방형 경선제는 평소 ‘당원 없는’ 정당을 유지하다가 당직ㆍ공직 선거가 있을 때에만 대중을 동원하여 표 찍는 기계로 만들어왔던 보수정당들의 행태를 따라하는 것이다.
 
당원이 활동의 중심에 놓이지 않으며, 당내 민주주의와 당의 대표성 및 연대성 제고의 결절점으로서의 진성당원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당이 좋은 정당이 될 수는 없다. 개방형 경선제, 국민경선제 등의 시도는 대중정당적 요소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개방형 경선제, 민중경선제라는 이름으로 시도되는 진성당원제의 약화 시도는 민주노동당이 사회운동적 정당이 되기보다는 기층대중들과의 거리를 넓히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2)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란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반면, 사회 저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메커니즘인 정당의 역할은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하였다. 이 과정에서 투표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성’을 갖지 않는 제도나 기구들, 즉 국가기구 내의 검찰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언론이 점차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되었다(최장집,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2006. 79-80). 노무현 정부와 17대 국회에서도 사법부에 대한 의존성이 증대하였다. 정당은 정치에서 다양한 세력들과의 관계의 중심에서 이해갈등을 집약하고 조정하는 주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의 중심기제로 헌법재판소, 각급 단위 사법부와 검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두되고 있다. 정당과 운동집단, 풀뿌리 운동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사법부를 지속적으로 호명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나아가 정당이 당내 경선 관리조차 선관위나 검찰을 불러들여 해결하는 상황에서 정당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일종의 당내사법기구인 당기위원회 제소가 빈발하고, 검찰 등 사법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6년 초의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의혹이 당내에서 수습되지 않자, 당원들이 이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그 파문이 2007년까지 이어졌다.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은 당내의 정파갈등과 당내 민주주의의 결핍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집단임을 외부에 폭로하였다. 정파갈등이 부정선거 시비로 표출된 것이다.
 
당내의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만연은 당 내부의 자율적인 통제수단이 마비되었음을 의미하며, 당 소통과 책임시스템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같은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의 약화를 가져온다. 대내적 정치 메커니즘이 붕괴된 상황에서 대외적인 정치 활동을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진보정당의 운영 메커니즘 붕괴
 
1) 민주노동당 내에서 더 이상 당원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수정당만큼 타락하진 않았을지라도 자주파와 평등파 공히 선거시기마다 불법ㆍ부정선거를 저질러왔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 선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악용했던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제대로 된 진성당원제의 미정착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상근자와 활동당원들에게는 정보가 있지만, 평당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니,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averse selection)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웬만한 당원들은 TV나 신문에 자주 나오는 의원이나 대변인 정도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과 친한 이가 찍어주는 사람을 누군지도 모르고 찍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율, 즉 자기 결정의 원리에 기초한다. 이런 자기 결정의 원리가 의미를 가지려면 결정의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됨과 동시에 의사 결정의 ‘결과’와 그 ‘내용’이 열려 있어야 한다”(박찬표, 『어떤 민주주의인가?』, 2007, 229).
 
민주노동당에서 당원민주주의를 말하고자 한다면 당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재규정과 함께 당원 활동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제는 무산된 진보대연합 논의 또한 당원민주주의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진보대연합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었을지언정 당원들의 시야를 벗어나 추진되었다. 만약 새진보연대와 사회당 간에 진보대연합이 이루어졌다고 할 때,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긍하는 당원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당원들의 요구에 기반하지 않았기에 당원들로부터 얼마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한편 진보대연합의 대상이 되었던 새진보연대의 경우 대표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지고 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진보연대라는 별도의 정치조직을 만들어 통합을 운운한 것에 대해 어떠한 해명을 하지도 않았으며, 당 또한 이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이와 비슷한 예가 바로 한국진보연대 가입 밀어붙이기이다. 한국진보연대는 전국 시ㆍ군ㆍ구에 기반을 둔 조직을 만들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참여조직의 규모와 납부금 비율 등에 따라 의사결정의 지분을 배정하여 참여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민중연대과 통일연대를 통합한 범자민통세력의 결집체로 드러났다.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를 통해 한국진보연대 가입을 결정했지만,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고 생각하는 당원들에게 당보다 더 우위에 있는 상층 중심의 전선체 가입이 어떠한 의미로 다가갔을까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총단결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들어올 것을 강요했던 한국진보연대의 종파적 행태는 당원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았다. 당 중심노선의 포기이자 정당으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방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2) 당원민주주의의 붕괴와 연결된 것이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과 당원들 상호간의 소통 및 토론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이다. 새내기당원에게 민주노동당의 역사와 강령, 정책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면서 당헌, 당규에 대해 소개하는 교육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기존의 당원교육마저 형식화되었다. 성평등교육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당직ㆍ공직을 맡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필수교육과정도 생겨났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뭔가 배움을 얻었다고 여기는 이는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교육ㆍ학습 시스템이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당 강령과 규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책임 있는 토론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기대를 모았던 민주노동당 역시 넓게 보면 교육받은 중산층의 정치관이 지배하는 엘리트 정당의 유형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념 정당이라는 규정이 무색하게도, 통일된 강령과 규율은 존재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토론의 체계가 제도화되어 있지도 않다. 편협한 정파 논리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지배하는 자유의지의 과잉이 더 두드러진다”(박상훈, 『어떤 민주주의인가?』, 2007, 319-320).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당원들이 단련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당에 가입하기 전에 습득한 사전 지식에 의존하거나 자신이 속한 노조나 학회 등에서 행해지는 교육을 통해 획득되는 지식 이외에 당의 공식적인 교육체계를 통해 자신이 민주노동당원으로 거듭나는 경우는 점차 희박해져가고 있다. 당 활동은 자신의 역량을 배가하고 축적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진시키는 것으로 전락하였다.
 
이에 따라 활동당원의 규모는 축소되고, 상근자 및 소수의 열성당원을 중심으로 지역위 활동이 이루어지며, 이에 따라 당원의 대상화가 발생한다. 지역위원회는 ‘그들만의 공간’으로 변하게 되면서 페이퍼당원이 늘어나고, 지역주민 및 지지자들과의 소통은 사그러진다. 

그나마 당원 내에서 교육과 학습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하자. 과연 정치의식을 제고하는 학습 이외에 진보정당 내에서 상식이 살아숨쉬도록 하는 교육,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당원들을 단련시키는 교육은 행해졌던가. 정보인권의 문제, 지식사회로의 진척에 따른 감시와 통제,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및 인권과 관련된 문제, 학력ㆍ학벌의 문제, 진보진영 내의 나이주의, 권위주의 타파의 문제 등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도록 했을까.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하는 상식과 소양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너무 무뎠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편의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효율성 만능주의에 빠졌다. 그래서 국가권력도 비밀ㆍ평등ㆍ자유투표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 때문에 함부로 시도하지 못하는 인터넷투표를 거침없이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나 소수자의 문제는 간과하였다. 이러면서 국가권력을 비판할 수 있을까. 보수정치와 국가권력에 들이대는 잣대를 우리에게도 제대로 댄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당원교육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대활동을 동반한 정치사업, 현장에서의 투쟁, 지역활동을 통해 당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당원들이 대상화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키는 모습 또한 보여주어야 한다.
 
3) 소위 ‘오세훈 법’에 의해 지구당 폐지가 결정된 이후 민주노동당은 지구당의 불법적 운영, 이에 따른 상근비 지급, 이중장부의 존속 문제에 시달려왔다. 다수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지구당 페지, 선거캠페인의 축소 등은 정당이 당원, 지지자 집단, 유권자 집단과 접촉할 수 있는 면을 좁혀 대중정당의 발전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지구당 부활을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2007년 내내 행해지지 않았고, 선관위와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지역위원회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회의에서 보고되는 운영장부와 선관위에 신고되는 장부가 다르게 되는 것도 불가피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지역에 따라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발생하는 회계업무의 인수인계 문제는 집행부 활동의 파행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경남도당의 경우 도당위원장이 전임 집행부로부터 회계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운영상의 갈등 문제로 사퇴한 날까지도 받지 못했다. 2006년 5.31 경남도지사 선거 후 발생한 1억 7백만원의 적자를 도당 운영위에서 도당의 부채로 떠안기로 결정했으면서도 그 적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적자 내역에 대한 중앙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특별감사 결과 일부 부실한 회계 처리 사례가 발견되었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어떻게 지울 것인가 여부를 가지고 갈등이 빚어졌던 것이다. 자주계열에 속하는 경남도당의 다수 운영위원들은 회계책임자가 공식 사과하는 선에서 매듭짓자는 주장을 했지만, 이는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셈이었다. 이로 인해 도당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사임하게 되었고, 이는 대선시기 세액공제 사업과 조직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렇게 된 배경에는 당파적 이해보다는 정파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자주계열 주류 세력의 패권적 태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정, 회계 문제는 비단 경남 뿐만 아니라 인천, 광주 등에서도 벌어졌다.
 
4) 얼마 전 당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임금체불, 공공노조 민주노동당 지부와의 단협 지체의 문제, 재정파탄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였다.
 
임금은 재정 형편이 좋은지 여부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최우선적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채권이다. 이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에서 좋은 논평을 한 바 있다.
 
“반복되는 임금체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체불임금과 갈수록 미청산액이 늘어나는 것은 근로감독의 소홀함과 악덕기업들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서 기인하고 있다. …소극적인 자세로는 상습체불 사업자의 못된 버릇을 뿌리뽑을 수 없다. …상습체불 사용자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여 벌칙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논평, 「임금체불, 정부가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나서야」, 2007-02-12).
 
재정파탄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국고보조금도 받고 당원의 수도 늘어났는데도 대선후보 등록 기탁금 5억을 제 때 마련하지 못하여 당비인출을 하루 앞당기는 촌극까지 벌였다. 예산자료는 당원들에게 여전히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며, 여론조사 사업예산이 자민통 세력의 계열사 컨소시엄에 배정되자 사업예산을 부풀려서 빼돌리는 행태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산파탄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자민통 세력의 무능함마저 확인하게 된다. 똑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올해 1월 7일 민주노동당노동조합으로 출범하였던 ‘공공노조 민주노동당 지부’(이하 당 노조)의 활동을 둘러싼 민주노동당 내의 대립과 갈등은 근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당 노조에 반대하는 어떤 당 간부들은 당헌ㆍ당규와 의결기구에서의 예산 심의를 들며 단체교섭이 곤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결코 진보정당의 구성원이라 볼 수 없으며, 이들과 당을 함께 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 노조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가진 최고위원들과의 단체협상이 순탄할 리 없었다. 어떤 교섭위원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당노조와의 교섭 자리에는 바쁘다거나 잊었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 노조 간부를 일에서 배제하기도 하며, 의도적인 왕따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다른 사업장에서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된다.
 
“진보정당에 상근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활동가가 갖는 노동자성에 주목하는 한, 진보정당의 활동가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진보정당을 구성하는 활동력, 즉 모든 노동력의 노동자성에 대한 무지 아니면 왜곡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 진보를 위한 특정한 목표에 동의하는 특정한 사람들의 결사체라 하더라도, 그 구성원 중 누군가가 노동자성을 제기한다면 결사권, 단결권은 조건없이 보장되어야 한다”(참세상 논평, 「민주노동당노조 출범을 환영한다」, 2007-01-08).
 
5. 나가며
 
참여와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참여와 개혁의 가치가 훼손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 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과 자신이 바꿀 사회에 대한 비전이 없는 진보정당, 당장 집권했을 때 이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없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진보정당은 그 자체로 진보와 변혁의 가치를 훼손할 것이며, 역사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집권은 과연 민중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 적어도 2007년 민주노동당의 집권은 시기상조이며, 무책임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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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1 19:39 2007/12/2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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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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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좌파적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여 대선 막판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물론 그 좌파는 좌파라고 할 수 없는, 대통합 민주신당에 모여있는 자유주의 우파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자유주의 우파들 뿐만 아니라 몇몇 대중조직들에는 엄청난 압력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공공개혁을 내세워 노무현 정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민주노총을 몰아부칠 것이고, 전교조가 만만한 밥이 될 것이며, 공기업 노조는 사유화와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참세상은 실용정부를 예고한다고 논평을 내면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박용진 당 대변인이 출구조사가 나온지 30분 후에 짤막한 논평을 내놓았고, 황선 부대변인이 이명박 당선자를 향해 '오만과 증오의 정치로 출발선언해서는 안 된다'는 더 길다란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충고를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지.... 하긴 민주노동당 내에서 자민통 세력들이 우위를 점한 이후, 제대로 된 책임과 평가가 없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런 식의 행태도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선결과를 보고 스쳐가는 단상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이명박 후보가 50%를 넘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이회창 후보의 표까지 합하면 65% 가까이 되지만,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얻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과반수가 넘었으면 그 무식한 추진력을 앞뒤 안보고 몰아부칠 텐데 말이죠. 1992년 초원복집 사건과 같이 막판의 BBK동영상이 오히려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와서 지지율이 더 상승한 듯 합니다.
  
정동영 후보가 30%를 넘지 못한 것도 전체 진보진영의 미래를 생각할 때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 30%를 넘었으면 여전히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서 총선준비에 나섰을 겁니다. 유력한 전망대로 통합신당이 이대로 가진 않겠지요.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 또한 빈약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그대로 총선에 임할 텐데, 통합신당 내에서 얼마나 빠져나와 여기에 합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친노세력들은 아마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존속하기는 어려울 테고요. 물론 이명박 정권이 레임덕에 시달릴 때즈음엔 그래도 노무현이 나았다는 말이 나올 수는 있는데, 맹점은 이러한 상황을 친노세력이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금민 후보가 허경영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은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사회당의 이번 대선 출마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를 놓고 보니 너무 무모했다는 판단이 드네요. 물론 언론에서 거의 주목을 해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 또한 예측되었다면 다른 식의 모색을 했어야 맞습니다. 2만의 득표도 올리지 못하면서 정치의 희화화의 대상이 된 듯하여 안타깝네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하므로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그냥 경향, 프레시안, 한겨레의 관련기사를 담아옵니다. 특히 프레시안의 윤태곤 기자는 이미 예상하고 글을 써놓았던 것처럼 민주노동당이 왜 이렇게 저조한 결과를 내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상세하게 적어놓았습니다.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한겨레의 동영상에 권영길 후보의 침통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중앙선관위의 인터넷선거정보조회시스템을 훑어보았습니다. 인지도, 경력, 조직, 돈, 나아가 정책까지 어느 것 하나 밀리지 않는 민주노동당이 문국현 후보에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습니다. 울산만 모든 구에서 이겼는데, 거기서도 정동영, 이회창에 이어 4위입니다.   
 
저는 최소한 100만표는 넘기를 바랐는데, 71만여표, 3.0%의 득표로 의원하나 없고, 돈도 별로 없었던 2002년보다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서울에서는 11만 6천여표, 2.3%이고, 그 중에 관악구에서는 8,362표, 3.1%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그 만큼 관악에서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국현 후보가 관악에서 23,536표, 8.8%로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었고, 정동영도 구로구에 이어 두번째의 득표율을 얻었던 것을 감안하면 관악구 자체의 특수성이 작용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겠지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당원토론방에서는 지도부 사퇴론에서부터 분당론이 터져나오고 있고, 격한 목소리가 오고 갑니다. 나름대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겠지만, 좀더 밑바닥의 당원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어제 선거가 끝나기 전에 선거에 대한 소회를 쓰려다가 몇 자 끄적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 담아와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었던 글도 있었고요. 아래의 글이 그것입니다.   
개인적인 대선평가는 따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 열심히 하지도 못한(않은?) 형편도 있고,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진보정치의 혁신에 대해 고민을 해볼 생각입니다. 제 머리에서 근사한 뭔가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죠.    
 
1.
한국진보연대 등은 18일 저녁 오후 7시부터 서울 광화문 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거짓과 부패에 맞서 양심의 촛불을-국민의 촛불만이 희망입니다'라는 제목의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BBK 의혹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의 후보직 사퇴 촉구하는 내용의 집회였지요.
  
시도때도 없이 촛불을 듭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촛불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마저 촛불을 드는 판이니...
 
현 시기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판적 지지의 2007년 대선판이 아닌지요. 반이명박이 가장 대중적 운동이라고 하면 도대체 민주노동당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 누구의 이해에 복무하는지 명확히 해야 할 겁니다.
 
2.
언론에서는 오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다고 합니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합니다. 아마 다들 단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날에만 자신이 국가의 주인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3. 
민주노동당이 계급투표 전략을 펼쳤다고 합니다. 개뿔...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도록 하면 그게 계급투표전략일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자신의 정당이라고 얼마나 생각할지 의문입니다. '계급'이라는 용어가 참 고생하는 것 같네요.
 
4. 
대선 직후 평가문제가 나올 텐데, 그 기준은 2002년 선거시의 득표율, 그리고 문국현 후보와의 득표율 비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조직, 인지도, 재정, 그리고 9명의 국회의원 보유 등도 감안해야 하겠고요.
 
5.
비난적 지지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나름의 기대를 품었던 당원/지지자들이 당내의 여러 문제들에 실망하여 돌아섰다가도, 그래도 다른 후보를 찍을 수는 없고, 최소한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리고 그 동안 지지해왔던 정 때문에, 투덜투덜하면서도 그리 썩 내키지는 않지만 민주노동당에 표를 준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되었는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에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진보정당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꼴이 되었을까요. 주위 사람들에게, 블로그에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달라고 얘기하면서도 정말 쪽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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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무서운 지지자들 (레디앙, 2007년 12월 13일 (목) 07:49:35 정경섭)
[진보정치 현장] "노점상들, 생존권 걸고 운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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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뮤직비디오 출연기 (민주노동당 뉴스, 2007-12-14 13:22:55)
김광수 해방연대 기관지위원장
   


[논평] 참여정부 계승하는 '실용정부' 예고 (참세상  / 2007년12월19일 20시46분)
행정권력의 자본권력에의 종속성 심화된다
 
거짓말로 뒤범벅된 정권이 탄생한다.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 절반이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막판 이명박 동영상 효과는 미비했다. 이명박 후보는 투표 하루 전날 TV연설에서조차 동영상과 관련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잃어버린 10년의 한풀이라도 하듯 17대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검찰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명박 당선자는 사기꾼에 놀아난 경제대통령이 되고, 동영상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아니라고 부인한 거짓 경제대통령이 된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검을 수용했지만, 당선자와 인수위의 판짜기와 특검 과정이 어떤 함수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특검 결과도 좌지우지 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 기소가 이루어질지, 정치논란과 함께 세찬 탄핵 바람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모두가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의회권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세력 간 대결이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양상을 띨 것이라는 점이다. 이즈음 의회에서 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정당간 경쟁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세력의 생성.분화와 양립으로 양당구조로의 수렴 대신 다당구조로의 확산이 예고된다. 여기에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행정권력 우위의 당정관계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편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일각에서는 BBK 수사 발표와 관련한 노명박 빅딜설이 솔솔찮게 흘러나왔다. 이회창 후보측은 선거 중립 및 BBK 수사 문제와 퇴임후 보장을 두고 노명박 커넥션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삼성 비자금과 BBK 수사를 두고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간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질 만한 정황은 충분히 있어보인다.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삼성과 유지해온 밀월관계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와 특검 추진 과정에서 보인 태도로 미루어 퇴임 후 정치적 운신의 보장은 다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미동맹 강화, 파병, 한미FTA, 비정규법, 자본시장통합법 추진 등 참여정부의 친자본 정책의 맥락에서 볼 때 행정권력의 이양은 이명박 당선자와 차기정부의 정치적 색체와 관계없이 그 연속성이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행정권력이 자본이 요구해온 입법과 정책과제의 생산.집행 강화 맥락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명박 당선자가 공언해온 공약과 정책으로 미루어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참여정부 말기 의회와 행정부는 삼성특검과 BBK특검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임채진 검찰총장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는 뇌물검사로 낙인 찍었고, BBK 특검 수사대상에는 BBK 수사팀 검사가 포함되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두 개의 특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처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두 특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소환되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삼권 분립의 측면에서 볼 때 사법권력은 법이 정하는 정치적 심판의 막후 기능을 담지한다. 그러나 행정권력에의 종속성이 심화될수록 사법권력의 권위와 기능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두 특검의 성립은 사법권력이 우리 사회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사를 담보할 능력이 없거나 취약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로 미루어 보더라도 사법권력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유추된다.   
  
이처럼 삼성 비자금 문제와 BBK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삼부 권력간 정치적 긴장관계는 자본권력과 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참여정부'의 '실용정부'로의 전환은 친자본 권력으로서의 행정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용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이명박 당선자의 도덕성과 거짓 여부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 재생산 측면에서 얼마든지 수렴, 희석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인민은 자신의 생존과 사회경제적 삶을 보장받기 위해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에 통치를 위임한다. 위임받은 행정권력은 공공영역에 대한 민주주의 정치기제를 가동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정책과 사회통합을 위한 지배질서를 구축한다. 주지하듯이 유권자 두 명 중 한 명은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는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욕구의 표출이자 심화된 양극화의 고통에서 탈출하기 위한 차선의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당선자 개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관계없이, 경제가 살아나면 불편부당한 삶의 여건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와 곧 구성될 실용정부가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공공영역에 도발적인 침투를 계속해왔고, 한미FTA는 공공영역 전체를 대상으로 시장화한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87년 이후 노동자 민중이 피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적 공간의 해체와 동시병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자본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고, 이명박 당선자 역시 교육, 의료, 에너지, 문화, 미디어 등 모든 정책에 있어 공공성의 무시.배제와 효율과 경쟁의 시장화를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이후 실용정부는 참여정부의 시장화 정책을 확대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사회지배구조와 사회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대한 자본통치력 강화의 필연성을 예고하는데, 여기서 실용정부가 부패와 거짓의 반복 노출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정권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참여정부 때보다 더욱 첨예한 위기 상황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실용정부의 성패 여부는 사회통합능력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고, 사회통합능력의 물적 기반은 자본 내지 자본권력으로부터 나오게 되는데, 따라서 자본의 위기관리 능력이 곧 행정권력의 사회통합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는 역으로 자본과 정권의 사회통합에 반발하는 사회구성원의 저항이 어떻게 표출되는가에 따라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도 제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 과잉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사점으로, 보수-개혁-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정치세력 간 차별이나 이합집산의 일차적 준거로 작용하지 않거나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심사숙고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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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권영길, 외면당한 진보 ‘최대 시련’ (경향, 이고은기자, 2007년 12월 19일 23:01:57)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19일 참담한 득표 결과에 고개를 떨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앞선 두 번의 대선보다 이번 대선이 더 답답하고 힘들다”고 토로했던 권후보는 이날 저녁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결과가 좋지 않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들이 주신 지지를 밑거름으로 다시 비상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권후보는 늘 ‘새로운 길’을 걸었다. 언론노련 초대 위원장,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 민주노동당 최초 지역구 국회의원…. 그가 선택한 ‘최초’의 결단들은 항상 ‘세상을 바꾸려는’ 꿈과 함께했다. 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의 염원을 모아 세번째로 나선 대권 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후보를 포함한 선대위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론, 당 개혁 논란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권후보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재야단체의 연합체인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 1.2%의 지지율을 얻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선 그 3배나 넘는 3.9%를 득표했다. 그러나 이번엔 2002년 얻었던 지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사실상 외면당했다.
 
권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다수파(NL)의 지지를 바탕으로 심상정·노회찬이란 스타 의원들을 누르고 당선됐다. 하지만 당력을 모아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또 ‘코리아연방공화국’ 등 다수파의 정파성이 반영된 공약을 앞세우며 서민의 정당이란 주장은 구호에 그쳤다. 세번째 출마라는 식상함도 문제였다. 선거 후반부에 서민경제,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미래를 위해 진보정당을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한번 이탈한 전통적 지지층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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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권영길"…민노당 혼돈 속으로 (프레시안, 윤태곤/기자, 2007-12-19 오후 8:37:05)
후보도 전략도 구태의연…예정된 참패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0년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권영길 후보는 19일 실시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위로 내려앉는 참패를 당해, 원내 3당이자 기호 3번의 체면을 구겼다.
  
  민노당은 대외적으론 '300만 표 득표'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당직자들이나 민노당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5, 6%만 나와도 다행이 아니겠냐"는 게 중론이 었기에 '예정된 패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민노당도 본격적인 대혼란기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징후는 일찌감치 부터 포착됐지만 선거 전날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공표되지 않은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2%대에 불과했고 권 후보 본인은 마지막 유세에서 "피 맺힌 심정으로 말한다"면서 "민주노동당을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막판 표심 잡기의 일환이었겠지만 공세적이었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사실 이번 선거는 민노당 입장에선 유리한 구도에서 진행됐다. 고질적인 사표론도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부잣집'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나름대로 돈도 썼다. 선거비용만 따지면 문국현 후보나 이회창 후보가 민노당보다 더 박했다.
  
  공동 선대위원장인 노회찬 의원은 지난 여름 "여권이 지리멸렬할 것이고 한나라당도 대안으로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민노당이 삼자정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조건절은 맞아 떨어졌지만 주절은 틀렸다. 왜일까?
  
  후보의 한계
  
  민노당은 창당 이후 주요 선거를 질적·양적 도약의 계기로 삼아왔다. 2000년 창당 후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울산 동구, 북구 구청장을 배출하며 교두보를 마련했고 연이은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노동당과 권영길'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를 발판삼아 2004년 총선에선 정당 지지율 13.1%, 의석 10석 배출로 인해 단숨에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한때 20% 지지율을 넘나들었던 민노당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권과 함께 지지율 동반하락 현상을 보였다. 이번 대선 패배 역시 전반적인 반노 정서의 '유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궤멸됐을 때도 민노당은 12%의 정당득표를 거뒀을 정도로 저력은 만만찮았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당 지지율는 5~10% 사이를 꾸준히 유지했다. 당 지지율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후보. 일차적인 패인은 권 후보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 지난 1997년 국민승리21 후보로 나섰던 권영길과 2007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 권영길. 10년 전의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직함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오늘의 그는 증권거래소에서 환영을 받을 정도로 '정치적 거물'이 됐다. 지난 10년 간 권영길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민노당 당원들은 '혁신'을 외치는 심상정, 노회찬 대신 '화합과 통합'을 들고 나온 권영길을 선택했다. 당 밖에서 부는 '심상정 바람'을 당심이 뒷받침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경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대선 3수생'의 부담은 경선이 끝난 뒤 권 후보의 발목을 잡은 늪이었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대중들의 반응을 넘어서기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권 후보는 당내 자주파의 지원에 힘입어 경선을 통과하면서 고질적인 정파 대립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경선 이후에도 봉합은커녕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기만 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이인제, 이회창과 함께 '삼수생 트리오'냐는 비아냥에 "DJ는 4수만에 당선됐다"고 받아쳤던 권영길 후보의 노쇠화도 선거전에서 눈에 띄었다. 특유의 안정감은 여전했지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던 재기도 오간 데 없었고 진보정당 고유의 견결성도 바래졌다. 꼼짝 않는 바닥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확인될 때마다 당에선 "아~ 권영길" 하는 애증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한 당직자는 "권 후보가 TV 토론에 나가서 각종 수치와 정책들을 더듬더듬 외우는 모습을 보면 실망감보다 차라리 짠한 마음이 들더라"면서 "내년 총선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경선에 나섰겠지만 권 후보를 이용한 자주파와 일부 평등파 진영이 더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대선 초반, 이명박 고공현상과 여권 후보선정을 둘러싼 지리멸렬이 극에 달했을 때 민노당과 권 후보는 그 틈을 전혀 파고들지 못했다. 지난 9월 후보로 선출된 이후 한 달을 허송세월 한 게 가장 큰 패착으로 기록된다. 선대위조차 꾸리지 못하고 권 후보와 민노당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통적인 민노당 지지층은 문국현 후보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대선 기간임에도 당 게시판에선 당 노조와 사무총국 사이에 날선 대립이 벌어질 정도로 당력은 집중되지 못했다. 물론 선거 막판 '그래도 우리 당을 찍자'는 여론이 당내에서 미미하게나마 확산되기 시작했지만 '권영길에 대한 비난적 지지'라는 신조어는 이 당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삼성특검은 알아도 민노당은 모른다"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당 혁신 요구에 부응치 못했던 게 퇴행의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고질적인 정파 대립구도로 인한 당력 집결 실패, 전략 부재가 고스란히 반복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문성현 대표는 "민노당에 대해서도 국민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 데 대한 질책이 있었는데 겸허히 받아들이고 심기일전 하겠다"고 당 쇄신 의지를 다졌다.
  
  민노당 내 의견그룹 '전진' 소속의 한 당원은 당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이 왜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대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탄핵 이후 보수정치권에 대한 심판 바람이 우리에게 반사이익을 남긴 반면 노무현 정권 심판 바람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2007년 대선에 대한 평가로 갈음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이는 민노당이 대선 준비기에 해당하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 숙제를 전혀 풀어내지 못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반전의 기회가 없지 않았다. 지방선거 이후 한미 FTA 전선에서 민노당의 활약은 정치권 내에선 독보적이었다. 국회에선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거리에선 평당원들이 맹활약했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당에 합류했다.
  
  한미 FTA에만 국한하자면 '민노당 대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전선이 형성됐다. 40%를 넘나들었던 한미 FTA 반대 여론을 대표할 정당은 민노당밖에 없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내 극히 일부의 FTA 반대론자들이 민노당을 기웃거리는 풍경도 목격됐다.
  
  하지만 당이 주체적으로 조성한 호기가 아닌 탓에 호시절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삼성 비자금 특검 정국도 정치적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권영길 후보와 함께 노회찬-심상정 등 간판스타들이 삼성 특검에 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관계자는 대선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답했다. 대중들은 삼성 특검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민노당의 노력과 역할에 대해선 무심했다는 얘기다.
  
  의미 없는 '분당설'만…총선 먹구름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의 메인 슬로건은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제 민노당은 스스로를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민노당 내에서도 '이번에도 대강 덮고 나가면 미래는 없다'는 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대안은 제각기 다르다. "뼈를 깎는 각오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쪽과 "분당의 각오로 결별해야만 하는 것들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쪽이 나뉜다. 물론 이 같은 입장 차이는 정파 차이와도 맞물리는 것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우리 당은 전통적으로 평가와 책임이 없는 정당이었다"면서 "이번에야말로 책임 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당직자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그대로 내년 비례대표로 올라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민노당 주위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총선 비례대표 라인업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대선 다음 날인 20일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공고가 나간다.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찾기 힘든 기이한 현상이다.
  
  또 다른 당직자는 "대선 끝나고 이명박 특검이다, 삼성 특검이다 해서 평가와 혁신 요구를 뭉개고 넘어갈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고 우려했다. 평등파로 분류되는 서울 지역의 한 당원은 "자주파에게 100%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이제는 그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헤어져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인사는 "말은 다 좋은데 10년 동안 쌓아온 민노당이라는 물적 토대를 버릴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당 내에 있겠냐"면서 "비례대표를 노리는 자주파 인사들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 각각 출마할 노회찬, 심상정 의원도 당 간판을 내놓을 순 없다"고 내다봤다.
  
  이 인사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이 이뤄지긴 하겠지만 봉합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분히 감정적인 분당론 등이 팽배해진 터라 제대로 된 패인 분석과 쇄신의 기틀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조기에 당을 수습하지 못하면 총선 패배가 다음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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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지난 대선보다 1%P ↓…민노당 침통 (한겨레, 조혜정 기자, 2007-12-20 오전 02:14:33)
“참패…최고위원 일괄 사퇴해야”, “재창당 수준 쇄신 총선 대비를” 
   
»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19일 저녁 서울 문래동 당사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들의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 소회를 밝힌 뒤 당직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대선 득표율(3.9%)에도 못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투표가 끝난 이날 오후 6시 서울 문래동 당사 6층 개표 상황실에 들어선 권영길 후보는,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득표율이 2.9~3%에 그쳤다는 소식을 접하자 굳은 표정으로 20분 만에 자리를 떴다. 99%가 개표된 20일 오전 1시 현재 권 후보는 3.01%(70여만표) 득표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였다.

  
권 후보는 저녁 7시께 다시 상황실을 찾아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민주노동당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호소드렸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국민 여러분께서 주신 지지를 밑거름으로 다시 비상하겠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문성현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 주요 인사 20여명과 “고생했다”며 악수를 나눈 뒤 일원동 자택으로 떠났다. 말문을 닫은 선대위 인사들도 곧이어 허탈한 표정으로 상황실을 떠났다. 지난 대선 당시 거센 ‘사표론’ 속에서도 3.9%(95만여표) 득표로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돌풍을 일으켰던 일은 꿈인 듯했다.  
 

[현장] 침통한 민주노동당 쓸쓸하게 돌아서는 권영길 후보

 

  
당직자들은 권 후보가 3% 벽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개표 결과가 나오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당직자는 “참담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보다도 뒤진 5등으로 확인되자 민주노동당 안에선 “정치적 참패”라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1·2위 후보가 박빙을 달리면서 사표론에 시달렸던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에는 사표론에서 자유로운 상황에서도 지난 대선보다 못한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 당직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선 최고위원들이 대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일괄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선대위 인사들은 이날 밤 긴급 회의를 열어, 패배 원인을 짚어보며 당 수습 대책을 논의했다.

  
당분간 민주노동당은 대선 패배 책임을 놓고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는 총선 전망도 밝지 않은 탓이다. 당 내부에서는 “재창당 수준의 강력한 당 쇄신이 필요하다. 20일로 예정된 비례대표 후보 경선 공고를 늦추고, 철저한 대선 평가를 바탕으로 총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의견그룹 사이에선 “언제까지 정파 갈등에 허우적댈 순 없다. 당을 깨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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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오만과 증오의 정치로 출발선언해서는 안 된다. (2007년 12월 19일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황선)
 
한나라당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가 대선 아침부터 ‘좌파적출 수술’을 공언하고 나섰다.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고하고 있지만
차기정부를 장악하게 된 한나라당이 이후 희망의 정치를 할 계획은 없는 모양이다.
 
참여정부의 실정이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도 이번 대선에 개입할 수 없도록 봉쇄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현 정부가 정권교체와 국민의 정치혐오라는 혹독한 회초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능정권의 좌충우돌이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선택하지 않은 때문은 아니다.
 
전에 없이 냉소적으로 이번 대선과정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과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한나라당과 당선자는 숙고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경제파탄의 책임자, 분열을 자양분으로 삼아 버텨온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을 잊은 것은 아니라는 것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온갖 부족점을 모르거나 그 흠이 용인되기 때문에 택한 것도 아니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의 냉혹한 심판을 당선자라고 피할 수는 없다.
온갖 의혹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조심 걸으며 국민들의 의혹도 해소하고 갈갈이 찢긴 각계각층 국민들의 마음도 보듬어야 한다.
그간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오전 울려나온 ‘좌파적출수술’같은 발상 때문이었다.
대선 당일부터 한나라당에서 ‘증오의 칼’을 가는 소리만 들려온다면 스스로 심판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참여정부의 참모들이 오만함을 버리지 못해 민심이반을 가속화시켰다는 교훈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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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06:34 2007/12/20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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