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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홀릭 - 그대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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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홀릭(Love Holic) - 그대만 있다면
  
날 사랑해서 떠난다며 눈물짓던 그대의 말을 믿을수 없죠
하지만 나의 전부였던 그대가 힘들어하기에 잡을수 없었죠
  
온통 너와의 기억뿐인 나를 위해서였다면
조금씩 무너져 가는 날 날 위한다면
  
이대로 내 곁에 있어야 해요 나를 떠나면 안돼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괜찮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함께 웃던 시간들을 함께 했던 약속들을 지금도 영원히 기억하겠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요 무엇이 날 위한건지 그대는 알고 있어요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세요 나를 떠나지 말아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난 좋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온통 그대의 생각뿐인 나를 위해서였다면
초라하게 쓰러지는 날 날 위한다면
  
이대로 내 곁에 있어야 해요 나를 떠나면 안돼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괜찮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세요 나를 떠나지 말아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난 좋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Loveholic - 그대만 있다면(어느멋진날ost)
  
드라마 '어느 멋진 날'를 보진 않았을지라도 거기에 삽입되었던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절절한 목소리 때문에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노래인 듯하다. 물론 그 가사는 대개의 사랑가와 마찬가지로 진부하다. 그렇지만 마음에 와닿는 걸 어떻게 하나.
 
나는 처음에 이 노래가 '연애시대'에 삽입된 곡인 줄 알았다. Sweet Sorrow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말고 귀에 감기는 노래가 있어서, 이 곡을 찾다가 알게 된 것이다. 찾았던 곡은 진호의 <만약에 우리>였다. 사실 두 곡의 분위기가 그리 비슷하지도 않은데...
 
진호 - 만약에 우리 (Original Bossa Nova ver.)
  
그 때 너를 그냥 지나쳤다면 우린 지금 더 행복했을까
아직도 믿고 싶은 내 사랑 속에는 언제나 처음 같은 네 모습이
  
그 땐 뭐든 둘이었는데 이젠 모두 다 하나 뿐이야
지금도 비어 있는 내 맘 한 자리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그 사랑
  
가끔 나 바람에게서 너를 만질 수 있어
어느 새 너무 멀리 간 너를 이렇게 난 후회로만 (만날 수 있어)
 
만약에 우리 (우리) 이별도 사랑인 줄 알았다면
우리 눈물도 행복인 줄 알았다면
다시 (다시) 못 올 시간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다고
단 한 번도 내 마음 모두 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해
  
조금 늦게 너와 마주쳤다면 우리 오래 더 사랑했을까
아직도 찾지 못한 내 사랑 속에는 언제나 거울 같은 네 모습이
  
그 때 우리 더 사랑했다면 지금 우린 더 행복했을까
  
 
찾아보니 <그대만 있다면>의 버전도 여러가지이다. 강현민의 솔로앨범에 실린, 가사와 분위기가 약간 다른 버전도 있고, 1999년 일기예보 5집에 실린 것도 있는데, 이것이 원곡이 아닌가 싶다. 일기예보의 노래 중에 이 노래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일기예보의 노래를 리바이벌한 일본 곡도 있는데, 여자가수가 부르지만, 러브홀릭의 버전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강현민 노래를 리바이벌한 중국 버전도 있다. 
   
강현민 - 그대만 있다면 
   
일기예보 - 그대만 있다면 
  
Tomomi Kahara - あなたがいれば
 
중국버전 http://love790415.myweb.hinet.net/SHOW.mp3
  
이 노래들 중에서 자주 들어봐서 그런지 러브홀릭 버전이 가장 좋다. 하긴 러브홀릭이 부르는 발라드는 대부분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듣게 되고,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나 또한 MP3 플레이어로 계속 듣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씨야의 <여인의 향기>도 그러한데... ㅡ.ㅡ;;
   
덧붙여, '연애시대'는 다시 봐도 재미있을 듯한데, 케이블 방송에서 다시 안해주나. 감우성과 손예진 사이에 쏟아져나오는 그 감칠맛나는 대사들을 듣고 싶다. 여기에 지금은 월화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가수지망생(이젠 가수인가?)으로 열연하는 이하나의 풋풋한 모습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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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3 02:17 2007/03/1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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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10 앞으로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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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3. 10 (토) 4: 00
  
-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나도 위키피디아를 꽤 찾는 편인데...
 
‘위키피디아’ 필자신분 확인키로 (한겨레, 이본영 기자, 2007-03-09 오후 08:06:20)
신뢰성 논란에 제한적 시행
  
위키피디아 창업자 지미 웨일스는 7일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집필 참여자가 전문가임을 내세우려 한다면 먼저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익명으로 자유롭게 집필하게 한다는 원칙은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출발한 위키피디아는 250여개 언어로 500만건 이상의 글을 확보하며 막강한 온라인 지식창고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유에스에이투데이>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존 시전털러가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 암살에 연루됐다는 잘못된 내용의 글이 문제를 일으키는 등 말썽이 끊이질 않고 있다.
   
미국 버몬트주 미들베리대 역사학과는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시험이나 과제물에 쓰는 것을 불허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웨일스는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위키피디아 내용을 검증한다”며 누리꾼들의 자정능력이 전반적으로 위키피디아 내용의 신뢰성을 확보해 준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 창업자 지미 웨일스는 7일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집필 참여자가 전문가임을 내세우려 한다면 먼저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익명으로 자유롭게 집필하게 한다는 원칙은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 3명의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자기 의견 개진이 활발하다. 그리고 그렇게 활발한 만큼 언론에도 많이 노출된다. 이래서 선거가 정치활동의 공간이라고 하나 보다. 개헌 문제에 있어서도 전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들 3명의 후보와는 약간 다른데, 민주노동당에는 이 3명의 의견만이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단병호 의원이 심상정 의원의 대선후보 출마선언에 함께 하면서 출마를 권유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심상정의 선전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그 활동의 성과가 개인에게 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으로, 정치조직으로 남도록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전진의 상황은 안타까운 지점이 많다. 회원들이 각 캠프로 나뉘어져 개별적으로 활동한다면 그게 전진의 성과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 한 캠프로 들어간다거나 어떤 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 후보의 움직임이 전진의 활동으로 동일시되지 않는 이상 그 커다란 정치투쟁의 공간에서 전진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리더십이 중요하긴 하지만, 개인이 아닌 집단, 조직을 내세우는 게 바로 진보정치가 아닌가. 한 개인으로 대표되는 정치는 문제가 있지 않나.
  
민노, 대선후보 개헌 문제 미묘한 시각차 (레디앙, 2007년 03월 08일 (목) 19:04:45 정제혁 기자)
  
- 종권 선배는 왜 이리 선거연합을 강조하는 것일까. 선거인단 제도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로 민중진영의 선거연합을 인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진보대연합과도 상관이 있으리라. 하지만 초점은 당원직선제의 의미를 강조하고, 이를 지키는데 두어져야 하지 않나.
 
한국진보연대를 정치연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상, 정종권 선배가 진보세력권으로 규정하면서 선거연합으로 하고 있는 세력들이 원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되는 것 아닐까. 이번에 대선 후보를 선출하더라도 그 주도권이 우파들에게 있는 이상 그 성과는 우파에게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조건에서 자민통에 비판적인 외부세력들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왜 선거인단 제도에 반대하는가 (레디앙, 2007년 03월 09일 (금) 08:48:54 정종권 /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독자투고] ‘선거인단’과 ‘선거연합’에 대한 몇가지 문답
  
현재적 시점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반대하고 이들과 단절하고 있는 세력이 가장 넓은 의미의 진보세력권으로 규정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전통적인 의미의 민중진영을 넘어 현재의 전선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선거연합, 정치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한 과제이다.
  
일반적으로 민주노동당 외에 이들을 대표하는 세력으로는 창조한국 미래구상(혹은 그 일부), 한국사회당, 노동자의 힘, 초록정치연대, 진보적 시민단체 등을 들 수 있다. 이 세력들과의 선거연합 정치연합이라는 것은 이 세력들이 대변하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 민중들의 층위들을 하나로 단결시킨다는 의미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정당이지만 그 힘과 규모를 앞세우지 않고 이들 다양한 진보진영 내의 정치세력들과 연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정치협상이다. 그러나 정치협상은 대상이 막연해서도 안되며 모호해서도 안된다. 대중적 영향력과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과의 협상이 되어야 한다. 

    
- 평택경찰서 경찰들의 폭력이 도를 넘고 있다.
오늘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재현되지 않을까.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을 모두 저지한다고 하던데...
  
"공돌이 새끼들, 무조건 맞아야 해" (레디앙, 2007년 03월 08일 (목) 10:44:41 박점규 현장기자)
평택경찰 폭력연행 충격…법원 판결 무시한 사장 편들어
   
"이런 공돌이 같은 새끼들아", "이 개××들아, 우리들은 강력계 형사니까 아무것도 몰라. 넌 무조건 맞아야 해"
평택경찰서 강력계 사복경찰들이 평화적인 거리행진을 하는 노동자들을 연행하면서 70년대에나 했던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쏟아져 충격을 주고 있다. 

  
금속노조 연대 집회 도중 17명 폭력 연행 (레디앙, 2007년 03월 07일 (수) 18:40:22 박점규 현장기자)
7일 5시 경 마무리집회 때 사복 체포조 난입 … "머리채 잡혀 끌려갔다"
 
 
"관광버스 말고 기차를 이용하세요" (레디앙, 2007년 03월 09일 (금) 17:15:02 박점규 현장기자)
[민주노총·전농 긴급지침] 10일 한미FTA 저지 시청 집회 원봉 맞서

 
- 카린 프리스터의 책을 일부 읽었다.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집으로 나르면서 그 중에 일부 볼만한 내용이 있으면 참고만 하려고 하는데, 이 책 중에서 갈바노 델라 볼페를 다룬 장 중 '이탈리아 맑스주의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하여'라는 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별로 영양가가 없다.
   
프리스터, 카린. 1993. 윤수종 역. 『이탈리아 맑스주의와 국가이론』. 새길. (Priester, Krin. 1981. Studien zur Staatsheorie des italienischen Marxismus: Gramsci und Della Volpe. Campus Verlag, Frankfurt/New York.)
  
체로니에 따르면, 코르쉬의 공헌은 사회화를 단순히 국유화와 동일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코르쉬는 새로운 “산업민주주의” 내부에서 공장평의회를 자본주의적 사영경제를 사회주의적 공동체경제로 대체하려는 목적을 갖는, 새로운 생산 규제의 필수불가결한 도구로서 이해한다.
   
레닌
민주주의는 하나의 국가형태, 국가의 행동양식 중의 하나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체계적인 폭력 사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국가헌법을 규정하고 국가를 관리하는, 시민들 사이의 평등,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형식적 인정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발전단계에서 첫째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결되며, 그들에게 부르조아적인 국가기구(상비군, 경찰, 공무원)를 해체하고 파괴하며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가능성, 그것을 무장한 노동인민으로 구성되는 보다 민주적인 국가기구,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국가기구로 대체할 가능성을 부여해준다. 여기에서 ‘양은 질로 전화한다’. 민주주의의 그러한 단계는 부르조아 사회의 틀의 파열 및 그것의 사회주의적 변혁의 시작과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국가 관리에 참여하게 된다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실제로 국가 지도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 위한 전제를 창출한다.

   
ㅇ 3. 11 (일) 새벽 3:20
 
- 10일 어제도 어영부영 보냈다. 공부를 한다고 집회에 나가려는 욕구도 참고 집중하려 했지만, 인터넷 서핑만 열심히 했을 뿐 진도 나간 것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 나갈 걸 그랬나. 집회에서 제법 충돌이 있었나 보다. 경찰들이 과잉진압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집회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게릴라성 집회를 했으니 경찰들도 조금 열받을 만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집회를 봉쇄한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마 나갔다고 하더라도 운동은 조금 했겠지만, 별로 기분전환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무력감을 느끼면서 '이런 식의 집회밖에 못하나', '좀더 대중적으로 투쟁을 알려낼 방법은 없으려나'하는 고민만 하다가 왔을 것이 뻔하다. 이전에도 그랬다시피...
 
이런 집회에 대해 단지 참여만 독려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내용으로 민중들을 만날 것인지,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들이 속한 단위에서, 아니면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해서 나오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 오늘은 연구실에 나가서 발간사를 써야겠군. 집에서는 역시나 집중이 안된다. 이 넘의 티브이가 문제다.
 
- 참세상에 공무원노조와 관련된 기사가 있다. 그 기사에 대해 반발하는 댓글도 있고...
진상이 어떻게 된 것일까. 알아본다고 하면서 그냥 넘어갔군.
공무원노조의 지도부가 아무래도 무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투쟁의 정당성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연대투쟁을 해주도록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오히려 고립되면서 자충수를 두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서도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을 텐데...
   
권승복, “조직진로 합의안 도출 때까지 대대 연기”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7년03월07일 12시20분)
특별법 거부·수용 논쟁에 “소모적 논쟁 조직에 유익하지 않아” 
 
     
-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여덟번째 2007년 회원총회가 8일로 마무리되었다. 온라인을 통한 것이긴 하지만 50%가 넘는 회원들이 참여를 하였다. 앞으로는 회의정족수를 바꾼다고 하니 이번처럼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원들의 참여하에 총회를 치루려고 하는 그 정신은 진보진영에서 배울 만하다. 이제 커졌다는 이유로 더이상 총회는 민주노동당에서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투표 또한 전자투표를 하지만 그것이 가진 문제는 지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개방형 경선제로 대선후보를 선출하면서 오프라인으로만 선거인단이 투표를 한다는데, 잘 될까. 개방형 경선제는 저지되어야 한다. 언젠가 블로그에 쓴 것(참고: 시민행동의 온라인총회)처럼, 진보진영에서도 이러한 온라인 총회에서 배워야 한다. 말로만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2007 함께하는 시민행동 여덟번째 회원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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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03:41 2007/03/11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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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것들(No Mercy For The Rud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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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에서 예의없는 것들(No Mercy For The Rude)을 보았다. 
  
2006년 8월 개봉작이고, 박철희 감독의 데뷰작이다.
신하균이 나와서 그냥 보기 시작했는데, 혀가 짧아 말을 못하는 신하균의 연기가 괜찮아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 왜 반응이 별로 였을까. 물론 나는 돈을 내고 영화관에서 보지는 못할 듯하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가 아닐까 싶다. 신하균의 나레이션에 특히 썰렁한 유머가 담겨있다.
   
신하균의 배역 이름은 없다. 그냥 킬러이고, 형이라고 불릴 뿐이다.
윤지혜도 그냥 그녀일 뿐이다. 사실 신하균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수술비 1억을 마련하려고 킬러 전선에 뛰어든 것인데...
   
일기 속에 이 영화도 봤다고 하면 넘어갈 텐데, 여기에 아는 노래가 나와서 일부러 글을 쓴다.
하나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이고 다른 하나는 Bella Ciao이다.
발레 킬러 김민준이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볼레로'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 본지도 상당히 오래되었구나.
그리고 김민준을 떠나보낼 때 신하균의 한 대사도 생각나네.
  
모두에게 공평한게 하나있다면
그건, 누구나 죽는다는 거지
그래, 겨우 죽을 때서야 사람들은 공평해지는 거야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시가 있다
입 속에 잎이 있다는 것은 혀를 말한다는데
검다는건 뭐지?
뜨거운 걸 먹다가 검게 탔다는 말인가?
 
아마, 그 시인도 혀가 짧은 것일거다
그래서 오랫동안 안써서 시커멓게 죽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시인이 됬겠지
말이 안되서 글로 살다보니까
시라도 한수 써서 친구와의 이별을 멋지게 노래하고 싶은데
  
근데, 어른이 되서도 시를 쓴다는 것은 거짓이야
세상엔 시로 노래할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거야
 
그래서 시는 거짓말이야
온통 검은 잎이야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케이블 방송에서 한번 본 것 같은데, 왜 김민준이 나온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역시 김민준의 연기는 밋밋하다.
그리고 신하균이 '차별없는 곳으로. 피없는 곳으로. 잘가시게 친구'라고 말한 것도 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의 대상이 되었던 배우가 여기에서도 악역으로 나온다. 그 카리스마가 대단... 그는 끝내 죽지 않는다.
   
신하균이 마지막에 죽을 때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예의없는 것들에게 끝나는가. 쪽팔리군.'
 
그래서 영화제목이 예의없는 것들인가 보다. 하긴 그가 죽인 이들도 대부분 예의없는 넘들이다. "세상의 쓰레기!"(~계의 쓰레기가 맞는데,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난다)
 
'니 앞에서 칼싸움을 이겨보고 싶었는데...
첫마디를 폼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가 웃으면서 숨을 거두며 남긴 말, "사~랑~해~."
 
"바닥이 차지? 이제 곧 따뜻해 질거야." (윤다혜)
 
'이제 졸리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돌아보면 왜 그리 길이 굽어있는지...
분명 반듯하게만 달려왔는데...' (신하균)
 
영화 속에서 청부가 아니고 자신의 의지로 선의의(?) 살인을 하였지만, 결국은 그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연장선상에서 스스로는 옳다고 믿으면서 한 일들이 나중에 보면 생각한 만큼의 결과를 낳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의 칼싸움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Anita Lane의 Bella Ciao이다. 영화 중 계속 흘러나오지만 음성이 나오는 것은 엔딩장면에서 뿐이다. Anita Lane의 노래는 사랑하는 여인을 남기고 싸움을 하러 떠나는 빨치산 청년을 기리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사실 다른 버전의 노래들이 더 유명하다.

Anita Lane - Bella Ciao
   
오랜만에 다양한 Bella Ciao 버전의 노래를 들었다. Swingle Singers의 노래와 Modena City Ramblers의 흥겨운 버전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구만.
참고: Bella Ci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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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03:08 2007/03/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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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13 -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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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2. 13 (화)
 
- 임선영씨가 포럼을 맡을 사람으로 와서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업데이트된 메뉴얼을 주지 않았다. 빨리 작업 메뉴얼을 주어야겠다.
 
- 점심 때 임채원 선배와 식사를 하다. '사회투자국가'를 책으로 냈다고 하여 보건복지부에서 강연을 한데 이어 청와대 강의도 한단다. 느낌에 현 정부에서 향후의 이념적 좌표로 사회투자국가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채원형의 책을 한번 훑어봐야겠네.
 
얘기를 나누다가 삼성의 대선시 표심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삼성이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거부권은 행사할 수 있지 않겠나. 아마 현대맨인 이명박을 그리 좋아하진 않을 듯한데...
 
- 월요일에 행문씨가 컴퓨터를 정리했기에 오전에는 아영씨와 함께 연구실 청소를 하였다. 나름대로 깔끔한 느낌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책들과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건 언제 정리할까.
 
- 오후에 막 선거강령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하려는 순간 정 모교수가 와서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그래서 빵코에 가서 30분 정도 논문작성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었다. 이런 자리는 참 부담스럽다. 정 교수는 각 사례별로 10개 정도의 이론 논문을 검토하고 정리하여 이를 취합하면 된다고 하면서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빨리 하란다. 누구는 하기 싫어서 이러나.
나올 때 비가 쏟아져서 막 뛰어왔다. 이제 거의 봄이 된 것 같다. 
 
- 저녁 때 전진 선거강령 준비모임에 늦게 참여했다. 펜 동지의 제안에 따라 틀을 바꾸기로 하였다. 사실 이전 버전은 문제가 많았다. 분류를 양극화, 소수자, 소유·공공성(의료, 주택, 교육), 사회화(경제, 에너지, 산업, 금융), 평화, 정치의 순으로 배열하기로 했다. 내가 할 부분은 다른 동지들이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선거강령이 대선방침을 정하는 데 있어서 알리바이, 책임전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왔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선거강령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핑계가 어처구니가 없다. 23일 중앙위에서 어떻게 결정하려나.


ㅇ 2. 14(수) 새벽
 
- 英 금연법 강화로 ‘실버 공동체’ 붕괴 (경향신문, 최희진기자, 2007년 02월 12일 18:18:26)
  
영국 노인들이 빙고게임장에 모여 친분을 다지곤 해서 빙고 공동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공공장소 흡연을 금지하는 금연법이 제정되면서 골초 손님들이 이를 떠나자 빙고장이 문을 닫게 되어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기사이다. 금연이라는 사소한 정책에도 이러한 외부성의 효과를 제대로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ㅇ 2. 15 (목) 남부초교 학운위
 
- 2006학년도 제10회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했다. 2007학년도의 학교 회계 세입·세출예산서(안)을 검토하는 자리였기에 중요했지만, 내가 할 것은 별로 없었다. 이미 전교조 교사들이 참여하여 학교장과 이에 대해 협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개별적인 문제들, 이를 테면 학생 복리비가 줄어든 것, 컴퓨터에 관련된 문제 등을 지적하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
 
작년 3월에 했던 결산내용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지난 번 12월의 학운위 회의에서 미리 이를 주지시키고 연락을 해주었으면 검토를 했을 것이다. 학운위에 대해 학교 측만이 아니라 전교조에서도 그리 위상을 높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학부모들도 이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만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하여 주요 학교행사 일정(안)에 대해 교사들이 약간의 문제제기를 하였는데, 아마도 이번에 교장이 바뀌고 교사들의 전출입으로 새롭게 할 것이 많은 상황에서 이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따분한 보고과정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보고를 듣는 과정에서 졸았다. 이래도 되나 몰라.
 
- '수익자 부담'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시장화 기제는 교육현장에도 파고든다.
  
- 이번에 학운위를 시작할 때 국민의례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다. 처음이라서 조금은 난감하였다. 애국가까지는 안부른 것을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계속해서 학운위원장이 이를 강조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신동천 위원장이 이번을 마지막으로 학운위원장 자리를 그만둔다고 한다. 딱 1년간 운영위원장을 한 셈이다. 나름대로 매끄러운 진행을 하였는데, 조금은 아쉽다. 그리 충돌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선거운동을 할 목적으로 사임한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 어쩌면 운영위원장도 자신이 교육에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력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겠다.
 
나보고 양반이란다. 아마 별로 까다로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점잖게(?)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게 내 역할이었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게다가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거론해서 조금 쪽팔렸다. 다른 학부모 학운위원들도 다들 나와 동년배인데, 나만 미혼이라서 역량의 부족을 드러낸 것 같아서 그렇다. 다만 회의 뒤에 문샘이 내가 미혼인 것을 이번에 알았다며 교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서 전화위복이 된 것도 같고... 그런데 다들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소개가 될까 모르겠다. 나는 김샘도 좋은데...
 
- 3월에는 새롭게 운영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설마 나보고 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새롭게 임명될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과 함께 운영위원장 후보에 경선 출마할지 모른다. 또한번 쪽팔리는 일을 당해야 하나.
    
ㅇ 2. 15 (목) 안나 니콜 스미스의 사망
  
- 안나 니콜 스미스가 돌연사하였다. 결혼을 앞두고 싱글로서 마지막으로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났다가 사망한 것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케이블 방송에서 그가 출연한 영화를 한다. 그 영화는 아무리 봐도 B급 포르노영화인데...
 
- 조승우, 강혜정이 결별한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연예인끼리의 연애나 결혼은 참 우여곡절이 많은 듯하다.
 
- 바람이 무자게 세게 분다. 
  
ㅇ 2. 16 (금)
 
- 황석영, 이 아저씨 참 가지가지하네. 그로 인해 중도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재영의 비판이 유효하다.
관련기사를 모았다.
  
정치권등 찬·반론 파장 커지는 ‘황석영 총대론’(경향신문, 2007년 02월 14일 18:29:29 한윤정·박영환·김재중·손제민기자)
  
황씨는 이념이 아닌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가건물’처럼 만들어진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이 선진적인 보수·진보 양당체제로 재편돼야 하고, 합리적 보수를 포함한 중도가 힘을 얻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자신이 총대를 멜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범여권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측은 황씨의 문제제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보고 있다. 이수원 공보특보는 “두 분은 옛날부터 절친했고 지난달 황작가가 귀국했을 때도 만났다”면서 “국민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게 그분의 이야기인데 손 전 지사가 여기에 가장 맞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보수·진보 구도에 따른 대립·갈등을 버리고 중도를 찾자는 ‘화해상생마당’이나 국민통합후보를 내겠다는 ‘창조한국 미래구상’측 인사들도 황씨의 의견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이부영 화해상생마당 대표와 미래구상에 참여중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지난달 황씨와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대표는 “황선생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과거 우리가 진보라고 했던 것도 지금 보면 중도 정도이니 굳이 진보·보수 편가르지 말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자는 게 그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성과를 보면서 햇볕정책을 단순히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과거의 사고방식은 더이상 발붙이기 어렵다는 걸 느꼈다”며 “올 중반쯤 되면 황작가나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대안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여운을 남겼다.
  
최대표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범 시민운동권이 참여한 ‘창조한국 미래구상’의 목표는 국민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전문가그룹과 국민후보를 만들고 그가 개혁세력을 끌어들여 국민선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라면서 “황작가의 생각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운동이 탄력이 붙으면 정계개편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진보진영 인사들이 제기하는 중도론은 점차 호응을 얻어가는 추세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혁적 중도를 표방했고, ‘화해상생마당’의 김지하 시인은 좌우간의 기우뚱한 균형을 강조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도 통합적 해결력을 갖는 ‘강한 중도’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맥락에서 황석영의 중도론 역시 큰 설득력을 갖는다. 또 정치세력간의 유동적 힘의 공간인 중도가 발판을 얻기 위해서는 진보·보수진영의 개편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는 지적도 따른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일례로 재벌정책을 놓고 볼 때 열린우리당은 내부에서 친재벌과 반재벌로 큰 차이를 보인다”면서 “황작가가 제기한 보수·진보 정계개편은 ‘레짐 체인지’(정치질서 교체)가 이뤄지는 현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교수는 그러나 그 변화의 주역에 대해서는 황씨의 생각에 반대했다. 황씨는 ‘과거 진보진영의 단결’을 호소했지만 안교수는 “그들은 이미 변화의 동력을 잃었으며 새로운 감성의 문화창조자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진보진영의 외연을 넓히자는 황씨의 말을 반박하기도 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참여정부의 패배 원인을 혁신하는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 세를 불리거나 지지자를 확대하는 식으로 사고해서는 진보진영의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지금종 ‘미래구상’ 사무총장도 개혁세력의 후보로 손학규 전 지사를 영입하자는 데 대해 반대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나라당의 유력후보인 손전지사가 진보진영의 후보가 된다는 건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 출마를 위한 코미디”라고 말했다.
   

파리 체류 중 지난달 초 일시 귀국한 황석영씨는 한달간 다양한 사회지도층 인사를 접촉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했다. 그는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너무 크고, 이대로는 나도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없다”면서 “현재의 고정된 판을 바꿔서 선진적 민주화를 해보자”고 말했다. 
      
- 금속노조 선거에서 작살났다. 예상했던 결과다. 이제 선거에는 집착하지 말자.
   
- 연구실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다가 나갔더니 왠일로 나왔냐고 아영씨가 의아해한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ㅇ 2. 16 (금) 저녁
 
연구실에 있다가 바로 동생 차로 내려갈까 했는데, 집에 들렸다가 동생과 합류하기로 했다. 집에는 밥이 없고 해서 설렁탕으로 때웠다. 언제 동생이 올지 몰라 급하게 먹었는데, 시간이 계속 미뤄진다.
동생이 신림동으로 온다고 하여 그 동안 샤워를 하려 했는데, 수속이 복잡하니 구리로 오란다. 급하게 샤워하고 빨리 가야겠군. 

ㅇ 2. 18 (일)
 
- 어제 새벽에 광주로 떠나면서 구리의 동생집을 찾느라 엄청 헤맸다. 수택 사거리 다음이 토평 사거리에 있는 주공아파트 단지인데, 이를 놓치고 남양주까지 가게 된 것이다. 뱀골, 낙골 등 생소한 지명들 때문에 돌아올 생각을 했다. 구리를 갈 때 9번 버스는 타면 안된다는 생각. 그래도 다시 돌아올 때는 12시가 넘었음에도 9번버스가 있어서 바로 올 수 있었다.
 
광주로 내려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이건 봄비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난 후 일요일은 거의 봄 날씨이다. 코트를 입고올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이번 설에도 집에서만 뒹굴뒹굴하였다. 다행히 티브이만 본 것은 아니고, 어슐러 르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을 300여페이지 읽었다는 것이 수확. 물론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무겁게 가방안에 책과 복사물들을 왜 들고 갔나.
  
- 조카 민서가 부쩍 컸다. 이제는 말도 나름 또박또박하고, 자신의 의사도 잘 표현한다. 심심하면 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동생은 책 읽기 좋아하는 딸내미 땜에 많이 괴로울 것 같다.
  
- 할아버지 등이 모셔진 산소에 이어 외할아버지 산소에도 갔다왔다. 산소에 가니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 이번 설에도 동생이 운전하느라 수고했다. 광주에 내려갈 때, 산소에 갈 때, 그리고 다시 올라올 때... 허리도 그리 좋지 않은데, 많이 무리를 했다. 동생 수고를 덜려면 내가 제대로 운전을 배워야 할 텐데... 언제까지 장롱면허로 놔두어야 할까.
    
ㅇ 2. 19 (월) 아침
    
- 설 연휴 마지막날. 동생차로 새벽에 서울로 올라왔다. 의외로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차라리 그냥 고속버스를 타고 와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오자마자 컴퓨터를 켠 순간 네이버블로그 안게에 비밀글로 나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떴다. 약간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이 사실이고, 당일에 사과한 것이외에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였기에 당연히 사과글을 써서 그의 블로그 안게에 올리고, 자숙의 의미로 네이버블로그를 닫았다. 그와는 네이버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블로그도 닫혀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다 된 것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모자라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진정어린 사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진보블로그는 이렇게 비공개로 카테고리별로 바꾸는 기능이 없는 것일까.
 
ㅇ 2. 19 (월) 14: 40

-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다. 학교에 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집중이 안될 것 같기도 한데...
 
- 집에서 티브이로 중계를 해주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배구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관중석을 보면 연고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천안 현대, 대전 삼성이라는 티켓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기업 자체를 선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KBS1은 버젓하게 티브이의 자막에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을 써놓았다.
 
게다가 해설자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의 팬들도 이런 경기를 즐길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상당히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것에 흥분한다. 연고가 없는 중립지역이 서울 뿐일까. 프로야구의 한국시리즈도 5,6,7차전을 서울에서 거행한다. 거기에서는 서울에 연고가 있는 팀이 2팀이나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서울이 가진 위상을 감안한 것이겠지만, 지역균형발전이니 수도권 집중 방지 등의 말을 떠들고자 한다면 이러한 관행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ㅇ 2. 20 (화) 03: 30
   
- 저녁 때 자고 일어났더니 9시이다. 역시 설 때 리듬이 바뀐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날새기로 했다.
오늘은 일찍 연구실로 가야지.
  
- 경제강령을 어떻게 하나. 잘 정리가 안되는데...
종철이가 밤에 재촉전화를 한다. 아마 이 문제로 어제부터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내일 선거강령 TFT가 있기에 그 전까지는 정리를 해서 가져가야 하겠지.
할 게 많구나. 옆에 쌓아놓은 복사물과 책들도 정리해야 하고, 블로그나 카페에 옮겨놔야겠다고 마음먹은 기사들 스크랩해놓은 것도 정리해야 하는데...
   
- 쿠르드 여전사들은 정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구나.
현경 교수의 이슬람 순례 연재글이 갈수록 흥미롭다.
 
민족차별·성차별 맞선 ‘쿠르드 여전사’(한겨레,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2007-02-15 오후 04:46:17)
현경 교수의 이슬람 순례 ⑩ PKK 여성운동가들

  
“우리들은 터키 정부의 차별정책에 의해서, 여성억압적인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에 의해서, 가난에 의해서, 또 쿠르드족 남성들의 가정폭력에 의해서 다중적으로 억압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독립국가가 아니라 모든 생활 속에 스며들어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피케이케이(PKK:Kurdistan Workers Party)의 여성운동가
  
피케이케이 여성들은 오랜 운동 과정을 통해 가부장적 국가체제가 아니라 터키인들을 포함해서 모든 소외된 사람들이 국가, 인종,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생활속에 체화된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를 원한다. 그들이 바라는 일상 속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일어나는 문화운동, 시민운동이다. 이것이야말로 개개인 일상의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삶의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오랜 감옥생활에서 페미니스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 “감옥이 우리들의 가장 좋은 대학교였다”고 말했다. 감옥 속에서 여성들은 함께 고민했고 공부했고 서로를 자매애로 치유했다고 고백한다.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어떤 것이냐고 묻자 그들은 인권과 여성의 권리와 정의가 존중되는 그런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ㅇ 2. 20 (화) 13:50
  
- 7시 반경에 깜빡 잠이 들고 나서 일어나보니 10시다. 그냥 연구실로 간다고 하면서 잠깐 방심하다 보니 그랬던 모양이다. 아영씨가 연구실은 자신이 지킨다고 천천히 오란다. 친절한 아영씨. ㅋㅋ
  
어제 밤에 마무리 못한 것들을 정리하고 나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니 12시가 넘었다. 뉴스에서는 아침, 밤은 써늘하나 낮동안은 봄날씨라고 하였지만, 밤에 늦게 들어올 것을 생각하여 이전과 비슷하게 코트를 입고 나갔다. 등산복 비스무리한 것인데, 약간 지저분해서 오늘 입고 빨려고 해서 입었다. 하지만 나만 두터운 옷을 입은 듯하여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어차피 낮에는 연구실에서 이를 입고 있지 않으니 상관은 없지만...
 
- 오는 길에 정문 옆에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보이자, 심은하가 출연했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동물원 옆 미술관'인가? ㅡ.ㅡ;;)이 생각나고, 과거 철책으로 둘러쌓여졌던 20여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과 같이 툭 트인 공간이었다면 교투를 했을 때 학생과 전경 중 과연 어느 쪽이 유리했을까. 일단 검문검색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도망갈 곳이 많아서 좋지 않았을까.
 
이제는 교문 옆 잔디밭 속에 과거에는 종종 보였던 지랄탄의 흔적도 사라졌다. 교문투쟁이라는 게 언제 있었냐는 듯... 하긴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교투를 할까. 그렇게 하려고 하지고 않을 것이고, 이를 막지도 않을 것이고... 앞으로 교투를 할 날이 올까. 교투가 학생운동의 상징은 아니지만, 괜시리 이젠 학생운동의 시대도 끝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ㅇ 2. 21 (수) 07: 20 어제 있었던 전진 선거강령TFT
  
- 뒤늦게 내 분담부분을 한다고 약속된 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도착했다. 다른 성원들에게 미안한 느낌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해서 갔기에 조금은 덜었다.
저녁식사도 샌드위치로 때웠다. 이럴 거면 미리 준비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 논의 끝에 경제강령의 제목이 섹시하게 바뀌었다. '이제는 돈벌이(이윤원리, 상업화, 사유화)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사회공공성의 확대를!'에서 '이윤보다 인간을! 상업화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공공성의 확대를!'로...
 
- 연기금 사회화 도모, 아시아 경제공동체 창설 부분은 삭제하고 다른 쪽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3-fare모형으로 일컬어지는 한국형 신성장동력 사회투자모형과 조세재정개혁 또한 빼기로 했다. 사실 사회주의 강령으로 넣기엔 애매하다.
 
기업내 민주적 결정방식으로서 공익이사제의 도입과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놓고 토론을 했는데, 공익이사제의 도입 쪽으로 정했다. 사실 공동결정제도는 역관계가 변하면 자본가들이 알아서 제안할 것이다. 산업구조 전환에 있어서 생산력 발전은 제조업 중심으로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발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생산력 발전에조차도 역행하고 있기에 괜찮다고 했지만, 조금 어색하다.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용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성장이라는 용어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 역시 이렇게 동지들과 토론하는 자리는 즐겁고 배울 것도 많다.
 
- 방금 전에 경제강령 수정본을 업로드했다. 어느 정도 완결된 셈이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관련된 글들을 보면서 정리를 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리...
  
- 뒷풀이도 이것저것 씹는 맛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12시가 넘어 집으로 오려 할 때 택시를 타려다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12시 5분쯤에 있는 지하철을 놓치고, 12시 20분 쯤에 공덕역에서 타서 삼각지로, 30분이 넘어서 사당으로, 50분이 다 되어서 서울대입구역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로...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돈을 아끼다.
 
그 와중에 르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을 다 보았다. 만세! 오랜만에 보는 SF 소설이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 아무튼 어영부영 날을 새고 말았네. 식사하고 출근해야지.
   
ㅇ 2. 22 (목) 01:10
  
- 키부츠도 맛이 가는구나. 안되는 건가.
 
저물어가는 이스라엘 키부츠의 이상(한겨레, 이본영 기자, 2007-02-21 오후 10:04:01)
철저한 공동소유 기반 공동체 사유화 바람, 공업화-외부인력 유입-소비주의 등이 요인
  
수년 전 대다수가 사유화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던 320명의 구성원들은 이번에는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사유화는 차등임금, 개인계좌 개설, 서비스요금 지불 등 여태껏 지켜온 가치와 반대되는 제도다. 1990년을 전후해 번진 사유화 바람은 260여개 키부츠 대부분을 변화시키고, 데가니아까지 동참하면서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고 있다.

  
이스라엘 ‘재건 신화’의 주축인 키부츠는 자발적 공동소유제를 채택한 독특한 공동체다. 각 키부츠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동 소유·공동 육아·공동 식사·직접민주주의 등의 운영시스템을 일궜다. 현금도 개인계좌도 필요없는 곳이 많았고, 일부는 옷까지 공동소유로 했다. 키부츠 밖에 일자리가 있는 구성원은 소득을 공동체에 귀속시켜야 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이념 정립에는 독일 출신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이 컸다.
  
현재는 키부츠 인구의 15%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노동력의 40% 가까이가 타이인들과 아랍인들이다. “착취하지도 착취당하지도 않는” 유대인들만의 공동체 구현이 구조적으로 힘들게 됐다. 소비주의와 개인주의, 세속주의를 조장하는 유대교의 침투도 키부츠의 사회주의적 전통을 무너뜨리는 데 한몫했다. 부유한 공동체의 상징이던 많은 키부츠들은 1980년대에 인플레이션을 기대하고 마련한 은행빚에도 발목이 잡혀있다.

  
- 여수 외국인 보호시설 참사를 대하면서도 초점은 화재 원인이나 안전 불감증 등에만 쏠렸을 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박노자 교수가 이에 대해 칼럼에서 짚었다.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가 많이 얘기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 중의 하나로 이민에 열려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말로만 세계화를 떠들 것이 아니라 바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노자칼럼] 이민 받아들이기를 왜 거부하는가?(한겨레, 2007-02-21 오후 05:13:30)
  
지금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하는 약 19만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국내에서 장기적으로 노동하거나 평생 살기를 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그들을 사면하여 차후 귀화 자격이 부여되는 합법 체류자로 만든다면 다민족 공동체 만들기에 기여하고, ‘불법 체류’와 같은 약점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인권 침해를 줄이고, 노동자가 필요한 경제에 도움을 주는 일거삼득의 묘책일 것이다.
  
중국·인도·파키스탄에서 코리아 타운들이 번성하기를 바란다면,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내의 차이나·인도·파키스탄 타운들도 세워져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핵심적인 부분은,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체류를 3년으로 제한하고 사업장 이동을 금지하는 등 그 발을 묶어 버리는 현행 고용허가제를, 외국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사이의 벽을 허물고 외국 노동자의 궁극적 국내 정주를 가능케 하는 ‘노동허가제’로 단계적으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
  
ㅇ 2. 22 (목) 4:00
 
- 지금까지 설대에서는 등록금 납부거부운동이 없었던 듯한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서울대 등록금이 연간 평균 496만 원으로 전국 국공립 대학 중 가장 높았고, 1월 22일 있었던 학장회의에서 서울대 역사 상 처음으로 신입생 등록금을 두자릿수 포인트인 12.7%를 인상하기로 결정했다는데, 그렇더라도 그 만큼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게다가 지난 6년 동안 등록금이 68% 올랐다니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데... 연대투쟁이 필요하지 않은지...
   
서울대, 사상 첫 등록금 납부거부 운동 시작(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7-02-21 오전 11:32:03)
학생회 계좌로 납입하는 '민주납부' 운동 벌여


ㅇ 2. 22 (목) 20:15
 
- 야인님이 과천으로 술마시러 오라는 걸 거부하고 그냥 연구실에서 글을 보기로 했다. 3월 9일까지 논문계획서 신청서를 내야 하고, 3월에 논문을 써야 하는 처지에 다른 밀린 일도 해야 하고 해서 되도록이면 술자리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진의 문제에 대해 전반적인 의견 같은 것을 제출하고 싶다. 금속 선거, 총연맹 선거 시기의 후보자 적격 문제, 상임위원회 및 중앙위원회 구성 문제, 대선 방침 문제, 무능한 당위원회 문제, 민주노총 및 당에서 회원들의 철수, 분당 문제, 회원 교육 및 기관지 문제 등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듣고 싶은데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가 싫은데...
 
새벽에 글이 올라왔다가 자진삭제된 박양의 글도 생각해볼 꺼리가 있다. 전진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한편으로 실망감도 있고, 조직원으로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전진 회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상황에 대한 토로는 공감할 만했다.
 
지역위 혁신도 어떻게 할까 고민된다. 어제 서희님에게 들은 노동복지센터도 좋은 주제이다. 당의 공식 사업체계와 분리하여 자생적으로 지역에서 노동을 고민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에 대한 고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뭘하고 있지.
 
- 박세일의 "21세기 국가발전 이념: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글을 읽으려고 하다가 지난 2월초에 있었던 전진 임시총회의 논의내용을 메모해놓은 것이 뒷면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 때 박세일 글을 읽으려고 했는데, 아직도 읽지 않았구나, 참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진 총회의 논의 내용을 정리해서 내 의견과 함께 공개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결국 올리지 못하고 그냥 쓰레기통에 넣기로 했다. 이런 것을 정리하면서 내 사고가 확립되는데, 요새 이런 짓을 하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글들을 대충이라도 빨리 보고 버리든지 해야지. 보지도 않을 거면서 이렇게 쌓아둔 것이 많은지...
  
- 선영씨와 채일씨에게 오후에 센터의 전반적인 예산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본래는 재작년에 수행되었던 용역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작년에 진행되었던 본부 감사 뿐만 아니라 센터의 예산 전반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채일씨는 이전에 과정 조교를 했기 때문인지 이해력이 빠르다. 그 빠른 이해력만큼 일도 깔끔하게 잘 처리해야 할 텐데...
  
ㅇ 2. 23 (금) 02:00
  
- 박세일의 논문을 읽다가 머리를 식힌다고 진보블로그에 들렸다가 '채식논쟁'에 빠져들었다. 젠장... 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을 하고 싶진 않다만, EM님의 논지가 타당하다고 본다.
 
채식주의 운동은 솔직히 부담이 된다. 채식을 지키려고 하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네이버블로그에서 이벤트에 당첨된 모님의 요구로 일주일간 채식을 해야만 했다. 왜 그리 고역이었는지... 그거 신경쓴다고 내 생각에는 그걸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 또한 EM님의 말처럼 어떤 것이 운동이 되고자 한다면 내적 정합성과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보편타당성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연대와 소통의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에 관한 한 연대하기 어렵다. 그게 운동이 될 경우 나같이 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나름대로 맞는 얘기라고 생각되지만, 그걸 나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아가 우리에게 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준 EM님에게 감사드린다.

- 이걸 얘기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개토님의 블로그에 관련된 글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이전에 쓴 글에서 삼봉이발소가 눈에 띠어 링크된 곳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죽치고 앉아버렸다. 근 한시간을 봤는데, 다 보지 못하고 집에 와서 100분토론을 보면서 봤지 뭔가.
  
하일권의 삼봉이발소는 정말 그림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 나오는 문장 중에 피부에 와닿는 게 너무 많다. 분명 10대, 20대를 겨냥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나같은 이에게도 감동을 준다.
 
한마디로 강추다.
   
삼봉이발소
  
- 더불어 글을 쓰는 게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와 같은 온라인상에서도 글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그냥 편하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진보라는 레테르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진보블로그가 좀더 편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민지네에서도 느낀 것인데, 다른 이들에게도 공개되는 공간에서는 자신에게 비판이 돌아오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만을 고집하게 되고, 항상 그렇게 되지 않는 이들은 글쓰기를 자제하게 된다.
 
진보적이지 않은 내용이나 주제를 담은 글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블로그에 자신의 솔직한 일상사를 토로하는 발랄한 이들이 부럽다.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 수험생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서울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고 상상이 되었다.
나 또한 아직 8지선다 문제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아니 설문조사를 할 때에는 지문에 8개 이상이 된 것을 본 적은 있다만... 행시, 사시의 출제경향 분석은 역시 서울신문에밖에 나오지 않는군.
 
행시도 어렵게 출제되었구나. 아마 1차 시험을 봤던 많은 이들이 '이 길이 아닌게벼' 하면서 방향을 틀었을 것 같다. 진이라는 학부후배이자 대학원 후배 또한 그래서 금 교수의 BK21 조교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친구가 젠더에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왜 내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행정대학원 문화가 건조하긴 하다.
  
행시 이어 사시 1차도 어렵게 출제… 고시촌 술렁(서울신문, 윤설영 기자, 2007-02-22  18면)
  
‘8지선다·4점짜리’가 당락 좌우…사시 1차 분석(서울신문, 윤설영 기자, 2007-02-22  18면)
   
- 그러고 보니 오늘 채일씨 자리에 논자시 준비한다고 놓여있는 행정학 수험서를 잠시 훑어보았다. [정경호 행정학'이라고 지식센터에서도 일했던 행대 후배가 쓴 글이다. 여기저기 나와있는 최신 행정학 논문들과 책들을 요약해서 행정고시 수험서로 만든 것이다. 주제 하나마다 참고한 논문이 한두개 각주에 나와 있고,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핵심을 요약한 거다.
 
이런 게 수험에 도움이 될까. 자신의 시각이 전혀 담겨 있지 않고, 단지 수험용 지식만을 전달할 뿐이다. 여기에서 도대체 뭘 배울 수 있을까. 게다가 이를 저작권으로 걸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행정학을 접하는 이들이 행정학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 또한 공무원 공부를 하던 시절 짜집기 행정학 서브노트를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게 오히려 행정학 공부를 하는데 장애가 되고, 단지 기술적이고 재미없는 행정학으로 되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깨닫고 옆에 미뤄두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글을 쓰게 되면 되도록 주석을 꼼꼼히 달려고 하고, 내 자신의 입장에 입각하여 각 이론을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나면 행정학에 대해 내 시각을 담은 교과서를 쓰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풍부하게 소화하는 게 우선이다. 나에겐 너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고 보면 낭비할 시간이 없는데...
   
ㅇ 2. 23 (금) 오전
 
- 새벽에 늦잠을 잤더니 역시 늦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아저씨는 될 수 없는 것인가.
 
ㅇ 2. 24 (토) 20:00
 
- 어제 있었던 전진 중앙위원회는 대선 방침에 대해, 한 모 동지의 민주노총 집행부 참여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선거강령팀에서 작성한 대선 선거강령 초안에 대해 어떤 논의가 나왔는지도 알고 싶고...
 
- 학교에 가려다가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계속 라면으로 떼울 수 없는 것 아닌가. 사먹기도 뭐 하고...
그래서 근처 슈퍼에서 반찬도 좀 사고 군만두꺼리도 샀다. 후라이팬에 구워먹는 만두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그런데 무우김치가 맛이 가서리 이것은 김치찌게를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사 때 내려가면 고향집에 놔두고 온 모과차를 가져와야겠다. 어머니는 그걸 조금이라도 드셨을까.
   
ㅇ 2. 25 (일)
 
-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이다. 그는 자신의 탈당이 예견되고 있는 지금 맞이하는 취임 4주년이 착잡할 듯하다. 별다른 행사도 하지 않고 지나갈 듯 하다는데... 
  
- 안양시 민방위교육장에서 열린 공무원노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법내로 들어가자는, 3개월 전에 제출된 것과 똑같은 안건이 상정되자 이에 반발하는 일부가 단상을 점거하면서 파행으로 가, 권승복 위원장이 유회를 선언하여 대의원대회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대로 놔두었으면 분명 법내로 가자는 안이 통과되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폭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무리된 장면이 조금은 개운치 않다.
 
이미 상당수가 법외에 있다고 하여 탈퇴하였다. 이런 와중에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좀더 이러한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대외적으로 민주노총 지도부에 법외를 지지하도록 강제하고, 노동쪽의 정치조직들에 법외지지 움직임을 조직화했어야 하는 것이다. 저번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좋은 기회였는데, 여기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마 합법화 전환을 근거로 공무원노조의 와해를 추동하는 보수언론의 흐름이 있을 것이고, 법외파는 갈수록 고립될 수 있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적어도 공무원노조 내의 건강한 활동가들을 묶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전진은 지난 번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노명우를 부위원장 후보로 내면서 믿을 수 없는 조직으로 공무원노조 내에 찍혔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이라도 공무원노조에 타당한 정치적 방침을 가지고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공무원노조가 연가를 내는 것조차 탄압받는 전교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ㅇ 2. 26 (월) 새벽
 
- 어제 밤에 늦게나마 학교에 가서 오늘 있을 지식센터 회의자료 준비를 한다고 가려고 하다가 채원형을 만나 맥주를 몇잔 마시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채원형과 간단하게 한잔 하려고 했는데, 근 2시간이 넘게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 한 10분만 빨랐어도 학교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채원형은 사회투자국가에 관한 얘기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자신이 쓴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라는 책을 읽도록 하였고, 푸른기와집에서도 특강할 계획이 있다고 하고... 15일에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세미나를 하더니, 21일에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일보, 그리고 4개 학회를 주관으로 사회투자정책을 주제로 심포지움이 있었다. 바야흐로 개혁 보수일파들은 사회투자국가로 방향을 세우고 이를 이념적 기치로 하여 대선에 임할 것인가.
  
ㅇ 2. 26 (월) 21:00
   
- 점심 때의 센터 실무회의는 그냥 그저 그렇게 끝났다. 아침 일찍 와서 회의자료 준비에 나서서 간신히 대충 자료를 만들었다. 아침에 와서도 회의자료 만드는데에만 전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박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예산자료를 만들지 않았으면...
다음 운영위원회 때는 나는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정말 센터를 떠난다는 생각이 든다. 체계적으로 인수인계를 할 수 있을까.
 
점심 때 식사를 했던 동천홍은 양도 별로 되지 않는데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다. 8명이서 식사를 하는데, 30만원이 넘다니... 한 사람이 거의 4만여원어치를 먹었다는 얘긴데, 이제부터 출입금지다.
 
- 회의 마치고 연구실로 오는 길에 졸업식 때문에 길이 꽉 막혀서 제대로 들어오기 힘들었다. 이번 졸업식에 누가 졸업을 하나 했더니 박사학위 수여자는 두 명이다. 특히 동완이는 3년만에 졸업한 셈이다. 솔직히 예산개혁의 신제도주의적 분석을 한 논문은 그다지  우수한 논문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학위수여까지 하는 걸 보니 마무리하면서 뭔가 대단한 게 있었나 보다. 아니면 나도 금방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증거든지...
  
대학원 건물 옥상에서 행문씨와 얘기를 나눌 때 동완이가 양복을 입고 올라와 담배 피는 모습을 보았는데, 졸업 때문이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축하한다는 말을 해줄 껄.
 
하지만 다른 이들이 졸업하는 것을 보는 나의 맘은 착잡하다. 아마 그래서 하루종일 뭐가 손에 잡히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이번에 나는 과연 논문계획서를 제출할 수 있을까.
  
ㅇ 2. 28 (수) 1:30
 
- 어제는 늦잠을 자고 아침에 아영씨에게 늦게 나간다고 얘기를 했다. 이제 후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물론 이전에도 오전에는 행문씨가 와서 근무를 했기에 일찍 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직장인 체질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백수 체질은 아닌데...
 
- 출근하자마자 대학신문 기자로 있는 서형준씨에게서 전화가 와서 당황스러웠다. 대학신문의 '아크로에서'든가 하는 란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서형준씨는 나와는 나이차는 상당히 나지만, 학부 후배가 되고, 같은 분회 소속이어서 알고 있었고, 그의 기사를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 게다가 과외를 거부하는 그가 참 인상적이었고... 그런에 이렇게 나를 괴롭힐 줄이야... 얼마전 대학원생 분회를 만드는데 동참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나구니 동지의 전화를 받고 이젠 연구소 일도 마치고 수료상태이기 땜에 그 활동을 하긴 어렵다고 핑계를 댔는데, 다시 또 대학원생 자격으로 글을 부탁받은 것이다. 사실 요새는 내 글을 별로 써보지 않아서 부담스러운데, 거절을 하다가 결국 중간고사 기간 즈음에 쓰기로 했다. 그리고 종길이를 소개해고... 이래도 되는지 몰라.
 
- 서희 동지가 전진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긴 덧글이 이상해서 메신저로 물어본 후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글을 자진삭제한 것도 조금 이상했는데...
 
정치적인 사안에 있어서 같은 회원보다 다른 이를 더 믿고 전진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에 대해 얘기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도대체 이렇게 개념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정파운동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긴 그런 식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계속 중앙파 소리를 듣고,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진정 자정이 필요하다.
 
열받아서 전진에 대한 쓴소리를 홈페이지에 남기려다 다른 일 때문에 중단했다. 젠장..
  
- 강희씨에게서 지식센터 홈페이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오후에 그에 관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주제별 전문사이트 메인 페이지 제작을 위해 그에 관한 개요를 쓰고, 목록을 파악하는 것,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원장께서 친히 지식센터 웹사이트에 와보고 각각의 메뉴에 대해 링크가 되지 않는 것과 자료가 빈약한 것에 대해 지적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는 나올 지적이었지만, 이에 대해 적절하게 답변하는 것도 쉽진 않다. 특히 주제별 전문사이트 구축문제에 대해 행문씨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언성을 높였다. 게다가 약간은 새로온 전산인력에 대해 편향된 생각도 가지고 있는 듯하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쪽으로 좀더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의견을 존중했어야 하는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차갑게 대하지 않았나 싶다. 메신저로 연락이 되면 사과를 해야지. 왜 이리 사과할 일이 많은 거야.

- 전진의 선거강령 일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조금 꼼꼼하게 각 항을 검토했는데, 펜 동지의 말대로 민주노동당 강령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아직 미흡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앞으로 보완해나가면 되지 않겠나.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제발 면피용이라도 되지 않았으면...
  
뒷풀이에서 나온 얘기들은 흥미로운 게 많다. 도대체 이런 정보들이 왜 술자리에서만 몇 몇 사람에게만 공유되고 나머지는 모르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Y2K가 총연맹 선거평가를 하지 말자 - 금속선거와 함께 평가를 하자는 것조차 아니다 - 고 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선거에 집착을 해놓고선 끝나면 끝이란 말인가. 그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아닌 나조차 총연맹 선거에 할 말이 많은데, 다른 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게 전진 수준이다.
 
제대로 된 정치조직, 제대로 된 당을 언제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이런 것에서 신경을 끄는 게 우선인가.
 
- 내 블로그가 문을 닫는다면? 난감할 것이다. 이전에 노래를 소개한 글들이 저작권 저촉을 이유로 다 사라졌을 때 좌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학교에 마련해두었던 홈페이지도 계정이 사라져서 글들이 사라졌는데, 블로그에 올린 것도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내가 진보넷이나 네이버와 같은 나름 안정적인 곳에 블로그를 만드는지도 모르고.. 진보넷은 혹시 모른다고? 진보넷은 믿을 수 있거든.
 
어느날 말없이 문닫는 중소사이트, ‘쌓아둔 내 추억’ 어찌하나요(한겨레, 하어영 기자, 2007-02-25 오후 06:52:51)
온블로그 폐쇄 이용자 피해…관련법령 없어 구제 힘들어
UCC열풍속 사이트 양극화 “백업시스템 등 의무화 필요”

  
업계에서는 유시시(UCC, 손수제작물) 열풍을 타고 중소규모의 유시시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유시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업체들의 창의적인 서비스를 선호해 온 일부 누리꾼들마저 안정성을 이유로 대형포털로 자리를 옮기는 상황이 지속되면 중소규모 업체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로터닷넷(www.bloter.net)’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범 대표는 “이용자 보호뿐만 아니라 벤처업계의 생존을 위해서도 개인 데이터베이스 보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업체들의 백업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하고, 배상을 위한 공제조합 등을 두도록 권장·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은우 변호사는 “사업자 약관에 관련규정을 두게 하고, 설령 업체가 파산해도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와 자료가 온전하게 이용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절차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이트 운영업자가 잠적한 경우에는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노회찬 의원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생특위 위원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이걸 통해 대선 인지도 증가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일 터이다. 게다가 최초로 대규모의 상인조직과 집회를 개최하기까지 하고...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긴 하지만, 이게 진보정당이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그게 지금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지... 민주노동당에 사민주의 정당 논란이 있더니 이제는 상인정당이 되려나.
   
영세상인 "이젠 민주노동당만 믿는다"(레디앙, 2007년 02월 27일 (화) 14:46:36 김은성 기자) 
노회찬 "40여일간 10만명 수수료 인하 서명"…상인단체 "70만표 주겠다"

    
민주노동당 민생특위(공동위원장 김기수, 노회찬)는 27일 대규모의 상인 조직들과 최초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촉구 자영업자 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대회는 한국음식업중앙회, 대한미용사중앙회,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의 상인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단 대표, 문성현 당 대표, 현애자 의원 및 당직자 등 300여명이 참석하고 각종 언론사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인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이들 단체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신용카드 수수료 심의위원회 구성 △체크카드 수수료 대폭 인하 △신용카드 수수료 원가 내역 공개 등을 촉구했다.

  
- 밤에 공덕동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데, 말 많은 운전사 양반이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세금을 왜 올리냐는 둥 약간은 횡설수설을 하는 걸 들어야만 했다. 그 중에 또 촛불 켜놓고 자다가 화재가 나서 죽었다는 얘기를 해서 찾아보았더니 아래 기사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싹 물갈이해야 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대안이 손학규, 이명박이던걸. 도대체...
    
단전주택서 촛불 켜놓고 술 취해 잠자다 화재(2007년 2월 27일 (화) 18:51 YTN)
  
- 검색을 하다 보니 성용씨가 부총장에 임명된 기사가 있다. 그 친구도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일부러 국내에 와서 이를 받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왔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수료는 했나.
 
예전에 메신저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 나를 차단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메신저를 선동의 장으로도 활용하면서 내가 부담을 느껴 차단을 했던지.. 그 친구를 언제 한번 봤으면 좋겠다.
한번 경동대에 놀러가 볼까.
   
[고성]경동대 부총장에 전성용 교수 임명 ( 인물면  2007-2-28 기사 )
 경동대(총장:신동진)는 부총장에 전성용(관광학부)교수를 임명하는 등 오는 3월 1일자로 주요 보직교수에 대한 인사를 27일 단행했다.

   
- 발생하는 정치적인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정견을 정리하여 여기저기 사이트에 올려놓던 채진원 당원이 베네수엘라에 갔다 와서 그 감상문을 썼는데, 너무 빈약하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를 하겠다는 것을 이전 글에서 보여주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사실 굳이 베네수엘라에 가보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내용으로 글을 쓴 것이다. 하긴 10여일만에 어떻게 그 곳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뭔가 충격적인 것을 발견하지 않는 한 글을 쓴다해도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입장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정도도 되지 못해서 실망이다. 채진원 당원이 조금은 자신을 알려내려고 하는데 조급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좀더 차분하게 다른 이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으련만.
 
베네수엘라는 좀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에 열광을 보내는 것도 오바이고, 이에 냉소를 보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차베스는 박정희와 너무 닮았다(레디앙, 2007년 02월 27일 (화) 18:21:52 채진원)
[독자투고] ‘21세기 사회주의’는 실패할 가능성 높은 수사
   
필자가 차베스 노선의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월 9일부터 18일까지 짧은 시간동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가서, 보고 느낀 주관적 경험과 의문을 근거로 작성된 하나의 의견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차베스가 주장하는 반미-반자본-반세계화를 기초로 한 ‘21세기 사회주의’는 실제보다 과장된 수사(rhetoric)일 가능성이 크며, 아울러 차베스식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ㅇ 2. 28 (수) 12:00
  
- 내일이면 또 쉰다. 신난다. 그런데 제사 때문에 광주에 내려가야 하므로 사실 시간이 많이 있는 건 아니다.
어제 목욕을 하고 잠을 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목욕도 못하고 내려야가 할 듯하다. 다시 집에 들릴 시간도 없고...
  
- 오늘은 아무래도 정책&제도DB 편집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다음 주에 있을 운영위원회 전까지 컨텐츠를 그럴싸하게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포럼은 넘겼고, 정책&제도DB도 다는 아니더라도 3월 2일까지 해서 마무리하고, 그 뒤에 주말에는 주제별 전문사이트 상황점검 및 월요일까지 미흡하거나 빠진 원고 독촉, 한미 FTA에 대한 것은 내가 작성을 해야겠군. 그러면 5일. 책 원고 서문 써주는 것과 함께, 작년 용역 보고서 작성 및 정산... 언제 할 수 있을까.
 
게다가 9일까지 논문계획서 심사원도 제출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는 어느 정도 틀거리가 나와 있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가능한가. 답답해지네...
  
ㅇ 3. 1 (목) 3:00
  
- 3.1절이구나. 경향신문의 미디어칸을 보다가 김우창 교수의 글을 봤다. 제목만으로는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봤는데, 내용은 예상을 빗나갔다. 참여정부의 정책이 거대 계획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섬세한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글쎄다. 참여정부와 유사한 정부라면 이러한 충고가 맞겠지만, 신자유주의적 시장화가 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거대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전진의 대선을 위한 선거강령 논의를 하면서 경제영역에 있어서 계획을 많이 강조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경제기획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박정희 정권하에 있었던 경제기획원의 긍정적인 경제계획기능을 고려하면서 생각해낸 것이다. 하지만 계획에 대한 의견은 많이 미숙하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많은 만큼 좀더 섬세하고 치멸한 검토가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에 서서] 거대 계획과 사회정책 (경향신문,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2007년 02월 28일 18:17:39)

- 인터넷으로 [꽃피는 봄이 오면]을 다시보기로 보았다. 역시 나름 재미난다.
어머니께 생방을 놓친 KBS의 프로그램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음을 말하면서 보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다시 잊을 거라고 생각하신다. 아침에 다시한번 교양을 해야지
 
- 4시가 조금 넘어 연구실에서 나와 고속버스로 광주로 내려오다. 5시 반 일반고속을 끊었지만, 5시 5분차를 탈 수 있었다. 우등과는 7000여원 차이가 났기 때문에 도저히 우등을 탈 수 없겠다는 생각이 20분이 늦더라도 일반고속 차편을 끊은 것이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나는 차안에서 왜 이리 책이 잘 익혀지는 것인지... 아니면 책을 봐야 잠이 온다. 그리고 그렇게 잠을 자면 중간에 버스가 휴게소에 들렸어도 그 사실조차 모른 채 곤히 자버린다. 하지만 오늘은 공부하는 분위기. 옆의 아저씨도 전등을 켜도록 배려를 해주고...
 
- 9시가 넘어 도착해서 뒤늦게 식사를 하고 상 차릴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에 한국 축구대표팀은 예멘에게 간신이 1:0으로 이겼다. 아직도 나는 국가주의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양이다. 이런 것을 그냥 재미로만 보기는 어렵다.
동생은 국제회의 때문에 마카오에 가있어서 나만 서울에서 내려왔다. 영실씨도 민서 때문에 내려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힘들 듯하다.
  
- 10시 반이 넘어 오신 큰 고모가 당신께서 상을 차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배열이나 순서가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것에서 조카가 고모를 어찌 이길 수 있으랴. 그냥 큰 고모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용히 인터넷 앞에 앉아 '제사상 차리는 법'을 검색하고, '그게 아닌데' 하면서 제사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간소화가 선행되어야겠지만, 제대로된 제사상 차리기를 익힐 필요를 느꼈다. 지방도 인터넷에서 찾아 수정하여 출력하였다.
  
갈수록 제사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조상님을 위해서 증조부모, 고조부모를 생각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형식에 치우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제사 때가 되면 이방인인 듯이 행동하면서도 가끔씩 상놓는 것이나, 남자들이 주로하는 것들을 하면서 생색내는 내가 싫다.
 
작은 고모가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신다. 조카들이 잘 연락하지 않아서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자주 보게 되면 잘 알게 되고, 가깝게 지내게 될 텐데, 요샌 그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장손이면서도 말이지. 형식적이나마 안부를 자주 여쭈는 것이 의미있음을 알면서도 왜 이리 하기 싫을까. 같은 핏줄이기에 모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서 그런 걸까.
  
작은 아버지가 빛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결론이 이상하다. 사주팔자가 좋지 않아서 그렇다나.
누구나 별 다른 교육과 단련이 없다면 관념론자(유물론자와 대비되는)가 될 수 없는 것인가.
       
ㅇ 3. 1 (목) 이명박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 이명박이 또 헛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아마도 손학규를 염두에 두고 그런 발언을 했겠지만, 이는 소위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많은 듯한데, 자기는 도대체 뭘 했나.
 
이런 사람이 대선후보로 선호도가 가장 높다니 분명 어디에서 착오가 있는 것임에 틀임 없다.
  
"피둥피둥 돈번 사람 '빈둥빈둥' 얘기 짜증나"(레디앙, 2007년 02월 27일 (화) 18:28:02 김선희 기자)
이명박 발언 정치권 '국민 모독' 비난 쇄도…후보 자격론 불거져

   
이명박 전 시장이 27일 자신의 대운하 정책을 비난하는 이들을 가리켜 “70~80년대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이라고 비아냥댔다. 이 전 시장은 지난 달에도 “아이를 낳아봐야 보육을 말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어 대선후보 자격론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정책자문교수모임인 바른정책연구원 조찬 세미나에서 “최근 70, 80년대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토목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요즘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 80년대를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로 그 (시대) 혜택을 굉장히 입은 사람들인데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은 70,  80년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묵묵히 이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온 모든 노동자와 일하는 서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70, 80년대 국민은 빈둥거릴 자유조차도 빼앗겼던 사실을 이 전 시장만 망각한 모양”이라며 “가혹한 노동과 억압적 통제만이 횡횡했던 때를 기억하는 국민은 이명박 전 시장의 빈정거림에 짜증을 느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 의원은 또 “오히려 이명박 전 시장이야 말로 재벌의 정경유착과 노동통제 속에 피둥피둥 돈을 불린 전형적인 집사형 경영자가 아니었는가”라고 반문하고 “이명박 전 시장은 즉각 본인의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의 말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전 시장은 지난달 20일 대전의 한 강연에서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고 고3 4명을 키워봐야 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혼의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했다는 비난에 밀려 사과까지 하고 “군대를 안 갔다 온 사람이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있냐”는 역공을 당하기도 했다.

  
ㅇ 3. 3 (토) 11:00
 
- 그제 서울로 올라오려 할 때 어여부영 늦어져서 그냥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어차피 7시 넘어 차를 타게 된다면 택시를 타야할 듯해서이다. 저녁 때 금요일 새벽 1:30 고속버스를 예약해놓고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광주에서 뭔가 해보려고 자료들을 조금 가져왔는데, 생각만큼 진도가 나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주말에도 어영부영하고 있고... 거참, 집에서 뭘 하려고 하면 왜 이리 집중이 안되는지... 내일은 연구실에 나가야지. 어차피 일하려면 나가야 한다.
  
- 서울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는다.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책을 봤다.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책이 잘 익히는지..
차 안에서 쓴 메모를 옮긴다.
  
비가 오나 보다.
1:30 우등고속, 아침에 택시를 타지 않을 수 있겠다.
터미널에 올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전등이 있어서 좋다. 저녁 때 잤기 때문인지, 잠도 안오고 해서 책을 보려 했는데, 창가쪽 자리를 예매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어제 지역위원회 수련회가 있었을 것이다. 많이 참여했을까.
지금까지 지역위원회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수련회를 한 적은 없었던 듯한데...
여유가 되면 갈 텐게, 제사도 있고, 또한 지금은 시간 여유도 없다.
지역위에 개입해야 하는데...
치역위에서의 정치활동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3:50
천안휴게소다.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진다.
5시가 조금 넘어서 서울에 도착하고, 집에는 6시경 도착하겠지.
앞으로 어떻게 할까? 잘까, 말까? 내일을 위해서 책을 보다가 잠이 오면 자는 거다.

배고프다. 휴게소에서 산타페를 마시긴 했는데, 부족하다. 그렇다고 호도과자를 사먹을 수도 없고, 귤이 든 가방은 화물칸에 있고...
  
- 금요일에 자지 않고 그냥 버텼다. 아침에 컵라면에다가 군만두로 떼우고 연구실로 향한다. 군만두 먹으니 괜히 최민식이 생각난다.
 
- 금요일에는 하루 내내 공공기관운영법의 변화과정을 검토했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서부터 99년 개정 이후, 성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2006년 3월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운영기본법안, 2006년 6월의 정부안, 11월의 최순영 의원안, 그리고 2007년 1월의 공공기관운영법의 조문들을 놓고 각각을 비교하는 것인데, 다 끝내지 못하고 4시에 있는 경영평가 모임에 나갔다. 그것도 시간에 늦어서... 이걸 비교해보면 뭔가 의미 있는 게 있을까.
  
모임의 안건은 예산지원에 문제가 있어서 향후 연구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인데, 이미 소문은 내놓고 결과가 없으면 어떻게 한다. 민주노동당 의원실에 접촉을 해서 예산을 끌어오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이 또한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사실 당에서 공공기관 내지 공기업의 민주적 지배구조 등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공공연맹, 경영평가 평가한다(<매일노동뉴스> 2007년 1월 5일, 한계희 기자)
공공기관 경영평가 연구팀 꾸려…수익성 모델 지표 대안 낼 것

   
공공연맹이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 기획예산처의 정부산하기관·투자기관 경영평가를 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평가지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정책 대안을 내 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공연맹은 그동안 경영평가로 인해 공공기관의 공공적 역할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4일 공공연맹은 지난해 말 꾸려진 '공공기관 경영평가 2차 연구팀'에서 이달부터 본격적인 연구작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3월까지 기초연구를 벌일 계획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이 연구팀장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또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심영보 연구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 김철 연구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현우 연구원,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장석준 연구기획국장, 문화연대 정은희 씨, 서울대 경제학 박사과정 정상준 씨 등이 이 연구에 참여한다.
  
1차 연구가 수익성 모델 지표와 성과주의에 따른 문제점을 밝혀냈다면 2차 연구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기본법’(기본법)에 대한 대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기본법에서 재편된 공공기관 분류법에 따라 새롭게 평가지표가 구성됐는데 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연맹은 일단 그동안 노조에서 지적했던 내용이 오히려 개악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익성 모델을 강조하는 지표가 보강됐다는 것이다.
  
공공연맹 현광훈 정책국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지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안을 낼 것”이라며 “또 기관 단위의 평가사례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과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한 경영평가 방식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팀은 지난 2005년 11월 1차 연구보고서에서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수익성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공공성과 공공적 역할을 축소하고 훼손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무리한 경영평가 결과 적용으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며 “서로 비교 가능하지 않은 기관을 무리하게 비교해서 기관을 서열화 시키고 이에 따라 차등 성과제를 도입해 억지 성과주의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현우가 썼던 글이 짧은 보고서로 나왔다. '거버넌스 구조변화와 공공부문 노사관계'. 주환형과 함께 쓴 것인데, 현우가 실토했듯이 두개의 글이 그리 화학적으로 버무려진 것 같지는 않다.
 
공공기관 거버넌스에 대한 글을 쓸 때 현우가 비판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한 글 대신 여기에 있는 내용을 좀 인용을 해야할 듯 하구만. 현우가 일부러 가져다 주었으니 잘 써먹어야지.
 
- 결국 회의는 짧게 끝났고, 다음 약속이 있는 강남역으로 이동했는데, 거의 30여분이 남았다. 그래서 지하철 역 안에서 책을 읽었고...
역시 술마시는 건 즐겁다. 물론 술 마시는 것 자체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가 더 좋고... 술자리에 함께 한 정양은 술마시는 게 더 좋다고 하던데, 역시 최영미의 말대로 이제 서른이 되어서 잔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
 
-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민이를 만났다. 이게 몇 년 만인가? 할 얘기가 남아 있어 집으로 함께 와서 1시간여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무슨 프로덕션에서 일한다고 한다. 작년에 그 길었던 수험생활을 마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고시공부를 하느라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는 듯했다. 하긴 버티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함께 공부를 하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역시 나이를 먹어서 고시공부에 뛰어든 이들은 별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빨리 탈출한 셈인데, 또 다른 굴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지...
 
좀더 치밀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 오늘 학교에 나가려다, 그냥 집에서 어영부영 했다. 쌓아놓았던 자료들을 정리하고자 했는데, 이 또한 그리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내일은 학교에 나가야지.
 
- 집에 있으니 식사를 하게 된다. 집에서 꼬막도 가져왔겠다, 거의 맛이 간 듯한 무김치도 처리해야 할 듯해서 참치캔에 김치찌개를 해서 밥을 먹었다. 김치찌개에 넣을 멸치를 찾느라 냉동실을 뒤졌고, 그 과정에서 더이상 먹지 않을 -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분명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겠지만 - 반찬들을 조금 버리기로 했다. 멸치는 찾아서 넣었고, 햄도 조금 넣고 - 이러면 부대찌개인가? - 소금이나 다시다를 넣으려다 말았다. 그렇게만 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주말에는 집에서 잘 먹을 수 있겠군.
 
- 오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재미난 기사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 아래 기사들.
 
성인남녀 4명중1명 "출세 위해 섹스한 적 있다"(한국아이닷컴 뉴스부, 2007/02/27 17:37:28)
  

이성과 사귈 때 성관계를 갖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해 한국의 경우 '데이트를 3번 할 때까지'란 응답이 19%로 가장 많았고, 5번이 13%, 10번이 19%였다. 그러나 100번이라고 답한 사람도 14명(1.6%)이나 있었다. 미국인들의 경우는 평균적으로 남성은 3번, 여성은 5번 만난 이후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 그렇군. 그런데 성관계를 가질 때까지 만난 횟수가 왜 여자와 남자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온라인에서 많이 얘기 나누고 오프에서는 금방 성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나?
한국의 경우 데이트 3번할 때까지 성관계를 가진 이가 많다니, 이게 정확한 걸까. 데이트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겠군.
  
벌써 7년, 이젠 '배우 홍석천'으로!([기사 제휴] 디시뉴스 김정화 기자, 2007/03/02 15:36:32)

홍석천도 멋있는 배우다.
최근에 하이에나에서 동성애자들의 맏형 비슷한 역할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를 티브이를 통해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형탁 동지가 대변인으로 가는 게 확정되었나 보다. 저번 선거강령 논의모임에서도 김형탁 동지 얘기가 나왔는데, 당시에 이미 확실시되었다. 이제 기관지는 누가 책임지게 될까. 나는 김형탁 동지가 전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제 당에서도 조직적으로 퇴각해야 할 때인데, 어영부영 여기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전진이 계속 함께 욕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권력을 분점하면서 당과 민주노총이 망가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변인이 개인의 역량을 알려내는 자리이고, 또한 나름의 역할이 필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물망에 오르긴 했지만, 문성현 대표가 대변인은 좌파가 맡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해서 이렇게 되었단다. 하긴 신석진 같은 이가 대변인을 하면 아마 당을 말아먹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거덜난 당인데 말이지. 이렇게 되면 대변인은 거의 전진에서 다 해먹는다는 말이 나오겠네. 김종철, 박용진, 김형탁...
   
최은희 동지가 레디앙에 단 덧글에서 박용진 동지에게 달린 서울 강북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란 타이틀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관악에서도 모 동지가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관악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박힌 명함을 뽑아줄 것을 지역위 운영위원회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역주민을 만나면 분명히 개인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인지 의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요청을 하면 명함을 박아줄 것인가.
지역구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고, 그 성과가 당으로 귀속되어야 한다면 그런 식의 편법은 있어서는 안된다. 왜 아무도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지역위가 맛이 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는데...
 
민주노동당 신임 대변인에 김형탁씨(레디앙, 2007년 03월 02일 (금) 12:02:10 김은성 기자)
   
- 하얀거탑을 보고난 후 라디오스타를 보았다. 최곤이 부르는 것으로 나오는 '비와 당신'보다 '넌 내게 반했어'라는 노래가 귓가에 남는다. 소영씨가 메신저로 말한 대로 노래 분위기는 내 감성에 맞나 보다.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가 주연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라고 하던데, 나중에 시간 나면 이거나 보러 가야겠다. 이것도 20대는 별로로 생각하고, 30대는 정말 재미있게 본다는데... 나는 이제 40대로 되나? 그 주제곡인 PoP! Goes My Heart는 제목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오는 노래 풍이 익숙하다.
    
ㅇ 3. 4 (일) 01: 20
 
- 어느 새 12시가 넘었다. 지난 설 때 가지고 왔던 전들을 꺼내서 데워먹었다. 냉장고의 냉동실이 아니라 냉장실에 넣어놓아서 혹시 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먹어본 결과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이것으로 저녁식사는 때우고, 아까 저녁 때 잠을 잤으니 이제 오늘도 날새고 연구실로 가야지. 새벽에는 일단 블로그와 카페에 공유하고 싶은 글들을 퍼다 나르고, 시간이 되면 논문이나 읽어야지. 이 새벽 시간을 좀 알차게 보내야 할 텐데...
 
- OCN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방영한다고 계속 광고를 하더니 오늘 드디어 한다. 이것도 예전에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광고할 만한 영화일지... 그 때도 의문인데, 살인마가 휘두르는 게 전기 코드에 꼽아서 쓰는 게 아니라 배터리로 사용하는 톱인데, 그게 전기톱이 맞나 모르겠다.
  
- 레디앙에 보니 정책위원회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보는 글에 올라가 있다. 대체로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는 지혜가 요청되지 않을지...
게다가 독자투고로 들어온 글은 횡설수설한다. "진보정당의 타락은 비단 국고보조금 사용의 부적절성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당 강령에도 명백하게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눈감아주는 정파 싹쓸이 식의 정실인사, ‘검찰고발’과 ‘불복종’이 만연될 정도로 망신창이가 된 선거 시스템, 북한에 대한 부분별한 추종과 사회주의에 대한 교과서적 신봉과 같은 이념·사상적 정체 등이 넓은 의미에서 진보정당의 타락을 나타내주고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교과서적 신봉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이념·사상적 정체에 책임이 있는 건 정책위원회와 진보정치연구소 등에 포진한 소위 좌파들의 책임이 아닌가. 북을 궁극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우파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면 스스로 이를 극복하려고 했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나아가 글의 행간에 나타난 것은 사민주의 추종 같은데, 그거라도 잘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공범관계에 있지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는 충고도 함께...
 
'희생양' 찾지 말고 '공범구조' 청산하라(레디앙, 2007년 02월 28일 (수) 02:25:22 이영제)
[독자투고] 어느 연구원의 고발…진보정당 고질적 관행과 총체적 부패
  
정책연구원들이 떠나는 정책정당(김은성, 2007년 02월 28일 (수) 09:51:23 김은성 기자)
민노, 정책위 연구원 대규모 사임 왜?…"3월 공채 충원"
  
ㅇ 3. 4 (일) 밤
 
- 오후에 느지막히 학교로 나섰다. 일찍 일어나긴 했는데, 컴퓨터로 하던 작업이 있어서 이걸 마치고 간다고 하다가 그렇게 늦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일단 나선 것이 어디냐.
 
겨울에 처음에 당 잠바를 입었다. 민주노동당 마크가 가슴에 박혀 있어서 이를 입고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계속 옷장 속에 쳐박혀 있었는데, 겨울이 다 간 즈음에 입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밖에서는 마크 보이는 게 쪽 팔려서 가방이나 책으로 가리고 다녔다. ㅡ.ㅡ;;
 
- 저번 2월초에 민지네 번개를 할 때 새우님이 준 초콜릿을 먹었는데, 일본에서 수입된 고급초콜릿이란다. 그것도 카카오 순도가 99%라던가.
아무래도 영 아닌 듯하여 거부하다가 한 입 먹었더니, 역시나... 이게 무슨 초콜릿이람.
 
한겨레21 기사를 보니 그게 다크 초콜릿이었던 듯하다. 초콜릿은 달콤한 맛으로 먹지 무슨 카카오 맛으로 먹나. 차라리 가나 초콜릿이 더 낫겠다.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소영씨가 준 일제 초콜릿은 이와는 달리 맛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내가 뭘 사주어야 하나.
  
다크 초콜릿, 순도 99%의 유혹(한겨레21, 2007년02월27일 제649호, 글·이화정 자유기고가)
“고동색 크레파스 먹는 기분”이라면서도 카카오 함량 높은 초콜릿에 열광하는 사람들…완전식품·다이어트식품으로 인기 높지만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므로 섭취량 조절해야

  
- 행문씨가 밤 늦게 연구실에 남아 있던 책들을 가져 가기 위해 들어왔다. 그리고 열쇠도 반납하였고...
이제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내 책들을 처분할 차례이다. 원장이 순시라도 하게 되면 한마디 할 것 같은데...
  
-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죽는 것으로 끝나려나 보다.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 보통인으로서 그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일본만큼 과장의 권한이 강하지 않을 텐데, 그 부분은 약간 한국적 현실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앞으로도 '하얀거탑'의 뛰어난 연기자들을 기억하게 될 듯하다.

ㅇ 3. 6 (화) 3:00
  
- 아래 링크된 글을 읽고 박형준이라는 청소년 활동가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은 메일로 전달되는 전태일 통신을 통해 이미 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고등학교 운동을 하던 자신들에게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설득해서 졸업하자마자 현장이전하도록 했으면서도 이들이 지금에 와서 높은 학력의 벽에 좌절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전교조 운동은 망해도 싸다'고 말하던 후배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전교조 샘들의 위선에 대해 얘기를 했다. 자신은 그래도 전문대라도 갔기에 나름대로 적응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것조차 포기한 친구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중고에 다니는 이들에게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는, 또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냥 알아서 선택하라고 할 뿐이다. 나 또한 대학에 들어와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때 형성된 입장과 정견을 조금씩 세련되도록 할 뿐이다. 아니 대학 자체라기 보다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준 '배움과 토론, 성찰'의 과정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이런 장이 마련된다면 충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는 학력, 학벌 문제의 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대학 불필요론을 말하는 것은 기득권자의 만용일 뿐이다.
 
나는 박형준 님이 지금의 그 마음을 간직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사회를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다.
 
'현실 부적응자' 아닌 '현실 불복종자'(프레시안, 박형준/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2007-02-28 오전 11:41:37)
[전태일통신 62] 내가 대학진학을 거부한 이유 
   
- 핸드폰에 뜬금없이 아래와 같은 문자메시지가 왔다.
 
회신번호없음 님의 말 :
생일을 축하드리며 오늘 통화료(국내)는 할인하여 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KTF

 
왠 생일?
국내 통화료는 할인한다니 좀 써볼까? 그래도 할인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써야 하지 않나.
  
- 월요일 밤에는 전진 서울지부 총회가 있었다. 하지만 100여명 가까운 - 정확한 수는 모른다 - 회원들 중에서 온 사람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서울시당의 회원들은 무슨 행사가 있다고 오지 않았고, 노아세(공공연맹의 전진 회원 모임) 회원들은 자신들이 서울지부 소속인지 여부를 가리는 회의를 연다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회원 멤버십이 없어서야 무슨 정치조직인가.
 
회의에서는 보고안건을 가지고 논란이 있었다. 논의안건은 별로 다루지 않았고... 민주노총 파견 문제, 상임위원 선출 문제 등 거의 대부분의 사안들에 있어서 지도부의 처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 현우가 처음에 까칠하게 나가서인지 분위기가 계속 비판적이었고, 거기에서는 내가 한 역할을 했다. 나는 어디를 가나 투덜이인가.
 
시간이 없어 그냥 집으로 가려다가 술 한잔 하고 가려고 하여 1시간 반 정도 족발집에 있었다. 김형석 동지와는 오랜만에 함께 술자리를 한다. 서울본부에 상근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이래서 현장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하나 보다. 그에 비하면 나의 투덜거림의 관념의 토로가 아닐지...
 
교육센터 설립안이 조금은 엉성하다. 물론 안을 제출한 동지는 나름의 정성을 기울였겠지만, 그게 현재 전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이다.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학습과 토론, 소통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12시가 조금 못되어 술자리를 나섰더니 택시를 타지 않고 신림역까지 올 수 있었다. 서울대입구역까지만 운행하는 막차였으면 거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아했겠지만, 혹시 몰라서 신림역까지 왔는데, 버스가 끊겨 있다. 그래서 신림역에서 집까지 걸었다. 
꽤 추운데다가 눈인지 진눈깨비인지 조금씩 계속해서 내린다. 물론 전혀 쌓일 움직임은 아니다.
    
ㅇ 3. 7 (수) 3: 00
 
- 주몽의 종영
    
어제로 주몽이 드디어 끝났다. 나는 갈수록 주몽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는데, 어제는 전진 대선강령팀에서 작성한 최종초안을 작성하면서 뒷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주몽 마지막회를 보았다.
  
34회 연속 시청률 1위라고 하던가. 누구는 초라한 전투씬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만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왜곡, 민족주의의 자극, 이런 것들이 더 문제가 아닐지...
 
참, 주몽이 국가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농담도 그럴싸하다. 거리의 깡패들이 주도가 되어 상인세력과 결부하여 국가를 세운다는 것. 드라마에서 묘사된 대로 주몽의 주도세력들은 요즘 시기로 말하면 다들 깡패들인 셈인데, 지금 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넘들도 아마 비슷한 부류의 넘들일거다.
  
- 어제가 경칩이었다. 개구리가 잠을 깨고 나온다는 날이다. 그런데 이렇게 추울 줄이야... 이 꽃샘추위가 주말까지 간다고 하니 몸조심해야 한다.
  
- 전진 대선강령 TFT의 쫑파티가 있었다. 대변인으로 확정된 김형탁 동지도 뒷풀이까지 함께 했다. 최백순, 구형구, 김현우, 장석준, 류현철, 배기남 동지 모두 남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뒤에 금속모임을 가졌던 강지현 동지도 함께하고...
 
금속노조 부위원장으로 당선된 두 동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친전진으로 분류되었던 박준석 동지와 악수를 하면서도 조금은 멋쩍었다. 과거 그가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할 때 그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박준석 동지는 이를 알고 있을까.
 
어영부영 하다가 오뎅집으로 2차까지 했다. 김종철의 예의 'NL에게서 배우자'는 주장에 대해 논쟁을 했다. 하지만 나름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좌파의 대안적인 활동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상근활동가가 아닌 동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 당위원회에서 11일 있는 당대회에서 개방형경선제를 저지하기 위해 표를 조직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의 내용을 가지고 더 선전선동해야 하지 않을까. 당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위원회가 제대로 했으면 한다. 도대체 그렇게 당대회가 중요했다면 회원들에게 당직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그 중요성을 설득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전작업도 없이 당대회에 대응하려니 쉽지가 않다.
 
당위원회 성원들은 모두 바뀔 필요가 있다. 중앙당에서 활동한다고 당위원회가 되어선 안된다. 제대로 현장의 분위기를 알고 정치적으로 타당한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지도할 수 있는 당위원회가 요구된다.
  
ㅇ 3. 8 (목) 새벽 2:00
  
- 지식센터 운영위원회가 무사히 끝났다. 별다른 지적사항도 없었고... 올해는 지식센터 사업으로 정부 조직과 기능을 조정하는 데 집중하여 책까지 내자고 원장이 제안하였다. 다들 동의.
잘하면 올해는 별 무리 없이 센터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3월까지만 하고 그만둘 것이다.
 
소장께서 그냥 센터일을 하라고 농담조로 말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돈이 나올 곳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센터에 있는 것은 부담이 된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 센터를 그만 두게 되면 생계문제도 있고, 또한 컴퓨터 사용도 문제다. 현재 센터작업을 한다고 대여하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트북이나 데스크탑 컴퓨터를 하나 사야할 모양인데,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 게다가 적금도 계속 집어넣어야 하고... 이미 마이너스 상태이다. 1월부터 받지 못한 보수를 목돈형식으로 받는다고 해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제로다. 3월 보수를 받는다고 해도, 이 또한 3월 생활비와 적금을 넣으면 남는 게 거의 없다. 프로젝트에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계속 나왔던 인건비가 300여만원이 되는데, 이 또한 빚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젠장...
 
 따라서 4월부터 생활하는 게 곤란해진다. 채원형에게 빌붙어볼까. 2학기 때는 반드시 시간강사 자리를 구해야겠네.
   
- 센터 운영위원회 때문에 당연히 심상정 대선출마장에도 가지 못했다. 아니 그리 지지를 하지 않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노회찬이나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 3월에 한번쯤은 추워질꺼라고 생각은 했고, 눈이 오기를 바랬지만, 막상 오니까 거참...
 
오후 2시부터 서울 전역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2센티 정도 쌓였단다. 7시경에는 장난 아니게 왔다. 한 겨울에도 이렇게 쏟아지지는 않았던 듯한데...
  
집에 오면서도 엄청 조심조심하면서 왔다. 이러다 넘어지면 골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확실하게 교통대란이다. 대중교통도 만원일 테고... 나는 느긋하게...
 
뉴스에 보니 눈 속에서 축구를 한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란다. 경기는 성남 일화와 베트남의 동 탐 롱안팀이 했는데, 인터뷰에 베트남 팀 감독이 눈을 맞으며 경기를 한 것도 처음이고, 눈을 본 것도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성남이 이길 수 밖에...
  
- 학벌이 뭐길래...   
  
학벌이 뭐기에…‘메뚜기 편입’ 극성 (경향신문, 김다슬 기자, 2007년 03월 07일 22:03:24)
  
편입 시험에 합격해 다니던 대학을 바꾼 뒤에도 만족하지 않고 또 다시 편입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메뚜기 편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김영편입학원에 따르면 일반편입 경쟁률은 2003년 5.58대 1에서 2006년 5.68대 1로 4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이중 일부는 편입 후 또다시 편입을 시도하는 재편입생이다.
  
학생들이 메뚜기 편입을 시도하는 것은 명문 사립대들의 편입생 합격자 상당수가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출신자라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의 하재근 사무처장은 “젊은 대학생들이 전공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대학 간판을 바꾸기 위해 비생산적인 편입 시험에 매달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메뚜기 편입은 대학 서열화 구조가 낳은 병폐”라고 지적했다
.
  
- 오늘이 3.8 여성의 날이다. 운동권 빼고 이에 대해 얼마나 알지...
 
- 임승수 당원이 베네주엘라 방문기를 쓴단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의 책임집필자 자격으로 5일 동안 다녀왔다고 한겨레에 3회에 걸쳐 연재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당 교육사업은 어떻게 하고 그러는지...
 
그러고 보니 새사연에서 나온 베네주엘라 관련 책이 꽤 괜찮다는 평을 듣는 모양인데, 이것을 사서 봐야겠다. 스탈린 전기도 펜 동지가 추천하니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고... 스탈린 쪽도, 트로츠키 쪽도 아닌 우파가 쓴 것이니까 제대로 볼 수 있다는데 공감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견지에서 김학준이 쓴 [러시아혁명사]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소위 객관성이라는 것은 이렇게 확보가 되는 걸까.   
   
ㅇ 3. 8 (목) 14:30
 
- 점심 때 채원형에게서 연락이 와서 행문씨와 함께 식사를 했다. 생태탕은 별로다. 나는 왜 이런 물고기 탕 종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동원관에서 먹어야지.
 
어제자 한겨레 신문에 사회투자국가론을 다루면서 채원형의 사진이 신문에 나왔다는 말을 했더니 그 기사에 대해 반박문을 쓸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옆에 코멘트를 하면서 사회투자국가론을 비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앞선 연재글을 보니 대부분 그렇게 비판적인 논평을 실었던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 오전에는 오히려 햇볕이 비치는데다 눈이 다 녹아서 추위가 가셨나 했다. 그래서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나온 게 잘못인가 싶었는데, 오후에 다시 눈이 쏟아진다. 아주 펑펑... 밤까지 오려나...
눈오는 날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지만, 이것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지금은 더군다나 여유도 없고...
 
-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각 당이 당론으로 개헌 내용과 일정을 제시하고, 유력 대선후보들이 대국민 공약으로 개헌을 약속한다면 개헌발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건 아침에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 아마도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의 의도에 말려들까봐 아마 아예 거부하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원포인트 개헌이 아니라 현재 요구되는 폭넓은 수준의 개헌논의라면 충분히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노대통령이 그럴 의도가 없다는 점이고, 현재 정국을 자신이 주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갈수록 노대통령은 여시가 되어가는 것 같다.
 
지금 개헌이 화두로 떠올라야 할 과제일까. 자신이 얼마전 진보논쟁에 끼어들었듯이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 같다.
 
- 지도교수에게 프로포절 신청원을 싸인받기 위해 갔다가 이미 일 때문에 나갔다는 말을 듣고 내일 제출하기로 하였다. 제출할 때 어느 정도 논문의 대략적인 상이 잡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걱정이다.
 
우선 제목만 확정했다. 이미 오래전에 결정한 것이지만...
"참여민주주의의 제도적 구현에 관한 연구: 노무현 정부의 정책참여 사례를 중심으로"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엄밀한 이론적 논의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참여민주주의에 관한 사례 - 주민투표, 참여예산제, 공론조사, 공공기관 지배구조 등 - 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가 모호하다. 어떻게 할까. 일단 이론적 배경과 분석틀을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할 듯 싶다. 시간이 될까.
  
ㅇ 3. 9 (금) 새벽 5:00
 
- 12시가 넘으면 5528번 버스가 오지 않는구나. 예전엔 왔었는데... 5412번은 거의 12시 반까지 다니는 것 같고...
 
- 집에 와서 일을 한다고 책과 논문을 집으로 몽땅 들고 왔는데, 거의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면서 어묵을 2000원어치 사와서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집중이 안되는 것이다.
   
게다가 <업타운 걸스>를 On Style에서 하는데 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전에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서 브리트니 머피를 봤는데, 거기에서 몰리 건으로 역할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다코타 패닝도 나이에 비해 조숙한 상류층 꼬마인 레이로 나온다. 업타운 걸이라는 노래가 있는 걸 아는데, 그와는 다른 분위기의 영화이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  
그 뒤에 5시에 하는, 맥 라이언,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프루프 오브 라이프>는 끝까지 보지 못할 듯하다. 잠이 온다.
 
ㅇ 3. 10 (토) 새벽 1:00
 
- 요새는 거의 새벽 5-6시에 잤다가 아침에 누군가 전화해서 깨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오늘은 조금 효율적으로 보내야 할 텐데...
 
- 메일발송 때문에 하루 내내 걱정했다. 선영씨가 편집하는 문제, 그리고 설대 교수들에게 메일 보내는 것 때문에 계속 문의해왔다. 메일발송은 전산원 직원들이 단체로 워크샵을 가버려서 보내지 못했다고 하는데, 당직에게라도 말해서 보냈어야 하지 않나.    
  
- 소장이 책 발간 문제로 갑자기 전화해서 지금까지 머리가 아프다. 발간사를 써서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미루고 있던 차에 왜 책이 나오지 않느냐고 추궁을 받아서 답하기 궁해진 것이다.
내일은 발간사를 쓰고, 나남에 독촉해서 빨리 책이 나오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책이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할 것 같고, 나머지는 채일씨에게 미루면 되겠군.
  
- 저녁에는 정보격차에 관한 논문들을 정리해서 주제별 전문사이트 내용을 어느 정도 꾸몄다. 그리고 정보격차 논문에 들어찬 책장 한 칸을 정리하고... 그러는데 거의 5시간 정도가 걸렸나.
  
- 논문계획서 신청원은 점심 때 제출했다. 일단 내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이는데, 긴장 풀지 말고 스피드를 계속 내야할 것이다. 오늘 있을 한미FTA 체결 반대 범국민대회에도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 적어도 3월에만은... 당연히 11일의 당대회에 대한 관심도 꺼야 한다.
 
- 정운찬은 출마하겠지? 갈수록 연기가 모락모락... 박근혜나 이명박이 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정운찬이 하는 말들을 보면 정치 단수가 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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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0 02:58 2007/03/10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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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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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10일 02:32 
  

아래 글에 따르면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량주의자가 되는군. 평등연대(해방연대라고 하나?) 사람들도 정말 서운해하겠다. 
  

이 텍스트에 기반해서 각 단락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게 되면 뭔가 그럴싸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걸 가지고 교육을 해도 되겠다. 그런데 원전을 읽으면 이렇게 되는건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고 좌선회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제발 민주노동당의 튼튼한 좌측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뭐라고 잔뜩 썼지만, 이 글이 어떠한 실천적 함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글쓴이가 뭐라고 할지... 역시 민노당의 개량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려나. 아무튼 나름대로 흥미있었다. 
  

특히, 중간쯤에 "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는 언급은 최근의 사회적 합의주의 논란과 관련하여 곱씹을 만한 대목이며, 약간은, 아니 상당히 실용주의적이고,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는 전진 그룹 동지들에게 권하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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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왜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되었다. 

물론 아래의 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생각해볼 꺼리가 있지 않나 싶다. 
  

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 한다.

 

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 다시 말해서 레닌의 언행에서 무슨 원칙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레닌의 저작들을 꼼꼼하게 읽었다면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같은 철학서조차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해야 제대로 본 것 아닐까. 
  

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인 것이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 
  

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백철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활동가)

1. 청산별곡(淸算別曲)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청산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소련의 몰락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색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에게는 스탈린주의의 문제가 곧 레닌주의의 문제로 등치되었고, 위대한 러시아 혁명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조산아(早産兒)에 불과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급기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것은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니고 개량주의의 하나의 조류를 재탕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이병천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반전 위기의 집중적 표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위기'를 들면서 "우리 시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과제는 시민사회내의 민주적 헤게모니의 획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시민사회의 형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계몽된 전위만이 역사의 근원적 운동법칙, 공산주의로의 필연적 운동법칙과 방도를 알 수 있고, 또 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관념적·폐쇄적 확신으로부터 계급의 진리, 사회와 역사의 진리의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위당의 독재라는 주장이 나오며, 대중 위에 군림하는 전위당의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전위당론이 당독재로 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노자간의 계급 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중층화, 다층화되었다고 하면서 성, 인종, 환경 등 시민사회 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현재 이른바 좌파 운동 진영 내에서 주장하는 '복수적대에 기반한 차이와 연대의 정치', '일괴암주의',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들은 바로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수식어의 화려한 외관을 살짝 뜯어보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적대적인 실체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대해 '구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며, 구좌파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구좌파'를 모든 것을 노자간의 계급문제로 돌려 버린다는 계급환원론으로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자동붕괴론, 경제결정론으로 화석화하여 무덤으로 끌고 들어갔다. 
  

  신좌파의 불온한, 빈곤한 상상력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 인종, 인권, 생태 등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과 분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임노동에 대한 착취를 하면서 재생산되는 사회다. 사회 각 영역에서의 모순들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착취질서를 폐지하는 운동과 결합되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부문운동의 고유의 영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을 중심으로 하여 굳건하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여성의 문제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각종의 차별, 억압과 어떻게 분리될 것이고, 인종의 문제가 이주노동자의 계급적 문제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파시즘에 의한 인종청소와 제국주의 전쟁도 자본주의의 폭력적, 반동적 결과물들이다. 자본주의의 각 부문에서의 문제를 그 부문의 문제만으로 한정시키는 것이야말로 환원론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을 주장했다면 왜 그토록 노동자 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행동과 전위의 의식성을 강조했겠는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비판하는 자들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인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보라! 물적,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계급간의 투쟁이 당시의 구체적인 법률적, 정치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풍부하고 긴장감 있게 분석하고 있지 않는가! 
  

  청산주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도 터져 나왔다.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진보적 노동조합운동론, 국민적 노동조합 운동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투쟁일변도의 전투적 조합주의 노선은 국민대중과 노동대중으로부터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적 관점에서 국민경제와 국민국가 및 시민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책임"지는 노동운동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노협의 전투적 노동운동 노선 대신에 노사간의 사회적 파트너 쉽에 의거한 협조적 노사관계 구축을 호소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이후 사회적 조합주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으로 연이어 등장하게 되면서 현재는 사회적 합의주의로 포장된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구조조정 시 노조의 참여 등 대중운동 영역에서 노사협조주의의 직접적인 기반이 되었다. 
  

  한편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인민노련, 삼민동맹,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비위를 구성하여 합법주의적, 투항주의적 행보를 계속하였고, 사노맹은 사회주의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개량주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진영의 청산주의적 움직임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의 직접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결국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에서 등장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비합법적 노동운동의 청산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론적, 조직적, 실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개량주의의 삼두마차가 되었다. 
  

  남한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사회주의의 청산별곡(淸算別曲)이 울려 퍼지는  동안 진지하게 이론적, 실천적 모색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치열한 모색을 통하여 소련의 몰락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원리와 전통으로부터 일탈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현재 자본주의의 모순은 오직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과학적 인식으로 바라볼 때 구체성을 띠고, 그것의 모순 극복은 자본주의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건설 위에서만 가능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청산주의적인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전통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은 아직 굳건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비합 사회주의자들은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하면서 대중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상황을 절대화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식으로 논쟁에 임하는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패권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며 이러한 패권주의적 태도는 부르주아의 힘에 굴복할 패배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 
  

2. 전위정당론과 비합법주의의 옹호

1) 전위정당론은 대중과의 선진적인 결합방식이다 
  

  전위정당론에 대해서 마치 소수의 결사체의 음모적 조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위정당을 비판하는 세력들 중에서는 러시아 볼셰비키가 소수의 블랑키즘적인 테러로 짜르전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성공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왜곡하고, 혁명의 정당성을 비난하는 세력들이 자주 사용하는 악선동 중의 하나다. 
  

  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전위정당이었지만 1917년 혁명 이전에는 8만 여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대중적 전위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내에서 노동자 다수의 지지와 농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전까지 혁명은 일정에 올려지지 않았다. 
  

  흔히들 러시아 혁명은 기동전적인 국가 탈취 전략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셰비키를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과 노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불굴의 투쟁을 통해 당과 소비에트라는 굳건한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면 기동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1년 혁명 이후 레닌은 이탈리아 공산당(PCI) 지도자에게 "볼셰비키는 1000만이 넘는 군대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보다 더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비난하는 세력들은 그람시의 진지전을 예로 들면서 시민사회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람시의 진지전은 1920, 21년 부분적인 무장공세를 통해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험적인 공세를 계속하였던 독일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모험주의 세력들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또한 1928년 파시즘의 공세에 대해 사민당과의 통일전선전술을 거부한 스탈린주의 제3 코민테른의 초좌익적인 오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렇게 진지전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혁명 활동을 수행할 당시에 전위당과 국가권력 타도의 문제에 모든 전력을 기울였음을 볼 때 그람시가 기동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람시의 혁명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그람시에게 기동전은 이미 전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모험주의와 초좌익주의에 대항해 통일전선전술을 주장하기 위해 진지전에 대한 일면적인 강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지만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이고 계급 투쟁의 전반을 이끌고 조직하는 중심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 관계는 무차별적인 이해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전진에 기여하는 방향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위는 가장 헌신적이고 올바른 전략적, 전술적 지도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권위와 지도력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위의 지도에 대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비판하는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전위가 가지는 권위는 강요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의 선물이다. 지도와 피지도는 상명하달이나 명령 식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에 있다. 지도하기 위해서는 지도받아야 한다. 대중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서는 대중을 지도하지 못한다. 
  

  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대중의 무의식,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이기주의에 기초해서 착취질서와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노동자 대중들에게 전위당의 지도력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전위당의 지도를 이미 있는 것으로 하고 대중을 지도하려 한다면 아무도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법률적 강제와 강압적 지시로 전락하면서 왜곡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고 "코민테른의 도장이 찍힌 당원증의 힘만으로 노동계급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도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대된다. 공산당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반혁명 분자"이다. 노동자는 사전에 맹세코 공산당 조직을 신뢰해야 한다. 당의 목적과 계급의 목적을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당 관료는 계급대중에게 법령을 하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노동계급이 미리 텔만과 레멜러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이 역사를 통해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 바쳐야 할 모든 노고는 다 무슨 소용인가?  (트로츠키, 반파시즘 투쟁) 
  

  트로츠키는 이러한 관료적 지도를 대중에 대한 최후 통첩주의라고 비판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당독재로의 변질은 전위당 이론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전위당 이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인 이병천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기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전위당 이론이 결국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당독재로 전환했다고 비판한다. 
  

  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2) 조직형식은 정치적 내용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는 비밀주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치를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물론 대중운동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에서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의회활동 등 공개적, 합법적 활동에 대한 비중도 늘어 갔다. 이후 볼셰비키는 공개적, 합법적 노동자당을 만들자는 청산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현시기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조직구조의 형태는 합법·반(半)법의 노동자조직의 네트워크로 둘러싸인 당세포의 총화로서의 비합법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볼셰비키에게 합법적 활동은 비합법의 내용을 합법적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파하는 것이다. 
  

합법조직은 비합법 핵의 사상을 대중 사이에서 전파하는 거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종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조직 형태와 관련해서는 비합법이 자신을 합법에 '적응'시킨다. 그러나 우리 당의 사업 내용과 관련해서는 합법활동이 비합법 사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레닌, 합법정당론) 
  

  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정치적 제약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체제가 급격하게 위기에 빠져들 때 국가권력은 중립성과 동의와 설득이라는 외관을 벗어 던지고 무차별적인 탄압을 가해올 것이다. 
  

  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법주의자들은 남한의 정치조건이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변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노선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열려진 정치적 공간은 비합법적인 정치적 내용을 공공연하게 선전·선동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지는 것이지 합법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스스로도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주의에 대한 용인은 그것이 전혀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사민주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제도화를 추구하여 분출하는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많은 동지들이 비합법 조직에 비해서 공개적 조직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공개, 비공개라는 형식이 민주주의의 관건은 아니다. 사회당 혁신 논쟁에서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처럼 당 내에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있었다. 하지만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에는 이 노선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혁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에서 황광우는 합법적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비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달라"고 주장했다. 사노맹의 사회주의 합법화 노선에 있어서도 이러한 논리는 유사하게 적용됐다. 이것은 조직노선을 단순히 상황의 포로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한총련의 합법화 구걸을 보라! 
  

  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들이 합법조직으로 전환하여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이후의 역사적 진행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3.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론에 대한 비판 
  

1)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과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계획으로서의 조직건설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이다. 조직건설은 강령적 수준의 사상적 통일을 기반으로 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인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한다. 물론 이런 수준의 조직 내에서도 전술적, 개별적 수준에서의 일치는 현실 투쟁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조직 내외적인 논쟁과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획으로서의 조직 건설이다. 
  

  노힘은 비제도적 투쟁정당에서 활동가 정치조직을 주장하고 있다.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전형적인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노힘은 '정치적 재조직화'라는 글에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라는 테제를 우리가 인정함과 동시에 공통의 지향태로서의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인정한다면 공통의 지반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지반이 활동가 정치조직의 틀 속에 묶일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노힘은 그것을 '어항론'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일단 '하나의 어항에 모든 고기를 모은다'에서 시작한다. 그 속에서 각각의 정파들이 내세우는 조직노선·정치노선상 공개적인 사상투쟁을 벌여 나가고, 동시에 대중적인 공동 투쟁을 통해서 계급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조직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새로운 조직건설 방법론의 핵심이다. (노힘, 정치적 재조직화) 
  

  이것은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공동투쟁체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조직화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공통의 지반으로 인정하는 수준에서 하나의 조직적 틀로 묶일 수 있다면 이 어항에 들어오지 못할 물고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 활동가들의 대부분도 이러한 공통의 지반에 동의하고 있다. 하나의 어항에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으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고 종국에 어항은 깨지고 말 것이다. 
  

  노힘은 "활동가 정치조직은 노동자의 힘의 입장에서는 당건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에 기초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힘의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대중조직론(PMO) 노선의 유사한 재판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자각되어 가는 선진노동자로 구성되는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민주집중제를 지향하는 단일 규약을 갖는 조직이다. PMO는 노조와 질적으로 다르지만 이것이 자체 발전하여 전위조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조직론 팜플렛, 정치적 대중조직론) 
  

  PMO노선은 결국 전위조직도 대중조직도 아닌 어정쩡한 조직 형태를 낳았다. 물론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조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현장연대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것은 노힘의 조직 건설이 절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직건설에 있어서 노힘의 무원칙한 팽창주의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러한 발상은 이후 또 다시 조직 내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많다. 
  

  노힘은 기간 강령적 수준 하에서의 노선적 통일 없이 조직을 구성하였다. 또 이념적 강령적 내용이 없다보니 조직 구성원의 자격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노힘은 대중운동에서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 조직 내에서의 노선상, 실천상의 차이는 크게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조직 내부의 규율상의 문제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대중운동 내에서의 실천상의 오류에 대해서도 노힘은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체감의 약화라는 노힘의 한계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실제 노힘과 활동가 정치조직을 같이 하려고 하는 현장연대는 노동자 중심성을 부정하면서 복수적대에 기반한 모순의 다층적 구조를 주장하고 있다. 평의회를 주장하지만 당에 대해서는 일괴암주의라고 하면서 비판적이다. 과연 노힘은 이러한 느슨한 조직구성으로 어떻게 관료주의, 개량주의라는 대중운동의 질곡들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것인가?
  

2)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이를 지지하고 나선 사회주의 대중정당론 역시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추상적 좌파에 대한 승인을 조직구성의 전제로 한다. 이러한 승인 하에서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구체적인 이념적 강령적 통일성 속에서 조직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 강령적 통일은 "당 건설 과정에서 사상이론가들이 결집하여 '사회주의 강령제정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가 '정기적인 내부토론으로 견해를 가다듬고 수시로 대중토론회를 개최하여 대중운동의 성과가 강령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강령 제정 사업을 전개"해 나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는 정치 총파업 조직, 전국적 정치신문 발행, 현장 활동가 양성과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무수히 많이 나열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조직적 성격과 사상적 내용으로 그 과제들을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해방'과 '연대'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이 제시돼 있을 뿐이고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과제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물론 강령이라는 것은 혁명의 이론적, 실천적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조직의 무기이다. 강령은 단순히 이론적 나열이 아니다. 실천의 무기로 전화되지 못하는 이론적 분석을 우리는 강령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강령적 수준에서의 이론적 통일성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완성된 고정불변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의회주의·합법주의·개량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구별시켜 주는 핵심적 관건"으로 "대중운동의 성장·발전에 철저하게 복무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성장·발전 동력을 획득하는 노선"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인 것이다. 
  

  강령적, 조직노선상의 통일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사회당의 계급좌파는 다양한 내부의 이념적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중심성 강조와 복수적대에 기반한 부문운동에 대한 강조, 국유화 계획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PT독재에 대한 승인과 무정부주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국가타도와 단절적 이행론에 대한 반대 등 상호 적대적인 정치적 노선이 혼합돼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과연 이러한 정치적 차이를 강령제정위원회에서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강령으로 녹여낼 수 있는 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러한 화해할 수 없는 정치노선상의 차이를 단순히 단일 조직 내에서의 공동실천으로 묶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치를 절충주의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계급좌파를 제출한 안승천은 조직 구성의 원칙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론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회당에서는 정식화된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마찬가지로 안승천은 "사회당의 강령은 한국의 사회주의자 그룹 대다수가 참가하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하여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을 주장 하고 있다. 결국은 "모여서 한번 해보자! 누가! 사회주의자가! 무엇을! 사회주의를!"이라는 동어반복적 결의 외에 정치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별로 없다. 
  

  사회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대개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라고 부르는 것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며 운동이야말로 나의 전부이다"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주장으로 귀결된다. 
  

사회당이 사용하는 '사회주의' 개념은 사회 모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 민중의 최대 요구의 총체적 표현이며, 현실을 극복해가기 위한 운동 그 자체다.(사회당,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사회주의 정치) 
  

코뮤니즘은 미래에 도래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 대한 지향',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교류의 원리', '돈, 조직, 명분 등 모든 물화된 가치보다 개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 등 코뮤니즘의 행위규범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정성훈, 청년 좌파의 성과와 패기로 독립좌파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자! 사회당이여!) 
  

  노동자 계급에 의한 자본주의 국가권력 타도와 정치권력 장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만이 남는다. 자본주의 "현실을 극복해 가기 위한 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한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나가는 개량주의 운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의 수단은 각 부문 내에서의 투쟁과 의회장악이다.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만 제기되는 코뮤니즘은 단지 도덕성과 고매한 인격을 갖춘 인간형을 추구하는 사회당 식 품성론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가기 위한 투쟁은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 굳건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미래에 도달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의 운동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벽에 부딪혀 물질적 상태마저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회당이 가진 패기와 열정 그리고 순수성과 상관없이 "쓰디쓴 자본주의의 바다에 사회개량주의의 레모네이드 몇 병을 넣어 이 자본주의의 바다를 사회주의의 단물로 바꾸겠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만큼 공상적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강령 연구와 실천의 과정에서 회피하거나 얼버무리고 있는 국가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국가의 문제 앞에서 "하나의 정치적 강령"은 사민주의와 혁명주의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결국 사회당과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계획으로서의 조직론이 제기한 최초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을 스스로 거부하게 된다면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합의지점은 민주노동당에 비해 대중투쟁에 대한 상대적 강조는 있지만 선거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상대적 강조점조차도 선거에 직면해서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데 왜 따로 조직을 꾸리는가?" 라는 민주노동당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또 다시 조직재편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4.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합법주의다. 
  

  사회당 내에서의 혁신 논쟁이 제기된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대선에서 얻은 0.089의 득표율이다. 사회당 내부에서 혁신논쟁을 이끌고 있는 동지들 스스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참패가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통일좌파의 실패와 대통령 선거의 참패는 그 동안 쌓여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출마동지회(출동) 노선은 선거주의의 극악한 결과물이다. 2004년 총선에서 227개 전지역구에 후보를 내기 위해 고향 등 연고에 따라 하나씩 지역구를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출동노선이다. 그런데 정성훈은 출동노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 
  

셋째의 문제를 낳은 뿌리는 중앙당을 비울 테니 다른 좌파가 들어와서 대선을 주도하라는 「통일좌파」의 황당한 구상에 그 원인이 있다. 사회당의 투쟁 전통을 이론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그리고 가을 정세에서 주도적으로 투쟁하지 못한 것은 중앙당을 비우고 주요 간부들이 모두 지역구 사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황당한 구상의 뿌리에는 227명을 채우는데 사활을 건 출동노선이 있다.(위의 글) 
  

  정성훈은 중앙당 사업이 약화되고 부문운동이 압살된 것 때문에 출동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출동 노선의 합법주의는 정당명부제 같은 "정치개혁의 대세를 거스르는 패배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성훈은 선거제도의 개혁 요구야말로 합법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정성훈의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선거주의, 부문운동적 사고의 한계에 갇혀 있다. 
  

  사회당의 출동노선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의회진출에 모든 전략적 전술적 사고를 집중하는 개량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사회당 바깥의 명망가'에게 기댄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사회당의 의회주의가 낳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의회주의에서 제도정치권에 1석이라도 진출하는 것은 사활을 건 정치행위이다. 의회진출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활동하던 지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친인척을 중심으로 하여 인맥을 이용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어쩌면 의회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이것이야말로 원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회당 내부의 혁신 논쟁에서 제기된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나온 본질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사회당은 혁신 논쟁에서 생활정치를 강조한다. 
  

여기서 생활정치란 민중의 삶과 호흡하는 정치활동을 말합니다…출퇴근길이나 이동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수시로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정치문제를 화제로 삼으며 가볍게 토론을 벌인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간략한 선전과 연락처를 인쇄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대중들에게 나누어준다면, 한마디로 선거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자연스럽게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사회당의 모습은 아주 달라지지 않을까요?(안승천, 계급좌파 2부)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은 여기서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당 정치를 경청하는 무대의 관객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는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 같은 초보적인 개량마저도 허용하지 못하고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공세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반동성을 매시기 매순간 폭로하면서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해야 한다. 이것은 출퇴근 길이나 이동 중에 우연히 만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수행하는 일방적인 정치선전과 분명히 다르다. 파업이나 구조조정 반대 투쟁, 해고자 복직투쟁, 노동재해와 직업병에 맞서는 투쟁, 일상적인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과 인원충원 투쟁, 비정규직 투쟁 등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단결을 고취시킨다. 
  

  사회당의 혁신논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개량주의 내의 개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개량주의의 우물 안'에서 벌어지는 혁신의 결과는 사회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없으며, 2004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득표와 의회 진출에 실패할 경우 또 다시 극심한 내부 혼란과 조직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회당의 계급좌파를 지지하는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면서 대체권력"을 주장한다.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새로운 폭발적 고양을 총체적으로 준비하고 선도해 냄으로써 새롭게 성장·발전하는 노동계급 대중운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력을 구축하고, 그러한 힘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 가능성을 가진 현실정치의 실체로서 위상을 확립한다.(양준석/오민규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발전전략에 대하여) 
  

  결국 이들의 집권전략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가 아닌 국가의 활용론에 머무르고 있다. 대중투쟁에 대한 강조는 집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동 계급 운동이 폭발적으로 고양된다면 그러한 힘은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를 철저하게 분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고양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제한하여 집권으로 향하는 계기로 돌리려 하고 있다. 왜 노동자 투쟁의 폭발적 고양을 자본주의 체제로 가두는가? 노동자 계급의 폭발적 고양을 철저한 야당으로 제한했던 과거 러시아의 멘셰비키처럼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혁명을 반대할 것인가? 
  

  물론 이들은 "집권은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대안권력 창출'이라는 보다 원대한 목표를 향한 중간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장치를 대중들의 대안권력으로 '대체'시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여기서 비약을 하고 있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결국 정치적 수사와 전투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변형된 합법주의에 불과하다. 
  

5. 개량주의와의 대적전선으로 혁명적 주체를 굳건히 세우자! 
  

  개량주의.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 반대와 전투적 노동운동의 부활을 부르짖던 현장조직 운동은 현재 끊임없는 운동적 타락을 보이고 있다.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을 이끌고 왔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전국회의)는 현재 대중운동의 혁신은커녕 자신의 지친 몸을 끌고 갈 힘조차 갖지 못하고 힘겨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전국회의로 대표되는 조직의 위기인 것이지 현장조직 운동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전국회의가 지향했던 현장조직 운동의 강화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현장조직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선진 노동자들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현장조직의 선거조직화와 현장조직 활동가들의 관료적 타락과 부패는 정치적 전망을 갖지 못하고, 사상적 무장을 하지 못했던 한계에서 비롯됐다. 
  

  정치적 전망이 없는 활동가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투쟁이 전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운동의 원칙, 미래와 연결되지 못하는 눈앞의 이해를 추구하다 보면 실용주의와 조합주의가 자리 잡게 된다. 여기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온갖 유혹과 탄압은 당장의 이익도 방어하지 못하고 현장조직 운동을 타락시켰다. 이것은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장 중심성은 현장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정치에 대한 배타적인 측면도 있었다.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현장조직 운동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미 부여를 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이 빠르게 퇴락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지나친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를 현장 활동가들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정치조직의 무능력과 전망 제시 실패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과 정치조직 운동의 결합이라는 것을 이유로 현장조직 운동을 정치조직의 하부단위로 인위적으로 재편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좌파 진영 일부에서는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를 이유로 이러한 분화발전론을 제기하고 있다. 우파진영에서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에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영향을 가지고 있는 편집부 '여명'에서 현장조직의 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로의 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현장조직의 구성원을 정치조직의 구성원으로 할 것으로 제한하면 현장조직의 대중적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그것은 결국 정치조직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에 맞서서 현장조직 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조직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현장조직 운동의 대중성을 강화하고 계급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개량주의와 맞서 싸우면서 현장의 진지를 강화하고 현장에서 사회주의의 선진적 주체를 새롭게 조직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강령적 수준에서의 사상적 통일성의 확보와 조직적 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내용과 실천을 부여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활동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위한 관점과 태도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실패가 혁명적 정치를 저절로 부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현장의 붕괴와 실리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선거주의, 관료주의를 강화한다. 현재 대중운동에 있어서 관료주의와 실리주의, 협조주의는 개량주의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온갖 기회주의적 조류들을 물리치고 현장으로부터 대중운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과 실천투쟁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활동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개량주의라는 이유로 공동활동을 거부하게 된다면 그것은 종파주의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대중들에 대한 기권이 된다. 
  

  우리는 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 활동에 있어서도 민주노동당이 왜 일관되게 대중운동을 지도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을 타협적으로 끌고 가는데 일조하는 지를 공동활동을 통해 폭로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철회가 부르주아 정당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세력들에 대한 지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노힘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제도권 내에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성과로 바라본다. 
  

'비제도영역'에서 정치-사회운동의 '정치적-조직적 구심'을 건설하는 일이다. 이 조직의 구심은 무엇보다 사회운동적·대중적·계급적 정치조직의 성격을 지니며, '제도영역'의 진보정당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대중운동의 성장과 계급투쟁의 진전을 위해 서로 '억제'하는 관계가 아닌 '상승'의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대중운동의 영역에서는 '경쟁'의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제도영역'에서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위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한다"(강동진, 좌파여! 새로운 정치운동을 조직하자!) 
  

  노힘은 비제도 영역, 민주노동당은 제도영역에서의 '상승'의 관계를 갖는 '새로운 정치운동'은 양날개론의 변형된 재판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노힘은 제도영역에서의 민주노동당의 필요성과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제도영역'에서의 '상호보완' 관계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현장투쟁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을 파괴하면서 진행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대안을 찾는 개량주의는 관료주의의 온상이 된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궁극적으로 노사협조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조직적,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반대를 외치는 많은 정치조직들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조직적 틀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민주노동당과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활동하는지는 의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독립된 혁명적 주체를 새롭게 발굴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독립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본의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로 인해 이에 맞서는 노동자의 계급투쟁도 일상화 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은 개량주의, 관료주의 지도부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고,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투쟁할 수밖에 없는 계급투쟁의 객관적 조건과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는 주체적 역량의 괴리를 채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전국적 노동자 투쟁전선을 형성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조직해야 한다. 현장을 통한 전국적 조직화의 중심은 대공장이다. 물론 이것은 중소 사업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주의자의 역량으로 볼 때 전략적 지역과 공공, 금속의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해서 거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대공장 사업장들은 노사협조주의자들과 관료주의자들이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선진 노동자들의 조직인 현장조직조차도 관료주의와 협조주의적 영향을 받으면서 대중적 신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공장 내에서의 활동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서는 안된다. 
  

  대공장의 혁명적 강화는 노동운동 전반을 강화하고 자본의 거점을 약화시키는 중심 고리의 역할을 한다. 자본의 노동의 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확대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99년부터 대중적으로 분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에 강력한 투쟁정신을 불어넣었지만 정규직과의 연대의 실패, 현장 조직화의 실패 등으로 인해서 대부분 패배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공장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새롭게 투쟁이 분출해 나오고 있다. 
  

  대공장 내에는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1만 5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일 공장에 밀집해 있고, 수만에 달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대공장 내의 선진 노동자 운동은 무수한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과의 강력한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대공장 운동의 전투적 강화는 이러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굳건한 연대의식에 기초하여 자본에 대항한 계급적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자본은 최근에는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수백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전산업에 걸친 비정규직의 확대에 이어 자동차 업종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확대될 것이다. 산업전반에 걸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 이주노동자들과의 국제주의적 연대의 실질적인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편협한 조합주의나 실리주의로 노동자의 실질적인 연대전선을 구축할 수는 없다. 
  

  남한 내에서 선진 노동자들은 그 동안 '객관적 현실의 변화'를 근거로 한 정치조직들의 우경화와 인텔리 혁명가들의 거듭되는 배신으로 인해서 정치적 전망을 상실하고 이른바 '바깥의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보여 왔다. 하지만 떠날 곳 없는 현장 활동가들은 객관적 현실의 변화 이전에 변하지 않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부딪히며 현장을 꿋꿋이 지켜 왔다. 그들에게는 오직 '현장만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정치조직들의 대중적인 활동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현장의 선진 활동가들은 "현장과 사회주의 정치의 굳건한 결합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좌파 동지들에게 지구당과 선거일정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주의 활동이 아니라 현장 내에서의 계급투쟁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하나가 될 것을 호소한다. 그 길에 남한 대중운동의 성장과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투쟁! 
  

「보론」과연 소련은 국가자본주의였는가? 
  

  남한에서 IS가 소련 몰락 이후에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이후에 몇몇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나서고 최근에는 노힘의 채만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 논쟁의 긍정성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원리적인 상을 제시하였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에서 제기하는 국가자본주의 논쟁은 논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도식적이고 박제화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탈린주의에 대한 도덕적 분노가 과학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제기된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도 소련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상당 부분이 도덕적 분노에 머문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그 글의 상당 부분은 소련 사회에서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사회주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분노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인텔리적 관념과 공상의 소산이라고 본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정당한가? 우리는 관념론자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의 사회주의는 그렇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회주의의 왜곡과 변질에 맞서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채만수와 노힘의 스탈린주의 옹호를 전면 비판한다!"는 글은 소련에서 노동자가 아래로부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계획에 참여하지 못한 점, 관료(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 유럽혁명과 중국혁명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 등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소련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내용을 가지지 못했다는 분석만 있을 뿐 자본주의였다는 예는 들지 못한다. 
  

관료는 자본가인가? 
  

  노동자가 실질적인 계획의 주도자가 되지 못하고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인 계획을 했다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증명이 되지는 못한다. 관료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는 자본주의적 착취는 아니다. 아니 착취라는 표현이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부가된 가치로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수탈한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착취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소련에서 관료의 수탈은 타관료와의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살아 남고 자본을 증식하기 위하여 개별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련에서 관료는 계획된 생산량을 초과달성함으로써 관료적 유능함을 인정받고 자리를 보장받거나 출세를 한다. 관료가 자본가 계급이라면 경쟁에서 밀린 관료의 몰락과 관료의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한 관료가 계획된 생산량을 채우지 못해서 관료적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면 다른 관료로 대체되지 다른 경쟁력 있는 관료가 원래 관료가 있던 산업부문을 과점 또는 독점하지는 못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사적으로 생산한 생산물의 상호교환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물론 이 말은 교환과정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총잉여생산물이 늘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관심은 오로지 개별자본을 늘리려고 할뿐이다. 
  

  관료는 자본가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글을 보면 스탈린과 김일성 등이 자본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관료라는 표현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 관료의 지위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은 그가 자본가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좌우익 편향은 원칙에서 일탈하고 전술적 오류 등에서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오류다. 레닌이 좌익 소아병에서 비판한 독일공산주의 노동자당은 자본가였는가? 이런 식의 논리적 비약이 국가자본주의 주장 글에서 발견된다. 이런 식의 비약이라면 남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인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세습이 가능한가! 독점자본주의에서 왜 독점을 제한하는 독점금지법이 있는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본질로 하는 국가가 왜 복지정책을 쓰는가! 
  

  이점에서 남한에서 발표된 국가자본주의 주장을 보는 것보다 제4인터내셔널의 만델과 SWP의 크리스 하먼, 캘리니코스, 토니클리프, 데릭하울 등의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과학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도움이 된다. 물론 기본적인 주장은 남한 내에서 국가자본주의 논쟁과 동일하지만 논리적 사실 규명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남한의 글은 주장이 강하지만 그 글들에서는 논리적 예증이 강하다. 
  

  크리스 하먼은 만델의 타락한(왜곡된) 사회주의 주장이 그 논리적 귀결로 소련이나 동구에서 노동자들의 아래로터의 투쟁에 끝까지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만델은 소련사회가 사회주의로부터 일탈을 했지만 17년 혁명의 성과로 남아 있는 국유화 계획화라는 소유관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만델은 발끈하면서 제4인터내셔널은 동구와 소련에서의 모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지지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만델의 반발은 유효적절하지 못하다. 크리스 하먼은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이 사회가 자본주의에 비해서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적 봉기가 관료적 통치 계층의 지배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고, 오늘날 소련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부활'을 낳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력증에 이르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IS의 전술적 오류를 담고 있다. 
  

  남한에서 IS(물론 SWP도 마찬가지겠지만)는 소련의 몰락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소련사회에 대한 환상을 접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대단히 무책임한 주장이다.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내적 혁신이 불가능해지고 소련이 몰락하면서 전세계 부르주아 진영은 엄청난 계급적 자신감과 힘을 가지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가중했다.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모든 악의 주범이다. 민주적인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 대부분이 가슴속으로 공감하는 구호였다. 소련이 몰락한 이후에 노동자들은 실업 등 자본주의적 모순이 강화되자 이제는 또 다시 '스탈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그 때가 차라리 좋았지!"가 대부분 노동자들의 대중적 정서이다. 로마 교황의 소련 몰락에 대한 개입설도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투쟁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소련의 몰락은 SWP의 기대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의 부활에 대한 염원을 가져다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중립적으로 모든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투쟁을 조직하느냐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한다. 
  

조직화된 자본주의가 가능한가? 
  

  크리스 하먼은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클리프는 그 자신이 레닌과 청년 부하린이 제1차 세계 대전기에 발전시킨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어떻게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시켰는지 보여 주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밀착을 주장하면서 소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인 국가자본주의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레닌은 오히려 제국주의론에서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자본주의의 독점이 강화되면 하나의 독점체가 형성되면서 경쟁을 제한하고 자본간, 자본가 국가간의 경쟁에 의해서 발생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독점은 독점체 내부의 경쟁, 독점체와 비독점체의 경쟁, 선발 독점체와 후진 독점체의 경쟁 등 불균등 발전에 의해서 자본주의 내부 모순과 경쟁을 격화시키고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은 힐퍼딩에 의해서 조직화된 자본주의로 나아간다. 
  

카르텔화의 진정한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카르텔화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없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히려 카르텔화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독립적인 산업은 카르텔화 한 산업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것에 합병된다. 이 과정의 궁극적인 결과는 총카르텔의 형성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모든 생산부문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하나의 기관에 의해 의식적으로 규제될 것이다〈힐퍼딩, 금융자본 제15장 '자본주의적 독점의 가격결정과 금융자본의 역사적 경향'〉 
  

  힐퍼딩은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의식적인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한 산업부문 전체를 장악하는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이 계획적으로 규제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힐퍼딩은 또 같은 책에서 이와 상반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생산 전체를 담당하고 따라서 공황을 제거하는 총카르텔 그 자체는 경제적으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직은 사회적·정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직은 그 조직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될 이해대립이라는 암초에 좌초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카르텔에 공황의 지양을 기대하는 것은 공황의 원인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같은 책, 제20장 '공황의 성격변화와 카르텔과 공황) 
  

  이처럼 힐퍼딩은 상호모순 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 카르텔의 발전으로 인해 공황은 일정 정도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힐퍼딩은 자본주의에서 독점의 발전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되는 한 독점체의 몰락이 전체 산업부문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공황의 파국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카우츠키와 힐퍼딩의 초제국주의론과 조직화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내부에서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거 또는 완화할 수 있다고 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개량주의적인 실천을 낳는다. 
  

  결국 SWP 진영이 소련이 국가자본주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레닌과 부하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

 

  소련 내에서 경쟁과 가치법칙의 작동을 증명해 보라는 주장에 대해서 크리스 하먼은 클리프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경쟁형태는 다름 아닌, 서로 다른 국가들에 소속된 경쟁적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다"라고 빠져나가고 있다. 정확히 쓰려면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국가와 사적 자본주의 국가와의 군사적 경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기경쟁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이 자본주의였다는 가장 유력한 주장은 사실 무기경쟁이다. 하지만 무기경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무기경쟁이 한 사회의 지배적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군사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붇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도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가 자본주의 축적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1990년에 GNP에서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퍼센트에서 5.4퍼센트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1980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크리스 하먼,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 
  

  일반적으로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는 자본주의에서 사치품에 대한 소비와 마찬가지로 비생산적 소비영역에 속한다. 물론 무기 자체의 판매로 인해서 일부분 생산적 소비가 되기도 하지만 무기생산자체는 자본가 국가에게 잉여가치를 창출해주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 소비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위의 책에서 크리스 하먼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소련에서도 무기경쟁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양식은 아니었다. 소련의 총매출액에서 무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을 넘어 설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소련은 단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몰락했을 것이다. 무기경쟁도 자본주의적 경쟁은 아니었다. 소련의 무기경쟁은 판매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제국주의로부터의 체제의 수호라는 측면이 가장 컸다.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위협이 없었다면 악의 화신 스탈린조차도 군사비의 상당 부분을 대중의 소비와 복지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기경쟁이 자본주의적 경쟁이었다면 무기경쟁에서 지면 무기산업의 몰락과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할 텐데 미국과 무기경쟁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미국이 소련 무기산업을 먹어치웠다는 괴상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데릭하울은 '가치법칙과 소련'에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 경쟁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역량으로 볼 때 노동의 국제분업으로부터의 분리가 러시아 지배계급이 자국의 생산성과 그들 경쟁국의 생산성을 비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관료들이 상품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꾸준히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데릭하울,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가치법칙과 소련')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경쟁은 교환을 전제로 하는 경쟁이다. 단순히 비교를 위한 지표로서의 경쟁을 어떻게 자본주의적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상품은 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 상품을 시장에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상품 소유자에게는 그것은 교환가치의 담당자, 따라서 교환수단이라는 점에서만 직접적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상품소유자는 자신을 만족시켜 줄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을 얻기 위하여 자기 상품을 양도하려고 한다. 모든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그것의 비소유자에게는 사용가치이다. 따라서 상품은 전면적으로 그 소유자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소유자를 바꾸는 것이 상품의 교환인데, 이 교환을 통하여 상품은 가치로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또 가치로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상품은 사용가치로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제1편 제2장 교환과정) 
  

자기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단순히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곧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상품으로 되기 위해서 생산물이 그 사용가치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교환을 통해서 이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같은 책 제1권 제1편 제1장 상품〉 
  

  이처럼 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련에서 가치법칙은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상품의 교환을 규정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가-그 교환이 등가교환인 한-여기서도 지배한다. 다만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데 그것은 달라진 환경 하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노동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가 없으며 또한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개인적 소유권으로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 수단의 분배에 관한 한 상품의 등가 교환과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고 하고 있다.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감가상각비나 사회적 복지(결국 노동자에게 귀결되는)를 제외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시간으로 환산해서 일종의 노동증명서를 통해 사회적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소비만큼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것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그 사회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를 토대로 한 협동적 사회 내에서는 생산자들이 그들의 생산물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 각 개인의 노동이 더 이상 간접적 방식이 아닌 직접적 방식으로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은 더 이상 생산물들의 가치 즉 생산물들이 소유하는 하나의 물질적 특질로는 표현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사회에서의 등가교환은 자본주의에서의 가치법칙과 달리 생산물 분배의 준거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시장기구를 통해 생산과 분배를 사후적으로 규제한다. 생산된 생산물은 판매를 하는데 이 판매가격이 가치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자본은 다른 생산영역으로 옮겨간다.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개인들의 사적노동으로 인해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생산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이것을 지배하는 법칙이 바로 가치법칙이다. 
  

"그렇다면 다시 가치법칙이란 어느 한 개인이 만들어낸 생산물이 시장에서의 판매를 통해 상품으로 전화되는 기제를 지칭하며, 따라서 그것은 가치의 결정에 반드시 요구되는 일종의 사회적 제약 내지는 그 범주로서 고유의 역할을 보유하게 된다"(정운영, 노동가치이론)  
  

  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소련이 사회주의였다면 어떻게 정치혁명이 없이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 그들은 소련이 본질상 차이가 없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사적자본주의로 이행했기 때문에 정치혁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출발해서 관료적 지위로 올라갔다면 노동자 계급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노동자 계급적 요소는 조금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료는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자립화한 요소다. 그것을 (악의로의) 지양(止揚)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립화한 관료는 반동적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제스쳐를 취한다. 그것이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는 길이다. 소련에서 관료는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을 통해서 체제를 유지하고 노동자, 농민을 희생하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관료적 지위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관료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말하겠다. 이 주장에는 소련에 대한 모종의 환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공상적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라고 사회주의의 여러 유형을 나열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사회주의는 항상 과학적 사회주의일 수는 없다. 민족적 사회주의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을 두고 노동자혁명이 없었는데 어떻게 사회주의인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북한 지배층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자본주의가 저발전하여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중심부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일궈나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료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사회주의적 계획화와 국유화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효율적일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사회주의적 계획은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본질로 하는데 현실의 소련에서의 계획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사회주의적 계획은 언제나 효율적일 것이라는 관념의 소산이다. 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채만수는 소련이 사회주의라고 보면서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하지만 스탈린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는 침묵을 한다. 채만수는 스탈린주의가 유럽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 저발전한 자본주의에서의 혁명과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혁명 주체의 내전으로 인한 사망 등을 원인으로 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스탈린주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스탈린주의는 비판받을 것이 없고 역사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긴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잘 비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스탈린주의가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소련의 몰락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다. 스탈린은 노동자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면서도 노농동맹을 주장했던 레닌의 정신을 버렸다. 현실적으로 농민의 비중이 상당한 저발전한 국가에서 혁명에 농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혁명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농민의 역할은 큰 것이다. 농민에게는 설득과 집산화를 통한 물적유인이 필요하다. 소농의 토지를 강제로 수탈하여 집산화할 수는 없다. 도리어 집산화된 협동조합이 소농 경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이 농민은 집산화에 참여할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보려면 파리코뮌을 보라고 했다. 레닌도 국가와 혁명에서 파리코뮌에서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노동자민주주의를 극찬했다. 그런데 파리꼬뮌은 베르사이유 군대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군대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려 있으면서도 이런 외적 극한적인 상황을 내적 민주주의로 극복하려고 했다. 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계급투쟁은 급격한 내전기에 가장 격화된다. 그런데 내전이 끝난 이후에 계급투쟁이 격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탈린은 부르주아의 반혁명에 맞선다는 구실로 노동자, 농민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고 지배력을 강화했다. 노동자 국제주의의 원칙은 유럽에서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일국사회주의'로 변질됐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레닌 당시의 당대회 규약과 실질적인 당대회 운영을 스탈린 시기의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실제 레닌은 혁명기간 내내 끊임없이 소수자의 위치에 내몰렸다. 그럴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촉발해내면서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뒤마 선거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논쟁, 1917년 혁명 과정에서 4월 테제를 발표할 당시의 논쟁, 혁명 이후에 독일과의 강화협정을 맺을 때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은 격렬한 반대와 반발에 직면했다. 하지만 레닌은 치열한 토론과정을 통해 이를 돌파해 나갔다. 레닌 주변의 동지들은 레닌의 입장에 대해서 "반볼셰비키적이다", "레닌이 드디어 맛이 갔다"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레닌은 플레하노프처럼 멘셰비키로 전향한 동지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설득을 통하여 함께 할 것을 설득했다. 
  

  레닌이 독일과의 강화조약을 주장하던 혁명 이후의 당대회를 보면 부하린이 레닌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혁명 이후면 레닌의 권위가 가장 높을 때다. 하지만 토론에 있어서는 그 권위는 조금도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규약에도 이런 반대의견의 제출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이 돼 있었다. 심지어 의사 결정 이후에 비판의 자유도 보장이 됐다. 중앙위원회의 독일과의 강화조약 결정에 대해 몇몇 지방조직에서는 이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공표하기조차 하였다. 레닌은 지방조직의 주장을 반박하는 비판을 제기했지만 그 태도표명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닌은 이러한 비판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단독강화의 문제로 중앙위원회와 날카롭게 의견을 달리하는 동지들이 중앙위원회를 엄하게 비판하고 분열의 불가피성에 대한 확신을 표명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이는 모든 당원이 갖고 있는 더할 바 없이 정당한 권리이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藤井一行 볼셰비키 당조직론) 
  

   하지만 스탈린주의가 뿌리박힌 당대회는 한마디로 모든 대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 토론 대신에 이견자는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당내에서 트로츠키를 비롯한 좌익반대파를 추방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독점한 1930년대에 열린 16차 당대회와 1934년 17차 당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영웅숭배적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찬미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등단자는 보고나 발언 속에 스탈린의 '위업'을 칭송하게끔 되었고, 발언 도중에도 스탈린의 이름이 나오면 대회 대의원들은 당연히 '총기립'하여 '폭풍과 같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박수'를 보내야 했다. 결정을 '전원일치'로 채택한 것도 물론이지만 일부 의안을 제외하고는 결의안을 작성하는 위원회조차 거의 설치되지 않게 되었다.(같은 책) 
  

  스탈린 시대에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의 실질적인 내용과 형식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34년 제17차 당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 하에서 숙청에 대한 새로운 규약도 마련되었다. 
  

1. 계급적으로 이단이며 적대적인 분자.

1. 당을 속이고 당에 대하여 자신의 본래의 견해를 숨기며 당의 정책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면종복배자(面從腹背者)

1. 당과 국가의 철의 규율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파괴하는 자.

1. 부르조아분자와 유착하고 있는 변질자.

1. 출세주의자, 이기주의자, 관료화된 분자.

1. 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당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당의 깃발을 더럽히는 도덕적 부패자.

1. 당원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강령, 규약, 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습득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 
  

  물론 당의 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규약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규약대로 한다면 '걸려들지 않을 자'는 하나도 없다. 특히 면종복배자를 숙청한다고 하는 규약은 반대파를 완전 제거하는데 무한한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당내 비판의 자유 제거는 당을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당독재'로 전환시켰다. 
  

  소련의 몰락 이후에 스탈린주의적인 당운영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론을 '일괴암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당운영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 당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운영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과도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스탈린주의적인 당독재는 오히려 전위정당의 핵심 정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관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적이 되어야 했다. 
  

  유럽에서의 혁명의 실패는 혁명 주체들의 문제도 있지만 스탈린의 잘못된 개입에 의한 측면도 크다.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서 독일 사민당과 반파시즘 통일전선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민당을 파시즘과 한편으로 몰아갔다. 사민당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반면 중국혁명에서는 이에 대한 오류를 극복한다는 것이 너무 멀리 나아가서 중국공산당과 국민당과의 합작을 주장하면서 공산당의 해체를 조장했다. 결국 대외적인 고립도 스탈린 스스로의 잘못된 원칙과 전술에 기인한 좌우편향적인 정책에 기인한 것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과의 전술적인 차이는 크게 없다고 본다. 여전히 소련사회의 몰락의 원인에 대한 치열한 모색은 계속되고 소련 사회 구성체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 풍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을 한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의 우위성을 보증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되려 스탈린주의의 오류를 자기 것으로 해서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 다시 스탈린이 처한 처지에 똑같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혁명은 일국에서 비롯된다. 동시적 세계혁명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혁명의 일국적 고립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돌파할 것인가? 는 혁명 주도 세력이 직면하는 가장 큰 난관이 될 수 있다. 혁명 과정에서 내전을 통해 생산력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혁명을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는 무정부적 생산과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라는 자신의 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위기를 낳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원칙과 원리로부터 멀어져 갔기 때문에 몰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원리와 원칙에 충실할 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는 정정 가능하다. 여기에 다시 한번 역사발전의 추동력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하는 시도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저발전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남한 자본주의는 자본의 과잉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당시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다. 따라서 내전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당시 혁명 러시아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을 것이다. 
  

  당시 볼셰비키에게는 혁명의 성공과 유지에 있어서 사활적이었던 농민에 대한 고려도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 사회였지만 인구비율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었다. 남한에서 농민은 대부분 노동자화 되거나 반프롤레타리아화 되고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나 한·칠레 무역 협상 등으로 인해 남한 농업은 소농이 몰락하고 있다. 세계의 거대 농업과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한에서도 점점 더 집산화된 대규모 자본이 진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트화는 점점 더 진척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농업뿐만 아니라 자본의 독점화에 의해서 몰락이 가속화되는 쁘띠부르주아 등 산업전반에서 아군을 점점 더 충원받게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관료화를 막는 객관적 조건의 하나이다. 결국 관료주의를 막는 관건은 주체의 능동성과 의식성이 얼마나 고양되어 있는 가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물적토대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는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심화된 위기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자본주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의 전세계적인 위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같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타나면서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반동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직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쟁반대를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노동자 국제주의는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닥치고 있다. 이러한 혁명을 위한 물적토대의 강화라는 객관적인 필연성을 주체적인 역량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 소련의 몰락은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 주었다. 이것이 소련 사회의 성격을 두고서 논쟁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끝-

**이 글은 2003년 4월 26일에 있었던 '사회주의 정치 운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토론회에 제출되었던 글이다. 이 글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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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9 03:03 2007/03/0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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