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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전환’과 ‘신뢰형성’의 이중변주: 이행의 정치를 위하여(장석준, 미래공방 제2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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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진보정치연구소의 장석준 동지가 <미래공방> 2호 원고로 쓴 글입니다. 장석준 동지는 <미래공방>이 논문집의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서 딱딱하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리 딱딱하지 않고 자신의 고민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아마 변혁을 생각하는 활동가들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동지들에게 추천하는 글입니다. 
  
어쩌면 말만 살아 움직일 뿐, 실천을 제대로 하느냐 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듭니다. 이 글에 대해 저와 같은 정치조직에 속한 한 동지가 아래와 같은 덧글을 남겼습니다.
 
ㅇㅇ이 그 변혁의 주체가 될수 있을까요~!
정치조직이 정치방침도 정할수가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민주노총의 위기를 초래한 진영과의 전술적 야합을 준비하고 있는 ㅇㅇ이 과연 변혁은 고사하고, 좌파이기나 한걸까요!
자신들의 조직에 가입하고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에 대한 아무런 조직적 강제나 정치적, 의식적 노력이 없는 소수 몇명의 왕당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끊임없이 원칙을 폐기하고, 수정하고 있는 ㅇㅇ이 과연 과연 과연.... 숙청으로부터 변혁으로, 자정으로부터 새로운 ㅇㅇ을...
이미 ㅇㅇ은 희망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슬픕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서가 일부 회원만이 아니라 조직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있다면 이를 우선 조직내에서부터 강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체제전환’과 ‘신뢰형성’의 이중변주
- 이행의 정치를 위하여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유행한 것들이 있다. 우선 ‘로드맵’이란 말이다. 이 정부는 사회를 무슨 건설 공사 현장쯤으로 봤던 것 같다. ‘로드맵’이란 걸 잘 만들면 정말 사회가 그 시나리오대로 다 돌아가리라 믿었던 걸까? 아무튼 정책 전문가가 얼마나 그럴듯한 ‘로드맵’을 작성하는지가 정치의 관건처럼 됐다.
   
그래서 또 유행한 게 있다. 각종 보고서들이다. 한 동안 보고서의 생산이 ‘정치’를 대신했다. 정당의 강령이나 대중의 관심사보다도 청와대 주변이나 이러저러한 싱크탱크에서 나온 보고서들이 정치 의제를 규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보 진영에서 갑자기 여러 개의 싱크탱크들이 등장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적 싱크탱크의 역할이란 게 결국은 정부나 우파 연구소 쪽의 생산물들과 경쟁하는 또 다른 보고서와 청사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 국가전략’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로드맵’의 정치(그것을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면)는 결국 파산 선고를 받고 말았다. 확실히 사회는 공학의 실험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비록 단기적인 차원에서라도 테크노크라트에게 과도한 영광을 부여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와 개혁보수세력(혹은 ‘중도파’)의 실패는 어느 정도는 ‘로드맵’ 정치의 실패였다.
   
유럽도 아니고 라틴아메리카도 아닌 한국 사회
   
‘로드맵’ 정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항상 어떤 모델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대개 외국의 사례에서 추출한 어떤 모델을 상정하고 그것에 맞춰 한국 사회를 수술할 방도를 찾는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결국 한국 사회 바로 그것이다.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른 한국 사회의 복합성, 그리고 그 어지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현실의 주체들, 즉 한국의 노동자, 한국의 주부, 한국의 자영업자, 한국의 농민, 한국의 자본가 등등이 시야에서 지워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혁보수세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좌파도 이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레디앙>에서는 한국의 좌파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 사례가 유럽인지 라틴아메리카인지를 놓고 입씨름이 있었다. 논쟁을 벌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만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걸 잊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가 유럽에 더 가까운지 아니면 라틴아메리카에 더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화해할 수 없는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의 모든 고뇌는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이 유럽 사례와 더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노동계급이 과거의 서유럽처럼 대안적인 사회 세력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현실에 눈감고 있다. 100년 전 서유럽의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은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것 같은 난관을 겪지는 않았다. 적어도 산업 노동자가 인구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율 꼭 그만큼은 노동조합 조직을 쭉 확대시켜갔고 좌파정당도 선거에서 계속 지지를 늘려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87년 민주화 이후 곧바로 노동계급의 성장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행진은 10년만에 결정적인 후퇴를 맛보았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직접적으로 몰아닥친 신자유주의 공세는 아직 취약한 상태에 있던 노동계급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허물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안정된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연대의 가치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편에는 일본 노동운동의 쇠퇴와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역동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일본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내부 분열과 반목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좌파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안정적 성장 궤도(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고려에서 제외했을 때 이야기이기는 하지만)를 뒤따를 것이라고 장담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낙관주의이거나 외국 동화 광(狂)이거나 둘 중 하나다.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선택을 남한에 그대로 이식할 수 있는 양 선전하는 개혁보수세력의 망상과 거리가 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틴아메리카가 우리의 좌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 모두 자본 수입국들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 관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반면 한국은 중심부 국가들과 양적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자본 수출국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애매한 중간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거의 유례가 없다.
   
분단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어쩌면 라틴아메리카에서 대중을 규합하는 게 우리보다 좀 더 단순하고 수월하다면, 혹은 반대로 우리가 저들 나라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면, 그 핵심 이유 중 하나는 분단 문제다. 분단 때문에 대중이 반제 민족주의로 똘똘 뭉칠 것이라는 전망은 진실의 한 쪽 면일 뿐이다. 분단은 북한 체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통해 대중들 사이에 심각한 균열과 갈등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의미의 민중계급이 최대 수준의 정치적 대중집단으로 결집하는 데 중요한 제한(constraint) 역할을 한다.
   
라틴아메리카와의 또 다른 차이는 사회적 유대의 양태와 자원, 효과(요즘 주류 사회과학은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 표현한다) 측면에서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보이는 농촌 공동체의 잔존, 미디어의 상대적 저발전으로 인한 하층계급 생활세계의 역설적 자율성, 비록 일시적 단절이 있었다 할지라도 어쨌든 세대에 세대를 이어 지속되어온 좌파의 뿌리 깊은 전통 등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들 요소야말로 라틴아메리카 좌파 민중주의 성공의 밑바탕인 것이다.
   
유럽, 라틴아메리카와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은 한 마디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 할 수 있다. 한 세기 전의 서유럽과 비슷한 노동계급 초기 형성의 시간대와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 공세의 시간대가 함께 하고, 자본 수출국의 위상과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민주주의 장치의 부재가 병존한다. 즉, 세계 자본주의 역사의 각기 다른 시기가 서로 공존하며 교차하고 결합하는 압축적이고 복합적인 시간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간대를 사는 우리 한국인들은 결국 상당히 (자기)분열적인 주체일 수밖에 없다.
     
‘정치’의 부활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한국 사회에는 분명 변화의 열망이 존재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광범한 불만이 존재한다. 아니 단순히 존재하는 수준이 아니라 저 심연에서 꿈틀댄다. 지각에 조금의 균열이라도 생기면 지표 위로 솟구쳐 오르는 마그마처럼 폭발의 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확인됐다. 바로 3년 전의 17대 총선이 그 사례다.
   
16대 국회 마지막의 탄핵 사태는 변화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응집돼 폭발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물론 이 때 변화의 지향과 수준, 내용은 참으로 모호했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판갈이’ 구호만큼이나 막연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 강도만큼은 거의 혁명에 버금갔다. 
   
그러나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면 2004년 봄은 그 열기 외에는 혁명과 아무런 닮은 점이 없었다. 대중은 기존의 것에 대한 불만은 확실히 표현했으나, 어떤 가치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무엇을 위해 누구와 어깨 걸고 나아갈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이 격랑 속에서 방향타를 잡는 것은 정치세력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결과의 막연함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그런 시도 자체를 회피했다. 누구나 사례로 드는 게 2004년 말의 국가보안법 개폐 파동이고, 현 정부 집권 내내 반복적으로 터진 부동산 문제다. 정부, 여당은 그 어떤 경우에도 뚜렷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바탕에 둔 지지동맹을 구축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여기가 노무현 정권의 실패 지점이고 또한 민주노동당이 첫 걸음을 떼야 할 지점이다. ‘사회연대 국가전략’의 일부인 ‘진보정당 헤게모니 프로젝트’는 민주노동당의 정치 전략이 복지동맹의 구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연대적 성장전략과 복지모델을 무기로 경제사회적 이해관계와 직결된 정치적 지지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만 야심찬 기획인 것이 아니다. 전체 한국 정치의 진로를 바꾸는 계기일 수 있고, 따라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일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복지동맹의 핵심은 17대 국회 초기에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의 주된 지지 기반이던 화이트칼라, 조직 노동자와 이른바 ‘저소득층’이라 불리는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 계층 사이의 연대에 있다. 후자는 그간 정치적 대의 과정에 참여하는 데 소극적이거나 양대 지역주의 보수정당에 상대적으로 강하게 얽매여 있었다. 이들의 이러한 정치 불참 혹은 한나라당, 민주당 지지는 보수 독점의 정치 구도가 유지되는 데 토대 역할을 했다.
   
따라서 복지동맹의 구축은 단지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 확대의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보수 독점 정치 구도의 토대를 허물어뜨림으로써 한국 사회 지배구조의 한 핵심을 흔들자는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과제는 개혁보수세력과 이른바 ‘반한나라당연합’을 만들어 기존 정치 구도 내에서 덧셈 뺄셈의 정치를 하는 것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주된 지지 기반을 허물고 이를 오히려 새로운 좌파 정치의 토대로 뒤바꿈으로써 진정한 ‘판갈이’의 정치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대안적인 역사 블록의 구축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한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이 메시지가 대중에게 그 내용 그대로 수용될 수 있을까? 더구나 여기서 ‘대중’이란 추상적 시, 공간의 이론적 주체가 아니라 2007년 한국 사회의 현실 주체들이다. 민주노동당과 그 대중 사이의 관계맺음이 ‘진보정당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좇는 방향 그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회연대 국가전략’은 저 흔한 ‘로드맵’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행의 전망도 없는 공허한 모델론일 것이다.
   
이 질문을 치열하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노동당도 이미 지난 3년간 혹독한 시험을 거쳤고 그 결과가 하나같이 다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우선 자신을 대안으로 내세울 ‘실적’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사실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는 것 자체가 근본 문제는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 당이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한계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무엇이 그러한 실적을 이뤄낼 가장 효과적인 소재인지부터가 막연했다는 점이다. 아니, 그런 소재를 선택해서 거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약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현재 대중의 전반적인 평가는 ‘평가를 할 무슨 거리가 없다’, ‘그래서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불신의 벽을 돌파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중의 불신에는 보다 뿌리 깊은 환경적 요인도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남한 사회가 이제까지 한 번도 좌파 주도의 진지한 사회 개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겪어보지 않은 세력을 신뢰하기란, 더군다나 그 세력에게 자기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다. 정권 초기 그토록 드높았던 기대 때문에 실망과 환멸 또한 측량할 길이 없다. 이것은 뭔가 변화를 이야기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여기에는 지금 민주노동당도 포함돼 있다.
   
세 번째는 민주노동당의 주된 사회적 기반인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침체와 혼란이다. 이 대목에서 노조 간부의 부패 문제는 차라리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진보적 전망이 도대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그래서 속 좁은 이익집단으로 낙인찍히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산별 전환 움직임은 분명 중요한 변화의 계기이지만, 아직 이런 수세 상황을 타개할 정도의 폭발력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의 복잡한 모순들로 인한 대중의 (자기)분열이다. 홍세화 선생의 표현을 따른다면, ‘존재에 대한 의식의 배반’이다. 현 상태에 가장 불만을 갖고 있고 그래서 변화를 가장 바라는 사회 세력이 현재 급격히 한나라당, 더 정확히 말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한 성장동맹에 쏠리고 있다. 장기의 시간 지평에서는 민주노동당에 호감을 느낄지 몰라도 단기의 시간 지평에서는 이명박 세력에게 더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좌파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수용되고 그래서 정치적 실체로 부상하려면, 이러한 불신의 두터운 벽부터 파열구를 내야 한다.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참담한 실패 이후 이 사회의 대안적인 ‘정치’가 타파해야 할 첫 번째 화두다.
   
체제전환의 정치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좌파 정치는 앞으로 두 개의 경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두 개의 경로란 ‘체제전환의 정치’와 ‘신뢰형성의 정치’다. 이 두 쌍은 고전적 용어법에 따르면 ‘혁명’과 ‘개혁’에 각각 대비되겠지만, 그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굳이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필자는 체제전환의 정치와 신뢰형성의 정치가 동시에 추진되고 둘이 상호 영향을 미칠 때 복지동맹과 같은 대안적 역사 블록이 구축되고 그래서 변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체제전환과 신뢰형성의 노력이 병행되고 둘 사이에 끊임없이 대중적 차원의 해석적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변혁 프로그램 자체의 구체성을 높이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확대할 수 있다.   
   
우선 체제전환의 정치부터 이야기해보자. 한국 사회의 가장 급박한 문제, 즉 양극화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부분적인 개선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체제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연대 국가전략’의 성장, 복지 모델도 사실 이런 수준의 변화를 전제한다. 
   
물론 ‘체제’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 보다 심층의 구조(예를 들어 자본주의 생산양식)와 연관된 ‘체제’(영어로는 흔히 system이라 불리는) 개념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는 좀 더 표피적인 제도적 차원과 연관된 ‘체제’(영어로는 regime이라 불리곤 하는) 개념도 있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 국가전략’은 이 중 후자의 의미에서의 체제전환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전자의 맥락에서의 체제전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조희연 교수는 “스웨덴 모델이건, 네덜란드 모델이건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넘어서는 모델의 현실적 구현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계급적·사회적 역관계, 그것을 구성하는 민중의 분노가 필요하다”(<레디앙> 2006. 11. 1)고 지적한다. 즉, ‘사회연대 국가전략’이 제시하는 정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체제의 변화를 공세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말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어떤 수준이 됐든 부분적 개선 수준을 넘어선 체제전환을 지속적으로 선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전’하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보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와 더불어 체제전환의 현실적 계기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세계 좌파정치의 역사를 보면, 그런 계기로서 대표적인 것이 제헌적 성격을 지니는 운동이나 사건이다. 물론 그 전형은 혁명이다. 하지만 고전적인 혁명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우선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초기 역사에서는 보통선거권 쟁취 운동이 그런 역할을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보통선거권을 쟁취함으로써 선거로 집권하고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전망이 당시의 노동계급을 고무하고 단결시켰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초기 발전 과정도 비슷했다. 노동자당이 80년대 중반에 벌인 군사독재반대 민주화 투쟁은 일종의 선거권(대통령 직선제) 쟁취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1970년 칠레의 인민연합은 대통령 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사실상 제헌 수준의 헌법 개정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실제 추진되지는 못했는데, 마르타 아르네케르(M. Harnecker) 같은 논자는 이것을 포기한 게 인민연합 정부의 실패의 주된 이유였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 전략은 30여 년 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에서 실현됐다. 차베스 정부는 집권 직후 곧바로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했고, 이것이 이후 지금까지 8년 동안 계속되는 평화혁명의 출발점이 됐다.
   
우리의 경우도 체제전환의 현실적 계기로 민중적, 사회적 개헌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개헌 논의를 계기로 삼아 체제전환을 현실 의제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확대, 평화 체제, 경제 민주화, 사회권의 철저한 보장 등을 개헌안의 주 내용으로 제시함으로써 체제전환의 정치에 실체를 부여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헌법 개정 문제는 이미 현안으로 제기돼 있다. 어쩌면 개헌 논의를 18대 국회의 과제로 넘김으로써 2008년 총선 때까지 쟁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지금 그 대표적인 것이 주택 문제다)마다 혹은 한반도 통일, 더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 과정에서 제헌적 운동이나 사건의 기회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2004년 탄핵 사태와 같은 우발적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이런 순간에는 평소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로운 정치 기반의 형성, 사회 세력의 재배열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곤 한다. 우리는 이런 순간을 포착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러한 순간을 낳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뢰형성의 정치 
   
하지만 이와 함께 신뢰형성의 정치가 추진되어야 한다. 특별한 계기 없이 체제전환만을 선전한다면 이것은 특히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 빈곤층을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데 커다란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이들 계층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워낙 급박하기 때문에 ‘말을 통한 선전’보다는 ‘행동을 통한 선전’, 즉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동반하는 행위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 집단이 불신과 의혹을 걷어내고 기존 정당으로부터 좌파 쪽으로 과감히 이동할 수 있도록 세심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신뢰형성의 중요한 수단은 ‘예시적 개혁’(prefigurative reforms)이다. 예시적 개혁이란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들을 제도와 경험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회연대 복지모델의 기본 원칙들을 연금 개혁이나 사회서비스 확대 등의 추진 과정과 그 제도적 구현 내용 등에 반영함으로써 사회연대 복지모델 자체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예시적 개혁도 모든 다른 개혁과 마찬가지로 현 체제의 부분적 개선에 불과하다. 그것이 여럿 모인다고 해서 체제가 바뀌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예시적 개혁은 집단의식의 파장 운동을 지향한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문을 그리고 한꺼번에 여러 개의 돌을 던지면 각각의 파문이 확대되면서 서로 만나는 것처럼, 예시적 개혁의 경험들은 대중 차원의 해석적 순환을 통해 그런 방향의 현실 변화 일반에 대한 지지, 체제 수준의 전환에 대한 지지로 발전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통해 대중의 불신을 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실험을 비롯해서 민주화 이후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추진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참여민주주의 사례들이 커다란 의미를 가졌던 것도 바로 이런 예시적 개혁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들 실험은 좌파가 건설하려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실물로 보여주었고, 그래서 다른 어떤 선전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대중을 고무하고 결집시켰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17대 의정 활동을 통해 이러한 예시적 개혁의 사례를 만들어내야 했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그러한 실적을 만들어낼 주요 영역이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보다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겠다.
   
예시적 개혁은 우선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서 ‘새로운 경험’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새롭다’.
   
첫째는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배치되는 요소들, 가령 실질적인 재분배, 공공부문의 적극적 역할,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참여 등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는 상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좌파 스스로가 이제까지의 상투적 실천 관행을 벗어나는 행위들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은 냉소의 빗장을 걷어내고 불신의 벽을 허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충격일 수 있다.
   
셋째는 최대한 다수의 대중에게 소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되도록 많은 수의 대중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개혁을 바로 자신의 권리 쟁취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어야 한다.
   
예시적 개혁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그에 동반하는 주체의 전환 과정이다. 이런 저런 제도가 갖춰지는 것 자체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런 제도를 바라보는 대중의 의식이며 그에 반응하는 행동 양식이고 그런 의식과 행동을 하나로 모으는 새로운 단결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개혁들 사이의 연속성이다. 하나의 개혁은 연속적으로 새로운 개혁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의식화와 조직화 과정도 지속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실 지금처럼 민주노동당의 현실 역량이 제약돼 있는 상황에서는 예시적 개혁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일단 한 방면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일단 한 곳에서 물꼬를 튼다면 그 후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열릴 수 있다. 진보정치연구소가 3월 발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소득연대전략’(가칭)도 바로 이러한 예시적 개혁의 모범 사례를 일구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 2007년 대선을 준비하며
   
당장 우리 앞에는 2007년 대선이 있다. 대선이 있는 올 한 해는 지난 3년과 맞먹는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정치적 무게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올 1년의 실천이 과거의 모든 성과들을 무색하게 할 수도 있고, 역으로 지난 3년 동안 절감한 우리의 한계들을 집약적으로 극복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올 대선 과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과감한 체제전환을 주장하고 나서야 하며 동시에 신뢰형성에 초점을 맞춘 치밀한 핵심 정책을 펼쳐 보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정치 활동이 어떠한 것인지 스스로 그 모범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그러한 전형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것은 이후의 모든 실천 과정에도 우리의 밑천이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만 당의 지지 기반은 재구성될 것이다. 항상 상징적 차원에서만 우리의 동지이던 민중계급의 다수가 실제 좌파를 지지하기 시작하는 일이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올 한 해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우선 우리 자신부터 ‘변혁’하는 1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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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4 18:51 2007/03/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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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금속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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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쯤이면 금속노조 선거 개표가 끝났을 것 같다.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참담하다. 물론 나름 예상했던 것이지만...
  
10만 5천표 정도 되는 총투표자 수에서 전국회의의 정갑득이 예상대로 압도적으로 1위를 했고, 전국회의에서 갈라져 나온 현장연대가 예상밖으로 2위를 했다. 3위와는 2천여표차이가 날 듯하다.
이렇게 되면 전국회의와 현장연대가 결선투표에 올라가는 셈인데, 만약에 현장연대가 전국회의와 함께 나왔다면 과반으로 당선되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역시나 대공장의 투표가 전체 금속선거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보면서 아직은 산별의 길이 험난함을 알 수 있다.
  



2. 결선에는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전진은 노힘과 3위 자리를 다투는 꼴로 추락하고 말았다. 3시반 현재 90여표 앞서있었지만, 이 또한 불확실하다. 총투표수 중에서 2만표를 획득할 수는 있을까. 이러한 개표결과는 전진의 현상황이 어떠한지를 말해준다.
  
민주노동당 당직선거에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민통 세력에게 패배하여 지역의 뿌리가 위태위태하고, 총연맹 선거에서는 양경규,김창근 후보가 결선까지 올라갔으나 1차 투표결과를 보면 초라하기 그리 없었다. 게다가 민주노총 서울본부 선거에서도 무리하게 후보를 냈으나, 자체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표 확인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는 금속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산별노조 전환을 주도했으면서도 조직력에서 국민파에 밀리고 만 것이다. 어쩌면 지역중심의 계급 산별을 말만 했을 뿐 실천에서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공공노조 선거도 잘될지 의문이다. 물론 열심히 하고 있지만...
   
3. 지금까지의 금속선거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진은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조직이 없는 곳에서는 당연히 4,5위로 밀렸고, 나름의 조직이 있다 싶은 곳에서도 전국회의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부산양산, 포항, 인천에서 우위를 차지했는데, 특히 포항의 결과는 지난 포항건설노조 투쟁처럼 현장과 함께하는 투쟁을 벌였을 때 그 실력을 인정해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4. 금속선거 결과는 단지 전진이 결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좌절되었다는 것, 노힘과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충격을 받아야 하고, 진정으로 새로운 현장활동을 해야 함을 보여준다. 
   
총연맹 임원선거에서부터 전진 활동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전진에서 뭘해도 중앙파라고 찍히고, 이 때문에 당과 노조운동 모두에서 굳건한 반전진 전선이 세워진 상황, 선거에서 승리한 후 집행부에 개입할 수 있어야 무슨 일을 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앙파적 속성의 잔존, 중앙은 있으나 하부·현장은 부재한 현실, 그리고 당과 노동의 활동가들이 결합했을 때 보일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한 채 물리적 통합에만 그치고 있는 상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5. 어쩌면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노조와 당 활동의 결합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향후 변혁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조직이 전진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지역중심의 계급산별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였기에, 문제가 많이 있을지언정 전진에 가입했던 것 아닌가.
 
선거를 가지고만 얘기하다보니 내 자신이 선거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밖에서 그냥 평론가같이 이러고 있는 꼴이 스스로도 한심하기도 하고...
금속 동지들, 정말 열심히 했을 텐데, 너무 절망하지 말고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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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6 11:03 2007/02/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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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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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했던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오늘 케이블TV 최초 HD 16부작 미니시리즈인, tvN의 '하이에나'에서 역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나오더라.

 

오만석이 김민종 때문에 좋아했던 선배에게 사랑고백을 할 기회를 놓쳐 후회하게 되는 장면 이 나오고, 다시 거머리(여성을 따라다니는 남성) 김민종이 골뱅이(술 취한 여성) 소이현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화장실에서 준비연습을 한 것 때문에 간발차이로 친구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장면에서 해설자가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타이밍은 중고딩 때 시험 때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먹었던 약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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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5 03:48 2007/02/1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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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교육원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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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님과 거한 고기잔치를 벌인 후 일찍 잠들었는데 - 물론 그게 12시이다 - 그 덕분인지 4시가 조금 넘어 자연스레 눈이 뜨였다.

이런 경험은 또한 오랜만이라 뭐할까 하다가 책상 옆에 흩어져 있던 신문들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그 동안 근 10여일 쌓아놓았던 한겨레, 서울신문 기사들을 다시 훑어보면서 정리할 것을 따로 빼서 체크해놓았다. 이것은 나중에 카페와 블로그에 올릴 예정.

  

그렇게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오늘은 연구실에 일찍 가려 했는데, 겨우 9시를 10여분 남겨놓고 연구실 문을 열었다. 오늘 따라 아영씨는 은행 들렸다고 온다고 조금 늦는단다.

가는 길에 언어교육원으로 개떼같이 몰려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아마도 오전에 있는 영어회화 강좌 수강을 하는 사람들일 터이다. 갑자기 텝스 생각이 났다. 이번에 논문 프로포절을 하면 논문을 쓰기 위해 텝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구나. 하긴 영어공부를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닌데... 그냥 원서나 영어논문 본다고 텝스점수 상승과 직결되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포럼 담당 인력 면접하고, 연구실 정리정돈하고, 정책&제도 DB 편집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겠구나. 저녁에 있을 선거강령 준비는 어떻게 하나. 

제목하고 글 내용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군. 사실 언어교육원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글을 쓸 생각을 했으니 유관하기도 하다.

언어교육원에 있는 빵코에 가서 샌드위치나 사와서 아침을 떼워야겠다. 아마 이 시간에 문을 열겠지?



ㅇ 2. 3 (토)
전진 총회에 가는 길에 쓴 메모.
  
2시가 다 되어 대전으로 향하다.
바람이 드세고, 곧 비가 올 듯한 분위기이다.
자금 가도 임시총회에 늦지 않을까?
   
가는 길에 동생과 통화를 하다.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양경규 선본이 수세적 선거운동을 하였고, 공공연맹의 파업을 조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노동기본권 사수를 하지 못한 민주노총에 있음을 지적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수긍하다.
        
ㅇ 2. 6 (화)
 
김한길을 비롯한 열우당 의원 23명이 탈당하였다.
도대체 남은 이들과 나간 이들은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
사실 이런 시도는 민주노동당에서 필요한데 말이지.
      
ㅇ 2. 8. (수)
    
저녁 때 내가 집에 전화하려고 하는 순간 어머니께서 먼저 전화를 하셨다. 지금 친구분들과 찜질밤에 계신다고 한다. 아직 찜질방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생긴 걸까.
   
용건이 다른 것이 아니고, 신사동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이해하기 좋게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 근처라고 알려드렸다. 바로 사촌동생 훈이가 3월 중순경에 거기에서 결혼하기 때문에 버스 대절 문제로 전화를 하신 것이다.
드디어 훈이도 결혼하는구나. 어머니가 답답하시겠다. 큰 아들은 별로 의욕이 없는 것 같아보이니 말이다.
이러다가 이번 설 때 예전에 선 봤던 사람 다시 보라고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ㅇ 권영길 대 박근혜
  
박근혜가 중도면 그 왼쪽에는 조갑제 밖에 없는 건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중도가 가장 오른쪽에 있는 좌파 성향의 사회로 바뀌었단 말인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코메디야, 코메디!"
   
'중도론자 박근혜'라는 블랙코미디 (프레시안, 송호균 기자, 2007-02-08 오전 9:33:40)
[기자의 눈]'선입견' 탓하기 전에 정책을 돌아봐야 
  
  경제정책에 있어 박 전 대표는 "투자를 얽매고 있는 것은 '반기업정서'다.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며 "소득이 없는데 무슨 복지를 할 수 있나. 기업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반(反)기업문화를 친(親)기업문화로 바꾸자"는 주문도 곁들였다.
 
  전 세계 보수정당의 단골메뉴인 '감세'도 전면에 내세웠다. 박 전 대표는 "(집권할 경우) 더 이상 세금 올리지 않겠다. 더 이상 새로운 세금은 없다. 세금을 낮추겠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부터 "(정부는) 시대착오적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갖고 몇 년 동안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출자총액 규제와 금산분리 원칙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회와 시위로 인해 1년에 12조 원의 낭비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식의 언급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그가 말하는 '중도'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중도'와 거리가 멀어진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의 전면 중단"을 촉구하며 한나라당의 대북 제재 강경론을 이끌었다. 자칫하면 남북 간 무력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는 대량학살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천륜'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면서 '박정희 효과'의 활용에는 적극적이면서도 법원이 바로 잡은 인혁당 사건 등 그의 과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억울함을 드러내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현재 박 전 대표의 이념과 노선을 규정하는 것은 여태껏 쌓아 온 정책적 '내용'의 총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출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희극처럼, '중도론자 박근혜'도 일종의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무리 '중도'의 깃발을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이 드문 풍토라고는 하지만 '중도'의 개념을 하루 아침에, 그것도 통째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차라리 '박근혜 중도론'을 겨냥해 "뭔가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이념은 가치관이고 신념이다. 반공우파 이념 위에서 건국된 대한민국에선 '나의 이념은 중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순 없다"는 보수논객 조갑제의 비판이 더 솔직하게 들리는 이유다. 
      
"문제는 내수경제야, 이 멍청이들아" (레디앙, 2007년 02월 07일 (수) 15:19:42 김은성 기자)
[권영길→박근혜] 첫 공개편지…'사람경제학' 비판, 대응 주목돼 
      
권 의원은 “오래 전부터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사람경제론’을 주장했던 당사자로서 박 전 대표가 ‘사람경제론’을 주장한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보게 되었으나, 내용이 정반대인 것을 보고 직접 편지를 띄우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공개 편지를 통해 "서민의 입장에선 박근혜의 사람경제론이 그저 ‘그림의 떡’ 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부자를 위한 감세경제>가 아닌 <서민을 위한 복지경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주장한 ‘No more Tax! No New Tax! Yes Tax Cut!'에 대해 ‘It's the domestic Demand Economic, stupid’(내수가 문제다)” 라고 맞대응하며 “경제는 본질적으로 성장과 분배, 생산과 소비의 순환 구조인데 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발상이야 말로 오히려 경제의 ABC도 모르는 사고 방식”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권 의원은 “경제(經濟)의 동양적 어원은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노동자와 농민, 영세 자영업자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경제 활성화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권영길, 민노당 식으로는 허황돼도 나는 가능” (레디앙, 2007년 02월 07일 (수) 19:07:29 김선희 기자)
권영길 의원 ‘사람경제론’ 비판에 반박…일해 공원 “부적절”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7일 자신의 ‘사람경제론’에 대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비판에 대해 “권영길 의원이나 민노당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허황되고 불가능할 수 있다”며 “그러나 저는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을 방문,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했다. 그는 “사람경제론은 우리가 미래 신성장동력을 무엇으로 생각할 건가 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수출전략을 성장동력으로 생각했지만 21세기에 지금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우리의 신성장동력은 교육과 과학기술”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7% 성장이란 게 허황된 게 아니다”며 권 의원이 비판한 법질서 확립과 기업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한 성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5%는 우리가 지금은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고 나머지 2%는 국가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운용하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 문제”라며 “국가기강이 제대로 잡으면 1% 성장하고 우리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규제만 풀어도 1%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 전 대표는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외교역량을 강화하면 총 2%를 추가 달성할 수 있다”며 “그러면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실현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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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09:19 2007/02/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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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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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토요일 대전에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가사가 아련하게 떠오르는데, 역시 자주 불러보지 않으면 잊게 되더군요.

제목도 전혀 기억나지 않구요.

  

오늘 이 노래가 무엇인지 나중에 찾아봐야겠다고 책 뒷장에 써놓은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열려진 창문 틈 사이로

 열린 만큼 쏟아지는 햇살

 이 못난 우리 사랑도..."

 

그런데 이 가사로는 인터넷 상에서 잘 검색이 안되서리 무슨 노래인지 한참 헤맸습니다.

그렇다고 노래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행히 피엘송에서 가사검색을 하니 나오더군요.

그럴싸하게 가사를 기억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민주노총에서 1995년도에 기획음반으로 발매했던 '노동가요 공식음반 2'에 실려 있는 [동지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여러 개의 노래들 사이로 이 서정적인 노래를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노래제목과는 달리 그냥 사랑노래였기에 더욱 그럴 겁니다.

음반에서는 이 노래 다음에 [끝내 살리라]라는 비장한 노래가 나오거든요.

이 노래는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 출신으로 1994년에 꽃다지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윤미진이 불렀습니다. (작사 조민하/ 작곡 이원경/ 편곡 이원경 노래/ 윤미진)

저는 이러한 풍의 노래를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떠올렸는지도 모르지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가사가 약간 다르네요. 아래 가사가 맞는지 확실하진 않습니다.

  

동지를 기다리며

  

이 못난 가슴도
세상을 조금씩 배우면서
제일 처음 눈 뜬건 사랑

참으로 진실한 사랑이
얼마나 아픈지를
이 작은 가슴도 알았소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열려진 작은 창문으로
열린 만큼 쏟아지는 햇살

우리 사랑도 그만큼만 쌓인다고 하던데
내 가슴은 얼마나 열어놓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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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8 17:02 2007/02/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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