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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 서울여대 초청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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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 수 없는 Free Movie의 기회입니다.
만들어진지 꽤 된 작품인데도 여전히 상영 요구가 많은 듯 합니다. 
아마 그 만큼 생각할 꺼리를 많이 남겨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밥.꽃.양> 서 울 여 대 초 청 상 영
서울여대 여성학연구소 2006학년도 추계학술강연회
주최 : 서울여대 여성학연구소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  

시 간: 2006년 10월 24일(화) 오후 1시  

장 소: 서울여대 인문사회관 3층 인사랑당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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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00:49 2006/10/1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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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한·미 FTA협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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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에 있었던 「맑고 향기롭게」라는 이름의, 법정 스님의 가을 정기법회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비정치적인 내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스님의 말씀을 전달하곤 하였는데, 올해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터넷 상에 전재하거나 정리했을 뿐 이에 관한 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2005년만해도 '곡선의 묘미'라는 주제의 법문이 정리되어 기사화되었지요.

   

법정스님 "한미FTA 끝까지 막아내야" (연합뉴스, 2006/10/15 15:09)
가을 정기법회서 정부정책 강력 비판

  

그런데 올해는 법정 스님께서 법문 중에 한·미 FTA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농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문 정리자도 '농사는 흙이 지닌 덕(德)을 아는 것'이라는 제목을 붙였더군요. 

  

실제로 법문의 초반에는 "농사는 일차적으로 식량자급을 위한 것이나,한 걸음 나아가 생명을 움 틔우고 자연을 익히게 하는 훌륭한 가르침"이라며 농사의미덕과 소중함을 강조하였지만, 후반부에서는 가을 정기법회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한·미 FTA를 왜 저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법정 스님은 한·미 FTA를 강행하는 것을 들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런 고언을 알아먹어야 할 텐데요.

  

한·미 FTA는 말은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기업과 투자자를 위한 협정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한미 FTA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면 농민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줘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은 단순한 하나의 산업이 아니고 사회전환프로그램입니다. 이 시대 농업을 말살하려는 한·미 FTA협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FTA가 체결되면 고급 공무원, 재벌언론사 등 몇몇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 특히 토지에 기반해 살아가는 농민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한ㆍ미 FTA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농민들을 위한 장치가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습니다. 자국 국민을 위한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에 맺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의 법문정리와 기사화된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아마 초점이 달랐던 만큼 정리된 내용도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래 법문정리는 길상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담아왔습니다.

아무튼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농사는 흙이 지닌 덕(德)을 아는 것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 가을 정기법회
- 일시: 2006년 10월 15일(일)
- 장소: 길상사 극락전
- 참석자 : 2,000 여명
  
(청법가 후 대중들 앉아서 합장 반배)
  
올 가을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모든 것이 말라있습니다.
산에 살다보니 제 몸도 자연의 생태를 닮아 조금 말랐습니다.
그러나 건강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오늘은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수타니파타」를 보면 농사에 대하여 부처님과 농부의 대화가 나옵니다.
  
농부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가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 먹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농부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쟁기나 호미,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하십니까? 당신은 농부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밭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부끄러움은 호미자루,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며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 소를 쟁기에서 떼어놓습니다.”
   
인도에서 수행자는 걸식하는 자를 말합니다.
「유교경」에서는 수행자에게 밭을 갈지 말라고 했는데, 「비구」라는 말을 우리말로 하면 「거지」란 뜻으로 빌어서 먹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수행자가 일반 거지와 다른 것은 안으로 법을 빌어서 밖으로 이웃에게 이로움을 전한다는 점입니다.
   
인도와 전통이 다른 중국과 우리나라에 와서 수행자의 걸식이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변환되어 중국의 백장선사는 「반선반농(半禪半農)」의 가르침을 폈습니다.
   
사찰 방장이었던 백장 선사는 손수 농사를 지어가며 가르침을 실천했는데 어느 날 그의 제자가 노스님의 딱한 모습을 보고 쟁기를 감춰 일을 못하게 하자, 그는 공양을 받지 않고 참선에만 몰입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스스로 갈고 뿌린 다음에 먹어야 곡식 낱알 하나도 아깝게 여길 줄 압니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시주물을 무섭게 여겼습니다.
현재 한국 불교에서 눈 밝은 수행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농사일을 통한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말 내장산에 학명스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반은 참선 반은 농사짓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농사가 곧 참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 생산을 위한 노동이 곧 수행이라면서 오전에는 간경(看經), 오후에는 농사, 밤에는 좌선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먹을 것을 자신이 마련하라’는 뜻으로 동안거는 좌선을 중심으로, 하안거는 간경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경전만 보고 기도, 참선에만 열중하면 시주물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울력은 일차적으로는 생산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일체감을 갖게 합니다.
    
농사는 흙이 지닌 덕(德)과 질서를 알게 합니다.
농업은 기초산업이자 생명산업입니다. 농업은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대지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는 채소와 곡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컴퓨터, 휴대전화, 자동차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농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미 FTA는 말은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기업과 투자자를 위한 협정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무조건 개방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대외무역의존도가 70%를 넘었습니다. 미국은 20%를 개방했고, 일본은 22%를 개방했는데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의존도는 이들 나라의 3배가 넘습니다.
우리 경제가 취약한 것은 내수가 약하기 때문인데,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은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외부의 영향으로 충격을 더 많이 받습니다. 미국의 농업은 기업농으로 농업을 없다고 생각하고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한미 FTA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면 농민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줘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은 단순한 하나의 산업이 아니고 사회전환프로그램입니다. 이 시대 농업을 말살하려는 한·미 FTA협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FTA가 체결되면 고급 공무원, 재벌언론사 등 몇몇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 특히 토지에 기반해 살아가는 농민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토 가운데 산지가 64%, 농지가 20%입니다. 전체 면적 중 84%가 사실상 농민들이 관리하는 땅인데 농업이 죽어버리면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ㆍ미 FTA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농민들을 위한 장치가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습니다. 자국 국민을 위한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에 맺지 않은 것입니다.
   
「세계연례보고서」에 의하면 FTA에는 미국형과 유럽(EU)형이 있는데 미국형이 가장 잔인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농민은 전체 인구의 7%인 350만명으로 그나마 모두 60세 전후의 노인들입니다. 농촌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이것은 미래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농업문제를 농민에게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숙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우석훈 교수가 녹색평론에서 펴낸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꼭 읽어보십시오. 제 인격을 걸고 추천합니다. 그 책에 의하면 ‘FTA가 체결되면 4인가족 기준으로 1년에 수입이 6천만원 미만인 사람은 빨리 이민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너무 막강한 권한이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1987년 독재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헌하면서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 국회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런 정치적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뙤약볕에 법문 듣는 분도 있어 이만 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대중들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께 합장 반배)
  
[정리-학륜 이성학]
  
※ 법문제목은 정리자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 법정스님의 법문을 정리자가 약간 윤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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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7 06:10 2006/10/1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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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북핵과 북미갈등 - 서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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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있는 정종권 선배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쓴 '북핵과 북미갈등'에 관한 글을 퍼왔습니다.

정종권 선배에게 그 동안 네이버에 블로그가 있긴 했지만, 글이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아  로그인용으로 아이디만 만들고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투덜대면서 블로그를 만들고자 한다면 네이버 대신 진보넷을 추천한다고 했는데, 며칠새 네이버 블로그에 개시를 했네요.

 

그런데 개시된 글이 참 차분하고 읽기 쉽습니다. 정종권 선배 답지 않게 말이죠.

추천할 만한 글이라고 보아 담아왔습니다. 사실 이 글이 올라온 줄도 몰랐다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펌]된 것을 보고 다시 재펌했지요.

 

출처: http://blog.naver.com/jjkpssp/10009566410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벌써 떠나신지 1년이 다되어 갑니다.      
두어번 짧은 메일로 연락을 드렸는데, 항상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권낙기 선생이나 최정규 선생을 통해 잘지내신다는 소식, 특히 애들이 잘 적응하고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감이랄까 뭐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최정규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당 남원연수원에 계십니다. 알고 계시죠.   
항상 공부와 연구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대단하신 선생님이시니까 지금은 독일어를 웬만큼은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래도 만족하거나 안주할 성격이 아닌 것은 제가 알지요.
           
하여튼 선생님 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전에 선생님 만나면 항상 제가 투정부리듯이 이야기를 하고 대화 같지 않은 대화 방식으로 대화를 했지요. 물론 선생님도 저 못지않게 전투적인 버전으로 저에게 꾸중도 하시고 문제제기도 하셨죠. 새삼 그때가 생각나는 것은 제 고민과 생각들을 날 것 그대로 여쭤보고 의견도 듣고, 또 나름대로 반박도 할 수 있는, 조금은 편한 사람이 별로 흔치 않아서입니다.
      
요즘 북한 문제, 정확하게는 북미갈등과 북한 핵실험으로 빚어진 국면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한국의 현안이나 문제들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불편하실 것 같아서 말씀 드릴 생각은 없지만, 북미 갈등과 북핵 문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독일에 계신 선생님도 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 생각되는군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 계실 때도 자주 여쭤보고 의견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 관련 논의 중 선생님이 하시거나 인용하시거나 또 때로는 알 듯 모를 듯 던지신 말씀 중 세가지 정도를 저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너희 좌파들은 북한에 대해 애정이 없다. 그렇지 않냐? 애정은 찬성과 지지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를 접근할 때 똑같은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애정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비판은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아냐?”
   
“요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가 가치와 지향은 나와 정반대이지만 그것이 팩트냐 아니냐의 문제에서는 팩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나오는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고민과 분석과 의미를 조선일보류의 보수반동세력들이 선점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00이라는 스님을 개인적으로 좀 알게 되었는데, 이 스님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들었던 이 양반의 독백같은 말이 여운이 길게 남는다. ‘예전에 나(00)는 북한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보면서 그 원인을 세가지로 생각하였다. 첫째는 미국의 지속적이고 악랄한 봉쇄정책, 둘째 유례없는 자연재해, 세째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의 비효율성과 내적 문제점, 이렇게 세가지로 원인 진단을 하였고 그 비중의 순위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첫째와 셋째의 순위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발언하더라. 동의 여부를 떠나서 여운이 남는다”
      
이것이 선생님과의 수많은 대화 중에서 남는 북한과 관련한 세가지 대화의 장면입니다. 물론 때와 장소는 각기 달랐고, 그 의미와 맥락도 달랐지만 제 기억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들입니다. 물론 저 또한 때로는 반박을, 때로는 공감의 의견을 전했지만 2000년을 전후한 그 때의 고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 중 가장 아픈 말이 그 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너희 좌파는 북한에 대한 애정이 있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북한 핵실험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보면서 많은 고민이 됩니다. 요지는 두가지입니다. 북한을 압박하고 붕괴시키려는 미국, 아니 미국이 이끌고 있는 대북 적대동맹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과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을 어떻게 봐야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요즘 민주노동당 당 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 갈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긴장과 갈등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강한 반발과 핵실험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유발한 원인이 미국과 친미국가들의 대북 적대동맹정책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 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북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제 중단, 대북제제에 동참하려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미국에게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일부, 아니 자민통 진영의 견해에 대해서 저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전후 배경을 생략하고 저의 핵심적인 고민과 생각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반핵과 반전 반제국주의의 가치가 때에 따라서는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이거나 그 중요성의 비중이 적절하게 분배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정한 시기에 어떠한 가치와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인가의 문제(반핵이냐 반전이냐)는 전술의 문제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전 반핵 반제의 지향과 정신을 바꾸는 문제는 정체성과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문제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대중적 실천은 반핵이 아니라 반전의 기치를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대중을 대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당연히 대중을 설득하는 순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의 확인 -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는 진보정당으로서 핵무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 그런데 도대체 왜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강행했나 - 50년이 넘게 지속되고 강화되어 온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 적대정책으로 북한의 개혁도 생존도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극단적 조치를 낳았다 - 그러면 북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비핵화)는 미국의 대북봉쇄정책 대북적대정책이 해소되어야 한다 - 그럴 때만 북핵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이라는 파국적인 상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순서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핵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현시기 반핵을 제1의 실천적 슬로건을 드는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당의 가치를 확인하는 문제인 동시에 ‘대중 설득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치판단과 입장표명도 없이, 모든 것이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라는 논리는 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무능하고 어이없는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핵실험이 있기 전과 후의 문제에 정세적으로 어떠한 질적 변화도 없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북한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언급도 인정할 수 없다는 광신적 소아병적 태도입니다.
   
오히려 범청학련의 태도는 전혀 동의할 수 없어도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비판해야 할 조치가 아니라 미국제국주의를 타격하고 한반도의 미국지배력을 분쇄할 수 있는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조치라는 것이죠. 당연히 비판과 유감의 대상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옹호해야 할 문제인 것이죠. 물론 제가 이 논지에 전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당 내 자민통 세력은 심정적으로는 이 마음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아니면 북한이라는 성역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유치한 심리일 뿐입니다.    
   
둘째 자위권의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의 국가로서 북한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적국의 군사적 침략에 대해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핵을 자위적 군사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세계 진보세력이 공통으로 반핵을, 모든 군사적 행동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핵을 군사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지만 핵전쟁은 정치의 연장이 결코 아닙니다. 인류에 대한 파괴이자 저주일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우리가 적극 고무 찬양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침략과 탄압, 말살정책이 극단적이고 이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절박성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정부가 이스라엘의 핵에 맞서는 핵무장을 추진한다면(물론 현재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동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판되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미국과 노무현 정권은 평택이라는 평화의 터를 미국의 동아시아 전쟁기지 침략기지로 만들려 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이에 견결히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평택이라는 평화를 반평화세력 전쟁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는 결연하고 단호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자위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 자위력은 대중투쟁과 대중의 지지여론입니다. 때로는 소박한 자위력으로 대나무 작대기로 맞서기도 하고, 격렬한 몸싸움으로 맞서기도 하고, 인권활동가들이 망루에 몸을 묶고 결사투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의 자위력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군대와 경찰의 거대한 물리력 앞에 무너지거나 짓밟히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위력이라는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즉 물리적 수단이나 방법에 집착한다면 화염병과 쇠파이프 아니 그보다 더한 자위적 무장력으로 버틴다면 우리는 더 오래 더 격렬하게 싸우면서 버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올바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판단을 우리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록 저 거대한 무장력,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의 힘에 맞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평화는 비타협적이고 단호한 자세와 투쟁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비타협과 단호함은 ‘투쟁수단’(화염병 등)의 비타협과 단호함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이게 뭘 의미합니까? 
            
셋째 그러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그럼 당신은 북한이 핵실험 말고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핵실험과 핵무장을 추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하고 위기의식을 가진 북한의 처지를 당신은 이해하고 있느냐? 관념적인 이상주의라는 진단이거나 북한의 핵실험이 세계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타격하는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상물림이라는 고약한 진단이 내려집니다.
          
가장 어이없는 태도이지요. 너는 그 동안 뭘 했느냐? 하이텍 5년 하이닉스 650일 코오롱 600일 기륭 400일의 장기투쟁 그리고 비정규 개악안이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이시기에 비정규 투쟁을 위해 너는 무엇을 했느냐? 평택 투쟁이 2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지율스님이 100일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 성람재단비리 척결, 활동보조인제도 쟁취 등을 위해 수많은 장애인들이 처절하게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 열사들이 몸에 불을 지르며 세상에 절규하고 있을 때 너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미국의 말살정책에 맞서 북한이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이런 질문이지요.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가 이 사회를 변혁하고 바꾸어내기 위한 활동가로서 성찰적으로 던져야 하고 항상 경계의 자세로서 되새겨야 하는 질문입니다. 부끄러운 활동가로 살지 않기 위해 우리 민중들과 민족의 과제를 늘 실천하고 고민하는 계로 삼아야 할 화두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는 노동문제에 열심히 한 것이 없으니까 닥쳐라, 너는 환경문제에 관심도 없으니까 닥쳐라, 네가 언제 장애인 투쟁에 참여라도 했느냐 입 닥쳐라, 너는 민족문제에 실천활동이 부족하니까 비판하지 말고 입닥치고 있어라. 이런 식이 되면 안되잖습니까?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포섭되어가고 있다는 지적과 비판들을 많이 합니다. 활동가들도 그러하고 연구자들도 그러한 시각에서 발언을 많이 하는 것을 접합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로 퇴행적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미국의 세계체제에 포섭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저항이 기층에서부터 형성되고 있는데, 너는 중국이 자본주의이니 아니니 하는 책상물림식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식의 비판은 아무런 생산적 발전적 비판이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습니까. 물론 이 비유에 대한 반응도 예상이 됩니다. 중국과 북한이 같냐는 식이겠죠. 북한은 우리 민족이고, 또 북한은 중국처럼 실패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을 겁니다. 씁쓸함만 깊어질 것 같습니다. 
       
.. 짧은 안부 연락만 드리려다 오늘(10월 16일 월요일 당 중앙위원회 다음날입니다)의 채 해결되지 않은 고민덩어리를 선생님에게 하소연하듯이 함께 담아서 보내게 되네요.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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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6 19:41 2006/10/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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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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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렇게 보내다니...

너무 허무하다.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난후 스스로에게 자책한다.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긴 한데,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이렇게 집에서 어영부영하는 나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실 텐데...

  

보고서를 쓰고, 이런저런 글을 쓰다가, 그리고 책을 읽다가 이 길이 과연 맞는지 회의하게 된다. 도대체 밀려서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내가 잘 할 줄 아는 게 무엇인지 몰라서 이렇게 되었는데,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 같다.

 

왜 집중을 하지 못할까.

주기적으로 오는 슬럼프라고 생각하기엔 나에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듯하다.

그럼 어떻게?

 

그냥 짜증만 난다.

블로그에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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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5 20:04 2006/10/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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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아줌마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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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다보니 티브이를 통해 별 것을 다 보게 된다. 

 

평소에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을 보다가 예전 선풍기 아줌마로 알려졌던 이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선풍기아줌마' 웃음을 찾다 (인터넷 한겨레, 2005.04.08(금) 13:27)

 

'선풍기 아줌마' 가수 데뷔 눈앞…음반 녹음 시작 ([고뉴스] 2006-10-12 10:29, 장태용 기자)

 

확실히 이전보다는 얼굴 윤곽이 보인다. 게다가 노래까지...

마치 무엇인가를 뒤집어쓴 듯한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듯하여 다행이다.

 

선풍기 아줌마는 불법성형시술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20여년간 몇 차례의 성형시술하다가 정신분열증 끝에 스스로 콩기름과 파라핀 등을 얼굴에 주입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데, 요즘 거의 대부분 얼굴을 뜯어고친다는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물론 이는 아름다워지려는 개인의 욕망 탓만은 아니다. 아무리 미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하지만, 태생적인 것도 있긴 할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렇더라도 몸을 혹사하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어떻게해서든지 얼굴을 뜯어고치려는 세태는 기존의 사회문화가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것보다 성형을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편익을 가져오기에 이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긴 하지만, 항상 의식하고 살아가는 게 그냥 무시하고 이에 편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무튼 선풍기 아줌마가 과거의 불행을 털어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잘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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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5 17:58 2006/10/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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