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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서자 (장석준, <전진> 창간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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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조합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는 장석준 동지의 글이다. <전진> 창간2호에 실린 이 글의 내용에 대해 많은 동지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사실 조합주의의 문제는 단지 <전진>만의 문제는 아니며, 현장파, 국민파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노동운동 조직이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전진>이 한계는 있으나 그래도 이 조합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서자
 

장석준 (서울 회원)

 
1. 그렇소, 우리는 아직 사회주의자가 아니요?!
- 직선제 문제에서 드러난 <전진>의 오늘
  
<전진>의 길지 않은 역사를 새삼 돌이켜보자. <전진>은 당 활동가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당운동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게 그 만남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진>의 등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당권을 잃은’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들과 ‘중앙에서 밀려난’ 옛 민주노총 중앙파들이 뭉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한 마디로 당과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모인 조직이라는 것. 간부 중심의 조직이라면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조직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주의적 정치 활동을 펼쳐 보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질시와 의혹을 한 몸에 받으며 출범했다.
  
우리 자신 항상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2005년 1기 활동을 평가할 때도 이 점을 <전진>이 극복해야 할 주된 한계로 지목했다. 작년 말 비정규직 입법 수정안(기간제 사유제한 조항의 수정 문제)을 둘러싼 논쟁에서 의견그룹다운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상당히 혹독한 자기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의 자기비판으로 모든 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을 놓고 다시 한 번 <전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민주노총 직선제 문제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조합원 직선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지금 노동운동 혁신의 주된 쟁점인가 등등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직선제가 마냥 좋은 것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사 반대해야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좋은 처방이 될 수도 있고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를 놓고 보인 <전진>의 행보가 영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작년 말 민주노총 지도부 보궐선거 때 <전진>이 한 축을 맡은 김창근·이경수 후보 조는 직선제 찬성 입장을 천명했다. 비록 <전진> 외의 다른 그룹·경향들과 함께 선거연합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대중에게 직선제 찬성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었다. 어떤 심오한 논리로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 민주노총 혁신안을 둘러싸고 직선제가 다시 쟁점이 되자 <전진>은 이 문제를 사실상 원점부터 재논의했다.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물론 직선제에 대한 우리 내부의 찬반 의견은 모두 나름의 진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작년 보궐선거 때 이미 민주노총 70만 조합원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제 와서 다시 갑론을박하다니, 이건 뭔가 아니었다.
  
마치 보궐 선거 시기의 <전진>과 최근의 <전진>이 서로 대립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둘 중의 어느 하나는 분명 잘못이다. 선거 때 공약을 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 하는 게 잘못이든가, 아니면 선거 전술만 염두에 둔 채 앞 뒤 안 재고 섣부른 공약을 내걸었던 게 잘못이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 이면에는 <전진>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전진> 회원들이 여전히 사회주의 조직의 활동가가 노동조합 간부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자. 조직 내에 이견이 잠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선거 때 그렇게 쉽게 직선제 주장에 동조한 것은 결국 당장의 선거 결과만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일단 총연맹 지도부를 교체하는 게 중요하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제 직선제가 막상 조직 현안으로 닥치자 이번에는 <전진> 내부에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들이 돌출했다. 작년에 <전진>이 취한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속한 연맹의 상황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모 연맹의 회원 동지들 사이에서는 직선제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 다수인가 하면 다른 연맹에 속한 회원 동지들은 대부분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1년 전에는 총연맹 집권을 중심에 놓았고 1년 후에는 각 연맹 상황을 중심에 놓았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의 당면 현실이 주된 판단 준거가 됐다는 점은 똑같다. <전진>이란 조직의 정치적 책임성, <전진>이 내건 이념과 노선, 그리고 그러한 이념·노선에 바탕한 노동운동의 장기 전망 등은 논란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사실 노동운동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당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 쪽에서는 작년 비정규직법 수정안 논란 때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었다.
  
말하자면, 지금 <전진> 회원 대부분은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그게 대중정당이든 대중조직이든)의 관성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아직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여전히, 그러길 꿈꾸는 당 간부, 노동조합 간부들일 뿐이다.
 
2. 사회주의 정파와 노동조합주의 정파
  
2-1. 컬러 유인물의 아련한 추억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교과서로 여기던 코민테른의 공식들도 지금 돌아보면 시대적 한계가 뚜렷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사회주의 정파 활동의 경험이 있다.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한 차례 몸으로 확인한 바 있다.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전진>이나 <노동자의 힘>보다 훨씬 큰 규모의 비합법 조직들이 노동운동에서 맹활약을 했었다. 인민노련 등에서 출발해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모인 흐름도 있었고, 그 이름도 유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도 있었다. 그 외에도 숱한 조직과 서클들이 있었다.
   
<전진> 회원들 중에도 이런 조직 활동을 경험한 분들이 많이 있다. 필자도 가두 투쟁 때마다 예외 없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서 생경한 말들을 부르짖다가 컬러 유인물을 공중에 흩뿌리고는 사라지던 도깨비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지금보다 확실히 나았던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학습 분위기였다. 가방 안에 ‘불그스름한’ 사회과학 서적 한 권만 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던 시절이었음에도 버젓이 ‘사회주의’이니 ‘혁명’이니 내건 비합법 잡지들이 나돌았고 그런 걸 함께 읽는 학습 모임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노동자대학’이란 간판을 내걸고 맑스주의 이론을 강의하는 곳까지 생겼다. 이 방면에서 최소한의 학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단위 노조 간부 노릇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노동해방’의 이상에 대한 집단적인 공감과 고민, 긴장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뿌듯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당(혹은 당 건설의 주역을 자임하는 비합법 조직들)과 대중을 이어주는 ‘전달 벨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과거 코민테른의 전통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자동차에서 엔진의 동력을 바퀴에 이어주는 게 바로 전달 벨트다. 그처럼 노동조합은 당 혹은 정치조직의 방침을 실현하는 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는 비합법 조직 회원들이 노동조합의 현 상태를 무시하거나 그 발전 수준을 넘어서는 조직 방침 때문에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은 사회주의 조직 활동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요즘만 ‘정파’가 문제된 게 아니었다. 이때도 ‘정파’가 입방아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 때도 “정파들 때문에 대중조직이 제대로 안 된다”는 볼 멘 소리들이 있었다. 이때의 정파는 사회주의 정파이고 지금의 정파는 대개 노동조합주의 정파라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2-2.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는 한 뿌리다?
         
어찌 보면 90년대는 그 반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계기로 비합법 사회주의 조직들이 하나 둘 지리멸렬하게 사라지는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전노대를 거쳐 민주노총으로 세를 불려갔다. 그러면서 ‘대중조직 중심주의’라고나 해야 할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났다. 87년 이후 등장한 민주노조들을 어떤 식으로 교통 정리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조직들이 사라지고 난 빈자리를 이러저러한 노동운동 연구소들이 메웠다.
    
지금도 이어지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의 뿌리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무렵, 9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한때 이 세 계파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오로지 기존의 민주노조, 즉 현재의 조직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노동운동을 바라보았다는 점에서는 사실 일치하는 면이 많았다. 즉, 노동조합주의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는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이었다.
  
그럼, 이전의 사회주의 정파와 90년대의 노동조합주의 정파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들은 무엇인가?
    
첫째, 사회주의 정파들은 한국 사회 전반의 혁명을 중심에 놓았고 노동운동도 이 혁명운동의 일부로 바라봤다. 반면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은 철저하게 노동조합운동의 전망을 중심에 뒀다. ‘노사정 협상’과 ‘산별노조’와 ‘총파업’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것도 사회 전체의 ‘변혁’과는 거리가 있었다. 
  
둘째, 사회주의 정파들의 경우는 자신들의 혁명노선에 바탕을 둔 정치방침이 먼저 있고 여기에서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들을 뽑아내는 식이었다. 굳이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안보다는 그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그려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은 대개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현장 활동가로 구성되었고, 이들이 연맹이나 현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모여 그 정파의 성향이나 정책을 만들어냈다. 노동조합운동 외부보다는 그 내부의 경험과 전망이 중심을 이뤘다.
    
<전진>의 한 뿌리인 중앙파도 이런 흐름의 일부였다. 중앙파는 노동조합주의 정파 중의 하나이면서도 국민파, 현장파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였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전망으로서 산별노조 건설을 강조했다. 이것은 적어도 노동조합의 조직 형식 문제에 관한 한 기존 노조운동과 선을 긋고 새롭게 발전할 것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별노조를 ‘건설’하기보다는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 지부로 ‘전환’을 결의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따라서 산별노조를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운동과의 단절보다는 연속에 더 무게를 두는 결과가 나타났다.
   
둘째, 이러한 입장은 중앙파의 인적 구성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중앙파에는 국민파에 비해 몇몇 대형 연맹(금속, 공공 등)의 활동가들이 많았고, 현장파에 비해 연맹 간부들이 많았다.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주력군을 이루는 연맹의 간부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점에서는 가장 넓은 시야와 긴 안목을 자랑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인 연맹의 간부라는 점에서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노조운동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대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다시 막대를 구부리자, 반대 방향으로
  
90년대식의 노동조합주의 정파들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것 자체만으로 옳다, 그르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세의 변화에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한 걸음 전진(아니 전진이라기보다는 일단 버티기?), 두 걸음 후퇴’를 거듭해왔다. 특히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이것들이 모두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들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첫째, 이념적 수세다. 신자유주의는 이념 차원의 공세들을 퍼붓는데 노동조합은 실리주의의 틀 안에서 방어전에 매달릴 뿐이다. 그런 가운데 민주노조운동의 그나마 긍정적인 전통들, 즉 투쟁과 연대의 가치가 훼손되었다.
  
둘째, 노동‘조합’과 노동‘계급’의 괴리다. 기업별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 노동계급의 극히 일부만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노동계급은 더욱더 파편화됐다.
  
3저 호황 직후의 몇 년 동안은 잘 조직된 대기업 부문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에도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다. 또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폭력 탄압 덕분(?)에 최소한 지역 수준에서는 민주노조들 사이의 연대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 부문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확보가 다른 노동자들(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에게 ‘남의 일’로만 다가오는 형편이다. 자본과 보수 세력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노동계급의 각 분파들 사이의 균열과 질시, 반목을 부추긴다. 노태우 정권 때 같은 전반적인 폭력 탄압도 없는 상황에서(대신 특정 부문에 대해 잘 계획된 집중 탄압이 자행된다) 계급연대는 이제 보다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노동조합주의 정파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서는 이 모든 밀물들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의 변혁과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신자유주의의 이념 공세에 반격의 일타를 날릴 수 없다. 또한 기존 노조 조직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노동‘계급’의 운동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한 마디로 노동조합주의 정파는 그 역사적 시효가 다 됐다. 이제는 다시 한 번 막대를 반대 방향으로 구부려야 할 때다. 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다시금 사회주의적 정파 활동의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물론 과거 비합법 조직 시대의 향수를 되살리자는 말은 아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시대가 변했다. 하지만 좀 과도하리만치 90년대식 노동조합주의 정파 활동의 반대쪽을 지향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점에서 <전진>의 출발은 확실히 옳았다.
  
그러나 그 올바름을 우린 아직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몸은 여전히 당권파, 중앙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머리는 사회주의를 꿈꾸지만 몸은 노동조합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게 지금 <전진>의 현실이다.
  
3. 노동조합운동의 ‘안’에서 그 ‘바깥’이 되자 
    
다시 사회주의적 조직 활동을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옛날처럼 노동조합운동의 바깥에서 그것을 ‘지도’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과거에도 이게 제대로 먹혔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안에만 틀어박혀서는 노동운동 자체가 죽게 생겼다. 21세기의 사회주의 정파 활동이 과거의 변증법적 지양이라면, 우리가 취해야 할 새로운 방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조합운동의 ‘안’에서 그 ‘바깥’이 되자!
  
‘바깥’이 되자니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첫째, 항상 눈을 ‘바깥’으로 향하자. 현재의 노동조합, 그러니까 지금 조직돼 있는 노동자들의 ‘바깥’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1,400만 중에서 100만 조금 넘는 수를 제외한 천만 이상의 미조직 노동자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을 말하는 것은 자기기만이거나 허장성세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은 절대 다수가 몸도, 마음도 모래알과 같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노동계급은 여전히 ‘未-來의’(즉, 아직 오지 않은) 존재인 셈이다.
 
이제 우리 이 함정에서 벗어나자. 현재의 조합원만이 아니라 미래의 그 노동계급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실천을 기획하자. 우선 새로운 장기 전략부터 짜보자. 금속산별이 드디어 꼴을 갖추었으니 ‘중앙파’의 프로젝트(기업별노조의 산별 전환)는 일단 한 매듭을 지은 셈이다. 이제는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해보자.
  
필자는 여기서 <전진> 노동위원회의 당면 과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민주노총의 급박한 현안들에 <전진>의 입장을 마련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노동계급의 형성을 위해 노동조합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전략을 다듬는 작업에 착수하자. 이것은 몇몇 교수들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전진> 회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필생의 과제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마땅히 당 쪽 회원들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둘째, 한 동안 ‘바깥’으로 밀려날 각오까지도 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광야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래된 요새에 무작정 버티고만 있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요새만 붙들고 있다면 그 요새가 무너졌을 때 아군은 전멸하고 만다. 병력을 빼서 새로운 진지들을 구축하고 외곽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유격전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다시 전면전에 나설 아군의 힘을 비축할 수도 있다.
     
87년 이후의 기업 단위 민주노조는 우리의 요새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조합원들의 정서가 이러저러하다는 이유로 할 일을 늦추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가 노동조합의 간부이기만 하다면 그런 알리바이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을 해나가기로 결의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조합원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들(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임금연대전략이나 조세개혁을 전제로 한 소득연대전략 같은 것)을 가감 없이 해야 한다. 그게 설령 당장은 공조직의 방침이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줄기차게 우리의 주장을 떠들어야 한다.
  
이것 때문에 당분간은 소수 세력으로 몰릴 수도 있다. 기존의 노동조합 구조에서 주변으로 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남보다 앞장서서 미래를 개척하려면 이렇게 야당이 될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기업별노조의 관행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다가 야당으로 밀리는 것보다는 노동운동의 미래를 과감히 대변하다가 명예롭게 야당의 길을 선택하는 게 낫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또 다른 진지가 있다. 대중정당, 민주노동당이 있다. 노조 쪽에서 일정 기간 질서 있는 퇴각이 필요하더라도 그저 광야로 내몰리기만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당이라는 제2진지를 발판으로 충분히 새로운 반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 활동가들도 그렇고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그렇고 이제까지 이런 가능성을 활용할 생각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들면, 학습운동이 있다. 90년대에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고리 중 하나가 바로 학습과 토론의 분위기다. <전진>이 정말 진지하게 사회주의 의견그룹 활동을 지향한다면, 무엇보다도 이 이념적 학습·토론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당장 평조합원 수준에서부터 이것을 시도하기 힘들다면, 아주 좋은 우회로가 있다. 민주노동당이다. 당을 그야말로 선진 노동자들(너무 고풍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표현하겠다)의 정치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몇 가지 실마리 정도를 제시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전진> 회원으로서 자신감부터 되찾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90년대부터 하나의 이상(산별노조 건설)을 부여잡고 그것을 관철시켜나간 경험을 갖고 있다. 90년대에 제시된 목표치 중에 그래도 끝내 제 꼴을 갖춘 것은 이것뿐 아닌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제 그 경험을 새로운 이상을 향해 쏟아붓길 결의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지혜와 열의를 모으면 조합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우리 세대의 공통 목표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 일을 <전진>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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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1 03:13 2006/10/0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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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혁신'보다 '전진의 혁신'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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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9월말에는<전진> 창간2호가 발간되었다. 여기에서는 특집으로 '정치조직의 역할과 활동'이라는 주제 아래 3개의 글이 쓰여졌다.

 

다른 의견그룹들을 비판하기 전에 그 비판의 칼날을 전진 내부로 돌린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이는 창간호가 약간 밋밋했다는 평가로 인해 이번 호에 본격적으로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뤄보자는 기관지위원들의 공감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이런 기획이 필요하다고 '노래'를 불렀던 나의 바람이 많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나도 이에 관한 글을 하나 써야했다. 하지만 평소에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으나, 막상 쓰려고 보니 제대로 정리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횡설수설에다 생각한 것보다 지나치게 늘어졌다. 좀더 간결했으면 좋으련만...

 

기관지를 받아본 동지들이 갈수록 기관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부비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고...

  

우선 내가 썼던 글을 올린다. 글 중에 나오는 말이 기관지 표제로 들어갔다.

'<전진>은 전진하고 있는가' 



'당의 혁신'보다 '전진의 혁신'이 우선이다
   
 1. <전진>은 전진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전진>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전진>의 내부 문제들을 기관지에 공개해도 되는지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았다. 또한 내가 <전진>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어느 정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글을 쓰는지 의아해하는 동지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전진> 회원임을 공개하면서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지역위 내에서 활동했었고, 정파명부제를 주장했었기에 당 중앙위원으로 출마하면서도 내 자신이 <전진> 회원임을 명시했었다. 하지만 주위의 평가는 "당신, 전진회원 맞냐"는 것이었다. <전진> 내에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나보다 <전진> 회원이 아닌 당원들이 더 먼저 소식을 알거나,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표명하는 의견이 <전진>이 표방하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과 다른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기에,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왜 그러한지 고민을 했었지만, 이를 다른 동지들과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한 <전진> 회원이 아닐 때에는 대외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동지들이 <전진> 회원이 된 다음부터는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발언과 활동이 <전진>의 활동방향에 맞는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하여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더이상 나의 문제의식을 동지들과 공유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전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진> 자체도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진'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재생산도 좋고, 회원확대도 좋지만, 현 상태를 유지라도 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과연 <전진>은 전진하고 있는지. 창립 당시, 그리고 1주년 당시와 비교하여 <전진>이 품었던 문제의식은 당과 노조운동 내에 얼마나 확산되었는가. 창립 당시보다 회원 수는 얼마나 늘어났는가. 우리들은 얼마나 교육되고 단련되고 있는가. <전진>은 과연 '(준)' 자를 뗄 정도의 실력을 꾸준히 기르고 있는가. 우리들은 과연 활동가인가.
    
<전진>의 전반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서인지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기 어렵다. 아마 대부분의 동지들이 이와 비슷한 답답함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정치조직에 대한 판단근거를 찾지 못하고, 제대로 판단내리지 못하는 것, 이것이 <전진>의 문제이다.
    
2. 정보공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우리들이 노조에서, 지역위원회에서 엄청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진>은 이런 말을 밖으로 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정보의 공개임에도 불구하고, <전진>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원들조차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니 외부에서 <전진>을 제대로 알 리 만무하다. 주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위로부터 당면 투쟁에 대한 지침이나 현 상황에 대한 전달만 있었을 뿐 이것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결정되었는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공유된 적은 별로 없었다. 이에 반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없었고, 있더라도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주요한 의사결정의 논의도 공개된 논의나 이해과정이 생략된 채 상임위원들이나 핵심 활동을 하는 몇몇 활동가들의 이빨이 맞춰지면 그게 전진의 방침인 것처럼 공개의 장으로 흘러나왔다"라는 어느 동지의 불만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회원이라면 누구나 <전진>이 가진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자신이 <전진>이라는 조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전교조 부산지부와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산지부에 대한 비상식적인 압수수색이 새벽에 있었다. 전국회의의 경우 전교조 소속 일부 교사가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에서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만큼 참여정부시대에도 보안의식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전진>도 나름대로 치밀한 보안을 유지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 보안이 불필요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사무실도 공개되어 있고, 몇몇 회의의 개최일시도 다 공개되어 있긴 하지만, 그 뿐이다. 지난 당직선거 시기 주요한 정보는 각 지부의 지부장급에서만 유통이 되었고, 그 아래 회원들까지는 내려오지 않았다. 물론 그럴 여유가 없었음을 이해하지만, 바로 그런 것이 선거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회원들의 신상을 포함하여 그 밖의 것들은 대부분 성원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 홈페이지에서도 자료가 어디에 있으니 찾아봐라는 식이 아니라, 논의를 위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논쟁의 지점들이 확인되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당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회원들이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이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조직을 통해 직접 알지 못한다. 당원들이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 활동이나 당내 주요 소식을 연합뉴스나 레디앙, 민중의 소리를 통해 먼저 파악하게 되거나 뒷풀이의 뒷담화를 통해 알게 되는 민주노동당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물론 첩보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회원들에게도 보안으로 하는데도, 일반 당원들이나 대다수 회원들만 모를 뿐 외부 의견그룹의 다른 활동가들이 아는 경우가 많다. 올해 당직선거에서 <전진> 내의 당직후보 추천과정에서 <전진>이 아닌 다른 의견그룹의 인물을 같은 회원으로 알고 추천한 동지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때도 되지 않았나. 가히 회원들에게는 닫혀 있고, 밖으로 열린 조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회원들은 자신이 단지 동원대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된다. 특히 당내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목소리를 높여온 당 활동가들의 경우 당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전진>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좌절감이 심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 성원들의 소극성도 이에 한몫을 한다 - 내부에서마저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다보니 성원들 사이의 토론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도부 또한 이를 조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언행이 혹시나 조직의 기본 노선이나 정책과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움츠리게 되고, 결국 발언하는 사람은 거리낄 것이 없는 몇몇 성원들과 상임위원들뿐이다. 이러니 어떻게 책임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단지 신중함의 표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다. 감춘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3. 의사소통은 잘 되고 있는가
       
당과 노조에서 자신이 <전진> 회원임을 내걸고 활동하는 동지들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동지들은 자신이 <전진>회원임을 밝히면 오히려 연대단위의 활동가들에게 오해를 살 우려가 있고, 평당원들에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소속을 밝히기 꺼려한다. <전진> 회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각자 자신의 활동에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회원확장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럴 바엔 왜 회원이 되었는지 회의가 들 정도이다.
  
과연 회원들 사이에 소통은 되고 있는가. <전진> 특유의 정족수 개념이 없는 회의 때문인지 지부, 지회의 모임에는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 중앙위원회마저 참여율이 낮은데, 지부, 지회는 어쩌랴 싶다. 1/3 정도만이라도 참여하면 대단한 수준이다. 참여하더라도 회의를 통해 얻을 것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회의에서 회원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이 토론꺼리로 올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고, 조직 내외의 실속 있는 논의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여전히 민감한 사항은 뒷풀이 자리에서의 뒷담화나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사적으로 해결하곤 한다. 중앙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그 통로를 잘 찾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풀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냥 ‘잘되겠지’하면서 속으로 묻어두거나 개인 차원에서 풀리지 않으면 탈퇴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제기는 사라져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현장에서의 토론만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의 토론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장토론의 보완수단으로 홈페이지나 기관지가 소통수단의 하나로서 적극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이는 사업집행의 효율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회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관지는 발간된 지 얼마되지 않았고, <전진>의 성원들이 온라인에 능하지 않은 탓인지 홈페이지의 회원 접속률이 그리 높지 않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외부적으로는 <전진>이 활동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을 품게 만들고, 내부적으로는 몇몇 글쓰는 이들만의 투덜거림이 있을 뿐이다. 대외적으로 <전진>의 성원으로 알려진 '장'급 회원들은 대부분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으며, 자신의 활동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바쁘기 때문에 접속할 시간이 없다면서 이를 당연시한다.
      
<전진> 회원 중에 바쁘지 않은 이가 있는가. 생계문제 해결이 우선인 경우도 있고, 집안 문제로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각자 자신의 대중조직에서 나름의 활동을 한다. 모두다 어려운 시간을 쪼개서 <전진> 활동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선 안된다.
  
400 여명이 조금 넘는 <전진>의 회원들은 소통은 둘째치고라도 우리들끼리 얼마나 알고 지내는가. 이는 단지 지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인가. 노조활동가인 <전진>회원과 당활동가인 <전진> 회원이 연대사업을 하면서 서로 <전진>의 회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조직이었다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을 정도이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으로 <전진>의 주요활동을 하는 동지들의 경우, 이를테면 <전진>의 중앙위원급들까지는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현재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회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의 지도부를 형성하는 상임위원 동지들이 이전에 무슨 활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한 조직 내에서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무슨 사업을 하려고 해도 중앙에 있는 몇몇 사람의 고민에 불과하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이들에게만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쓸데없는 고민은 아니다. 문제는 사람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원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 조직 내에 어떤 이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적절한 인력배치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는 누가 회원으로 가입하려고 하는지를 회원들이 알았으면 한다. 적어도 앞으로 가입하는 회원들이 기존회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계기를 통해 가입하게 되었는지, <전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지부 총회에서든지 홈페이지를 통해서든지 마련하도록 하자. 이것은 사상적,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전진>이 연줄 등으로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전진>의 기본노선과 정책방향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도 시급하다.
   
의견수렴 및 의사소통의 유력한 수단으로 온라인과 기관지를 적극 이용해야 할 때이다. 무슨 선거가 있을 때에는 홈페이지도 만들고, 블로그도 제작하고, 메신저와 이메일 공개 등 여러가지 소통수단을 마련하려고 애쓰면서 왜 회원 간에는 그러한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는가. 제한되고 일방적인 문자메시지 소통 대신 기관지와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자. 물론 이러한 것조차 힘든 상황에 있는 회원들의 경우에는 그 전달벨트로서 상임위원들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4. 전진의 분권화를 미루지 말자
   
< 전진>도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운동풍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정보공개 및 의사소통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진>의 활동과 실천이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바로 그 파생물의 하나이다. 노동위원회, 기관지위원회, 당위원회 등의 각종 위원회조직 뿐만 아니라 여성사업팀, 대안사회팀 등의 내부조직이 대부분 수도권 회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논의 또한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된다. 제2기 지도부를 구성할 당시 상임위원으로 추천된 모 동지의 경우에도 사업장이 지방이라는 것을 이유로 고사했던 것으로 안다.
   
물론 당은 물론 관련된 활동의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적시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완화하기 위해 웬만한 회의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하려고 노력하는 점 또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실을 핑계대면서 이런 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나. 현재와 같은 집행 및 실천구조로는 지방 회원들의 참여를 제고하기 어렵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회원들이 단지 동원만 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지방의 동지들은 <전진>의 활동에 적극적이고 싶어도 소외되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조직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전진>의 회원들은 집행의 책임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분담해야 하고, 각종 활동의 기획단계에 접근할 수 있으며, 교육과 훈련을 공유하여 모두가 단련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총회나 정치대회를 중부권에서 하는 것으로 무마되어선 안된다.
  
5. 조직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전진 내부에서는 이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은 항상 무난하게 굴러간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풍토, 그것이 <전진>의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직 내부에서의 공개적인 상호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전분열’이라고 보아 이를 되도록 억압하고자 한다.
       
실제 노동과 관련된 사안을 제외하고, 아니 거의 모든 사안에 있어서 각 회원들은 명확하게 <전진>의 입장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가. 정치조직의 성원이라면 당내외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전진> 명의로 성명서를 내지 않을지라도 이를 정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전진>은 입장부재의 정치조직이 되어선 안된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임원 및 대의원 직선제 논의나, 민주노동당의 부문할당제 논의의 경우 얼마나 의견개진이 이루어졌던가. 특히 후자의 경우 <전진>은 2005년 정치대회 때 소수자운동을 배치할 정도로 나름대로 신경을 썼으면서도 소수자운동진영으로부터는 자민통진영만큼 개념없는 조직으로 찍혀있다. 아마 아무리 조직이 확대된다손 치더라도 소수자운동진영의 <전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거쳐지려면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이것은 전진 성원중에 소수자인지적 감수성을 가진 몇 명이 힘쓴다고 될 일이 아니며, 조직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직선제 문제에 있어서도 <전진> 내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였으면서 민주노총 위원장 보궐선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직선제 입장으로 선거에 임하였다. 이는 선거상황에 매몰된 또다른 진영논리가 아닌가. <전진> 회원들이 당시 쟁점으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는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조희만 의장은 “전진에 신진세력이 없는 것, 나이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한 바 있다.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난 총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던 것처럼, 알게 모르게 나이와 경력을 의식하게 되는 풍토는 동지에 대한 예의일 수는 있지만 조직을 보수화시키는 주범이다. 자신이 신진세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지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나아가 <전진>의 풍토 자체가 창의력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동지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회원확대를 하려고 해도, 연줄과 인맥에 따른 것일 뿐, <전진>이 표방하는 내용이나 실천에 공감하여 가입한 동지들이 최근에는 뜸하다는 사실을 쉽게 넘겨서는 안된다. <전진>이 주위의 동지들에게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게 보이는 현실에 대해 더 천작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감수성을 따라 잡으면서도 한발 앞서서 진보적인 의제, 발칙한 상상력을 제시하여 우리의 비전을 풍부하게 정립해야 한다.
   
<전진> 소속으로 당과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은 과연 제대로 통제되고 있는지 여부 또한 빼먹어서는 안될 문제이다. 의원단에 대한 당의 통제를 주장했던 <전진>의 입장에서 보면, 당과 노조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회원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들이 하는 결정이나 실천이 과연 <전진>이 표방하는 방향성과 일치하는지를 상시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조직이 통제하지 못하는 회원은 조직에 해악적이다.
  
2005년 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상당수의 <전진> 성원이 비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민주노총의 경우 대중조직이라고 하지만,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던 동지들이 <전진>의 하려고 하는 내용들을 얼마나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는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활동했는지 평가되지 않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비대위의 경우에도 <전진> 성원들의 주도로 행해졌던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평가는 찬반양론이 엇갈렸고, 이에 대해 조직적인 뒷받침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어떤 측면에서는 <전진>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마저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두고 <전진> 소속 임원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결국은 이를 추인해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공무원노조의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간 것이다. 이에 대한 외부의 성토는 많지만, 내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당과 노조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동지들이 얼마나 힘들게 활동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활동의 자율성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진>이 대중조직에 파견한 형식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한 조직의 동지로서 다른 동지들에게도 진행되는 사항들이 보고되고 논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중조직의 유력한 위치에 있는 회원들이 <전진>을 만들었고, 이들에 의해 <전진>이 좌우된다는 인상을 조직 내외에 준다면, <전진>은 ‘중앙파’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전진>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소리가 민주노총 ‘중앙파’와 당의 ‘당권파’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진>은 ‘각 지역과 다양한 현장단위에 뿌리박은 활동가 조직으로서, 민주노동당 강령정신을 더욱 발전시키고 현실운동에서 실현시켜 나가는 정치조직이며, 당과 대중운동의 활동방향과 전망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의견그룹’으로서 출범하였다고 선언하였지만, 외부적으로는 몇몇 대형 연맹조직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의 연맹간부들과 민주노동당의 건설 초기에 당료를 형성했던 화요모임을 비롯한 젊은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을 띄웠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구성상의 특징이 긴 안목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전체 한국사회 변혁의 방향을 고민하는 폭넓은 시야를 가졌다는 장점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구체적인 사안들을 처리하고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여 타협적 문화, 상층 중심의 교섭 노력으로 현안을 해결하고자 하며, 실제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현장을 장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사회적 교섭 문제, 임원직선제 문제, 부문할당제 문제 등에 있어서 <전진>이 말하고자 했던 진정성은 항상 훼손되었다. 우리가 좌파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주의적인 조직으로 비춰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부족한 것이 유연함은 아니지 않은가.
   
<전진>이 무능하다고 찍힌 이유 중의 상당부분은 바로 쟁점을 선도하지 못했던 것에 기인한다. 좌파의 정체성 중의 하나가 바로 쟁점을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것인데, <전진>은 정치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보니 단지 선거 때만 움직이는 조직으로 오해되고 있으며, 결론적으로는 타당하나, 한 박자 느린 결정으로 비판을 받곤 한다. 심지어 회원인 김영진 동지의 병역거부에 있어서도 그 의견표명이 늦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거는 선거대로 하면서 이를 위해 전진의 정치활동이 중단되어 버리는 듯한 현상, 이제는 탈피할 때가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선거를 통해 조직을 남기고, 활동가를 남기도록 하자.
   
이러한 비판이 전진의 조합주의적 성향으로 인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면, 이를 털어버리고  이제는 그 문제의식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그 혁신은 NL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전진>만의 활동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당과 노동, 양쪽에 기반이 있다는 장점을 잘 활용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장석준 동지가 말한 것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안’에서 그 ‘바깥’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6. 활동가 사이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
   
<전진>은 공개적으로 이견이 표출되진 않지만, 회원들 사이의 괴리가 존재한다.
   
우선 노조와 당에서 상근하는 활동가와 그렇지 않은 ‘평회원’ 사이의 괴리가 크다. 생계문제로 인해 <전진>의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활동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진>의 활동방향이나 노선에 동의하기 어려워서라기보다 생활과 재정의 여유가 없어서 활동에 소극적인 동지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보니 <전진>의 활동은 몇 차례의 성명서와 함께 소수의 활동가들의 활동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심재옥 동지가 최고위원회에서 육아문제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사상적으로 나태한 지도부라고 하여 논란이 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워크샵, 수련회 일정들을 잡을 때 육아를 담당하는 조건을 당이 고려해야만 한다는 함의는 <전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른 의견그룹보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다고 알려진 <전진>의 경우 육아에서 자유로운 활동가들이 없을 것이며, 누군가의 돌봄노동의 희생 위에서 활동이 행해지게 됨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수련회, 야간회의, 모임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여성 활동가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낮다. 육아의 부담이 조직의 활동에서 소외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상임위원이 선출되지 못한 것도 그냥 덮어두고 갈 문제는 아니다.
     
민중들의 다수는 생계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고용의 불안정성, 실직 위험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과 노조운동에 관심을 가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로 발등에 떨어진 불도 끄지 못하고 있는데... <전진>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뛰어난 활동가라도 생계문제가 걸리면 자신의 활동을 중단하고 일단 생계유지에 목을 걸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전진> 회원들부터 단지 회비만 내고 기관지를 구독하는 페이퍼 회원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에서 조직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어야 한다. 당이 소수의 열성당원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평당원들이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처럼, <전진> 또한 성원들에게 활동가로서의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민중들에게 당에, 노조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당 활동가들과 노조 활동가 사이의 괴리이다. <전진> 내에 여전히 노조 활동가와 당 활동가 사이에 벽이 존재하고, 대부분의 논의가 여전히 금속연맹과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의 사안에 초점을 맞추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과정에서나 임원직선제 토론에서도 드러났듯이, 노조 활동가들 내에서도 금속과 공공 사이에 활동이나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감출 문제가 아니며, 공개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임에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선거를 보자. 민주노동당의 지난 당직선거는 노조 활동가들에게 당과 결합하게 되는 계기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선거에서 노동자들을 단지 표밭으로 대상화되었을 뿐 선거 자체가 조직화의 매개로 활용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당내 선거는 회원 확장의 기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활동가들을 지치게만 하는 말썽꾸러기로 전락하였다.
    
민주노총 위원장 보궐선거에서는 노조 활동가들만 논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여 당 활동가들은 결정과정에서 소외되었다. 게다가 내년으로 다가온 민주노총 선거 논의 또한 뒷담화만 나돌 뿐 공식화된 것은 거의 없다. 선거논의보다 민주노총의 혁신과제가 더 중요하고 산별노조 전환 및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등의 산적한 현안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안이 당 활동가들을 논의에서 소외시키는 핑계인 양 인식되고 있다면 과장인가.
    
지난 기관지 창간호에 집행위원장은 “노무현 퇴진, 열린우리당 해체투쟁으로”라는 글을 썼고, 이러한 기조의 글을 각종 언론에 기고하였다. 그렇다면 <전진>은 이러한 방침을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동지들도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인지 2006년 하반기 투쟁계획과 관련해서 민주노총은 현 시기를 “살인정권이자 신자유주의적 노동탄압 정권에 맞선 전면적인 노동기본권 쟁취투쟁과 민중생존권 쟁취투쟁 정국”이라 규정하면서, “살인정권 노동탄압정권 노무현정권 퇴진투쟁”을 투쟁방침으로 정하고 전면전을 전개할 계획으로 있다. 하지만, 어느 지역위원회에서도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현실에서 당 활동가들의 여건을 간과한 무리한 방침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금속연맹과 공공연맹에 주요 노조 활동가들이 몰려 있다보니 금속산별전환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고, 공공대산별 논의를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여타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등의 새로운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미흡했고, 새롭게 생성되는 건강한 활동가층을 제대로 유입하지 못했다. 사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활동의 초점을 새로운 사업장으로 이동하면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상근활동가를 투입하는 데 있어서도 각 조직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계획을 세워 의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각 성원의 상황이 잘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7. 정치조직다운 <전진>을 위하여
    
(준)자를 떼지 못했다고, 준비위원회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변명꺼리가 되지 않는다. 준비위여서 부족하다고 하면 <전진> 회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도대체 무엇이 되나. 이는 회원들 스스로에 대한 자기위안은 될지언정 외부의 비판에 대한 타당한 답변은 되지 못한다.
    
별다른 영향력도 없는데, “<전진>은 아직도 소위 ‘여당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행동이 굼뜨다”고 조소당하는 현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현재 <전진>이 가진 당 내외의 지지도, 영향력은 <전진>이 활동을 잘해서, <전진>이 유능해서, <전진>이 좌파조직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선택한 결과이며, 과거 ‘중앙파’와 ‘당권파’로서의 유산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계급운동을 복원하고, 사회운동의 변혁성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는 명분 때문에 지지해준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언젠가 말한 것처럼, 더 이상 무난한 활동을 하지 말자. 더이상 그냥 그저 그런 정치조직이 되지 말자.
   
어찌보면 하나마나한, 달리보면 자기조직에 대한 냉소적이면서도 엇나간 비판으로 보일 수 있는 글을 기관지에 쓰는 것은 그래도 내가 <전진>을 나의 조직이라고 여기고, 그 성원들을 동지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전진>이 자기교정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진>이 전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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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1 01:33 2006/10/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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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블록질을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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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블록질에 중독이 되었나보다.

자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웹서핑을 하다보면 그냥 넘어가기엔 아까운 글이나 기사들이 있다.

어떻게 할까.

각각을 모두 담아올 수도 없고, 여기에 모두 커멘트를 달 수도 없으며,

무작정 퍼나르는 짓은 지금까지 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진보넷 블로그와 네이버블로그의 활용도 불분명했고...

  

1. 되도록 글은 진보넷 블로그에 쓰자.

특히 내 의견이 상당히 들어가는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남겨 네이버의 컨텐츠를 강화시켜 줄 필요가 없다.

  

2. 신문, 인터넷 언론 등에서 담아온 것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쓰자.

메모로그는 검색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다. 

담아올 때는 단 한두줄이라도 내 의견을 쓰고, 본문 중의 중요한 내용에는 반드시 형광색 표시를 하자. 

기명 칼럼 등을 제외하고 기사의 경우에는 핵심만 옮겨올 필요가 있다. 쓸데없는 것까지 담아와서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게다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저작권 시비도 신경쓰인다. 

   

3. 그냥 재미있거나 생각해볼 꺼리가 있더라도 나중에 다시 안보게 될 기사나 칼럼은 네이버 블로그의 안부게시판 링크로 끝내자. 이것은 관철동님의 운용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최근 네이버블로그를 펌블로그로 운영하면서 덧글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안게도 점차 썰렁해졌다. 여기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썰렁한 것은 아니지 싶다.

 

4. 행정학, 정책학 관련 글은 네이버 카페 '비판적, 진보적 행정학을 위하여'를 이용한다. 여기도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나의 펌글로 도배되어 있으므로 준블로그나 다름없다. 다만 회원보기로 되어 있어서 부담없이 전문을 담아올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되도록 내 의견을 담을 필요가 있고, 또한 주요부분은 표시를 해야 한다.

 

5. 노래, 음악과 관련된 것은 네이버블로그에 담을 수 밖에 없다. 어쩌다 진보넷에 음악파일을 올렸더니 사무실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집의 노트북에서는 다운되어 버린다. 게다가 진보넷 블로그는 최소한의 파일 저장공간도 없다.

문제는 네이버블로그에 올렸을 때 또 음제협인가의 사주를 받은 네이버가 갑작스레 글들을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까운 컨텐츠를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중가요는 되도록 이웃공개로 하고, 민중가요는 공개하되 만약을 대비하여 비공개 카페로 스크랩해둔다.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이고...

  

6. 어떤 이는 블로그를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나의 경우 네이버 블로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싶긴 하지만, 네이버에 유지되고 있는 이웃들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여전히 검색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네이버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망설임도 있다. 그리고 이웃공개 기능도 훌륭하고...

네이버 블로그는 선전용으로 여전히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도구적으로 보는 것 같지만, 최소한 진보넷블로그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밝힌다. 진보블로그에서 나는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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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23:16 2006/09/2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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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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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중에 할 것이 많구만.

다 할 수 있을까.

 

오늘 안 내용

- 국내여비를 국외여비로 쓸 수 있으나 사용목적이 달라서는 안될 것이며, 액수가 너무 많아서도 안된다고 행정실장이 얘기함.

 

9. 28 (목)

- 서울수복일이네. 3시 반 지방정치과정론 강의 때 읽을 The Deliberative Democracy Handbook 8-12장 다 읽을 것. 오늘 날새야 하나.

- 논문계획서 초안을 정리해서 지도교수에게 메일 보낼 것. 하루만에 정리가능한가. 암튼 목요일 밤에는 해야한다. 이 때 논문계획서 발표날짜도 대충 정하고, 심사위원으로 들어올 교수들도 대략 정해서 보낸다. 이, 이, 정 교수로 하면 되나.

 

9. 29 (금)

- 5-8월 연구용역 정산 완결. 계속 책상에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

- 교무조교에게 연락할 것. 이번주까지 알려준다고 했다.

- 교수들에게 보낼 정책&제도 DB, 사례연구 DB 소개문 초안을 작성하여 소장님께 보낼 것

- 단기인력들이 정리한 주제별 전문 사이트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 보완할 부분을 지적할 것. 지나치게 논문들이 많고, 제도, 조직, 법률 등에 관한 사이트의 내용이 빈약함. 개요부분도 쓸 것.

- 점심 때 김진균기념사업회 운영위원회가 있다. 여기에는 참석해도, 그 다음 토론까지는 어렵다.

- 금요일에 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도 있는데, 일단 행사장에 들려서 자료를 가져온다.

- 또 뭐가 있는데. 특히 밤에...

 

9. 30 (토)

- 정부규모 및 사회적 일자리에 관한 연구보고서 중 국정조사 때 써먹을 만한 부분을 정리해서 오선배에게 보낼 것. 정부의 발표 참고.

- 나남에 줄 초안을 작성할 것. 이것도 깝깝하네. 암튼 해야하니까... 이것은 추석이 끝나고 오자마자 해야겠군. 잊지 말자.

- 정교수가 검토하라고 한 위험 관련 논문 보고 코멘트할 것.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정교수가 와서 주의를 환기하고 갔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내용인데, 시간이 없었군.

- 4시에 전진 기관지위원회 회의가 있다.

  

10. 1 (일)

- 정부규모 연구보고서 완성할 것. 보지 못한 논문, 보고서, 자료들을 정리해서 카페에 올리고 보고서에 반영할 것. 이것은 추석 때 광주에 내려가기 전에 해야 한다. 화요일까지 가능한가.

- 대안사회연구팀 발제 관련 자료 챙기기 - 추석 때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재벌문제에 대하여. 장하준 교수 및 참여연대, 대안연대의 글 참고.

            

10. 2 (월)

- 학교에 나가서 뭐하지. 연구보고서 완성하고, 제본 맡긴다.

- 주택 및 토지에 대한 대안사회연구팀 세미나 내용을 정리한다.

        

10. 3 (화)

- 광주에 내려간다. 이번에는 책을 많이 가지고 가지 말자. 읽지도 않을 거면서... 그런데 논문계획서를 써야 하니...

- 미리 핸드북 책을 다 읽고, 정리한다. 봐서 Fung & Wright의 책도 프린트하여 가져가서 다 읽자. Radical In Power도 뽑아서 가져갈까나.

  

10. 4 -10. 7 (토)

- 아무래도 토요일에는 올라와야겠지.

- 추석 때 티브이 앞에만 앉아 있으면 대략 낭패.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할 것은 하자.

- 어머니께 공짜로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을 알려드린다. 일단 컴퓨터에 S/W를 깔고...

     

10. 8 (일)

- 한다고 한 것 중에서 못한 것을 마무리한다. 이번에는 기관지 원고를 미리 써놓자.

할 것은 많고, 시간은 없다.

이번 추석 연휴 정말 중요하다.

도대체 뭐하고 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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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7 19:30 2006/09/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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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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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월요일부터 서늘해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긴팔 셔츠를 입고 다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구요.

  

매년 다른 계절은 그냥 넘어갔는데, 유독 가을만 되면 그와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더라구요.

2004년에는 '가을의 문턱에서'라는 제목으로 Keren Ann이 부른 'Not going anywhere',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서영은의 목소리로 나오는 '가을이 오면', 고은 시에 김민기님이 곡을 쓴 '가을편지'를 올렸고, 2005년에는 김정환 시인의 가을에라는 시에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라는 노래를 올렸습니다. 김정환 님의 시는 <가을에>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혀 가을의 냄새가 나지 않고, 이은미 님의 노래는 가을이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지만,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하면서 말이죠.

      

올해는 제 네이버블로그 이웃인 미나리 님이 부른 '가을'이라는 곡을 올립니다. 노래모임 새벽의 류형수 님이 노랫말과 곡을 썼고, 미나리 님과 홍승종 님이 지난 봄 새벽 공연을 하면서 부른 것입니다.

    

그 때 저도 페이요 님과 함께 가서 보았답니다. 윤선애 님도 보았고, 과 선배인 자우형이 노래부르는 것도 보았는데, 제게는 미나리 님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좋아했던 후배를 연상시켰거든요. 물론 목소리가 조금 다르고, 노래도 훨 잘 부르셔서 환상이 깨졌습니다만, 앞으로는 미나리님을 좋아하기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ㅋㅋㅋ

  

모두 가을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새벽 - 가을

 

아름다운 가을 하늘 난 보고 싶었는데

이제 난 구름 되어 가을 하늘에 떠있네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가을하늘

잠자리와 바람을 따라 이 하늘 흘러가네

아름다운 가을 하늘 난 보고 싶었는데

이제 난 구름 되어 가을 하늘에 떠있네



가을이 오면 
                                       김용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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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7 11:03 2006/09/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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