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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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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님이 쓴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메이데이, 2006)을 어제 다 읽었다. 책읽은 소감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글 중에 언급되는 체 게바라의 사진에 대해 말해보자.

 

저자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하이트가 체 게바라를 술 광고의 모델로 사용한 것이 초상권, 저작권 침해를 넘어 인격모독이자 혁명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브라질의 한 의류기업은 체의 얼굴이 박인 여성 속옷을 내놓았다는데...
  
해리슨 포드가 미국대통령 역을 하고 게리 올드만이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 <에어포스 원>에서 '인터내셔널가'가 몰상식하게 사용된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여수의 민주노동당 한 당원이 운영하는 술집 '체'의 경우 홍보물에 체 게바라의 사진을 박아서 달력으로 배포하였다. 이런 경우는?
   
체의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상업적으로 남용하는 기업들 쪽에 법정 투쟁을 경고한 적이 있다. 손석춘이 언젠가 말한 것처럼 "미제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가 숨진 혁명가가 술이나 여성 속옷 광고에 모델이 된 꼴은 비극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자본과 제국주의자들이 체에 대한 붐과 열광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서점가에 혁명가의 자서전이 불티나게 팔리고, 청소년들이 이 혁명가의 삶에 열광하면서 그의 브로마이드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에 대고 "빨갱이" 운운하는 이는 일부 보수꼴통들뿐이다.
 
아마도 이것은 체 게바라가 하려고 했던 것들이 현실에서는 달성될 수 없고, 더 이상 이 체제를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우흠의 소설 <감색운동화 한 켤레>에 보면 이제는 운동을 정리한 한 선배의 집 거실에 레닌의 사진이 걸려 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재벌 2세인 박신양은 자본론을 읽으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그람시의 말이 언급되어 난데없이 그람시가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드라마 <다모>는 어떠한가. 루신의 말을 비스무리하게 읊조리는 주인공은 멍청한 혁명가의 초상이었다.
  
운동이 상업화되면서, 이제는 '진보'라는 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본이 추구하는 이윤의 도구가 되는 현실.
이것이 길을 가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체 게바라의 사진에 내가 가슴아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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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16:19 2006/08/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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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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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복날이었던가. 그제가 복날이었던가.

사촌동생과 고기를 먹었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어떻게 그런 것을 먹을 수 있냐고 한다.

아마도 개를 떠올리고 하는 말일께다.

 

하지만 나는 개를 먹지 않는다. 아니 먹지 못한다.

복날이라는 이름으로 영양보충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그런 것을 먹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돼지는 괜찮은가. 그건 물론 아니지만, 어제 먹은 것은 사촌동생이 온 김에 오겹살을 먹은 것 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묶어서 잘 얘기하는 고종석의 재주가 부럽다.

나는 복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맨날 하는 게 공상인데...



[고종석 칼럼] 복날의 환(幻)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6/07/19 18:12

   
‘어이구 이 한심한 중생아!’ 하는 ‘면피용’ 자학이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긴 했으나, 그래도 월드컵 때가 좋았다. 수비에 치우치는 압박축구가 대세를 이루는 바람에 월드컵 축구 경기가 지루해졌다는 말도 있었지만, 방패의 튼실함과 아름다움만 해도 눈요깃감으로 넉넉했다.
포르투갈-네덜란드 경기의 난투극 앞에서도, 결승 경기의 ‘지단 박치기’ 앞에서도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건 그냥 볼거리일 뿐이었으니. 잔디구장이 이종격투기장 꼬락서니를 설핏 보여준다 해도, 축구 경기는 그 야만성에서 진짜 이종격투기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전쟁의 은유가 아무리 스타디움 위를 파닥거려도, 공놀이는 진짜 전쟁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우아하다. 미군의 바그다드 폭격 장면을 태연스레 시청할 수 있었던 무디고 잔혹한 영혼이 축구장의 소란에 호들갑을 떤다면 웃음거리밖에 안 될 테다.
  
●월드컵 끝나고 다시 현실로
  
월드컵이 끝나니 세상이 다시 보인다. 북한 미사일. 도대체 국방위원장 동지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을까? 그는 오프라인에서 체제와 인민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리니지게임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한-미 FTA. 한국 유권자들은 2002년 겨울에 너무 지적인 철학자 대통령을 뽑은 게 분명하다. 철학자의 임무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노 대통령에 앞설 철학자는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변화가 왠지 겁난다.
  
2차 협상 결렬 소식에 한 움큼의 안도감이 들었을 정도다. 나이가 나를 의심 많은 ‘보수주의자’로 만들고 있나 보다. 또 시작된 이스라엘의 전쟁 놀음과 미국의 두둔. 정말 징그러운 신성동맹이다, 이들은.
  
워런 와거의 ‘인류의 미래사’(교양인 발행)는 서기 2200년에 피터 젠슨이라는 가상의 역사학자가 자신의 손녀 잉그리드에게 읽히기 위해 쓴 두 세기 동안의 인류사다.
이 가상의 미래사에 따르면 인류는 21세기 전반기에 세계무역컨소시엄이 이끄는 극단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 놓였다가, 2044년에 터진 제3차 세계대전 뒤 세계당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세계연방을 이루고, 2147년 세계연방이 해체된 뒤엔 분권화한 소규모 자치공동체들을 꾸린다.
 
지금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결국 세계대전으로 파국을 맞으리라는 게 저자의 상상인데,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로 집권한 미국 여성 대통령이 가난한 나라들과 연대해 (자본가들이 쥐락펴락하는) 지구국가연합에 맞선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2198년 어느 날, 지금 덴마크 어디쯤에서 유토피아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윤석미라는 평양 출신 토론자의 말. “모든 시대는, 비록 그 시대 사람들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유토피아입니다. 각 시대는 앞서 간 조상들의 열망을 실현합니다. 각 시대를 그 자손들은 노스탤지어라는 황금빛 아지랑이 사이로 엿봅니다. 유토피아는 희망이자 향수병이며, 전능함을 이루려는 열망이자 자궁이라는 아스라한 기억 속 천국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절대적 상대주의자’로 설정된 윤석미의 이 발언은 자신의 시대가 유토피아라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모든 시대는 생각하기에 따라 유토피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저자는 윤석미의 이 지성과 요설을 다소 부정적인 맥락에 배치했지만, 지금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견디는데 쓸모 있는 것은 그런 상대주의 같기도 하다. 그런 상대주의 없이 국방위원장 동지를, 시오니스트들과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주사위놀이를, 거룩한 시장의 독재를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시대를 견뎌내는 방법
  
그러나 이런 수다는 또 나날의 구체적 삶에서 얼마나 먼가? 세계체제는 우리 일상을 근원적으로 규정하지만, 그것은 근원적인 만큼이나 어렴풋한 허깨비로, 곡두(幻)로 보인다. 지금의 진화단계가 인류 개개인에게 그어놓은 감각의 한계 탓일 테다. 복날이다. 장맛비와 무더위에 지친 몸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삼계탕으로든 장어구이로든 추슬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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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1 23:42 2006/07/3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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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교육위원 개표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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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7. 31 (월) 오후. <괴물> 대단하다.
 
<괴물>은 지난 26일에 개봉, 상영 4일만에 전국관객수 약 263만 명을 기록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신문기사를 보니 2주전에 개봉했던 <한반도>가 257만이다.
괴물이 흥행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름방학에다가, 12세이상 관람가 판정, 입소문과 평단의 좋은 평가, 배우들의 열연, 감독의 명성, 한반도 외에 대작이 없는 점 등. 게다가 괴수영화이면서도 블랙코메디가 담긴 가족영화로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스토리가 탄탄하며,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괴물'이 그럴싸하였다는 점도 작용하였으리라. 하도 평을 많이 봐서 거의 평론가가 다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동당원인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하는 영화는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연고주의인가.
함께 있는 행문씨도 수작이라며 꼭 보라고 한다. 역시 입소문이란... 포털들에서 반응이 워낙 좋게 나오니 '괴물 알바'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약간의 비방을 묻어버린다.
이번주 내에 시간을 내서 보러가야겠다.
 
그건 그렇고, 괴물이 65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했다고 한다. 전체 스크린의 1/3이 넘는 수이다. 한 영화가 이렇게 많이 스크린을 차지해도 되는 걸까. 아무리 작품성이 좋기로서리 이런 식으로 독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ㅇ 오후 6:30 교육위원 투표하다
 
오후에 교육위원 투표를 하고 왔다. 전교조 샘들이 선관위 앞에서 있다가 투표를 독려하기도 하고, 아는 운영위원들에게 인사도 한다.
이번 관악, 동작, 영등포쪽은 지난 4년전과는 달리 반 전교조를 내세운 후보가 등장하여 조직적인 세몰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 교육위원이었던 두 사람과 함께 3파전을 형성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전교조 비방 발언을 하는 학부모 운영위원도 진을 치고 앉아 다른 학부모들과 쑥덕쑥덕한다. 도대체 왜 전교조를 싫어할까.
6시반 정도에 투표함을 수합해서 개표를 한다고 하니 지금쯤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2학기 때에 전교조는 위원장 선거에서부터 대의원, 지회장 선거가 있다. 그리고 교원평가 투쟁도 다시 치뤄야 하고, 학교 내에서는 예산편성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역위원이 되어서 시간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당원에서 당우로 변경하긴 했지만, 생생한 교육현실을 접하게 되어서 좋다. 좋은 경험이라고 해야 하나.
   
ㅇ 김근태의 '뉴딜'론이 떠들썩하다
      
김근태는 지금의 이미지로는 대권을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뭔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고 끝에 악수라고 이 무슨 개소리인가. 레디앙에 보면 "불법을 저지른 재계인사를 사면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각종 규제완화 조치 등 재벌의 각종 숙원을 들어줄 테니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리라는 제안"이라고 한다."각종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발목잡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에 김근태가 동조한 것이 이번 제안의 배경일 것이다. 그러니 제2의 정경유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소금산이 필요하다고? 기껏 제시한 소금산이 재벌과의 빅딜인가.
용기를 내서 제안했고,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다른 사안에서 그렇게 해보시지. 평상시에는 한두박자 느린 결단으로 유명하시면서 왜 꼭 이럴 때 나서서 헛소리를 하는지...
사회적 대타협의 대상이 재벌인가? 재벌들에게 떡고물을 주고 나서 무엇을 얻게 되면 그걸 거래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재벌들에게서 양보받을 사항들은 '건전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라면 당연히 지켜졌어야만 하는 사항들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아니었던가. 그걸 거래한다고 해서 노동자들도 그에 따라야 하는가. 김근태의 산수는 그것밖에 안되나.
게다가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미국식 신자유주의네 뭐네 하면서 자신은 뭔가 다른 것처럼 굴더니 자신이 맛이 간 시점에서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그 넘의 결단 몇 번 하면 나라가 작살나겠네.
    
도대체 그렇게 해서 얻은 대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대통령이 하고 싶은가.
   
김근태의 '뉴딜'론 안팎에서 뭇매 (레디앙, 정제혁 기자, 2006년 07월 31일 (월) 13:09:17)
"재벌에 백기투항…한나라당 대표냐…기업국가 만들기" 
  
'재벌과 뉴딜' 김근태의 승부수…성공할까?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06-07-30 오후6:34:59) 
'욕먹을 각오'했다지만 '우경화' 비판에 견딜까 
 
     

ㅇ 청와대의 조동 취재거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계륵대통령', '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 정부', '대통령만 모르는 노무현 조크' 등의 용어가 담긴 개인 칼럼과 기자의 글을 실자 청와대에서 발끈하여 비서실 차원에서 취재를 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오바다.
 
자칭 비판언론이라는 조선과 동아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취재거부를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짓이요, 조동에게 핑게거리를 주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면 반론권을 요구하거나 정정보도 요청, 아니면 민형사상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조중동문이나 놈현정부나 하는 짓이 똑같다.
    
고종석 님의 칼럼글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 (이 칼럼 글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지방정권 심판론과 한나라당의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 모두 달성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음을 얘기하고 있다)
    
해리 트루먼과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샤를 드골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세상을 뜬 1970년대 초, 하느님이 이들의 영혼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너희들 소원을 하나씩만 들어주마. 우선 해리, 네 소원이 뭐냐?” “제가 막 떠나온 저 아름다운 행성에서 소련 빨갱이들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트루먼 독트린이라는 것으로 냉전의 방아쇠를 당긴 미국 대통령다웠다. “음, 그래? 니키타 너는?” 한 때의 소련공산당 제1서기가 대답했다. “제가 이 곳에 와서도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인류 행복을 위해 미제국주의자들을 지상에서 말끔히 청소하는 것입니다.” 흐루시초프 동지가 재임 중 입에 올렸던 동서 평화공존론은 본심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 샤를 얘기도 마저 들어보자. 네 소원은 뭐냐?” ‘조국의 영광’을 입에 달고 살았던 프랑스 제5공화국 첫 대통령은 한껏 겸손하게 대답했다. “전 딱히 바라는 게 없습니다. 다만, 이 두 친구의 소원을 꼭 들어주십시오.”
( [고종석 칼럼] 5·31 단상, 2006/05/25 15:05)
    
ㅇ 김병준 부총리의 사퇴 거부
 
김병준 부총리가 사퇴를 거부하고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였다 한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의 정인봉 변호사(이 넘은 저번에 송파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내정되었다가 여론의 압력으로 떨어졌다. 이런 넘이 검찰 고발을 한다?)가 김병준 교육부총리를 사기 혐의 등으로 오늘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정치권에서는 자진사퇴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고...
한겨레의 논조를 봐서도 사퇴를 주장하는 것 같다.
  
분명 김병준 부총리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퇴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결격사유가 될지는 미쳐 몰랐다. 내가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나?
내가 보기에 김병준 부총리에게 나타난 것은 학계의 평균적인 관행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 정도의 문제는 가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이는 학계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논문 중복 게재의 경우 일부러 요청하여 싣는 경우도 있고, 대학 내의 교내 저널의 경우 초고 비슷하게 제출하든지, 아니면 원고를 메우기 위해 학교에서 기존의 논문을 일부러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김 부총리의 경우도 그러할 것이다. 바로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관행을 단죄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병준 부총리에 대해 청문회와 인준이 끝나자마자 이러한 논란이 나오는 것은 김 부총리를 타겟으로 한 음모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럴 것이면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를 하든지... 게다가 행정학계는 서울대, 고려대 인맥이 장악하고 있고, 여기에서 벗어난 인물은 주류에 나서기 어렵다. 또한 행정학계는 다수가 한나라당 지지 성향을 가지고 있고, 노무현과 같은 길을 걸었던 김병준 교수의 경우에는 약간 예외적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김병준 부총리는 개인적으로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공직에 나서려면 그런 허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성북구청이 발주한 용역보고서를 나중에 구청장의 박사학위 논문에 그대로 반영하도록 하고 학위까지 준 것은 아무래도 용서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서도 국민대라는 학교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고대, 연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위가 어떻게 주어지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김병준 교수는 사퇴하는 게 맞다... 제2의 이기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 썩어빠진 잘못된 관행도 깨자. 문제가 된다면 스스로 자기고백도 하고...
     
ㅇ 소개팅, 선
   
그제는 어머니가 나중에 광주에 내려올 때의 날짜로 선을 보라고 하였다. 목포의 고등학교 교사란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있나. 알겠다고 했지만, 글쎄다. 또 한번 보고 말려나. 솔직히 선은 보기 싫은데...
 
게다가 오늘은 교육위원 투표를 마치고 전교조 샘들과 얘기를 하다가 ㅈㅎ의 전화를 받았다. 시언니하고 다시 만날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둘다 괜찮은데 왜 머뭇거리는지 잘 납득이 안되서리, 직접 나선 것이리라. 이번 주 내에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으라고 한다. 확정짓지는 않고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은 부담스럽다. 무엇 때문일까.
 
하긴 한번 봐서 필이 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몇번 보면 좀 바뀌는 게 있을까.
잘난 것도 하나 없는 주제에 별 걱정을 다한다.
앞으로는 주위 사람에게 소개팅시켜달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있다고 해서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이 나이에 계속 소개 운운하는 것은 '눈이 높다'는 소리만 들을 것이기에 그렇다. 아니, 지금도 나보고 눈이 높단다. 내가 이 나이에, 이 능력에 뭘 따지겠나. 게다가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조금 다르지 않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많이 해보는 건데...
  
ㅇ 황당한 교육위원 개표결과
 
방금 전 민 샘께 교육위원 개표결과를 여쭤봤더니 안좋게 나왔다고 하였다. 알아보니 이상진 후보가 관악, 동작, 영등포 모든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전교조에서 지지하였던 최홍이 후보는 4등을 차지하여 떨어졌다고 한다. 말이 안나온다. 어떻게 그런 꼴통이 1등을 차지할 수가... 게다가 최홍이 샘은 저번 선거에서 1위를 했는데...
  
정치는 물론, 교육계마저 우경화된 느낌이 피부로 다가온다. 아마도 나름대로 개혁의 탈을 썼던 김병준 부총리의 표절의혹 및 재탕논문 논란과 전교조 부산지부의 교사교재용 자료집 파문이 막판에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교육현장은 물론 모든 게 박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그런데도 주사파 넘들은 헛짓거리나 하고 있으니...
아무튼 전교조와 최홍이 샘, 그렇게 수고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어쩌겠나. 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ㅇ 장관들은 그런 책을 읽는다고?
  
오늘자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장관들이 최근에 읽는 책이나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였다.
〈블링크:첫 2초의 힘〉(말콤 글래드웰), 〈세계는 평평하다〉(T.프리드먼), 〈불확실성의 세계〉, 〈꿈을 이룬 대통령, 루스벨트 파워 리더십〉(J.스트록), 〈위대한 혁신〉(피터 드러커), 〈괴짜 경제학〉(스티븐 레빗 외) , 〈정도전을 위한 변명〉(조유식), 〈끝없는 도전과 용기〉(잭 웰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배기찬), 〈프라이즈〉(다니엘 예르긴), 〈경제학의 향연〉(폴 크루그먼), 〈그래서 당신〉(김용택 시집), 〈백범일지〉(김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고양이학교〉(김진경),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T.프리드먼), 〈호모 노마드〉(자크 아탈리),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박세일),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신창조론〉(이면우),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송호근), 〈경제강대국 흥망사〉(킨들 버거), 〈고고학 여행〉(김병모), 〈핵심을 확장하라〉(크리스 주크),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앤서니 라빈스) 등이 그 목록에 있다.
   
내가 최근 읽고 있는 책이나 추천하는 책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비슷한게 있다면 <세계는 평평하다>하고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정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최세진), <동향과 전망> 2006년 여름호, <민주주의의 민주화>(최장집), <이매진-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의 비전>(토미 셰리단, 앨런 맥쿰즈), <평등>(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을 얼마 전에 사서 지금 읽고 있다. 그리고 헌책방에서도 몇권을 샀고...  
  
장관들은 이런 책을 읽는다 (한겨레, 2006-07-31)
‘채근담’ 등 고전에서 ‘그래서 당신’ 등 시집까지
책임감·주인의식 강조…리더십·통찰력 키워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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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1 21:08 2006/07/3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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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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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는 가까운 동원관식당보다는 보통 후생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가격대비, 맛 문제, 찬의 선택 여부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다니는 연구원이 동원관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왔다갔다 하면서 걸어다닐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렇게 후생관 식당에 가면 항상 눈에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장애우석'이다.

배식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장애우석은 장애인이 쉽게 앉아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설치한 것일 터이다. 대부분이 비장애인 학생인 대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친구를 배려하여 '장애우석'을 일부러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라는 말은 단지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장애인보다는 장애우라는 말이 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장애우라는 말을 써야 하는가. 이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비주체적이고 의존적인 '장애우'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라는 말이 몇년 전부터 나왔는데도 여전히 장애우라는 말이 여전히 심심치 않게 나온다. 후생관 식당의 '장애우석'도 그래서 나온 말이리라. 좁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학생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나 나이어린 꼬마 장애인은 앉지 말라는 뜻인데...

민주노동당도 당 강령에 있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장애우'로 고쳤다가 다시 '장애인'으로 바꾼 바 있다. 진보진영 안에도 장애인이라는 말에 대해 아직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아래 이복남 원장의 글이 잡혀서 글을 덧붙였다. 나중에 후생관 식당에 갔을 때에는 장애우석을 장애인석으로 바꾸어달라고 말해야겠다.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써야 
[기고]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이복남 원장

2004년 09월 06일 (월) 16:05:10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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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9 17:04 2006/07/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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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우리 절 우리가 지킨다?&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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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27일 삼광사 신도들이 삼광사현장위원회라는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사찰에서 몰아냈습니다.

신도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사시는 청정도량에 노조가 웬 말이냐?”
“신도들의 100원 200원 시주로 운영되는 절인데 무슨 돈이 많아 월급을 올려 주나”
“노조를 할려면 악덕기업주에게나 가서 하라”
“이 일로 총무원장스님과 주지스님이 물러갔으면 됐지 또다시 문제를 일으키면 되느냐?”
“30년 동안 절에서 먹여 살려주었으면 됐지 더 일해 먹을려 하는 것은 욕심이다”
“한사람이 욕심이 많아 절을 이렇게 소란스럽게 만든다”
“이곳은 부처님이 사는 곳이고 수량도량이다. 일반기업과 같이 무슨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아니다. 절은 신도의 것이고 신도들의 손으로 운영된다. 신도들이 낸 시주 돈으로 움직여지는 곳인데 노동조합은 기업에서 하는 것이지 기업인 아닌 이곳에는 노동조합이 필요 없다”
  

부처님의 지혜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어쩌면 삼광사 신도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노동조합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기본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상식이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 절 우리가 지킨다"

신도들이 절에도 붙여놓고 어깨띠에서 쓴 글귀입니다.

그 우리 안에 노동자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요?

  

신도들, 삼광사 조합원 내몰다 
삼광사 신도 대표, “종교단체에 노조 있으면 신앙심 흐트러져”
 
정연우 기자 adsjyw@jinbo.net / 2006년07월28일 4시13분

 

[포토뉴스] 조합원 쫓아내는 삼광사 신도들의 투쟁  
정연우 기자 adsjyw@jinbo.net / 2006년07월28일 5시21분  
 
삼광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06년 7월 6일 오전 0시 20분, 삼광사에서 벌어진 일
 
박효석 기자 스파르다쿠스@jinbo.net / 2006년07월07일 18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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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9 16:22 2006/07/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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