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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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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문대 졸업생들의 취직문제

    

어제자 한겨레신문에 난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을 비교해놓은 기사를 보고 많은 것이 생각났다.

우선 사회학과가 역시 취업이 쉽지 않구나 하는 것. 나도 그렇지만 후배들도 고생하는구나. 그렇다고 마땅한 탈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공계 전기공학부의 경우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한전 취직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 그 만큼 직업의 안정성이 높게 취급되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듯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하고...

    

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조사 대상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무원과 공기업이었고, 특히 취업이 어려운 여자들은 일반 기업 취직을 일찌감치 접고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모두 공공연맹과 관련된다. 공공연맹 소속의 노조들이 단체협상이나 파업을 할 때 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많이 가는 것도 '있는 넘이 더 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정보화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일반행정 사무직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문과생이 갈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고, 이것이 인문대 졸업생들의 취업난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인문계 전반의 순수기초학문 전공자들의 취업 문제로 연결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다.

나아가 전기공학과 사회학과를 비교한 것이 표본선정에 있어서 타당한가의 문제도 있다. 아직까지는 수능입학시의 커트라인에 따라서 취업마져 어느 정도 결정되는 상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난감하다.

    

인문대 졸업생, 이공계와 평균연봉 900여만원 차이 (한겨레, 2006-08-03)
인문대 졸업생, 정규직 진입까지 고단한 이직행진 (한겨레, 2006-08-03)



ㅇ 빈곤과 가족해체와의 상관관계

      

“높은 부채액과 열악한 고용상황에 허덕이면서도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다 보니 실제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신빈곤층은 정부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빈곤이 미치는 영향은 끝이 없네.

       

'가난 때문에 생이별'…빈곤층 10명 중 6명 가족해체 (새전북신문 이윤미기자)

     

전주나눔의집 김정원 운영위원장은 지난 6월 한달간 전주지역 기초생활수급자층과 차상위계층, 근로빈곤층 등 9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주지역 저소득층 생활실태 조사결과’를 토대로 빈곤의 만성화와 신빈곤층 확대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3)

분석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 빈곤층의 47.4%인 426명은 기혼 상태였고, 나머지 45%인 404명은 이혼, 별거 또는 사별 등의 이유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특히 수급자층의 경우에는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는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체 응답자의 64%가 배우자와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7명은 최근 3개월 이내에 세금이나 공과금, 보험료 등을 체납한 경험이 있고 절반이 넘는 응답자는 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들의 평균 부채액은 2,169만원으로 사업실패나 생활비, 주택자금 등으로 안게된 부채가 대부분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채 상환능력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 근근이 이자만 갚고 있는 경우가 39.4%, 이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34.5%로 결국 10명 중 7명은 부채 탕감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ㅇ 청와대와 조동의 싸움에 담론까지?

       

한겨레신문 김선주의 칼럼에 엘리아스 카네티가 나오고 진중권의 공적 글쓰기 중단이 언급되었다. 단지 진중권과 같은 논객의 글쓰기가 안타까워 쓴 것인 줄 알았는데, 행간을 읽어보니 인터넷은 몰라도 나날의 역사를 쓰는 마당인 언론에서는 책임지지 못할 말과 폭력적인 글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되게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듯하다. 온라인 공간 또한 오프라인 소통의 반영일 터, 언론과 인터넷을 분리하는 게 타당할까.

      

어차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고, 내 편과 네 편일 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내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편인 양하여 혼란을 야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사회 진보에 끼친 악영향도 상당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명확하게 입장 표명이 요구될 때가 많으며, 그러할 때 담론도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는 사실 소통이라는 게 힘들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온라인 소통의 전부를 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김선주 칼럼을 잘 읽어왔으면서도 오늘의 칼럼은 그 행간에 나와는 다른 생각이 감추어져 있는 듯하여 불편하다. 

나 또한 담론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김선주칼럼] 담론이 사라진 시대 (한겨레, 2006-08-03)

        

엘리아스 카네티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무책임하게 주고받는 말들, 그것은 대중을 오도하는 말이 되어 비참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독소가 되고 있다. 진정한 시인, 적어도 언어를 특별히 중시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은 언어로써 파악 가능한 모든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지가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글쓰는 사람은 이런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최근 진중권씨가 공적 글쓰기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 그의 글에 동의하지 않은 적도 있지만 그의 문제 제기는 어떤 사안에 대해 발전시킬 여지가 많은 담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고의 지평을 새로운 방향으로 열어줬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절필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공적인 글쓰기를 절대로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실제로 쓰지 않고 있다.

     

왜 글을 쓰고 글을 읽는가. 소통을 위해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공감을 얻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담론을 형성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글쓰기는 내 편과 네 편을 정해놓고 자기 말만 한다. ... 소통이 필요없는 언어는 폭력이다. ... 내 편 네 편을 확실히하기 위해 글을 쓰고 읽을 뿐 진정한 담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인터넷이란 일종의 배설장소다. 댓글이란 오늘은 이 소리 하고 내일은 저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나날의 역사를 쓰는 마당이다. 그런 곳까지 책임지지 못할 말과 안팎으로 전쟁을 부추기는 글이 난무한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이 두려워 글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생겼다. ... 이렇게 교육받은 인구가 많고 인터넷으로 소통이 원활한 시대에 소통이 안 되는 불행을 세계적으로 겪고 있다니 끔찍하다.   

   

ㅇ 다들 그렇지는 않다

     

나 또한 "다들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건 책임전가용으로서 보다는 대응하기 귀찮아서 나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나의 목소리가 그 과정에서 사라졌다.

요새는 SBS의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야심만만'을 보지 않는다. 나오는 얘기가 뻔하기도 하고, 주로 출연연예인의 신변잡기로 점철되는데다, 자신이 출연할 영화나 드라마, 자신의 신보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기색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크게는 시간도 없고...

  

"다들 그렇다"라는 이데올로기는 무섭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앞으로는 "다들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이 나오는 자리가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음을 명백하게 밝혀야겠다.

    

그건 그렇고, 듀나의 SF소설도 한번쯤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 야심만만한 그들의 뻔한 말 (한겨레, 듀나, 2006-05-04)

       

“다들 그렇지 않나요?”는 참으로 편한 책임전가용 도구다. 하지만 편리한 말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건 거짓이다.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은 없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 같은 육체적 욕망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나는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이 없다는 건 안다.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을 깨트리는 도구여야 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 인권 운동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간 것도 순전히 익명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인터넷 덕택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과연 인터넷이 다양성을 소개하는 도구인가? 인터넷이 아무리 무한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가는 곳은 뻔하다. 그들은 몇몇 포털사이트와 잘 가는 몇 군데에 링크를 걸어두고 그곳만 죽어라 간다.

  

‘다들 그런’ 세계의 구성원들에게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에 대한 따분한 선입관을 강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 글의 우둔함과 멍청함이 심해질수록 논리와 정당성 대신 대부분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다들 그런 사람들’의 머릿수에 의지하고 있다.

   

ㅇ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

    

노회찬 의원이 8월 4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노대통령은 "해당 업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관 자리를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면서, "지금까지 (정책 코드가 아니라) 정략 코드 인사가 많았고, 이에 대한 불만이 코드인사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원칙하고 정략적인 인사정책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어 문재인 전 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비판여론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번 문재인 전 수석의 발탁 움직임도 '회전문 인사'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코드인사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지금의 한나라당 및 민주당, 그리고 여당 일각의 비판은 김병준 부총리의 자진사퇴에 이어 정치적 공세의 성격이 강하다.

       

나는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견해를 지지한다.

    

8월 3일(목) 오전 10:40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 브리핑

-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임명 관련 김근태 의장 발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설에 대해 말이 많다.
어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께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은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선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여당 의장이 한발 앞장서 임명 반대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청와대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인사권자의 임명권을 정면으로 받아버리는 형국이 되니 보기에도 당황스럽다. 여당과 청와대 관계가 이런 방식으로 간다면 민생 현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채 국민들의 불쾌지수만 높아질 뿐이다. 
       
또한 코드인사 자체에 대한 비판만 있다.
자신과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을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자 임명권자의 권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코드인사에 대해 비판한다고 해서 조갑제씨를 장관에 앉힐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대학의 총학생회장도 자신과 뜻이 받는 사람으로 집행부를 인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코드인사가 문제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코드인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 적합성을 놓고 임명의 타당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을 임명하면 업무 적합성을 따져 비판해야 한다. 여당과 청와대간의 볼성사나운 난타전이 없었으면 한다. 아울러 여당은 의견전달과 조율 방식이 아닌 기자간담회 자리를 통한 대통령과 공개적인 정면충돌을 즐기는 방식은 피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코드인사라는 비판에 앞서 업무적합성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야당과 국회의 역할이라는 점 다시 강조한다. 

    

ㅇ 드디어 민주당의 지지율이 노동당을 앞서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실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지난주보다 3% 포인트 상승한 46.1%로 1위를 기록했으며, 열린우리당이 22.3%, 민주당 8.6% 민주노동당 6.2%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지지율 면에서 민주당이 노동당을 앞선 것이다.

    

이는 이번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예견되어온 결과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무능력, 지방선거 이후 제대로 당혁신을 하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한 당 내부의 상황, 당내 부정선거 의혹조차 제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함 등 주체적인 면만 보더라도 특별하지 않다. 

    

이를 당 위기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글쎄다. 중앙선관위의 조사 이후 쑥대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해 아무도 이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상황. 한숨만 나온다.  

오늘 옆자리의 연구원에게 농담 비슷하게 당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내가 괜시리 쪽팔린다. 

   

민주당 지지율 8.6%, 민주노동당 눌러 (레디앙, 2006년 08월 04일 (금) 14:13:02
대선후보 선호도, 이명박 29%-박근혜 25.4%-고건 20.5%

    

ㅇ 애매한 술집

   

지난 화요일 미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박사후과정(Post-Doc)으로 들어온 후배 녀석 환영회를 한다고 석사 동기들이 압구정 역 근처에 모였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바쁘다고 나오지 않았다. 기본 퇴근시간이 10시라니 여유가 없을 듯도 하다.

  

결국 나온 친구들은 다 학위를 가지고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넘들이다. 

그래서인지 일식집에서 1차를 할 때 다들 학위나 학계의 동향 등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2차로 옮길 때 그냥 빠져나오려다가 새로 오는 친구 얼굴이나 보려고 남았는데, 2차로 간 장소가 애매한 곳이다. 그냥 같이 간 사람끼리 술을 마셔도 되고, 여자를 부르면 나오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냥 카페 겸 술집이라고 하여 그냥 들어갔는데(나만 몰랐다),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꼭 그렇게 여자들이 나와서 술도 따라주고 안주도 먹여주고 해야 술맛이 나고, 얘기가 술술 풀리는 걸까. 이럴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뿌리치고 나오기에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예전에는 단란주점일 것 같이 보이면 아예 들어가지 않았고, 그런 곳에 갈 것 같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는데... 내가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그날 새벽까지 술을 많이 먹었다. 아침에 해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다음부터는 아예 술을 먹지 않든지 해야지.

이 글을 쓰면서도 쪽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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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23:57 2006/08/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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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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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때는 대학로에서 모 동지를 만나 전진의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부산지역에서 한 동지의 전횡에 따른 갈등으로 두명의 동지가 탈퇴서를 제출했고, 다른 동지들도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비단 부산만이 아니다. 충남에서도 그러하였고, 경기에서도, 서울지역에서도 존재한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진을 보면 과거의 구습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왜 전진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단지 '구원(舊怨)'이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걸까.

조직 내에서 정보유통 및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니 무슨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중앙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그 통로를 잘 찾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해결하게 되어, 그냥 '잘되겠지'하면서 속으로 묻어두거나 아니면 탈퇴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제기는 사라져버린다.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두고 전진 소속 임원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결국은 이를 추인해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공무원노조의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을 듯한데,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간 것이다. 그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데, 내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연맹이나 당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하지만 한 조직의 동지로서 함께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보고되고 논의되어야 하지 않는가.

 

의장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과 노조에서 의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각 지역조직이 삐걱거린다면 이를 해결하는 것이 지도부의 일이고, 대외적으로 전진에게 요구되는 주문들에 대해 조직이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도부이다. 현재 전진의 문제를 지도부에게만 돌릴 순 없지만, 책임추궁의 큰 단위일 수 밖에 없다.

  

새내기 회원이 가입하게 되면 그가 누구의 추천으로 가입되었는지, 어디서 활동하는지, 전진이 어떻게 활동하기를 바라는지, 자신은 전진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기존 회원들에게 드러나야 한다. 그의 신분을 완전하게 숨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전진 외부의 활동가들은 아는데, 진작 내부의 회원들은 서로를 모르는 사태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상적,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떤 회원이 탈퇴를 한다고 하면 다른 회원들은 이 탈퇴이유를 알아야 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의 문제를 지도부만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고민할 수 있다.

기관지에 좋은 글이 실렸는데, 이름과 소속지역만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적어도 홈페이지의 회원게시판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 개개 글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진 회원이 아닐 때에는 대외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이 전진 회원이 된 다음부터는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발언과 활동이 전진의 활동방향에 맞는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일 터이다.

 

다가오는 정치대회는 다루어야 할 중요한 사안도 많지만, 전진의 내부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유하는 자리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기관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성은 여전히 과거 8-90년대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반문해보아야 한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를 겪으면서 민주노동당의 활동방식이나 선거활동에 많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수정당과 마찬가지로 상근자 중심의 활동을 벌였던 것이다. 선거에서 관건이 되었던 것은 선거에 전념할 수 있는 상근자의 확보였고, 적어도 한달 가량이라도 뛸 수 있는 인력이 없으면 선거를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

그런데 내용에서의 차이를 떠나 그런 역량면에서 볼 때 과연 보수정당을 능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상근활동가 중심의 정당이 진보정당의 미래인가.

 

당원중심의 정당이고 당원이 참여하면서 이끌어가는 정당을 얘기했다면 이를 선거중에도 관철시켜야 했고, 이를 활동을 벌인 모범을 창출해야 했다. 하지만 선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지역활동은 몇몇 열성당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당활동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는 당원들은 배제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생활인들의 정당인지, 아니면 열성당원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들의 정당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당원들 대부분이 자신의 일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상근활동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이번 선관위의 조사에서도 떳떳하게 맞설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상근활동가 중심의 활동은 관료주의의 폐해를 낳는다. 물론 근대적인 의미에서 당내의 관료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상근활동가가 중심이 되어서는 당이 전진할 수 없다.

  

민중들의 다수는 생계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고용의 불안정성, 실직 위험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과 노조에 관심을 가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로 발등에 떨어진 불도 못끄고 있는데... 전진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뛰어난 활동가라도 생계문제가 걸리면 자신의 활동을 중단하고 일단 생계유지에 목을 걸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전진 회원들부터 단지 회비만 내고 기관지를 구독하는 페이퍼 회원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조직활동을 하도록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 당에, 노조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난 김에 횡설수설해봤다. 잘 연결되지도 않지만 각각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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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23:50 2006/08/0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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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포스터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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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내부 세미나 자료 내용 보도에 따른 논란에 이어 8월 1일에는 전교조 서울지부 통일위원회가 지난 3월 북한의 선군정치 상징 포스터를 ‘새학기 환경미화 통일란 참고자료’(교실 꾸미기 자료)로 추천한 것을 조선일보가 다시 보도하면서 파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레디앙은 25장 사진 가운데서 2장만을 떼어내 전교조 비판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다분히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전교조를 매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하면서도 전교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전교조의 연구활동이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전교조 내부에 북한에 대한 동포적인 연대를 넘어서 일방적으로 북한 정권에 편향적인 태도는 없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레디앙의 이 기사에 대한 덧글이 붙으면서 현재 '가장 많이 읽은 기사'로 올라가있다.

  

전교조는 잘못한 거 없나 (레디앙, 문선영 기자, 2006년 08월 01일 (화) 13:49:58) 
서울지부 '선군정치' 포스터 파문…홍세화 "대중과 함께 해야"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의 윤근혁 기자는 전교조의 '북한 포스터' 는 새발의 피라고 하면서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교육과학연구원이 만든 교사용 지도서 <평화로 통일로>나 서울시교육감이 검·인정해 준 통일 교과서의 예를 들어 여기에는 더 노골적으로 '북한 고무찬양'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여기에서는 조선일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참상'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고, 오히려 "북한 학생들의 수업모습이나 꽃단장한 공연 모습"만 나와 있으니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한다.

   

<조선일보>에 제보합니다 (오마이뉴스, 윤근혁(bulgom) 기자, 2006-08-03 09:51)
"교과서에 '김정일 장군' 선전물이..."
전교조의 '북한 포스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비하면 '새발의 피'

사실 위의 두 기사는 바라보는 시선에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읽히는 대상이다.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이번 전교조의 파문을 얘기할 때에는 당연히 윤근혁 기자가 한 것처럼 조중동이 범하고 있는 왜곡과 자의적인 해석을 짚어주고 조소해주어야 한다. 조선일보의 그런 기사들은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풍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빨갱이 집단이니까 당연히 전교조가 한 발언과 행동은 모두 '친북적'이고 '북한을 고무찬양할 의도'로 그랬을 것이라고 하고, 보수적인 집단에서 하는 것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북한의 후진성'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논리가 아님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조선찌라시라는 말이 붙는지도 모른다.

조중동문에게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을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겉으로나마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이 무리일까.

그렇게 조선일보와 보수꼴통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면 끝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전교조 등 대중운동 내에 잠복해 있으면서 NEIS, 교원평가, 사회적 교섭, 반전평화투쟁 등 주요사안에서 원칙적인 주장이 제기되면 대중성을 운운 - 여기에서 말하는 대중성은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이 “수구세력의 구조가 강고하여 그들이 예민한 촉수를 내세워 먹이감이 걸려들면 하이에나처럼 덤벼들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 운동이 확보해야 하는 대중성은 아니다 - 하면서 딴지를 놓다가도,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선전하고 옹호해대는 불나방들의 행태는 지적되어야 한다.

북한을 알자는 것, 나쁘지 않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나.

북한지원단체인 '좋은벗들'에 따르면 이번 "수해로 북한 당국에 현재 신고된 실종자 수가 4000명에 달"하며 "전체 실종 및 사망자가 1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프레시안, “북한 수해로 실종·사망 1만명 이상”,  2006-08-02 오후 4:29:46) 북한의 신문 방송에서는 피해 실태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좋은벗들에 따르면 "미사일 발사 후 취해진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대응해 북한 당국이 '준전시 상태'를 발동하는 바람에 전쟁예비물자를 활용해 수해지역 피해자들을 구제할 도리가 없"고, 기계와 장비도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의 복구가 인력으로 진행되고 있어 복구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다가, 특히 식량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수해까지 입게 되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 때문에 국민감정상 정부에서는 지원을 하겠다는 표명을 쉽사리 못할 것이고, 북한을 떠받드는 남한의 일부 세력들은 '존심'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남한 수해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사람을 모집하는 그들이 북한의 수해지원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북쪽에서도 어차피 쪽팔려서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지 모른다. 북의 지배계층 또한 고통받는 다수의 민중들을 살리는 것보다 자기 체제의 폐부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민화협)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서는 남과 북의 수해복구를 동시에 지원하는 운동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여기에 묻혀서 지원할 수는 있을 테니,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더불어 2일 광화문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발족한 제19기 범청학련 통일선봉대(통선대)에게도 바란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통선대는 미군철수 여부를 묻는 모의 국민투표, 한미FTA와 평택미군기지확장 사업을 반대하는 범국민서명 운동, 평화리본달기 등을 포함하여 각종 대시민 선전전으로 광범위한 반미역량을 형성할 것과 군산ㆍ평택ㆍ의정부 등 미군기지 철폐투쟁 및 한나라당 새 현판 증정 투쟁 등 실천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매년 진행되는 이러한 관성적인 통선대 활동을 통해 수백명의 반미전사를 길러내는 것은 좋다. 십여일간 함께 몸을 부대끼면서, 교양받고 선전, 선동하는 과정에서 이 경험을 발판으로 훌륭한 일꾼이 탄생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다만 평화투쟁을 왜곡하진 말자. 반전평화가 무슨 전쟁놀이인가? 중대장, 대장 등의 군대식 편재를 가지고 구태의연하고 편향된 논리로 무장한 채 도대체 뭘 획득하고, 무엇을 선전하겠다는 것인가. 학생사회에서 갈수록 왕따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한총련, 한대련, 범청학련의 활동을 겸허하게 평가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무슨 사안이 있으면 맨날 매도되면서도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애처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도 매번 헛발질을 하는 것에는 질려버렸고...

 

아, 선군정치 포스터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또 옆으로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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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3 13:31 2006/08/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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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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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부터 엄청나게 덥다.

이렇게 더우면 조금만 신경쓰이는 게 있어도 열받는다.

특히나 무슨 '불쾌지수'같은 것이 있어서 이러한 짜증을 정당화해준다.

그런데 화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조선닷컴에 화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10가지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이라는데 다 당연한 말이다.

게다가 스트레스는 속으로 삭이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는 게 좋다는데...

염두에 두면 좋겠지만, 평상시에 이렇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화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10가지

 

 1.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
 2. 극단적인 표현을 삼간다
 3. ‘나 같으면 절대…’라는 가정은 하지 않는다
 4. 가끔은 성악설을 믿는 것도 도움이 된다
 5. 사람과 행동을 구별한다
 6. 오늘 낼 화를 내일로 미룬다
 7. 화를 내는 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 생각한다
 8. 제3자에게 화풀이하지 않는다
 9. 좋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10.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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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2 16:14 2006/08/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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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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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메이데이, 2006.
 

o 어떻게 사게 되었나
 
그날이 오면에서 여러 책들을 사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이 책을 골랐다. 책이 나왔을 때 사려다 돈도 없고, 또 이미 내용을 다 아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나 하면서 미루었는데, '김에' 산 것이다.
이미 한번쯤 본 것이라 진도가 쉽게 나가더라. 물론 책에 실린 글들은 그 원본을 기관지노힘이나 블로그를 통해 읽었을 때보다 대폭 자료가 보강되어 알찬 내용이 많았다. 주제 하나하나가 좋은 교육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o 친절한 말투
  
처음부터 끝까지 높임말을 사용하였다. 평어체를 썼을 때 "어색하고 건방진 글"로 보일 수 있다는 저자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를 위한 배려이며, 쉽게 읽으라고 그런 것이겠지만, 온라인 상이 아니라 인쇄된 글로 그렇게 읽으니까 조금 어색하다. 내가 읽는 책들이 딱딱한 건가.
아무튼 쉬운 문체 덕에 빨리 읽을 수 있었다.



o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교수나 선후배들이 있는 곳에서는 혹시 몰라서 책 겉장을 감추었다. 그런데 한번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후배 넘이 내가 들고 있던 이 책을 빼가더니 공부는 안하고 맨날 이런 책만 본다고 한다. 특히 겉표지에 나온 제목 중에서 "혁명", "좌파"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강렬했나 보다. 왜 속 내용으로 판단하지 않고, 제목만으로 편견을 갖는 걸까.
   
o 한권으로 만든 것은 무리
 
SF와 게임, 인물, 노래와 기타 글, 그리고 인터넷에 관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을 한권에 묶은 것은 대단한 솜씨이다. 상이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한권의 책으로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편집하는 것보다 책을 별도로, 즉 SF 따로, 인물 따로, 노래 따로, 그리고 논문들 따로, 그렇게 책을 내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o 머리말 중에서
 
홍세화의 추천글은 조금 뜬금 없다. 더 잘 써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자의 머리말은 글을 쓴 의도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부분.
 
"그 기나긴 혁명의 시간 속에서 현재 풀어야 할 과제들을 다 '그날 이후'로 미룬 채, 누군가에게 '혁명'의 이름으로 희생과 결의를 강요하거나, '혁명'을 위해 약자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군가를 억압해야만 가능한 혁명이라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합니다. 결국 또다시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를 만들겠지요." 
 
"이제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일상에 대한 전복의 상상력이 또다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려나가거나 '개인적인 반항'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모순과 거시적인 변혁의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o 게임의 이해
  
"현재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많은 게임들은 이 사회의 반영물이면서 또한 이 사회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매체보다 사람의 사고를 크게 지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게이머들을 참여시키며 그들을 게임의 주체로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매체보다 더욱 더 반복적으로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p. 29)
   
→ 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칫 중독이 될 듯해서이다. 현재도 인터넷 중독 비스무리한데, 게임까지 한다면...
사실 게임은 그냥 시간때우기로, 재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게임의 속내에 대해 말을 하면 "별..." 이런 반응이 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반응을 제거하는 것이다.
 
o SF의 세계
  
SF로 분류된 강철군화가 다시 언급된 것이 새롭다. 그런데 잭 런던이 확신한 것처럼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노동계급이 승리'할까. 잭 런던도 말년에 맛이 갔다는데...
  
나름대로 어렸을 때에는 SF를 좋아했는데, 책에 소개된 것 중에 내가 모르는 소설이 너무 많다.
봐야될 것을 체크.
'스타십 트루퍼스'를 보면서 원작자가 우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임창성 옮김, 잎새.
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강수백 옮김, 시공사.
레이 브래드베리, 화성연대기, 모음사.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글사랑.
필립 K. 딕,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지선 옮김, 집사재.
필립 K. 딕, 죽은자가 무슨 말을, 유영일 옮김, 집사재.
어슐러 K. 르귀, 어둠의 왼손, 서정록 옮김, 시공사.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o 아시모프와 로봇
  
"인간이 로봇을 더 많이 착취할수록, 더 많은 노동을 부여할수록, 더 많은 로봇을 생산할수록 착취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종말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인간이 로봇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서 시작한 이 모순은 로봇노동의 착취와 차별을 중단하지 않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로봇 노동의 착취를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로봇의 노동이 없으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착취의 중단이란 곧 인간사회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모순의 해결 주체는 로봇일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의 자각과 투쟁만이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로봇 영화나 소설들에서 '노동하는 자들의 노동력과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본질은 감출 수 없습니다. ... <아이, 로봇>에서 로봇들을 처단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극우 파시즘의 광기를 생생히 담고 있습니다." (pp. 58-59)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제1법칙: 로봇은 사람을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된다.
제2법칙: 로봇은 제1법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사람의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제3법칙: 로봇은 제1법칙, 제2법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아시모프는 로봇의 반란을 허용하지 않고, 초기에 진압할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아시모프가 만들어낸 안전한 로봇을 계급관계에 적용하면 부르주아가 원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첫째,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쳐서는 안된다.
둘째, 노동자는 자본가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셋째,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노동력을 보존해야 한다."
   
나도 이러한 생각을 하긴 했다. 노동자와 부르조아 간의 관계를 로봇과 인간의 관계로서 비유한 것은 <기계전사 109>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아시모프를 상당히 싫어한다. 그는 아시모프를 SF 3대 작가 중의 하나로도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무시하기 힘든 작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SF 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점에 있어서 그의 기여는, SF의 거의 모든 장르를 열었던 H.G.웰즈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고, 그의 철학적 깊이나 세계관은 어슐러 르 귄이나 필립 K 딕이 애들 물장난 하는 수준이고, 그의 과학적, 논리적 엄밀성은 할 클레멘트에 비하면 중학교 과학 수준입니다. 소설적 서사의 재미에 있어서는 하인라인의 근처에도 가기 힘들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래리 브래드버리가 초등학교 때 작문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유머로 봐도 당연히 더글라스 아담스와 테리 프리챗이 그보다 낫지요."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아시모프의 잡문이 담긴 책을 샀는데, 거기에 아시모프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나와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뭐라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다작의 작가가 글도 잘 썼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헌책방에서 산 <양전자인간>은 그럭저럭 볼만 하겠지만, <아이, 로봇>은 영화가 별로였다. 원작은 어떠할지... 나는 <아이, 로봇>에서 파시즘의 광기까지는 느끼지 못하겠던데...
  
o 해커 강령
 
1)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2) 모든 정보는 개방해야 하고 공유해야 한다.
3) 모든 권력을 불신하고 분권화를 촉진하라.
4) 해커들은 그들 자신의 해킹에 의해서만 심판되어야 하며 나이, 성, 지위나 재산 같은 판단기준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5)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6) 컴퓨터는 모든 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다. (p. 73)

 
이 강령을 보면 정말 선진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지만, 지식인 냄새가 팍팍 나기도 한다. 저자도 핵티비즘 용어를 제안하고 해커들의 사회운동을 강하게 주장했던 cDc의 경우에도 엘리트주의와 소영웅주의가 드러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평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킹을 활용한 사회운동은 끊임없는 조직과 선전, 교육, 토론 등으로 준비되고, 생존하고, 투쟁하는 대중투쟁과는 달리 소수의 결의와 활동으로 인한 공격 전술이라는 점에서 테러리즘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해커들이 일반적으로 남성 백인이며, 대체로 부유한 계급의 출신들이고, 10대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이들을 부르주아 백인들의 사회적 반항일 뿐 계급 운동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p. 81)
  
o 인물 소개의 상당한 업데이트
 
책에 나오는 인물들 중 마야코프스키를 제외하고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조지 오웰, 존 레논, 피카소,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첨바왐바 등에 관한 글들은 책에서 상당부분 보완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블로그 등의 글을 찾아보기보다 책을 사서 보는 게 좋다.
  
얼마 전 KBS스페셜 -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 <‘Donde Voy>의 진실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여기에는 목숨을 걸고 멕시코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애환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고, NAFTA 12년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라 쿠카라차>와 <관따나메라>의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잘 나타나 있다.
 
o 폭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신채호가 기초한 의열단의 선언문 <조선혁명선언>은 맨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여
불절(不絶)하는 폭력 -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기미독립선언문보다 조선혁명선언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하고, 이를 추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이 민족대표 33인의 기회주의성을 폭로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신채호, 김원봉, 의열단에 대해 재평가하면서, 의열단이 소규모의 암살과 파괴활동을 일삼는 소위 테러조직에서 대중 무장투쟁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글의 묘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떠한 활동이 필요할까. 폭력은 여전히 혁명의 유일무기일까.
이런 문제는 풀기 쉽지 않다.
 
o 2006년 광화문에서
 
책에 나와 있는 글 중에서 제일 동의하기 어려웠던 글이 '2002년, 광화문에서'이다.
과연 인터넷의 역할이 그렇게 지대했을까. 여중생 사건과 관련된 투쟁에서 나의 기억은 저자와 다르다. 그리고 '비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온 네티즌' 중에 많은 수는 '목적의식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에 반감을 가졌고, 대선에서 노무현을 부각시킬 목적을 가졌던 이들이었다.
 
나는 12월 초의 광화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터져나왔던 "깃발 내려"의 연호를 잊을 수 없다. 노란색 스카프를 맨 그들이 자신들의 상징은 놔둔 채, 투쟁의 성과를 노무현에 바치려는 행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권영길 후보가 "얼굴 대문짝만큼 크게 찍힌 트럭", 곧 유세차를 가지고 유세를 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회에 참석한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었던가. 그 많은 대중들을 모을 수 있는 스피커와 연단은 유세차였기에 제공될 수 있었다는 점은 왜 간과되어야 할까. 그 이후에 유세차 형태의 트럭은 대형 집회를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또한 운동권을 여중생 범대위로 뭉뚱거리는 것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여중생 범대위는 좌우편향을 반복하였다. 대중을 끌어들인다고 광야에서, 상록수, 아리랑 등을 노래로 떼웠고, 기껏해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워졌다. 이건 운동이 20년전으로 후퇴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이 전통은 이후 반전평화을 위한 촛불집회에서도 그 양태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촛불을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운동권끼리 모여있을 때에는 '주한미군철거가', '반미반전가' 등을 거침없이 부르면서, 생경한 구호를 아끼지 않았다. 소위 운동권 내의 우파들의 준동은 80년대 후반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당연히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네티즌들과 괴리될 수 밖에 없다.
  
비조직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모여든 대중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로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들을 조직화하는데 실패한 운동권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깃발을 들고 와서 자신의 소속을 표현하는 게 그리 잘못되었던가. 몇 차례 소규모 집회에서 비조직적 대중들이 깃발도 없이 서로간의 공감대를 가지고 자유롭게 진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깃발이 없는 한 자신의 집회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그럴싸한 깃발이 나타나면 그대로 몰려간다. 나는 그게 두렵다.
  
2006년 광화문, 그리고 포항에서 거의 매일 촛불집회가 열린다. 하지만 깃발을 들었던 이들을 제외하고, 이에 관심을 가진 누리꾼은 많지 않다.
 
o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
 
이 글은 "인터넷이 광장이라는 편견을 버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관련된 많은 주제들이 담겨 있다. 정보격차(정보불평등) 문제에서부터, 포털의 횡포, 전자민주주의, 여론조작, 인터넷의 상업화, 정보운동의 활성화 문제가 그것이다. 인터넷을 다시 민중의 광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터넷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현재의 인터넷 소통구조는 약자, 소수자 지원이나 시민들의 미디어 참여운동 방식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현재 구조를 방치한 채 그들의 시혜를 요구하는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하지만, 대안적인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그 자체를 뒤집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계급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이 사유화한 인터넷을 사회화하고, 그 운영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그 안에 다양한 전술적인 활동을 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보통신운동은 그동안 전문 활동가 중심의 운동 방식을 버리고, 대중운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사회화'와 '민주화'는 불가능하며, 소수의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화' 과제를 전 사회운동진영의 공통과제로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정치적 운동과 결합하여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나 안티조선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미디어 운동의 사례가 있습니다. 기존 운동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의 사회화 운동'의 운동 진영내 공통 과제로 만들고 대중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구조를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시스템과 인터넷의 운영원칙인 인터넷 거버넌스를 사회화하고, 정보 내용물 공공성 획득, 기술의 사회화와 그 운영의 민주화가 필수적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이러한 지향을 가진 대안 미디어의 구축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pp. 31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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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17:24 2006/08/0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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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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