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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의 시대를 위한 좌파 정치학: 무엇으로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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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님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요새 이행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되더라. 신기섭님이 2004년 07월 15일 16:34에 쓴 것인데, 처음에 이 글을 보고 이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글인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행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월러스틴의 주장에 대해 그게 아니라고 비판하는 먼슬리 리뷰 편집진의 글인 것이다.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이 자본주의 체제가 왜 강한지를 차분히 살피면서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람시가 옥중에서 했던 정도의 엄밀함을 요구한다. "사회주의가 인간성과 지구를 지키는 것"이라면 그 정도의 책임성을 가지고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에 월러스틴의 책이 번역되어 나와서, 한번 사볼까 했는데, 이 글을 본 후 구미가 사라졌다. 월러스틴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여. 읽어보고 비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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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님의 코멘트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2002년 1월 <먼슬리 리뷰>에 실은 '이행의 시대를 위한 좌파 정치학'이라는 글에서 몇가지 대담한 주장을 합니다. 자본주의가 진정한 체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좌파는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세계 반체제운동이 위계질서가 없는 가운데 횡적으로 연대하고, 반인종주의, 민주화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인즉은 모두 맞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민주의, 민족해방운동 등 3대 좌파 정치가 모두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거나, 선거에서 좌파는 중도좌파를 전술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월러스틴의 글과 나란히 실린 이 글에서 먼슬리 리뷰 편집진은, 자본주의가 체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 반인종주의나 민주화 확산 등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으면 공허할 뿐이라는 것 등의 비판을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월러스틴의 답변은 실패한 전략을 부여잡고 기다리기만 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세상을 좀더 나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 실천을 할 때라는 것입니다.



<먼슬리 리뷰> 편집진 <먼슬리 리뷰> 2002년 1월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세가지 논쟁적인 주장을 제시했다. 첫째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진정한 체제 위기"를 맞았으며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잇는 그 어떤 체제간의 이행기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5세기에 걸친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로" "근본적 변화의 진정한 전망이 있다"는 주장이다. 세번째는, 1848년과 1917년의 혁명과 연결된 두가지 혁명 전략은 모두 누더기가 됐으며, 그래서 월러스틴이 다른 글에서 "1968년 세계혁명"이라고 규정한 운동의 지속적인 영향에 의해 부분적으로 보충됐음에도 전략적으로 혼란스런 상황에 좌파가 빠져있다는 것이다.1) 이 세가지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현 시기를 위한 몇가지 정치적 제안을 내놓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세가지 주장과 여기서 도출된 정치적 제안을 논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진정한 체제 위기"에 빠져있나? 흥미있는 질문이다. 월러스틴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유들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수요의 탄력성과 그에 따른 가격의 탄력성 획득 가능성이 부과하는 제한 안에서 "실제 이윤은 세가지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비용, 투입 및 사회하부구조의 비용, 세금이 그것이다.... 나는 500년동안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반에 걸쳐, 이 세가지 비용이 생산된 가치 전체와 비교할 때 꾸준히 비중이 늘어났다고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의 순수한 결과는, 자본가들의 자본 축적 능력에 위협이 되는 전세계적 이윤 압박이 나타나고 있으며 날로 커진다는 사실이다." ("좌파 정치학" 147쪽.) 게다가 이번 글에서 월러스틴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세계의 탈농촌화"는 노동력 비용 증가를 억제하기 어렵게 한다. (2) "공해처리의 생태적 한계"는 자본가들이 환경 비용을 외부화하는 데 제약을 가하고 있다. (3) "세계의 민주화 확산"이 "건강, 교육, 평생 소득 보장"을 위한 비용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는 점증하는 움직임을 이끄는 요소다. 이 세가지 요소는 그래서 비용 증가를 뜻하며, 전지구적 이윤 압박을 유발하고,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를 부른다.

이 주장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예컨대 단위 노동비용(곧 물리적 단위 생산량 당 노동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이런 난점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다. 월러스틴은 "전지구의 모든 부분을 통틀어서 생산이 100년, 200년, 300년전보다 더 '효율적'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전세계 생산이 생산자 관점에서 더 '효율적'인지에 회의적일 뿐 아니라, 그 추세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효율적인 생산의 승리라는 것은 단지 이런 하락세를 늦추는 시도에 불과하다. 지난 20년동안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공세 전반은, 첫째 임금과 세금을 낮추고 두번째로 기술 발전을 통해 투입비용을 낮춤으로써 생산비용 증가를 둔화시키려는 거대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록 이 공격의 예봉을 맞은 이들의 고통은 너무나 클지라도 이 성공의 전반적 성과는 아주 제한적이며, 그 제한적 성과마저 되돌려질 상황에 처했다고 믿는다. ("좌파 정치학" 147쪽.)


이것이 자본에 날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외부 영역의 사라짐 곧 전 세계가 세계경제로 통합되는 것과 주변부의 탈농촌화로 자본이 내재적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 옮겨갈 장소가 날로 좁아진다는 점 때문이라고 월러스틴은 지적한다.

이는 대담한 주장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우리 견해는 이런 생각과 더 이상 달라질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장기적인 효율성 하락 추세 곧 자본주의 중심과 주변부의 생산성 하락 추세를 발견할 수 없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비용이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맞고, 환경 비용과 세금도 늘고 있지만 (물론 세금이 어느 계급에게 떨어지는지도 문제다) 중심부건 주변부건 전지구 어디에서도 착취율을 떨어뜨리는 이윤 압박 같은 현상은 없다. 노동 등 각종 비용 증가를 감당하고도 남는 생산성 증가와 환경 비용을 외부화하는 자본의 능력, 이 두가지가 심각하게 약화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세 국가의 위기"가 있다면, 그건 슘페터가 관찰했듯이, 계급에 기초한 경제 체제가 세금이 자본/이윤에 너무 깊이 침투하지 말 것을 요구해서 생긴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2)

우리가 주장하듯 전체 체제의 착취율 증가가 나타난다는 점은, 과도한 생산시설과 실업/불안전 고용 문제와 함께 투자처를 찾는 자본의 과잉에 자본이 직면해왔음을 뜻한다.3) 세계의 탈농촌화는 대부분 주변부에 존재하는 실업자 곧 산업 예비군 규모를 더욱 증가시킨다. 그들의 임금과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10억명에 달하는 주변부 사람들이 예비군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영원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실업과 불안전 고용, 영양실조가 만연한 상황이다. 이 상대적인 잉여 인구, 패논이 말한 "지구의 비참한 이들"이 이 세계 어디에서도 이윤을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축적의 절대 일반 법칙은 상대적인 잉여 인구의 증가와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양극화 심화를 지적했다. 이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 이제는 전세계이다.

월러스틴의 두번째 주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근본적 변화의 전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적하는 "근본적 변화"가 꼭 진보적인 성격은 아니라면서, "아마도" 진보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좌파 정치학" 146쪽) 이 주장은, 오늘날 투쟁이 세계체제 곧 지구화에 대항한 것이며, 각 개별국가에서 국가 장악에만 집착한 과거의 투쟁들과 대조적으로 전지구적 이행의 정치학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그의 세번째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번째 주장은 1848년과 1917년이 각각 상징하는 19세기와 20세기의 좌파 전략은 국가의 장악과 그에 이은 사회 변혁을 목표로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실용적이지도 적합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1848~1968년 기간 동안 유행하던 세가지 세계 사회주의 운동 곧 사민주의, 공산주의, 민족해방운동은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세가지 운동 모두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도 세계를 바꾸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이 전략에 대한 깊은 환멸이 이 전략과 나란히 존재하게 됐고, 그 사회심리적 결과인 심각한 반 국가주의도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1968년의 세계혁명은 새로운 "정신"을 형성하고 대안적인 전략을 키우면서,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훨씬 더 지구적인 모형을 대변하는 것으로 월러스틴은 여긴다.

그는 지금 적용할 수 있는 1968년식 혁명적 정치 기회 몇가지를 제시한다. (1) "포르투 알레그레 정신" 곧 "전세계의 다양한 반체제 운동을 비계층적으로 통합하는 일"을 촉진하기 (2) 권력 장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좌파 세력" 형성을 위한 "방어적 전술" 차원에서 방어적 선거 정치기법을 활용하기 (3) "살살 다뤄서는" 안되는 중도 좌파 정부 아래서도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4) "자유주의 중도세력이 자신들의 이론적 기호를 실천"하도록 요구하기 (5) 반인종주의가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기준"이라는 원칙을 받아들이기 (6) 비 영리기관의 확산을 통한 탈상품화를 촉진하기 (7) "우리가 기존 세계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기. 어떤 이행기 정치 전략에서든 핵심 문제는 "조직이 아니라" "통찰력"이라고 월러스틴은 결론짓고 있다.

우리는 월러스틴의 이행 전략이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기에 1848년(아마도 마르크스를 뜻하는)도, 1917년(레닌)도 완전히 과거가 아니다. 이 말은 1848년 파리에서 벌어진 일과 191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또는 혁명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또 그 혁명전략에 변화가 필요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맞서는 혁명 투쟁에는 월러스틴의 견해가 암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역사적 연속성이 있다. 지구화 자체가 국가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 아래 세계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투쟁은 계속 국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우리는 1968년 사건이 비록 극적이기는 하지만 "세계 혁명"이라고 보지 않으며 혁명적 투쟁사에서 근본적인 단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적 반란의 상징으로서 포르투 알레그레의 중요성에 동의한다. 그런데, 사회운동간 연합이 필수적이라고 우리도 믿지만,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차지하는 계급운동의 핵심 전략적 구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또 선거 투쟁은 단순한 방어적 전술이 아니라 장기 혁명에 통합되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필요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화의 개념이 너무나 타락한 나머지, 현재 세계의 진정한 민주화의 가장 큰 적은 미국 제국주의 국가라는 점이 거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바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유주의 중도세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로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테러에 대한 지구적 전쟁의 국면에서 미국의 이른바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사라졌다. 물론 이는 과거 역사를 보면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종주의에 맞선 투쟁은 그 어떤 투쟁보다 시급한 것이지만 (마르크스는 "까만 피부색으로 낙인찍히는 곳에서 흰 피부의 노동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다"고 썼다),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내부에 있는 보편적 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독점에 대한 공격에 시비걸 이유는 없지만, 그 공격은 자유주의의 반독점(반트러스트)의 환상 차원에서가 아니라 독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의 한 부분으로 이뤄져야 한다. 탈상품화 또한 가치있는 목표이며 시민사회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한가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이고 폭넓은 반자본주의 혁명의 관점에서만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가능하다. 이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관련한 월러스틴의 충고는 잘 받아들였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가 항상 설명했듯이, 우리는 단기적인 조건과 장기적으로 타협해서는 안된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두가지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최근 몇년동안 제국주의에 관해 중요한 분석을 제기했던 월러스틴이 제국주의 곧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두번째는, 물질적 조건, 사회 세력, 정치 조직에 충분히 근거를 두지 않은 좌파적 낙관론의 위험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행이 벌어질 수는 있다. 그런데 무엇으로 이행이란 말인가? 전지구적 구조 위기의 시대에, 이 체제는 자기 내부의 파괴적 잠재력을 해소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우리는 세계가 좀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이행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는다. 역사상 첫번째의 사회주의 투쟁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상품화와 멸절의 무자비한 세력에 대한 전지구적 투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과소평가한다면 그건 태만한 것일 뿐이다. 사회주의는 더 이상 (만약 과거엔 그랬다면) 단순한 유토피아적 꿈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인간성과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주석

1. 이 글에서 논하는 월러스틴의 주장은 여기에 실린 그의 글에서 충분히 전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주장의 상당 부분은 과거 그의 저작에서 제기한 다른 쟁점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답변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그의 최근 저작들을 둘러봤는데, 주로 검토한 것은 "21세기를 위한 좌파 정치학? 또는 다시 한번 이론과 실천", [새 정치학], 22:2 (2000), 143~159쪽이다. 아래서는 이 글을 "좌파 정치학"이라고 줄여 부른다.
1. Wallerstein's arguments in the talk reproduced here are not fully explicated, since much of this has to do with points that he has been making for some time in his work. In preparing this response we have therefore turned to some of his other recent writings, principally his article "A Left Politics for the 21st Century?, or Theory and Praxis Once Again," New Political Science, 22:2 (2000), 143-59. In what follows this article will be cited as "Left Politics."

2. 조지프 슘페터, "과세 국가의 위기", 슘페터의 [자본주의 경제학과 사회학], 리처드 스웨드버그 편 (프린스턴: 프린스턴대학 출판부, 1991), 112~115쪽.
2. Joseph Schumpeter, "The Crisis of the Tax State," in Schumpeter, The Economics and Sociology of Capitalism, ed. Richard Swedbur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112-15.

3. 이 주장의 더 정확한 표현은 이번호 "이달의 리뷰"를 보라.
3. For a more detailed rendition of this argument see the "Review of the Month" in the present issue.



원문은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번역: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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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2 20:08 2005/04/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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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란 무엇인가?(Erik Olin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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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소심이 님이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 수립을 위한 참고자료로서 모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다시 퍼온 것이다. 알다시피 에릭 올린 라이트는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글은 그가 입장을 바꾸기 전의 글에 의존한 듯 보인다.

 

최근에 80년대에 번역되었던 책들을 자주 접하고 그들 중의 몇권을 가끔씩 읽게 된다. 거의 10-20년의 기간을 두고 다시 보니 그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아마 이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80년대에 이런 글이 읽힐 수 있었을까.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에 대해 잘 정리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공무원노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장 그들을 왼쪽으로 이끌어가기 어렵고, 보이는 행태에 실망할지언정, 변혁을 고민한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관료제에 대한 좀더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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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란 무엇인가?(Erik Olin Wright)


잘 알다시피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의 현대적 기원은 그람시와 폴라니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더 최근에 이 전략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앙드레 고르쯔(1967년 저작, Socialism and Revolution)이다. 이후 이 전략을 계승하는 그룹은 사민주의 좌파(대표적인 논자로는 에스핑 안데르센, 존 스테판), 유로코뮤니즘 좌우파(대표적인 논자로는 마그리, 밀리반트, 풀란차스, 라이트)이다. 이 전략은 레닌주의와 사민주의 우파(대표적인 논자로는 크로슬랜드) 사이의 중간적 노선이다.

 

아래의 내용은 라이트(Erik Olin Wright)의 글-1985, [국가와 계급구조], 이다(5장 결론: 사회주의 전략과 국가)-을 중심으로 (약간 다른 논의들을 결합하여)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라이트의 글은 상당히 난해한 논의들이 많기 때문에, 이 내용의 정리는 가능한 저자의 논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풀어쓰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 정리는 여전히 충분히 풀어쓰지 못했고, 활동가들에 맞추어 정리하였다. 특히 용어 선택에 문제가 많다. 그리고 상세한 출처는 생략하였다.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1. 개혁주의, 급진적 혁명주의, 비개혁주의적 개혁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국가(관료제와 의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의회집권은 사회주의 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좌파 내에는 크게 세 가지 입장-개혁주의, 급진적 혁명주의, 비개혁주의적 개혁-이 존재한다. 


개혁주의(전통적 사민주의 우파)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기초로서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가기구를 중립적인 기구처럼 본다. 그러므로 이들은 국가기구가 다양한 계급세력들에 의해서 매우 상이한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이들에게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적 국가기구를 통해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일련의 정책들 혹은 개혁들로 간주된다.
급진적 혁명주의(전통적 레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로 이행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반적으로 배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구조적 한계(계급성)를 가지고 있어서 국가기구를 이용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의 지배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들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계급에 의해 장악될 수 없고, (선진 및 대중교육을 위한 수단 이상으로) 이용될 수 없으며, 마땅히 파괴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개혁주의와 급진적 혁명주의 사이에서 국가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사민주의 좌파와 유로코뮤니즘 좌파이다. 유로코뮤니즘 좌파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루시오 마그리는 선진자본주의에서의 사회주의 전략은 의회에 참여하지만 이 참여가 선거행위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전통적인 형태의 대의제 의회민주주의에다가 여성운동, 청년운동, 실업노동자의 운동 등을 통해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추가시키는 일이며 대중의 활성화와 조직화를 보다 더 확대시키는 일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에 대항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우리는 개혁주의 좌파 정당이 정부에 들어가서 곧 혁명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좌파 정당이 국가권력을 아직은 충분히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부 자체를 이용하여 대중운동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대중운동의 협조를 위한 공간과 도구를 창출해 줄 수 있기를 제안하고 있다"


라이트는 이러한 유로코뮤니즘 좌파의 입장을 "자본주의 국가가 그 자체의 붕괴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라는 명제로 정리하면서 이를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라고 명명한다. 이 명제는 (개혁주의와 유사하게) 좌파들이 사회주의적 목적-사회주의적 전제조건의 창출-을 위해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를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개혁주의와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특정의 사회주의적 변혁에 대해 구조적 한계를 부과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기구에 '계급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입장은 (레닌주의와 유사하게) 사회주의로의 지속적 이행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구조의 궁극적 붕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레닌주의와 달리) 이 입장은 선진자본주의라는 조건 하에서 좌파가 자본주의 국가기구들을 통제하고 자본주의 국가권력 자체를 공격하기 위해 국가기구를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앞에서 정리한 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 문제-즉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성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가 사회주의 전략을 위해 이용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 보자.


2. 국가의 계급성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성'을 가진다는 것은, 국가가 자본축적과정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본축적에 유리한 정책과 조치들을 취하는 선택적 기제(selective mechanism)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가 아니므로 생산을 명령하거나 통제할 권리가 없다. 사적 자본가만이 생산을 명령하거나 통제할 특권을 가진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은 자본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조세에 의존하고, 이 조세는 상당부분 자본 축적의 규모에 의존한다. 또한 노동자계급 및 신중간계급의 일자리와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또한 상당부분 사적 자본의 투자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가는 여러 계급으로부터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자본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자본축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내의 여러 부서들과 공무원들의 개별 이익조차도 자본축적을 유지와 부합될 때에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국가정책은 자본축적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미 (좌파가 장악하건 우파가 장악하건 간에) 자본주의 국가는 그 자신의 존립을 위해 '자본축적의 안정화'라는 요구를 내재하고 있다. 즉 "국가기구들과 국가제도의 체계는 자본축적의 이익에 상응하는 '계급적 선택성'을 내재하고 있다"(오페)

 

오페의 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은 세 가지 방식-조정적, 억압적, 은폐적 선택성-으로 나타난다. 이중 조정적 선택성과 억압적 선택성은 체계통합(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양립불가능성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되고, 은폐적 선택성은 사회통합(이것은 계급갈등을 완화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된다.

  
첫째, 조정적 선택성은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다양한 갈등하는 정책안이 등장할 때 국가가 총자본가의 이익에 일치하는 정책, 제도, 조직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개발정책 안들이 나왔을 때, (물론 계급투쟁에 의해 매개되지만) 총자본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억압적 선택성은 국가가 반(反)자본가적 활동과 이익에 대항하여 자본일반을 보호하려는 선택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국가가 노동운동을 직접적으로 억압하거나, 노동자를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기제를 통해 고립·해체시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가로막거나, 친노동자적 정책들이 정책의제로 상정되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뒤에서 보다 상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문제(친노동자적 정책의제의 배제)만 예를 들어 보자. 민주노동당에서 제시한 '부유세'(이 정책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쉽게 정책의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국가기구 및 제도체계가 자본주의적이고 이것도 강하게 친자본가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본적으로 부유세 상정안은 이와 관련된 여러 제도들과의 조화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쉽게 정책의제로 상정되지 못한다. 또한 의제형성 및 통과 과정에서 의원들에 의해 다양하게 수정된다. 마지막으로 통과가 되었을지라도 정책집행 과정에서 관료기구에 의해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정책집행이 약화되거나 폐기된다.


셋째, 은폐적 선택성은 국가가 사회통합을 위하여 국가의 제도적 기제 속에 나타나는 자신의 계급적 편향성을 일반이익이나 민주적 정당성으로 은폐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국가에 심각한 모순을 야기한다. 즉 국가는 한편으로는 잉여의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기업들을 위하여 자본축적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야 할 절박성을 지니는 동시에 정권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행사상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함을 지닌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이율배반적 요구가 자본축적 조건의 여건 조성과 정당성 확보 사이의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자본축적의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시 위하여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시켜야 하는 동시에 (계급투쟁이 매개될 때) 정당성을 위하여 노동력의 탈상품화(예를 들어 복지정책)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이 복지정책 중 일부는 잉여가치의 창출과정에 기여하지 않은 채 자본축적에 부담 또는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노동계급의 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3. 개혁주의(사민주의) 전략과 혁명적 급진주의(레닌주의) 전략의 한계

 

이제 국가의 계급성에 대한 이상의 이론적 논의를 기초로 개혁주의 전략과 혁명적 급진주의 전략의 한계를 살펴보자.


먼저 개혁주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개혁주의 전략은 조정적/억압적 선택성과 은폐적 선택성의 내적 모순구조를 잘 활용하여 여러 개혁정책을 수행하였고, 부분적으로 노동자 계급 역량의 강화에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개혁주의 전략은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관련하여 국가구조에 내재한 '계급적 선택성'의 문제를 과소평가하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국가구조의 붕괴 없이는 친노동자적 정책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구조의 붕괴란 레닌주의적 의미보다는 국가기구의 계급적 선택성의 약화 혹은 제거라는 의미이다. '붕괴'라는 용어의 대중적 불신을 감안하여 좀 더 풀어쓰자면, 국가구조의 중립화와 정책형성과 집행에의 대중적 참여 구조의 강화이다. 개혁주의 전략은 자본주의적 국가구조의 붕괴보다는 주로 개혁적 정책형성을 경쟁적 정당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주의의 틀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사회주의 정책을 거의 관철시키지 못하였고, 20세기 후반에 개혁주의적 정책 수준의 여러 정책형성 및 집행에서 후퇴하였고, 새로운 정책의제-특히 소수자 및 새로운 가치에 입각한 정책들-의 형성을 상당부분 배제하였다. 이것은 서구에서 신사회운동과 대안정당운동을 낳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나는 신사회운동론의 전략 전반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논의는 좌파정당과 노조의 혁신을 위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문제를 보다 구체화해보자. 먼저 정책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보자. A정책은 철저한 자본가의 단기적 이윤확보에는 '최선'이 되는 반면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친자본가적, 반노동자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최근의 비정규직 개악안), B정책은 자본가에게는 단기적으로는 손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거나 또는 '차선'이 되고, 노동운동에 부분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중립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연대임금정책과 경영참가정책). C정책은 자본가에게는 불리한 반면, 노동운동에 유리한 친노동자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임노동자 기금정책이나 보편적 기초소득정책). 민주노동당이 제1당이 된다면, 여러 진통이 있겠지만 B정책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B정책이 정부 수준에서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미지수이다. 정부까지 장악하여 B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해보자(이것은 스웨덴 사민주의가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 정책이 관철되는 과정에서의 견고한 노조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최선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C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스웨덴과 같은 최선의 상황에서도 C정책의 관철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 한 요인이 자본가의 격렬한 저항에 견딜 수 있는 국가기구의 붕괴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에의 국가기구 내에 시민참여구조 및 실질적인 권한부여 전략이 취약했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기구의 붕괴' 없는 개혁전략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형성 및 정책집행에 성공할 수 없었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정치의 잠재력을 훼손함으로써 B수준의 정책 또한 지키기 어려웠다.

개혁주의자들이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을 과소평가하였다면, 역으로 급진적 혁명주의(레닌주의)자들은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을 과대평가하였다. 레닌은 국가의 핵심을 '관료제'(행정부와 군부)로 보는 반면, 의회를 '말뿐인 시장'으로 취급한다. 그는 보통선거권과 부르주아 의회가 대중을 현혹시켜 사회질서를 정당화해줄 뿐만 아니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인구의 상당수의 선거권으로부터의 배제, 부르주아 언론, 대의제도의 기술상의 문제로 인해) 부르주아에 의해 장악될 수밖에 없고, 설혹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자본의 권력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에, 부르주아 의회를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기구라고 보았다. 그는 관료제가 자본에 기능적이고,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점에서 자본가 계급을 위한 도구라고 보았다. 앞의 국가에 대한 이론적 논의로 표현하면, 레닌은 국가를 강한 조정적/억압적 선택성을 내재한 강한 응집체로 보고 반면 은폐적 선택성을 부차적 요소로 다룸으로써 국가기구에 내재한 내적 모순과 이용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즉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C정책뿐만 아니라 B정책을 관철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였고, 나아가 B정책이 노동계급 역량 강화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여지 또한 배제하였다.


이에 따라 레닌이 선택한 전략은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기구를 수립하고, 기존의 의회체제를 '활동적인 체제'-전위당과 소비에트-로 대체하는 이중권력(dual power) 전략이었다. 이중권력이란 새로운 혁명적 국가기구가 먼저 확립되고 구정권의 기구와 더불어 존재하게 되는 비교적 짧은 혁명적 상황의 시기를 의미한다. 사실상 각각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셈이다. 레닌은 이러한 전략 하에서 소비에트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위당이 관료제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대중참여를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하였고, 나아가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면 관료제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질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레닌의 전략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여러 분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레닌은 관료제의 문제를 과소평가하였다. 그는 관료제가 자본주의적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속성이 제거되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둘째, 레닌은 전위당과 소비에트의 내적 모순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전위당의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성(호응성)을 지지 못한다면 불가피하게 관료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책임성 있는 전위당의 지도부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재생산하는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제도 및 방책들에 대한 적절한 논의를 결여하고 있었다. 또한 레닌의 소비에트 집회에서 대중들 간의 의견이 불화할 경우 이러한 의견불화를 절충할 수 있는 제도 및 방책에 대한 적절한 논의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결국 의견불화를 조정하지 못할 경우 집회는 마비되고, 점차적으로 대중의 집회참여는 줄어들고, 다시 관료제의 의사결정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레닌은 소비에트 집회가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역량을 가질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하였다. 그는 '교환을 위한 생산'에서 '사용을 위한 생산'으로 전환하면 행정이 단순화될 것이고,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교육을 통해 노동자를 훈련시킨다면 노동자들이 행정상의 통제와 책임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지만 당시의 러시아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였다. 다수는 문맹이었고, 노동자계급은 소수였고, 노동시간의 단축은 곤란하였다. 셋째, 레닌은 여전히 관료제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기술전문가 집단에 대한 통제문제를 간과하였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업무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위의 행정책임자와 아래의 노동자계급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도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전위당과 소비에트를 통한 관료제의 통제 구상은 일정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앞에서 지적한 여러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음으로 인해 한계를 노정하였고, 결국 관료제의 문제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레닌의 이중혁명 전략은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않은 후진국에서 가능한 전략이었지만, 선진자본주의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통적 레닌주의 전략은 선진국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국가의 이용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포착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가의 이용가능성의 문제에 대한 라이트의 답변은 아래에서 제시된다.
    
4.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축적에의 의존성과 기능성(계급적 기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이용(의회에서의 부상 또는 관료제에의 집권)을 통해 계급적 선택성을 약화 또는 제거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처럼 국가구조 내의 계급적 선택이 약화될 경우,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과 국가의 계급적 기능성과의 거리가 한층 멀어질 수 있고, 이것은 사회주의적 정책의 형성 및 집행의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바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모순적 상황을 활용하여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이러한 비개혁주의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좌파정당은 부르주아 정치의 틀 내에서 노동계급의 당면계급이해(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와 근본계급이해(사회주의로의 이행)간의 연계를 촉진시킬 것인가?(조정적 선택성의 약화) 둘째, 좌파정권은 국가 관료제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셋째, 좌파정권은 어떻게 국가 관료제를 노동계급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억압적 선택성의 약화) 넷째, 좌파정권은 우파의 저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 첫 번째 문제부터 보자. 비개혁주의자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경쟁적 정당민주주의에서의 경쟁이 노동자계급의 근본이해를 당면이해를 위한 투쟁으로 대체하는 기본 메커니즘 중의 하나임을 인정한다. 선거운동은 지지자들의 당면이해가 걸린 공약을 촉진하고, 당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구조적 전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이다. 더구나 선거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노동계급 이외의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자본주의의 재생산이라는 요구에 부합하는 개혁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좌파정당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정치의 틀 내에서 당면이해와 근본이해를 연계시킬 수 있도록 촉진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통한 '노동력의 부분적 탈상품화' 전략과 '자본축적의 정치화 과정'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력의 부분적 탈상품화는 '교환가치로서의 노동력의 판매'와 '사용가치의 소비를 통한 인간의 재생산'간의 연계를 부분적으로 약화시킨다. 노동력의 탈상품화의 심화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당면임금투쟁(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상승하려는 투쟁)을 점차로 국가로 하여금 사용가치를 제공하라는 투쟁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국가계획의 확산,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대한 국가의 통제, 국가에 의한 보다 광범위한 생산영역의 직접적 조직화에 의해 상품관계의 무제한적 힘이 약화되고 축적과정 자체의 점진적 정치화가 나타난다(물론 최근에는 역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축적과정 내에서 국가의 점증적 개입은 자본가 노동간의 경제적 갈등을 정치적 갈등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 예들은 당면이해와 근본이해의 분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복지제도가 보편적 복지제도로 형성되지 못한다면, 노동력의 탈상품화 전략은 완전히 상품화된 노동자(완전한 임금노동자)와 덜 상품화된 노동자(학생, 연금생활자, 실업자, 불완전 고용층)로 노동자계급 내의 새로운 분할을 야기하여 노동자간의 적대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축적과정의 정치화는 자본축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신념을 정치적 수준에서 재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선진자본주의 내에서 좌파정당이 채택하는 성공적으로 통과시킨 정책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내용과 이 정책의 형성 및 집행과정을 둘러싼 계급투쟁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좌파의 정책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형성 및 여타계급과의 계급연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세부적으로 고려하면서 제시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을 둘러싼 참여 및 투쟁의 방안까지 제시하여야 한다.

 

(2) 두 번째 문제는 관료제(행정부 및 공공부문)의 통제 문제이다. 좌파정권이 노동계급의 근본이해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제도화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좌파정권은 그러한 정책을 입법화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정책을 실제로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관료제의 실제 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관료제 내에는 좌파정권에 저항적인 최상급 공무원과, 노동자계급과 부르주아 사이에서 모순적 계급위치를 점하는 중급 및 중상급 공무원, 그리고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적 속성(국가정책의 수립과 집행으로부터 배제된 속성)을 지니는 하급공무원으로 나뉜다. 국가는 재정위기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노동과정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함에 따라 공무원들의 노동자계급화 경향은 증가될 것이고, 이것은 공무원들과 민간부문 노동자계급과의 잠재적 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하급 공무원들이 노동계급과의 연합에 참여한다면, 최상층의 저항을 상당부분 약화시킬 수 있다.


물론 당면이해에서 조세와 국가부문의 임금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무원과 민간부문 노동자계급간의 분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열의 장벽을 없애려면 공무원들 역시 정치적 요구-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요구, 국가공공사업의 운영에 대한 시민 및 소비자의 참여 요구 등-를 둘러싸고 조직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시점부터 공무원 및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정책역량-공무원들의 자기이해와 공공성을 조화시키는 정책개발-과 운동방식-노동운동 및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대-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를 붕괴시키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전략의 성패여부를 공무원 노조의 조직화 여부에 크게 의존한다.

 

(3) 세 번째 문제는 국가관료제를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 강화에 이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주장의 핵심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을 손상시켜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헤게모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국가구조를 붕괴시킨다(억압적 선택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풀란차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 국가의 중심적 기능 중의 하나는 부르주아지를 조직화하는 반면, 노동자계급의 조직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법 앞의 평등, 비밀투표, 법적 범주로서의 '계급'의 부정(유권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은 사람들을 계급성원으로부터 원자화된 시민으로 변형시키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국가의 억압적 기구는 노동자계급의 조직역량의 성장을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조직와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국가조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 좌파의 집권은 사회운동에 대한 비억압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억압조치를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좌파정권은 대중운동의 다양한 실험과 성장을 위한 보호막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당한 난제가 존재한다. 좌파정권은 국민들에게 사회질서의 유지와 책임성을 입증해야만 하고, 이것은 대중운동의 확대를 제한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좌파정권은 극우파와 극좌파의 전술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파세력들은 이러한 국가의 대중운동에 대한 비억압을 다양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만일 좌파정권이 선택적으로 우파를 억압할 경우 중간계급의 이탈을 낳을 수 있다. 또한 의회 밖의 극좌파가 고도의 파괴적인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좌파정권이 극좌파를 억압할 경우 많은 좌파의 동요가 나타날 수 있다. 좌파정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좌파정권은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단기적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장기적으로 훨씬 엄청난 득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자계급을 주기적인 투표행위로 제한하여 고립화·원자화시키는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이들이 조직된 집합체의 성원으로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길을 넓히는 것이다. 국가 및 지역기획회의에 공장대표나 평의회 대표의 참여, 국가 산업의 자주관리 구조의 촉진 등을 통한 국가의 '부분적 탈관료제화'는 정치참여를 보다 집합적이고 공적인 정치생활의 형태로 전환시킬 수 있고, 노동자계급 형성을 확장, 심화시킬 수 있는 잠재적 여지를 가지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이와 관련된 국가적 수준의 방향과 지방적 수준의 방향에 대한 많은 정책들이 개발되어 있다. 여러분은 지방적 수준에서의 대표적인 실험인 참여예산제를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추후 소개하겠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틀 내에서 이러한 탈관료제화 전략은 지속적으로 제한될 것이고,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애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받을 것이다. 당연히 밟아야할 과정상의 규칙들은 새로운 민주적 국가행정에 참여하려는 민중조직의 주도권을 끊임없이 깨뜨리려 할 것이다. 또한 관료적 특권은 행정적 분권화(더 작은 단위로의 분권화와 시민으로의 분권화) 시도의 효과를 해칠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주40시간 노동시간은 참여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이 요구된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안적 시도가 싹트는 데 기여할 것이고, 더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나타내 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결국 좌파는 의회에서의 다수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일 뿐만 아니라(이 자체로 험난한 과정이다) 집권 이전에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특히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상당한 활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적 역량이 없다면, 노동계급의 정부에의 참여는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의 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하급 공무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것은 선거 승리 이전에 공무원 노조의 활성화와 민주노조와의 긴밀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셋째,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패권(사회주의적 대안이 가능하지 않다)을 넘어서서 노동자계급 내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관료제에의 참여는 상당부분 지연될 것이다. 넷째, 선거투쟁을 다양한 사회운동과 체계적으로 연결시키고, 선거전략을 국가수준의 정부 못지 않게 지역 수준에 맞추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당의 프로그램은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주도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어야 하는 동시에 천편 일률적이고 관료적인 방향으로 구성되지 말아야 하고, 사람들의 행위에 평등, 참여, 자율성, 관용 등의 사회주의적 문화가 풍부하게 배양되도록 해야 한다. 
 
(4) 네 번째 문제는, 부르주아지는 좌파정권과 노동자계급이 국가기구를 붕괴하는 풍부한 실험이 진행되도록 기다리지 않고 저항한다는 데 있다. 부르주아의 저항 방법은 첫째, 다양한 형태의 자본파업(자본도피, 국제금융기구에 의한 신용단절, 통상금지), 둘째, 무장된 반동혁명(쿠데타), 셋째,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 공작(칠레의 사례) 등이 있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추후 논의로 넘기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즉 좌파세력은 지속적인 군부혁신과 민주화를 추진하고, 국제사회의 세력균형을 통해 제국주의 세력의 군부지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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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2 17:42 2005/04/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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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뚜알레그리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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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실험을 상세히 소개한 책자입니다. <민주주의>(이소)라는 책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듯하네요. 참여예산제 자체가 심의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임혁백 교수도 심의(토의) 민주주의의 예로서 포르투 알레그레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지방자치를 고민하는 동지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뽀르뚜알레그리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  
: 마리옹 그레 외   : 김택현   : 박종철출판사  

정가 :  9,000 원  
출간일 :  2005년 02월 25일  
쪽수 :  216 쪽  ㅣ 판형 : B6 ㅣ 판수 : 1  
  
참여 예산제를 통해 뽀르뚜알레그리는 제4의 권력- 즉 시민이 직접 결정권을 갖는 시민의 권력- 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은 매혹적이다. 물론 이것이 완성된 모델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가 참여 없이도 아주 훌륭하게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맞서서, 뽀르뚜알레그리의 경험이 확인해 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동맥이 근대 사회를 관통한다면 그 심장은 바로 참여자라는 점이다.

서문

1 "붉은도시"' 뽀르뚜알레그리
2 참여 예산제, 민주주의의 혁신
3 효율성과 참여
4 제도화와 범위
결론 다른 민주주의를 향하여

참고문헌 
 


 



1988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노동자당이 주도한 좌파연합, 즉 "인민전선"이라는 이름의 좌파 연합이 놀랍게도 뽀르뚜알레그리의 시 정부를 장악했다. 초기의 약간의 산통을 거친 뒤, 새로운 시 정부는 혁신적인 시도에 착수했는데, 몇 년 사이에 그들의 시도는 예상치 못한 비중을 갖게 되며, 마침내 실질적인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바로 시 주민들이 시 예산을 짜는 데 참여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15년이 지난 뒤 브라질의 지방자치단체 백여군데와 라틴아메리카의 곳곳에서 뽀르뚜알레그리의 실험을 배우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이 실험에 대한 논평이 나왔고, 노동자당과 그 연합 세력이 지방자치단체장에 네 번이나 연이어 당선되는 데 이 실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5년 1월에, 뽀르뚜알레그리는 제5회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한다. 이 도시는 마치 "다른 세계"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고,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수도"로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이러한 매혹의 이유들을 이해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거의 모든 곳에서, 지배 계급과 시민 사이의 간격은 더 벌어지고 있고, 여기에 정치 체제의 잠재적인 정당성 위기가 수반된다. 게다가 민중에 대한 엘리트들의 아주 오래된 편견은 점점 더 정당화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여성들은 책임 있는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옹호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보통 시민들은 시정의 전반적인 문제에 어둡기 때문에 직접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는 생각도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 세상의 고통은 대중들보다는 그 지도자들 탓이다"라는 것을 역사의 경험이 보여 주지 않았는가? 선출된 공직자나 전문 관료에게만 전적ㅇ로 의지하는 것는 특히나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끼리 그 의미를 정의했던 "진보"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파국으로 귀착되었고, 훨씬 더 많은 경우에느 사회를 양극화시켜 왔다.

이런 맥락에서, 참여 민주주의라는 전망은 점점 더 호소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지역 수준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두 가지 메커니즘을 통해 실행되었다. 먼저, 모든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주민자문위원회가 있거나 아니면 좀 더 형식(지역활동가들의 선임, 선거, 기타 등등)을 갖춰서 구성되는 주민자문위원회가 있다. 이것을 통해 지역의 사안들이나 시정에 관한 특정 문제들에 대해 평범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위원회는 2002년에 프랑스에서 8만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에 법률에 따라 설치되었다. 다음으로, 추첨에 의해 선출되는 "시민 배심원"들이 있다. 이는 고대 아테네에서 널리 알려졌고 여러 현대 국가에서도 형사 배심원의 구성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원리를 따른 것인데,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에도 다시 도입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실험들이 유럽의 나라들, 가령 영국, 독링, 에스빠냐 등지에서 시도되었다. 대부분, 이 배심원들은 자문 역할을 맡았을 따름이다. 물론 지방 민주주의는 위로부터의 정치보다는 "함께하는 정치"를 약속하며, 제도적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자유롭게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선출된 공직자들을 시민들이 소환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매우 자주, 주민들이 개진하는 견해는 순전히 자문의 값어치만 가지며, 이론 인해 참여자들은 곧 지루해하며 그만두게 된다. 자신들에겐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 맡겨지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참여 과정에서 방치되는 부류는 청년들, 가장 불안정한 계층들, 이주민들이다. 중간층들이 이 참여 과정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주민 전체를 별로 대표하지 못한다. 더욱이, 유럽에서는 참여 체계가 지역의 미시적인 문제들이나 아주 특수한 문제들만 다룬다. 정치는 경웅으로 축소되는 경향을 띠며, 참여는 무엇보다도 공공 정책의 현대화를 지향할 따름이다. 권력 관계를 문제 삼는 역동적인 참여는 아주 드물다. 갈등이 표현되는 새로운 특을 제공하기보다는 갈등을 피하려 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뽀르뚜알레그리는 훨씬 더 앞선 것으로 보인다. 따르쑤 젱루(Tarso Genro)는 브라질의 자치단체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공헌한다. 유토피아적인 지평이 이제 현실로 구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2004년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좌파가 패했어도 참여예산제를 재고하는 일은 없었다. 신임 시장인 죠세 포가까(Jose Fogaca)는 자신이 "노동자당 경영의 성과"라고 간주하는 참여예산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체로 뽀르뚜알레그리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와 그 외 유럽 국가들에서도 점차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진정한 토의 명령의 등장에 대해 운운할 수 있었던 그곳에서 말이다. 50여 군데 유럽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참여예산제의 실험에 뛰어들었다. 다른 참여체계를 시도하는 곳도 있는데, 그런 체계도 유망해 보인다.

 

리우그란디두쑬 주의 주도인 뽀르뚜알레그리가 2005년 1월에 다른 형태의 지구화를 옹호하는 이들을 네 번째로 불러 모았다면, 이는 그곳에서 발전해 온 참여 민주주의가 그만큼 모범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림으로써, 이 실험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쇠망을 선고해 버린 것만 같았던 정치를 소생시켰다. 시 정부의 차원에서, 뽀르뚜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도는 가난한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공공 정책의 "우선순위를 뒤집는" 도구다. 유엔에 따르면, 1960년에는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부유한 20%가 전체 소득의 70.2%를 가져갔고, 가장 가난한 20%는 2.3%만으로 버텨야 했다. 1997년에는 이런 불평등이 더 심해져서, 그 수치는 가각 86%와 1%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뽀르뚜알레그리는 이러한 과정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바꿀 수 없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면서, 다른 지구화를 향해 투쟁하는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정녕 이 경험에서 보편적인 교훈을 끌어낼 만하지 않은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손발을 맞춰 가고 있는 저 끔찍한 부의 집중 흐름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반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를 모을 수 있게 된 것은 정치가 시민들과 가까워졌고 진정으로 참여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세계사회포럼의 시도들이 사회 정의, 사회들의 민주화,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가능하게 해줄 지구적 차원의 대안들을 정교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의 증거들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결국에는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인 눈부신 신화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다. 이 경험은 세밀하게 검토해야 하는 바, 그 저변의 논리들, 그 경험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 그 경험이 제공했던 답변들 등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공적 경영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진정으로 그것의 유효성을 강화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민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경향으로 후퇴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는가? 소수의 집단들이나 중간계급이 본질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진정한 참여는 가능한가? 시민 사회에서 시작된 운동들이 관료화되거나 자신들의 뿌리와 유리되지 않으면서 제도화될 수 있는가? 주민들의 동원이 공익에 기여하고 편협한 애향심을 넘어설 수 있을까? "참여예산제"라는 이름의 제도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만큼 복잡하다. 그것은 주창자들에 의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실제 실천은 이론과 부합하는가? 참여예산제가 기반을 두고 있는 메커니즘은 정확히 어떤 것들인가? 참여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그와 같이 급진적인 시도를 특징짓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 강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정치적 참여의 실상은 어떠하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대의체제는 어떻게 참여 피라미드와 결합하고 공존하는가? 시 정부의 예산 전체가 정말로 주민 참여라는 틀 안에서 결정되는가? 뽀르뚜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와 유럽의 참여 메커니즘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반대로, 해당 맥락 특유의 요인들이 일반화될 수 있는 요인들과 어떻게 구별될 것인가?

 

요컨대 뽀르뚜알레그리의 경험은 언뜻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진정으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기계적으로 모방해야 할 모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유를 촉진시키는 시도라는 의미에서, 즉 이를 기반으로 다른 곳들의 프로젝트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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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재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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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7 16:10 2005/03/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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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기의 라틴아메리카,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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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동지가 어딘가에 기고할 글일 듯한데, 그 어디를 모르겠다. 글에는 다음과 같은 역자주가 있어서 아르네케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역자주] 이 글은 라틴아메리카의 저명한 여성 사회주의자 마르타 아르네케르가 브라질의 유일한 좌파 일간지 Brazil de Fato와 가진 인터뷰를 번역한 것이다(2005년 1월 10일자). 칠레 출신인 아르네케르는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며, 아옌데 정부, 니카라과 혁명 등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아르네케르가 집필한 역사유물론 교과서는 한때 라틴아메리카 좌파 운동가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현재는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볼리바르주의 혁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론과 실천> 2003년 10월호에 아옌데 정부에 대한 평가를 담은 그의 글([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자])이 소개된 바 있다.

 

아래 글은 브라질과 베네주엘라를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얘기한 인터뷰 글이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만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브라질의 룰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한국의 좌파들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나 또한 룰라의 행보가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변혁기의 라틴아메리카,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

                                                                        마르타 아르네케르 (Marta Harnecker)

 

조지 W. 부시의 재선 이후 라틴아메리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 정책에 관한 한 존 케리나 조지 부시나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존 케리도 미국의 대외 정책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일정한 차이는 있었겠지요. 이 점이 바로 제가 미국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을 편든 이유인데요. 아무튼 우리의 투쟁에 별다른 상황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는 제국과 정면 승부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으리라는 말씀인가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우리의 과제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륙[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저항은 케리가 되든 부시가 되든 전진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빈 데가 많지만, 어쨌든 우리는 전진하고 있어요. 지난 몇 년간의 선거 결과들이 이것을 반영하지요. 우리 민중들은, 적어도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대변하는 후보들을 뽑고 있어요. 제가 '상징적인 차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어떤 경우는 강령의 내용과 실천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에콰도르의 루치오 구티에레스 대통령의 사례처럼 민중의 심판이 따르지요.1)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를 말씀해주시지요.  

에콰도르의 경우에는 원주민 운동이 구티에레스를 지지했었는데 결국 자신들이 실수를 저질렀으며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구티에레스가 권좌에서 쫓겨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거예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은 최소한 저항할 준비가 돼 있는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민중들은 이미 정부를 바꿔낸 경험이 있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정부를 몰아냈고, 볼리비아에서는 곤살로 데 로사다를 카를로스 메사로 교체했지요.2) 하지만 저항하거나 정부를 전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파괴적 좌파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요. 우리 시대의 좌파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민중 조직이에요. 이제, 민중 조직이 없다면, 대안을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이게 바로 베네수엘라가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베네수엘라에서는 차베스가 8번이나 확고한 민주적 방식으로 선거에서 승리했어요. 그가 승리하고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이 계속 조직된 덕분이지요.

  

-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한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베네수엘라 정부는 낡은 제도적 틀을 물려받았지만 이것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오직 베네수엘라 정부만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기존 체제의 게임이 변화되도록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베네수엘라는 헌법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요.3)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의회 내의 세력 관계를 바꿔야 하지요. 또한 중앙 부처든 광역 자치단체든 기초 자치단체든 과거의 제도적·관료적 기구들을 물려받았거든요. 이러한 기구들은 새로운 사회를 향해 이 나라를 변혁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걸 가로막았지요. 

  

차베스 정부는 어떻게 이 시나리오를 바꿨습니까?

제도적 기구들은 활동가들의 노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조치들을 펼치고 빈곤, 문맹, 교육, 보건 같은 민중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볼리바르주의 정부[차베스 정부]는 특별 작전에 착수했어요. 다르게 말하면, 정부 부처 바깥에 행동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배려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민중들을 바로 이런 방식으로 돌보았는데요. 그 이유는 정부 부처들은 그 구조상 애초에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그래요. 결점으로 가득한 체계를 통해 사회적 과제들을 완수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차베스 대통령은 정부 부처 내에 새로운 형식의 행정 조직들을 수립했고, 때로는 부처 자체를 새로 만들었어요. 조직된 민중은 이들 기관 내에서 지역적 수준의 목표들을 수립하는 데, 그리고 집행을 모니터링하는 데 참여해야 했고요. 조직이나 압력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가능하지 못했을 거예요. 민중들은 정부를 도와야 했고, 정부는 대중의 압력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좌파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좌파를 대변하는 후보가 없을 때 뭘 할 것이냐는 거지요. 베네수엘라의 지난 지방선거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하향식으로 공천 받은 후보들이 있었는데, 별다른 지지를 못 받았지요. 유권자들은 이런 후보들이 당선된 데 불만을 표시했어요.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투표 기권율 문제를 분석해야만 합니다. 중대한 문제예요.

  

기권율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60% 가량 됐어요.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는 차베스 대통령의 교육적 실천이 민중들의 정치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바로 그 민중들이 거리에 나와 차베스의 복귀를 성사시켰고, 별다른 정치 이념 없이도 자신들이 역사의 주인임을 느꼈던 거죠. 정부에 반대하는 언론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말예요. 게다가 민중들은 야당 TV의 시청과 야당 신문의 구독을 단호히 거부해서 거짓 정보의 유통을 막았어요.

  

언론의 역할이 컸나요?

현대전이 미디어 전쟁이라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지요. 저는 다음과 같은 노엄 촘스키의 말을 잊지 않습니다. "독재에 억압이 있다면, 민주주의에는 선전이 있다." 달리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성공하는 이유는 언론이 민중들로 하여금 지금 이 세상이야말로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TV 드라마를 통해서 환상을 낳는 거죠. 이게 이 시대의 민중의 아편이에요. 제가 브라질에서 보고 놀란 게, 그렇게 많은 빈민가에 집집마다 TV 안테나 하나씩은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언론의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부르주아 언론과 경합하는 진보 세력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어떻게 언론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좌파가 오래도록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4)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치적 실천이 있었고, 그걸 민중들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나면, 반대파의 주장과 맞서게 되면, 기성 언론에 대한 비판적 거리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 베네수엘라에는 있지만 브라질에는 없는 것 -

우루과이에서는 타바레 바스케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외에도 좌파가 의회에서도 다수를 차지한 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겠지요?5)

물론입니다. 이 문제는 룰라와도 관련됩니다. 세력 관계의 분석 없이 정부를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좌파는 정부를 분석할 때마다 세력 관계 문제를 곧잘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차베스 정부와 룰라 정부를 단순 비교할 수 없어요. 베네수엘라의 경우를 보면, 차베스 스스로 말한 대로, 평화적 경로이긴 하지만 무력 충돌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이게 뭘 의미합니까? 민중들이 무장했다는 의미인가요? 아닙니다. 정규군의 지지를 받는, 달리 말하면, 군대의 대다수가 차베스를 지지하는 평화적 경로라는 의미입니다.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차베스 정부는 선거에서 체제의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을 전면에 내건 첫 번째 정부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따라서 선거에서 제헌의회 소집을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요. 차베스는 결국 헌법을 바꿔냈고, 그래서 제도적 기구들 내의 세력 관계도 바뀌었어요. 하지만 룰라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비록 룰라가 1998년 차베스가 거둔 것보다 더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게 광범한 정치적 동맹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6) 사실 정치적 동맹은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필요했고, 나라를 통치하는 데도 역시 필요했어요. 노동자당은 아직도 상·하 양원에서 소수당이니까요. 게다가 브라질은 석유를 지닌 베네수엘라에 비해 훨씬 심각하게 국제 금융 자본에 의존하고 있어요.

 

베네수엘라 정부와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 가령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정부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세력 관계, 헌법 개정, 제도권 내의 세력 관계 변화, 민중 조직 건설이라는 내기 외에도 석유의 문제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 베네수엘라는 거대한 부를 소유한 나라예요. 석유 채굴로 막대한 이익금을 받고 있지요. 그래서 초기에 야당이 유전의 폐쇄부터 요구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석유 이익금 덕분에 IMF의 정책에 종속되지 않아도 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상황이 그렇지 못해요. 다른 나라들은 베네수엘라 정도의 경제적 자유를 지니고 있지 못하지요.

 

그럼 당신은 룰라에 대한 좌파의 비판을 비판하시는 겁니까?

제 생각에 우리는 수많은 요소들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은 때로 너무 표피적인 수준에 그칠 수 있어요. 우리는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는 브라질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저는 룰라 정부가 사회적 갈등의 와중에 있고 그럼에도 저울의 방향을 돌릴 능력이 없어서 상태가 이 지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비판자는 매우 큰 책임을 가집니다. 급진파가 된다는 것은 항상 보다 급진적인 해답을 표방한다는 게 아니라 뭔가를 실제로 할 조건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반전평화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벌인 토론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깃발을 들어야 하는지 평화 깃발을 들어야 하는지 논쟁했지요. 보다 급진적인 쪽은 전자를 원했어요. 다른 쪽은 평화 깃발을 들어야 기독교도나 비사회주의자 대오를 규합할 거라고 주장했고요. 결국 이들은 평화 깃발을 들기로 결정했고, 엄청난 수의 군중을 모았습니다. 모든 시위 참가자들은 투쟁을 계속할 자신감을 얻었지요. 이게 더 급진적인 거예요.

 

-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미래에 할 수 있을 힘을 만들어내는 것 -

그럼 해답은 뭡니까?

제가 믿는 것은 아래로부터 힘을 구축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제 연구 주제라고 말하고 싶군요. 정치의 예술이란 이런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미래에 할 수 있을 힘을 만들어내는 것. 흔히들 기회주의자란 "힘이 없으니까 현실에 순응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혁명가는 힘이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낼 방도를 찾는 사람입니다. 세력 관계를 바꿀 방법을 탐구하고 고안하는 거지요.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하나는 순응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혁명적인 또 다른 입장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줄 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보다 좌익적인 언사를 내뱉는다고 자신이 보다 좌익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나아가곤 했어요. 저는 이렇게 주장하겠습니다, 급진적이고자 한다면 우리가 급진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사회·정치적 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우리는 창조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제가 즐겨 파괴적 좌파와 건설적 좌파를 구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주1) 역주 - 에콰도르에서는 1999년에 IMF의 요구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던 정부가 인구의 다수인 원주민들의 봉기로 무너졌다. 2002년 10월의 대선에서는 99년 봉기 당시 군부 내에서 원주민 운동을 지지했던 구티에레스가 원주민 운동의 지지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에 그의 당선은 라틴아메리카 좌파 붐의 한 신호로 평가받았지만, 이후 그는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IMF의 요구를 고분고분 따랐다.

 

주2) 역주 -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년 12월에 경제위기에 잇따른 민중 봉기로 대통령이 세 명이나 갈렸고, 볼리비아에서는 2003년 10월에 좌파와 원주민 대중이 주도한 천연가스산업 사유화 반대 운동의 결과로 대통령이 하야해야 했다. 

 

주3) 역주 - 아르네케르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자](<이론과 실천> 2003년 10월호)에서 칠레 아옌데 정부의 중대한 오류 중 하나가 헌법 개정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4) 역주 -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노동자당 시정부가 보수 언론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참여예산제를 추진해 성공시킨 사례를 지적하는 것이다. 

 

주5) 역주 - 우루과이의 좌파 정치에 대해서는, 장석준, [라틴아메리카 좌파 부활의 또 다른 주역: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이론과 실천> 2004년 10월호를 참고할 것.

 

주6) 역주 - 룰라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브라질 굴지의 섬유산업 재벌이자 중도우파 자유당(PL) 소속인 주제 알렌카였다(현재는 국방부 장관을 겸임). 또한 현재 룰라 정부에는 우파 정당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등이 결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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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3 13:49 2005/03/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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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8 월례 정책포럼 후기 -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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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8 월례 정책포럼 후기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긴장감도 있고...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위하여" 발제문 요약

1. 사회주의 이행의 두 방법?
1) 혁명
- 조직적으로 혁명적 전위정당을 구성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노조라는 대중조직에 활동가 세포를 심고 도시빈민과 빈농에 혁명적 세포조직을 만들어 내어 끊임없이 혁명적 활동을 촉발시키는 것
- 이 모델이 급진적으로 지향하는 정치형태는 부르조아 민주주의라 불리는 선거를 통한 대리민주주의인 의회가 아니며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체인 소비에트 혹은 평의회.
- 현재 의회나 노조라는 대리 의결기구를 부정. 그러나 소비에트라는 자치구는 전위정당인 유일정당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하며 각 소비에트 공산당대표로 구성된 전당대회가 최고의 의결기구가 됨

2) 사회민주주의
- 현재의 국가기구와 의회 그리고 노조라는 기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행을 수행
- 자본주의가 결코 스스로를 약화시키지만은 않으며,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자본제의 발달과 자본제가 자체적으로 주저앉거나 무산빈민계급이 자동적으로 양산되지 않는다(베른슈타인) →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결정론적으로 규정되거나 자동적으로 다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란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회주의정당의 다수확보는 결코 즉자적 계급대립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으며 매일의 복잡한 정책과정을 통해 확보된다. → "운동이 전부이며, 최종목표는 의미가 없다"
-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전체 실천적 활동은 이행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현대 사회질서가 보다 높은 단계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확보해 가는 것(베른슈타인)
- 카우츠키: 의회는 "가능한" 이행도구 vs 베른슈타인: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계급연대의 “필수적” 선결조건
- 사민주의 모델은 실제 사회주의 이행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됨
- 레닌이 국가를 단선적 착취를 위한 지배계급의 도구로만 보고 국가 밖에 국가에 반대하는 다른 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본 반면 사민주의는 국가와 의회를 전략의 중심에 놓고 생각
- 사회주의의 이행은 당장 혁명을 통한 생산수단의 점거가 아니라 평등한 고용의 실현과 복지국가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이러한 정책적 이행이 혁명 자체 보다 더 혁명적일 수 있음. 생산력의 향상이 자본제를 일거에 넘어뜨리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자본제의 사회적 성격강화라는 수단이 생산성을 더욱 높여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손쉽게 함

3) 평의회
- 의회기구와 노조라는 대중조직 대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장별, 지역별 평의회건설을 하고 경영참가나 생산수단의 평화적 접수와 지역별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을 구체화해간다는 구상
- 과거 이탈리아 튜린 지역에서 그람시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던 평의회 운동이 그 예
-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한 강력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전위정당을 전제

2. 사회주의의 역사적 모델

1) 역사적 사민주의
- 의회의 다수를 점하기 위한 노력들은 폭넓은 대중정당으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게 되어 계급성을 상실할 가능성과 함께, 집권 후 기존의 질서를 혁파하기보다 질서 내 안주하고자 하는 경향을 띄게 됨. 이에 따라 사회주의 이행전략으로서의 이념적 사회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퇴행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
- 스웨덴의 ‘임노동자 기금’안이 자본계급에 밀리고 현실정치에 밀려 그 실현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의회중심의 역사적 사민주의의 한계 → 따라서 가능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다양한 현장 활동과 대중동원은 늘 주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아야 함
- 소유의 사회화나 국유화라는 사회적(혹은 국가적) 소유모델에 대한 서구 사민주의의 소극적 태도는 상대적으로 사적소유나 주식시장, 금융권의 강화로 이어졌고, 금융제와 시장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앞세우는 전략을 선택하게 됨 → 서구 코포라티즘의 한계 노정, 사회적 통제장치의 위축 야기
- 독일의 노조와 사민당의 '산별노조 차원의 집단적 노동자 소유의 기업과 은행등의 사회적 소유형태' 등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실험도 전략적 중심은 ‘경영참여’ 모델

2) 국가사회주의
- 소련은 계획경제의 원칙아래 초기 소비에트 자치구를 재편해 국가독점형 계획경제로 재편
- 경제활동 영역과 가격요소가 중앙에서 계획ㆍ통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엄청난 규모의 국가관료의 양산과 권력화 문제 → 권력형 중앙집중 경제의 무능한 비효율성과 비민주성으로 인해 소련 국가사회주의 붕괴

3) 자치형 계획경제
-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국가경제내의 일종의 협동조합 형태의 자치형 경제구를 설립해 운영. 이를 통해 국가 계획경제의 큰 틀 하부에 중소의 지역별 경제단위를 자치적 하부단위로 편재해 거대한 국가집중 경제의 비민주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함.
- 계획경제 내의 자치적 경제는 자폐적이고 소시민적 자기중심의 경영위험이 크다는 것을 보여줌. 대기업 노동자의 자기중심적 경영은 기업운영을 자폐적으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와, 주변 산업조직과의 네트워크 약화와 기업 성과의 독점적 전유로 인한 새로운 노동자의 진입 차단 문제 발생

4) 브라질의 PT와 남아프라카 ANC
- 무토지 소유농민연대인 토지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와 단일노조연맹(CUT)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PT당은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 (Democratic Socialism)"을 주창하며, 의회중심의 사회민주주의가 아닌 대중운동과 참여민주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을 기치로 내걸며 밑으로부터의 풀뿌리 사회주의운동을 전개
- 2002년 대선시 룰라는 "참여적 국가운영"과 "전략적 국가운영"이라는 두 개의 국가운영과제를 걸고 선거에 임했는데, 이러한 선거 정책기조는 과거의 외채 이자지불중지나 사유화 반대, 토지개혁 등의 개혁의지에서 한 발 물러나 국가경제복원이라는 기업인과 지주층은 물론 철저히 부정하던 IMF 체제도 포용하려는 다원화되고 중도적인 정책으로 선회한 것
- 룰라정부의 고난은 극한으로 빈부 양분된 사회와 국가경제가 초국적 자본에 의해 함몰한 후 정권을 이양받은 PT당이 접한 물적 토대가 취약함을 말해줌

3.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하여
- 과거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역사적 성과와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서구나 과거의 모델이 바로 우리의 대안모델이 될 필요도 없다.
- 현재 우리에게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으며 혁명의 길이든 의회와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길이든 하나의 길로의 이행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다양한 실천을 통해 이행경로를 닦아야 한다.
- 하지만 과거 역사적 오류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현존 국가의 근본원칙인 대리민주제를 극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참여와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가장 폭넓게 실현해 나가야 한다. 참여와 자치라는 정치적 목표는 생산과 재생산에 걸친 경제적 토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구조의 소유형태와 지배구조를 최대한 사회화시키고 민주화시키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1) 국가
- 현재의 모든 소위 부르조아 국가 자체를 전복시키지 않으면 사회주의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귀결에 문제가 있다. 국가는 어떤 특정계급의 전유물로서의 착취기계가 아니며 유동적인 생명체로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중요한 구성체가 된다.
- 국가란 단순히 역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평등과 정의라는 순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으며, 자본제 내에 사회주의 이행의 단초를 가지고 있음.
- 하지만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만들어 내어야" 함. 따라서 혁명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의회와 국가 기구 내에 사회주의적 공간을 확보해 냄으로서도 가능함.
- 선결 과제는 직접민주주의의 확대인데, 이를 위해 생산수단의 통제와 소유를 사회화하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어야 함.

2) 계급연대
- 사회주의 이행을 위해서는 극소수의 전위보다 광범한 계급연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관건
- “계급”은 우선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사회구성원의 계층구조이다. 이는 자본의 구도와 노동의 구도 (분업의 형태)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구조’는 그 계급에 속한 개인의 정치적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계급구도는 일단 “빈 공간”
- 계급형성이란 다양한 정체성과 계급적 “빈 공간”, 혹은 채워지진 않은 현실적 계급을 채워 넣는 일
- “계급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Sartre, The Communists and Peace, 1968)
- 주어진 계급구조는 일종의 원자재로서 사회전략과 계급연대전략, 그리고 정치적 동원전략이 어우러져 하나의 계급구도로 가공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계급 내 연대 형성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노동자 조직화, 즉 노동자의 사회내의 지위.

- 원자재로서의 객관적 계급구조가 사회주의 이행에 유리하게 결정짓는 요소
ㆍ전통적 생산노동자계급의 수 → 노동자의 광범한 조직화의 필요성
ㆍ도시와 농촌의 소시민, 즉 쁘띠 부르조아. 쁘띠 부르조아는 본질상 그 자체가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될 수는 없고 이에 따라 정치적 선동에 쉽게 내던져져 있으므로, 이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엮어내는가는 역사적으로 정당의 정치적 행보에 중요한 변수가 되어왔음. 자본집중과는 별개로 쁘띠 부르조아는 계속 양산되며, 그 생존은 "정치적 개입"에 의해 좌우됨. 쁘띠는 사회주의적 발전의 장애로 작용(쁘띠의 경제활동에 종속된 노동자들은 고용주인 쁘띠 부르조아처럼 조직되기 힘들고 사회주의 이행의 조건인 경제적 발전과 현대화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성향을 지님. 쁘띠 브루조아에 기반한 정치는 어떤 진보적 정책 가능성도 실행하기 힘듦)
ㆍ화이트칼라 계층이라 불리우는 신중산계급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샐러리맨이라 불리는 사무직 종사자와, 사적ㆍ공적 기관의 기술직, 전문직, 교사 등 아주 다양한 구성을 가지고 있음. 계급적 성격에 있어서 매우 유동적인 특성. 생산 노동자와 신중산계급의 경계가 분명하진 않지만, 이들을 단선적으로 생산노동자와 같은 임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이고, 생산노동자와 다른 계급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오류임. 소자영업자의 경제적 기반과 의식보다 훨씬 진보적이나, 훨씬 분화되어 다양하며, 조직된 힘으로서 기능하기가 용이하지 않음.

3) 산별노조와 임금연대
- 계급형성의 전제조건
ㆍ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기초한 임금연대
ㆍ노동의 탈시장화. 탈시장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과 계층간의 분화를 뛰어넘는 “사회화”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이는 광범한 생산계급의 연대를 전제로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직 노동자가 중심이 된) 전국적으로 조직되고 중앙집중된 노동조합이 조직되어야 함

4) 사회공공성
- 전국적 단일 노조조직와 이를 기반으로 한 계급정당은 노조자체의 정책과 정치적 개입으로 시장의 일면적 지배를 막고 보편적 복지를 만들어 내어야 함. 사회보장제도는 노동력을 탈시장화시킨다는 기능 외에, 사회의 공공적 성격을 확대시키고 일정한 소유구조를 사회화시킨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
- 보편적 복지라는 복지정책을 넘어 공공부문의 강화는 사회적 소유를 위한 기초이며 시장중심의 경제를 바꿔내는 초석이므로, 사회임금이라 표현되는 사회공공성은 단지 복지의 차원을 넘는 사회적 소유라는 경제운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

5) 참여형 경제 - 경제적 민주주의
- 현 시장제에서는 완벽한 분배의 복지체제도 이루기 힘들 뿐 아니라, 합리적인 생산구조도 이루어지지 않음
- 경제 체제의 민주적 혹은 사회적 운영(경제민주주의)이 시장에 던져진 경제구조를 바꿔내는 방법이며 사회주의 이행에로의 고단계임

가) 경영참가
- 소유가 곧 운영의 독점적 지배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지배권은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함. 이를 위한 제 1차적 경로로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강도 높게 실현되어야 함.
- 소유의 사회화를 곧바로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됨. 현재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공공부문 확대 외에 시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 집단소유기업도 시장 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단순화할 수 없는 현실적, 논리적 자기모순을 안고 있음.
- 따라서 문제는 ‘소유권 통제’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바, 이와 관련해서는 기능적인 사회소유 개념이 주효함(스웨덴의 Unden과 Adler-Karlsson이 전개). 사적 소유권자가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무제한의 소유권이 아니라 소유권이 가진 기능의 중요한 부분을 사회화하여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소유의 사회화라는 것.
- 이러한 소유의 통제를 통한 사회화의 길이 우리에게 더욱 현실적이라면 노조의 소유권 개입정책은 공격적인 ‘경영참가’와 ‘공동결정권의 확대’가 되어야 할 것

나) 지대, 건물 담보권
- 소유권의 사회화라는 기능적 사회소유는 공동결정권 외에 토지와 건물이라는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도 포함되어야 함.
- 부동산시장의 기형적 성장은 사회주의 이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사회의 안정적 진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바, 부동산이라는 생산과 유통수단을 한번에 국유화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과적이므로, "담보권 제한"이 가장 효율적인 사회화 방법일 것. 20%를 목표로 추진.

다) 기금운영의 민주화
- 다양한 기금이 운영되고 있는데, 기금의 경제 권력이 민주화되지 않으면 한 줌의 기관투자자나 운용관료들에 의해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될 것
- 따라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가운영의 기금은 물론, 각종 사학연금과 로또 기금에 이르는 민영기금의 민주적 운영이 반드시 현실화되어야 함

라) 기업의 계급적ㆍ집단적 소유
- 임노동자 기금 등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소유는 이윤지상의 시장경제체제를 지양하고 금융주도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
- “우리사주조합” 혹은 “종업원 지주제”는 단위기업의 틀 속에 갇혀서는 개별노동자의 이윤추구의 도구가 되기 쉬우며,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산별노조 차원의 집단적 소유형태를 띄는 사주조합이 검토되어야 함

마) 자치형 경제
- 협동조합이나, 작은 단위 지자체의 자치적 경제운영은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주요한 수단이 됨. 작은 지자체의 “참여 예산제”는 적극 검토될 필요

6) 국유화와 계획경제
- 시장경제의 근본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획경제는 필수 조건이며, 소유의 사회화를 위해서도 국유화는 여전히 중요함. 사회공공성의 확대도 결국은 국유화와 맞물려 있음.
-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나 현재의 물질적 조건으로 비추어 모든 영역의 국유화는 불가능하므로, 공공성과 사회기간성이 강한 영역을 중심으로 국유화와 계획경제가 추진되어야 함.

가) 참여형 국가경제
-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광범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다양한 공공시설의 민주적 운영 역시 확대되어야 함
나) 지자체의 발전
- 국가기구는 다양한 지자체로 분산되어 지역의 특성을 살림과 동시에 민주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며, 지자체는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함
다) 복합형 경제
- 공공성과 시장성이 결합된 일반기업 혹은 백화점도 검토 가능. 소유 또한 국유와 민간소유의 결합 가능

7) 금융권의 통제
-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은 단기이익을 좇아 기업사냥에 나서고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돈이 환차익을 찾아 몇 초마다 국경을 넘나든다.
- 토빈세나 주식차등 이익세 등을 적극 검토하고, 초국적 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의결권 제한이나 “황금주”등을 도입할 필요
- 금융자본이 지나치게 시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주식시장을 제한하고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통제를 고민. 즉 금융권을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편재하고, 각 은행은 중앙은행의 통제권 하에 두는 것. 이를 위해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하며, 국책은행과 중앙은행의 운영이 민주화되어야 함(노동자, 시민대표로 구성된 감독위원회 구성)

8) 국가경제와 지역경제
-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의 패권적 지배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건전한 국가경제가 중요. 특히 사회공공성은 아직은 국가영역 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대안적 세계화 역시 진보적이고 건강한 국가경영이 전제되어야 함.
- 그러나 대안적 세계화로서의 계급적 진보적인 국제적 연대가 필요한 바,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네트워크는 대단히 중요함.
- 거시적 국가운영의 관점에서 결재화폐를 지금의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점차 전환하고 중국 위엔화와의 연계를 고민

9) 여성해방, 환경보호

4. 대안사회 구현을 위한 가치
- 몰가치한 방법론이나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는 운동의 도구화, 기능화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됨. 대안사회는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이며, 대안사회의 가치는 이행과정과 경로에서 역시 가치로 구현되어야 함.

1) 민주주의
- 기업과 국가는 물론 사회의 각 영역에 민주주의는 기본원칙이 되어야 하며, 가능한 직접민주제를 담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운동자체의 기본원칙이 되어야 함
- 민주제란 의사결정의 공유와 결집을 의미하며 대중의 판단력에의 신뢰와 판단력 신장을 위한 제반 교육체제의 확대를 의미하며, 사회 정치적인 민주제를 넘어, 경제적 민주주의가 쟁취되어야 함.

2) 노동해방과 노동의 인간화
- 필요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모색되어야 함.
- 노동해방으로서의 노동의 인간화란 노동이 되도록 자신의 것인 동시에 사회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

3) 해방과 연대, 이성의 구현
- 자유라 함은 가능한 모든 예속에서 벗어나 자기실현과 사회적 실천이 맞물림
- 인간해방은 인간의 개인적 능력이 사회적 능력과 극대치에서 결합되는 이상점. 따라서 인간 해방과 자유는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며, 연대가 집단주의로 개인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토 론

o 기능적 사회주의에 초점을 두어 논쟁적으로 발제문을 작성함
- 발제자는 논쟁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사민주의 내지 기능적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발제문을 작성하였다고 하였음
- 실제로 2004년 여름쯤에 노동운동 진영에서 제출되었던 "대안사회 이행논쟁"이라는 글 중에서 노조내 좌파에서 얘기하는 부분을 빼고, 사민주의에서 고민하는 내용을 보완하여 작성된 듯함.
-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정책적) 요구만을 가지고 혁명주의자와 (혁명적) 수정주의를 구분해내기는 곤란하고, 대신 정책 수행의 주체로서 국가와 의회 (그리고 노조)라는 기구를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사회주의 이행 논쟁의 주요 논점"이 된다고 하였는데, 글의 논의 전개상 언급된 기구들을 인정한 상태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

- 빠진 부분 중 검토할 만한 내용
"장기적으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경제적인 전략적 개입이 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한 경영참가가 아닌 경제 전반에 대한 주도권을 쥐어 나가는 것이 되어야 함. 이는 노동자들과 노조, 그리고 계급정당의 전체적인 경영능력을 전제로 해야 함. 이 때의 경영능력이란 조직력, 정책력, 자금력 모두를 총괄하는 말이다. 즉 이제 경제는 자본가에게 맡길 게 아니라 우리가 맡겠다는 역사적 자신감이다.
경제민주주의의 필요(연)성은 또한 정치적 사회민주주의 하에서의 복지국가란 장기적으로 언젠가는 경제적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세금에 의존하든 노동자의 기여금에 의존하든 광범하고 발전된 복지는 그에 상응하는 강도 높은 조세정책을 의미하며, 불황과 실업이라는 역품을 만나면 문제를 야기시키며, 그 외에 국가와 복지대상이라는 투명한 이원적 관계는 탄력이 너무 작아 자칫 부러지기 쉽다. 복지라는 분배만이 아닌 투자와 생산기능도 차츰 사회화되어야 한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구체적 형태는 단순히 기업민주화라 일컫는 단위기업내 노동자의 기업에의 경영참가를 의미하지 않으며,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의 집단화 혹은 사회화를 의미한다. 이 경우 또한 반드시 기업의 국유화를 의미할 필요도 없다. 소유와 경영의 사회화를 국유화와는 다른 형태의 소유권을 구체화시키려 할 때, 소유권의 주체가 대부분 노조와 노조의 기금형성이 될 수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민주의의 모델은 강건한 계급조직으로서의 노조조직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며, 국유화라는 경영모델이 반드시 경제의 민주적 통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과 국가의 경영참가가 이행의 단계에서 지니는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반드시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길을 걸을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조합적 통제가 훨씬 역동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즉 경제적으로 자본가냐 노동자냐, 자본가가 통제하느냐, 다수 노동자가 통제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지, 국가냐 개인이냐는 현재 체제 내에서 문제를 흐릴 수 있다. 결국 국가란 무형이고, 그 내용과 틀은 교섭, 즉 자본과 노동의 힘의 역학관계만이 남는 것이니까.

이러한 경제적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노조 내 좌파, 특히 평의회 운동을 지향하는 쪽에서 자주 발의되고 제안되었는데, 평의회의 논리적 특성상 생산수단의 집단화라는 경제민주주의에 상당히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무분별한 축적체계는 위기를 정기적으로 낳을 수 밖에 없으며, 이를 통제하는 장치로서의 사회적 소유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를 주축으로 한 공공부문이 아닌 노동자의 집단적 사회기업일 경우,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문제의 핵심은 시장경제 하에서의 이윤이다. 노동자 기업이라도 시장경쟁의 이윤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경영참가가 아니라 직접경영의 경우 사기업의 경영성과보다 우월하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

- 발제문은 우리의 대안이 반대를 위한 반대의 수준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공동결정의 문제를 제기함. 그러나 기능적 사회주의의 핵심인 경영참여 또는 공동결정과 계급성 간의 이율배반의 문제가 있음. 참여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포섭될 가능성이 있는 바, 이를 간과하기에 문제가 됨.
- 기능적 사회주의라는 담론 자체가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주도력을 갖기 어렵게 하는 측면도 봐야 하며, 시장을 용인할 경우 이와 관련된 논쟁에서 수많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를 당해낼 수 없기에, 이와는 접근방식이나 관점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o 시장과 계획경제
- 시장이 계획경제 내에 들어와야 한다는 의견
- '계획경제와 시장'의 관계에 관하여 발제자는 시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바, 이는 원래 글에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언급은 사민주의를 전제로 한 논의임.  
ㆍ"이론적으로, 현재 경제체제가 총체적으로 계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체 숱한 경제의 변화와 단순히 수리경제상의 변수를 어떻게 예측하고 수정한단 말인가? 또한 시장과 경쟁이 가지는 생산력 발전의 일정한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의 비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불합리성이 극복되지 않는 한 사회진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탈시장화된 영역으로서의 기획경제는 중요하며, 사회 공공부문의 확대도 이런 측면에서 진보운동의 골간이 되어야 한다."

- 지배구조를 민주화시키는 것,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 발전과의 연관성을 얘기해야 한다는 것, 분권형 사회가 바람직하다면 계획경제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의견
- 이에 대해 "소유 없이 통제 없다"는 말은 좋은데, 국유화가 과도하게 강조되어 왔던 국유화가 강조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소련의 경험), 서유럽의 경우 굳이 국유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됨.
- 그리고 전략적으로 국가가 역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도 지적. 이를테면 컴퓨터운영체제에 있어서 윈도우와 리눅스 사용의 문제. 자연독점의 문제도 마찬가지인 바, MS 등 IT 영역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계획과 시장을 퍼센트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으로 볼 필요성이 있음
- 이에 대해 최후의 이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소유가 없으면 나설 것인가의 문제가 남음. 즉 영리를 얼마나 보장할 것인가는 계급역관계에 의해 좌우될 것이나 소유권의 문제는 남는다. 중요한 결정권은 자신이 갖기를 원한다는 것. 시장이윤은 여전히 계획경제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문제
- 전문경영인의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음.

o 공공성의 확대, 국유화, 사회화
- 기능적 사회주의 논의는 토론과정에서 공공성, 사회적 소유, 국유화, 계획경제와 관련하여 얘기되었음.
- 공공성에는 계획이 핵심으로 포함됨. "소유하지 않으면 통제는 없다"는 기치아래 시도된 스웨덴의 엄청난 소유권 제한도 일종의 사회주의라고 보는 것이 기능적 사회주의
- 발제문도 혼합경제를 얘기하고 있음. 공공재와 운송영역, 그리고 에너지 부문 등의 기간산업은 국유화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 이는 참여형 시장경제모형이며, 이해당사자 모델.
- 그러나 어디까지가 참여해야 하는가, 투자 등에 있어서 몇 %가 되어야 하나 등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 있었음. 이에 덧붙여 네트워크성도 중요한 기준임.
- 국유화는 사회적 소유의 다양한 형태 중의 하나.

- 이 문제는 대안연대와 참여연대 사이의 재벌개혁과 관련된 논쟁을 참고할 필요. 이에 대해서는 [외국자본 지배하의 한국경제, 쟁점과 과제]라는 이회수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의 글을 추천함).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기속에서 시장경제의 위기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극대화하는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보다 생산과 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국가개입을 통해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극복이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유럽식 사민주의가 역사적으로 파산하거나 신자유주의로 수렴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대안이어서가 아니라 제한적인 국가개입정책으로 시장을 인정하는 우파 사민주의 노선이 계급투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파산한 것은 산업과 금융에 대한 사회화 프로그램을 견지하지 못한 우파 케인즈주의,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승인하고 제한적으로 유효수요 확장정책과 소득분배 정책 개입이라는 제한적 개입주의 정책의 파산이다."
결국 사회화 프로그램은 국가권력의 장악을 둘러싼 정치투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국가와 공공부문이야 말로 현대자본주의하에서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중요한 계급투쟁의 장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낮은 수준이지만 공적 부문의 사회적 성격 강화, 주요 기간산업과 사회적 재생산영역의 사회공공성 강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 공공성 확대가 요구강령인지, 아니면 이행강령인지에 대한 논의도 선행되어야 함.

- 운덴, 칼손 등의 기능적 사회주의 주장에 대해 마이드너, 비그포르스 등의 사회적 소유론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반박이 있었음. 즉 기능 사회주의는 이미 문제와 한계를 드러내었으며, 입론 자체도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완전고용상태가 되면 인플레가 오고, 이는 진보세력의 정당성 약화를 가져오며, 경기호황은 자산소유계급의 힘을 발휘하도록 하여 결국에는 노동계급의 성과마저도 앗아감. 이는 서구 대부분의 국가에서 직면하는 상황.
- 대안으로 민주적 참여기업에 대한 고민: 다양한 주체들의 소유가 가능함. 국가가 나머지 소유주체와 협의하에 주도력을 발휘함. 그 정도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문제
- 한편 불가역성을 주장하면서 전민중적 의식변화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음. 일단 공동결정 등이 이뤄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이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자본가들의 양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는 반론이 있었음.

o 국가 문제
- 경제분야에 치우친 토론이 되었으며, 공공성 문제 또한 문화, 정보통신 영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조직의 문제(부처화, 부처 산하기관화, 인권위와 같은 독립기관화, 민관공동조직화, 노동자ㆍ시민대표로 된 비정부조직화)를 고민하고, 이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음
- 발제문은 국가의 순기능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행과정에서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함. 장악수단, 분쇄의 대상? 억압적 국가기구들과 관료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국가는 유동적인 유기체이며, 의회 및 행정기관의 경우 사회보장체계 구성 및 사회공공성의 수행이라는 순기능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 플란차스의 의견, 즉 "국가는 단층적으로 해부가 불가능하며 "제 권력관계의 농축물""이라고 하여 능동적인 행위자들이 계급투쟁하는 장으로 파악하는 의견이 있었음. 이 견지에서 보면 직접민주적인 힘에서 기원하여 국가기구의 변형이 중요함.
- 발제문에서는 "국가론은 국가의 존재이유를 지배계급의 권력전유물로 보는 레닌의 국가관에서 점차 국가를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으로 보는 다원주의적 관점, 그리고 다양한 촉수를 지닌 유기체로 보는 관점으로 발전해 간다"고 하면서 구조주의, 그람시, 풀란차스의 논의를 적시하고 있는데, 다원주의적 관점과 그람시, 풀란차스, 알튀세르 등의 신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구별할 필요가 있음. 다원주의적 관점은 국가를 중립적인 심판자로서만 파악함.

o 이행문제와 관련된 부수적 논의 필요성
- 구체로 내려왔을 때 지역차별문제, 학력ㆍ학벌문제에 대해서 답해야 하고, 무상의료나 무상교육 외의 조치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함. 영국 NHS체계와 같이 의사를 공무원으로 한다면 이를 무상으로 교육시켜야 하는 문제와 연관.
- 추상적 수준이라면 이행된 후의 대안사회의 상에 대한 제시되어야 함.

o 선거에 의한 이행
- 기존의 논의에서 뢰머나 쉐보르스키 등의 이행론 분석 및 브라질 룰라가 보이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

o 한국의 수출의존도가 65% 정도가 되는 조건하에서, 발제문에서 얘기하는 모델은 일국 사회주의 모델로 보이는데, 가능한가?
- 발제자는 나름대로 이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였으나, 발제문의 경우 국제연대 및 세계화와 관련된 논의를 단지 초국적 자본에 대한 통제의 문제로 좁히고 있는 문제가 있음.

o 포럼 형식 관련
- 20여명이 토론을 진행하였으나 실제 토론에 참여한 사람은 1/4 정도임.
- 발제문의 사전배포를 통해 내용을 숙지하고 효율적인 토론이 되도록 유도해야 함.
- 지역에서의 정치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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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2 19:12 2005/03/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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