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글쓰기 주무대를 옮기기로...

View Comments

오늘 밤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네이버에 아는 사람도 많고, 거기에 있는 잘잘한 얘기들이 아깝긴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두고 속내는 진보블로그에서 하련다.

조금 불편해도 이게 맘이 편하다.

 

실질적인 효과는 사실 크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의 중심축만 이동할 뿐.

 

물론 네이버 블로그도 계속 사용한다. 다만 다른 이들의 글이나 자료를 퍼올 때의 보관용으로... 물론 코멘트도 해야겠지.

결국 달라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네이버에 풀어놓지 않겠다는 것 뿐이다.

 

그 동안 이웃공개로도 솔직한 내 얘기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아는 눈이 많아지다 보니 눈치보기가 겁이 났다고 할까.

게다가 진보블로그를 너무 엄숙하게 생각해서리 무겁게 가져간 것도 있고...

 

그렇다고 진보블로그가 편하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단 파일 올리는 게 곤란하다. 여전히 파일 업로드 제한이 있다. 

파일까지 올리려고 하면 차라리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나을 터,

네이버에 개인 카페형태로 계속 자료실은 업데이트.

또한 태그 쓰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쓰는 글이 이용자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진보블로그의 카테고리도 바꾸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다.

나중에 차분할 때 해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3/21 23:30 2006/03/21 23:30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요새'를 떠나서 '제2의 창당'으로

View Comments

전진(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한 동지가 쓴 글과 장석준 동지가 쓴 글을 담아왔다.

 

최근 민주노동당 내에는 지난 일요일 있었던 중앙위원회에서의 부문할당 안건의 반려안에 대해 심각한 논의가 있다. 이는 전진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당위적으로, 그리고 과거 내가 취해온 입장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부문할당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고민되는 지점은 지금의 부문할당에 관한 논쟁이 당과 민주노총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입법안 문제, 농민문제,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 그리고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의 혁신 지도부 선출 등의 현안과 비교하여 부문할당의 문제로 활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부문할당 문제는 분명 치열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지금 시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입장이 타당하다고 하여 이를 몰아부칠 수 있는 것도 아닌 문제이다. 현재 당내 논란은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점에서 민주노동당 및 노동운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면서 이에 대한 극복대안을 제출하고자 하는 아래 글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번째 글은 11월 초에 제출된 것이며, 두번째 글은 12월 14일 열린 진보정치연구소 2005년 결산 심포지엄의 토론문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 글과 함께 노중기 교수와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은 PDF형태로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www.ppi.re.kr)에 게재되어 있다. 

  

첫번째 글이 핵심인데, 그 주체가 어떻게 되는지 애매하긴 하다. 특히 당 활동가가 아닌 노조 활동가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제2의 창당을 구체화하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게 명확하지 않다면 오해를 받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다. 

 

왜 이런 고민까지 하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



'요새'를 떠나서 '제2의 창당'으로
- 당의 현 상황과 그 극복 방향에 대한 노트


1. <민주노동당은 창당 때부터 악조건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분단체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노동운동의 뒤늦은 정치적 각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힘든 또 다른 조건과 한계들이 있었다.

 

첫째,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가 결합된 정치 지형에서는 양대 정당 구도 바깥의 신생 제3당이 성장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정당 구도의 토대로서 시민사회. 흔히 '지역주의'라고 불리는 문제.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 내에는 지역주의적 기반 이외에 정당의 토대 역할을 할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열린우리당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다. 언론 등의 '가상' 시민사회에는 그나마 빈틈이 있을지 몰라도 지역의 '일상' 시민사회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셋째, 노동조합운동의 취약성. 위와 같은 조건에서 신생 진보정당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시민사회 내 토대는 노동조합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노동조합운동도 97년 경제위기 이후 고립되거나 퇴보하기 시작했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문제가 첨예화되기 시작했고, 자본은 노동운동의 이러한 모순과 한계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증상은 민주노동당 창당 시점에는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련의 '빈틈' 덕분이었다.> 

 

첫째, 정당투표제의 신설. 2002년 지방선거부터 그 해의 대선, 2004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성장세는 기본적으로 정당투표제가 새로 생긴 덕분이었다. 소선거구제가 지배하는 정치 구조에 틈이 벌어진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적 이상의 '제한적' 쟁점화. 민주당이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면서부터 정치 지형이 왼쪽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화한 중도우파가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빈틈이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장한 '부유세', '무상의료·무상교육'이었다. 이것은 당 강령이 주창하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무척 '제한적으로', 그리고 '소극적으로' 쟁점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숨은 욕구를 결집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3. <하지만 애초의 악조건과 한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아니 어떤 것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련의 빈틈을 활용한 결과로 당이 성장하자, 이것이 마치 당이 근본적 문제들을 이미 극복한 것처럼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는 단지 미래로 지연되었을 뿐이다. 더욱 증폭되면서 말이다.

첫째, 양당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당투표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소선거구제 중심이다. 더구나 대통령제 아래서는 여당 대 야당의 구도가 지배하는데,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전투적 야당'이 아니라 '여당의 압박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행세했다. 2006년부터 더욱 두드러질 정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미아 신세다.

둘째, 시민사회의 벽도 여전히 두텁다. 열린우리당조차 탄핵 돌풍으로 17대 총선을 돌파한 외에는 전혀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대선에 승리하려면 또 다시 지역주의 세력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하물며 민주노동당의 취약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때 20%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중간층과 노동계급 일부(화이트칼라)의 전혀 조직되지 않은 지지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러한 지지층은 쉽게 해체될 수 있다. 당 지역조직의 활동에도 커다란 진전이 없다. 2002년 지방선거를 통해 얻은 지방정치의 작은 교두보는 (울산 북구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의 전략적 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못했다. 이것은 지역조직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당이 지방정치를 통해 당 발전의 활로를 뚫으려는 어떠한 전략적 전망도,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는 대다수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미조직 상태로 놔두고 더 나아가 이들과 조직 노동자 사이의 대립 구도까지 만들어냈다. 또한 노조 간부들의 비리 사건이 폭발하고 있다. 당의 유일한 시민사회 내 조직 기반은 시민사회 내에서 가장 '고립'되고 '방어적'인 세력이 되어 있다.

4. <2005년 말 당의 위기는 앞으로 당이 닥칠 수 있는 파국의 예고편이다.>

원내 진출 이후의 소위 '제3당' 지위 때문에 위의 문제점들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파국적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울산 북구에서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서 그것이 미리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더 이상 과거의 당 성장 경로(구조적 한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빈틈을 활용하는 것)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당의 근본 한계들에 정면으로 도전해야만 당의 활로를 열 수 있다.

물론 앞으로도 정치 기술과 요행에 기댈 수 있을지 모르고, 그게 어느 시점까지는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적인 대선 주자를 전면에 내세워서 대선을 돌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총선 결과나 이후 당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는 없다.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와해나 최악의 재편은 일본 사회당의 경우처럼 하루아침에 당을 해체시켜버릴 수도 있다.

5. <특정 정파나 1기 최고위원회는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방치하거나 증폭시키는 요소였을 뿐이다.>

최근 당의 상황을 특정 정파나 1기 최고위원회의 무능력·오류로 치환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시각은 당의 진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1기 최고위원회 다수파뿐만 아니라 당내의 모든 세력들이 당의 근본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현재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음을 자성해야 한다.

다만 특정 정파와 1기 최고위원회가 문제를 덧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압박 세력쯤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오류였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재·보궐선거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울산 북구보다도 나머지 3곳의 선거 결과와 직결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특정 정파와 1기 최고위원회만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개혁공조' 전술을 취한 의원단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외의 다른 전략·전술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타 정파들도 면책될 수 없다.

6. <지금 민주노동당에 필요한 선택은, 한 마디로, '요새'를 떠나 '제2의 창당'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고립된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우선 조직 토대의 측면에서,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 새로운 토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념·정책의 측면에서도,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당내 정파 봉합의 구호일 뿐인 '자주'와 '평등'으로부터, 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는 '부유세·무상의료·무상교육'으로부터 성큼 나아가야 한다.
 
활동 방식 측면에서도,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지난 5년간 쌓인, 원내 진출 이후 조금 변했을 뿐인 활동 패턴을 중앙당부터 지역조직까지 과감히 재검토해야 한다. 당 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까지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요새'를 떠나면 위험은 더욱 증가한다. 새로운 '진지'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온갖 공격에 노출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이 아니라면, 무너지는 '요새'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구원군은 없다.

'제2의 창당'은 썩 맘에 드는 용어는 아니다. 이미 '재창당'이라는 역사적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당'과 같은 용어를 쓰게 되면 또, '강령을 새로 만들자', '당명을 고치자'는 쓸데없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논란이야말로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가리려는 자들의 짓거리다. 이런 식의 논란은 운동'권'들의 도락에 그칠 뿐이다. 여기서 '제2의 창당'이란 말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당의 뿌리부터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무슨 문서 만들기나 당대회 몇 번 더 하기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7-1. 조직 토대의 측면

노동조합운동은 여전히 당의 가장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당은 '지금 존재하는' 노동조합운동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도래해야 할)' 노동조합운동에 자신의 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창당 시기에 형성된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민주노총 쪽으로부터 단절을 요구받지 않는 한,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실내용은 전복시켜야 한다. 당은 민주노총의 변화를 모질게 강요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전달되게 만들어야 한다.

 

항상 그렇듯이 이행은 고통을 수반한다.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은 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울산 북구는 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버려야만 다른 뭔가를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당은 이제 그럴 때가 됐다.

당이 독한 결의를 품으면 예상치 못한 일을 낼 수도 있다. 지금 당은 분명히 일정한 사회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기성 노동조합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 힘을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 데 써야 한다. 이게 당이 노동조합운동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

또한 2006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제는 지역 시민사회를 장악할 방략을 짜야 한다.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수준에서 넘어서서 지역사회를 흔들기 위해 나서야 한다.

7-2. 이념·정책의 측면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이념 정당이 아니다. 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강령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그 강령이 당 정신으로 뿌리 박혀 있는 게 아니다. 이건 현재의 강령에 반대하는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 당원, 평당원들이 당 강령 정신의 바깥에 방치돼 있다.

사회주의 이상의 '제한적' 구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사회주의 이념의 범위 안에 있는 당 정책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에 대한 당내 합의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낮다. 부유세조차도 수많은 반발 속에 겨우 채택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두 방향에서 동시에 자극이 필요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한 아래에서부터 위로.

우선 위로부터는, 한국 사회의 거대 비전을 더욱 공세적으로, 더욱 야심차게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당 연구소뿐만 아니라 정책위원회도 좀 더 중장기적인 비전의 제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런 내용 없이는 대선 때 김근태 류와의 차별화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당장 내년부터 이런 내용이 당원들에게 제시돼야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아래로부터는, 무엇보다 토론운동이 필요하다. 의견그룹간 토론이 아니라 평당원 수준의 토론으로서, 주요 정책들과 한국 사회 비전에 대한 논쟁을 촉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년 말쯤 정책당대회로 1차 수렴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토론 과정은 단순히 당내 합의를 높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7-3. 활동 방식의 측면

 

원외정당 시절에 중앙당부터 지역조직에 이르기까지 뿌리깊게 쌓인 특정한 활동 패턴들이 있다. 이는 운동'권' 활동가들의 특성과도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운동권 출신들의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 그것보다는 더 분석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원내 진출 이후의 활동은 이러한 기본 패턴에 단지 의원단 활동이 덧붙여진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원내 활동과 대중투쟁의 결합이라는 게 기계적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명제를 잘못 이해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새로운 활동 방식을 상상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정말 집중 의제를 갖고 의원단부터 지역조직까지 하나로 움직이는 새로운 활동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올해 당대회에서 이것을 결의는 했지만, 1기 최고위원회는 그 실행 능력이 없었다(사실은 의지도). 최고위원회뿐인가? 좌파 성향이라는 광역시도당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간은 2년도 채 안 남았다. 더 재어볼 시간도 없다.

뭐든 시도해보는 것밖에 다른 답은 없다. 2007년 대선까지 목적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그 그림을 실행해야 한다. 기성 정치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든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하게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의원단 활동에 대한 평가와 재설계다. 필요하면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에 대한 당원 총투표 형태의 재평가도 추진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이제 상임위원회를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전당적 활동 계획 속에서 새롭게 자신의 임무를 부여받아야 한다.

8. 덧붙이는 말

집권의 실력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위기와 시련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당의 실력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다. 바로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곤경이야말로 우리의 값진 기회다.

100년 전의 한 위대한 정치가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오류에 대한 정당의 태도라는 것은 그 당이 얼마나 진지한지, 실제로 자신의 계급과 근로인민 대중들에 대한 의무를 얼마나 다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 그 원인들을 밝혀내는 것, 오류로 이끈 상황을 분석하는 것, 오류를 바로잡을 수단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 ― 바로 이것이 진지한 당의 징표요, 바로 이것이 당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계급, 나아가 대중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제7장에서)

----------------------

'노동운동의 위기와 대안전략'에 대한 토론 
 
1.
 
'위기'의 시기는 또한 '기회'의 시기라고 한다. '위기'가 '기회'를 동반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위기'의 시기일수록 '전위'적 주장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토론하며 더 나아가 수용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해체와 이완의 시기에는 평소 구조와 관행의 꽉 짜인 틀 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게 비로소 보이게 되고 누구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던 걸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주체의 역량과 무관해 기각되는 것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바로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미래의 해답의 실마리가 발견되곤 한다. 그렇다면 '위기'가 이야기되는 요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과감한 '전위'적 제안들이 아니겠는가.  
 
토론자는 1부 발제자들 중 주로 노중기 교수의 발제문에 대해 토론하려 한다. 토론자가 보기에 노중기 교수의 발제문은 노동운동의 대안전략이 취해야 할 대강의 방향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토론자는 발제자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그 제안들에 덧붙여서 고민할 거리들을 제시하는 데 치중하고자 한다. 
 
2.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한국사회의 위기'를 논하는 이 자리에서 왜 유독 노동운동의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운동에 기반을 두고 창당했으니 노동운동에 대한 발언이 빠질 수 없다는 게 그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변신은 그보다는 더 중요한 위상과 의미를 갖는다.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개혁은 상당히 깊고 넓은 수준의 단절을 요구한다. 개혁해야 할 경제·사회 구조들이 단지 최근의 신자유주의 추세하고만 관계된 게 아니라 개발독재시대 이래의 깊은 내력을 지닌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87년 이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개혁이 지체되고 그래서 문제들이 더 덧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개혁을 추진할 사회적 주체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87년 이후 등장한 '민주적'인, 하지만 기업별인 노동조합들의 근본적인 한계는 바로 이러한 주체가 되는 데 구조적 장애를 지닌다는 점에 있었다.
 
기업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그 간부진에 이르기까지, 시야가 기업 안에 한정되었다. 생산과 분배의 문제는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라는 형태로는, 기업들과 노동자·민중 전체의 삶 사이의 관계라는 지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경제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해법을 던진 것은 항상 자본 쪽이었다. 소수의 비주류 지식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도 노동조합운동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혁신은 좁은 의미의 노사관계 쟁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구조 개혁의, 한국사회의 '제2의 민주화'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라는 의미를 갖는다. 
  
3.
 
'단절'은 현 상황을 바라보는 지식인·운동가의 관점에도 적용돼야 한다.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에도 제시된 것처럼 비정규직·중소기업 문제라는 게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상륙 이전부터 한국 경제구조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뿐만 아니라 진보적 지식 사회에서도 그것이 제대로 인식되고 논의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인·운동가들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문제란 바로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의 실종이다.
 
'노동계급 형성'이라는 과제는 90년대 초반까지의 이른바 '민주주의혁명(DR)' 논쟁에서는 극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전개되었었다. 그러다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변혁 논의 자체가 침체하고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가 고착된 90년대 중반쯤 되면,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그 일부 측면에 대한 논란만이 남고,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에 대한 본격적 고민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80년대 한때 '도시 비공식부문' 등의 이론틀로 주목을 받았던 중소기업·주변부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노동조합운동의 주무대에서 사라진 것과 함께 지식인·운동가의 시야에서도 이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관심의 부족은 기업별 노동조합만 물고늘어질 게 아니라 정당의 부재에서 그 근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라는 '현실' 노동자정당의 등장은 당장 그것만으로는 이러한 상황의 타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자체가 기존 노동조합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로 건설되어서 노동조합운동의 시야를 넘어서는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단순히 노동조합 활동을 좀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 차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을 고민해야 한다. 발제자가 노동계급 대중정당의 역할에 주목한다든지, 지역 사회를 노동운동이 새로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무대로 바라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4.
 
지금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조직 모형은 무엇인가? 즉, '이행'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론 그 기본적인 형태는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대체로 '산업별' 노동조합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의 단순 합으로서의 산별노조 건설 방침이 벽에 부딪힌 지금, '산별'노조라는 언명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이제는 '어떤' 산별노조인지도 덧붙여 이야기해야만 하게 됐다. 어떤 노동자들을 1차적 조직 기반으로 하여 어떤 활동을 주로 펼쳐나갈 산별노조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제까지의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다음의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지적한다. 정규직 조합원의 최소 30% 정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개별 사업장의 대의 구조에서는 이 30%가 그저 '소수'의 목소리로 그쳐 버린다. 여기에서 앞으로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조직 중심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지금은 조직 중심이 대기업 내의 여러 경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 있는 데 반해 앞으로는 대기업 내 정규직 노동자들 중 계급적 연대에 나설 의지가 있는 경향들과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조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산별노조 전환은 바로 이러한 중심 이동을 실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발제자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철폐 투쟁을 예로 들었으므로 토론자도, 다소 위험은 있지만, 이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사례에 위와 같은 관점을 대입한다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현대자동차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조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경계선에 따라 나뉜다(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 그런데 이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선이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과의 연대 의지에 따라 정규직 내에 그어져야 한다. 그래서 계급 연대적 조직과 기업 기득권적 조직 사이의 경쟁 구도가 되어야 한다.
 
이게 이상적인 모형이라고는 해도 과연 단기간에 이러한 조직 재구성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부정적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들이 더 많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기존 조직 노동자들이 조직 전환 과정에서 느끼게 될 위험(risk)이다.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우려다. 조직 전환 시에 기존 임·단협의 성과들이 그대로 계승될 수 있을지는 극히 불분명하다. 오히려 그렇게 되기 힘들 가능성이 더 높다.
 
더 심각한 위험은 기업 내에서의 안정된 교섭 구조를 박차고 나와 초기업단위 교섭 구조를 요구할 때 이러한 교섭 테이블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나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총파업, 아니 대중파업(우리의 87년 직후와 같은) 상황을 요구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보수언론이 '사회적 혼란'이라고 비난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조직 재구성을 촉진할 조건은 2007년 복수노조 도입의 위험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평조합원들에게 위기 의식을 불어넣을 정도의 변수는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
 
한 마디로 지금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은 '목숨을 건 도박'이다. 요즘 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해 도덕적 비판을 퍼붓기도 하고 기존 노동운동 정파들의 '무능'을 타박하기도 하지만, 사실 핵심은 이러한 '도박'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실제 그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누구도 정말 그렇게 하라고 등을 떠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하는 비판들만 해대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등 떠미는 악역을 맡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조합운동의 주역들에게 '목숨을 건 도박'을 감히 강권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주 모진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이건 "노동조합 때문에 표가 안 나온다"는 천박한 불평 때문이 아니다.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를 복원해야 하고 당이 그것을 앞장서서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여기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당은 노동조합운동의 이행 과정에서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민주노동조합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모든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해 노동운동이 기댈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을 위해 당을 철저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당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통과 그 새로운 전망의 압축적인 상징이 되어야 한다. 가령 이제까지 민주노동당의 노동 관련 정책들이 민주노총의 정책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던 데 반해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독자적 노동 관련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 구조에서 새로운 노동조합 구조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당이 '도래할' 새 노동조합운동을 미리 대변하고 이를 예비해야 한다.
 
둘째, 지역 차원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의 일부 지역조직을 비정규직 센터로 발전시키자는 당 혁신 제안을 내놓았는데, 비정규직 센터라는 게 단순히 상담 사업을 수행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센터'의 역할에 대해 좀 더 풍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 지역조직들이 해당 지역의 노동조합 이행 과정에서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 각 사업장의 현장 활동가들이 기업단위를 넘어 교류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운동 바깥에서 노동조합의 이행을 지지·지원할 원군들(지역사회운동)을 규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과연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이런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에게도 하나의 '도박'이다. 비록 극히 제한된 기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성 민주노조들은 당의 얼마 안 되는 조직 기반들 중 하나다. 그런데 자칫하면 기존 기반과의 연계는 미약해지면서 새로운 기반은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 몰리지는 않겠는가?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선거에 민감한 제도권 정당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고민 없이 과연 과감한 선택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토론자는 어떤 당위보다도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당이 '도박'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영삼·김대중의 퇴장 이후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선거는 정치구도가 크게 재편되는 '기회와 위기의 시기', '가능성과 혼란의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대선에서 일정한 규모의 지지 블록을 형성해 '유효' 정치세력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의 더 이상의 발전은 기약하기 힘들다. 어차피 당으로서는 미래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 지지 기반 자체를 재구축하는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이행과 당의 지지층 구축 작업이 서로 맞물릴 때 둘은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면 지금 세대 안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할 세력을 찾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우선 이 사실을 확실히 직시하는 게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12/24 18:42 2005/12/24 18:42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 등

View Comments

2009.05.11 열우당의 신강령 제정 기사를 검색하다가 네이버블로그에서 옮겨놓았다.
 

ㅇ 벽안(碧眼)의 천사

 

12월 2일자 경향신문 여적의 제목이다. 언제부터인가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간 후에는 이런 식으로 불리웠다.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하지만, 과거 문둥병이라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할 때 그들은 20대 후반의 나이로 소록도에 와서 환자들과 함께 했다. 그들이 그렇게 43년간 소록도에서 생활한 데에는 아마 종교적인 신념이 바닥에 있었겠지만,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도 작용했으리라.
 
요새는 자유주의가 과잉이다 보니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 경제인관, 이기적 인간관, X형 인간형만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언론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에 대해 그것이 정치투쟁이라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기업노조들이 비정규직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비판하고서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하겠다고 하니 그건 불법이라고 트집을 잡는다. 왜 항상 노동자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가. 여적에 보면 성프란체스코가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이라고 기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지금 투쟁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뜬금 없는 걸까.
   
http://www.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2011806441&code=990201
     
o 네이버ㆍ다음ㆍ네이트가 '포털신3강'을 구축했단다. 
 
네이버·다음·네이트 ‘포털 신3강’(한겨레신문, 2005-12-08 오후 08:03:16) 
 
엠파스의 열린검색이 아직은 네이버를 따라잡지 못하고, 주요뉴스 검색에서 있어서는 네이버와 다음이 선두권이다. 블로그가 많은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네이트는 미니홈피와 연결된 무료문자메시지를 제공하는 메신저로 엠에스엔을 무너뜨리고 메신저계의 정상을 차지하면서 포털3강에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엠파스와 야후는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o 공정위의 MS S/W 분리판매 명령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반발?
 
미국 법무부가 12월 7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대한 `끼워팔기' 제재가 지나치다고 밝혔다 한다. 공정위의 MS사에 대한 소프트웨어 분리판매 명령은 "소비자들이 선호할 수도 있는 제품의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거나 적절한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브루스 맥도날드 미 법무부 반독점담당 부차관보는 "건전한 반독점 정책은 '경쟁업체들'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하며, `우위 기업들'이라 하더라도 혁신과 경쟁을 저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국이 소비자들에게 이용가능한 제품들을 규정함으로써 시장의 판단을 그들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경쟁정책을 전공하는 분들은 이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사실 이럴 때 자기 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석사과정 때 배운 이론은 미국 법무부의 입장과 거의 비슷하다. 소비자의 편익을 강조하고,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라는 것인데, 말은 그럴싸하지만 글쎄다. 
   
o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보수당의 새 당수로 선출
 
영국 보수당에서 노동당을 꺾기 위해 젊은 인사를 발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나는 조지 오스본이라는 인물을 주목했었다. 올해 33살의 그는 최연소 재선의원으로서, 지난 5월 당내 2인자 자리인 예비내각(Shadow Cabinet) 재무장관에 임명되었고, 당권에도 도전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는 중도파를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 방안에 있어서도 보수당의 전통 철학을 벗어나는 당개혁을 주창한 바 있다. 방향만 반대이지, 노동당의 블레어와 같은 개혁을 시도한 셈이다. (블레어의 개혁에 대해 3번 집권했기에 성공적이라고 주류 언론은 보고 있지만, 나는 블레어가 노동당을 말아먹었다고 본다.)
 
그런데 12월 8일자 신문에서 보면 데이비드 캐머런(39) 의원이 두 배 이상의 표차로 데이비드 데이비스(57) 의원을 누르고 영국 보수당의 새 당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오스본은 어디로 간거야?
 
캐머런은 전형적인 귀족엘리트이지만, 서민적이고 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다고 한다. "헨리 7세의 후손으로 엘리자베스 여왕과도 먼 친척이 된다. 아버지는 증권계의 거물이고 어머니는 치안판사다. 캐머런은 귀족들이 다니는 명문사학 이튼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곧바로 보수당의 정치 자문 역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정계에 입문하자마자 승승장구해 예비 내각의 각료직을 거쳤다. 10월 시작된 보수당의 당수 경선에서 선풍적인 바람을 몰아 주목받았다."(중앙일보, 2005년 12월 8일자, http://news.joins.com/internatio/200512/08/200512080450585501400046004610.html) 한국이나 영국이나 집권하려고 하는 보수정치꾼들이 항상 그러는 것처럼, 그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흑맥주를 마시는 등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다.
 
역시나 캐머런도 '보수당의 블레어'란다. 영국에서 조금 젊은 이미지를 가지고 개혁을 말하면 다 블레어로 통하나 보지. 그는 유세 과정에서 늘 "보수당은 변해야 한다. 그리고 변할 것이다. 반드시 변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문제는 방향이다. 하긴 영국 노동당이 과거 보수당이 말했던 내용을 몸소 실천하여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활동하는데, 자신들이 설 수 있는 입지가 계속 좁아졌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캐머런이 말하는 변화와 개혁의 개념은 결국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로서, 전통적인 보수주의 이념이다. 신자유주의와 같이 경쟁과 시장질서, 자본의 이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인, 가족에 대한 강조, 소외된 지역과 불우한 계층에 대한 관심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보수정당들의 색깔은 무엇일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이런 젊은 활동가가 대표에 출마하면 안되나? 대표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인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조승수, 천영세, 김창현, 주대환, 최규엽 등 중 조승수 전 의원이 가장 젊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당직선거에서 진정한 혁신을 할 수 있을까?
 
ㅇ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
 
다른 것은 필요 없고 프레시안의 윤태곤 기자의 기사만 담아온다. 
 
"고임금 직종은 수천억 남는 회사에 합리적 인상도 요구 못하나"
KAL조종사 파업 이틀째…합류자 늘고 사측은 고소로 맞서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05-12-09 오전 9:36:25)
 
"1억원 받는 우리가 왜 파업을 하냐고요?"  
[르포] KAL 조종사노조 파업현장의 목소리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05-12-09 오후 5:21:3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12/11 07:41 2005/12/11 07:41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2005 국가-권력-사회주의

View Comments

아래 글은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라는 그룹에서 발간한 신질서 제3호에 실린 것이다. 그날이 오면에서 책을 읽으려고 갔더니 책상에 놓여져 있어서 알았다. 학사정연이라는 이 학생운동단체는 구성된지 6개월 쯤 되었고, 서울지역, 특히 서울대에 구성인자가 제법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칙을 가지고 활동하는 건 좋은데, 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사회주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갔으면 좋겠다.

 

아직도 민주노총의 중앙파로 표현되는 전진을 국민파와 거의 비슷한 류의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으로 파악한다. 하긴 좌파들이 다 그렇지. 그래도 나름의 건강성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좀더 세련되게 선전,선동하기를 바란다.

 

아래 글은 니코스 풀란차스의 저작 [국가-권력-사회주의]를 정리한 것인 듯하여, 따로 퍼왔다. 전진 정책위원회에서 진행했던 대안사회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다루었던 주제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풀란차스의 저작이라 관심이 있었다. 대체로 쉽게 잘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같은 저작을 보고도 다른 결론이 나온다고 그럴까? 그래서 해석이 중요하다는 걸까?

 

---------------------------------

 



2005 국가-권력-사회주의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교조적 진부함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부르주아의 국가이며, 자본주의 국가 일반 및 모든 개별적인 자본주의 국가는 부르주아의 독재라는 것이다. 최근까지 그러한 주장은, 프랑스 공산당 내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논쟁에서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관념의 ‘유지’를 지지하는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특히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의 저자인 발리바르에 의해 거듭 단언되었다. 그러한 분석이 연구를 일보도 전진시킬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유사한 것이라는 외형을 제외한다면, 자본주의 국가의 상이한 형태와 역사적 변화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이론은 구체적 상황을 분석하지 못한다. 이러한 분석의 불모성은 무한한 정치적 귀결을 초래한다. 이러한 분석은 국가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단순화-교조화의 결과이며 부수적 효과이다』   

- 니코스 풀란차스 『국가·권력·사회주의』 中

 

『일상적인 국가개념은 일방적이며 기괴한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은, 다니엘 알레비의 <자유의 쇠퇴>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새로운 문학에서 그 책의 서평을 읽었다. 그가 보기에 ‘국가’란 대의제적 장치인데, 187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보통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적 유기체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인 유기체(자본주의 기업들, 참모부 들)들이나 또는 나라 전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시민봉사자들이 주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견이야말로 바로 ‘국가’란 단지 정부의 장치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헤게모니 장치, 또는 시민사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안토니오 그람시, 『국가와 시민사회』中


 현 시기 민주노조 운동은, 내부적으로 노사협조주의로 경사하면서, 그리고 외부적으로 노조운동에 대한 도덕성 타격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있다. 활동가들은 스스로 건설한 민주노조에게서 배신당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으로부터 근로기준법을 지키겠다는 당연한 약속만으로 마무리 된 것은, 현재의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입성 이후 본격화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흐름은, 한편에서는 코포라티즘의 외형적 기구를 완성하는 것으로, 즉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재개와 개량적 산별노조 건설 흐름의 가시화로 드러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적 계급투쟁에 대한 방기와 정리로 드러나고 있다. 한 마디로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은 국가권력의 계급투쟁관리기제로 전락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이라고 해서 항상적으로 국가장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국가권력은 공식적인 국가장치만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님을, 즉 공식적 국가장치 이외에도 수많은 사적,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로 구성된 국가장치를 통해 행사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국가는 결코 행정, 입법, 사법의 기구로, 군대와 경찰 기구로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는 공식적/폭력적 국가기구로 한정되지 않으며, 또한 전일적으로 제도화된 메커니즘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그것이 단일한 법으로 구성된 전일적 이미지에 근거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것은 각 장치의 내부에서, 그리고 각 장치간의 관계에서 수많은 균열을 내포한 체계인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가다. 민주노동당 역시 국가다. 국가인권위 역시 국가이며, 노사정위도 국가다. 각종 법안의 발의와 시행에 공식·비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민단체도 국가이다. 자본주의적 의식화를 행하는 교육기관, 언론 역시도 국가이다. 누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느냐가 다를 뿐 자본주의 국가장치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남한의 민주노조 운동 역시 얼마든지 국가장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유럽의 노동운동의 역사는 변혁성을 잃은 노동조합운동과 합법정당 운동이 종국에는 그 자체가 국가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조가 앞장서서 노사협조주의를 조장하고, 반노동자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은 어떻게 행사되는가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람시와 풀란차스의 유산을 바탕으로 국가를 <세력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 규정하며, 또한 <전략적 장>으로 규정한다. 니코스 풀란차스는 그람시의 유산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사회주의』에서 기존의 국가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사회계급과 국가와의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규명했는데, 그의 논의를 따라가며 우리의 생각을 확립시켜보자.


사물-도구로서의 국가테제

 

 사물-도구로서의 국가테제는 국가를 말 그대로 ‘도구’나 ‘사물’로 이해하는 이론이다. 이것은 정통 맑스주의(즉 제2인터내셔널 시기의 맑스주의)이후의 오랜 관념이다. 이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처럼, 국가를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와 동일시하며, 지배계급의 손에 놀아나는 제도화된 전일적 도구로 이해한다. 레닌의 국가개념 역시 이런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를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대의 산물’이자 ‘조직된 폭력’으로 정의하였으며, ‘국가장치’와 ‘국가권력’을 구분하며 부르주아의 국가장치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그대로 사용될 수 없으며, 모조리 분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면 타당한 정의이지만, 국가권력의 구체적 작동양태와 그 분쇄의 과정에 대해서 말해주는 바는 없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국가는 다만 지배계급에 의해 ‘조종’되는 제도화되고 체계화된 외재적 권력 정도로 이해하기 십상이며, 계급관계에 외부적인 영향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정도로 이해된다.  

 

 이 국가이론에서는 국가의 자율성은 全無하다. 따라서 국가는 오로지 지배계급의 의도에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것이다. 이 테제에서 국가는 헤게모니 분파들에 대해 어떠한 자율성도 보장되지 못하며, 국가는 부르주아에 의해 수동적으로 작동되는 되는 오락기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부르주아는 항상적으로 통일된 집단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투쟁은 국가에 어떤 균열도 낼 수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전일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지는 국가를 전제하기 전에 이미 하나의 이해관계로 통일되어 있어야 하며, 국가가 한 계급(부르주아)의 전일적 도구로 상정되는 이상 피지배계급이 국가에 균열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이 국가에 균열을 낸다면, 그것은 이미 한 계급의 도구가 아니지 않은가? 지배계급은 선험적으로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해서 통일된다. 도구적 국가테제는 경험적으로건, 이론적으로건 오류를 내포한다.

 

주체로서의 국가테제

 

 ‘주체로서의 국가테제’는 사물-도구로서의 국가테제와 현상적으로 정반대이지만, 본질적으로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 도구주의적 국가이론과는 다르게 ‘주체로서의 국가’는 자신의 합리화 의지와 고유한 권력을 지니고 또한 사회계급들에 대해 절대적 자율성을 지니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에 따라 국가의 정치라는 것은 어느 사회계급의 이해관계에도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관료제와 정치엘리트만의 것으로 복속되며, 국가는 부르주아 분파 내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사회계급간에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조정자의 역할로 상정된다. 주체로서의 국가테제는 절대적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국가권력을 상정하는데, 이것은 결국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선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결론을 야기한다. 도구적 국가이론에서 상정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주체로서의 국가테제에서, 부르주아는 이질적인 수많은 분파이며 국가는 통일적 권력체이다. 그렇기에 통일적 국가에게는 제멋대로 날뛰는 부르주아 분파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절대권력이 부여되며, 국가는 전체 부르주아에게 궁극적으로 이로운 무엇인가를 총자본의 입장에서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절대권력을 가진 신으로 상정되는 것이다(이런 이해의 연원은 헤겔이며, 베버가 이를 답습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자면 국가의 균열은 오로지 정치엘리트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선험적으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 국가권력은 수많은 계급분파간의 충돌과 그를 통한 역학관계의 형성을 통해 행사된다. 어떤 식으로 국가권력이 행사되는가, 그 자체가 계급간의, 그리고 계급분파 내의 역학관계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계급들의 관계 맺음 - 진지전의 문제

 

 상반되는 듯 한 두 국가테제의 공통점은 바로 “국가와 사회계급들은 외재적으로 관계한다는 관점”이다. 자율성 0, 혹은 100. 이런 관점 속에서 국가는 침투 불가능한 요새와 같은 일괴암(monolith)으로, 즉 계급관계에서 외부적으로 존재하기에, 내부적 모순과 균열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것은 알튀세르에게서 역시 마찬가지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등 환원불가능한 각 ‘심급’의 총체이며, 각 심급은 중층결정되기 이전에 독자적 심급으로 존재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국가’의 심급과 ‘계급관계’의 심급은 분리되는 것이다. 결국 알튀세르에게 국가는 계급관계에 외재적인 것이며, 따라서 국가내부의 균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었다 할지라도, 국가라는 전략적 장(field) 내부의 계급투쟁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외재적 국가론에 근거한다면, 계급적 역학관계에 따른 국가형태의 구별은 불가능해지며, 따라서 전략적 선택의 폭 역시 엄청나게 축소된다. 계급적 역학관계의 변화에 국가권력은 외재적이기에, 파시즘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지, 서구식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이런 파악 속에서 유연한 전략전술은 불가능해진다. 균열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의 타도 밖에 없다. 곧 진지전을 배제한 기동전을 상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지전을 배제한 기동전은 파괴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 이행의 난관에 대해서는 완전한 침묵으로 귀결된다. 국가는 전일적 도구 혹은 규율권력이며, 그렇기에 어떤 형태로건 이용될 수 없다는 전제 속에서, 새로운 권력기구를 ‘건설’하는 과정은 국가를 ‘파괴’하는 것과 어떤 유기적 관련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레닌 역시 오로지 파괴의 문제에 집중하나, 그 역시 실질적 이행과정에 부딪혀 짜르체제가 남긴 권력기구들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이를 이행과정의 어려움에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문제’로 평가한다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아무것도 없다. 레닌이 부딪힌 난제는 우리에게 기동전을 전제한 진지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경제와 정치의 분리의 지양, 생산자 민주주의의 실현, 폭력적 국가기구의 분쇄라는 과정은, 결코 파괴를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바로 지금에서부터 그 신질서의 맹아적 형성이 준비되어야 한다. 건설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구 체제의 파괴조차 이루어질 수 없다.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는 프롤레타리아의 질서가 안정적으로 확대재생산 가능할 때에만 완수된다. 이런 건설과정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가능한 것은 스탈린적 국가주의일 뿐이다. 『국가와 혁명』, 혹은 『프랑스 내전』을 읽고 오늘 PT혁명이 일어난다면, 내일 군대를 폐지하고 노동자 민병대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몽상가일 것이며, 이런 낙관이야 말로 이행과정에서의 국가주의의 근원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이행의 과정이라는 것, 우리의 임무는 피지배계급의 독자적 질서형성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는 결코 계급관계에 외재적인 형태가 아니다. 헤게모니 분파는 국가 내부에서 끝없는 분쟁과 다툼으로 인해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고 있고, 계급투쟁 역시 국가의 장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산관계 내에 국가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투쟁과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정치투쟁은 체제자체의 본질상 있을 수 없다. 경제와 정치의 공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자연발생적인 투쟁과 의식화된 투쟁이 있을 뿐이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대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속류적 정치투쟁 우위론은, 그 자체가 국가주의 혁명론의 표현이거나 민주노동당 류의 저열한 의회투쟁론으로 귀결될 뿐이다.

 

세력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서의 국가, 그리고 전략적 장으로서의 국가

 

 국가가 지배계급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거나, 혹은 반대로 사회계급들의 갈등을 완벽하게 조정하는 모습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탄핵 사건, 비정규개악법안 관련 국가인권위의 권고안, 그리고 노사정 대표자 회의의 기능 등에서 드러나듯, 국가는 계급간 역학관계의 물질적 응축인 동시에, 계급갈등을 구현하는, 수많은 균열을 내포한 이질적 장치의 총제이자 전략적 장이다.  

 

 국가는 생산관계 내에 경제적 소유 권력(생산수단 소유와 독점)과 노동대상의 영유(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의 종속)의 이중적 권력으로 생산관계 내에 현존한다. 경제외적 공간(상부구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구성요소로 경제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곧 부르주아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생산수단을 침탈하면 군대가 투입된다!”라는 협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통한 소유관계와 임금노동 관계를 재생산하는 항구적 과정을 통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토대-상부구조 모델과 달리, 경제적 공간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공간이 아니다. 결국 풀란차스는 그의 초기저작에서 알튀세르로부터 빌어온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란 개념을 폐기한 것이다. ‘상대적 자율성’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제는 절대적으로 자율적이어야 한다. 『국가·권력·사회주의』에서의 풀란차스는 이제, “그렇다면 경제는 국가에 대해 절대적으로 자율적이란 말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제는 완결적으로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관계 내부에서, 부르주아 우위의 권력관계를 형성·재생산하는 구성요인으로서 국가가 존재한다. 생산관계는 부르주아의 소유권력 그 자체로는 결코 재생산되지 않는다. 생산관계 속에서의 적대, 곧 계급투쟁은 그것이 물적으로 표출되건 아니건 간에 언제나 존재하며, 생산관계 내에서 이 적대를 규율함으로써 소유관계와 임노동관계를 재생산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의 실체이다. 국가는 계급모순으로 구성되고, 또한 계급모순으로 인해 분화된다. 즉 계급모순을 통해서, 그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계급모순은 국가를 관통하며, 국가는 계급모순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물론 부르주아가 국가장치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지배적’ 위치이며, 이것은 국가장치의 중핵들이 기동전에 의해 전복되지 않는 한 유지된다. 그럼에도 국가가 사회계급에 대해 내재적이라는 말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이 국가장치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계급투쟁이 밖에서 안으로 국가를 관통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장치의 형성·변천의 전 과정이 계급투쟁의 과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 서유럽 국가의 노동조합을 하나의 국가장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골적인 부르주아 계급성을 띠지 않은 것은 ‘부르주아 국가’에서 배제된 기구여서가 아니라 여전히 프롤레타리아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장치이기 때문이다. 현 시기 남한의 민주노조를 국가장치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언제라도 그것은 국가장치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 시기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표상되는 자본의 공격은 본질적으로 노동조합을 국가장치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국가장치로 불러도 전혀 이상할 바 없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변별선 자체를 지워버리려 한다.

 

학원 사회의 국가장치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학원 사회 내에서도 부르주아 국가장치는 존재한다. 먼저, 대학자체가 국가장치이다. 그것은 의식화·조직화 기능을 행사함으로써, 구성원들을 부르주아 당파성으로 이끌어낸다. 물론 대학은 언제나 균열을 내포한 것이었다. 문제는 대학 내의 이런 균열들이 점점 무력화되고 있으며, 점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만이 생산되는 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대학 내의 학생사회 내에 형성되고 있는 각종 금융동아리와 부르주아 경제학 담론들이다. 이런 집단과 담론들은, 일상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는 국가장치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대중은 금융강좌에 몰리고 있으며, 주식투자 동아리에 몰리고 있다. 대중은 우리 운동권보다 부르주아 경제의 동학에 대해 더욱 민감하며, 우리 운동권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이전 정치경제학 연구회의 자리를 벤처투자모임이 밀어낸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진지상실이다. 학생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장 민감한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지반자체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교육투쟁은 현 시기 학생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결코 등록금인상 반대투쟁으로 한정될 수 없다. 그것은 교육내용에 대한 투쟁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학원 사회 내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맞서 굳건히 투쟁할 수 있어야 하며, 공교육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계급적 관점에 입각해 현 사회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중국효과’, ‘제조업 공동화’운운하며 노동의 욕구수준을 낮출 것을 요구하는, 학생대중에게 부르주아 당파성을 견지할 것을 요구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에 대한 무기를 벼리는 것은 한 시도 지체될 수 없는 문제라 판단한다. 정치경제학에 대한 철저한 학습을 바탕으로, 현실 자본주의의 구체적 동학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시작하자. 이런 이데올로기 투쟁의 성과 속에서 자본의 진지를 걷어내고 우리의 진지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영원히 학원내의 소수자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면, 이 점에 답하지 않고서 학생운동의 미래는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8/10 16:48 2005/08/10 16:48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진보정치연구소 창립토론회 내용 정리

View Comments

아래 글은 진보정치연구소 창립토론회에 대해 쓴 오창엽 님의 프로메테우스 기사(2004/12/16 [21:23]), 토론회 자료집, 그리고 [이론과 실천] 2005년 1월호에 실린 글들을 보면서 뒤늦게 정리한 것이다. 오창엽님은 관심이 있어서인지 자료집에 실린 내용까지 참고해서 아주 세밀하게 발언자들의 얘기를 잘 정리하였다. 그는 대안사회 논의가 나오기는 하는데, 과연 '자본주의 극복이 목표'인지에 여부에 대해선 의문을 표한다. 토론회 참석자 중에서 심상정 의원과 유철규 교수, 그리고 민주노총의 김태연 정책국장의 토론이 인상 깊다. 그런 고민이 필요한데...

 

아래 글은 오창엽 님의 기사틀을 따라서 토론문의 내용을 추가하는 식으로 썼다. 오창엽님은 기사 마지막에 "이 기사는 각 토론자들이 주장한 논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 실제 토론회에서의 발언과  자료집으로 제출된 글들을 모두 참조하여 인용했습니다. 때로는 인용 표시 없이 자료집에서 옮기거나 요약한 부분도 있고, 발언과 설명의 보충이 필요한 부분을  글에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ㅇ 진보정당 원내진출은 역사적 사건이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이제는 좀 세월이 지나서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2004년은 진보정당이 수십 년 만에 원내에 진출한 역사적인 해다. 해방 후 수많은 혁신계 정당들이 있었으나 당수 조봉암이 간첩으로 몰려 법살되고 해산된 진보당에서 그 명맥이 끊겼다.

 

첫 원내진출 게다가 무려 10명의 의원을 배출시킨 민주노동당에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 부설 연구소를 창립했다. 12월 15일 창립기념토론회와 개소식을 열었다. 원내의원단과 정책보좌관들과 정책연구원들이 주요 ‘정책’을 고민한다면, 진보정치연구소는 “당의 중장기적인 이념 및 정책을 모색한다. 당의 집권전략, 각종 지배담론에 대한 대안 담론 구성, 진보이념 등을 개발한다.”를 목표라고 소개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당 지도부 5명, 전문연구자 6명, 노동, 농민, 여성, 의료계 각 1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소장과 세 명의 부소장 그리고 10여명의 상임연구위원과 50여명의 협동(비상임) 연구위원, 해외 협동(비상임) 연구위원, 자문위원회 등으로 구성될 계획이다. 2004년 3월 정당법 개정에 의해 국고보조금의 30%(약 6억원)를 정책연구소에서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규모, 재정의 안정성 그리고 의미를 고려할 때 명실상부한 진보진영의 핵심두뇌 진지가 출현하려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활동을 통해 진보담론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진보정치연구소 창립토론회는 그 창립정신과 주요인물과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현장이다. 그리하여 프로메테우스는 단지 행사를 소개하는 취재 차원이 아니라 창립토론의 주제와 내용에 큰 관심을 갖고 다루기로 하였다.

 

ㅇ 국회 안에서 자본주의 극복을 논하다

 

원내진출에 성공한 당답게 혹은 그것을 기념하듯이 진보정치연구소의 창립토론회는 12월 15일 국회 헌정기념관 104호에서 열렸다. 예상대로 많은 언론에서 토론회를 취재하거나 주목하진 않았다.

 

진보정치연구소의 홈페이지 http://www.ppi.re.kr 에 아직 소개되어 있진 않지만 명함을 통해 연구소의 영문명이 PPI(Progressive Politics Institute)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보‘정당’연구소가 아니라 진보‘정치’연구소다. 정치가 정당보다 넓은 개념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도 당과의 독립성을 고려한 게 아닐까.

 

3시 20분 김영욱 부소장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했다. 먼저 외빈 소개가 있었다. 자민련 정책연구소, 민주노동당고문 겸 한국사회경제학회명예회장 조영건 박사, 조승수 의원, 단병호 의원, 주대환 정책위원장 등이 소개되었다. 헌정기념관은 좌석이 총 80여석인데 70여명의 청중이 참여했다.


정영태(인하대 정치학) 교수의 사회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정 교수는 정책위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현재 노동자, 서민뿐만 아니라 자본의 위기”라고 했다. 사회자가 토론자들을 소개했다. 발표 : 장상환(경상대 경제학교수 진보정치연구소장), 토론 : 신광영(중앙대 사회학교수), 심상정(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김태연(민주노총 정책국장), 유철규(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장). 

ㅇ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와 ‘민주적 사회주의’

 

먼저 장상환 소장이 자료집의 글을 토대로 발제했다. 보통 학술토론회는 지루한 발제들과 짧고 형식적인 상호토론과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펼쳐지곤 한다. 오늘은 창립토론회고 또한 저녁에 개소식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기자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의 토론을 예상했다. 그러나 주제의 어려움과 민감함 그리고 토론자들의 진지한 발언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토론과 비판이 전개되었다.

  

장상환 소장의 발제는 평소 장상환 교수의 논문에서도 눈에 띄지만 애매한 절충이 그 특징이다. 가령 국가사회주의의 오류를 극복해야한다고 전제하고 국유화, 사회적 소유, 소유의 공공화 등을 주장한다거나,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하고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표현한다. 그리하여 글을 읽어도 헷갈리고 발제를 들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 오창엽님이 애매하게 느낀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사회민주주의와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소유, 소유의 공공화 등의 주장이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일까?
   

장 소장은 “미국에 가보니 학자들의 머릿속에 ‘국가’와 ‘시장’만 들어 있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현재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2000년 8월부터 시작하여 4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유례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불안정 고용확대, 국가의 소득 재분배 기능 취약 등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조세와 사회보장체제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거의 가지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장 소장은 자료집에서 ‘현재 한국 사회경제 구조’를 도표로 소개하였다.


이 토론회의 중심 주제인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장 소장은 국가사회주의는 완전한 오류로, 사회민주주의는 높은 실업률을 보이는 등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강령에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하고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음을 소개하였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 하에서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모색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민주주의 + 생산수단의 사회화 또는 시장사회주의 + 사회적 조절 강화’가 그 방향이 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새로 눈에 띄는 것은 마이클 앨버트의 [파레콘]이 주장하는 공평성, 자율관리, 다양성, 연대, 효율성, 생태적 균형 등의 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그것을 대안적 경제체제의 주요 원리처럼 소개했다. 기자는 작년에 [파레콘]을 읽고 ‘좋은 이야기’지만 학적 이해를 찾을 수 없었다. 장 소장의 발제문이 ‘파레콘’과 통하고 있음에 다소 실망하였다.

  

물론 장 소장은 “그러나 시장을 배제하고 참여적 계획에 의해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은 소규모 경제단위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국민국가 단위로 이것을 구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비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즉 앞에서는 ‘파레콘’ 논자들이 주장한 몇 가지 가치들을 공감하고 뒤에서는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절충이다. ‘파레콘’의 가치들이 실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덧붙이거나 그러한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장 소장은 계속해서 “소득 누진적 조세수입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거나 “분배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서술한다. 즉 이 토론회 주제의 부제였던 <분배/성장의 이분법을 넘어서> 즉 분배와 성장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성장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분배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보며, 그것이 대립하는 범주가 아니라, “분배 속에서 성장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서유럽 사민주의나 중국보다는 좀 더 분배에 초점을 두지만 역시 절충이다. 경제성장에 더 많은 주안점을 둔 중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제는 효율성의 원칙, 환경은 생태성의 원칙, 사회는 연대성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회적 소유의 확대 및 민주적 통제의 강화라는 주제에서 기업 소유의 사회화 확대를 주장한다. “부동산의 사적 소유 제한”도 보인다. 장 소장은 “최선의 대안적 사회경제체제 확립은 단순히 한국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남북한의 합리적인 통일을 이룩하는데 있어서도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서술한다. 그런 후에 장 소장은 ‘대안적 사회경제 구조’를 도표로 제시한다.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를 총체적으로 모색하는 장상환 소장의 고민과 그 열정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파레콘]을 읽었을 때의 허전함과 ‘정치경제학 비판’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차원에서도 학적 엄밀함이 떨어지는 논증과 설명 때문에 특별한 새로움도 명쾌함도 없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의 담론이 그리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이러한 아쉬움은 다른 토론자들의 냉정한 비판과 지적으로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장상환 (2005),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모색과 방향", [이론과 실천] 2005년 1월호.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국가사회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고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 하에서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모색해볼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 + 생산수단의 사회화> 또는 <시장사회주의 + 사회적 조절 강화>가 그 방향이 될 것이다(장상환, 2005: 59).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설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따르면 기업이라는 조직은 주주, 종업원, 납품업자, 지역사회 등 기업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단기적 주주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기업의 구성원인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 개념을 사회전체의 운영원리로 확장하면 경제운영은 시장방임이 아니라 적절한 통제와 규제가 필수적이고 사회적 멤버십 또는 시민권을 보장하는 복지사회의 이상도 유지돼야 한다(캐빈 켈리 외, 2003). 유럽대륙 국가들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깝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사회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다.

 

파레콘의 저자 마이클 앨버트는 대안적 경제체제는 공평성ㆍ자율관리ㆍ다양성ㆍ연대ㆍ효율성ㆍ생태적 균형 등의 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준에 입각해서 그는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 할당, 위계적 분업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체제로서 부와 소득의 엄청난 격차, 계급 구분을 초래하고 일반 대중은 반사회적 투자, 유해한 개인주의 생태계의 파괴로 고통을 당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역사적으로 실천된 사회주의는 실제로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조정자들의 경제적 계급지배와 동반한 정치적 권위주의적 성향의 권위적 체제로서 경제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에게 거대한 성취와 발전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 위에서 그는 이러한 가치가 실현되기 위해서 새로운 대안 체제가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다음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생산수단의 소유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소유를 지향해야 한다. ▲노동자들과 소비자가 직접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계급ㆍ계층 구분을 강요하는 위계적 조직을 지양한다. ▲재산과 권력 또는 결과물에 대한 보상이 아닌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을 추구한다. ▲시장이나 중앙계획보다는 참여계획을 통해 자원이 배분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 모든 과정이 구성원 사이의 합의와 발전적 비전 제시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러나 시장을 배제하고 참여적 계획에 의해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은 소규모 경제단위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국민국가 단위로 이것을 구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 국제포럼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열 가지 핵심원칙을 제시한다(IFG, 2002). ① 새로운 민주주의 내지 살아 있는 민주주의 ② 보충성의 원칙(어떤 결정이나 활동이라도 그것이 지역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역적으로 실행한다는 원칙) ③ 생태적 지속가능성 ④ 공동자산의 보호 ⑤ 다양성 ⑥ 인권 ⑦ 직업ㆍ생계ㆍ고용 ⑧ 식량의 안정공급과 안전성 ⑨ 형평성 ⑩예방조치의 원칙, 그리고 이러한 원칙 하에서 대안적 기업구조에 대해서는 "소규모기업에 우선권을 주고 사업체는 이익, 성장, 회계장부상 숫자들에만 관심이 있는 멀리 있는 투자자들보다는 노동자, 공동체 대표, 납품업자 등 그 운영에 직접 관여된 사람들에 의해 소유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대규모 기업의 소유문제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1. 사회적 조절의 강화

 

첫째,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강화해야 한다. 시장은 경쟁적 환경에서 효과적인 물적 동기를 창조하고, 그에 따라 경제활동에 필요한 규율을 부과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능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시장과정은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방치할 경우 불평등, 불안정, 비효율, 물신화, 소외 등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시장 철폐와 계획에 의한 국가 사회주의적 경제운영의 오류와 한계는 분명하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경제에서는 계획의 한계가 명확하다. 정확한 정보 수집의 불가능과 동기유발의 어려움, 개인의 개성적 발전의 저해 등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종속적 신자유주의에 의해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국민국가의 기능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광범하지만, 경제위기와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조절의 핵심 담당주체인 국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다만 과거 개발국가의 역할(반봉건, 자본육성, 노동억압)과는 다른 복지국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다 국가가 공기업을 비롯한 제반조직의 공적 소유의 주체로서도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재정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의 27% 수준에서 일단 OECD 평균인 41%까지 점차적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 경우 약 40조원의 추가적인 세수 수입이 기대되어 복지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소득 누진적 조세수입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2001년 현재 간접세 10.5%, 직접세 11.4%인데 대안적 방향으로서 간접세의 비중을 직접세의 1/2로 축소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우에도 고소득층은 추가적인 조세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직접세 23.2%, 간접세 12.9%의 비율이고 전체조세수입의 계층별 부담을 보면 노동자부담 33.4%(소득세 17.3%, 사회보장세 15.7%), 자본가 부담 5.2%(소득세 2.9%, 재산세 및 부유세 2%), 소비세ㆍ부가가치세 13.1%로 구성되어 있다(윤종훈, 2004). 또한 복지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써 소득재분배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사회보호에 43%, 교육 15%, 건강 12%, 일반 공공서비스 13%의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고, 조세와 사회적 급부에 의한 소득재분배 기능이 강하다(장상환, 2005: 60-61).

 

둘째, 분배를 통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은 자본과 노동의 양적 투입에 근거하여 생산성향상 부가가치의 창출 등을 추구하는 투입의존형 성장론이었다.이제 성숙기를 거치고 난 이후의 경제발전단계에서는 투입과 산출의 단선적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경제발전모델에 대한 생태주의적 접근은 단순히 환경보호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부존량이 제한되어 있는 기존 자원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환경친화적인 생산 및 분배과정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생태주의적 경제모델은 정립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발전모델에 대한 사회연대적 접근은 단순히 분배구조의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국의 총산출물이 사회의 필요와 책임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되어야만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은 줄어들고, 이는 다시 사회적 생산력의 확대에 기여한다.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고 사회응집력을 강화하는 노동친화적이고 사회보장체계가 발전해야만 사회연대적 경제모델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제적 효율성에 치중되어 있던 경제모델의 원칙이 환경친화적인 생태주의, 그리고 노동친화적 사회연대가 보완될 때 비로소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Substainable Developmant)"이 가능하다.

 

자산 및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평등한 분배는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 여러 실증연구 결과 밝혀졌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인적ㆍ물적 자본에 대한 원활한 투자를 저해하여 경제성장률을 낮춘다. 자본시장이 불완전하여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담보로 차입하기 어려우므로 신용제약에 직면한 저소득층은 적정 수준의 교육투자를 실행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물적 자본의 경우에도 초기 부존자원의 분포에 불평등이 커지면 신용제약에 직면한 소규모 기업가들은 최적 수준의 투자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게 되므로 자본축적이 저해된다.

  

소득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물적 자본의 축적이 중요시되는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소득불평등이 저축량의 증가를 통한 자본축적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개도국에서도 지나친 불평등은 투자기회와 동기를 저하시키는 반면 토지개혁 등을 통한 평등의 증대는 투자기회를 확장시키고 투자 및 근로 동기를 촉진한다. 특히 평등의 개선은 인적 자본을 증대시킴으로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경제발전의 성숙기에 접어든 경우 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지게 되면 인적 자본에 대한 원활한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기술혁신의 역량과 여건을 악화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Galor and Moav, 2003). 선진국의 경우 경제발전과정에서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적절한 분배를 통한 인적자본의 원활한 축적으로 지속적 안정성장을 도모하게 된다. 한국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자산의 평등한 재분배의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농지개혁은 자작농이 된 농민들의 높은 자녀교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산업화에 필요한 우수한 노동력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토지자본의 산업자본화를 촉진함으로써 한국의 고도성장에 유리한 초기 조건을 제공했다.

 

한국의 현재 경제발전단계로 볼 때 요소투입 위주의 양적 성장론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인적 자본의 강화와 기술혁신의 촉진이 질적인 성장잠재력의 핵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소득불평등도는 더 심화되고 있고, 부문 및 기업간 성장률의 편차는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경제는 현재 분배의 개선을 통한 성장을 추구해야 할 상황이다. 분배의 개선은 공급측면에서 인적 자본의 형성을 통하여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통하여 건강과 교육수준을 높이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사회전체가 이득을 보게 된다. 기업을 경영하는 자본가들도 높아진 생산성과 직접 지불임금 부담이 낮아지는 혜택을 본다. 그리고 분배의 개선은 수요의 면에서는 소비의 안정과 증대를 통하여 경제안정에 기여한다. 또한 분배의 개선은 정치사회적으로는 파업과 자살 등 사회적 불안을 감소시킨다.

 

(각주. 김유선은 노동소득 분배구조 악화와 경제성장간의 관계에 관한 실증분석 결과, 임금소득 불평등 증가는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조조직률 증가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비정규직 증가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노동소득 분배 구조가 악화되고 저소득층 생활난이 가중되면,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며 내수기반이 약화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저소득층 인적 자본 축적이 저해됨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며; 사회정치적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여 기업의 설비투자 의욕이 저하되고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며; 파업이 증가하고 생활범죄가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 갈등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소득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과제로서 최저임금 현실화, 산별 교섭 촉진 및 단체협약 효력 확장, 비정규직 차별 제어, 연대임금정책, 연대복지정책 등을 들고 있다.)

 

재분배의 범주에는 1) 소득 및 소득취득능력을 재분배하는 정책으로 누진적 조세와 소득 이전, 인적 자본을 포함한 자산의 재분배 및 자산가격(최저임금 등)에 대한 개입, 2) 빈곤 계층의 소비능력을 변화시키는 정책으로 재화와 용역의 재분배 및 재화와 용역의 가격에 대한 개입(기초생필품에 대한 보조금 등) 등이 포함된다. 한국사회에서 현재 상황에서 시급한 재분배정책으로는 재산과 소득에 대한 누진적 조세 징수, 부동산거품의 제거와 임대료 인상 규제, 비정규직 차별 철폐, 소재부품 생산 중소기업 지원 확대, 재래시장 육성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빈곤계층의 소비능력을 직접 높이는 정책으로서 교육과 의료, 주거, 육아 등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장상환, 2005: 61-64).

 

셋째,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의 수요 독점자적 지위를 견제하고 공정한 거래 규칙을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불공정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필요한 공정 거래법 등의 법제도(어음제도의 장기적인 철폐,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 강화 및 공정거래위의 계좌 추적권 부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도급 실태직권 조사 등)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 스스로도 대기업에 대한 협상력을 증진시킬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 인적투자, 금융지원서비스를 제고시켜 혁신주도형 중소기업들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특히 신산업에 대한 연구개발투자 만큼이나 구산업으로 분류되는 제조업의 직업훈련, 숙련교육시스템을 재정비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고도화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혁신체계의 핵심주체로 중소기업을 배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산학연 네트워킹 사업에 대한 재정적 인적 투자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장상환, 2005; 64-65).

 

2. 사회적 소유의 확대 및 민주적 통제의 강화

 

첫째, 기업의 사회적 소유를 확대해야 한다. 전력, 에너지, 통신, 기간교통(철도, 도시철도, 시내버스 등)은 공기업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현재 공공부문은 관료적 운영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공기업은 공적 소유와 노동조합의 참여에 의해 공공적,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공기업, 기간산업 기업의 경영권행사를 목적으로 한 연금기금의 주식보유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물론 연금기금의 의결권 보장이 담보되어야 하고, 연기금 운용에서의 노동자 통제의 강화, 공공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병원, 복지법인, 교회 등은 공공적 성격의 사회조직인데도 사적 개인이 지배하여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설립자의 자의적 운영이 되지 않도록 법률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소유, 운영을 공공화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금융기관의 공적 소유와 경영을 기본으로 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국민경제의 각 부문과 기업간의 자원 배분 등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각종 금융기관을 재벌과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적 소유와 경영을 기본으로 하되, 경제정책위원회가 통제하는 민주적인 금융감독기구의 감독을 받도록 한다.") 우선 공공적 소유 금융기관이 된 우리은행을 매각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한 은행의 경영의 수익이 정부와 노동자들에게 향유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정부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늘려가서 경영권을 정부가 인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의 겸업화는 금융체제와 국민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킬 것이므로 금지하고 전문화 경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재벌 지배 사기업은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외국인 소유지분 비율을 다시 제한해야 한다. 외국인 자본이 기업 경영의 핵심적 내용에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수년의 과도기를 거쳐서 10-20%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국내 재벌들이 외국인 소유지분에 대항하기 위해 역차별이 될 수 있는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의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 등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으로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민주적 참여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이익을 많이 내는 대기업에서부터 시작하여 임노동자기금 조성을 통해 노동자 소유 참가를 확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재벌의 해체와 민주적 참여기업으로의 전환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경제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재벌체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총수 일족이 경영을 독점하는 기반인 소유 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나 소유 분산이 아니라 사회적ㆍ공공적 소유의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총수 일족의 지분을 공적 기금을 활용해 강제로 유상 환수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또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해 다수 국민들이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한다.")(장상환, 2005: 65-66)
 
둘째,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의 경제정책 결정에서부터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사람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성장을 촉진하도록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경우 노동자의 책임감을 높이고 성취동기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촉진한다. 기업단위의 예를 들면 미국 회계조사국(GAO)은 일하는 사람들을 소유와 경영에 포괄적으로 참여시키는 경우 8-11%의 생산성 상승이 이루어지고 기업의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볼 때 일하는 사람들을 기업경영에 참여시키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적어도 3%이상의 경제성장률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기업경영자 대표와 정부 대표들로 '국민경제정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성장률, 투자율, 저축률, 물가인상률, 소득분배율, 임금인상률, 조세부담률 등에 관해 지시적 계획(indicative plan)을 작성하도록 한다. 각 부처별로 정책심의회가 존재하지만 형식상으로만 기능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을 실질화하는 것이다.

 

'노동자 경영참가법'을 제정하여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제도화시켜야 한다. 노동자 소유 참가 확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이 경영참가는 시급히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경영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은 없는데 기업이 부실해질 경우 무거운 책임과 부담을 지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리고 기업의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경영참가는 기업경영성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다(장상환, 2005: 67).

 

셋째, 부동산의 사적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토지의 원칙적 국공유화를 지향하고 있다. "토지나 건물 등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절대시하는 하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총생산에 대한 한국의 지가총액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투기성과 기생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지와 소규모 생활 터전용 소유지를 제외한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는 국ㆍ공유를 원칙으로 한다. 또한 주택이나 상가 임차자의 장기간 임차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억제한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토지 주택 문제에 대해서 '적정 임차기간 보장'과 '임차료 인상 억제' 등 주택ㆍ상가 임차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왔다. 이제 토지투기의 심화와 거품의 형성 등 토지주택문제가 심각해졌고, 또 국회의원이 국회에 진출하고 15%내외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토지 국ㆍ공유화라는 강령의 선언에 한걸음 다가가야 할 것이다. 토지 공개념을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우선 주택의 소유에 대해서 1가구 1주택이라는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이익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주택단지 개발의 경우 국ㆍ공유지로 유지하면서 장기 임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철저한 개발이익 환수가 필요하다. 예컨대 지하철 건설부채를 역세권 개발이익을 환수해서 상환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장상환, 2005: 68).

 

3. 보편적 사회복지체제 확립

 

사회복지분야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확립하고 공공부문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물급여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혁한다. 광범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족책임주의를 극복하고 중위소득의 50%이하 계층을 빈곤계층으로 보는 상대빈곤 개념을 도입한다. 부양의무자 규정의 실질적 폐지가 필요하다. 가족지원을 통한 기능 강화와 가족책임주의는 구별해야 한다. 상대빈곤 개념에 의하면 2002년년도의 경우 4인 가구 최저생계비 989,719원에서 도시근로자 중위소득의 50%인 1,479,345원으로 상향조정해야 하며, 이로 인해 차상위 및 차차상위 빈곤층의 일부가 수급권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생계급여를 보완하고 있는 교육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자활급여 등 부분급여를 보편적으로 확대하도록 한다.

 

둘째, 포괄적인 사회보장체제를 정비한다. 노인, 아동, 장애인을 위한 보편적 수당제도를 도입하여 대상인구의 1/2내지 1/3을 수급자로 가정할 경우 노인수당은 (연금수급자를 제외) 100만명*월 20만원=2.4조원/년, 아동수당 200만명*월 10만원=약 2.4조원/년, 장애인 수당 50만명*월 20만원=약 1.2조원/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저소득층에게 보험료를 보조하고 비정규직과 영세사업근로자 직장가입자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편입시킨다. 주거보장, 고용보장, 의료보장, 교육보장 등 보충적 사회보장체제의 공공성을 확충한다(장상환, 2005: 68-69).


윤종훈(2004), {스웨덴 조세정책 원칙 - 투명성과 공평성",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에 솔솔 피어오르는 경제성장론>, UNIㆍKLC 사회적 합의 건설 포럼/대안연대회의 공동 토론회.


ㅇ 신자유주의의 전형인 미국만도 못하다


장 소장의 발제와 자료집을 검토한 토론자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먼저 신광영 교수가 토론을 시작했다.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유럽자본주의도 마찬가지로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있다. ‘고용성장 없는 경제성장’이다. 한국에서 ‘국가’는 귄위주의 국가로 억압의 상징이고 행정통제였다. 현대국가의 주된 기능은 ‘대국민 서비스’다. 그런데 한국 공공부문 종사자 비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저의 상태다. EU의 1/4, 스웨덴의 1/5이며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전형이라는 미국의 1/2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 축소 공무원 축소를 주장하는가?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말처럼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신 교수는 “행정복지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만큼만 하더라도 100만의 일자리가 증가한다. 신자유주의만큼만 해도 한국사회가 좋아지는 셈이다. 교육문제에 있어 민주노동당이 못한다. 기본적으로 교육도 복지문제다. 유럽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체제다. ‘기회의 평등’이 존재한다. 무상교육 이야기하면 당장 공교육화의 재정을 묻는데, 이공계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식의 수명이 짧다. 북구에서는 실업수당 받으며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 업그레이드된 노동자들이 된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형해화되었다. 고등교육시스템이 붕괴되었다.

 

신 교수는 발제문에서도 권위주의 국가적 전통을 타파하고 현대적인 국가 전통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국가가 할 일을 시장에게 맡겨 두고 있다. 보편적 사회복지 체제와 관련하여 교육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육이 공교육화되어 무상으로 이루어지면 두 가지 직접적인 효과를 낳는다. 전반적으로 국민 전체의 직업능력이 향상된다. 불필요한 입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유럽은 노후 걱정이 없어서 다 소비하는데, 일본은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경기가 나쁘면 더 저축하고 그래서 소비가 줄어든다. 가속화하여 경기는 더욱 침체된다. 스웨덴은 아프면 결근한다. 영국은 아파도 출근한다. 결근이 많아지면 잘린다. 장기적으로 스웨덴이 더 좋은 시스템이다.

 

국가사회주의의 한계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한편으로 경제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차원의 민주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광영 교수는 짧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세계 국가들의 운영과 한국을 비교하였다. 분배 속의 성장이든 사회민주주의든 우선 각 영역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지적한 것이다. ‘대국민 서비스’를 기조로 하는 복지국가를 염두에 두고 각종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ㅇ 이행기 강령 수준의 정책 마련하라

 

이어 심상정의원이 토론에 나섰다. 심의원의 발언은 선이 굵고 솔직하고 무엇보다 예리했다. 오랜 노동운동가(금속노조 사무처장)로서의 경험과 6개월간의 국회의원으로서의 전혀 다른 경험이 어우러져 실질적인 고민과 생생한 의견을 전달했다.

 

심 의원은 “진보정당이 진보적인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 6개월간 원내에서 일하면서 중요한 의제들이 유실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의원들의 정책활동의 내용이 축적, 집적되고 대안체제와 연결되는 이론적 근거지가 필요하며 그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정책이 구체화되지 못해서 국회에서 <말을 못하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심 의원은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최소한 이행기 강령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제기했다. “현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라고 고백했다. 한나라당이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공격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는 일상적(전술적) ‘정책대안’과 전략적 ‘대안체제’의 결합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양자의 빈곤에 빠져있다. 민주노동당이 ‘비판’의 정당에서 ‘비전’의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물질적 생산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재정경제와 산업영역에서 취약하다고 밝혔다.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실상 190조 가운데 140조는 이미 허용되고 있는 데, 나머지를 놓고 반대하는 이유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일 뿐이며, 대안이 없다고 했다.

 

심 의원은 선거에서 ‘분배를 통한 경제성장’을 내걸었으나,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재생산 모델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 수준이며, 성장중심주의에 대한 대응슬로건으로는 의미를 가지겠지만, 근본적 대안체제 논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케인즈주의 아니냐고 반문했다. 심 의원의 발제문의 간결함과 정확한 발언과 치열한 자기반성은 예사롭지 않다.

 

한 심 의원은 ‘정책 자체의 정합성’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세력화’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원외 사회세력의 대중적 압력 없이는 원내에서 힘을 받지 못한다. 정책내용이 아무리 서민적이고 정당하더라도 국회 내 보수정당들의 논의과정에서 그 중요성이 대폭 삭감된다고 고백했다.

 

의원은 국가사회주의의 경우 ‘역사적으로 실패한’ 모델이므로 비판하기는 쉬우나, 우리의 대안이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강화’라면, 국가사회주의의 소유와 통제 메카니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모형을 전형화하여 비판의 준거를 분명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야만적인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사회민주주의체제 미경험으로 인하여 후자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이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실험도 없는 것이다. 심의원은 스웨덴에 가보고 나니 사민주의를 실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겠다고 느껴 그 후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경제학회들 ‘대안담론 형성’, 이 부분에서 다 무너졌다. 노무현 정부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집권 4개월 만에 재벌에게 항복했다. 저항, 반작용에 대한 물질적 힘을 가져야 한다. 관철시켜나가는데 있어 저항에 대한 방도가 필요하다. 대안체제 정립에서 의제별 이행강령이 요구된다. 외국자본의 기간산업 소유제한, 연기금을 통한 기간산업의 관리 등등 이런 주제들을 토론할 때, OECD나 외국과의 “통상마찰”이란 말이 나오면 바로 토론이 끝난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내 정책활동 주체는 크게 연구소(전략적 목표 집약), 정책연구원(정책대안), 정책보좌관(정책실행) 등 3주체다. 의제별 마스터플랜작업팀(TF)을 두어야 한다. 또한 상시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안체제가 우리만의 ‘화석’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물’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이데올로기투쟁에 적극 나서고, 대안담론 형성에 힘을 쏟아야 다.

 

심의원은 “국회 본회의시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진보적 이데올로기 발언을 하고 싶다. 그래서 연구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이 그 동안 고민해온 주제들을 이야기하자 토론회장은 매우 진지해졌다. 국회 내에서 보수정당들 의원들과 논쟁하고 싸워 이겨야 하는 데 정말 산적한 과제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심상정 의원은 운동가로서의 정신과 할 일이 많은 의원으로서의 자세가 절충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차분하고 힘 있게 꼭 해야 할 말만 했다.

 

심상정 (2005), "대안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구체적 이행강령이 있어야," [이론과 실천] 2005년 1월호.

 

1. 대안적 사회경제체제 마련을 위한 이중과제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는 일시에 마련되지 않으며, 일상적인 정책활동의 경험과 성과가 기반을 이룰 때에만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는 일상적 '정책대안'과 전략적 '대안체제'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1) 취약한 정책대안
민주노동당이 비판의 정당에서 비전의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영역에서 정책대안이 마련되어야 함. 대중들에게 책임있는 대안정당으로 본선 경기를 치루기 위한 물질적 생산물이 필요

전체적으로 보면 민주노동당내에서 복지 노동 교육 의료 영역 등 사회정책에서는 정책대안의 틀이 마련되어 가는 추세이지만, 재정경제 산업영역에서 취약함

 

2)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불투명한 상

민주노동당은 선거공약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을 내걸었으나, 아직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재생산 모델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분배를 통한 성장'론 자체가 여전히 추상적인 용어다. 이는 성장중심주의에 대한 대응슬로건으로는 의미를 가지겠지만 근본적 대안체제 논의 수준에까지 접근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2. 이중과제 해결과정의 두 가지 전제

 

1) 정책대안: '정책 자체의 정합성'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세력화'도 중요

적합한 정책대안은 대중의 신망을 획득해야만 의미있는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음. 어떠한 정책대안도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과 결합되어야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 원외 사회세력의 대중적 압력 없이는 원내에서 힘을 받을 수 없음.
경제자유구역법안만 현재 보건의료조직과 균형있는 원내외투쟁이 병행되는 경우.

 

2) 대안체제 근본체제에 대한 논의는 열려 있고 과학적이어야

진보운동에서 '대안 부재 극복'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것은 오래된 일. 우선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하여 열린 토론이 필요함.

국가사회주의의 경우 역사적으로 실패한 모델이므로 비판하기는 쉬움. 그러나 우리의 대안이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강화라면 국가사회주의의 소유와 통제메카니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모형을 전형화하여 비판의 준거를 분명히 마련해야 할 것.
사회민주주의의 경우 그 한계를 쉽게 비판하기는 어려운 상황. 현재 국제적 계급역관계를 보면, 오히려 진보진영은 사회민주주의체제라도 지탱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상황. 국내에서도 야만적인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사회민주주의체제 미경험으로 인하여 사회민주주의에 대하여 우호적 시각이 적지 않음.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틀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의의와 한계를 대중적 담론으로 분명히 정리해야 할 것.

 

3.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탈국민국가적 대응이 동시에 모색되어야

 

발제문에서 제안하는 대안적 사회경제체제의 중요한 기능들(국가의 역할 강화, 소유권 통제, 금융공공성 강화, 직접세 인상, 분배강화, 친환경적 생산 등)은 모두 다국적 자본과 세계화기구의 이해와 충돌할 개연성이 높음. → 국제적 영역의 의제를 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
전지구적 차원과 지역적(아시아) 차원에서 진보적 대안경제체제를 모색하는 국제연대운동이 함께 진행되어야 함. 우선 아시아지역에서부터 공동의 대안지역경제체제를 논의하는 틀을 마련해야. 아시아지역의 경우 진보진영의 세력이 약하고 역사적으로 지역경제공동체 전통이 취약하여 상대적으로 진보적 지역공동체 전략을 취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그럼에도 중국의 진출, 동남아시아의 경제개발과 이주노동자 문제, 남북한 경제협력과 한반도 긴장 강화 등 중요한 의제가 부상하는 상황이므로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아시아지역 대안경제체제 모색에 힘을 쏟아야 할 것.

 

4. 대안적 사회경제체제 모색을 위한 제안

 

1) 대안체제 정립에서 의제별 이행강령이 요구됨
대안체제의 정립을 위해서 핵심 사회경제적 의제들에 대한 이행강령적 요구를 마련하고 이를 구체적인 요구로 담아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소유에 의거한 민주적 사회경제를 지향하는 이행요구이어야 하며, 구체적 내용은 시장논리를 넘어서는 사회공공성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어야 함.


의제별로 보면,
 - 소유: 기간산업의 사회적 소유(외국자본의 기간산업 소유제한, 연기금을 통한 기간산업의 관리 포함)
 - 참여: 노동자 이해관계자의 조직운영 의사결정 참가
 - 재정: 직접세 강화를 통한 재정 확보, 사회파괴적 예산 삭감
 - 금융: 금융공공성 개념 정립, 국책은행체제 구축, 신용불량자 해결
 - 산업: 재벌체제 해체, 핵심중소기업 및 지역재래시장 육성,
 - 부동산: 토지공개념 도입
 - 복지: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주거, 기초연금

 

2) 이행강령을 담은 의제별 마스터플랜 추진되어야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일상적 정책대안과 전략적 대안체제를 결합시키는 종합적 마스터플랜 마련도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

 

3) 의제별 마스터플랜 작업팀 구성 모색

4) 상시적 이데올로기투쟁이 병행되어야
대안체제가 '우리만의 화석'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물'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이데올로기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안담론 형성에 힘을 쏟아야. 이를 위해선 상시적이고 치밀한 정세분석 ,핵심의제 설정, 적절한 내용의 논평, 논평 생산체계 구축 등이 정비되어야.

 

ㅇ 우리도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장상환 소장이 그 동안의 토론에 간략히 대답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상반되는 입장을 놓고 격론을 벌일 상황은 아니었다. 민주노총 김태연 정책국장이 토론을 시작했다. 김태현 정책실장이 왔어야 했는데 본인이 오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김 국장은 토론의 전제이며 출발이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건데, 큰 틀에서 사민주의의 틀 안에 있는 거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사민주의도 케인즈주의도 차용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민주노총에서 한국 노동운동과 대안적 사회 등을 연구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 극복하자는 주제였다. 거기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 1) 사적 소유의 문제 2) 부, 자원의 분배조정으로서 시장? 3) 기존 사회주의 효율성과 민주성 문제

 

‘전일적’과 ‘지배적’은 다르다. 지배적은 사적소유를 부분 허용한다. 공공적 소유? 국유화? 효율성은 정치체제와 같이 고려해야 한다. “우리도 사민주의의 문제를 뻔히 알면서 그 오류를 반복할 수도 있다.”

 

김태연 정책국장은 이미 토론시간이 많이 지났고 남은 토론자들도 있어서인지 아주 간단히 발언하였다. 한편 지나치게 토론자가 많다는 느낌도 들었다. 여러 영역의 토론자들을 고루 초청하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토론과 반론, 충분히 답변하고 반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ㅇ 민주노총 평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가?

 

끝으로 대안연대 유철규 정책위원장이 토론을 시작했다. 유 위원장은 “자신이 시민운동 영역에서 초청된 것으로 ‘비우호적’으로 토론에 임하겠다”고 소개했다.

 

유 위원장은 “현 정부의 정책이 좌파적이냐 아니냐라는 말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곧 ‘좌파’적 대안이 없었다는 점을 뜻한다고 말했다. 즉 ‘민주노동당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좌파를 자처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좌파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이 ‘국민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정책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유 위원장은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감>”을 강조했다. 장 소장의 발제문은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케인즈주의 정책에 의존한다. 사민주의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사민주의 정책에 의존한다. 국가와 정부의 구별도 흐릿하다. 장 소장의 발제문에서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이유가 있는가? 그것은 인간상품화의 정점의 표현이다. ‘인간’의 자본화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한편 “1960년대 절정에 올랐던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는 최소한 일정기간 우리사회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아닌가? 우리가 그걸 실패라고 하는 건 ‘사치’다.” 국유화, 사회적 소유, 소유의 공공화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국유화는 한마디로 “재경부에 맡긴다”는 이야기다. 나머지 용어는 전혀 모르겠다. 문제는 국유화를 주장함으로써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금융지주회사를 보더라도 국유기업이 가장 반사회적이고 반노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의 국유화와 통제는 계획 즉 사회주의와 다른가?

 

연구소는 남한 경제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와 불안정성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고구려 이후 이토록 확장되어진 적 없고 지금처럼 개방된 적도 없다. 뉴욕에 본거지를 두고 중국으로 뻗어가는 이른바 ‘금융허브론’과 세계의 공장으로 확장되어 가는 중국 제조업의 팽창 경향을 중시하는 이른바 ‘물류허브론’ 가운데 어떻게 보는가? 중국과 미국의 자본력으로부터 분리된 체제는 공허하게 들린다.

 

시민적 공감대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민주노총 평조합원을 설득하는 문제다. 그들은 상층, 고임금, 중산층 노동자다. 그들이 국유화 동의하겠는가?

 

‘국가사회주의 실패의 핵심은’은 인간의 인센티브와 규율의 문제다. 장 소장의 발표문에 따른 대안체제가 섰다고 치자. 국민경제와 조세를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하는 기업, 국민연금이 손실을 볼 경우 투자실패 시 누가 책임지나?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에 대한 깊이 있는 입장이 필요하다. 기자가 보기에도 장 소장의  발제문과 전반적인 정치경제학에는 철학이 빠져 있다. 유철규 정책위원장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즉 진보정당의 정책대안에도 국가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철학적 인식을 요구한다. 그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만드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상층 정치조직이 뭔가를 선험적으로 만들어서 조합원을 지도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끝으로 연구소에 당부한다면, 오리지널한 자료를 만들라. 고유의 자료를 만드는 건 고통과 비용이 든다. 국민은행이 오랫동안 자료조사와 설문을 축적했다. 그것을 모두 가져다 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자료가 필요하다. 국책연구소나 삼성경제연구소와 자료를 맞교환하려면 유일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다. 천만 빈곤층이 민주노동당 지지하지 않는다. 화석화된 개념으로 설득 안 된다. 좌파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5시 15분 토론자들의 발표가 끝났다. 유철규 위원장은 토론문을 자료집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아마 장상환 소장의 발제문을 꼼꼼히 검토하고 토론주제를 가려내느라 늦었나 보다. 그럼에도 그는 사소하지 않은 ‘인적 자본’ 같은 표현뿐만 아니라 철학의 빈곤을 지적했고 세밀한 비판을 했다.

 

유철규 (2005), "'국민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좌파적 대안' 제시해야," [이론과 실천] 2005년 1월호.

 

1. 경제의 정쟁화를 넘어서 민생에 기반한 문제제기가 올바르다.

 

보수언론과 재계는 반시장적이고 친노동자인 정책을 추구하는 정권과 이에 힘입은 강성노조의 영향력 때문에 투자가 위축되고 성장잠재력과 일자리 창출능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 정권의 성격과 개혁 정책을 원흉으로 지목한 것이다. 반면 정권의 개혁세력은 이를 반박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심각해지는 민생고 문제를 제대로 자신들의 의제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재계가 경제위기론이나 장기침체론을 제기하면서 친자본적이고 일방적으로 노동계의 양보를 전제하는 규제완화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상당부분 정치 공세적 측면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어느 쪽도 400만에 육박한 채 줄어들 줄 모르는 신용불량자, 100만 가구에 달하는 전기요금 연체가구수, 정부추산으로 450만 노동계 추산으로 75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 외에도 2004년 1/4분기 현재 1998년 대비로 각각 11.9배, 2.3배에 달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체납자 수에 이르기까지 저소득 계층의 광범한 확산을 한국경제 문제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2.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이 좌파적이냐 아니냐라는 말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곧 '좌파'적 대안이 없었다는 점을 뜻한다. 좌파를 자처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계와 보수언론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수준의 정부 정책(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 등까지)을 '좌파'적 정책으로 분류하여 비판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사회에 진정한 좌파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이 '국민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정책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왜 정책내용이 없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정책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모든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후속 보완조치가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돌출적으로 개별 정책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정책들 간의 상충문제와 상호 관련성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얘기는 쉬우나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지는 소홀히 하기 쉽다.

 

3. 발표문에서 제기한 한국경제의 '현안 과제'에는 동의한다. 다만 이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만 보아서는 다루기 힘든 영역이 광범하다. '세계화'에 대한 실패, 즉 국민국가적 규제와 조절(coordination)의 실패로 볼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만 귀착시킨다면 국가의 역할 강조는 무의미해지기 쉽다. 따라서 국유화보다는 사회적 소유의 개념으로 통일해서 접근하는 것이 생산적인 경우가 많다. ... '국유화'='관료의 지배력 확대'로 이해되는 것이 현실이다.

 

1960년대 절정에 올랐던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는 우리 사회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일정기간 우리사회의 목표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케인즈주의 복지국가가 아니라면 어떤 복지국가인가?

 

노무현 정부의 참여 복지를 "노동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해 노동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지만, 노동 능력있는 사람에게 노동을 강요 (혹은 인센티브 부여)하지 않는 체제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현실은 공짜 점심(free rider)에 냉담하다.

 

소득 분배의 직접적 강제적 재조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여전히 결과에 주목하는 까닭에 말초적이기 쉽다. 원인은 산업구조, 시장구조 문제에 있으므로 산업구조와 관련된 정책 고민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용어의 문제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이유가 있는가? 이 용어는 '인간'의 자본화를 승인하는 최종적 용어이다. 또 국유화, 사회적 소유, 소유의 공공화는 혼용되고 있는데,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한국사회의 문제는 국유화를 반복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해결되지 않는다. 국유기업이 가장 반사회적(반노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례는 많다.

 

4. 남한 경제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와 불안정성에 대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

 

5. 시민적 공감대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이는 곧, 민주노총 평조합원의 공감대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경제구조와 한국경제는 강고한 국가 경쟁력 논리(국가 순위 상향)에 매여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 정책관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책과 입장이 있어야 한다. 인센티브와 사회적 규율의 문제 해결책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발표문의 안에 따른 체제가 섰다고 했을 때 발생하는 은행의 부실채권, 노동능력은 있으나 고의적으로 공짜 점심을 먹는 자가 있을 가능성, 국민경제와 조세를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하는 기업, 국민연금이 손실을 본 경우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정략적으로 많이 제시되어 온 표현인 '국민경제정책위원회'보다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어떤 원칙에서 짤 것인가가 먼저 제시되고, 그 필요에 의해 조직이 제시되어야 한다.

 

보호책이 아닌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고유한 인식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을 '잘' (즉 체계적으로 국민경제적 필요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에 대한 깊이 있는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사실상 자유주의 단계를 겪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은 자유주의의 핵심 설득요소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조합원, 노동자로부터 현장감에 기반한 아이디어들을 취함하고 논의를 활성화시키며 주고받는 역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자기 일터의 전문가이고 자기 영역에서의 문제(자유화와 국가 규제, 사회적 규제 등과 관련해서까지도)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대안 정책의 보고이다. 각 단위별로 파편화된 노동자의 지식과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는 사장된다. 그러나 모여지고 취합되고 전문적 평가와 결합해서 정책과 개혁과제로 모여져야 한다.

 

6. 진보정치연구소의 두 가지 과제

 

자기 고유의(original) 자료를 생산해야 한다. 어떤 다른 정당 연구소나 민간 및 국책 연구소가 관심을 두지 않아 생산하지 않는 조사자료일수록 좋다. 직접 조사한 자료가 설득력의 원천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기가 만든(조사한) 자료가 있어야, 그리고 시계열로 축적되어야 자원이나 규모면에서 월등한 경쟁 연구소와 당당한 거래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유지와 확장에 높은 강조점을 둘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모든 요소를 지키고 확장시키는 것이 좌파의 고유한 임무이며 존재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적 이미지는 민주주의와 붙어 있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당내와 노동조합 내 비민주적 요소에 항상 감시의 눈을 두고 앞서서 경계경보를 내놓을 수 있어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쓴 소리해야 사회적 신뢰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ㅇ 운동이 먼저인가 토론이 먼저인가?

 

토론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청중질의가 이어졌다. 그런데 청중질의 시간에 예상치 못한 당내 문제가 불거졌다. 민원실장 임진수씨의 질문이 있었고 성남의 신입당원이 당원교육과 홍보가 필요함을 호소했다. 그는 토론회가 중앙당에서 있는 줄 알고 갔다가 국회로 왔다고 했다. 

 

조영건 박사의 당부와 항의로 토론회장이 소란해졌다. 조 박사는 “장상환 교수가 소장으로 데뷔하는데,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올인은 잘못이다’라고 말한 것”을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문제 삼았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과도한 힘을 실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조 박사는 의원단의 결합이 미진한 것도 지적했다. “이 토론회의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를 논하는 것보다 그것을 논하기 위해서 먼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 사회경제연구소와 차별이 없다.”고 항의했다. 조 박사는 국회 앞에서 삭발단식농성을 하는 사람들 즉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과 의원단의 결합이 적은 것도 문제인데 진보정치연구소의 창립소장으로 데뷔하는 장상환 소장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그런 정치적 비판이었다. 정영태 사회자가 그 논의는 개소식과 뒤풀이에서 따로 하시라고 했다.

 

장상환 소장이 “오늘 논의는 좌파정당이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이런 사실 자체가 국가보안법이 약화되었다는 증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차원의 문제인 국가보안법, 그것 때문에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다. 당이 매달리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답변했다.  

 

기관지위원회에서 일하는 김장민 씨가 “성장과 분배는 체제의 속성이 아니라 어느 체제나 있을 수 있는 속성이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제3의 무엇이냐? 토론자들이 ‘국가사회주의’의 개념을 저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또 학술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혼동된다. 강령에도 들어갔는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정영태 사회자가 모든 토론자들에게 1분씩 맺는말을 하라고 권했다.

김태연 : 다음에 세세히 토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그런 자리 많이 만들어 달라.

심상정 : 오리지널한 자료, 정책, 정치 필요하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기존의 통계자료들 사용할 게 없다. 정치적 가공이 어렵다. 10명의 의원들의 4년의 목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그 두 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내용으로 복판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정당의 역량들이 진보진영의 마당을 풀로 활용하려면 원내, 원외, 정책 각각의 포지션이 정해지고 평가와 종합이 필요하다.

신광영 : 아주 가까운 이웃나라를 모른다. 아시아 주5일제 다 한다. 중국 대만도 한다. 국민들이 그걸 모른다. 대만도 ‘국가보안법’ 폐기했다. 대만과 중국이 교류하니 폐기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무기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다. 국민들이 간단한 정보도 모른다.

유철규 : 진보정치연구소의 토론회에 초청받아서 기쁘다. 밥 먹으러 가면 좋겠다.

장상환 : 큰 그림이다. 연구의 질을 높이는 고민이 있다. 연구방법도 혁신이 필요하다. 도덕적 당위만이 아님을 입증하는 게 과제다. ‘대안’ 마련에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 드린다.

정영태 사회자가 끝인사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경험의 객관적 평가다. 대안, 이행. ‘국가권력 잡고 사회변혁’하는 문제. 맑스가 “사회주의는 이미 자본주의의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권력 잡기 전에 이미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ㅇ 민주노동당의 처지와 과제


6시 10분에 행사가 끝났다. 주대환 정책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던 단병호 의원은 끝까지 앉아 메모하고 밑줄 긋고 경청했다. 단병호위원장 아니 국회의원 단병호는 자료집을 넘길 때 검지에 침을 묻히곤 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이거나 연구소 관련자들이거나 당직자들로 보였다. 외부 학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를 창립하는 기념성이 강한 토론회였다. 그럼에도 그 주제의 무게와 토론자들의 실력 때문인지,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된 유익한 토론회였다. 2004년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였지만 막상 국회에 들어가고 보니 공부할 것도 많고 다듬을 것도 많았다. 능력을 발휘하기에 역부족이고 경험과 연륜도 부족했다.

 

이 토론회의 발제들 발표문의 주장들 발언들을 이렇게 길게 소개한 이유는 ‘현재 민주노동당의 처지와 과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론과 실천의 문제, 이념과 정책의 문제, 노동자운동과 의회 내의 정치, 당과 연구소와 대중적 세력화의 문제 그리고 연구소의 위상과 운영 등 참으로 많은 고민들이 담겨 있다.  

 

정당의 부설 연구소는 정당보조금의 30%를 책정 받고 사용해야 한다. 연구소가 없을 때는 중앙당(정책위)에서 사용하므로 구분이 어렵지만 독립된 단체이므로 어느 정도 연구비와 인건비를 비롯한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이 생긴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와 연구소와 의원단이 겪고 있는 대안 이데올로기의 부재 문제가 오로지 민주노동당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좌파정치조직이나 노동자운동 단체 모두의 난제다. 당연히 진보적 학자들의 과제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세력이 진보와 혁신의 사상을 갖고 원내에 진출하게 되더라도 오늘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의 창립 때 고민했던 문제들과 검토된 주제들은 똑같은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다양한 정파가 활동하고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 정치적 성향, 판단의 차이가 미묘하게 대립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부설 연구소, 진보정치연구소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한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성과가 쌓이고 적절한 대안 정책이 생산된다면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담론은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8/04 12:08 2005/08/04 12:08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