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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를 떠나서 '제2의 창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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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한 동지가 쓴 글과 장석준 동지가 쓴 글을 담아왔다.

 

최근 민주노동당 내에는 지난 일요일 있었던 중앙위원회에서의 부문할당 안건의 반려안에 대해 심각한 논의가 있다. 이는 전진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당위적으로, 그리고 과거 내가 취해온 입장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부문할당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고민되는 지점은 지금의 부문할당에 관한 논쟁이 당과 민주노총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입법안 문제, 농민문제,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 그리고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의 혁신 지도부 선출 등의 현안과 비교하여 부문할당의 문제로 활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부문할당 문제는 분명 치열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지금 시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입장이 타당하다고 하여 이를 몰아부칠 수 있는 것도 아닌 문제이다. 현재 당내 논란은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점에서 민주노동당 및 노동운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면서 이에 대한 극복대안을 제출하고자 하는 아래 글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번째 글은 11월 초에 제출된 것이며, 두번째 글은 12월 14일 열린 진보정치연구소 2005년 결산 심포지엄의 토론문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 글과 함께 노중기 교수와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은 PDF형태로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www.ppi.re.kr)에 게재되어 있다. 

  

첫번째 글이 핵심인데, 그 주체가 어떻게 되는지 애매하긴 하다. 특히 당 활동가가 아닌 노조 활동가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제2의 창당을 구체화하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게 명확하지 않다면 오해를 받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다. 

 

왜 이런 고민까지 하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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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를 떠나서 '제2의 창당'으로
- 당의 현 상황과 그 극복 방향에 대한 노트


1. <민주노동당은 창당 때부터 악조건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분단체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노동운동의 뒤늦은 정치적 각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힘든 또 다른 조건과 한계들이 있었다.

 

첫째,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가 결합된 정치 지형에서는 양대 정당 구도 바깥의 신생 제3당이 성장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정당 구도의 토대로서 시민사회. 흔히 '지역주의'라고 불리는 문제.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 내에는 지역주의적 기반 이외에 정당의 토대 역할을 할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열린우리당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다. 언론 등의 '가상' 시민사회에는 그나마 빈틈이 있을지 몰라도 지역의 '일상' 시민사회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셋째, 노동조합운동의 취약성. 위와 같은 조건에서 신생 진보정당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시민사회 내 토대는 노동조합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노동조합운동도 97년 경제위기 이후 고립되거나 퇴보하기 시작했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문제가 첨예화되기 시작했고, 자본은 노동운동의 이러한 모순과 한계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증상은 민주노동당 창당 시점에는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련의 '빈틈' 덕분이었다.> 

 

첫째, 정당투표제의 신설. 2002년 지방선거부터 그 해의 대선, 2004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성장세는 기본적으로 정당투표제가 새로 생긴 덕분이었다. 소선거구제가 지배하는 정치 구조에 틈이 벌어진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적 이상의 '제한적' 쟁점화. 민주당이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면서부터 정치 지형이 왼쪽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화한 중도우파가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빈틈이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장한 '부유세', '무상의료·무상교육'이었다. 이것은 당 강령이 주창하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무척 '제한적으로', 그리고 '소극적으로' 쟁점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숨은 욕구를 결집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3. <하지만 애초의 악조건과 한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아니 어떤 것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련의 빈틈을 활용한 결과로 당이 성장하자, 이것이 마치 당이 근본적 문제들을 이미 극복한 것처럼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는 단지 미래로 지연되었을 뿐이다. 더욱 증폭되면서 말이다.

첫째, 양당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당투표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소선거구제 중심이다. 더구나 대통령제 아래서는 여당 대 야당의 구도가 지배하는데,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전투적 야당'이 아니라 '여당의 압박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행세했다. 2006년부터 더욱 두드러질 정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미아 신세다.

둘째, 시민사회의 벽도 여전히 두텁다. 열린우리당조차 탄핵 돌풍으로 17대 총선을 돌파한 외에는 전혀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대선에 승리하려면 또 다시 지역주의 세력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하물며 민주노동당의 취약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때 20%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중간층과 노동계급 일부(화이트칼라)의 전혀 조직되지 않은 지지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러한 지지층은 쉽게 해체될 수 있다. 당 지역조직의 활동에도 커다란 진전이 없다. 2002년 지방선거를 통해 얻은 지방정치의 작은 교두보는 (울산 북구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의 전략적 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못했다. 이것은 지역조직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당이 지방정치를 통해 당 발전의 활로를 뚫으려는 어떠한 전략적 전망도,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는 대다수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미조직 상태로 놔두고 더 나아가 이들과 조직 노동자 사이의 대립 구도까지 만들어냈다. 또한 노조 간부들의 비리 사건이 폭발하고 있다. 당의 유일한 시민사회 내 조직 기반은 시민사회 내에서 가장 '고립'되고 '방어적'인 세력이 되어 있다.

4. <2005년 말 당의 위기는 앞으로 당이 닥칠 수 있는 파국의 예고편이다.>

원내 진출 이후의 소위 '제3당' 지위 때문에 위의 문제점들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파국적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울산 북구에서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서 그것이 미리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더 이상 과거의 당 성장 경로(구조적 한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빈틈을 활용하는 것)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당의 근본 한계들에 정면으로 도전해야만 당의 활로를 열 수 있다.

물론 앞으로도 정치 기술과 요행에 기댈 수 있을지 모르고, 그게 어느 시점까지는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적인 대선 주자를 전면에 내세워서 대선을 돌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총선 결과나 이후 당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는 없다.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와해나 최악의 재편은 일본 사회당의 경우처럼 하루아침에 당을 해체시켜버릴 수도 있다.

5. <특정 정파나 1기 최고위원회는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방치하거나 증폭시키는 요소였을 뿐이다.>

최근 당의 상황을 특정 정파나 1기 최고위원회의 무능력·오류로 치환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시각은 당의 진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1기 최고위원회 다수파뿐만 아니라 당내의 모든 세력들이 당의 근본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현재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음을 자성해야 한다.

다만 특정 정파와 1기 최고위원회가 문제를 덧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압박 세력쯤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오류였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재·보궐선거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울산 북구보다도 나머지 3곳의 선거 결과와 직결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특정 정파와 1기 최고위원회만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개혁공조' 전술을 취한 의원단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외의 다른 전략·전술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타 정파들도 면책될 수 없다.

6. <지금 민주노동당에 필요한 선택은, 한 마디로, '요새'를 떠나 '제2의 창당'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고립된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우선 조직 토대의 측면에서,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 새로운 토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념·정책의 측면에서도,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당내 정파 봉합의 구호일 뿐인 '자주'와 '평등'으로부터, 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는 '부유세·무상의료·무상교육'으로부터 성큼 나아가야 한다.
 
활동 방식 측면에서도,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지난 5년간 쌓인, 원내 진출 이후 조금 변했을 뿐인 활동 패턴을 중앙당부터 지역조직까지 과감히 재검토해야 한다. 당 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까지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요새'를 떠나면 위험은 더욱 증가한다. 새로운 '진지'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온갖 공격에 노출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이 아니라면, 무너지는 '요새'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구원군은 없다.

'제2의 창당'은 썩 맘에 드는 용어는 아니다. 이미 '재창당'이라는 역사적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당'과 같은 용어를 쓰게 되면 또, '강령을 새로 만들자', '당명을 고치자'는 쓸데없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논란이야말로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가리려는 자들의 짓거리다. 이런 식의 논란은 운동'권'들의 도락에 그칠 뿐이다. 여기서 '제2의 창당'이란 말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당의 뿌리부터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무슨 문서 만들기나 당대회 몇 번 더 하기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7-1. 조직 토대의 측면

노동조합운동은 여전히 당의 가장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당은 '지금 존재하는' 노동조합운동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도래해야 할)' 노동조합운동에 자신의 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창당 시기에 형성된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민주노총 쪽으로부터 단절을 요구받지 않는 한,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실내용은 전복시켜야 한다. 당은 민주노총의 변화를 모질게 강요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전달되게 만들어야 한다.

 

항상 그렇듯이 이행은 고통을 수반한다.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은 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울산 북구는 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버려야만 다른 뭔가를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당은 이제 그럴 때가 됐다.

당이 독한 결의를 품으면 예상치 못한 일을 낼 수도 있다. 지금 당은 분명히 일정한 사회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기성 노동조합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 힘을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 데 써야 한다. 이게 당이 노동조합운동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

또한 2006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제는 지역 시민사회를 장악할 방략을 짜야 한다.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수준에서 넘어서서 지역사회를 흔들기 위해 나서야 한다.

7-2. 이념·정책의 측면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이념 정당이 아니다. 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강령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그 강령이 당 정신으로 뿌리 박혀 있는 게 아니다. 이건 현재의 강령에 반대하는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 당원, 평당원들이 당 강령 정신의 바깥에 방치돼 있다.

사회주의 이상의 '제한적' 구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사회주의 이념의 범위 안에 있는 당 정책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에 대한 당내 합의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낮다. 부유세조차도 수많은 반발 속에 겨우 채택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두 방향에서 동시에 자극이 필요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한 아래에서부터 위로.

우선 위로부터는, 한국 사회의 거대 비전을 더욱 공세적으로, 더욱 야심차게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당 연구소뿐만 아니라 정책위원회도 좀 더 중장기적인 비전의 제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런 내용 없이는 대선 때 김근태 류와의 차별화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당장 내년부터 이런 내용이 당원들에게 제시돼야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아래로부터는, 무엇보다 토론운동이 필요하다. 의견그룹간 토론이 아니라 평당원 수준의 토론으로서, 주요 정책들과 한국 사회 비전에 대한 논쟁을 촉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년 말쯤 정책당대회로 1차 수렴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토론 과정은 단순히 당내 합의를 높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7-3. 활동 방식의 측면

 

원외정당 시절에 중앙당부터 지역조직에 이르기까지 뿌리깊게 쌓인 특정한 활동 패턴들이 있다. 이는 운동'권' 활동가들의 특성과도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운동권 출신들의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 그것보다는 더 분석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원내 진출 이후의 활동은 이러한 기본 패턴에 단지 의원단 활동이 덧붙여진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원내 활동과 대중투쟁의 결합이라는 게 기계적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명제를 잘못 이해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새로운 활동 방식을 상상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정말 집중 의제를 갖고 의원단부터 지역조직까지 하나로 움직이는 새로운 활동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올해 당대회에서 이것을 결의는 했지만, 1기 최고위원회는 그 실행 능력이 없었다(사실은 의지도). 최고위원회뿐인가? 좌파 성향이라는 광역시도당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간은 2년도 채 안 남았다. 더 재어볼 시간도 없다.

뭐든 시도해보는 것밖에 다른 답은 없다. 2007년 대선까지 목적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그 그림을 실행해야 한다. 기성 정치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든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하게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의원단 활동에 대한 평가와 재설계다. 필요하면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에 대한 당원 총투표 형태의 재평가도 추진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이제 상임위원회를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전당적 활동 계획 속에서 새롭게 자신의 임무를 부여받아야 한다.

8. 덧붙이는 말

집권의 실력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위기와 시련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당의 실력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다. 바로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곤경이야말로 우리의 값진 기회다.

100년 전의 한 위대한 정치가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오류에 대한 정당의 태도라는 것은 그 당이 얼마나 진지한지, 실제로 자신의 계급과 근로인민 대중들에 대한 의무를 얼마나 다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 그 원인들을 밝혀내는 것, 오류로 이끈 상황을 분석하는 것, 오류를 바로잡을 수단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 ― 바로 이것이 진지한 당의 징표요, 바로 이것이 당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계급, 나아가 대중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제7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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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위기와 대안전략'에 대한 토론 
 
1.
 
'위기'의 시기는 또한 '기회'의 시기라고 한다. '위기'가 '기회'를 동반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위기'의 시기일수록 '전위'적 주장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토론하며 더 나아가 수용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해체와 이완의 시기에는 평소 구조와 관행의 꽉 짜인 틀 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게 비로소 보이게 되고 누구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던 걸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주체의 역량과 무관해 기각되는 것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바로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미래의 해답의 실마리가 발견되곤 한다. 그렇다면 '위기'가 이야기되는 요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과감한 '전위'적 제안들이 아니겠는가.  
 
토론자는 1부 발제자들 중 주로 노중기 교수의 발제문에 대해 토론하려 한다. 토론자가 보기에 노중기 교수의 발제문은 노동운동의 대안전략이 취해야 할 대강의 방향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토론자는 발제자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그 제안들에 덧붙여서 고민할 거리들을 제시하는 데 치중하고자 한다. 
 
2.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한국사회의 위기'를 논하는 이 자리에서 왜 유독 노동운동의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운동에 기반을 두고 창당했으니 노동운동에 대한 발언이 빠질 수 없다는 게 그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변신은 그보다는 더 중요한 위상과 의미를 갖는다.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개혁은 상당히 깊고 넓은 수준의 단절을 요구한다. 개혁해야 할 경제·사회 구조들이 단지 최근의 신자유주의 추세하고만 관계된 게 아니라 개발독재시대 이래의 깊은 내력을 지닌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87년 이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개혁이 지체되고 그래서 문제들이 더 덧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개혁을 추진할 사회적 주체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87년 이후 등장한 '민주적'인, 하지만 기업별인 노동조합들의 근본적인 한계는 바로 이러한 주체가 되는 데 구조적 장애를 지닌다는 점에 있었다.
 
기업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그 간부진에 이르기까지, 시야가 기업 안에 한정되었다. 생산과 분배의 문제는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라는 형태로는, 기업들과 노동자·민중 전체의 삶 사이의 관계라는 지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경제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해법을 던진 것은 항상 자본 쪽이었다. 소수의 비주류 지식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도 노동조합운동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혁신은 좁은 의미의 노사관계 쟁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구조 개혁의, 한국사회의 '제2의 민주화'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라는 의미를 갖는다. 
  
3.
 
'단절'은 현 상황을 바라보는 지식인·운동가의 관점에도 적용돼야 한다. 김정주 교수의 발제문에도 제시된 것처럼 비정규직·중소기업 문제라는 게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상륙 이전부터 한국 경제구조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뿐만 아니라 진보적 지식 사회에서도 그것이 제대로 인식되고 논의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인·운동가들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문제란 바로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의 실종이다.
 
'노동계급 형성'이라는 과제는 90년대 초반까지의 이른바 '민주주의혁명(DR)' 논쟁에서는 극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전개되었었다. 그러다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변혁 논의 자체가 침체하고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가 고착된 90년대 중반쯤 되면,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그 일부 측면에 대한 논란만이 남고,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에 대한 본격적 고민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80년대 한때 '도시 비공식부문' 등의 이론틀로 주목을 받았던 중소기업·주변부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노동조합운동의 주무대에서 사라진 것과 함께 지식인·운동가의 시야에서도 이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관심의 부족은 기업별 노동조합만 물고늘어질 게 아니라 정당의 부재에서 그 근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라는 '현실' 노동자정당의 등장은 당장 그것만으로는 이러한 상황의 타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자체가 기존 노동조합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로 건설되어서 노동조합운동의 시야를 넘어서는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단순히 노동조합 활동을 좀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 차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을 고민해야 한다. 발제자가 노동계급 대중정당의 역할에 주목한다든지, 지역 사회를 노동운동이 새로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무대로 바라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4.
 
지금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조직 모형은 무엇인가? 즉, '이행'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론 그 기본적인 형태는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대체로 '산업별' 노동조합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의 단순 합으로서의 산별노조 건설 방침이 벽에 부딪힌 지금, '산별'노조라는 언명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이제는 '어떤' 산별노조인지도 덧붙여 이야기해야만 하게 됐다. 어떤 노동자들을 1차적 조직 기반으로 하여 어떤 활동을 주로 펼쳐나갈 산별노조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제까지의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다음의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지적한다. 정규직 조합원의 최소 30% 정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개별 사업장의 대의 구조에서는 이 30%가 그저 '소수'의 목소리로 그쳐 버린다. 여기에서 앞으로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조직 중심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지금은 조직 중심이 대기업 내의 여러 경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 있는 데 반해 앞으로는 대기업 내 정규직 노동자들 중 계급적 연대에 나설 의지가 있는 경향들과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조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산별노조 전환은 바로 이러한 중심 이동을 실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발제자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철폐 투쟁을 예로 들었으므로 토론자도, 다소 위험은 있지만, 이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사례에 위와 같은 관점을 대입한다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현대자동차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조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경계선에 따라 나뉜다(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 그런데 이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선이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과의 연대 의지에 따라 정규직 내에 그어져야 한다. 그래서 계급 연대적 조직과 기업 기득권적 조직 사이의 경쟁 구도가 되어야 한다.
 
이게 이상적인 모형이라고는 해도 과연 단기간에 이러한 조직 재구성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부정적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들이 더 많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기존 조직 노동자들이 조직 전환 과정에서 느끼게 될 위험(risk)이다.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우려다. 조직 전환 시에 기존 임·단협의 성과들이 그대로 계승될 수 있을지는 극히 불분명하다. 오히려 그렇게 되기 힘들 가능성이 더 높다.
 
더 심각한 위험은 기업 내에서의 안정된 교섭 구조를 박차고 나와 초기업단위 교섭 구조를 요구할 때 이러한 교섭 테이블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나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총파업, 아니 대중파업(우리의 87년 직후와 같은) 상황을 요구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보수언론이 '사회적 혼란'이라고 비난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조직 재구성을 촉진할 조건은 2007년 복수노조 도입의 위험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평조합원들에게 위기 의식을 불어넣을 정도의 변수는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
 
한 마디로 지금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은 '목숨을 건 도박'이다. 요즘 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해 도덕적 비판을 퍼붓기도 하고 기존 노동운동 정파들의 '무능'을 타박하기도 하지만, 사실 핵심은 이러한 '도박'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실제 그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누구도 정말 그렇게 하라고 등을 떠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하는 비판들만 해대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등 떠미는 악역을 맡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조합운동의 주역들에게 '목숨을 건 도박'을 감히 강권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주 모진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이건 "노동조합 때문에 표가 안 나온다"는 천박한 불평 때문이 아니다. '노동계급 형성의 정치'를 복원해야 하고 당이 그것을 앞장서서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여기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당은 노동조합운동의 이행 과정에서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민주노동조합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모든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해 노동운동이 기댈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을 위해 당을 철저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당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통과 그 새로운 전망의 압축적인 상징이 되어야 한다. 가령 이제까지 민주노동당의 노동 관련 정책들이 민주노총의 정책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던 데 반해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독자적 노동 관련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 구조에서 새로운 노동조합 구조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당이 '도래할' 새 노동조합운동을 미리 대변하고 이를 예비해야 한다.
 
둘째, 지역 차원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의 일부 지역조직을 비정규직 센터로 발전시키자는 당 혁신 제안을 내놓았는데, 비정규직 센터라는 게 단순히 상담 사업을 수행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센터'의 역할에 대해 좀 더 풍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 지역조직들이 해당 지역의 노동조합 이행 과정에서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 각 사업장의 현장 활동가들이 기업단위를 넘어 교류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운동 바깥에서 노동조합의 이행을 지지·지원할 원군들(지역사회운동)을 규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과연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이런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운동의 이행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에게도 하나의 '도박'이다. 비록 극히 제한된 기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성 민주노조들은 당의 얼마 안 되는 조직 기반들 중 하나다. 그런데 자칫하면 기존 기반과의 연계는 미약해지면서 새로운 기반은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 몰리지는 않겠는가?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선거에 민감한 제도권 정당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고민 없이 과연 과감한 선택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토론자는 어떤 당위보다도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당이 '도박'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영삼·김대중의 퇴장 이후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선거는 정치구도가 크게 재편되는 '기회와 위기의 시기', '가능성과 혼란의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대선에서 일정한 규모의 지지 블록을 형성해 '유효' 정치세력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의 더 이상의 발전은 기약하기 힘들다. 어차피 당으로서는 미래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 지지 기반 자체를 재구축하는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이행과 당의 지지층 구축 작업이 서로 맞물릴 때 둘은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면 지금 세대 안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할 세력을 찾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우선 이 사실을 확실히 직시하는 게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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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4 18:42 2005/12/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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