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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자정당의 실패이유와 교훈(장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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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광장에 있는 장상환 교수의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미국 대선이 임박한 현재 제3의 후보인 랄프 네이더는 1% 정도의 지지밖에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미국내 진보세력의 역량이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부시와 케리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네이더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케리를 지지한다.

미국에서 이번 대선을 기해 엉터리 미 선거제도의 모순이 확실하게 폭로되고, 무엇인가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출처: http://blog.jinboacro.net/blog/sub_read.html?blog_id=shjang&uid=275§ion_k=section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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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자정당의 실패이유와 교훈

 

지난 해 12월에 광장에 쓴 글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민주당에서는 케리가 후보로 사실상 결정되었지요. 그러나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목소리는 없습니다. 노엄 촘스키교수는 미국 정치에 대해서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자본의 지배를 받는 정당이고 사실상의 일당독재체제라고 혹평합니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민주당이 노동자편을 드는 척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의 이익을 수호하는 첨병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는 데도 시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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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와서 꼭 알아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중의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진보정당이 미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유, 존재했더라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노동자계급 정당이 꾸준히 활동해왔다. 1830년대의 필라델피아 노동계급당(1830년대), 1870년대, 80년대의 그린백 노동당, 1890년대의 인민당, 그리고 20세기의 사회당, 노농당, 공산당, 진보당 등등.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인 영국, 프랑스, 일본, 기타 국가와는 달리 미국 노동자들은 국가권력을 놓고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운동을 한번도 확립하지 못했다.    


내가 교환교수로 와 있는 매사츄세츠 대학교 경제학과의 제랄드 프리드먼 교수가 이 분야의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서 그의 연구논문을 읽고 그 이유의 일부를 알아낼 수 있었다.


프리드먼 교수는 “제3당 정치에서의 성공과 실패: 매사추세츠주에서의 노동기사단과 노동조합 연합, 1884-1888”(International Labor and Working Class, No. 62, 2002)에서 연구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양대 정당 체제의 지속은 미국정치의 근저에 놓여있는 대중적 합의의 증거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달리 나는 제3정당운동의 실패 이유를 미국의 선거제도 탓으로 본다. 단순-다수 단일-투표(simple-majority single-ballot, SMSB) 선거제도에서는 다른 후보들의 득표수와 관계없이 최다 득표만 하면 그 후보가 당선된다. 이 선거제도는 합리적 투표자들로 하여금 두 명의 나쁜 후보 가운데 차악의 후보에게, 즉 당선권내에 있는 후보들에 대한 그들의 선호도에 따라 투표하도록 한다. SMSB 선거제도에서는 단기적, 정태적으로는 두 주요정당의 후보들은 정치적으로 가운데로 향해 움직인다. 당선을 위한 다수 득표를 얻기 위해 중간 위치에 있는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동태적으로 보면 제3정당은 정치적으로 극단에 있는 유권자들에게 대안을 제공함으로써 주요정당들의 점진적인 온건화를 깨뜨린다. 1880년대 매사추세츠주의 선거자료 분석을 통해서, 나는 공화당이 상층계급 투표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우익적인 지향을 강화했을 때 그린백 노동당은 각성한 노동계급 투표자들, 특히 이미 노동기사단을 통해 결집·동원되고 있었던 노동자들을 끌어당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자 투표의 상실에 놀란 공화당원들은 1886년에 노동자대표를 포함시킨 정부 파업중재위원회 설치를 포함하는 노동법 제정 등으로 노동입법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때 입법부의 투표행태를 분석해본 결과 제3정당의 존재가 구조적으로 보수적인 정치환경 속에서 개혁적인 입법을 가능케 한 동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린백 노동당의 득표가 자신의 득표와 낙선자의 득표의 격차보다 컸던 지역의 의원들은 이 중재법안의 입법에 찬성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86년 이후 매사추세츠 그린백 노동당의 급속한 몰락은 SMSB 선거제도 하에서 독립적인 정치운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주요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변하지 않는 상황인 정태적 모델에서는 주요정당 중 한 정당의 후보의 정치적 입장이 제3당 지지자들에게 불리할수록(노동자들에게 고약할수록), 두 주요정당 간의 이념적 차이가 클수록, 또 두 정당 후보간의 표 차이가 작을수록, 제3당 후보 지지자들이 제3당에 투표하는 것은 도리에 덜 맞다.


이렇게 각 당의 이념적 정책적 지향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제3당에 투표해서 얻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정태적 분석은 정당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유권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그 정책지향을 변경해가는 동태적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 동태적 과정에서는 제3당에 대한 투표는 주요정당의 정책을 해당 투표자(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방향으로 이끎으로서 해당 투표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제3당의 요구에 대한 주요정당들의 대응은 다음 세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첫째, 제3당 요구에 대한 주요정당의 민감도; 둘째, 잠재적인 제3당 투표의 중요도, 즉 절대수가 얼마나 크며 주요정당 득표격차보다 커서 당락을 좌우할 정도인가. 셋째, 제3정당의 요구에 양보하더라도 기존 지지자들 중 이탈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주요정당들은 제3당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정치적 입장 분포가 중간 입장이 적고 좌우 양극단의 입장이 많을 경우 (제3당이 강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주요정당들은 제3당의 요구를 더 민감하게 수용한다.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정태적 조건과 네 가지 동태적 조건에서는 제3당에 투표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다음 세 가지 정태적 조건하에 제3당에 투표하는 것은 보다 합리적이고 적어도 덜 나쁜 생각이다.  

1. 더 좋지 않은 정당이 특별히 불리한 것은 아닐 경우 (한국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어도 더 나빠지지 않을 경우) 

2. 두 주요정당간의 이념적 차이가 적을 경우 (한나라당이 되든 민주당이 되든 달라질게 없다)

3. 이길 후보가 큰 표차로 승리할 경우 (한나라당 후보이든 민주당 후보이든 큰 표차로 이긴다)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동태적 조건하에서는 제3당에 투표하는 것은 주요정당의 정책을 변경시키는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4. 주요정당들이 이념적, 정책적으로 보다 유연해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선거에 승리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경우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상당부분 채택했다. 물론 집권후에는 달라지긴 했지만)

5. 제3정당이 다수의 유권자들을 끌어당길 것 같을수록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이 예컨대 10% 이상이 확실한 경우)

6. 승리후보와 낙선후보간 득표차이가 적을수록 (꼭 지난해 대선 때가 그랬다)

7. 제3당이 많은 유권자들이 등 돌리지 않도록 하는 요구(정책)를 제시할 경우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도입,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약이 다수 유권자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188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린백 노동당과 반독점당의 후보 버틀러는, 민주당세력들이 그에게 투표하는 것은 공화당을 당선시키기 위한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억지를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표를 잠식하기 보다는 주로 노동자계급과 종전에 투표하지 않았던 새로운 투표자의 상당 부분의 지지를 얻어서 매사추세츠에서 전체 투표 30만표의 8%인 24,000표 이상을 얻었다. 이에 대한 지배세력들의 대응으로서 민주당만이 아니라 공화당 상당수 의원들, 특히 노동자 다수 거주 도시지역 의원들도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1886년의 개혁적인 노동중재법 제정에 찬성했다.


그러나 1884년 대통령선거후에 그린백 노동당은 급속히 쇠퇴했다. 공화, 민주 양당이 노동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갔고, 또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가 노동당에 극히 불리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위에서 본대로 개혁적인 노동입법을 했고, 민주당은 노동기사단 지도자 프랭크 포스터를 매사추세츠 부지사로 지명했다.

그린백 노동당의 경험은 미국에서 급진정치의 쇠퇴에 선거제도가 얼마나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884년에 그린백 노동당 대통령후보가 매사추세츠주에서 10%의 득표를 한 것은 당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의 득표보다 많은 것이다. 1880년대에 프랑스 사회당은 1% 이하의 득표를 했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1884년에 10% 이하의 득표를 했고 1887년에 겨우 10%의 득표를 했다. 그러나 1896년에 선거제도를 개악함으로써 공화당은 북부를, 민주당은 남부를 지배하면서 양당은 연합하여 전국적으로는 사실상 일당지배체제를 구축했다. 새로운 선거제도는 흑인과 노동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선거경쟁을 제한했다. 

물론 미국에서 진보정당이 실패한 이유로는 선거제도 이외에 흑백간 인종 갈등에 의한 계급대립의 희석, 광대한 서부 개척지 존재와 제국주의 지배에 의한 계급대립의 출구 존재 등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욱 탐구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 선거제도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미국 진보세력들에게는 이미 상식이다. 미국에서 진보적인 노동자정당의 부재와 무력함의 이유를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진보파 교수들은 보수양당만을 허용하는 단순다수대표 선거제도 탓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것은 미국에서의 역사적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2000년 총선과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겪은 어려움은 선거제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노동자 민중정치의 진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인식하게 된다.


미국 노동자 진보정당의 실패 경험과 달리 한국에서 제3당인 민주노동당에게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전농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기로 한 것은 농민들조차도 그동안의 뼈아픈 경험으로 보수정당간의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얼마나 적은가를 충분히 인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정책적 입장의 분포는 갈수록 양극단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자는 극소수 부패정치 재벌 지배세력과 전쟁을 경험한 노령세대에 국한되어 20% 내외에 그친다.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간의 분열은 한국에서 온건한 중간지대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각 언론사들의 정치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의견표시가 압도적인 것은 기성정당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노동자 민중들의 진보정당에 대한 요구가 당연히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선거제도 면에서도 현행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출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해 총선에서는 1인2표 정당투표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점차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집권 가능성을 검증받는 임계치에 접근할수록 지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2003/12/04 [08:44] ⓒ jinboa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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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02:14 2004/10/28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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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사회주의자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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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진정추 그룹 중의 일부가 독자적으로 정치신문 비스무리한 것을 내기 시작했다.

황**, 이**, 김**, 윤**, 정**, 박**, 박**, 신** 등 수도권의 진정추 경향의 동지들로 이들이 독자적인 팜플렛을 내면서 당내 의견 확산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정파를 형성하여 함께하기에 곤란했던 다함께와 평등연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민주노동당 내 좌파그룹이 모여 근 일년이 넘게 당내 공개 의견그룹 결성 노력을 기울인 결과 12월경 출범할 예정으로 있는 '전국모임'에의 결합 여부를 논의한 결과 부결시키고 이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 팜플렛을 광주의 날개(정봉희)님이 첨부파일로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에 올렸는데, 그동안 어느 정도 맘이 맞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던 것에서 입장을 바꾸어 공개적으로 세력 규합 및 문제의식 공유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8월30일에 나온 팜플렛 1에는 

    1. 서문 < 굳이 두 편의 글을 묶어 발간하는 마음 >, 

    2. 첫 번째 글 < 민주노동당과 사회주의자의 임무 >, 

    3. 두 번째 글 < 엔엘피디알에 드리는 조사(弔辭) > 등의 글이 실려 있고,

 

10월 12일에 나온 팜플렛 2에는

    1. 서문 :  두 번째 호를 드리며

    2. < 당원들께 드리는 호소 > 

    3. < 계급투쟁과 그 전망 > 

    4. < 계급투쟁과 그 전망 > 주와 해설

    5. < 엔엘피디알에 드리는 조사(弔辭) : 몇 가지 문제제기 >

    6. < '북핵문제'를 둘러 싼 12개의 문답 >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나누어 글을 싣고 있는데, 글제목에서도 그렇고, 그 펴낸 의도도 그렇고, 과거 80년대 후반 인민노련 내부그룹에서 발간되었던 <사회주의자>라는 팜플렛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인터넷이 대중화된 지금의 시기에 레닌의 문제의식에 따라 전국적 정치신문(NPN)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15년 전의 시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은 형식에 관한 것이고, 그 내용은 한번쯤 읽어둘 필요가 있다. 당내에서 진보정당의 의회투쟁의 상을 확립하는데 어떤 세력보다 더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려면 http://www.kdlp.org/index.php?board_act=view&page=2&board=member&kdlp_act=community&kdlp_act2=board&page=2&data_no=28830 에 가서 첨부파일을 다운받으면 된다. 진보불로그에는 한글파일이 첨부되지 않기에 첨부파일이 있는 곳을 그냥 링크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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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1 18:33 2004/10/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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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몹 블로그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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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파일이나 다른 첨부파일을 올리기 어려운 관계로 진보불로그는 학술적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다른 용도로 사용할 뚜렷한 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네이버 블로그의 문제점이 더 커지면 그 때 진보불로그를 대안으로 생각해보리라.

 

미디어몹 블로그의 주소는 http://www.mediamob.co.kr/gimch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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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9 19:54 2004/10/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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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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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가 <아세아연구> 2004년 가을호에 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이라는 글 전문과 이를 요약하여 해설한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의 글이다.

 

 

최장집 교수 "盧정권, 정신 차려라" 질타

"사회경제문제, 최우선순위에 둬야" "관료의 덫에서 벗어나야"

등록일자 : 2004년 10 월 01 일 (금) 11 : 41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불만이 확대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기반도 약해질 것이다.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 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최근 <아세아연구>(2004년 가을, 통권117호)에 기고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이라는 글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통렬히 비판해 주목된다.
  
  "정치, 하찮은 문제로 왜소화하고 타락"
  
  최 교수는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대다수 일반 시민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생활의 질적 저하와 그것이 가져오는 사회적, 인간적 피폐화만큼 큰 문제는 없다"며 "고실업, 고용불안정, 노동시장의 내부분화에 의한 이른바 대규모 비정규직 노동자의 누적,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가계파산에 의한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확대 등 오늘날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양상들은 IMF개혁패키지를 통해 급격하게 전개된 한국경제의 구조변화를 특징짓는 중심내용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가 평등한 정치 참여의 권리를 통해 실현되고, 시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밖으로부터 주어진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역량을 가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IMF 충격의 효과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전면적 확대가 엄청난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책임을 추궁했다.
  
  그는 "하나의 중대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정부정책의 의제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정치적 이슈 내지는 정치적 사안이 되어야 한다"며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사안의 범위 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현실은 정치가 하찮은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왜소화되고 타락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서구민주주의와 정반대로 사회경제적 문제는 뒷전"
  
  최교수는 "그 동안 여야당 간의 갈등이 첨예하였던 정치적 이슈 영역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며 "▲정당 간의 정치 경쟁의 규칙을 어떻게 제도화하는가, ▲역사, 이념 및 가치, 정서적 문제를 둘러싼 이슈(역사 바로세우기, 지역감정 극복, 과거사 진상규명 등),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지역개발정책 분야, ▲사회경제적, 정치경제적 이슈"로 분류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최소한 서구 민주주의에서의 상황은 현실 생활에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문제가 최우선 순위에 자리 잡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로 중요 의제로 부각되지도 못하고 있다"며 "대신 '과거사 진상규명'과 같은 이념대립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와 삶의 현실적 문제와 거리가 먼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지역 개발주의적 사안들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자리 잡았다"고 노무현 정부를 질타했다.
  
  그는 또 '과거사 진상규명' 등에 대해 "이러한 문제들은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열정을 쉽게 동원하게 돼 정치를 극한적 갈등으로 치닫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고, '행정수도' 문제에 대해서는 "정책 추진자들이 중앙 집권화의 폐해와 분권과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안, 그것이 과연 주장하는 대로 바람직한 효과를 낳게 될지, 정말 모든 지역이 자립적 발전 모델을 갖는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확신은 더욱 약해졌다"고 꼬집었다.
  
  "노무현정부, 관료의 덫에 걸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기득권층 위주 경제정책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권위주의적 관치 경제 시기로부터 민주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제 영역에서만큼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분야는 없을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실제의 경제 정책은 민주화 이전과 그 차이를 실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지고 보면 기득권 세력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냉전 반공주의도 아니고, 친일파 청산 문제와 같은 역사적 가치의 문제도 아닌, 경제와 관련된 이슈 영역"이라며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는 사회경제적 이슈 영역을 중심적으로 대면하고 그 영역에서 갈등을 해소해 가는 과정에서 정치의 제도 개혁이나 역사적-정서적 이슈를 흡수 통합해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몰두하면서 전자(사회경제적 이슈)를 방치해 왔다"고 질타했다.
  
  그는 "그 결과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경제정책은 유사하게 됐고, 과거 권위주의적 관치 경제를 주도하고 운영했던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됐다"며 노무현 정부가 관료의 덫에 걸려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경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또는 '시장은 정치적인 것이다'는 정의가 가능하다면 성장이든 시장 효율성이든 그것은 사회의 힘의 관계와 가치가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 속에서 시민사회로부터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운동의 힘들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활성화 없이 한국경제 미래 없어"
  
  최 교수는 재벌 중심의 대기업 생산체제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 한 정권의 경제적 업적이 재벌 기업의 투자와 업적에 의존하게 될 때, 정부의 성장 정책은 이들 기업의 투자 인센티브와 투자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정책은 수출이 호조를 띠고 기업 이윤이 증가해 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상승한다 하더라도 고용의 증대와 아울러 노동자 집단의 권익 증대, 노동 조건의 향상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경제 체제 하에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그 전투성은 그들이 민간 부문이든 공공 부문이든 대규모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운동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노동운동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를 제어하는 영향력을 조직하는 데 큰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오늘의 한국경제 문제는 재벌 기업의 노사가 민주적 틀 내에서 어떠한 공존 협력 관계를 설정하느냐, 어떻게 중소기업 발전이 가능한 생산체제를 만드느냐, 어떻게 재벌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다이나믹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창출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특히 광범한 중소기업 부문이 재활성화되지 않는 한 노동자 집단의 '2등 노동자화 경향'은 가속화되고, 궁극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기반은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에게 구조전환 감당할 정치적, 정책적 역량 있는지 의문"
  
  최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사회경제적 대안을 논의할 때"라며 "그 대안은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그럼으로써 넓은 범위의 콘센서스를 창출할 수 있고, 집행가능한 것이 돼야 한다"고 대안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2만불 성장시대'라는 성장의 목표와 가치를 천명하고 한편에서는 정부내 개혁파들이 사회정의, 사회복지, 분배의 가치실현을 언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정책적 목표, 내용과는 무관하게 분배와 복지를 요구하는 지지 세력에 부응하는 슬로건 내지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정으로 노동, 복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2만불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고 또 달성한다 하더라도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구조 개혁이 진행되는 일정한 기간 동안 저성장이라는 계곡을 지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 정부에 획기적인 구조 전환을 감당할 만할 정치적, 정책적 역량이 존재할지 또 재벌 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자, 기업가 집단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이지 못한가"
  
  최 교수는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의 개선을 포함하는 시민권의 확대와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그 동안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건설적 타협을 통하여 보통 사람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바가 컸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 가능성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나아가 그 중심적지지 세력으로부터 괴리되기 시작한 민주주의는 그 취약함으로 인하여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혹은 민주주의와 갈등관계를 갖는 힘들에 의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수구세력의 전면 재등장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준엄한 경고로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 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 최장집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전문보기

 

강양구/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I.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사회경제관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대다수 일반 시민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생활의 질적 저하와 그것이 가져오는 사회적, 인간적 피폐화만큼 큰 문제는 없다. 고실업, 고용불안정, 노동시장의 내부분화에 의한 이른바 대규모 비정규직 노동자의 누적,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가계파산에 의한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확대 등 오늘날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양상들은 IMF개혁패키지를 통해 급격하게 전개된 한국경제의 구조변화를 특징짓는 중심 내용들이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가 초래하는 사회해체 효과는 더 파괴적인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살인 및 강력범죄의 급증, 가족동반자살이라는 비극적 형태를 포함하는 자살률의 급증, 세계 최고수준의 이혼율과 거꾸로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 등의 지표들은 사회해체의 급격함과 그 심각함의 일단을 드러낸다.

 

빠른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온존되고 있었던 전통사회적 구조와 인간관계의 공동체적 연계들, 사회안정에 기여했던 잘 발달된 중산층이 중심이 된 계층구조, 높은 경제성장의 지속 등은 그 동안 한국사회의 안정화와 공동체성의 유지를 가능케 했던 요소들이었다. IMF위기의 충격효과와 더불어 이러한 구조들이 해체되면서, 급속히 팽창한 사회저변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계층구조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의 문제는 그만두고라도 변화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격변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종국적으로 어떤 한국사회로 귀결시킬지, 그것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를 갖게 될 것인지, 과연 이런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대체 어떤 내용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갖는 지식의 한계는 크다.

 

오늘의 노동문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노동운동의 한계 즉 노동운동이 서 있는 기반의 협애함이라는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환경과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조건에서도 한국경제의 생산체제는 과거 권위주의하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중심축이 재벌중심의 대기업생산체제라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고 재벌기업과 그 하청업체의 위계구조하에 중소기업이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고용문제에 있어서나 노동운동에 있어서나 그 중심적 이슈가 비정규직 문제라는 것은 두루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임금, 높은 고용불안정, 낮은 조직률, 기업복지 및 노동보호입법으로부터의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규-비정규직 차이는 단순한 차이를 넘는 의미를 갖는다. 공공부문의 노동자도 수혜의 정도에 있어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범주에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과 그 전투성은 그들이 민간부문이든 공공부문이든 대규모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운동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노동운동이 서있는 기반의 협애함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재벌중심의 경제체제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제어하는 영향력을 조직하는 데 큰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노동문제가 전체 생산체제와 사회적 역할에 있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기업 및 조직에서의 노동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의 한국경제의 급속한 재편은 기존의 사회계층구조를 새로운 형태로 양극분해하고 있고, 국가정책에 의해 지원되었던 ‘지식기반산업화’ 역시 이러한 경향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기존의 안정적 대기업군, 자산소득자, 경영 및 지식산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사회구조의 상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동안, 중소기업과 영세산업, 서비스산업 등 주변적 산업부문에 광범하게 존재하는 노동자집단은 분명 보다 절실한 노동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들 주변적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여성이나 파견직 노동자, 중소 영세산업의 저학력 고령노동자, “계급 이하의 계급”으로 범주화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및 노동조건은 실로 열악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즉 실업자와 취약계층, 그리고 신빈곤층으로 분류된 신용불량자들의 경우는 주변적 노동자집단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출과 진입이 유연하고, 열려있는 미국이나 서구에서의 노동시장과는 달리, 시장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극히 폐쇄적인 한국의 노동시장구조에서, 그리고 열패자들에게 가혹한 한국사회의 풍토에서 이들은 실로 소외와 궁핍, 사회적 차별과 천시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의 생산체제가 어떤 구조와 내용으로 변하든, 예나 지금이나 재벌중심 생산체제의 중심적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 한 정권의 경제적 업적이 실제로 이 재벌기업의 투자와 업적에 의존하게 될 때, 정부의 성장정책은 곧 이들 기업의 투자인센티브와 투자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전환의 직접적 결과로 재편된 현재와 같은 노동시장구조에서, 이러한 정책이 갖는 한계는 수출이 호조를 띠고 기업이윤이 증가되고 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상승한다하더라도 고용의 증대와 아울러 이들 주변적 노동자집단의 권익증대, 노동조건의 향상을 결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고용문제도 이와 유사하다. 그리고 바로 경제의 호전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고용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아마 저조한 고용증대는 테크놀로지 향상에 따른 노동력의 대체효과일 수도 있고, 국제경쟁력 약화로 인해 미국국내의 고용수요가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콜럼비아대학의 글라시엘라 치칠니스키(G. Chichilnisky) 교수가 강조하듯이, 튼튼한 중소기업의 발전이 고용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Financial Times 04/05/14). 중소기업의 고용효과에 관한 한 한국경제도 미국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의 발전이 중요한 이유는 거시적으로 볼 때 재벌기업보다 더 큰 고용을 포괄한다는 것과, 광범한 주변적 노동자군이 이 허약한 중소기업부문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의 한국경제 문제는 재벌기업의 노사가 민주적 틀 내에서 어떠한 공존협력관계를 설정하느냐, 어떻게 중소기업 발전이 가능한 생산체제를 만드느냐, 어떻게 재벌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다이나믹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장구조를 창출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범한 중소기업부문이 재활성화되지 않는 한 주변적 노동자집단의 ‘2등 노동자화’의 경향은 억제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보편적 기반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II. 대안적 사회경제정책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실제 문제(real issue)는 절대다수의 노동인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이 매우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며,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정책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그 내용에 있어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불만이 확대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기반도 약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의 한국경제의 위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효과들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IMF위기라는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충격에 의한 결과일 뿐 아니라 이에 대응했던 민주정부들에 의한 주체적인 정책적 대응이 빚어낸 복합적 산물이라고 이해한다. 만약 민주주의가 평등한 정치참여의 권리를 통해 실현되고, 시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밖으로부터 주어진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은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역량을 가늠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IMF개혁패키지로 대변되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경제개혁이 한국의 민주정부를 매개로 어떻게 관철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정부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면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IMF충격의 효과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전면적 확대가 엄청난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민주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중대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정부정책의 의제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정치적 이슈 내지는 정치적 사안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정치의 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럼으로써 그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적 내용과 이를 실천할 정책적 수단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적 힘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적 변화를 가져오는 실제 이슈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미국의 정치학자 바크라크와 바라츠(Bachrach & Baratz)는 다원주의적 권력 개념을 비판하면서 ‘비결정’(non-decision)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설명했다. 그들은 먼저 ‘결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원주의적 권력개념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이나 이익들이 표출되고, 조직되고, 대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모든 사회경제적 갈등이나 이익들은, 만약 그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정치경쟁의 장에서 이익집단이나 정당을 매개로 표출되고 선거를 통해 대표되고 종국에는 정책으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그 경우 실제의 정책은 이러한 이슈를 둘러싸고 이해당사자들이 경쟁하고 타협한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때 이러한 정치과정을 우리는 정치세력과 갈등들의 다원적 경쟁 내지는 다원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정책의 결정이 곧 사회적 갈등과 힘 관계의 정직한 반영이라고 한다면, 정책결정 수준에서의 정치적 다이나믹스와 정책의 산출은 사회갈등의 축약이며 정치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사회경제적 현실과 정치 간의 매개가 순기능적으로 작동된다면, 중요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용이하게 정치적으로 해소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갈등이 순조롭게 해소되고,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적 사회발전의 전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주의적 정치관에 도전하는 비결정의 개념은 우리가 가시적으로 관찰하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정책과 그 결정은 전체 정치과정과 권력관계의 다만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보다 더 중대한 사회경제적 갈등이나 이익들을 마땅히 이슈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이유는 이슈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슈화하지 않는 또는 못하게 하는, 다시 말해 정책결정의 사안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힘 또는 영향력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이 관점은 이 비결정의 영역/수준이야말로 보다 더 중요한 정치과정이요, 권력관계라는 사실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민주주의에 있어 논의되는 이슈/사안의 범위와 성격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회의 중요 문제에 대한 시민개개인들의 계몽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루 알다시피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슈의 범위와 계몽적 인식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지나쳐 버린다. 한국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변화시키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사안의 범위 내로 들어오지 못하거나, 유권자 개개인이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올바른 이해에 근거한 판단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참여가 아무리 확대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우며, 역으로 한 사회의 중대문제는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민주정부의 무능력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무관심, 냉소주의, 투표율의 하락현상이 보여주는 정치참여의 저조함은, 사회의 중대이슈를 의제의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덜 중요하고 나아가서는 하찮은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정치가 왜소화되고 타락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정치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에서의 정치적 대립이 아무리 격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아무리 높고, 시민들의 시민운동에의 참여가 아무리 열성적이라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중대문제가 정치사안으로부터 배제되고,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할 때 민주주의를 통한 집단적 결정의 내용은 민주적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뭐든 참여의 확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계몽적 이해로 뒷받침된 중대사안이 이슈의 범위 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 새로운 영역으로의 정치참여는 다른 분야에서의 참여를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참여적 다원주의의 역설’이 나타나기 쉽다(Dryzek 1996, 7). 바꾸어 말하면 정당간의 경쟁이든, 시민사회의 운동이든 잘못된 이슈,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열정을 쏟는다면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한 참여를 제약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들은 사회의 중대사안을 정치영역에서의 중대사안과 병행시키는 일을 통해 민주정부의 효능을 창출할 수 있었는가? 그럼으로써 체제로서의 민주정부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는가? 이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커다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민주정부들의 경험을 통해, 여야당간의 갈등이 첨예하였던 정치적 이슈영역은 대체로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정당간의 정치경쟁의 규칙을 어떻게 제도화하는가 하는 정치의 제도개혁을 둘러싼 이슈이다. 집권정당은 어떻게 권력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야당은 어떻게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쟁투로 정치는 요란했다. 둘째는 역사, 이념 및 가치, 정서적 문제를 둘러싼 이슈영역이다. “역사 바로세우기”, “지역감정 극복”, “과거사 진상규명”, “용공 전력조사” 등은 모두 민족주의, 반공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가치, 또는 지역정서의 동원이 중심이 되는 이데올로기적, 감정적, 상징적 이슈영역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열정을 쉽게 동원하게되어 정치를 극한적 갈등으로 치닫게 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현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새로운 중요이슈가 된 행정수도 이전 및 이른바 “지역혁신체제”의 추진과 같은 지역개발정책 분야이다. 그러나 정책추진자들이 중앙집권화의 폐해와 분권과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안, 그것이 과연 주장하는 대로의 바람직한 효과를 낳게 될지, 정말 모든 지역이 자립적 발전모델을 갖는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한 우리사회의 확신은 더욱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넷째는 사회경제적, 정치경제적 이슈영역이다. 이 문제는 그간 정치적 이슈로서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분명 현실적 삶의 세계에서 중심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슈영역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네 번째 사회경제적 이슈가 최우선 순위에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최소한 서구민주주의에서의 상황은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현실생활에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문제가 제일의 우선순위를 갖는 정치사안이 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중요 의제로 부각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정치의 제도개혁, 이념대립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상징적 이슈 또는 삶의 현실적 문제와는 거리가 먼 지역개발주의적 사안들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자리잡았다.

 

물론 기존의 지배적 담론을 당연시하면서 정치에 있어서도 경제문제가 최대 이슈라고(또는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문제인식에 즉각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이슈를 곧 경제성장의 문제와 동일시한다. 고용확대, 노사관계,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 복지의 증대, 빈곤문제 등을 포함하는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성장이 창출하는 넘쳐흐르는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그러므로 정부의 가장 중심적 정책은, 나아가 정치의 핵심적 역할은 모두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시장의 작동과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정책이나, 행위는 부정시된다. 이러한 일면적 경제성장관이나 독트린은 과거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통해 신화가 되었고, IMF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 기반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사실상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대안적 경제성장관이나, 재벌중심 생산체제의 거버넌스 문제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 혹은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가 가져온 여러 사회정책적 문제들이 중대이슈로 자리잡을 여지는 별로 없다.

 

권위주의적 관치경제 시기로부터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시대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제영역에서만큼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그간 경제정책에 대한 민주정부들의 개혁레토릭이 어떠했든, 혹은 정부 내 이른바 개혁파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언표화되는 주장들이 얼마나 개혁적이든, 반대로 민주정부의 경제관이 급진적 또는 반시장적이라는 주류언론들의 우려가 어떠했든 민주정부에서조차 실제의 경제정책은 민주화 이전과 그 차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가장 변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였던 냉전반공주의의 구조조차 민주화 이후, 특히 “햇볕정책” 이후 크게 변화했고 또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확실히 경제영역에 관한 한 일면적 경제성장의 독트린은 어떠한 대안적 도전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경제문제, 또는 경제정책 사안을 둘러싼 이슈들이 국회에서의 정당간 논쟁에서, 신문의 지면에서 언제나 가장 빈번하게 가장 중요하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성장의 방법론을 둘러싼 문제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결정’의 수준에서, 거의 의식화(儀式化) 되어버린, 그리하여 사태를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그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는 익숙한 주제에 불과할 뿐이다. 사회경제적 이슈들은 ‘비결정’의 영역에 머물고 있으며 정치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득이익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냉전반공주의도 아니고, 친일파청산 문제와 같은 역사적 가치의 문제도 아닌, 경제와 관련된 이슈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의 이론가 시리아니(C. Sirianni)는 여성운동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확대한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이 새로운 정의는 그 동안의 전통적인 사회관계에서는 전혀 이슈가 될 수 없었던 부부관계를 포함하는 가부장적 가정 내의 관계나 가사노동과 같은 사적관계의 영역으로까지 여성운동을 확대할 수 있는 이론화에 기여했다. 같은 논리로 “경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또는 “시장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정의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경제나 시장이 성장을 추동하고, 경쟁과 같은 자연스런 본성적 인간행위가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창출한다는 신화가 아닌, 성장이든 시장효율성이든 그것은 사회의 힘의 관계와 가치가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이 사회경제적 이슈영역을 포괄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경제를 향한 전망을 발전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통합의 효과를 가짐으로써 정치안정화에 기여하며, 일의 윤리, 일에 대한 헌신을 높이고, 갈등적 노사관계를 보다 민주적이며 협력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며, 사회적 정치적 안정을 통해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요의 증대를 통해 성장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온 한국 정치의 한 속성이 드러난다. 정치가 현실 생활에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이슈영역을 중심적으로 대면하고, 그 영역에서의 갈등을 해소해 가는 과정에서 정치의 제도개혁 이슈나 역사적 정서적 이슈를 흡수통합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몰두하면서 전자를 방치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후자의 비정치경제적 이슈들이 과도하게 정치화되고 결과적으로 정치는 이데올로기적 쟁투의 장이 되는 동안, 전자의 사회경제적 이슈들은 탈정치화된다. 선거를 통해 사회로부터의 요구를 위임(mandate)받은 것과는 무관하게 정부가 된 민주파의 경제정책은 권위주의적 성장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정책은 그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과거 권위주의적 관치경제를 주도하고 운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은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그간 여야 정당은 상호 공존이 가능할 수 없을 정도의 적대적 담론과 감정으로 충돌해왔다. 정치인들과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짧은 사이클로 순환하면서 파노라마처럼 명멸하였고, 국회의원 교체율이 세계 최고임을 자랑할 만큼 매 선거마다 대규모 퇴출이 계속되었다. 여러 수준과 여러 정책영역에서 수많은 전문가집단의 참여가 확대되었고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한 인상과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정책 영역에 관한 한 변한 것은 없다. 어찌보면 여야간 정치적 갈등의 격렬함은 실제로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가 배면에서 ‘비결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실제 이슈에 있어서는 극히 좁은 갈등의 범위에 한정되어 다퉈야 하는 협애한 정치적 대표체제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사회경제적 이슈를 전면으로 끌어낼 것인가? 그것은 누구보다도 먼저 투표자 다수의 지지를 통해 선출된 민주정부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사회경제적 이슈는 갈등의 정도와 폭이 가장 큰 영역이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이슈를 전면으로 끌어내는 데는 부와 권력에 있어 강력한 사회적 힘을 갖는 기득이익들의 도전이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많은 정치적, 사회적 힘들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정당의 역할은 이 영역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정당은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선출된 민주정부로 투입되는 통로이고, 정부의 정책결정이 사회로 전달되는 정치의 조직망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좁고 얕은 사회적 기반을 갖고, 협애한 이념적 스케일로 정당간 차별성이 적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집단이 과다대표되고 있으며, 제도화의 수준도 낮고 정체성도 약한 정당들이 정책적 대안을 유능하게 조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문제는 아직도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민사회로부터의 운동의 힘들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 그 정책이슈를 지지하는 많은 사회적 힘이 투입되지 않고서는, 즉 대통령이나 최고 정책결정 수준의 결정자나 정치엘리트들의 의지라든가, 개혁마인드라든가 하는 것만으로는, 많은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정치적 이슈의 전면으로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정책사안이 중대할수록,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의 정도가 클수록 특정의 정책은 그 정책에 대한 사회적 힘의 투입 없이는 실현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안을 조직하는 문제에 있어, 헤게모니의 영역 밖에서 사고하고 행위하는 지식인들의 역할 또한 필수적이다.

 

III. 현실적 대안의 중요성

 

그렇다면 노동과 복지문제를 포괄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대면하고 주요 정치적 사안으로 이슈화함에 있어서 어떤 대안적 처방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그것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제안이기보다도 정치인, 지식인, 대의(大義)추구적 사회운동, 노동 및 민중운동 등 여러 사회집단들 사이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한 정치적, 사회적, 지적 노력이 진지하게 이루어낸 결과물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대안의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대안의 성격, 방향 및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대안형성의 방법론에 관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권위주의시대 이래의 경제정책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배제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현실에서 기존의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는 경제정책 노선에 수정을 가하기 위해서는 그 대안은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하고, 그럼으로써 넓은 범위의 콘센서스를 창출할 수 있고, 그리고 집행 가능한 어떤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실현가능하지 않은 어떤 것이라면 대안으로서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진지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결의라기보다는 단지 “나의 이념은 이것이다, 나는 개혁적이다”라는 것을 천명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운동의 한 타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비결정’이 만들어지는 데는 양 측면이 존재한다. 하나는 개혁의 외적 제약이다. 민주정부의 어떤 개혁적 의지, 비전, 정책은 헤게모니의 제약으로 인해 정치적 이슈로 전환되지 못하고 보다 강력한 외부적 힘에 의해 좌절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개혁의 내적 제약이다. 민주정부를 포함하여 개혁을 만드는 사람, 세력이 실현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정치이슈화하지 못하고 개혁적 대안이 내부로부터 소멸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문제보다도 두 번째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적 요구들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권위주의시대의 정책이 지속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가 민주적 시민/시민역할에 대해 두 가지 구분되는 개념, 즉 ‘긍정적/적극적’인 것과 ‘부정적/소극적’인 것의 개념 구분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논의와 맥락을 달리하지만 시사하는 바 크다. 긍정적인 시민권 개념에서는 특정의 집단이나 조직들이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발전시키고, 이익을 공유하면서 정부정책에 자신들의 요구를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독자적으로 형성한다. 반면 비판과 불평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적 시민행위는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이들의 공적 사적 도덕성을 통해 정치인들에게도 강력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부정적 시민행위는 정치란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의 일이고 시민은 관중이나 감시자의 역할에 만족하는 수동적 관점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이들을 감시감독하기 위해 정치계급에 대해 극히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창의적 에너지를 대변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시민권의 역할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들 두 측면이 모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부정적 행위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은 우려할만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맥락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운동이 중심적 동력을 제공하는 민주정부는 당연히 긍정적 시민의 역할이 중심이 되고 그러할 때 그 에너지를 통해 많은 대안정책들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민주정부 내의 개혁적 정책결정자들과 시민사회로부터의 운동과 지식인들에 의한 개혁의 비전과 정책의 입안은 개혁적이되, 무엇보다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한편에는 권위주의적 관치경제에 그 연원을 갖는 국가-재벌연합의 견인차가 중심이 된 ‘신자유주의적으로 변용된 성장정책’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에 기반을 갖는 ‘신자유주의 반대’, ‘사회민주주의의 길’이라는 방향이 있다. 그러나 두 방향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테제와 안티테제를 한국적 현실에서 실현가능할 수 있도록 취합하는 설득력을 갖는 대안적 정책비전이며, 그 틀 안에서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의 수준에서 안티테제를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민주세력들에게 민주정부의 수립과 아울러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희망과 기획을 실현할 기회가 부여되었을 때, 현실적 대안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기보다 쉽게 안티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가져온 무책임한 관성적 결과물일 수 있다. 즉, ‘긍정적’ 시민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여전히 ‘부정적’ 시민으로서의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이라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이론적 수준에서, 가치와 신념의 차원에서 그리고 운동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의 정책적 대안에 있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싫든 좋든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그것이 한국사회의 부문, 수준, 그리고 집단, 계층들에 있어 어떤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인 것이다. 혹자는 영미식의 신자유주의형 경제모델에 대비되는 유럽식 복지국가모델 혹은 일본형의 조율된 자본주의형과 같은 어떤 비자유주의적 자본주의경제(non-liberal capitalism)를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정부는 후자의 비자유주의적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이 현실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의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무엇보다 먼저 이론적으로 케인지언적 사회복지국가 모델을 포함한 비자유주의적 경제이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가 먼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추진된다고 가정할 때 현재와 같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무역자유화를 포함하는 세계화라는 국제환경적 압력과 조건, 현재와 같은 재벌중심의 경제적 생산체제의 특성, 그 정책을 위한 정치적 지지의 동원, 신자유주의적 및 성장이데올로기, 사회적 힘의 관계 등, 여러 측면과 여러 힘들이 연관되어 작동되는 조건하에서 정치적으로 취약한 민주정부가 이러한 대안적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검토해야 하고, 없다면 이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2만불성장시대라는 성장의 목표와 가치를 천명하였는데 그러면서 한편으로 정부 내 개혁파들은 간헐적으로 사회정의, 사회복지, 분배의 가치실현을 언명하기도 한다. 이는 다음의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의미할 것이다. 하나는 진정한 정책적 목표, 내용과는 무관하게 분배와 복지를 요구하는 지지세력에 부응하는 슬로건 내지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 복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2만불의 성장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고 또 달성한다 하더라도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이다. 만약 후자를 진지하게 추진한다고 할 때, 그것은 마치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 Przeworski)가 ‘전환의 계곡’이라고 말하듯, 구조개혁이 진행되는 일정한 기간동안 저성장이라는 계곡을 지나게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와 같은 생산체제가 획기적인 구조전환을 해야 할 것이고, 이를 감당할 만한 정치적, 정책적 역량이 존재해야 하며,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자, 기업가집단의 동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본의 투자회피, 해외로의 자본도피, 해외투자의 확대 등으로 인해 ‘전환의 계곡’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경제는 공동화되고 사회는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이러한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별도의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요컨대 정부 내 개혁파들의 노동, 복지, 분배정의에 대한 강조는 정책적 진정성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혹자는 기업의 안정적 투자유인, 고용안정, 노동, 복지의 실현을 위해 영미식의 자유경쟁시장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독일식의 ‘이해당사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존과 협력의 노사관계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노조의 조직이나 활동도 어려운 조건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목소리를 갖고 결정에 참여하는 유럽식의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독일식 모델은 노사의 극한적 대립이 파시즘과 2차대전을 초래했다는 파멸의 역사적 경험, 전후 반노동자적 자세로부터 친노동자적 자세로 전환한 기독교의 변신, 이 과정에서 노사화합을 가능케 한 기독교 박애정신, 이를 당의 이념으로 한 기민당의 존재와 같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독일식 모델을 진지하게 정책대안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단순한 천명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한국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문제의 차원은 복합적이다. 먼저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기존의 어떤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면 이를 대체할 대안적 처방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그 가운데서도 필수적인 문제들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의 구조와 성격을 밝히고, 어떤 모델이 우리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준거가 될 수 있나 하는 문제를 검토한 후에도 따져봐야 할 문제들은 많다. 그것은 개혁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은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나? 개혁자들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나? 민주정부는 국가 행정기구들을 통솔하고, 새로운 개혁안을 수행할 능력을 갖고 있나?

 

IV. 우리는 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이지 못하나?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일련의 제도적, 절차적 요건들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즉 그것은 평등한 시민권, 일인 일표의 투표권에 의한 정치참여의 권리,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의 주기적 실시와 이를 통한 정부의 선출,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의 자유로운 조직과 이들간의 상호경쟁과 협력 등이다. 그러나 이렇듯 단순하게 보이는 정치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실제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면서 만들어지는 다이너믹스는 제도나 절차로서 이해하는 민주주의보다 훨씬 복잡한 결과를 낳았다.

 

정의에 있어서 민주주의는 다중의 보통사람들의 힘이 체제의 중심에 자리잡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군부권위주의라든가, 군주정, 귀족정과 같은 다른 경쟁적인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체제보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의 개선을 포함하는 시민권의 확대와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제 또는 시장의 영역에서 약자이며 소외된 보통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방법을 통하여 시민권을 획득, 확대하고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때 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절차적 방법을 통한 실질적 문제의 해결 또는 개선이 그 핵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절차적, 형식적 내용과 실질적 내용이 역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체제이며 따라서 일차원적인 것이 아닌 복합적인 구조와 과정을 갖는 것이다.

 

평등의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와 항상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 양자간의 긴장관계와 갈등은 민주주의 자체를 제약하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갈등은 크건 작건, 민주주의는 건설적인 타협을 통하여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바 컸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광범한 문제해결의 공간을 갖는 것이고, 그것은 민주정부의 능력의 함수이기도 하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러한 가능성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 중심적 지지세력으로부터 괴리되기 시작하는 민주주의는 그 취약함으로 인하여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혹은 민주주의와 갈등관계를 갖는 힘들에 의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민생활의 실질적 향상에 기여하도록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민주정부의 책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오늘의 민주정부들이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대표-책임의 연계고리로부터 상당정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표한다는 그들의 자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의 정책적 책임성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IMF위기 이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조건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악화시켜온 부정적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주정부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우리사회의 위기를 불러오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비전, 의지, 정책대안의 부재를 반영하듯, 오늘의 민주정부는 이렇다할 경제정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하여 민주정부들이 세계화의 조건하에서 보통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더 악화시키는 데 앞장선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과는 사회양극화의 급속한 심화이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로 재구조화된 시장경제 경쟁에서의 승자들, 거대기업들, 정치인들, 사회엘리트와 지식인 그리고 주류신문을 통하여 익숙하게 소개되는 이들의 세계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시장경쟁의 열패자 내지 탈락자들, 사회계층구조의 하층에 위치하면서 점차 생산과 소비의 중심영역으로부터 주변화, 배제되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세계가 광범하게 존재한다. 우리사회에서 이 두 세계 사이의 격차와 분리는 그간 심화될대로 심화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정치인들, 언론들이 ‘사회통합’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인 듯이 강조하는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있다. 통합을 강조하는 정치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듯 분리되어가는,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를 통하여서도 대표되고 보호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정책을 말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투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문헌

Bachrach, Peter and Morton S. Baratz. 1970. Power and Poverty: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 P.
Chichilnisky, Graciela. 2004. “Think Small If You Want to Create More Jobs.” Financial Times(May 14).
Crouch, Colin. 2004. Post-Democracy. Cambridge: Polity Press.
Dryzek, J. S. 1996. Democracy in Capitalist Times. New York, Oxford: Oxford U. P.
Przeworski, Adam. 1991. Democracy and the Market. Cambridge, New York: Cambridge U.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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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1 15:58 2004/10/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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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Gramsci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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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Gramsci의 생애와 사상

     - 노동운동과 그람시
                               
                 

                                           이종래(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1. 들어가면서: 그람시 사상의 배경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인 자르디니아 지방인 알레스(Ales)에서 1891년 출생하여 1937년에 죽었다. 이태리 공산당 활동을 한 대가로 1927년부터 1937년까지 만 10년간의 수형생활을 하였으며 이 기간에 '옥중수고'라는 저작을 남긴 맑스주의자이다. 그의 아버지가 낮은 직위의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던 사실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과 질병으로 점철되어 있다. 즉 그는 어린시절 얻은 질병으로 인해 곱추라는 신체적 장애까지 얻게 되지만 당시 맑스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소아병적 편협에서 비롯된 사상적, 정신적 불구에서 벗어난 사상가로 평가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그람시의 정치적 입장은 너무나 예외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예외성과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한  생애사적 연구는 여전히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람시의 출생지역인 남부 이태리의 사회적 상황을 먼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남부 이태리는 산업화된 북부와는 판이한 농업지역이다. 그람시 스스로가  강조한 '남부 이태리 문제'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가 경제적인 갈등을 봉합하는 현상에서 출발한다. 이 지역에서 카톨릭이라는 종교는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된 북부의 노자간의 계급대립과 달리 봉건적인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여전히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그람시는 남부 이태리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인습과 관념과의 투쟁 없이 불가능한 사정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남부 이태리 문제에 대한 그람시의 이런 평가는 사회주의 운동 전체로 이전되면서 이른바 전략과 전술의 수립으로까지 확장된다. 다시 말해 사회구조와 행위주체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의식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그람시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변혁적인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의 도입은 주체의 자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람시가 자신의 인생을 "3배 혹은 4배로 뒤떨어진 지방민"이기 때문에 "후진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옥중수고 15: §19)1)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자평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서의 인식과 활동을 변화시키는 계기의 문제를 문화와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그람시를 문화주의와 맑스주의를 결합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칭호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람시의 이런 시도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나온 경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람시는 경험에서 체득된 생활의 원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과 질서로 사회화되는 장을 '시민사회'(societa civile)로 개념화한다.2) 하지만 동유럽과 서유럽사회의 차이를 시민사회의 역사적 존재유무로 구분하였다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을 협소화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람시의 본래적 모습인 실천가로서의 모습보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론가로서 국한될 가능성이 커지기도 하지만 그람시의 본래적 관심사는 노동자 계급운동이었다는 사실이 호도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 그람시의 생애를 짧게나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 '옥중수고'에서 '남부 이태리문제'에 관한 글들은 이태리에 국한되는 문제를 가진 반면 서유럽사회의 특수성을 강조한 '포드주의' 혹은 '아메리카주의'라고 표현한 주제들은 국내에 소개조차 변변히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가로서 안토니오 그람시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람시의 청년기는 1912년 투린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3) 그람시는 이태리??그리스 문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 법학(사법)을 전공과목으로 택한다. 이 과목 중에서 언어학을 첫 번째 전공으로 한다. 이후 자신의 정치이론에서 대표적인 개념으로 알려진 '헤게모니'도 언어학에서 차용된 개념이라는 사실도 알고 보면 바로 이런 전공과목의 선택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4) 그리고 전공과목들의 선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그람시의 높은 관심과 반대로 경제학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대학시절 전공과목들의 조합은 이후 2차 인터내셔날 시기에도 그람시가 경제주의로 기울지 않고 문화적 관심을 강조한 이유를 밝혀주는 논거로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당시 노동자계급 운동에서 경제주의적으로 환원하는 우파와 문화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좌파로 쉽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람시의 독자성은 두드러진다. 그람시의 이런 독자성은 유년시절의 경험과 함께 대학시절의 학업과 정치활동에서 토양이 마련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이후 그람시의 사상을 가능하게 한 토대로 보여 진다. 

그람시는 대학시절 새로운 지식습득과 더불어 실천 활동을 병행한다. 1913년 이래 그람시는 이태리 사회당(PSI)의 당원이었고, 1914년 그는 사회당내 '변혁적 좌파그룹'에 합류한다. 1915년 그는 졸업이후 대학이나 중등학교에서 이미 보장된 교수나 교장과 같은 좋은 직장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지만, 사회당 중앙위원회에서 발간하던 잡지 'Avanti'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 그는 이 사회당 기관지에 지방정치, 시사문제 그리고 각종 문화 비평적인 글을 주로 발표한다. 그람시가 1916년에서 1920년 사이 170편에 달하는 연극평론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보여 진다.

그람시는 1915년 키엔탈(Kienthal)과 1916년 짐머발트(Zimmerwald)에서 열린 반전회의에서 레닌의 정치적 입장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정통 맑스주의와 교감을 시작한다. 물론 이전의 시기에도 그람시는 속류 맑시스트들의 글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통 맑시스트의 이론을 처음으로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통 맑스주의와의 만남이후 그람시는 맑스의 글을 정독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1918년 5월 4일 사회당 투리노 시지부의 주간지에 맑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우리의 맑스'에서 그람시는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자신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람시는 먼저 정치경제학에 담겨진 이념이 순수한 진실로서 의미가 있기보다 그 이념이 경제적 현실의 부당성을 알리고 폭로하는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정치경제학적 이념은 "자의적인 성격"과 "허구로 가득 찬 종교적이거나 사회학적인 추상"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실현될 수 있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그람시는 주장한다(Gramsci, 1918: 37).

여기서 우리는 2차 인터내셔날 시기 자본주의 경제의 자연붕괴에 따른 국가소멸론이 유행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람시의 주장이 지닌 의미성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경제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자본주의가 자연 붕괴할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보다 자본주의 모순의 본질인 경제적 착취 구조를 널리 알려 사회적 설득력을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실천적 활동이 당면과제라고 그람시는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인식은 맑스주의를 절대적 진리로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적 활동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맑스의 정치경제학은 종교적인 진리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활동을 밑받침할 수 있는 정당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탁월성은 존재한다고 그람시는 주장한다. 그람시의 이런 맑스주의 해석은 주의주의(Voluntarismus)적 전통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노동자 계급운동에서 자신의 입장은 주의주의적 운동과 거리를 분명히 두면서 자신만의 독자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3. 노동운동가로서 그람시

 

러시아에서 소비에트혁명5)이 일어난 1917년에 그람시는 세계 1차대전(1914-1918)으로 야기된 자본주의 위기국면에서 노동자 계급의 적극적 개입은 절박할 뿐만 아니라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 '화해할 수 없는 혁명 그룹'에 가입한다. 그람시의 이런 정치적 입장은 당시 사회당이 취한 전쟁 불개입이라는 소극적 태도에 대한 명확한 반대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는 이 혁명 그룹의 조직원이자 이태리 사회당 투린 시지부의 책임자로서 1919년 6월 기업내부 노동자 조직을 러시아의 소비에트 모형에 따라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즉 그람시는 이태리에서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제안한 것이다. 그람시의 이런 제안은 1920년 투린 시에서 2십만 명이 참가한 총파업으로 현실화되지만, 그람시가 주도한 '노동자평의회'운동은 독일의 칼 립크네히트(Karl Liebknecht: 1871-1919)와 로자 룩셈부르그(Rosa Luxemburg: 1871-1919)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6). 독일의 '노동자평의회'운동이 가진 급진적인 '기동전'에 반대하여 '진지전'적인 사고를 그람시는 이미 그 당시에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의 '노동자평의회'운동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의미에서만 한정되었다면 그람시는 이 운동을 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이태리 '노동자평의회'운동의 기관지인 'Ordine Nuovo'는 정치적인 선전??선동잡지가 아니라 문화 잡지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람시가 노동자평의회 운동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적인 사고, 표현방식과 태도라는 점이다. 여기서 기존의 지배질서가 묻어 있는 사고와 표현방식, 태도가 아닌 노동자적인 혁명적인 사고, 표현방식과 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혁명의 관건이라는 그람시의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단을 모태로 하는 독일의 노동자평의회운동은 1918/19년에 독일 공산당(KPD)을 만드는 계기로 되듯이, 이태리에서도 노동자평의회운동은 1921년 이태리 공산당(PCI)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초석이라는 점에서 두 운동의 공통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조직건설은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의 방식이 일반화되던 시기에 이른바 전위정당 건설이 시대적으로 요청된다는 사실에서 이해가 되긴 하지만, 노동자평의회운동의 활동내용의 차이는 이후 서유럽 사회주의 운동에서 전위정당의 역할과 내용을 두고 논쟁거리로 된다.

 

4. 정치가로서 그람시

 

1921년 아마데오 보르디가(Amadeo Bordiga)의 지도 아래에서 이태리 공산당(PCI)이 건설된다. 당시 이태리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운동이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보르디가의 이태리 공산당은 파시즘을 특별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당시 이태리 공산당 지도부의 견해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부르조아 계급독재의 사회이기 때문에 파시즘은 그 다지 대단한 위협이 아니라 정상에서 조금 벗어난 변종일 뿐인 것이다. 이런 정세인식에 따라 보르디가의 이태리 공산당은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는 전위정당화가 주요한 당면과제라고 보았다. 즉 파시즘에 반대하는 계급연합의 결성이 당면한 일차적인 과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보르디가는 부르조아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한 계급연합 보다 노동자 계급내부의 단결력과 응집력을 높이는 도구로서 전위조직의 건설이 당면 과제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보르디가의 이런 정세인식과 달리 그람시는 노동운동에 대해 파시즘이 지닌 위협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대중의 동원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반대를 위한 대중동원 투쟁은 사회당, 부르조아 민주주의자와의 연합으로 더욱 사회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오게 된다. 바로 이렇게 해당 시기의 단기적인 정세에 대한 두 사람의 대조적인 인식과 운동전망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명목적인 이런 차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실제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람시가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주도하였을 때 그의 정치적 입장은 1차 대전이라는 자본주의 위기상황을 방관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좌파 주류세력에 반대하여 노동자 계급의 적극적 투쟁을 조직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주의주의적 전통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이 주의주의적 흐름이 급진화된 소수 전위정당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그람시는 대중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주의주의적 흐름과 일정 정도 차이를 분명히 한다. 대중이 주체가 된 투쟁이 없으면 서유럽 사회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그람시적인 인식은 바로 이 시기에 획득된 것으로 보인다. 파시즘을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의 단순한 표현양태로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및 노동운동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반동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인식은 시대를 앞선 그람시만이 가진 탁월성이다.

그람시가 미리 예측한 노동운동의 위기상황은 1922년 10월 무솔리니가 '로마로의 행진'을 통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사실로 드러난다.7) 권력을 장악한 무솔리니는 1926년까지 의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긴 했지만 이태리 공산당에 대한 합법??반합법??불법적인 백색테러를 벌인다. 이런 정세에서 그람시는 1922년 이태리 공산당 대표로 임명되어 코민테른의 본부로 이동하여 잠시 화를 면하지만, 1923년 파쇼정권은 공산당 지도부인 보르디가와 그람시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탄압을 본격화한다. 파쇼정권의 탄압으로 당의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1924년 4월 그람시는 면책특권을 지닌 의원 신분을 가지고 이태리로 돌아온다. 같은 해 코모(Como)에서 비밀리에 열린 이태리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그람시는 보르디가의 종파주의적 노선을 강력히 비판하지만, 대의원 다수를 획득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는 같은 해 8월 코민테른에 의해 이태리 공산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된다. 이로서 그람시는 정치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람시는 당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반파쇼 연합을 위해 야당들에게 '반(Anti)의회'를 제안하지만 성사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람시는 반파쇼 연합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하였고 농민과 노동자의 계급연대를 최종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이 노력은 1926년에 당내에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즉 그람시의 노선이 이태리 공산당 3차 전당대회에서 다수파의 지위를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이태리 공산당은 전위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 지향하는 방향성의 전환을 하게 되었지만, 파쇼정권은 같은 해에 의회를 해산하면서 공산당을 불법화한다. 그람시는 1928년 재판에서 20년의 형을 판결 받는다. 이렇게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람시는 1928년부터 집필허가를 얻어 사상의 편린이 담긴 짧은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짧은 그들의 모음집이 이후 '옥중수고'로 출판되면서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로 된다.8)

   

5. 사상가로서 그람시

 

그람시가 사회주의 및 노동운동에 끼친 공헌과 평가는 우선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그람시는 서유럽 맑스주의의 원조로서 이야기된다. 이전의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동구권 사회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서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그람시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이후 정통 맑스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지금의 상황에서 그람시 연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정통 맑스주의와 서유럽 맑스주의의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대비해 봄으로써 지금의 노동운동이 처한 대안 상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즉 그람시 연구를 통해 노동운동에게 하나의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그람시 연구는 그람시의 사상적 공헌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새롭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그람시가 맑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차용한 많은 개념들이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회자되면서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과학에서 학문적으로 빠뜨릴 수 없는 중요 개념인 '시민사회', '헤게모니', '역사적 블록', '진지전', '기동전', '포드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람시가 개발한 개념들 중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분석을 위한 개념보다 문화에 대한 개념이 현대사회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이다.9) 그람시하면 문화주의자라는 애칭이 의례적으로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통속적인 분류법은 그람시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그람시가 문화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노동자 계급의식과 노동조합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문화적 접근법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람시는 자본주의적 생산력발전이 가져오는 상부구조의 변화는 노동자 계급의식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그람시는 현대자본주의 발전은 노동자 계급운동에 부정과 긍정이라는 이중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당시의 속류 맑스주의자들은 기술발전에 무한한 신뢰를 주었지만 그람시는 기술발전에 부응한 생산력 상승이 계급운동의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람시는 기술발전이 노동자 운동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면서 기술발전에 대한 신뢰는 아무런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논박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탁월성을 알 수 있다.

노동운동의 전망에 대한 그람시의 이런 평가는 먼저 '미국주의와 포드주의'에 대한 짧은 글들에서 파편적으로 실려 있다. 그람시는 포드 자동차회사에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고임금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우선 관심을 가진다. 여기서 그는 포드기업의 고임금정책이 산업발전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에 대해 먼저 반론을 제기한다. 그 이유로 그는 포드기업 종사자의 높은 이동성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는 빈번한 직장이동이 일어나는 포드기업의 고임금정책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과 결과를 가지는지에 주목한다. 먼저 그람시는 포드의 고임금정책은 노동자 계급의 내부분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즉 기업은 평균노동시간이 동일한 조건에서 생산성 증가를 이루기 위해서 새로운 유형의 숙련 그리고 노동력의 양과 사용방식의 변화를 강제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드 자동차회사의 고임금을 그람시의 표현대로 하면 "기업이 노동자들에게서 차별성을 요구"(옥중수고 9: 1129)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인식에서 그람시는 포드주의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합리화를 꾀한 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포드주의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그람시는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이 기업과 노동조직의 합리화로 이어져 생산체제의 변화를 수반하지만 이것이 노동자의 삶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 중심으로 자본운동이 전환하는 사회적 이행과정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은 심화되면서도 기술발전으로 인한 물질적 분배는 더욱 용이해져 노동자 계급의 체제내 포섭이 강화되는 이중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이 노동자들을 체제의 이익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자본주의의 본래적 모순은 더욱 은폐될 수도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이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의 생존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는 그람시의 지적은 미국주의적 문화적 비평으로 더욱 강화된다. 그람시는 유럽과 미국사회의 차이를 먼저 개인주의적 전통의 유무에서 구한다. 유럽사회에서 이해관계에 기초한 경제적 개인주의는 다양한 이해집단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 즉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성직자, 관료, 대지주, 대상인과 같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집단의 형성이 불가피한 반면, 미국에서 이해집단은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점이다.10) 다시 말해 구체제의 잔존물인 사회집단이 부재한 미국은 자본운동의 진행에 따라 사회적 재편이 그 만큼 더욱 용이할 수도 있다고 그람시는 평가한다. 즉 유럽과 비교하여 산업생산에 기초한 금융자본의 분배와 축적의 기제가 미국에서는 더욱 쉽게 적용되면서 미국적 실용주의의 전통이 형성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자본이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 중심으로 이행하면서 자본운동의 고도화는 진행된다. 금융자본주의의 단계에서 자본운동은 수와 양의 계산에 바탕을 둔 자본 합리성으로 현상적으로 드러난다. 게다가 이 단계에서 자본운동은 시장의 무계획성까지 조절 예측하려 한다는 점이다. 즉 자본주의가 경쟁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시장의 비예측적인 성향 역시 제어될 수 있다는 평가한 그람시는 당시 서구자본주의를 '계획된 경제'로의 진입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람시의 이런 평가는 당시 힐퍼딩(Hilferding)이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 자본운동이 중심이 이동하면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얼굴을 '조직된 자본주의'(Organisierter Kapitalismus)로 바꾼다는 주장과 동일한 맥락에 놓인다. 쉽게 말해 금융자본이 중심이 되면서 자본주의는 자본 합리성에 의해 운용될 수밖에 없다고 그람시는 본 것이다. 수요에 대한 예측에 기초한 대량생산방식의 등장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람시는 노동자가 개성을 상실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자의 운명이 테일러가 말했듯이 마치 '옷 입은 고릴라'와 같은 대량생산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그람시는 미국에서 본 것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런 비관적 전망과 더불어 그람시는 미국주의의 유럽적 적용은 자본주의 발전에서 또 다른 변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걱정과 염려를 한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 노동자 계급의 탈계급화 현상은 또 다시 굴절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람시는 평가한다. 즉 미국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적 세력인 대토지를 소유한 전통적인 지주계급과 대자본이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간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그람시는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통적 부르조아지와 신생 부르조아지간의 계급연합이 형성되면서 파시즘적인 국가조합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람시의 파시즘에 대한 해석은 정통 맑스주의적 해석과 달리한다. 즉 파시즘의 등장을 자본주의가 지닌 내재적 모순의 결과로 해석하는 정통적 해석과 달리 그람시는 자본과 전통적 지배세력이 야합하는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지배계급 내부의 타협은 자본주의의 체제위기를 극대화하려는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효과를 가지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가져온다. 그람시가 당시 코민테른의 지배적 견해와 달리 이태리에 등장하기 시작한 파시즘을 노동운동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파시즘의 도발에 대해 노동자 계급운동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과제보다 자유민주주의적인 체제의 유지가 당면의 과제라고 그람시는 강조한다. 전통적 지배계급과 신흥 지배세력이 연합하여 사회적으로 세력을 행사하는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자 계급운동은 우선 권위적 국가조합주의의 대응형태인 '사회적 조합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그람시는 본 것이다. 이런 '사회적 조합주의'의 건설이 노동자 계급운동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그람시는 전통적 맑스주의 내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어 오던 개량과 변혁이라는 이분법적 인식구조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자본주의적 발전은 노동자 계급에게 의도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개량이 아닌 변혁적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람시는 주목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 포드주의가 일반화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순환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생활방식은 '물질적 궁핍'(Knappheit: Marx)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노동자의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계급의식은 시민사회적인 규범과 질서의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즉 생산방식의 변화는 노동자 계급에게 바로 동전의 양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수동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소비에트 혁명과 같이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여 주체적으로 '능동혁명'을 이룩하는 것과 반대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변화에 순응 혹은 적응하면서 계급적 자의식을 상실한 노동자 대중이 형성될 가능성을 그람시가 가장 먼저 본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집단주의적 전통이 경제적 개인주의와 접목하면서 노동조합운동이 더 이상 확대 재생산되지 못하고 조직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현재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람시의 우려가 기우가 아닌 현실로 벌어질 수 있는 고민임을 알 수 있다.

그람시가 말하는 포드주의란 단순반복 노동에 길들여진 테일러적인 노동자들이 대중화하면서 기계적인 노동에 길들여진 무리로서의 노동자들이 새로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즉 노동력의 질과 조직이 평준화??균질화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집단성은 해체되면서 무리화되고, 이들의 존재양식은 자본운동에 종속되면서 노동자 계급내부의 직업구성은 더욱 분화, 전문화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후 노동조합운동의 점진적 무력화와 더불어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층의 해체가 사실로서 증명된 서구 사회발전에서 그람시의 예측은 현실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람시가 서구 사회발전을 '포드주의'라는 짧은 용어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상가로서 그람시의 면모를 숨김없이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비관적 예측만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방향성까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천가로서 그람시라는 또 다른 면모도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날 수 있다.  

정통 맑스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그람시는 현대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앞으로 더욱 연장될 수 있다고 전제면서 노동운동에게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람시는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포드주의가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사회적 조건으로서 탈계급화의 경향성을 가져온다면,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은 새로이 형성된 공간에서 자신의 활동력을 강화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즉 포드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고임금을 보장하면서 '강력한 내수시장'을 가져온다. 게다가 기업의 입장에서도 내수시장의 증대는 이윤확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반대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내수시장의 형성은 '비생산적인 부문에 종사하는 중간층'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시민사회에서 자기 발언권을 지닌 시민층이 형성되면서 자본주의가 지닌 내재적 모순 혹은 노자대립에 따른 필연적 '재앙'은 완충되는 효과가 생긴다. 즉 파시즘으로 대변되는 국가조합주의가 우연이 아닌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중간층의 지지를 누가, 어떻게 획득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권력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기존의 지배세력이 중간층의 획득을 얻는다면, 자본주의는 중장기적으로 생존이 연장될 수 있다. 즉 당시 코민테른의 공식적 입장과 달리 그람시는 미국적인 포드주의가 유럽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노동운동의 대응은 소비에트 혁명과 같은 '기동전'이 아닌 장기적인 '진지전'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노동운동이 지도적 혹은 지배 계급으로 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계급연합의 체계인 '역사적 블록'을 만들어 내는데 달려 있게 된다. 하지만 그람시는 이 계급연합을 무조건적으로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람시는 계급연합이 가능하려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와 시민적인 국가에 반대하는 대중적 동원역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1)

 

6. 결론: 그람시 다시보기

 

똘리아티는 1927년에 이미 그람시를 '노동자 계급의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똘리아티는 이태리 공산당기관지인 'Lo Stato operario'에서 그람시를 공개적으로 처음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당의 역사는 앞으로 계속해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누가 이 역사를 쓰던지 간에 특별한 정치적 사건을 뛰어 넘으면서 전위로서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형성을 가능케 한 위대한 노선을 성립한 공헌은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있다"(Togliatti, 1967). 똘리아티의 이런 평가와는 전혀 달리 그람시는 스스로를 남들에 비해 내세울 것 없는 3배 혹은 4배나 뒤떨어진 지방출신임을 스스럼없이 밝힌바 있다. 바로 이런 자신에 대한 평가는 체포된 이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에 나는 조용히 다시 내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즉 사람은 그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나의 도덕적 입장은 가장 훌륭하다고 본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나를 악마로 여기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나를 성자로 떠받들고 있지만 나는 순교자나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신념을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극히도 단순한 보통사람일 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타인이 내리는 극찬에 대해 그람시 자신이 내리는 자신의 평가는 지극히도 담담하면서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평가와 달리 그람시의 진면목은 1989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전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통인양 주장한 '기동전'의 비극적인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서구 사회과학계에서 그람시 다시보기가 이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게다가 동구권과 비교하여 서유럽 사회주의 운동이 지닌 특수성을 강조한 그람시의 사상적 편린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동구사회의 일반적 문제로 회자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원인 중에 이른바 시민사회의 부재가 이유로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시민권적인 권리마저 획득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앞장섰다는 역사적 역설마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보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법??제도적으로 훨씬 나은 노동조건을 보장받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배신한 이 행동들의 기원은 시민사회의 부재보다 다른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주요한 이유는 현실과 이론과의 괴리에서 발생한 간극이 체제의 위기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실을 설명 가능하게 하는 이론의 구성은 그람시만의 고민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거쳐 간 모든 이들의 고민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그람시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그람시 다시보기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이태리의 특수한 조건을 염두에 두면서도 매 시기마다 자신의 견해를 끊임없이 펼치는 그람시의 태도는 노동운동에 관심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태도일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일반적 의미조차 얻기 어려운 러시아적 모형을 반복 재생산하려는 일각의 시도가 무의미한 이유를 찾는 작업은 그람시 다시보기를 통해 쉽게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적 신념과 같은 믿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려는 행위로 발현된다는 그람시적인 해석이 의미를 가진다. 노동자 계급의 행위는 하루아침에 변혁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일상생활에서 사고와 행위가 그물처럼 촘촘히 이어지면서 서서히 변화한다는 그람시의 평가에 이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도 이제는 짧은 호흡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이런 평가와 기대는 우리 이전에 그람시가 이미 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Baratta, Giorgio, 1990, 「'Die Hegemonie geht aus der Fabrik hervor' Gramsci zu Amerikanismus und Sozialismus」, in 『Utopie und Zivilgesellschaft』, Uwe Hirschfeld/Werner Rugemer (Hg.), Berlin: Elefanten Press, pp. 157-178.

Gerratana, Valentino, 1975, 「Einleitung」, in 『Gefangnis Hefte I』, Klaus Bochmann(Hg.), Hamburg: Argument 1991, pp. 21-41.

Gerstenberg, Heide, 1969, 『Der revolutionare Konservatismus』, Berlin: Duncker & Humblot.

Gramsci, Antonio, 1917, 「Unser Marx」, in 『Antonio Gramsci - vergessener Humanist?』, Harald Neubert (Hg.), Berlin: Dietz Verl., pp. 36-40.

- , 1967, 『Philosophie der Praxis』, Hamburg: Argument.

- , 1975, 『Gefangnis Hefte』, K. Bochmann??W. F. Haug(Hg.), Hamburg: Argument.

Kebir, Sabine, 1991a,『Gramsci's Zivilgesellschaft』, Hamburg: VSA-Verlag.

- , 1991b,「Antonio Gramsci (1891-1937)」, in 『Klassiker des Sozialismus II』, Walter Euchner(Hg.), Munchen: C. H. Beck, pp. 209-222.

 

1) 인용의 편리를 위해 그람시의 옥중수고에 한해 앞으로 저자명이 아닌 책제목을 그대로 쓴다. 뒤에 나오는 수는 책의 권수를 의미한다. 특수문자인 §는 그람시의 옥중수고에 번호를 매기면서 생긴 표시인데 이것을 원문 그대로 인용한다. 

2) 그람시는 '실천의 철학'에서 "시민사회를 '사적'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조직체의 총체"라고 개념을 정의한다(Gramsci, 1967: 412). 공적인 지배도구인 국가와 달리 사적 영역이 개입된 규범과 질서는 시민사회의 발현물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아닌 바로 이 시민사회가 사회 유지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람시의 사상적 독자성은 인정된다.  

3) 2차 대전이후 이태리 공산당(PCI)를 이끈 팔미로 똘리아티(Palmiro Togliatti)역시 자르디니아 출신이었고, 똘리아티와 그람시는 같은 해에 자르디니아 지역의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였다(Kebir, 1991a). 두 사람의 이런 특수한 관계는 그람시 연구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4)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대학시절 스승인 언어학자 바르톨리(M. G, Bartoli)에게서 습득한 개념이다. 바르톨리는 프랑스 언어학자인 소쉬르(F. Saussure)의 영향을 받아 언어란 구체적 실체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한 언어의 발현능력은 문화와 기술적 문명화의 전파능력과 직접적으로 비례한다고 바르톨리는 주장하는데, 그람시는 이런 개념을 정치적인 개념으로 전환시켜 재해석한다(Kebir, 1991b).

5) 1917년에 일어난 소비에트혁명을 흔히 '2월 혁명' 이라는 고유명사로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 사용하던 달력으로 2월 27일에 일어난 혁명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일력으로는 3월 12일이 된다. '2월 혁명'이 아니라 '3월 혁명'이 맞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당시 러시아인들이 사용한 용어가 역사적 용어로 되었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6) '노동자평의회'운동은 노동자 계급이 작업장에서 권력을 장악하여 자본가 계급인 관리자가 아닌 생산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평의회운동'은 공장점거 투쟁을 선호한다. 이런 투쟁방식은 노동자 계급에 의한 군사적인 위협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러시아적인 모형인 볼셰비키 혁명방식이 다른 국가에서도 차용된 결과의 하나이다. 하지만 독일의 노동자평의회운동은 베를린 시에서 이루어진 시가지 바리게이트전을 마지막으로 지도부인 룩셈부르그와 립크네히트가 체포되어 압송되는 도중에 즉결처형 됨으로써 패배한다.    

7) 무솔리니는 사회당 정치인이었던 경력을 이용하여 좌파적 선전요소를 자신의 정치선전에 사용한 최초의 우파 정치인이다. 그는 당시에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사회주의적 이념을 우파의 언어로 재무장한다. 즉 그는 볼셰비키 혁명이후 유행어로 등장한 '혁명'을 '우파의 혁명'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런 우파 급진주의는 대중동원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모형을 창출하는데, 이것의 대표적 보기가 '로마로의 행진'이다(케비르, 1991b: 216). 하지만 파시즘이 발흥하던 시기 유럽의 정치지형에서 보면 무솔리니의 우파 급진주의를 이태리만의 특수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독일의 에른스트 융어(Ernst Junger)로 대표되는 파시즘 이론의 원조들이 '청년 보수주의'(Jungkonservativ), '보수혁명'(Konservative Revolution), '혁명적 보수주의'(Revolutionare Konservatismus)를 부르짖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Gerstenberg, 1969). 즉 1930년대 자본주의적 체제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를 정치적 국수주의로 봉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를 민족국가라는 정체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면서 각종의 '애국주의'가 대중화된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8) 그람시가 1929년 감옥에서 기획한 '옥중수고'는 똘리아티의 각별한 관심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알려지기 어려웠다. 즉 역사의 바다에 한 알의 모래알처럼 잊혀질 위기에 처했던 그람시의 사상은 똘리아티의 관심과 노력으로 전후 복원된다. 이 편지글들은 '옥중수고'라는 이름으로 1947년부터 출판되어 이후 전 31권으로 구성된 미완성 유고집으로 발간된다. 하지만 '옥중수고'의 편지글들은 형식이 가진 한계로 인하여 그람시 사상의 편린과 단편을 종합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짧은 글 모음집이라는 점에서 그람시 사상을 종합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된 편지글에 불과하였던 옥중수고를 똘리아티가 다른 동료 당원들과 1938년부터 출판 가능하도록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다(Gerratana, 1975: 37).    

9) 그람시의 문화개념은 문화산업에서 파생한 허위의식으로서 문화에 한정되지는 않고 막스 베버적인 전통 사회학적 해석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초점이 놓인다. 즉 그람시는 문화개념을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위적으로 산출되면서 조작되는 문화산업의 광기적 허구에 대한 비판으로서가 아니라 사회변혁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중적 의식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해부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혁명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방식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봉건적 혹은 파쇼적인 생활방식에 젖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성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탐문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그람시의 관심은 이해가 될 수 있다.

10) 그람시의 이런 지적을 노동조합운동에 적용해 보면 설명이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유럽사회에서 노조조직의 전통은 길드조직의 독점적 영업활동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인의 수를 제한한 길드조합의 독점적 지위 인정은 노동시장에 대한 인위적 규제 장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사회에서 초기 노조들의 조직대상은 전문 숙련공들이라는 점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즉 노조조직의 성격은 시장경제의 무제한적 경쟁에 대항하여 시장 내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면서 획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노조운동에서 바로 이런 전통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사회발전의 맥락적 차이에서 노동자 계급의식의 굴절 가능성도 유추가 될 수 있다.

11) 바로 이 전제조건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계급연합의 유의미성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한국 노동운동 진영에도 상당한 정도로 세력을 형성한 비판적 지지가 의미를 상실해가는 과정역시 '국민의 정부'가 보여준 일방적인 계급성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른 정권과의 무차별성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시민적 권리마저 제대로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판적 지지란 무의미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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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16:50 2004/09/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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