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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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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은 모두 세대담론에 관한 글로 짜여졌다.
한귀영의 '50대 보수화론의 오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6642.html, 이동걸의 '불길한 징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6641.html, 박가분의 '18대 대선과 세대담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6640.html.
충격적인 얘기는 이동걸의 글에 있지만, 거기까지다. 
 
"우리 사회는 40 이하 세대의 절대다수가 원하는 것을 50 이상 세대가 가볍게 꺾을 수 있는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번 대선 때는 20~40세대와 50 이상 세대의 인구 구성비가 60 대 40이었다. 그 비율이 2020년에는 52 대 48, 2030년에는 43 대 57, 2040년에는 37 대 63, 그리고 2060년에는 33 대 67로 변한다. 표의 세대간 불균형은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2030년 이후에는 50 이상 세대가 표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세 명 모두 분석의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박가분의 글에서만이 해결의 단초를 발견했다. 인터넷 상에서 벌어졌다는,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논란을 생산적으로 이끌려면 이 길밖에 없다. 50대 이상들이 복지, 사회적 연대망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그것이 수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떨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언젠간 우리들도 함께 해야 할 길이다.
 
"문제는 사회적 연대망의 부재다. 자본이라는 괴물과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보다는 그것에 올라탄 채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편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승부로 얻게 될 상처와 손실을 공유할 수 있는 연대망이 없다고 느끼며 나아가 그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신과 회의감은 젊은이들도 공유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오도된 세대대결 의식을 부추긴 세대담론과 이를 수용한 이들도 책임이 있다. 만일 선거에서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50~60대를 분명하게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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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00:13 2012/12/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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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결과 나오기 전에 대선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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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개표결과 나오기 전에 대선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1. 며칠 전부터 사실상 대선의 승패를 결정났다고 봤다. 비공식적으로 확인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이를 확인한 검찰에서 조용한 것이 그 반증이고... 문제는 표차인데, 난 100만표 내외로 봤는데, 동생은 100만표 이상이라 생각하더라. 이렇게 투표율이 높아진다면 150만표 차도 가능할 듯 싶다.

그렇게 헛발질을 하고 엉터리 선거운동을 했음에도 이기는 걸 보면 이걸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래도 민도가 있다고 해야할지...

새누리당은 오후들어 계속 사소한 여러 사안을 가지고 부정선거 운운하고 있다. 그쪽에서도 이대로 이기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이런 게 상대방의 사기만 올린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새누리당에는 선거 전략통도 없나 보다.

2. 노동자 후보의 득표는 어떻게 될까. 지난 4월 총선에서 녹색당+진보신당은 26만5576명이었는데, 통합진보당에서 넘어온 표가 조금 있겠고, 그간 투표를 하지 않았던 좌파 쪽에서 투표에 응한 게 있을 테지만, 녹색당 표 중에는 애매한 표를 뺀다면 사실상 김소연, 김순자 후보를 합쳐도 25만표가 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대선같은 중대선거 때는 표 쏠림 현상도 있고, 언론에서 워나 박빙이라고 해서 엄살을 떨어서 자신의 표가 뭔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떨어져나가는 걸 감안하면 10만표도 넘기 힘들다고 본다. 

물론 주위의 많은 이들이 표를 보탠 걸 알고 있지만, 그게 현실이다. 9살 조카가 옆에서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막판에 표심을 바꾸었지만, 10만표 미만 예측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길 빈다. 

3. 진보정의당에 속한 이들이 대부분 노동자후보보다는 정권교체에 중점을 두었고, 그렇게 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투표하겠다는 걸 자랑스레 공개하는 이들도 꽤 된다. 과연 이들과 함께 진보정당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게 타당할까.

내년에는 다시 노사정 대타협 얘기가 나올 것이고, 연정 수준은 아니더라도 뭔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올 거다. 그 때 진보정의당에 있는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하다. 물론 집권여당으로부터 약간 비판적 거리를 두려고 하겠지만, 그 또한 실리를 고려하겠지. 그들의 진정성을 믿고 기다릴 시기는 지났다.

4. 투표율은? 대구, 경북 쪽이 오후 들어 높다고 했지만, 수도권에서도 뒤늦게 투표율이 오르고 있다고... 사실 젊은이들은 휴일이면 당연히 12시 넘어 일어날 테고, 아마 3시가 넘어서 투표에 나서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5시 현재 투표율은 70.1%다. 최종은 77%가 조금 넘을 듯하다. 오늘 날씨가 추워서 투표율이 낮을 거라는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거다. 박빙일 때면 자신이 행사하는 한표가 의미있다는 생각에 투표하는 이들도 있고, 기업들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상당히 작용을 했을 거다.

내가 투표한 곳은 줄까지는 서지 않았지만, 지난 지방선거나 총선 때보다는 훨씬 열기가 느껴지더라. 관악구야 민주당의 표밭이니 투표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좋겠지. 

많은 연예인들이 투표 촉구 이벤트를 한다. 특히 이효리의 섹시화보를 찍겠다는 공약이 맘에 든다만, 80%는 힘들 듯하고, 그래도 투표율이 상당히 높아서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애매하고 투표율 가지고 뭔가 이벤트를 하겠다고 한 이들이 멘붕될 거다. 77% 넘는다면 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말춤은 보고 싶지 않다.

5. 이수호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권영길 경남도지사 후보는 어떻게 될까. 이수호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권영길 후보는 잘 모르겠다. 이수호 선본은 온갖 운동권들이 다 모여있는데, 승리하게 되면 이들과 절연하고 제대로 교육문제에 신경써야 할 거다. 

권영길 후보가 승리하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에 승리하더라도 경남 도정을 잘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그건 홍준표도 마찬가지겠지만, 권영길 후보가 당선되어 도정을 엉망으로 했을 때 저들에게 뭘 맡겨봤자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인상을 줄까 두렵다. 권영길 후보가 좌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역량도 되지 않는 좌파가 뭔가 책임질 위치에 있다가 말아먹는 건 보고 싶지 않다. 

6. 올해 대선만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때도 없었던 듯 싶다. 그렇다고 다른 의미 있는 걸 한 것도 아닌데... 한 것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연말 연시를 정말 열심히 보내는 수밖에 없다. 

7. 오늘 술자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 5군데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그래도 윤경 형하고 술마시는 게 젤 맘 편하다. 12시 전에 귀가하라는 어머니의 엄명이 귓가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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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9 16:05 2012/12/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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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동지를 떠나 보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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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세브란스 병원 영결식장에서 이재영 동지의 추도식을 마치고 장지까지는 가지 못하고 서교동 진보신당 중앙당사까지 함께 했다. 나는 그 때가 두 번째 가는 거였고, 이재영 동지에게는 이번이 처음일 터이다. 살아 생전엔 한 번도 들리지 못했는데, 영원히 떠나기 전에 이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리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당이건만, 너무 누추하고 왜소한 당사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게 되어 미안할 뿐이다. 아니, 이 당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다들 영결식에서 우리 모두 이재영이 될 테니 걱정말고 편안히 가시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김소연 노동자 후보와 함께 대선투쟁에 나서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의 유세에 참여하고 있다. 영결식에 새누리당을 제외한 무려 5당(진보신당, 진보정의당, 녹색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했지만, 대선에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재영 동지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는 것일까?
 
적어도 오늘 같은 날 그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면서 진보정당을 부활시키자고 했던 이가 광화문대첩이라고 불리는, 문재인 후보의 광화문 유세현장에 나와 "우리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하여 정권교체에 나서자"고 하는 꼴은 안 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 그들과 함께 하는 건 환상이었던 거다.
 
더욱 씁쓸했던 건 문재인 후보의 광화문 유세에서 사전행사 사회를 보던 이가 과거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대회 때 사회를 보았던, 귀에 익은 목소리를 가진 이였다는 사실이다. 뭐, 민주노동당의 대변인을 했던 이가 말을 갈아타서 보수정당의 대변인으로 나서는 판국에 그게 무슨 대수냐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재영 동지가 떠나는 날 진보정당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거다.
 
심재옥 동지가 페북에 올린 글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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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한 번도 들르지 못했던 서교동 중앙당사가 그가 이승에서 머문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눈길 한 번 휘익 훑으면 사무실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당이지만, 진보정치를 일궈왔던 그가 마지막으로 지켰던 당이고 기꺼이 함께 암흑 속으로 돌진할 각오가 되어 있는 동지들이 있는 당이다. 
 
하필이면 당 대표도 없는 이때, 후배가 권한대행으로 있는 이 당의 쓸쓸한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가져가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이재영 동지. 
걱정마시라.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꾸었던 꿈은 이제 우리 모두의 꿈이 되었으니, 당신의 삶을 빚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으니, 걱정말고 편히 쉬시라. 어차피 우리는 애초 시작부터 초라했고 눈물이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에 적당할만큼의 비극과 패기는 남지 않았나. 
잘 가시라 이재영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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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15:53 2012/12/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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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김소연을 지지하는가/심보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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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회학이 만나면 이렇게 되는구나. 나 또한 심보선 시인과 비슷하게 김소연 노동자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그 근거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20여년이 넘는 동안 이 친구의 일관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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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통적인 감각과 지성에 비추어 불평등과 부정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시대정신이 부재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의 별빛들은 잔존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더 밝고 강력한 외부의 빛에 의해 가려집니다. 우리는 이 엄연한 현실을 인정한 연후에야 비로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와락’ 센터에 방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들이 싸움을 하고 있는 장소인 송전탑은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피해 노동자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투쟁 중인 노동자와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재인 후보의 한계인 동시에 득표수로 선거에서 승리를 해야 하는 정당정치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노동, 정치, 삶이라는 프레임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본질적 차이는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 둘의 사소한 차이가 그리도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다치고 죽으면 안 되니까요.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한 ‘필사적 거부’로 문재인 후보가 썩 맘에 들지 않아도 그를 지지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노동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적 계약과 사회적 위계로 이루어진 체제에 이견을 제기하고 행동을 통해 그 체제를 변화시켜온 가장 중요한 주체입니다. 다른 대선 후보가 말할 수 없는 그 사실, 말하지 않는 그 사실을 김소연 후보는 당당히 발언하고 있기에 나는 김소연 후보를 지지합니다.
 
김소연 후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위기의 현장을 방문하여 그곳의 투쟁 주체들과 연대하고 행동합니다. 그렇게 김소연 후보는 선거유세와 직접행동의 경계를 지우고 넘나듭니다. 따라서 김소연 후보에게 선거란 정치인들이 표심을 공략하고 득표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 아닙니다.
 
김소연 후보에게 선거란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에게 닫혀 있던 정치의 장을 여는 싸움입니다. 배제된 자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공론장에 개입하는 정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김소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녀의 싸움, 그녀가 대선이라는 폐쇄적 게임 공간에서 꿋꿋이 열어 나가려 하는 정치를 지지한다는 뜻입니다.
 
앙드레 고르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자유롭게 스스로에게 부과한 목적들을 실현할 수 있는 데서, 우리가 실현하는 행위들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데서 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복관은 그간의 좌파적 사고, 즉 평등과 정의를 언제나 ‘시스템 통제’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간의 좌파적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와 민중이 시스템을 완전히 통제할 때까지 행복을 유예시킵니다. 정작 좌파의 기쁨은 저항의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자율성의 공간,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연대의 판을 짜는데서, 가장 빈번히, 그리고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분출되어 왔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봉쇄된 사회에 갇힌 불안한 개인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지역과 도시와 학교와 공장과 직장과 거리에서 스스로 목적을 부과하고 그것들을 함께 실현해나가는 장소와 관계와 행동전략들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시스템의 변화는 시스템 내부에 시스템 바깥의 활력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기능적 문제는 인간적 삶의 호흡과 흐름과 에너지에 조회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는 있어도) 극복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시스템의 개선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와 개인이 스스로 부과하는 삶의 목적, 그것을 실현하는 자유로운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김소연 후보는 민중적 삶, 노동자의 삶, 실은 김소연 후보가 스스로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내 살아내고 지켜내고 가꾸어온 그 삶에 대해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미래의 세계가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준비되고 작동되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 최병승, 천의봉,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홍종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삶에의 의지입니다. 죽음을 무릅쓴 삶에의 의지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삶 또한 매순간 고양됩니다. 그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한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소유와 운영이라는 말이 가득한 공약집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조직 운동으로서의 생존과 발전 전략에 대한 고민도 잠시 접어두십시오. 다만 선거투쟁 과정에서 사람들과 뜨겁게 만나고 대화하며 되새겨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잃어버린, 빼앗긴 삶은 어떤 삶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배자들의 손아귀에서 그 삶의 일부를 어떻게 다시 구해올 수 있었는지, 우리가 지난 투쟁들을 통해 그 삶에 어떤 종류의 새로운 삶을 더해 왔는지,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 곳곳에, 그 삶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심을 수 있을지,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라는 말을 다시금 말하고 들을 때, 어떻게 그 익숙하고 빤한 어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희와 감격을 심장의 박동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을지,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길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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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00:45 2012/12/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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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투명해진’ 선거, 좌파의 책임은?/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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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적인 조직화로 민주노동당에 20만 표 이상을 끌어주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상실된 상황에서 김소연, 김순자 두 후보가 사회당도 넘기 힘들었던 ‘5만 표의 벽’을 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그렇기에 설령 문재인 후보가 낙선한다 해도 그 책임을 ‘좌파 후보’들에게 묻기는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서글픈 현실.
 
암튼 한윤형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그래서 발췌하여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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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투명해진’ 선거, 좌파의 책임은?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 2012.12.10  17:30:27)
정치적 전망 제시 없으면 ‘네거티브’ 못 벗어나
 
민주당 정권이 이 이상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비상한 준비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단 사실은 지속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최저임금 문제, 비정규직/파견노동자 문제, 지나치게 많은 영세자영업자 문제, 대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의 현격한 차이를 조정하는 문제 등을 개혁정권이 해결하려면 경제 기득권 세력과 강단 있게 싸울 수 있는 투지와 굉장히 섬세한 정책 디자인 및 협상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 영역에서 민주당 정권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미지수란 지적은 합당하다.
 
비판의 논리를 “노동자에겐 차이가 없다”고 가져간다면, 명백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는 특정 산업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배제하는 논리가 된다. 진보담론은 노동자란 말이 공장노동자를 넘어 더 폭넓은 영역에서 사용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특정한 유형의 노동자를 보편으로 삼는 이러한 말버릇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노동운동이 무력화된 이유가 민주노총 등의 조직이 특정한 계층 안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러한 실패의 원인을 무분별하게 답습해서야 답이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담론지형의 변화를 보면 ‘노동의 정치’의 측면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전혀 차이를 보여주지 못할 거라는 예측은 가능하긴 해도 단정적이진 않다. 참여정부가 우경화를 주도했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 많이 좌클릭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노의 귀환이므로 무조건 비정규직에게 가혹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면 박정희 정권 때의 정책(?)을 추진할 거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개연성밖에 없다.  
 
선거는 정치적 욕망을 표출하고 수렴하는 장이면서 여러 종류의 전략이 교차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 경우 좌파후보가 ‘노동의 문제’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대안은 일종의 ‘장기투자’다. 당장 당선되어서 뭔가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없는 건 문재인이 아니라 김소연과 김순자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성을 지적하는 민주당 지지자 앞에서 좌파들은 “당장 우리가 집권하는 건 당신들 말대로 가능성이 없지 않느냐.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이고 의석이 생기고 정당이 확장되고 유력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서는 그 과정 속에서 문제가 더 근본적인 심급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단기간에 결과가 나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임시방편이다. 눈 질끈 감고 이쪽을 수십 년 밀어주면 당신 살아있는 동안엔 결과가 나온다”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노동자 후보’들이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선거라는 공간에 개입했을 때는, ‘노동자’들에 대해 ‘계급투표’라는 주체화를 주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정치세력을 주도하는 ‘주체’들 역시 연속성 있는 활동을 전개할 거라는 신뢰를 줘야 표를 요구할 염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의 좌파세력은, 아쉽게도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민으로부터 받은 지지를 다음 활동과 조직 재생산과 선거 준비의 자양반으로 삼을 수 있는 정치세력을 누구와 어떻게 만들겠다는 계획이 제출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뚜렷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김소연이나 김순자를 지지한다는 것의 의미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시민의 이념적 정체성이나 세계인식을 다잡는 역할로 국한되게 된다. 물론 두 후보가 이런 역할만을 한다 해서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선 그보다 더 폭넓게 ‘장기투자’를 하는 핵심지지층들과 ‘전략적 투표’를 하는 층을 포섭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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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09:39 2012/12/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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