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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활용을 줄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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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9731.html
[2030 잠금해제] 잠금과 해제 (한겨레, 김현진 에세이스트, 2012.02.19 19:00)
사람들이 에스엔에스로 얻는 즉각적 반응을 찬양할 때 나는 그 즉각적 반응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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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페이스북에 이장규 선배가 쓴 것처럼 김현진의 글에 공감이 된다. 트위터를 그만두지 않았지만, 이를 점차 줄이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내가 그 수많은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단 한 줄의 글에 그 사람에게 단숨에 호감을 갖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단 한 줄의 글에서 그 사람을 격렬하게 미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두렵다. 블로거인 나에 대해서도 소위 내 ‘이웃’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한 줄에 사랑하고 한 줄에 실망하면서, 스마트폰과 트위터라는 것들이 더 빨리 의견을 내놓기를 요구하면서, 사람들이 에스엔에스로 얻는 즉각적 반응을 찬양할 때 나는 그 즉각적 반응이 두렵다.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글에 대한 반응에 좋아할 때도 있었지만, 글 하나, 문장 하나에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게 탐탁치 않았다. 두렵기도 하고... 이 말 할 때는 떠받들다가 저 말 할 때는 욕을 하는 행태가 SNS 때문인지, 아니면 흐름이 그렇게 되어가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나 또한 그렇게 사람들을 판단해왔는데, 그게 싫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페북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140자로 한정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내 자신에 대한 검열을 덜하고 쓸 수 있어서 최근 활용빈도를 높이고 있다. 다만 검색이 되지 않는 게 불만이다. 검색이 되는 건 구뿔의 장점인데, 그 넘의 개인정보 통합관리 땜에 포기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활자중독이라 말한다. 어딜가나 책과 같은 볼 거리를 끼고 다니기에 그렇다. 그렇게 다니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건데, 사실 많이 보는 건 아니다. 만약 스마트폰을 사게 되면 내 행태가 변하게 될까. 뭘 하든지 차분하게 사색하고, 이를 정리해내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예전에 액트 온에 트위터에 대해 글을 썼을 때에도 그랬지만(트위터는 정치 소통의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는가?), 트위터의 장점으로 꼽히는 신속성과 전파력에 너무 집착하는 세태가 우려스럽다. 좀더 느긎하게, 폭넓은 시야에서, 소홀했거나 부족했던 부분을 챙기면서 가고 싶다. 그리고  다른 활자족들처럼 글도 잘 쓰고 싶은데, 나는 왜 항상 만연체의 재미없는 글만 쓰게 되는 걸까..

  

p.s. 1. 이 글을 페북에다 쓰려다 블로그로 가져왔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블로그를 비워왔구나.

2. 여태까지 잠금해제라는 말이 왜 최근들어 빈번하게 사용되는지 몰랐는데, 그랬었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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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09:30 2012/02/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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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에 대한 한윤형의 서평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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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정영태 교수의 <파벌>에 대한 서평인지 몰랐다. 한윤형이 서평에서 지적한 것에 동의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한윤형이 언급한 것 중에서 추가로 얘기할 거리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민주노동당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왜 분당했는가?"를 묻기 전에 "왜 함께 시작했는가?"를 묻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언급에 동의한다. 이 부분은 민주노동당 등 제도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비판하는 왼쪽 활동가들의 일관된 문제제기였기도 하다. 자주파, 아니 처음에 정당을 함께 했던 그들중의 일부가 정당에 대해 생각을 바꾼 줄로 착각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다. 뒤이어 민주노동당에 합류한 자주파들에 대해 통제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고... "당장 서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처지에서 통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조건이 서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을 크게 키웠다는 저자의 핵심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보는 한윤형의 지적은 맞다. 좀더 냉철했어야 했다.
 
한편 그러한 점이 분당을 결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과도한 내부정치가 내부동력을 갉아먹었던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있을 때 활동의 절반은 자주파로부터 당을 지켜내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 만큼 대외적인 정치활동은 약할 수밖에 없었고..
 
2. 우리는 자주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정영태 교수도, 한윤형도 자주파를 상당히 특이한 집단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그 내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평등파들도 자주파를 하나의 묶음으로 보지 않았다. 사실 <파벌>이 민주노동당당의 다양한 의견그룹들, 특히 자주파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 분석해놓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민주노동당의 내부흐름을 분석한 박사학위논문(갑자기 저자의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같은 지역위 당원이었는데)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못한 게 그런 내부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3. 분당했던 게 종북주의만은 아니었다. 조직, 교육, 당 활동 면에서 민주노동당을 혁신할 수 없었기에 분당했던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떨어져나온 진보신당 또한 종북주의만 취하지 않았지 민주노동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게 내가 진보신당을 탈당한 이유였고...
 
정영태 교수나 한윤형도 이러한 점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정당이라면 단지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 뿐만 아니라 당의 활동과 조직체계, 교육 등에서 보수정당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한 전형을 창출하는 건 여전히 한국 진보정치의 과제이다.
 
4. "한국 사회의 좌파는, 자주파와 함께 가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고, 자주파와 함께 가면 자신의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싫어할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는 것," 이것은 진보정당뿐 아니라 노동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주파가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 집행부로 인해 현장이 갈수록 맛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특히 한윤형이 지적한 것처럼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에 덧씌운 '친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경쟁력 있는 진보세력"이 등장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유감이다. "만일 진보신당 등이 고사한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과 함께 친북을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지경"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사회당원인 박정근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 사회당마저 친북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이는 자주파와 함께 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5. 나 또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결의한 시점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자체가 문제라고 파악했다. 사실 분당할 때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 세력의 참여 여부가 문제되었던 건 과도했다. 마찬가지로 현장을 설득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겠지만, 좌파진영은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자체를 문제시해야 했고, 새로운 좌파정당의 흐름을 창출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지금 민주노총이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하면서 사실상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어도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흐름을 창출하해내지 못하는 것도 그 후과일 터이다.
 
이 점에서 진보신당 내의 독자파가 좀더 비제도권의 좌파세력과의 공동행동을 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진보신당 자체가 좌파로 여겨지지 못하고 리모델링 대상조차 되지 못한 건 진보신당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6. 조직 노동운동은 제외하고라도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에 신경써야 하는 건 진보정당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사실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은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과도 함께 사업해야 할 실리가 너무나 많다. 이를 부인하기도 어렵다. 정동영, 김진애, 최영희, 천정배 등의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활용하는 게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활용하는 것보다 여론환기에도 더 유리하고 현장활동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그리고 지역활동과 관련한 중심이동도 요구된다. 그곳이 바로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7. 엊그제 관악구의 참여예산제 실시와 관련한 예비예산학교라 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가 관악구(을) 선거구에 출마하기로 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열성적으로 홍보하고 후원회원을 조직하려는 통합진보당 당원을 만났다. 나에게도 후원를 권하길래 나는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기에 할 수없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후원회 용지에 싸인을 한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뒷풀이 자리에서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일 때의 얘기들을 했지만, 조금은 씁쓸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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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함께 친북"? 진보의 딜레마, 직시하라! (프레시안, 한윤형 자유기고가, 2012-02-17 오후 6:52:46)
[이렇게 읽었다] 정영태의 <파벌>, 진보 정당에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한 달에 2만원이라도 내면서 '진보 정당 운동'이란 것의 대오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책을 펼치기는 한없이 어려웠고, 막상 책을 펼치자 펼쳐지는 기억의 파노라마와 치미는 분노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덮을 수가 없었다.
<파벌>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였던 사람에게 기분이 좋을만한 책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서술이 평등파에게 우호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좋았는데, 이 책이 당시의 사건들을 자주파의 관점에서도 한 번 바라보게 하는 반성적인 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파벌>은 이념과 노선이 철저하게 달랐던 두 파벌이 어찌해서 당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는지 문제부터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주파나 평등파나 서로 분리되어 말라죽어 가고 있었던 1990년대 진보 운동의 암울한 상황이 드러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왜 분당했는가?"를 묻기 전에 "왜 함께 시작했는가?"를 묻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등파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집단주의를 굉장히 원칙적으로 싫어해요. (…) 정확히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54쪽)
"위계서열, 연공서열, 선배 앞에서 후배는 말을 안 받는다거나 담배를 안 피운다거나 술도 돌아서 마신다거나 이런 게 굉장히 많거든요.(…) 평등파에서 자주파를 바라보는 눈은 (…) 쟤들은 무슨 우두머리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얘들이 공부는 안하고 (…)"(54쪽)
 
평등파는 이런 문제들을 대개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 평등파가 만든 그 많은 제도들은 나중에 자주파가 평등파를 권력 분점에서 배제하는데 쏠쏠하게 써먹게 된다. 저자는 분당의 원인을 아예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이념·노선과 조직 문화가 다르고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과거의 대립·경쟁 경험과 그 결과로서 상호 불신과 고정관념이 강하다. 셋째, 당직·공직후보 선출과 당론 결정을 위해 채택한 다수결 제도가 파벌 간의 경쟁과 대립을 조장했다."(252쪽)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제도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파벌 간의 타협과정에서 더욱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어 분당이 확정된 2008년 2월3일의 그 당 대회날, 나는 자주파들이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에 그토록 완강히 반대하는 것을 보고 '저들은 분당이 전혀 두렵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주파는 오히려 2008년 총선 비례대표 순번은 모두 양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들에게도 분당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는 했던 것이다.
 
다만 평등파에겐 너무나 상식적이고 1차적인 요구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되는 어떤 '원칙'이었던 것이다. 한 자주파 당원의 입을 빌리자면, "동지가 부인하면 믿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다"(276쪽)인 것이다. 오히려 평등파는 비례대표 순번을 전부 차지하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을 것이고 '1인 다표제'를 '1인 1표제'로 바꾸는 제도개혁 같은 것에 생각이 미쳤을 텐데 말이다. 2월3일 당 대회는 이미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은 다음이었지만, 상이한 문화를 고려하지 못한 타협의 실패의 사례는 이 정당의 역사에 무궁무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파벌>은 민주노동당의 정파 갈등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그중 첫 번째 시기엔 갈등이 잘 통제되었지만 두 번째 시기부터 그것이 격화되어 분당으로 갔다고 설명한다. "역사적인 원내 진출을 달성하기 까지는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해 원만하게 해결됐다"(251쪽)는 서술이 그 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첫 번째 시기의 갈등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로 갈등의 양상이 격렬하게 바뀔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초기의 갈등 상황을 살펴보면 평등파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당기위가 나서 당적 규율로 문제를 일으킨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주파는, 저자도 인정하듯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291쪽)했다. 가령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진행된 용산 지구당 사태에서, 자주파의 일부 세력은 처음에 당원이 지구당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제도의 맹점을 활용하여 주소지 변경만으로 지구당을 접수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실거주지와 직장 근처의 지구당만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는데, 그러자 그들은 실제로 용산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까지 원하는 바를 관철하고자 했다. 당내 선거 과정에선 세력을 불리기 위해 당비 대납 등을 서슴지 않았고, 회계 문제 부정을 고발하는 요구가 나와도 '동지'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이런 문제들을 당 규율로 처벌하지 않고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하여 봉합하려고만 한 것이 이 시기 문제의 핵심이었고, 갈등의 에너지가 쌓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만일 이런 사안들에 대해 당 규율을 제대로 적용했다면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고칠 수 있었을까? 나도 그렇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자주파 역시 평등파와 공존하기 위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었을 거다. 차후 갈등의 양상이나 분당의 시기 및 양상도 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내가 <파벌>의 중심적인 논지에 동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연구서이며, 그 연구의 주제가 "정파 갈등이 어떻게 분당이란 파멸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특징적인 사건들로,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자주파가 매번 당의 '북한 핵실험 반대' 입장 표명에 결사반대해 입장 표명 자체를 좌절시킨 것과,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기조 입장으로 관철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을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반핵 강령을 분명히 하는 정당"(167쪽)임에도, "자주파에게 북한은 미국(과 하위 파트너인 남한 정부)보다 더 신뢰하고 지지해야 할(주사파의 경우 추종해야 할) 대상이고, 북한의 자위에 필요하다면 당론인 비핵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167쪽)이기에 당내에서 '자위적 핵'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거나 북한 핵을 반대하는 입장 표명을 좌절시켰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 밖에서는 진보·개혁 성향의 종교인, 지식인, 법조인,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자 171명이 북한의 핵보유에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고, 희망사회당 등 다른 진보적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을 의심하는 내용의 논평을 냈으며"(180쪽) <한겨레>는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응을 비판했다.
 
코리아 연방은 또 어떤가. 자주파는 이를 권영길 후보의 국가 비전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평등파 정파인 전진이 주장한 바, "대선 후보가 제시하는 국가 비전은 당의 부문별 공약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부문별 공약과 논리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207쪽)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용대의 발언을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코리아 연방은 단순히 통일 정책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말고는 그 어느 당도 낼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국가 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 비정규직, 한미FTA로 민중의 생존이 벼랑에서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민중이 잘사는 나라,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라가 코리아 연방이다."(202쪽)
"대한민국 역사상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국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올해가 사실상 최초이다. 그만큼 코리아 연방 건설은 낯설고 새로운 슬로건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2000년에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을 때 사람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존재였던 것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당 4년 만에 일반의 예상을 깨고 민주노동당은 원내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코리아 연방은 향후 몇 년이 지나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5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204쪽)
 
이러한 인식에서 드러나는 상호간의 차이는 단지 견해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등파에게, 자주파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정치의 현장에서 '결코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주파는 그런 현실 판단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파의 세계관이란 다소 자의적인 데가 있어서, 자신들이 열심히 선전하고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고 그러면 대중들이 감동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엔 무슨 말이든 통용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정당의 세가 약할 때엔 다소 정체성을 숨기다가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그 정체성을 다소 황망한 방식으로 드러냈는데, 이런 경우엔 정당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심각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수파인 자주파가 '민주주의=다수결'이라는 협소한 민주주의관으로 다수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소수파에 대한 존중이라는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296쪽)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는 문제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당이 내부 파벌에게 비슷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평등파는 자주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은 바가 없다. 이를테면 평등파는 국가보안법이 자주파 활동가를 잡아 가두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북주의'라는 비난이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수준의 반민주주의적 책동인 것은 아니다. 정당은 비슷한 이념을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이들이 모여 있는 결사체이며, 활동 과정에서 개인이 당을 떠날 수도 있고, 당이 개인을 쫓아낼 수도 있으며, 상이한 이념을 가진 집단이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다. 정당이 당 규율에 의거 당원을 출당시키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저자는 명백히 다른 두 문제를 뭉뚱그리면서 평등파에게 다소 부당한 비판을 한다.
 
그러나 저자의 비판이 부당하다는 것은 평등파의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평등파가 '종북주의'라는 비난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다시 한 번 "왜 평등파는 스스로도 '종북주의자'임을 인지한 이들과 함께 당을 해야만 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인터뷰를 보면,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물어 들은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운동을 했던 사이이기 때문에", "대중정치를 하다 보면 변할 거라고 생각해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당장 서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처지에서 통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조건이 서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을 크게 키웠다는 저자의 핵심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담긴 양자택일의 함의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자주파와 함께 당을 하기로 결의하고 출항한 통합진보당과, 평등파 주요 정치인들까지 장기적출 당하듯 적출당하고 고사 직전에 내몰린 진보신당의 처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좌파는, 자주파와 함께 가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고, 자주파와 함께 가면 자신의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싫어할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당 초기, 한 2000년, 2002년 정도까지는 장군님 사진 놓고 인사하고 그런 것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거를 어린 조직원들이 한 게 아니라 지금 굉장히 많이 알려진 리더급들까지 그걸 하죠. 그리고 그걸 안 한다 그래 가지고 때린다거나 이런 사건도 벌어졌었죠. 그런데 그게 당에 오고 나서는 숨기거나 흐지부지되죠. 그리고 간첩 사건도 나고 그러면서. 그런데 어쨌거나 그 조직들은 그러한 논리에 의해서 훈련받고 교육받은 사람인데 그거를 부정을 하면 그 조직이 무너집니다. (…) 왜 한참 인기 좋을 때 무슨 핵무기 좋다는 발언이 나오거나,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가지고 나갔으면 조금 표라도 더 얻어야 되는데 갑자기 고려연방제가 나오거나, 그런 거라고 하는 거는 세계관이 그렇게 형성돼서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대한민국의 대중정치, 진보 정당의 논리하고 안 맞고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278~279쪽)
 
나는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결의한 시점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의 '신자유주의적 노선'이란 것은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당 외부에서 생존하기로 선택한 이상 민주당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보여야 하고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노동 문제는 좋은 핑계거리다. 실제로 유시민의 경우 통합 이전 인터뷰들에서 노동 문제에 대해 거의 민주노동당 입장과 차이가 없는 전향적인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또한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강령 및 정책을 봐도 노동 문제의 경우 진보신당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진보성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의 경험은 자주파가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 세력의 지지율 극대화'라는 이기적인 원칙을 도외시하면서까지 (혹은 그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오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남북한 평화체제가 수월하게 수립된다면 자주파가 진보 정당의 외연 확장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가 그러한 장밋빛 전망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역시 향후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최근 통합진보당 내에서 불거진 몇몇 상황들이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은 진보 정당 운동의 참여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서민들이기도 할 것이다. 서민들은,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에 덧씌운 '친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경쟁력 있는 진보세력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훌륭한 노동 정책을 보건대, 만일 진보신당 등이 고사한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과 함께 친북을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는 그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을 업고 성장한 이 정당이, 민주노총이 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라는 협소한 계층에 갇혀 버린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고 함께 갇혀 버렸다는 데에 있다. 통합진보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사회당이든 계속해서 진보 정당 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 운동의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둘러싼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등의 다툼을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성찰 따위는 몇몇 이론가들의 텍스트에서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통합진보당원, 진보신당원, 사회당원, 기타 진보 정당 운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파벌>을 정독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벌>은 내가 인용하면서 비판한 일부 구절을 보면 '분당'을 죄악시하는 것 같지만 전체 내용을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파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다.
"과거에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겪은 조직들이 통합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원인과 후유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처('트라우마')를 치유한 뒤 통합 조건을 협의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없으면 통합 후 조그마한 갈등도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당장 조직을 살리고 세를 확장해야 한다는 강박감이나 여론의 압박 때문에 이 과정을 건너뛸 경우 다시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299쪽)
 
우리는 <파벌>이 던진 문제제기와 함께, 그에 덧붙여 (구)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정당 운동의 존립 근거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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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8 23:05 2012/02/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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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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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찾기 2004/09/26 03:46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의 하나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꿈이라는 것이 살아가는데 필요하다면, 이 꿈을 찾으려는 노력은 평생 계속되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특히 사회에 나와 피곤한 일상 속에서 어릴 적부터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꿈들을 잃고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수가 많다. 그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항상 함께 살아 숨쉬면서 삶에 활력을 줄 수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꿈찾기, 이 노래는 서울지역대학노래패협의회(서대노협)를 모태로 하여 탄생한 노래모임 [서울하늘]의 3집 음반에 처음 수록되었으며, 1997년 서대노협 창작곡 발표회때 처음으로 발표된 곡이다. 인하대 중앙노래패 출정(88년도 전남대에서 있었던 통일노래한마당에 이 출정이라는 노래패가 인천대표로 참여했던 것이 기억난다) 94학번 학생이 작사/작곡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그 가사가 상당히 서정적이고 소위 '운동권틱'하지 않은 곡 분위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몰아가고 있다. 

 

원래 서울하늘의 곡은 상당히 경쾌하게 편곡되어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각종 마임을 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이렇게 편곡된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꽤 있다. 주로 대학생들이다.

   

 

 

서울하늘 3 - 꿈찾기

하지만 나의 경우 해웃음의 버전이 훨씬 더 편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1993년 전교조 서울지부 교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노래모임 해웃음(해맑은 웃음을 위하여의 약칭이다)( http://www.haewosum.com/ )은 청소년들과 함께 숨쉬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인지 희망과 미래를 노래하는 곡들을 자신들의 음반에 많이 올려놓고 있다. 

 

해웃음의 1집 음반은 '어릴 때 내꿈은'이나 '저 하늘위로', '가보고 싶어', '학교가는 길' 등 약간은 비장함이 서러있고, 교육현장의 문제를 짚어내는 노래들을 실었다고 한다면, '꿈찾기'가 실린 2집 음반 <학교에 가자>는 교육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노래로 꾸몄다. 1집에 실린 곡을 새롭게 편곡하여 다시 실은 '어릴 때 내꿈은2'나 '희망을 위하여', 새로운 시작을 향해', '고래' 등은 학생이 아니더라도 다 들어볼만한 노래들이다. 특히 여성 보컬의 독창과 기타반주만으로 잔잔하고 차분하게 편곡된 마지막 트랙의 '꿈찾기'는 전국 교육대학 노래패들의 애창곡이 되고 있으며, 교사들도 좋아해서 자기반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주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노래 가사를 다 외우지 못했는데, 자꾸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지 않을까. 음반으로 말고 공연이나 라이브로 이 노래를 듣고 싶다. 해웃음 버전으로... 

 

 

 

해웃음 2집, <학교에 가자> - 꿈찾기

 

희미하게 지워져갔지
지난날들의 꿈, 나의 어릴적
기억 속에 묻혀 사라진 내어린 꿈들
그 소중했던 꿈 찾아 이 길을 떠나가자

하나 둘씩 잊혀져 갔지
어린시절의 꿈, 작고 키 작은
기억 속에 묻혀 사라진 내 어린 꿈들
그 소중했던 꿈 찾아 이 길을 떠나가자

 

* 어쩌면 그 꿈들도 기억 저편 어디선가
날 찾아 길을 떠나겠지 그 조그맣던 나를
하지만 찾을 수 있어 그 작고 소중한 꿈
언제나 내 기억 속에서 살며시 숨쉬고 있어

꿈을 찾아 떠나는 설레임 속에
휘파람을 불며 떠나가보자
그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시 만나는 날에 굳게 손잡고
다른 꿈들 함께 찾아가야지
그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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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16:49 2012/01/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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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서울 시정운영계획에 나타난 희망숫자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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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사람’ 키워드로 한 시정운영마스터플랜 발표 (서울시 보도자료, 2012. 1. 9)
- 2014년 목표로 한「시민과 함께 만든 희망서울 시정운영계획」9일 발표
- 두 달 간 74회 민간자문회의 내용 녹이고 시민 현장 목소리 최우선 반영
- 복지, 경제, 시민주권 등 5대 목표 설정, 15개 분야 285개 사업으로 뒷받침
- 개발 중심의 시설투자 → 시정의 최고 가치를 ‘시민’으로..꿈과 희망 보장
  ① 시민 누구나 적정수준의 복지를 권리로 당당하게 누리는 서울
  ② 모두를 배려하고 포용하며 동반성장하는 함께 잘 사는 서울
  ③ 창조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문화 활력을 높여가는 서울
  ④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고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이 바로선 서울
  ⑤ 시민의 참여와 의견을 반영하고 시민이 주인 되는 서울
- 2014년까지 3년간 시정운영계획 투자사업비로 25조 3천억원 투입
 
----------------------------------- 
서울시가 2014년 목표로 한「시민과 함께 만든 희망서울 시정운영계획」을 발표했다. 25조원을 투입한 복지서울의 청사진이다. 핵심키워드는 당연히 복지이고, 이를 위해 전국 최초로 '시민복지기준선'을 마련하여 시민 누구나 복지를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복지, 경제, 문화, 도시 지속가능성, 시민주권의 5대 목표이고, 15개 분야의 285개 사업이다. 이를 보고난 느낌은? 실망이다.
 
1. 이건 청사진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분야별 전문가 74명이 모인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에서 60여일 간 74회의 민간자문회의를 거치고, SNS 등 시민의견조사, 청책워크숍, 공무원 `희망스케치단' 등의 의견을 반영해 확정되었다는 시정운영계획은 너무 내용이 빈약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한마디로 박원순 시장이 시장후보로 나서면서 제출되었어야 할 공약 수준의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이러한 시정운영계획이 마련되었다지만, 준비된 시장이라면 이미 후보시절에 이 정도가 마련되었어야 하고, 지금 발표하는 것은 이를 구체화하는 한편, 남은 임기 동안 이 중에서 무엇을 핵심적인 사업으로 가져갈 것인지가 주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몇 개의 키워드만 보일 뿐 뚜렷이 와닿지 않는다.
 
2. 서울시의 보도자료에는 대신 맨 마지막에 참고자료로 0에서부터 7조원까지 시민이 누리게 될 희망숫자가 제시되어 있다. MB정부가 정권 인수위 시절에 제시했던 747 공약과 유사한, 희망숫자놀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문제가 되기 때문일 터이다.
 
3. 15개 분야의 사업들을 보면 기존에 후보 시절 발표했던 것을 구체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공공투자관리센터 설립이나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 등은 하겠다는 언급만 있을 뿐 더이상 진전된 게 없다. 어차피 지방재정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형식화된 제도와는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는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이게 빠져 있는 것이다.
 
4. 사람이 우선하는 편리한 서울교통이라... 나와 있는 내용은 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느끼는 불만과 요구를 해소하는 방안으로는 부족하다. 이명박 시장이 밀어부쳤던 지랄염병(GRYB)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같은 획기적인 방안은 빠져 있다. 명시적인 토건사업은 나열되어 있지 않지만, 공공서울을 위해 도시철도 9호선과 경전철 민자사업 철회와 같은 민자사업에 대한 재검토에서부터 버스 공영제의 단계적 추진, 교통카드 공영화, 지하철 통합운영, 혼잡통행료 부과 등의 교통수요관리 강화, 지하철과 버스의 대중교통수단간 지간선체계 재정립 등 이미 어느 정도 상이 나와 있는 대안들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된 교통계획으로 볼 수 있을까. 
 
5. 복지에 대한 사업들은 정말 화려하다. 정말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도 든다. 근데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아마 전문가들께서 많은 고민을 했을 테고, 밖으로 공개되어 있진 않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로드맵과 실행방안 또한 마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밀어부치다 좌절되면? 기득권세력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나중에 변명하는 꼴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실행방안에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 덧붙여 비수급 빈곤층을 ‘서울형 수급자’로 지정해 최저생계를 보장하겠다는 언급 속에서 오세훈 시정 하에서의 '서울형 어린이집'이 떠오른다면 오바겠지?
 
6. 가장 우려가 되는 건 노동,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지 올해 안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적정 노동조건 보장 등을 위한 기본방안을 마련하고, 2014년까지 취약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해 노동복지센터를 자치구별 1개소 운영하는 등의 방안이  일자리 창출 속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와 무슨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을 배제한 채 사람 중심의 서울이 가능한가? 특히 민간부문은 차치하고라도 공공부문에서라도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다행히 내 기대수준이 낮았기 망정이지...하지만 서울시와의 노정협의에 많은 기대를 했던 노동계 쪽에선 반발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럴 줄 몰랐나.
 
게다가 공공운수노조와 관련된 연구소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선, 서울시 공공부문과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겠다는 마스터플랜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눈에 뜨인다. 물론 있기는 하지만, 모두 복지 속에 포함되어 있지, 사부문과 구별되는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는 측면에 배치되어 있지는 않다.
 
이렇게 언급하고 나니 내가 너무 삐딱하게 보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든다만,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 나도 서울시민이니까 이 정도는 말할 자격이 있다. 아니, 서울시민이 아니라도 '아닌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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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22:04 2012/01/0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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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 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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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달호 열사의 9주기입니다. 예전엔 1월이 되면 기일을 떠올리곤 했는데, 트윗에 관련글이 올라온 걸 보고 알았습니다. 많이 무뎌진 모양입니다.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http://www.youtube.com/watch?v=ubS-TnScvIs
꽃다지 - 호각
 
언젠가 EBS 스페이스 - 공감이라는 프로에 꽃다지가 나와서 부른 노래 중에 '호각'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2003년 한 노동자의 죽음을 소재한 노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꽃다지가 두산중공업에 가서 배달호 열사의 영전을 뵙고 착잡한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조성일 님이 곡을 썼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곡 소개는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가 쓴 '[문화] 노래로 보는 세상 - 꽃다지의 ‘호각’'이라는 글을 참조하시면 될 겁니다.
 
2011년 꽃다지 콘서트 '노래의꿈' 실황을 담은 위의 동영상에서는 곡을 차분하게 부르는데, 원래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습니다. 그래도 그게 바로 열사의 마음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동영상으로 보았던 배달호 열사의 호각 부는 모습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곤 다시는 열사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고, 그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도 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그 죽음이 노무현 정권은 물론 이명박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현대자동차에서 한 '정규직 귀족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합니다. 생명이 위독하다 했는데...
 
아래에는 예전 네이버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을 다시 담아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배달호 열사 추모사도 있습니다.
 
제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고 하는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배달호 열사와 같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돌아가셨던 수많은 열사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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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열사를 떠올리며... 2005/01/07 10:37

 

내일 모레는 두산중공업의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분신자결한 배달호 열사의 2주기입니다. 이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와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 주최로 오늘 오후 12시30분에 창원 두산중공업 내 노동자광장에서 추모제가 열리고, 9일에는 양산 솥발산에 있는 열사 묘소를 참배한다고 합니다. 배달호 열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손배가압류 문제와 호루라기입니다. 열사는 생전에 동지들의 노조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호루라기를 자주 불었습니다. 그래서 꽃다지도 배달호 열사 추모곡을 호각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꽃다지 - 호각 (조성일 글/가락)

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있네
오십 평생 일해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번도 놓치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다시 한 번 부르네 새벽 어둠을 너머
 
숨막히는 작업장 아무 대답도 없네
싸움은 지쳐가고 분노마저 사라져
무너진 현장 위로 조여 오는 칼날뿐
닫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검게 물든 깃발은 내가슴을 흔드네
천둥같던 그대의 호각 소리 들리네
세상은 그대론데 주저할게 무언가
그대 호각을 이제 내가 입에 물고서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반복)

   

15-6년 전에도 무슨 열사들이 그리 많은지 한숨을 내쉬었는데, 여전히 거의 매달 열사들의 추모일이 있고, 그 때마다 열사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배달호 열사의 추모일이 지나면 또 얼마 안있어 박종철 열사의 추모일이 다가오네요. 앞으로는 달력에 표시된 이런 날들이 그냥 과거의 것으로, 저런 때도 있었어 하면서 옛날을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우리 앞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추모기간 행사중의 하나로 1월 12일에는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강연회가 있다고 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알게 된 것도 그의 배달호 열사 추모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래 김진숙 지도위원의 2003년 1월 25일 창원에서 있었던 배달호 동지 추모집회의 추모사(고 배달호 열사 분신대책위에서 퍼왔던 글입니다)와 돌아가신 지 두달만에 치러진 열사의 장례식에서 낭독되었던 <배달호 열사 추도사>을 올립니다. 둘다 읽을수록 눈물이 나는 글들입니다. 이런 추도사가 여전히 가슴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2년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이런 추도사를 다시는 떠올리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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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5일 배달호 동지 추모집회(창원) 추모사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 진숙

나이 50이 넘으면 새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기보단 뿌려놓은 것들을 거둬들여야 하는게 훨씬 자연스러울 나이입니다.
그 나이쯤 되면 주머니 속 불룩한 지갑엔 황금빛 카드가 너댓장 꽂혀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주눅들만한 장짜리 명함도 서너장쯤 구색갖춰 꽂아놓고 술자리에선 그들과의 인연을 힘주어 역설하며 '글마 내가 키웠다 아이가' 호기를 부려야 술맛도 나는 그런 나이입니다.
명절이면 하다못해 무슨무슨 과장이나 무슨무슨 이사장 명함 꽂힌 굴비두름에 갈비짝이 가슴께 까지는 쌓여야 명절기분도 날법한 그런 나이입니다.
몸이 재산이라며 가시오가피에 홍삼에 옥돌침대에 철따라 체질따라 끔찍히 지몸 챙기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런 나이입니다.

별로 특별하지 않아도 입이 딱벌어지게 잘나가지 않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산다는데 남들은 그러고 산다는데 그걸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바둥거려도 그게 안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속에선 카드 대신 유인물이 나오던 사람.
나이 50이 넘어 허구헌날 호루라기를 불고 다니던 사람.
 
아빠를 잃고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그렇게 이 모진 세상 남겨질 가족들에게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도 애비라는 이름으로도 수도꼭지 고쳐놓는 거 밖엔 남겨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웠을 마지막 휴가를 보내며 마누라와 함께 저녁을 먹는 걸로 그동안의 고마움과 평생의 죄스러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수도꼭지 틀 때 마다 물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질 가족들 생각을 그라고 왜 안했겠습니까?
막내딸 끌어안고 "못난 아빠 용서해라" 그게 마지막인줄 알았다면 '아빠, 괜찮아 난 그래도 우리 아빠가 최고야' 천만번이라도 더했을 그 한마디를 평생안고 살아야 할 막내딸의 한을 그라고 왜 헤아리지 못했겠습니까?
구속된 동지들 면회 가서는 어떤 신신당부보다 더 절박한 통곡을 목 메이게 쏟아놓고 돌아섰던 그 눈물의 의미를 이제사 헤아리며 가슴을 치는 동지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을 그라고 왜 짐작치 못했겠습니까?
 
살기 위해서 호루라기를 불었던 사람.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10년이나 기꺼이 대의원을 맡았던 사람.
정말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어떤 타협도 할 수 없었던 사람.
그날 새벽 걸었다가는 끊고 걸었다가는 끊고 끝내 마지막 숨소리만 흘러나오던 전화.
당신과 함께 새카맣게 타버린 그 전화기를 통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셨습니까?
  
이 땅에 50년을 살았던 당신에게, 50년을 뼈빠지게 상머슴으로 살았던 늙은 노동자에게 전과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당신이 떠난 1주일 후에도 법정에선 배 달호 피고인을 불렀다던 이 기가 막힌 나라에 무슨말을 더 남기고 싶더이까?
청년이었던 시절부터 그 날까지 큰 딸이 장성한 세월 20년을 고스란히 바쳤던, 소금꽃 흐드러지게 피고지는 소금꽃나무 당신을, 징계자 가압류자로 내몰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가 천국에 어떤 말을 더하고 싶더이까?
50년을 살고도 영정에 쓸 사진 한 장 변변히 남길 수 없었던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무슨 할말이 더 있더이까?

유서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하셨습니까?
평생 노동으로 내려앉은 삭신에 신나를 붓고 다리가 오그라붙고 손가락이 타들어가고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숨통을 막아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고통뿐이었으면서도 뭐가 그리 미안합디까?
당신을 그렇게 죽인 자들은 문상 한번 안오는데 뭐가 그리도 미안합디까?
가압류가 생존권을 포기하라는 사형선고임을 뻔히 알면서도 변변한 투쟁 한번 못했던 자들에게 도대체 뭐가 그토록 미안합디까?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다음엔 또 누구 차례입니까?
도대체 우린 언제까지 만장을 앞세워야 합니까?
한진중공업에서 30년을 일했던 노동자가 명퇴로 짤리고 모가지가 짤렸는데도 30년 오래된 습관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몸과 마음을 깨우는데 그 시간에 일어나 갈 데가 없는 게 새삼 또 서럽더라는 강씨 아저씬 보일러공장 하청 노동자가 됐다는데 언놈이 아직도 개혁을 말합니까?
파업 한번에 전과자에 징계에 가압류에 그야말로 합법적인 패가망신이 보장되는 5%의 왕국에서 누가 여전히 복지사회를 떠듭니까?

두산중공업 악랄하다지만 부산에 가면 한진중공업이 그렇고, 서울에 가면 재능교사노조, 건설운송노조, 한국 시그네틱스 노조가 그렇고, 목포에 가면 목포카톨릭병원 노조가 그렇고, 광주에 가면 동광주병원 노조가 그렇고, 울산에 가면 효성 노조가 그렇고, 태광 노조가 그렇고, 제주에 가면 한라병원 노조가 그렇고, 발전노조, 철도노조, 장은증권 노조 대우자판 노조가 그렇는데, 누가 또다시 변화를 얘기합니까?

배 달호 동지, 배 달호 열사여!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 새카맣게 오그라붙은 몸뚱아리론 너무 힘겨울 구비구비 구천길이 아득하거들랑 언제나처럼 호루라기 불며 앞장서시구려.
동지의 넋이 함성이 될 산자들의 투쟁속에 자본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해방 깃발 휘날리며 당당히 앞장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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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좋은글모임
글번호 : 23    
올린이 : 노동위    
등록일 : 2003년 03월 19일 09:54:50    
기  타 : 조회수(263),  

<배달호 열사 추도사>
                                         -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

죽은 듯 서있던 나뭇가지 끝이 색깔이 변했다 싶었는데, 좁쌀만한 새순들이 종주먹을 쥐고 막 일어서는 참이었습니다.
그 작은 것들마저 살겠다고 일어서는게 봄일텐데, 그 봄에게마저 화가나던 날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피었던건지 동백이 지는데, 붉은 꽃송이 모가지가 툭툭 끊어져 떨어지는데, 그 무심한 낙화마저 속상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늦은 밤 막차안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내하나 고개를 떨군채 졸고있고, 종점이 다가오는데 그게 또 서러운 날이 있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그 아이들이 나란히 새겨진 추모버튼 옆에, '배달호를 살려내라' 검은 깃을 달다말고, 그런거나 주렁주렁 달다말고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게 됐는데, 어쩌자고 하늘은 저리도 맑은건지 그 푸르름마저 절망이던 날이 있었습니다.

무심하던 일상의 한 가운데서 밥을 먹다가도, 테레비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버스에 흔들리다가도, 문득 한숨처럼 걸려 넘어지던 이름 하나, 그를 아십니까?
호루라기 하나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그를 아십니까?
다들 세상이 변했다는데, 너나없이 변화된 세상을 말하는데, 60년대를 살다가 전태일처럼 죽어간, 그를 아십니까?
 
18년을, 자기집 문지방을 넘나들던 시간보다 더 오랜시간 허덕거리며 드나들었을 공장 길목에, 감사비도 아니고 기념비도 아닌, 그을린 자국하나 흔적으로 남겨진, 그를 아십니까?
50평생 단 한번도 푸른색으로 바뀌지 않던,이 멋드러진 21세기에도 붉은 빛만 껌뻑거리던 신호등 앞에서, 붉게 검붉게 타오르던, 그를 아십니까?
 
병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고, 견딜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죽음앞에, "왜"가 아니라 "오죽 했으면"이 먼저 가슴을 치던, 그를 아십니까?
더는 밟힐 수가 없어, 도대체가 더는 당할 것도 없어, 마지막 일어서는 일이, 몸부림치며 일어서는 일이, 일어서 외마디 소리 친다는 일이, 제 몸뚱아리, 말라 비틀어진 몸뚱아리 장작개비 삼는 일밖엔 없었던, 그를 아십니까?

50년 그 긴긴 세월 그 몸뚱아리 하나로 살았으면서도, 기름기 흐르게 먹여본 적도, 늘어지게 쉬게 한 적도, 한번도 잘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 몸뚱아리를 그예 횃불로 밝혔던, 그를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입어보는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지지리도 못난 사내, 그를 아십니까?
그 마지막 호사마저 분에 넘쳐, 새까맣게 오그라붙어, 타다만 비닐처럼 오그라붙어, 그 마저도 64일을 꽁꽁얼어, 변변히 갖춰입지도 못한 채 먼 길을 떠나는, 그를 아십니까?
50평생을 밟히고 채이고 내몰리기만 하다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는, 그를 아십니까?

다 태우고 마지막 한점까지 다 내주고 이제 그가 갑니다.
수십년 살 부비고 살았던 마누라에게 조차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가 갑니다. 살아서는 지구를 수 천 바퀴를 돈다해도 이 세상 어디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가 갑니다.
징계, 가압류, 전과자의 굴레를 이렇게 밖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이 모진땅을 그가 떠나 갑니다.
권미경의 곁으로 조수원의 곁으로 신용길의 곁으로 양봉수의 곁으로 서영호의 곁으로 최대림의 곁으로 박창수의 곁으로 또 한사람이 갑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
새끼들만 아니라면 수백번도 더 따라나서고 싶었을 그 길목 어디쯤을 날마다 서성이며 남겨질 사람.
가장이 버텨준 세상도 그렇게 버거웠는데, 수많은 날들을 홀로 휘청거리며 버텨야 할 사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제 목놓아 울 수도 없을 황 길영 동지.
7평이라던가, 9평이라던가 그 좁아터진 집구석이 당장 오늘부턴 휑뎅그레 넓어져, 앉았던 자리도 누웠던 자리도 빈 자리만 눈에 가득하고, 코 고는 소리도 술주정 소리도, 술냄새 발꼬랑내 마저 아득한 그리움이 되고 회한이 될 황 길영 동지가 남겨졌습니다.
투사도 아니었고 간부도 아니었고, 그냥 남편의 뜻이 뭔지를 알기에 이 지난한 투쟁의 한 가운데서, 견딜수 없는 슬픔의 바다에서 외롭고 처절한 사투를 벌여온 황 길영 동지가 이제 아빠의 몫까지, 아들의 몫까지 홀로 짊어져야 하는 가장으로 남겨집니다.

대구지하철 청소 용역 아줌마들이,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손에 쥐고 죽었다던, 껌떼는 칼을 들고 있는 황 길영 동지의 모습을,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어느 백화점 계단 쯤에서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을 일한 회사에서 용역으로 내몰렸던 어느 식당 아줌마들처럼, 노동조합앞에 천막을 치고 막막한 눈길로 앉아있는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저임금법이 뭔지도 모른 채 38만원 주면 38만원 받고 40만원 주면 40만원 받다가, "철의 노동자" 를 "사랑은 아무나 하나" 처럼 부르는 아지매들 틈에 섞여있는 그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업이니까 9시 까지 출근해도 된다는 집행부의 지침을 한달 째 어기며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수십년 습관을 못 버리는 어느 병원 청소 용역 아줌마들처럼, 새벽 댓바람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거들랑 잠깐 차세워 잘 지내시냐고 안부라도 물어주시구려. 태워 주시면 더할나위 없구요.

그리고 두 딸내미 선혜, 인혜.
그 아이들만한 보석을 준다 해도 안 바꾸었을 새끼들.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눈에 밟히고, 가슴에 밟혀 가다가도 골백번을 되돌아보고 또 돌아볼 그 아이들.
백번의 열사보다 단 하나의 아빠가 아직은 더 절실할 아이들.
  
이 땅 여성노동자 70% 이상의 삶이 그렇듯 머잖아 비정규직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그 아이들을, 백화점에서든 마트에서든 보게 되거든, 화끈거려 제대로 내딛지도 못하는 발바닥 먼저 헤아려 주시구려.
엄마땜에 앓는 소리 한번, 힘들다는 투정 한번 부리지 못할 아이들의 어깨라도 한번 따뜻하게 두드려 주시구려.

마지막 결단의 순간까지 끝내 놓지 못했을, 어쩌면 맨 앞에 놓고 싶었을 마지막 한마디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 주기 바란다"

그 유언은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아마도 그렇게 남아 떠돌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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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2:30 2012/01/0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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