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국가기록 폐기에 앞장서는 국가기록원

View Comments

얼마 전 국가기록원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을 영구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별 걸 다 보존하려 하는구만 싶었는데, 이번엔 정 반대로 국가기록물을 손쉽게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여기에는 국가기록위원회의 반대의견이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을 요청한 기관 중 의회, 대법원을 비롯한 70여 곳에서 반대의견을 표명했는데도, 이 또한 묵살하고 국가기록물 폐기를 손쉽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상식 파괴다. 국가기록을 쉽게 파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이 되려고 하면 이에 가장 앞장서서 제지해야 할 곳이 국가기록원이라고 생각하는 상식 말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정부기관의 역할도 이렇게 상식과는 다르게 변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바꿔야 하고, 상식 파괴가 자연스러운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많이 심하다.
 
하긴 국가기록원은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이고, 원장은 행정관료 가운데 임명되고 있는 만큼 이번 '국가기록물 폐기를 쉽게 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 추진은 분명 그 윗선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 터이다.
 
다들 잊고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자살도 이 기록과 관련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 20여일 전에 검찰은 대통령 기록물의 유출사건과 관련하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것 또한 조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나중에 후환이 될 수 있는 기록물들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이번 국가기록원의 행태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국가기록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경향신문이 많이 주목하면서 챙기고 있다는 것과 과거 노무현 정권 하에서 전자정부를 주장했던 행정학자들, 그리고 대통령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이들이 기록물 관리 보존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고, 이에 관한 한 깡패나 다름 없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행정학의 세계는 참 오묘하도다. 이 절묘한 중립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참고: http://cafe.daum.net/jinbopa/5Bz1/4

 

-----------------------------
‘국가기록물 폐기 쉽게’ 추진 논란 (경향, 정영선 기자, 2010-07-16 02:35:39)
ㆍ행안부 ‘심의 생략 가능’ 입법예고
ㆍ위원회 반대 의견도 묵살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국가기록물을 손쉽게 폐기할 수 있는 법 개정안을 15일 입법예고하자 학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관련 위원회의 반대 의견을 묵살한 법 개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행안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보존기간이 1년 또는 3년인 기록물의 평가 및 폐기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 생략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록물 폐기 때 거치도록 한 평가 심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기록물 폐기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3월 국무총리실 소속 국가기록관리위원회를 소집, 해당 안건을 심의했으나 반대 8명·찬성 6명으로 개정안이 부결된 바 있다. 하지만 “위원회의 결정은 기속력이 없다”며 국가기록원은 개정안 추진을 강행했고 지난달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던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열지 않았다. 지난 5~14일 각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내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직후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국가기록위원회 민간위원인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는 “정부의 전자문서 비율이 98%에 이르는데 공무원이 삭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서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결된 사안에 대해 기속력이 없다고 하면 위원회는 왜 열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문서 대부분의 보존기간이 1년 또는 3년이므로 사실상 문서 전반을 손쉽게 폐기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감사원이나 검찰은 무슨 근거로 공공기관을 감사·수사하고 언론과 시민단체는 어떻게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1999년 제정된 공공기록물관리법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참여정부 때인 2007년 현재와 같이 전면 개정됐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모든 기록물에 대해 심의회를 거쳐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행정 비효율이 너무 심하다는 일선 기관의 의견에 따라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역주행하는 공공기록물 관리정책 (서울, 이재연기자, 2010-07-16  11면)
보존기간 1·3년 문서 심의없이 폐기 가능
 
정부가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오히려 기록물 폐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행정규제 간소화 절차라고 하지만 정부 임의대로 문서 보존·폐기를 하게 되면 책임행정이 저해된다는 지적이 높다. 국가기록원은 15일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보존기간 1·3년인 기록물 폐기절차를 간소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해 공직진입 문호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존기간 1·3년인 문서에 대해선 공공문서 폐기시 필수적인 기록물평가심의회의의 심의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록물전문요원도 지금까진 기록관리 전공 석사급 이상만 가능했지만 앞으로 문헌정보, 사학, 보존과학,기록관리학 학사 출신으로 관련 경력 1년 이상, 외부교육 1년 이상을 충족하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자격요건도 낮췄다.
 
현재 정부기록물은 중요도에 따라 보존기간이 1·3·5·10·30년·준영구·영구 등 7단계로 나뉜다. 모든 기록물을 폐기할 땐 ▲생산부서 의견 조회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 심사 ▲기록물평가심의회의(외부 전문가 2명 포함) 심의 등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중 보존기간 1·3년짜리 문서에 대해 세번째 단계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기록원 산하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앞서 3월 내부 심의에서 입법예고된 두 사안을 ‘기록물관리 제도정착 이전으로 역행하는 발상’이라며 부결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14명의 위원 중 9명의 민간위원들은 “보존연한 1·3년 기록물 중에서도 10% 정도 폐기유예 기록물이 나오고 기록요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개정안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기록물 폐기 간소화는 이미 2월 총리실의 행정내부규제 4차 개선과제로 확정된데다 국가기록관리위는 자문심의기구로 기속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전 국가기록관리위 출신의 한 인사는 “보존기한이 지나도 더 남겨둬야 할 기록물들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입맛대로 문서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국가기록물 폐기 쉽게’ 법령 개정 밀어붙이는 행안부 (경향, 정영선 기자, 2010-07-20 03:06:08)
ㆍ국회·대법·정부부처 등 70곳 반대 ‘묵살’
 
행정안전부가 국가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경향신문 7월16일자 10면 보도)하면서 국회와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광역자치단체는 시·군이 낸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찬성 입장을 전한 사실도 드러났다. 
 
19일 행안부 등에 따르면 국회와 대법원, 국토해양부·법무부·농수산식품부·환경부 등 6개 정부부처, 서울·부산·인천 등 7개 광역자치단체 등 70여개 공공기관이 지난 14일 행안부 국가기록원의 법령 개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의견을 통보했다. 행안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열흘간 법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주요 행정기관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는 국가기록원에 보낸 검토의견서를 통해 “절차 생략을 통한 심의 과정의 간소화는 중요 기록물의 폐기를 발생시킬 우려가 높으므로 현행대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특허청은 “(법령에 정해진) 보존기한 1년 또는 3년의 심의 대상 특허청 문서 9만2590여건 중 5만3350여건이 폐기대상이 아님에도 처리부서에서 폐기 건으로 요청했다”면서 “이 기록물의 심의를 제외해 개정안 취지대로 폐기 업무의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는 효과는 극미하며,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은 14일 오후 일선 공공기관의 의견조회를 마감한 지 하루 만인 15일 오전 관보를 통해 법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강행했다. 국가 주요 기관들이 반대했지만 부처 의견조회는 사실상 요식행위로 치부한 셈이다.
 
국가기록원뿐 아니라 일부 광역자치단체도 반대의견을 자체적으로 무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기도는 가평·여주·부천·화성·광명·동두천·김포·구리·시흥·평택·의왕 등 11개 기초자치단체가 12~14일 법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올려보냈으나 이를 누락하고, 14일 경기도청의 입장인 ‘찬성’ 의견만을 국가기록원에 보냈다.
 
경기도는 15일 “반대의사를 나타낸 자치단체의 이름이 빠졌다”는 한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 후 해당 기초단체의 의견을 첨부한 공문을 16일 국가기록원에 다시 보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14일 오후 늦게까지 의견을 보내지 않은 기초단체가 많아 국가기록원과 협의해 14일에 본청 의견만 보내고 16일에 기초단체 의견을 보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은 “14일과 16일 공문을 두 번 받은 건 맞지만 사전에 협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인 8월4일까지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적으로 국무회의에서 결정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
[기자메모]‘기록’ 폐기 앞장, 국가기록원의 ‘표변’ (경향, 정영선 사회부 기자, 2010-07-20 18:23:02)
 
2008년 7월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남긴 자료를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명백한 불법이니 유출된 기록물을 되가져 오겠단 것이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청와대 비서진 10명도 검찰에 고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며 항의했지만 국가기록원은 국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우리는 본분을 다할 뿐”이라고 맞섰다.
 
2010년 7월 국가기록원은 내부 규제 개혁의 일환이라며 국가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골자는 보존기한이 1년 또는 3년인 기록물을 폐기할 때 심의위원회를 생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이 지난 15일 이 같은 내용을 관보에 게재하자 공무원들조차 의아해했다.
 
국가기록을 쉽게 파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막아야 할 주체가 국가기록원이 되어야 하는 게 상식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2년 전 그토록 악착같이 ‘기록’을 챙겼던 국가기록원이 이제는 ‘기록’을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는 모습에 학계와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 주요 부처와 입법·사법부까지 아연해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각종 문서를 인멸한 정황을 포착했다. 그런데 총리실을 포함한 행정기관에서 생산되는 문서의 대부분은 보존기한이 1년 혹은 3년이다. 이번 법령 개정이 이뤄지면 폐기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다음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도 국가기록원은 법령 개정이 잘못됐다는 비판에 여전히 “의견 수렴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
 
[사회]나의 기록을 적에게 넘기지 말라 (2009 05/26 위클리경향 826호, 정원식 기자)
대통령기록물 둘러싼 신·구정권 갈등… 입법 취지 손상 정치 보복 활용 위험성
 
휴대용 PDA ‘블랙베리’ 마니아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백악관 입성과 동시에 무선 이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이 장치를 빼앗길 뻔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유출 시 발생할 수 있는 보안상 문제다. 다른 하나는 1978년 제정된 미국의 대통령기록물법 규정과 관련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재임 중 대통령이 사용하는 이메일은 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 재산에 해당하는 ‘대통령기록물’로 간주돼 퇴임 이후 NARA(국립문서기록관리청)로 넘어가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당선자는 백악관 입성과 동시에 이전에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 대신 백악관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 결국 몇 가지 보완 조치를 거쳐 오바마 대통령에게 블랙베리 사용이 허용됐지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메일 사용까지 철저하게 관리할 만큼 대통령기록물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료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록문화 발전 근간 흔들어
지난해 한국에서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싸고 신구 정권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2008년 6월 12일 청와대가 ‘200만 건이 넘는 자료가 복사돼 봉하마을로 유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대통령기록물 유출’ 공방은 정쟁으로 비화하면서 결국 국가기록원이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과 비서관 10명을 불법 유출에 관여한 혐의로 고발하는 데까지 번졌다.
 
사건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지난 5월4일 서울중앙지검 최재경 3차장검사는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기록물 유출사건과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국가기록원에 대한 방문조사 이후 기소 여부와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검찰이 이 사건 처리에 속도를 낼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기록관리 전문가들은 사건이 신구 정권 사이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우리나라 기록 문화 발전의 근간을 흔들어놓았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이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아직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대통령기록 수집 및 관리 제도에 치명상을 입히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할 여지를 축소해버린 탓이다. 지난해 사건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쟁점들과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이 점이 또렷해진다.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만들어진 기록을 봉하마을로 가져가면서 시작됐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대통령기록 원본을 불법 유출했다’는 혐의를 걸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열람 편의 제공 조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본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맞섰다. ‘불법’이라는 공격에 대해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받아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청와대 주장처럼 ‘원본’인가. 일단 기록학계에서는 전자기록물에 대해서는 ‘원본’이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전자기록 전문가인 이소연 덕성여대 교수는 “청와대가 ‘원본’이라고 주장한 것은 전자기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종이 기록이라면 ‘원본’은 하나뿐이지만 디지털 복제가 가능한 전자기록에서는 유일본으로서 ‘원본’이라는 건 없고 여러 개 사본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진본’ 사본이 있을 뿐”이라면서 “종이 편지는 한 장뿐이지만 이메일은 여러 명이 동일한 편지를 수신할 수 있다. 이 경우 어느 것을 원본이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자기록의 경우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할 때 인증 서식을 붙인 것만 진본으로 본다.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인증 서식이 달려 있지 않은 사본”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기록물의 외부 유출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건 맞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4조는 대통령기록물법 제14조는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 손상 은닉 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한다. 사본에 대해서도 유출을 금지하는지에 대해 별도 규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사본이라 하더라도 유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기록관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조영삼 한신대 교수는 “복제본이라 하더라도 가져간 행위 자체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 유출 법으로 금지
그러나 “국가기록원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접속하는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아 잠정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를 가져왔다”는 봉하마을 측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8조는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열람하려는 경우에는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이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급한 이관 일정에 쫓겨 열람의 범위와 방식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영삼 교수는 “열람 편의 제공과 관련해서 기록관리비서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리팀이 서로 협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열람 편의를 제공할 것인지 토론을 많이 했다”면서 “‘온라인 열람’이라는 표현을 넣으려다가 너무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활용의 탄력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열람 편의’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록을 은밀하게 빼돌렸다’고 한 청와대 주장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이미 기록을 복사해갈 뜻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록관리 전문가는 “노 전 대통령은 주말에도 엔지니어를 불러 토론할 정도로 전자관리 시스템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면서 “당시 행자부에 온라인 열람권을 계속 요구했으나 결국 행자부가 시행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려 개인적으로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 유출 공방과 관련하여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사건이 정쟁으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 취지가 손상됐다는 점이다. 대통령기록물에는 국가의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개와 관련한 엄격한 규제 장치가 없을 경우 차기 정권의 정치 보복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이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민감한 정보에 대해서는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해 최장 30년 동안 공개하지 않는 ‘대통령지정기록제도’를 도입했다. 대통령이 정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재임 중 생산한 기록을 국가기록원에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지난해 지정기록물 두 차례 유출
기록학계는 이런 관점에서 지난해 검찰 조사와 쌀직불금 조사가 현 정부와 후임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신호를 던졌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에 대해 관할 고등법원의 영장 제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 대통령 기록관장 사전 승인 등으로 열람 및 자료 제출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지정기록물은 검찰 조사 당시 법원영장에 의해 한 차례, 국회의 참여정부 시절 쌀 직불금 관련 회의록 및 보고서를 제출 요구 시 또 한 차례, 모두 두 차례 외부에 노출됐다. 조영삼 교수는 “기록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기록 보호가 알권리에 우선한다. 기록이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으면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라면서 “대통령기록물법의 취지가 망가졌다. 기록관리 전문가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소연 교수는 “이 공방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기록을 남기면 혼난다는 것”이라면서 “정권의 부침에 관계 없이 어떤 힘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 기관을 만드는 것이 대통령기록물법의 본체를 살리는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으로, 국가기록원장은 행정관료 가운데 임명된다. 청와대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주무기관인 대통령기록관이나 국가기록원을 제치고 대통령기록물 유출 공방을 주도한 청와대는 기록물 생산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대통령기록물법 제10조는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장은 대통령기록물의 원활한 수집 및 이관을 위하여 매년 대통령기록물의 생산현황을 소관 기록관의 장에게 통보하고, 소관 기록관의 장은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각급 기관은 매년 3월 31일까지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실로 기록을 통보하고 비서관실은 다시 5월 31일까지 대통령기록관으로 통보하게 돼 있다. 정확한 비교는 올해 6월 이후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록관리 전문가들은 지난해 대통령기록물 유출 공방이 현 정부의 대통령기록물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인사는 “최근 대통령기록관 인사에서 기록물 관리에 대한 소신을 갖고 있었던 15명이 전보 조치됐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제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잘 모르겠다”면서 “전자 시스템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현 정부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행정 행위가 기록을 남기지 않는 쪽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닌지 주목해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홈피' 목록 정보공개 요구에 국가기록원 "540만원 내라" (세계일보, 이태영 기자, 2009.07.30 (목) 03:31)
시민단체 "공개자료 엑셀전환 지나친 수수료" 반발
 
29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 16일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있는 ‘비공개 기록물 재분류 공개 목록’을 엑셀파일 형태로 보내 달라고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문제는 홈페이지에 공개된 목록이 기간별·생산기관별 등 항목으로 나뉘어 있어 전체 목록을 한눈에 살펴보기 어렵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기에도 불편하다는 점이다. 이에 센터 측은 엑셀파일로 정리된 목록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정보공개 수수료 540만6700원을 입금하면 보내주겠다”는 회신과 함께 “기록물 활용이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기록원 스스로가 국민에게 공개하기로 한 자료인 데다가 검색이 어려워 엑셀파일로 달라고 했을 뿐인데 540만원을 받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록에 대해 저작권법 운운하는 것도 해외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목록을 엑셀파일로 만들었더니 27만장으로, 수수료 규정에 따라 540만원이 나왔다”며 “요금이 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민원인 입장에서 처리하고 싶지만 법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해명했다.
 
---------------------------------
[논평] 기록관리제도의 퇴행은 민주주의 후퇴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2010/01/28 16:03)
비공개분류절차 축소 국정운영의 폐쇄성을 강화시킬 뿐
 
정부 전체의 기록관리를 책임져야 할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이 기록관리제도를 흔들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은 기록관리절차를 현실화한다며 기록물 폐기 및 비공개기록물의 공개재분류 등 기록관리 절차를 축소하고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하향조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것이 오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정부기록에 대한 비공개 및 비밀주의가 여전한 상황에서 기록물 폐기 절차의 축소와 전문요원자격요건의 하향은 국가 기록관리제도 전반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의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행 기록물관리법은 공공기관에서 기록이 생산되면 업무를 담당한 사람에 의해 공개/비공개를 분류하도록 하되 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시점에 재분류하고 기록물관리기관에서는 5년마다 공개 여부를 재분류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의 기록관리 선진화 과제에 따르면 기록물의 정리‧이관 시 기관내부에서 수회에 걸쳐 공개여부를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업무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생산자가 생산한 기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공개/비공개를 분류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생산자가 본인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 비공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또한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비공개할 목적이 상실되기도 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따라 기록을 재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행 기록물관리법이 기록을 이관한 후 5년마다 재분류 하도록 한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오히려 국민의 국정참여를 위해서는 관심이 크고 최근의 기록일수록 더 자주 재분류해야할 필요도 있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인 기록관리 절차의 축소는 기록 은폐의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폐쇄성을 강화시킬 뿐이다.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 완화 논의도 우려스럽다.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국가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고 방치되거나 폐기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의 일환이다. 기록물의 생산과 보존, 분류와 재분류, 공개 등에 대한 업무는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판단에 기초하여 기록관리에 대한 전문성과 실무훈련을 받은 관련분야 석사 이상의 전문인력을 배치하기로 한 것이 기록관리 전문요원제도이다. 전문요원의 자격완화는 쉽게 말해 기록관리와 관련된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라도 일정기간 교육을 받으면 기록관리전문요원으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몇몇 기관에 2005년부터 훈련된 전문요원들이 공공기관에 배치되면서 조금씩 기록관리 체계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전문요원의 요건 완화는 인력채용과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다시 행정직들이 기록관리를 담당하던 과거로 퇴행하겠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공공기관에서 기록을 꼼꼼히 생산하고 관리하고 보존하는 한편 시민에게 그 기록을 공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공직을 수행한 공직자 자신의 과오를 남기고 공개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지는 행정과 투명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업무이다. 단지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기록물 폐기 절차를 축소하고 전문인력 채용이 어렵다고 전문인력의 자격기준을 완화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의 후퇴, 나아가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올 기록관리제도 전반의 퇴행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

[사회]정부 기록 빨리 없애는 게 상책? (2010 07/27ㅣ위클리경향 885호,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ㆍ기록물관리 폐기규정 완화 추진… 60여개 정부기관서도 반대 의견
 
공무원들이 직무를 행한 결과를 남기는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 뒤에도 해당 정권을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자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매우 충격적인 시행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기록물관리법)을 개정해 ‘보존기간 1년에서 3년 이하 기록물 평가 및 폐기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생략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은 대부분 보존기간 1년에서 3년 이하 기록이 차지하고 있다.
 
현행 법안에서는 모든 기록을 생산해 폐기할 때에는 보존기간 1년부터 30년까지 해당하는 모든 기록에 대해 외부 심사관이 참가하는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개최해 평가받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존기간 3년짜리 기록을 3년이 지났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거쳐 다시 한 번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제도를 둔 이유는 기록물 보존 기간은 생산할 때 기준이지 폐기 시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할 때는 중요 기록이 아니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폐기 시에 매우 중요한 기록으로 변할 수도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경찰서로 보낸 공문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기록물평가심의회에서는 보통 폐기 대상 기록 가운데 약 10%의 기록에 대해 보존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기록물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는 지방자치단체 사무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록관리 분야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것으로 ‘기록물 보존기간 미설정’ ‘기록물 보존기간 하향 설정’이라고 지적하고 시정이 요구된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기록을 오래 남기면 귀찮은 일만 발생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공공기관에는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기간을 5년 이상 으로 설정해야 하는 기록을 1~3년으로 하향 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에서 법안 개정을 한다면 보존기간을 하향 조정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그 기록들은 어떤 평가도 없이 폐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결과 중요한 문제가 터질 때 기록에 의한 사무 감사 및 검찰 수사도 불가능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이 두려워서 기록을 이처럼 쉽게 폐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개정법안에서는 ‘학력 제한 철폐’라는 미명 아래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 사관 역할을 하고 있는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기록관리학을 전공한 석사 학위 이상 학력자’에서 ‘기록관리학, 역사학, 문헌정보학, 보존과학을 전공한 학사 학위 이상 학력자 가운데 1년 이상 기록관리 경력이 있고, 1년 이상 교육을 받은 자’면 기록 전문요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을 잘 보면 학력 제한 철폐가 아니라 현직 공무원들의 자리를 넓히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공공기관에서는 기록관리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기록이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고, 심지어 기록을 잃거나 의도적으로 없애는 일도 흔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니면서 기록전문요원제도를 집중적으로 양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법안 개정에는 기록 전문요원들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그저 다루기 쉬운 공무원을 기록 전문요원으로 채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또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렵게 지난 10년 동안 발전시킨 기록관리학 학문은 무너질 것이며, 대부분의 기록관리대학원은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는 것과 공무원 출신 기록 전문요원을 채용하겠다는 법안 개정안이 이번 정부의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정부기관 의견 조회에서 60여 개 기관이 반대의견을 냈다고 한다. 시행령 개정안에 이처럼 많은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기록관리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록관리위원회가 이번 사안에 대해 지난 3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부결시켰음에도 심의 및 의결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는 전혀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자리만 존재하는 ‘허깨비 위원회’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한 기록 전문요원은 “기록관리정책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기록관리체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고, 오히려 각급 기관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록관리 현실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매우 참담하고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7월 현재 이명박 정부는 온갖 문제가 터지고 있다. 정권의 가장 기본인 기록관리정책을 보면 이런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기록관리정책은 민주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주춧돌이다. 정부가 이번 시행령을 밀어붙인다면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이며, 이 정권은 점점 더 수렁 속에 빠져들 것이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
‘봉하마을’은 안된다더니… 전직 대통령 사저서 기록물 온라인 열람 가능 (경향, 정영선 기자, 2010-07-31 02:49:12)
ㆍ정부 관련법 개정안 의결
ㆍ노 전 대통령 요구땐 거절
ㆍ“보안문제 해결 않고 통과”

 
‘봉하마을만 안된다?’ 퇴임한 대통령이 재임 중 기록물을 사저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법이 손질된 것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근거 규정이 없고 보안상 허점이 있다”는 이유로 기록물 열람을 거절당한 전례가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현 정부의 전직 대통령 예우와 법 해석이 자의적이고 형평성을 잃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 요구가 있을 경우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전용회선·열람전용 컴퓨터 등 열람장비를 설치할 수 있고, 열람장비의 설치 장소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로 한정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는 “노 전 대통령의 기록 유출 논란 후 국회가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법률 개정안을 심의, 지난 2월 통과시켰다”며 “시행령 개정은 상위 법률 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2008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열람권 거부 사례와 비교하고 있다. 조영삼 한신대 교수는 “2007년 제정된 대통령 기록물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에게 열람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며 “이는 비밀문서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체로 기록물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시행령에 관련 규정이 없다며 열람을 거절한 것은 상위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또 “정부는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 열람을 공감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안된다’는 결론을 먼저 세우고 법제처 의견을 구했다는 등의 핑계를 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해킹과 같은 보안상의 문제 때문에 사저 열람에 난색을 표했던 정부가 기술적 완비 없이 법부터 개정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보안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도 해결된 것처럼 시행령부터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안전문가들에게 대책을 자문하고 있지만 대통령 기록물을 외부망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 개발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예산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행안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비밀·지정 기록물도 일부 가져갔기 때문에 비밀·지정 기록물 열람을 제외한 개정 시행령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행안부, ‘국가기록 쉽게 폐기’ 철회 (경향, 정영선 기자, 2010-09-01 10:22:04)
 
국가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해오던 행정안전부가 법령 개정을 철회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위원회와 학계·시민단체는 물론 공공기관 내부에서조차 법령 개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 정책기획과 관계자는 31일 “ ‘보존기간 1년·3년 기록물의 평가·폐기 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 생략이 가능하다’고 규정한 개정령안을 철회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등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이 지난 10일 총리실 산하 국가기록관리위원회 회의를 열어 법령 개정안을 재상정한 결과 반대 12·찬성 1표로 나타났다. 이날 반대표를 던진 위원 중에는 당연직 위원인 각 부처 공무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민간 위원은 “정부가 위원들 의견을 무시하고 법령 개정을 강행할 경우 사퇴할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행정절차법상 법제처에 개정령안 심의를 맡기는 것을 보류하고,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을 다시 듣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법령 개정을 철회하는 절차로 보인다.
 
행안부는 지난 7월15일 국회와 대법원 등 6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70여개 공공기관의 반대를 묵살하고 개정령안 입법예고를 강행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21 13:48 2010/07/21 13:48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하워드 진의 역사 에세이 두 편

View Comments

하워드 진. 이재원 옮김. 2009.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 예담.
Howard Zinn. 2001. Howard Zinn on History. Wisdomhouse Publishing Co.
하워드 진. 문강형준 옮김. 2008. 『권력을 이긴 사람들』. 난장.
Howard Zinn. 2007. 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 City Lights Books.
 
1.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역사 얘기를 하길래 생각나서 하워드 진의 책을 읽고 발췌해놓았던 것을 옮겨놓는다. 아래 적은 쪽 표시는 2008년 표시가 없는 한, 번역본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의 쪽번호이다.
 
2. 이 책 두권은 완전히 다른 책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겹친다.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은 하워드 진이 과거에 썼던 글 중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모은 것이고, 『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이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풀어쓴 것이다.그래서 두 책의 역자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유사한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덕분에 하워드 진이 말하는 미국역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게 되었달까. 예전에 읽었던
역사모노드라마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당대, 2005)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하긴 장르도 다르니...
 
3. 항상 그렇듯이 인상적인 대목을 발췌하는 식이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본다. 우선 올리버 웬델 홈스 판사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 홈스 판사는 '올림프스 산에서 내려왔다는 위대한 소수의견'으로 알려져 있고,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셜록 홈즈의 원 모델이기도 하단다. 나는 이 아저씨에 대해 예전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때 헌법과목에서 자주 언급되는 걸 보고 나름 괜찮은 사람이네 했었다. 국가보안법 관련사건의 판결을 살펴보면 자주 인용되는 이른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의 법리'를 주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홈스 판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징병제에 반대하는 선동자가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을 유죄로 선고하면서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제 1조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를 들었다. 결국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유죄라는 소리인데... 책에서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홈스 판사가 가진 한계를 냉철하게 지적한다. 
 
4.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여긴 것은, 지금부터 30-40년 전에 쓰여진 글들이 여전히 생명력 있는, 생생한 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어느 시기에나 적용 가능한 글만을 모은 편집의 탁월함? 아니면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는 현실? 뭐가 되었든 하워드 진의 통찰력은 뛰어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예전에 설대 총학선거에 출마했던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친구들이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적이 있다. 그게 가당키나 한 건가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는데, 하워드 진도 비폭력 직접행동을 개혁(개량), 전쟁, 혁명에 대당하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에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6. 콜럼버스의 만행이 미국에서 교육되고 있지 않다니...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하워드 진의 2007년 역사에세이는 전반적으로 미국의 역사, 대외정책,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폭력과 위선, 역사의 왜곡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미국의 본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건국에서부터 시작된 폭력과 위선, 왜곡의 역사에 대해 말이다.
 
7. 이 책들에서는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 자주 언급된다. 트위터에서도, 블로그에서도 가끔 이 책을 언급하는 분들이 있던데, 내가 이 소설을 봤을 때에는 그리 재미있진 않았다. 내가 넘 슬렁슬렁 읽었던 걸까. 역시 명작은 재미로 보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 책을 다시 봐야 하나.  
 
8. 원래 테렌티우스(Terentius)라는 아프리카 노예 출신의 극작가가 한 말로, 마르크스의 평생의 신조라는 말.
“호모 숨: 후마니 닐 아 메 알리에눔 푸토.”(Homo Sum: humani nil a me alienum puto). 전체를 해석하면,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인간사 중에 나와 무관한 게 있겠어?
 
9. 다만 이 부분은 동의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 린다 라이저라는 한 군의관은 이라크로의 파견명령에 불복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어떤 형태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반대한다.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생명을 지켜야만 한다고 믿는다. …… 나는 전투병으로도 비전투병으로도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전쟁에 동의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제나 전쟁 등과 같은 악에 직면했을 때 소로가 옹호했던 행동이다. 즉,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념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말했다.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신하들이 충성을 거부하고, 공무원들이 자신의 공직에서 사임할 때, 비로소 혁명은 완성된다.”
다음과 같은 소로의 문장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가 평화지상주의자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나 피가 흘러넘쳐야만 한다는 점까지도 생각하라. 양심이 상처를 입었을 때도 이런 피가 흐르지 않는가?” 그는 (3백만 명이 묶여 있는) 노예제처럼 거대한 악은 일정 정도의 폭력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2008: 154-55)
존 브라운의 삶은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폭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 브라운이 실행했던 것과 같은 행동에 참여할 리는 만무했지만, 소로는 브라운처럼 “노예들을 구하기 위해 무력으로 노예소유주를 막아설 권리”를 변호했다. 그는 브라운의 무기는 “정당한 목적을 향해 사용됐다”고 말했다. … 에머슨과 소로 모두 버지니아 주와 연방정부가 브라운의 처형을 안달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소로가 “냉혹한 방식”이라고 부른 것, 즉 신문 편집자들과 다른 이들, 심지어 노예폐지론자들까지도 브라운을 “위험”하고 “정신 나간” 인물로 묘사하는 것에 분노했다. 노예들을 위한 자유의 대의에 일조했다고 스스로 믿었던 브라운이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정부는 추정컨대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전쟁에 빠져들었고, 60만 명이 전장에서 죽었다. 사람들은 이런 미국 정부에 대해 “위험”하고 “정신 났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브라운에 관한 소로의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강력한 주제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유효하다. 정의로운 척하면서 법의 지원을 받아 한두 명 혹은 열 명을 죽인 사람들은 사형시키지만, 스스로는 수백만 명이 죽는 전쟁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정부 관료들의 위선이 그것이다. (2008: 155-56)
○ (지뢰금지운동에 나섰던) 지노 스트라다 박사는 ‘인도주의적 전쟁’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대량학살의 상황을 막기 위해 소규모의 무력이 사용될 수 있는 드문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나도 받아들인다. 다르푸르나 르완다가 그런 예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에서 인간이 입는 피해들을 이해하게 되면, 대규모의 무차별 무력 사용(어떤 특정한 악인에게만 집중되는 대규모 무력 사용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으로 정의되는 전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치명적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듯이 지구상에서 지뢰, 네이팜탄, 황린, 열하우라늄을 없애려는 운동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운동과 치료는 질병 자체의 제거가 필수적임을 이해하는 일과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공포를 느낀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인간화될 수 없다. 전쟁은 오직 철폐될 대상일 뿐이다.” 현대전의 결과를 직접 목격한 스트라다 박사 같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철폐는 이상주의로 간단히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 우리 역시 전쟁 없는 세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꿋꿋이 버팀으로써만, 오직 그 꿈을 포기하기를 거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2008: 176-77)
→ 폭력과 전쟁의 경계는 무엇일까. 전쟁을 계획하는 정부 관료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소로가 말한 것도 일견 타당한 면도 있긴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기엔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하워드 진은 책의 뒷부분에서 소규모의 폭력과 전쟁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데, 여전히 모호하다.
 
10. 하나 더 빼먹을 뻔 했는데, 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를 『권력을 이긴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는 건가? '정부가 억압할 수 없는 권력' 이 쯤이 되어야 맞을 텐데, 같은 말인가? 

 

3. 불확실한 미래를 낙관한다
○ 총과 자본을 갖고 있고 그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 같은 막강한 권력이 있다고 해도,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제아무리 냉정하게 계산해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해도, 정당한 대의를 확신하는 민중을 막을 수는 없다.
명백하게 예측 불가능한 사회현상 앞에서는 전쟁이나 전쟁 준비를 정당화한 역사상의 모든 핑계가 더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내전 역시 묵인될 수 없다. 국가들끼리의 전쟁에서든 일국의 격변에서든 간에,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일지라도 대규모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이나 혁명 같은 격변의 두드러진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인간적이고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무리 바람직한 것일지언정 그 결과가 불확실하고 끔찍한 것인 한, 그런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거야말로 미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에 맞선 ‘정당한 전쟁’으로] 얘기하는 데 도취된 사람들, 여전히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을 구분하는 사람들, 훌륭한 대의를 위해서라면 히로시마에서든 부다페스트에서든 잔혹 행위를 기꺼이 저지르려는 사람들을 설득해 제대로 된 길을 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약한 국가주의, 끔찍한 빈곤, 군국주의와 전쟁을 위한 막대한 자원 낭비가 판치는 이 세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런 변화는 대규모 폭력 없이 이뤄져야 한다.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잃을 것이라곤 권력과 폭력에 대한 환상밖에 없다. 그 대신에, 우리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 사용되는 수단이라면, 그 수단이 혁명적 변화를 위한 것일지라도 인권은 지켜야만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부든 혁명가든, 자신의 무지에는 무관심한 채 본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중의 생명과 자유를 희생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28-29쪽)
 
4. 비관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비관주의를 이해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증거로 따져 봐야 할 문제다.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면 그만이다. 희망을 위해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31쪽)
 
5. 저항 정신
○ 독립선언문에 따르면, 정부는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민중이 삶,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정부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할” 권리가 있다. (41쪽)
헌법 제정을 위한 토론에서 제임스 매디슨은 “지폐, 부채 탕감, 부의 평등한 분배, 기타 부적절하거나 사악한 것을 향한 열광”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헌법은 “삶, 자유, 행복 추구”라는 감동적인 독립선언문의 구절을 “삶, 자유, 소유권”으로 뒤바꿔 놓았다. 이제 독립선언문은 역사적 문헌으로 전락했고, 미국 헌법이 이 땅의 법이 됐다. (42-43쪽)
→ 이 내용은 하워드 진의 2007년 역사에세이에서도 반복되고, 여기저기 자주 언급된다. 이에 따른 결론은 이러하다. “정부의 권력과 부유한 대기업의 권력은 인민의 복종에 의존한다. 시민들이 복종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거부할 때, 군인들이 총을 들지 않을 때, 기존 권력은 힘을 잃고 항복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미국이 저지른 폭력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다룰 뿐만 아니라 그런 행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운동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두운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그 희망이란 안에서는 국부를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고 밖으로는 세계 다른 나라의 절망적인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미국인들이 언젠가는 세계와 평화롭게 지내는 나라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2008: 12-13)
 
6. 비폭력 직접행동
○ 전통적으로 제도 변화라는 요구를 달성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그 방식은 바로 전쟁, 혁명, 점진적 개혁이다. 전쟁이 외부로부터의 폭력이라면, 혁명은 내부로부터의 폭력이고, 점진적 개혁은 지연된 폭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변화에는 늘 얼마간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인류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룰 수 있는가이다. 전쟁은 아무리 잘해도 무계획적이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든 아랑곳없이, 시체만 즐비하게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처럼 가장 명백한 악과 싸우는 전쟁에서조차도, 에드먼드 윌슨이 ‘애국적인 살인’이라고 부른 통제 못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 드레스덴이나 히로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불필요한 폭격이 자행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정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긍정적 측면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은 대량 학살을 야기한다.
과거의 전쟁이 강제로 사회 진보를 달성한다는 측면이 있었다면, 그 전역(戰域)에 한계가 없는 오늘날의 전쟁은 그나마 사회 변화를 위해 정당하다고 할 만한 눈곱만치의 여지조차 전쟁에서 영원히 지워 버렸다.
혁명은 어떤가? 충분히 이성적이지는 않더라도, 혁명은 비용과 결과의 균형을 맞추는 데서 우연에 덜 기댄다. 내가 생각하기에, 근대에 일어난 네 개의 위대한 혁명은 사회 진보를 향해 가면서 갈팡질팡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폭력만 정당화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혁명을 사회 변화의 주된 수단이자 유용한 수단으로 볼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 들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으로?
몇몇 예외적인 사례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본다면, 전과 같은 의미에서 혁명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 지배자들이 쥐고 있는 무기의 힘이 대중 봉기의 발발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대중 봉기의 지지기반이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말이다). 둘째, 아마도 이것이 더 중요한 이유일 텐데, 전쟁처럼 이제 혁명도 더는 일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나 둘 이상의 강대국이 꼭 끼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외부 세력에게 분쇄되거나, 아니면 무시무시한 학살이 오랫동안 벌어진다.
이렇듯 전쟁과 혁명이 불가피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남는 것은 서구 자유주의의 재고품인 점진적 개혁밖에 없다. 이곳 미국은 변화의 요구들을 원활하게 화합시키면서 평화롭게 조절해 온 사례로 손꼽힌다.
이처럼 유쾌한 해결책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이 해결책은 과거 미국이 저지른 일들에 부합하지 않으며, 미래의 미국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과도 들어맞지 않는다. … 미국은 폭력적인 혁명 속에서 태어났으며, 자국의 주요 현안도 개혁이 아니라 근대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해결했다. 요컨대 미국 역사에서는 그때그때 폭력이 빗발쳤다. 곧 잊히곤 했지만,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일궈 낸 변화가 날로 증가하는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할 만큼 충분히 빠르지도, 충분히 크지도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예를 들면, 노예제 폐지를 위한 느린 걸음들(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합의된 노예무역 폐지안, 1820년의 타협, 1850년의 타협 등)은 모두 실패했고, 결국 남북전쟁이 문제를 해결했다. (47-50쪽)
○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을 없애려면 점진적 개혁이라고 생각했던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사실상 점진주의는 개혁의 메카로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매번 불쑥불쑥 일어나는 사건들을 제대로 해결한 적이 없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세계가 변하는 기세를 볼 때 점진주의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점점 더 잃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공인된 사회 변화의 메커니즘은 전쟁이든, 혁명이든, 개혁이든 그 어느 것도 오늘날 미국과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전혀 적절하지 않다.
하워드 진이 제안하는 방법은, 자신들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고, 행동이 단속적이며, 고통받아 온 집단들이 수세기에 걸쳐 사용해 온 방법이다. 미국의 흑인 반란은 이 방법에 ‘힘을 신중하게 사용하기’라는 특징을 부여했다.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최대한의 변화를 이루는 이 방법은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해서 우리의 상상력이 한계에 도달하지 않는 한, 그 형태 역시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다. 연좌농성, 자유 승차와 자유 행진, 기도 순례, 백인 전용 수영장에 들어가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기도 시위, 자유 투표, 자유 학교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 비폭력 직접행동은 현상 유지 상태를 뒤흔들어 놓고,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 안주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상처를 표현해 주고, 불의를 폭로하고, 크든 작든 기존의 모든 개혁이 무능함을 드러내고, 긴장과 불화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권력자들을 압박해 그런 압박을 받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빨리 사람들의 불만을 해결하게끔 만든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이 점진주의라는 약한 불에 부글부글 끓는 상태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놔두면 폭발할 뿐이다. (51-52쪽)
  
9. 누구를 위한 정부이어야 하는가
○ 국가는 외국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내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상인과 지주계급의 이익을 위해 ‘큰 정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787년 헌법제정회의는 상인과 노예 소유주와 땅 투기꾼의 이익을 보호해 주고, 법과 질서를 바로잡아 셰이스의 반란(1786년 일어난 퇴역 군인 대니얼 셰이스 대위가 이끄는 농민들의 반란) 같은 미래의 반란을 막아 줄 ‘큰 정부’를 만들기 위해 소집된 것이다. (71쪽)
○ 연방 교도소를 더 많이 지으려는 범죄 법안에 서명할 때, 최근 군사 예산을 위한 수십억의 추가 비용을 요구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거 유세 당시의 선언을 적용하지 않았다. (73쪽)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은 ‘큰 정부’의 공포를 과장해 사람들의 감정을 휘어잡아 왔다. 그래서 추상적으로 쓰이는 한, 사람들은 쉽게 따라가게 되며, 자기 식대로 ‘큰 정부’를 규정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질문해서 나온 결과는 시사적이다. 지난 10년간의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여 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정부가 경제적 불공평을 바로잡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보장, 실업보험, 공공근로 프로그램, 최저임금제, 예술 지원금 같은 뉴딜정책의 성과가 여전히 일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다. ‘큰 정부’라는 무서운 단어를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단 우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재향군인원호법, 고령자ㆍ장애인 의료보험, 저소득층 의료보험, 식량 배급표, 중소기업 융자 같은 구체적인 정책을 지적하는 순간, 그런 반응은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에 걸맞은 정부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재향군인원호법, 사회보장, 고령자ㆍ장애인 의료보험을 운영하고, 모든 국민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며, 그 재원을 진정으로 진보적인 세금 제도 개혁을 통해 조달하는 정부를 원한다. 요컨대, 우리는 국민 모두 미 상원 의원과 군부가 차지하는 지위, 즉 크고 자애로운 정부의 수혜자라는 지위에 오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큰 정부’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큰 정부’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유일한 문제는 그 정부가 누구를 위해 봉사할 것인가이다. (74-75쪽)
 
10. 투표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 가십은 미국인들의 아편이다. … 사소한 일들에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성 불능이든 성욕 과잉이든, 술주정뱅이이든 술을 못 마시든 간에, 대통령들이 근본적으로 똑같은 정책을 따른다는 사실을 잊는다. (77쪽)
대통령은 바뀌지만, 미국 내 200대 기업의 지배력은 계속 커졌다. 이 기업들이 전체 상품 제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당시 45%였으나 1970년에는 60%가 됐다. 20세기에는 그 어떤 대통령도 이런 추세를 멈추지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조차도 멈추지 못했다. 루스벨트는 1930년대에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최저임금, 사회보장제도, 공공사업촉진국을 통한 일자리 제공, 정부 구호 등의 조치들을 취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시할 뿐 다른 것은 나 몰라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성격을 바꾸지는 못했다.
1976년, 또다시 선다형 문제[대통령 선거]가 제출됐다. 더 나은 후보가 더 나쁜 후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나라의 미래가 다음번 대통령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구경꾼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먼 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높은 세금, 높은 물가, 실업, 낭비, 전쟁, 부패에 질려 버린 미국 시민들이 미국 전역에서 1930년대의 노동자 봉기나 1960년대의 흑인 반란보다 더 거대한 변화의 요구를 조직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79-80쪽)
 
11. 홀로코스트를 기리며
○ 내 강의의 요점은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철조망에 둘러싸이거나 도덕적으로 게토화돼서, 역사 속의 다른 대량 학살과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기억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잔혹함에 맞선 의분, 분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확실히 홀로코스트 기억의 핵심에는 잊어서는 안될 공포가 있다. 그러나 그 핵심, 너무나 완벽하기에 더 덧붙일 것도 없는 그 핵심의 주변에서, 저마다의 목적 때문에 그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기념 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른 민족과의 결혼과 동화 탓에 고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일환으로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84쪽)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특별함 주위에 장벽을 두르는 것은 인류가 하나이고 우리 모두 피부색ㆍ국적ㆍ종교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 즉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85-86쪽)
아르메니아인에게든 미국 원주민에게든, 아프리카인에게든 보스니아인에게든, 아니면 또 다른 사람에게든, 더 폭넓은 의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들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이용해 자신들과 남들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 우리 시대에 계속되고 있는 참사의 가해자와 협력자에 맞서 폭넓은 연대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홀로코스트 덕택에 오늘날 세계가 전시 독일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면, 그리고 전시 독일처럼 오늘날에도 나머지 사람들이 고분고분하게 자기 일을 하는 동안 수백만 명이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홀로코스트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88쪽)
 
12.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Je ne suis pas Marxiste) 나는 늘 궁금했다.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영어도 할 줄 아는 독일인이 이렇게 중요한 말을 왜 프랑스어로 했을까? 피퍼라는 독일인 망명자는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마르크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한번은 마르크스에게 『자본론』을 영어로 번역해 보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피퍼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칼 마르크스 클럽’을 조직해 운영한 피퍼는 마르크스가 한 말이라면 성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해, 점점 더 마르크스를 화나게 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칼 마르크스 클럽’에서 강연해 달라고 초청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니까요.” (92-93쪽)
○ 마르크스는 정치를 잘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정치투쟁 뒤편에 가려진 계급의 문제, 즉 누가 무엇을 갖는가에 주시했다. 일체감이라는 온화한 모습을 띤 환상 뒤에 숨어서,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95쪽)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귀중한 유산은 국제주의, 국민국가에 대한 적의, 반드시 복종하고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 국가가 평범한 민중에게는 없다는 주장, 우리는 모두 전 세계에 걸쳐 인류로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주장일 것이다. 이 유산은 현대 자본주의가 지닌 국가주의, 나라 밖의 ‘적’을 향한 추악한 증오, 인위적인 국경 안에 갇힌 모든 사람이 누리는 공통의 이해관계라는 거짓된 창조물 등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또한 소련이나 중국, 그 밖의 ‘마르크스주의’ 국가들이 보여 주는 편협한 국가주의를 거부한다. (97-98쪽)
 
13. 새로운 급진주의
○ 이론이란 관찰에 근거해야 하고 행동으로 표현돼야 한다. 이론은 반드시 지금의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의미에서, 유물론적 접근법은 요구를 하기보다는 제안을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행위와 생각에 모두 영향을 끼치려면, 그 행위와 생각 뒤에 가려진 상황적 조건을 찾아봐야 한다. 변증법적 접근법은 상황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우리의 평가 자체가 그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리가 두 눈과 두뇌에 한계가 있는 피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표면 밑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저 보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102-03쪽)
○ 새로운 급진주의는 이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급진주의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론에는 세 가지 필수 구성 요소가 있다. 첫째, 우리에게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다. 둘째, 낡고 고정된 범주의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특수성을 깨닫고 오늘날의 불합리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특정 조건에서 사회를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행동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 (104-05쪽)
진정한 급진주의라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희망했던 바를 민중 모두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공권력[국가의 힘]이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이다. 이런 말을 한 지 27년 뒤에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의 요체는 사회의 상위 기관인 국가를 사회의 하위 기관으로 완전히 바꾸는 데 있다.” (107-08쪽)
○ 신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학 범주에 관한 이론적 토론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얼마나 낭비적이고 불합리하며 부당한지를 미국인들에게 명확히 알려 줄 방법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 인간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신좌파에게 가장 긴급한 이론적 문제는 어떻게 사회를 바꿀 것인지의 문제다. (113-114쪽)
○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수평적 조직이라는 신좌파의 발상은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 아마도 우리에게는 대중사회에 알맞은 정치적 게릴라 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전술을 통해 진부한 삶의 방식을 뚫고 이곳저곳에 자유의 영토를 만들어, 그곳을 저항의 중심지이자 본보기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급진주의가 가장 철저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은 이런 조직화, 압박, 변화, 공동체 건설의 기술이다. 새로운 급진주의가 가장 철저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은 이런 조직화, 압박, 변화, 공동체 건설의 기술이다. 새로운 종류의 혁명을 수행하려면 활력과 재치의 독창적인 조합이 필요하다.
행동이란 면밀히 계획하고 숙고의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하기를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만을 위한 여지도 남겨 둬야 한다. 너무도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에는 실존주의가 그랬듯이 행동할 자유를 강조해야 한다. … 행동하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저항이 심각할지 그렇지 않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의 행동에 대한 반발이 클지 작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행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못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중요하다. 그런 변화는 조금씩 누적될 테고, 또 다른 수많은 행동이 더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폭발하지 않을까? (117-18쪽)
 
14. 콜럼버스와 서구 문명
○ 아이들이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다 자란 아이들조차도 여전히 진실을 듣지 못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131쪽)
○ ‘진보’와 ‘문명’이 가져다준 이득들, 그러니까 기술, 지식, 과학, 보건, 생활수준 등의 발전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진보는 좋지만 인류는 그것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거대한 산업상의 진보를 위해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흑인 노예들의 노동이 어떻게 목화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는지, 열두 살에 공장에 들어와 스물다섯에 죽은 어린 소녀들의 노동이 어떻게 방직 산업을 발전시켰는지,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말 그대로 죽도록 일한 아일랜드인과 중국인 이민자들이 어떻게 철도를 건설했는지, 파업을 벌인 이민자들과 본토 노동자들이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방위군들에게 체포돼 가며 어떻게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했는지, 도시 빈민가에 사는 노동계급의 어린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며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얼마나 일찍 죽었는지 등을 배우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진보’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140-41쪽)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이기심은 콜럼버스를 추동한 것과 관련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들이 ‘이윤 동기’의 도입이 소련과 동유럽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열변을 토할 때 찬양해마지 않는 것과도 관련 있다. 물론, 이윤이라는 자극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구가 밟아 온 ‘자유 시장’의 역사를 볼 때, 그 자극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서구 문명’의 세기 내내 무자비한 제국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 이윤을 향한 억제되지 않은 질주는 인류의 엄청난 고통, 착취, 노예제, 작업장의 학대, 위험한 작업환경, 아동노동, 땅과 숲의 파괴,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의 오염을 야기했다. (142-43쪽)
○ “당신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콜럼버스를 20세기의 눈으로 보고 있다. 500년 전의 사건들을 우리 시대의 가치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역사적인 짓이다”라는 주장은 참으로 이상하다. 잔혹 행위, 착취, 탐욕, 노예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등이 15~16세기에는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일까? 콜럼버스 시대와 우리 시대에 공통적인 인간적 가치는 없을까? 콜럼버스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권을 위해 그런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가치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144-45쪽)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른바 문명의 혜택에서 제외됐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지만, 우리가 애써서 성취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 (149쪽)
 
15. 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 정치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해 정치적 관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헌법을 해석하고 미국사를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수업 중에 정치적 관점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전쟁과 군사주의를 혐오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에 분노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와 전 세계 부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분배를 믿는 내 관점을 말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데 ‘객관적’인 척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153쪽)
교육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의 ‘정치적 관점’을 표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저 공공연하게인지, 솔직하게인지, 미묘하게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두꺼운데다 지루하기까지 한 교과서가 제아무리 중립을 가장하더라도, 그리고 교사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더라도, 교육에는 늘 정치적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육은 사건, 견해, 책을 선택하는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등교육에서 자유로운 표현이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제시하는 기회를 뜻한다. 그렇게 되려면 독서ㆍ생각ㆍ관점의 진정한 다원주의, 사상과 문화의 진정한 자유 시장이 필요하다. (154쪽)
○ 맞다, 실제로 학계에는 특별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 … 그러나 우리를 묵인하는 자들은 우리의 수가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아무리 새로운 사상에 흥분할지라도, 그들은 곧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되고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게 되는 세계에 들어설 것임도 알고 있다. 또한 학계가 모든 사상에 개방적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우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156-57쪽)
비록 대학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여지는 사회보다 더 많지만, 언제나 일일이 감시를 받는다. 고작 몇 명일지라도, 그들이 사회 변화를 지지하는 데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면,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은 이를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곧장 경보를 울린다. (158쪽)
  
19. 비밀주의, 역사 기록, 그리고 공익
○ 전문주의라는 것은 사회통제의 강력한 방식 중 하나다. 전문주의라는 것은 자신의 전문 기술에 거의 완전히 몰두하고 매일매일 그 기술을 수행하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해당 기술이 사회 전체의 계획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숙고해 볼 시간이나 여력, 의지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몰두한다면 자신의 전문 기술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완전히 몰두하지 못한 탓에 자기의 전문 기술에 관대하고, 그도 아니라면 뒤죽박죽인 감정인 채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게 된다. (205-06쪽)
오늘날에는 도처에 전문가들이 있고, 그들의 기술과 지식은 현상 유지에 위협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기존 질서에 도전하려는 전문가들의 의지는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보상 때문에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들은 너무 분화돼 있고 전문성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사회라는 기계 안에서 작은 연결 장치 노릇을 수월하게 또는 힘들게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기계가 전쟁이나 평화를 위해 고안됐는지, 사회적 필요나 개인의 이윤을 위한 것인지, 결국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염려할 시간이나 여력이 거의 없다.
웨이터, 자동차 수리공, 의사, 그리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현대의 전문화는 충분히 치명적이다.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채 현상 유지에 기여하고, 단지 그 거대한 기계가 고장 없이 잘 작동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특수한 전문직은 특별한 방식으로 현상 유지에 기여한다. 무기 전문가나 군사 연구 분야의 과학자는 자기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으로서는 매우 제한된 구실만 하는 나머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무기를 사회 지도자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려는지 아예 의심하지 않거나 매우 조금 의심한 채 넘겨준다. (207쪽)
교사, 역사학자, 정치학자, 언론인, 그리고 기록관리자와 같은 사회의 지식 보급과 관계된 전문가들도 전문주의 탓에 무기력해진다.
전문적인 일에 쉴 새 없이 몰두하는 것과 남는 시간에만 정치를 생각하는 것, 이 둘을 분명히 구분하는 이유는 직업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지 않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지식을 축적하고 보급하는 전문가 중 누구라도 정치사회학이라는 또 다른 놀이터로 넘어가게 된다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지식이 사회적 기원과 사회적 용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칼 만하임의 글을 읽게 될 것이다. 지식은 분열되고 충돌하는 세계에서 나오고, 그 세계로 쏟아져 들어간다. 지식은 기원이나 영향 면에서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지식은 다양한 사회질서의 편향을 반영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즉,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지식의 분야를 지배하며, 결국 지식은 이들의 이해에 기여한다는 조건이다. 학자는 자기 분야에서 중립성을 맹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이론에 따르면, 물리학자든, 역사학자든, 기록관리자든 간에, 그 학자의 일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띤다. 그 사회의 가치를 영속화하고 우선순위를 정당화함으로써, 그리고 전쟁을 정당화하고 편견과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계급 질서를 변명함으로써 말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 지혜라는 거대한 체계 뒤에서 노예제를 정당화하고, 플라톤은 일련의 눈부신 대화록 뒤에 숨어서 국가에 대한 복종을 정당화하며, 마키아벨리는 목적보다는 수단에 더 몰입하라고 촉구한다. (208-09쪽)
○ 미국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닌데도, 개혁을 부르짖는 우리나라의 귀재들은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의 문제는 지나침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성의 문제이다. 인종 문제에서 KKK단이나 남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온정주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가정이 문제다. 경제 문제에서 불황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힘과 이윤이 지배하는 경제의 평상시 작동이 문제다. 정의의 문제에서 타락한 판사나 뇌물을 받은 배심원이 문제가 아니라, 인권보다 재산권을 앞세우는 경찰ㆍ법ㆍ법원의 일상적인 기능이 문제다. 대외 정책 문제에서 스페인-미국 전쟁이나 베트남전쟁 같은 특수한 광적인 모험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서 미국이 해야 할 역할이 있고 미국이 복잡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일련의 가정들이 문제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학자ㆍ지식인ㆍ연구자의 일상적인 활동은 미국 사회의 왜곡된 규범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마치 각자의 소소한 직분을 수행함으로써 독일ㆍ소련ㆍ남아공의 지식인들이 각자의 사회에서 규범으로 통하는 것을 유지하듯이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규범에 대한 반란이 오늘날 미국의 학자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현상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현상은 더 노골적으로 억압적인 사회들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나타난다. 대다수 학자들은 학문적인 업무에만 전념하고, 잘 알아채기 어렵게 불법을 저지르고, 철저하게 사실을 누락시킨다. 예컨대, 역사학자들인 역대 대통령들과 법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엘리트적 접근을 교묘히 영속화하는 것일 뿐이다. 정치학자들이 선거 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선거가 민주적 통제의 핵심이라고 교묘히 암시하는 것일 뿐이다. 학자들이 대법원의 결정을 강조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권리들의 실체를 교묘히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211-12쪽)
역사가나 정치학자보다 기록관리자가 더 엄격하게 중립을 지켜야 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얼룩진 세계에서 더 자유롭고, 더 기술적인 직업으로 보이기 쉽다. 기록관리자의 일은 사회의 기록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보존하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관리자도 자기 일에만 몰두함으로써 교묘히 경제적ㆍ정치적 현상 유지를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중립성이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록관리자가 본연의 일상적 임무에 저항하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두려워하듯이 중립적이어야 하는 전문 기술을 정치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전문 기술을 인간화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학식이란 불가피하게 정치적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회의 지배 세력들이 규정한 우선순위와 목적의 틀 내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존 질서의 정치를 좇을 것인지, 아니면 현재 우리 사회가 부정하는 평화ㆍ평등ㆍ정의라는 인간적 가치를 활성화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213쪽)
  
20. 학문의 효용
○ 지식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강제력에 직접적으로 대항할 수는 없지만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속임수를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산업은 700만 명의 젊은 대학생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권력의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장이 된다. (225-26쪽)
○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에 대한 기존 논의를 고찰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만약 사회혁명에 조응해 지식 활용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지식의 낭비를 부추겼던 규칙들에 도전하는 것에서부터 그 혁명은 시작돼야 할 것이다. (228쪽)
매년 8000억 달러의 부를 생산하는 국가의 빈곤 문제와 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불안해하지 말고 수많은 학과의 문제들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또 사적 유물론, 경제이론, 정치 문제 등도 다뤄야 한다. 그런데 전문화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또한 현실과 이론의 단절은 대학 교수들이 시국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한다. 정치학을 예로 들면, 그 누구도 현재의 상태와 당위를 동시에 논의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이를 시도한다면, 지금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어떻게 갈 것인지, 실재와 낭만적 전망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를 다뤄야 할 것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사회 변화의 전술을 거의 연구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학생과 교사 모두 학문의 단절 속에서 현실과 이론을 다루고 있다. 이렇듯 구획화는 안전한 방법으로 학생과 교사를 중립화시킨다. 여기서 루소를 인용해 보자. “물리학자, 기하학자, 화학자, 천문학자, 시인, 음악가, 회가는 참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시민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231-32쪽)
사회과학에서는 주관성이 연구 방법을 망치기 때문에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다르다’는 주장은 자연과학 분야의 새로운 발견을 무시하는 것이다. 즉, 자연과학은 관찰 행위가 물리학자의 측정을 왜곡시키고, 연구자가 관찰한 것은 우주 공간에서 그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물리학은 확실성을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을 얘기할 뿐이다. 물론 사회과학에서의 가능성에 비해 자연과학에서의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만, 파악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233쪽)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토대의 각 부분을 해방시키기 위해 지금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소로가 말했듯이, 신세계를 향해 우리 스스로 ‘투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투표는 누군가가 교묘하게 선택한 순간이 아니라 언제나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학자들은 학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를 움직이게 했던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를 관습에 묶어 두고 현실의 잔혹함을 외면하게 만들었던 전문가 신화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 학자들은 부자와 권력층의 이익이나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시를 읽고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내내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쟁의 부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로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236쪽)
 
22. 시민으로서의 역사가
○ 역사적 경험은 몇몇 가능한 일들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가능성들을 고갈시키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에 갇히고 과거에 짓눌리면, 속임수의 세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과거는 해야 할 일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한다.
매번 모든 결정 과정에서 우리를 맹렬히 공격하는 냉혹한 현실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 냉혹한 현실 세계는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점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유로운 듯이 행동하는 것밖에 없다. (257쪽)
‘~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결정론과 자유 사이의 패러독스를 푸는 방법이자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긴장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마치 우리가 자유로운 듯이 행동하는 것은 분명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구속돼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럴 때에는 뭔가를 얻을 기회조차 건질 수 없다. 인간이 사회혁명을 통해 했던 도약은 ‘~인 것처럼’ 행동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됐다. (258쪽)
○ 어떤 악이 한 집단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악을 특정 집단의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사회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욕구에 근거를 두지 않고 과거 행위에 대한 복수에 근거를 두는 형법에서 이런 일이 늘 벌어진다. (262-63쪽)
세계사의 잔혹 행위를 조사한 뒤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당치도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결론은 실패의 요소들을 식별함으로써 미래에도 그 요소들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실제로 죄가 있는 특정 인물을 처벌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우리 역시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지 못한 채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심판받는 날이 왔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이미 저지른 죄 역시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늦은 재앙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묻는 내용의) <대리인> 같은 연극이 ‘왜 교황은 침묵했는가?’ 같은 질문이 아니라, ‘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바로 지금 침묵하는가?’ 하는 질문을 사람들이 던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 연극 자체는 무대의 정적을 깨뜨렸을 것이다. (263-64쪽)
 
23. 유진 뎁스와 사회주의 사상
○ 뎁스는 전쟁에 반대해 수감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정복과 약탈을 위해 수행됐습니다. …… 그것이 바로 전쟁의 요체입니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전쟁을 선포했고, 피지배계급은 언제나 전투에 나가서 싸웠습니다.” (269-70쪽)
판사가 뎁스의 유죄를 확정해 징역 10년형을 선고하기 전, 법정에서 뎁스는 판사와 배심원 앞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말이라 할 수 있는 발언을 시작했다. “하층계급이 존재한다면 저도 그 일원입니다. 범죄자가 있다면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감옥에 갇힌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270쪽)
○ 뎁스는 자신을 ‘지도자’로 우러러보는 눈길을 늘 경계했다. 해방은 그 누구도 아닌 해방이 필요한 당사자 본인들의 힘으로 거머쥐어야 하다는 사회주의자로서의 신념 때문이었다. “저는 여러분이 저나 다른 누군가를 추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이 황야를 벗어나게 해줄 모세를 찾는 중이라면 차라리 계속 눌러앉아 계세요. 그럴 능력이 있어도 저는 여러분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여러분을 다시 끌고 나갈 테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손과 머리를 쓰셔야 합니다. 스스로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2008: 250)
 
25. 잭 런던의 『강철군화』
○ 미국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고속도로, 자동차, 모텔, 사무실 빌딩, 총, 폭탄, 비행기 등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물건들에 자원을 낭비했다. 이 엄청난 자원들을 이성적이고 인간적으로 사용했다면, 모든 사람의 삶을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필요가 아닌 기업의 이윤이 나라의 천연자원으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는 잭 런던의 지적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293쪽)
○ 잭 런던의 전망은 여전히 매력이 있다. “그처럼 능률적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훌륭한 기계들을 파괴하지는 맙시다. 우리가 그것들을 장악합시다. 그 기계들의 능률과 값싼 비용으로 우리가 이익을 보는 겁니다. 우리 손으로 기계를 운영합시다. ……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잭 런던의 처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만약 그 ‘우리’가 자본주의 국가를 대변하는 관료주의적 정당이라면 말이다. 기계에 대한 통제가 지역적으로 이뤄지고,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그 기계를 소유하고, 그 기계의 생산물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생산의 협동적 통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집중화된 효율의 이점과 복잡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의 지역적 통제를 결합시키는 것은 사유와 실험이 요구되는 기예다. (294쪽)

 

○ 미국의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아마 지금껏 우리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지배해왔던 그 동일한 계급이 여전히 쟁점들을 장악할 것이고, 대통령선거 후보토론에서 랠프 네이더 같은 후보들을 제외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권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선거 다음 날이면 우리가 언제나 직면해왔던 문제들을 다시 대면할 것이다. 즉 이 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곤한 계급을 어떤 식으로 불러내, 과거에는 일정한 정의를 달성했고 또 권력을 쥔 자들을 ‘계급전쟁’의 가능성 앞에 부르르 떨게 만들었던 사회운동으로 모이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 말이다. 이런 문제들에 침묵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체제(인권에는 철저히 냉정한 양당정치)는 존중받을 수는 없다. (2008: 53)
   
○ 더 평등하고, 더 정의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외치고 행동했던 개인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기념되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역사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거나 침울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념되지 않은 과거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현재의 알려지지 않은 주변의 영웅들을 찾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2008: 74)
 
○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청사를 폭파했던)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집행 하루 뒤, 「보수턴헤럴드」는 1면 표제에서 “이제 끝났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테러리즘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이다. 우리 정부가 민주주의나 자유를 위해, 혹은 타국 정부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행했다고 주장하는 그 테러리즘에 몰두하는 한, 이를 본보기로 삼아 더 많은 맥베이들이 출현할 것이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테러행위들은 계속될 것이고, 그것들은 광신적 행동이라는 말로 적절하게 불릴 것이다. 정부의 테러리즘도 훨씬 더 큰 규모로 계속될 것이고, 그것들은 ‘외교정책’이라 불릴 것이다. 그리고 본토에는 사형이 있다. 사형은 한 번에 한 명씩 죽임으로써 국민들에게 공포와 복종을 서서히 주입하려는,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테러의 일종 아닌가? 어 모든 것이야말로 현재 지배적인 사악한 도덕이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고 미국인들이 결정할 때까지 이 사악한 도덕은 계속될 것이다. (2008: 82-83)
 
○ 히틀러를 달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포기한 것은 잘못한 일이다. 중동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하는 일이나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화정책이 아니다. 이것은 정의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저지르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테러리즘에 승복’하거나 ‘유화정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전쟁이 아닌 다른 수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킹 목사와 간디 모두 행동, 즉 전쟁보다 더 강력하고 전쟁보다 더 확실한 도덕적 옹호가 가능한 비폭력 직접행동을 신뢰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전쟁을 거부하는 것은 테러리스트를 모방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일이다. (2008: 107)
  
○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로 만약 “바꾸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인민들의 권리라면, 목표들을 지키라고 세워진 정부가 그 목표들을 파괴하는 정책을 실행한다고 인민들이 믿고 있을 경우에는, 그 정책을 오히려 강하게 비판하는 것 역시 인민들의 권리이다. 독립선언문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이 원칙은 진정한 애국주의란 국가가 지켜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가치들(평등, 생명, 자유, 행복추구)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니 우리의 정부가 그 가치들을 손상시키거나 훼손하거나 공격할 때, 그 정부는 비애국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웅적인 미국인들은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통치받는 이들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독립선언문에 표현된 정부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전쟁 영웅들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온 영웅들 말이다. (2008: 126-27)
애국주의를 정부에 대한 복종으로 정의하는 것(정부 지도자들이 반드시 싸워야 하는 것으로 결정한 어떤 전쟁이라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야기해왔다.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그 많은 청년들이 군에 들어가고,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선언하는 사태를 만들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그들이 생명을 무릅쓰는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정부라는, 더 나아가 막대한 부의 소유자들, 정부와 연결된 거대 기업들이라는 점을 생각했더라면 그 청년들은 망설이지 않았을까? (2008: 128)
중요한 것은 국가이다. 즉 인민들, 생명의 거룩함이라는 이상, 그리고 자유의 확산이다. 언제나 자신의 동기가 순수하고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은 이윤과 권력이라는 천박한 동기를 위해 정부가 젊은이들의 생명을 함부로 소모할 때, 그 정부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거의 언제나 그 약속의 파괴이다. 전쟁은 행복추구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슬픔만을 몰고 온다. (2008: 130)
  
○ 소로의 위대한 에세이, 「시민불복종」의 핵심에는 독립선언문에 표현되어 있는 멋진 사상이 있으니, 즉 정부는 인민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그 사상은 헌법을 둘러싼 현실과 현실 정부의 성립에 휩싸여 급격히 매몰됐다. 현재는 소수의 권력자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그리고 노예제와 타협하기 위해 정부를 이용한다. 그러나 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정부와 그 법을 따라야 하는가? 왜 그들은 스스로의 도덕적 판단을 실행하지 않는가? 정부가 불의의 편에 서 있을 때, 그 정부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고 정부가 요구하는 바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들의 의무이다. (2008: 140)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이다”라고 말했다. 소로는 제퍼슨의 이 말을 이렇게 되받았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기면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이다’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소로는 이런 전제에 근거해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심각하고 참을 수 없을 때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권리”인 시민불복종을 주장했다.
시민불복종이 당면 과제가 될 때마다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그러나 그럴 때마다 미국의 민권운동가들은 “아니, 바로 지금이야말로 시민불복종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며 온몸으로 시대의 모순을 뚫고 나갔다. (2008: 141)
    
○ 학교에서의 인종분리에 대한 1954년의 브라운 판결(“교육시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것이니, 공립학교의 흑백분리 입학정책을 폐지하라는 판결, Brown vs.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Case)은 이 사건에 수정헌법 14조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갑작스런 깨달음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종간 분리를 확정했던 1896년 플레시 사건에서 인용됐던 것도 동일한 수정헌법 14조였던 것이다. 대법원에 갑작스런 계몽을 불러온 것은 올리버 브라운과 같은 남부의 용감한 가족들이 주도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냉전에 집착하고 있던 정부가 [이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 유색인들의 애정과 관심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낙태권도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이뤄진 대법원의 결정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 결정이 나기 전에, 각 주들이 낙태권을 인지하도록 몰아붙인 전국적 풀뿌리운동에 의해 이미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대다수가 어떤 권리를 지지하는 경우, 만약 미국 시민들이 끈질기게 그것을 위해 요구하고 행동한다면 대법원이 무슨 결정을 한다고 해도 결코 그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
노동자, 여성, 흑인의 권리는 법원의 결정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었다. 정치체제의 다른 부문들이 그랬듯이, 법원 역시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직접행동에 참여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 권리들을 인정했다. … 물론 지든 이기든, 법원은 쟁점들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2008: 180-83)
 
○ 모두가 전쟁이 지옥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당신이 전쟁 한가운데에 직접 있어보지 않은 한, 그 사실은 추상으로만, 죽은 사람들의 수는 그저 숫자로만, 묘지의 십자가들은 그저 십자가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을 멈춰 서게 하고, 전쟁이 진정으로,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당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역겹게 만들며, 그래서 권력자들의 입에서 어떤 고상한 정당화가 이뤄지는가에 상관없이 당신으로 하여금 전쟁에 반대하게 만드는 전쟁문학이 있다. 이것이 돌턴 트럼보의 소설 『자니 총을 얻다』가 청년 시절의 내게 끼친 효과였다. 이 소설은 내가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만들어줬다. (2008: 256)
궁극적으로 저항문학은 사람들이 더 폭넓게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도록, 사회변혁이란 많은 사람들이 연합해 누적시킨 행동들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행동을 시작하도록 추동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마 혼자일지 모르나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로 모르거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더라도 행동하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커트 보네거트가 『타임퀘이크』에서 했던 말도 여기에 들어맞겠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 보네거트는 글쓰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에 대해서 수차례 질문을 받는다. 그는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나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대답한다. (2008: 25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19 03:00 2010/07/19 03:00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프로젝트 보고서만 작성하고 살 수는 없는데...

View Comments

일주일 사이에 프로젝트 보고서만 작성한 것 같다.
하나는 최종보고서 발표회를 가졌고, 지적사항에 대한 수정작업만 거치면 될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중간보고서 보고회 때 엄청 때졌고, 2주간 조금 시달릴 것 같다. 나머지 하나는 갑작스레 대타를 맡아서 보완하게 된, 대안적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모색에 관한 것으로, 요약문을 써보내면서 이대로 쫑하기로 했다.
 
이중에 마지막 사회공공연구소의 보고서 말고 나머지는 공공기관에서 발주받아 진행하는 것인데, 보고회 때 지적사항이 참 재미있다. 임금체계 마련과 관련된 대안을 만드는 한 쪽에서는 너무 공무원스럽게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기재부 공무원이 뭐라고 하면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생산유발효과, 국민경제적 가치 등을 고려해서 안을 제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적했다. 그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재 그런 식으로 임금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관이 어디에 있나? 몇 마디 하려다가 난 걍 보조연구원이니 대충 표 몇 가지로 반영하자 하면서 끝냈다.
 
기능개편과 관련한 다른 한 쪽에서는 중간보고서가 공무원들이 보고하는 식으로 쓰여지지 않았다고 정 반대로 얘기한다. 그리고 목차의 구성이나 내용도 허술한 부분이 많다고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이긴 하지만 내 정치적 입장하고 다른 식으로 글을 써야 하니 글이 잘 써지겠나. 철학적, 논리적 근거를 도출하라고 하지만, 그러려면 신공공관리(NPM)에서 근거를 끌어와야 하는데,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거다. 일단은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답답하다.
 
사회공공연구소에서 며칠만에 작성한 공공기관 지배구조에 관한 사항은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지배구조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고, 또한 2년 전에 썼던 글에서 이를 언급해놓은 게 있어서 이를 수정보완하면서 글을 작성했더니 A4로 50여 페이지 넘는 분량이 채워지더라. 
 
덕분에 작년 말에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가 발간한 [공공기관 선진화를 위한 정책과제]를 다 읽으면서 공공기관과 관련한 흐름을 다시한번 파악할 수 있었고, 쟁점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1/3가량이 지배구조(그 중에 경영평가에 관한 부분이 100페이지)에 관한 것이었지만, 대부분 연관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안적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모색 운운하긴 했지만, 저들이 이런 안들을 고려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힘을 가져야 대안도 부각될 것이고, 그러려면 현장이 다시 살아나야 하고... 그런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개편 방안이나 현행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공공부문을 구성ㆍ운영하는 기조가 되어야 할 ‘공공성의 철학’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공공성이 관치와 동일시되는 구습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데다가, 내용적으로는 일반 사기업과 공공기관의 차이를 무시하는 지침이 제시되고 있다. 이제는 공공기관의 운영을 정부의 일방적인 통제 중심으로가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생산과 이용에 관련되는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대안적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모색이 필요하다.
 
사기업의 경우에는 기업지배구조의 통제원리로서 독립성, 경쟁성, 책임성이 중요한데, 이는 각각 내부 지배구조, 외부 지배구조, 그리고 지배구조의 토대를 형성하는 법과 제도에서 요구되는 원리들이다. 이를 공공기관 지배구조에 적용하면, 내부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장 등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 등을 견제할 수 있는 자율성 및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을 견제ㆍ감독하는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사회가 감시자로서 지배구조상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기관장으로부터 독립하여 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은 독립성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의 자율성도 확보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외부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이 원래의 설립취지 및 고유목적, 그리고 공공성에 따라 운영되도록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시장에서의 경쟁성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공부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공적인 통제 메커니즘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공공기관 지배구조에는 법과 제도 등에 의해 이해관계자로서 시민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책임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책임성 및 공공성은 민주적인 지배구조의 확립을 통해 별도로 확보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탐색함에 있어서 ‘OECD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설계와 운영에 관하여 최초로 작성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고,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 또한 그 내용을 수용하였다고 평가되고 있으므로 반드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OECD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은 OECD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선에서 제시된 것으로, 공기업/공공기관과 사기업의 차이를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규제하는 법ㆍ제도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 가이드라인이 OECD의 기업지배구조 원칙에 부수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OECD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에 기반한 주인-대리인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대리인 문제의 핵심은 비대칭적 정보에 있으며, 이런 정보의 비대칭 상황을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대리인의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주로 외부 통제에서 찾고 있다. 이에 대해 청지기 이론은 주인과 대리인이 공통의 핵심가치를 공유할 때 조직 내에서 공공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강한 일체감 형성이 내적 책임감을 유발한다고 본다. 또한 OECD 가이드라인을 한국적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는데, 이를테면 ‘소유권 기능의 집중화’ 제안은 이를 행사하는 기관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기획재정부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고, 기획재정부가 재정 및 예산권한을 집중하여 행사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및 공공부문 종사자의 도덕적 해이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운영법」을 제정하였지만, 공공부문에 대한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인한 공공성 후퇴(공공서비스 후퇴, 비정규직 확산에 따른 사회적 문제 등), 공공부문 정책에 대한 실질적 감시체제 부족, 낙하산 인사의 만연 등과 같은 핵심적인 문제를 비켜가고 있기 때문에,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문제점이라고 인식했던 내용들은 대부분 현행 공공기관 지배구조 하에서 거의 해결되지 못했다.
 
여전히 공공기관의 경영 투명성은 부족하여 경영성과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고,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에 대한 시민들의 개혁 요구는 끊임없이 공공기관 선진화 개혁이 제기되는 과정에서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이사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까닭에 경영감시, 통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감사 또한 내부 통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여건에 있으며, 임원 선정의 공정성 미흡에 대한 논란은 노무현 정부 시기보다 심각해진 형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법과 제도상의 문제로서, 공공기관 유형분류 및 지정ㆍ고시의 문제점, 관료적 연계의 불완전한 해체 및 기획재정부로의 관료적 통제 집중, 공공기관에 대한 감독체계 개편의 사각지대 존재의 문제가 있으며, 외부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무력화, 형식적인 경영공시, 지배구조의 구성에서 이해관계자 참여 배제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내부지배구조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미흡, 여전한 감사제도의 문제, 무원칙한 임원선임제도 개편에 따른 관료적 통제의 심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방향은 민주적 관리방식에 입각한 지배구조가 되어야 하고, 공적가치 관리에 입각한 공공기관 지배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통제원리별로 보면, 우선, 공공기관 지배구조 내에서 경제관료, 민간 전문가, 언론계 사이에 일종의 철의 삼각(iron triangle)이 형성되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관료주의와 시장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신자유주의적 지배논리가 강화되는 현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이해관계자로서의 시민에 대한, 그리고 노동자에 의한, 공공서비스의 책임성과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공부문 지배구조 민주화의 전제로서 기획재정부, 학계, 언론계 사이의 연계고리를 끊어냄으로써 공공개혁 논의구조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의 외부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이 원래의 설립취지 및 고유목적, 그리고 공공성에 따라 운영되도록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적절한 공적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해관계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비상임이사로 참여하는가, 비상임이사의 실질적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내부구성원의 참여 및 소통 통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공공기관의 설립취지 및 고유목적은 사업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기관의 사업 및 활동은 공공성을 담보하는 방향에서 운영되고 있는가 등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공공기관의 내부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장 등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 등을 견제할 수 있는 자율성 및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을 견제ㆍ감독하는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안적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선 법과 제도 측면에서 민주적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취지를 반영한 사항이 「공공기관운영법」의 목적에 포함되어야 하고, 공공부문 대정부 교섭구조의 마련과 관련된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외부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독립성 및 책임성을 제고하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이해관계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공공기관 평가주체를 개편하여 산별노조가 평가의 주체로서 참여할 필요가 있고, 감사조직의 인적 개편이 요구된다.
 
그리고 내부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 및 자율성 확보를 위해 선임비상임이사 및 비상임이사의 비중 및 역할 제고가 요구되며, 이사회 구성 및 임원 임면시 직능대표성을 가미하도록 하고, 공공기관 감사에 대한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동시에, 공공옴부즈만제도와 같은 이해당사자에 의한 직접적 감시 메커니즘 구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주적이고 신중한 임원선임절차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내용에 따라 대안평가틀의 범주에서도 정부의 경영평가틀 7개에 ‘지배구조’, ‘사회적 기여도’가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지배구조’ 범주는 생산자/이용자 연대 취지를 살려 공공기관의 사회적 위상에 조응하는 의사결정체계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대안평가는 개별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인 만큼, 내부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주무부처와 공공기관장 등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 등을 견제할 수 있는 자율성 및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을 견제ㆍ감독하는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지배구조 지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17 14:15 2010/07/17 14:15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폭발물 있나 없나 보려고 CCTV, IP카드 도입

View Comments

현장에서의 노동통제, 노동자감시문제는 이전부터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적되지 않아 왔다. 오히려 경영효율성 측면에서의 유의미성에만 관심이 두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AEO제도를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노동자감시체제가 시도되는 모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07년 노동감시를 제재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노동부에 권고한 바 있지만 고용노동부가 이에 신경쓸리 만무하다. 스마트폰을 통한 도시철도 내의 노동자통제 문제와 함께 CCTV, IP카드 도입 등과 관련한 노동감시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하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당해봐야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걸까.

 
----------------------------------
폭발물 있나 없나 보려고 CCTV, IP카드 도입 (참세상, 김병기, 정재은 기자 2010.07.16 19:15)
한라공조, 9.11테러 후 AEO제도 둘러싼 노사갈등
 
한라공조 대전공장 사측이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공인 업체(이하 AEO)’ 인증 획득을 위해 CCTV, ID카드를 도입한다고 해 노사간 갈등이 예고된다. AEO제도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무역안전조치를 세계관세기구(WCO)가 수용, 국제표준으로 채택했다. 미국의 민간협력체제가 국제화된 것이다.
 
기업의 자발적인 선택사항이지만 인증을 받게 되면 통관절차 간소화 등 비용적으로 이득이 있고, 국제적으로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정받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 특히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AEO로의 인증 추진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설치되는 CCTV, IP카드와 같은 사업장감시시스템은 인권침해, 노동자감시(통제)와 궤를 같이 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이로 인해 피해자도 발생했다. 또한 ‘테러 방지’ 목적으로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고 규정하고 있어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조차 인권침해, 노동자감시(통제) 일부 인정
노동자가 무슨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금속노조 한라공조지회에 의하면 사측은 AEO 인증 획득에 필요한 CCTV, IP카드 도입을 위한 노사협의회를 개최하자고 요구했다. 수출물량에 대해 폭발물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며 그 외 다른 목적은 없다고 했다.
 
AEO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법규준수도, 내부통제시스템, 재무건전성, 안전관리 등 4가지 기준에 따른 세부항목을 자체평가해 관세청에 제출하여 심사받도록 되어 있다. 관세청 관계자에 의하면 안전을 위한 기본 출입통제, 화물 취급 안전을 위해 출입시 권한이 있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도록 지문인식, CCTV, IP카드, 사람에 의한 감시 등이 AEO 인증을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도입형태는 기업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관세청도 인권침해와 노동자감시(통제) 논란 대해서는 일부 인정했다. 관계자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근로자가 찍히기 때문이다. 노사가 충돌한다면 자체 논의를 통해 강제규정이 아니므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감시체계이다.
 
한라공조지회는 CCTV, IP카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현철 지회장은 “인권침해라고 생각해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타 사업장 사례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CCTV설치 자체만으로 노동자들은 불쾌감을 느끼며 일할 수밖에 없다. 현장 조합원들의 반발이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한라공조 한 노동자는 “사측은 9.11테러이후 미국이 강화된 보안규정을 요구하고 있어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CKD(포장현장), 물류창고 등에 CCTV 설치, 공장 각 출입문에 차단기 및 CCTV 설치, 전사원 대상으로 ID카드 발급(출입자동체크) 실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보안규정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현장의 반발도 클 것 같다. 개개인의 위치식별 등 감시, 통제의 목적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예전에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할 때도 노조가 천막치고 반대해서 막았다. 그 당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CCTV는 설치하지 않는다’라고 단협조항에 명시되어 있다”며 “차량번호인식카메라, 출입문차단봉, 담장에는 적외선카메라까지 설치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인권침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노동자가 무슨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사측은 갖은 구실을 들이대며 노동자를 통제하려 해 왔는데 AEO제도도 EPR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시도일 뿐이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업장감시시스템 피해 속출
사업장감시시스템에 따른 인권침해, 노동자감시(통제)에 대한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일례로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사측이 CCTV를 설치하고 노동자 감시용으로 사용하자 노조 조합원 13명은 2004년 불안·우울 증상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냈지만 두차례 불승인 했다. 결국 지리한 법정소송 끝에 서울행정법원은 2008년 조합원 12명의 ‘불안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와 관련, “공단은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감시시스템으로 인한 정신질환 문제는 KT에서도 있었다. KT는 2004년 9월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단행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 500명을 상품판매전담팀으로 발령하고 수시로 미행, 감시했다. 2005년 KT 전남, 전북지사 상품판매팀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은 회사의 감시행위로 인해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또한 2007년 삼성전자 천안 탕정공장에서 무선 주파수 송수신장치(RFIF) 도입을 검토한 문서가 폭로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지 사원 감시용은 아니라고 했지만, 문서에 따르면 사원이 회사 안에서 어떻게 이동했는지가 분초단위로 기록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발표한 ‘전자감시 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204명 중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카메라나 위치 추적장치,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 등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노동감시를 제재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노동부에 권고 했지만 조치는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씨는 “곧 개정될 개인정보보호법을 보면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정부조차 법률상 명확히 목적이 규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 CCTV는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가 심각하기에 정부조차 제정안을 만들게 된 것이다. 노동감시용으로 사용되는 감시체계도 문제가 많지만 노동부가 아직 제정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17 09:19 2010/07/17 09:19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

View Comments

생각난 김에 하나 더. 물론 이 글을 올리게 된 것도 강풀님 덕분이다. 강풀님이 트위터에 올리기 전에 내가 먼저...
 
이은진님이 레디앙에 올리는 노래이야기 중에 <철의 노동자>에 대해 다룬 글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는 전대협이 결성되어 학생운동의 전국적 조직도 결성되었고, 윤민석의 <전대협 진군가>가 학생운동진영의 최고의 인기곡이었는데, 영화를 보던 학생들이 <철의 노동자>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전대협 진군가>로 착각을 하고 모두 일어나 함께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노래를 불러보면 안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 이렇게 된다는 얘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이렇게 되어버리는 노래도 있고...
  
아래의 글도 만화를 보고 많이 공감이 갔었기에 역시 네이버블로그에 퍼놓았던 거다.
 
---------------------------------------
어머니와 고등선(?) 2004/10/09 09:19
 
살아가다 보면 이럴 때가 많다.

착각하여 잘못알고 있는 것인데, 그게 맞는 것으로 알고 이리저리 떠들고 다니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민망해하던 일.

 

일주일동안 거의 매일 아침식사를 한다. 어머니가 식사준비를 해주시고 깨우면 일어나서 숫가락을 들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갈치조림이  나왔고, 더이상 데우면 쪼라들어 더이상 먹을 수 없기에 오늘 다 처치하라는 압력이 가해졌지만, 결국 한 도막을 남겼다. 

갈치조림을 먹으면서 아래의 만평이 생각났는데, 음...  
 
http://dodaeche.com/652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5. 1. 10

강풀닷컴에서 퍼온 비슷한 만화 하나.

사실 노래 부르다가 엉뚱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이렇게 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쌍다반사에 들어가는 만화들을 찾아가 발견한 것이다.

 

제목 : 어머님의 은혜(일쌍다반사)

이름 : 강풀                                                             [2004-11-28 00:31:30],   조회수 : 3658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15 23:14 2010/07/15 23:14

6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